하나. 엎드려 절 받기


지난 주 나를 아주 화나게 했던 그 활동가 건(지난 페이퍼에서 언급했던 일)으로 인해 금요일 저녁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 활동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오해하거나 착각해서 이러는 건가 싶어서 아내에게 상의를 했다.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내의 결론은 간단했다. 그 사람이 미쳤거나, 아주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라는 거였다. 물론 가족이기 때문에 내 편을 더 들어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아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평소에 나와 말다툼을 할 때보면, 내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오히려 더 철저하게 상대방을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서,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건 나 혼자만 개인적으로 기분나빠하고 말 사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거나 함께 사업을 진행해가고 있는 두 단위를 대표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그쪽 단체가 우리 회사를 무시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단체의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건물에서 일했었고, 몇 번인가 함께 술잔도 기울였던 사이다. 평소에는 전혀 연락을 안 하다가, 갑작스레 이런 일로 연락을 하게 된 게 좀 미안했지만, 어쨌거나 해결책은 이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앞부분은 배경 설명을 하고, 현재의 내 기분과 우리 쪽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대표님께 보고하고, 대표 명의로 공식적으로 항의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와 주고받았던 몇 통의 메일 전문을 첨부했다.


토요일 오후 늦게 메일을 받은 국장님께 답장이 왔다. 일단 이런 상황이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고, 함께 활동했던 동지로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얘기와 함께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 연락주시겠다고 했다.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국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사과를 하시면서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셨다. 어쨌거나 결론은 명백하게 그 활동가의 잘못이라고 했다. 다만 그 활동가가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정리중이며, 여러 가지 정황상 곧바로 사과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자신이 대신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이해하고 마음을 풀어달라고 했다. 원래 문제가 되었던 건의 처리는 그쪽에서 곧 마무리하기로 했다.  

 

해당 활동가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모든 상황은 원만하게 해결이 된 듯 했다. 나로서도 더 이상 이 건을 문제 삼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니. 일단락을 짓기로 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곧 소주 한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둘. 열꽃은 피었다가 지고


지난 주 내내 고열에 시달렸던 아기는 금요일 오전부터 체온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온몸에 열꽃이 올라왔다. 이틀 전인 수요일에 의사선생님이 열이 내리면 열꽃이 필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딱 들어맞았다. 퇴근해서 아기를 안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주일동안 앓느라고, 살이 쏙 빠진데다가(흔히 말하듯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얼굴에 온통 울긋불긋 열꽃이 올라있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한동안 녀석을 꼭 껴안고 서있었다. 아플 때는 잘 웃지도 않고, 장난도 안치던 녀석이 이제 좀 나아지긴 했는지, 예전처럼 잘 웃고,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보더니 갑자기 시를 읊으셨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열꽃을 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와 아내는 좀 당황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아기 얼굴에 핀 열꽃을 보고 그 유명한 시를 떠올리는 건 자유지만, 아픈 아기를 안고 병원을 찾은 부모들에게 그 시를 읊는 건 좀 당황스럽다.


아기가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니까 절대 외출하면 안 된다고 해서, 주말을 집에 콕 박혀서 보냈다. 일요일 오후가 되니 열꽃이 많이 가라앉았다. 게다가 얼굴에 다시 살이 붙는 게 느껴졌다. 어제 퇴근하고 돌아오니 포동포동 살이 붙은 아기가 나를 반기며 웃었다. 열꽃은 이제 완전히 다 나은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기와 장난을 치며 놀았다. 아기가 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가야, 제발 아프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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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3-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저는 내내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라(다른 일도 못하고) 시원하게는 아니지만 이리 일단락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속상하시겠어요 --;;

아휴 아가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졸이셨을까요? 어떤 생명도 거저 자라지는 않나봅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1-03-22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모리님과 비슷한 성격이라, 이틀동안 다른 일도 못하고, 혼자 열받아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잘잘못을 따지고 나니, 억울함은 해소가 되네요.

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고맙습니다!

울창 2011-03-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다행입니다. 두 일 모두요.

저는 남자애만 둘인데요, 응급실행도 제법, 깁스도 제법, 그냥 병원 가는 일은 수없이 했지만 할 때마다 마음 아프긴 마찬가지더라구요.

휘모리님 말씀대로 어떤 생명도 거저 자라지는 않나 봅니다.


감은빛 2011-03-23 12:26   좋아요 0 | URL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에 비해서 가슴이 철렁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아마 저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그런 존재였겠죠!)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1-03-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잘잘못을 가려 마음이 풀리셨다니 다행이어요.
저는 잘못하고도 사과 안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응징하는 쪽입니다.
제가 순 오기라 이름값 좀 합니다.ㅋㅋ

아기가 아프면 정말 대신 아프고 말지, 차마 보기 어렵죠.
그렇게 한 고비 넘기면 쑤욱 자랐다는 걸 느끼지만, 너무 안스러운 일입니다.
고새 잘 먹어서 살이 올랐다니 한시름 놓이네요.

감은빛 2011-03-23 12: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름값 하실 것 같아요! ^^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1-03-2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기는 아프면 안되요.

그리고, 그리고, 저도. 소주한잔.. 막 이러고..;;;;
(이걸 무슨 특허같은걸 낼까봐요. 본문과 상관없는 무의미한 댓글로...)

그나저나.. 아기는 이제 안아플거에요. 이번에 다 아프고 앞으론 안아플거에요.^^

감은빛 2011-03-23 12:29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 특허 내기 전에, 저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어요!
근데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왠지 보통 내공으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저에게도 비법을 좀 전수해주시면 안될까요? ^^
(소주한잔!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

pjy 2011-03-2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들의 요맘때 효도는 안 아프고 잘먹고 제때 자고 잘 싸는거죠^^; 이제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감은빛 2011-03-23 12:31   좋아요 0 | URL
같은 말을 결혼전에 부모님께 들었을 때는 그냥 당연한 말이었지만,
부모 입장이 되어 몸으로 겪어보니, 정말 중요한 말이더라구요!
무조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의 최고의 효도입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3-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일이 다 잘 풀렸군요^^

감은빛 2011-03-23 13:07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루쉰P 2011-03-2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일도 같이 오고 좋은 일도 같이 오니 다행이네요. 또 무슨 일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신경 쓰며 사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싶네요. ^^ 화이팅!!

감은빛 2011-03-23 13:08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아무일도 안 생기면 오히려 재미없을테니까요.
고맙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3-2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엎드려 절받기 때론 필요한 것 같더라구요.
엎드려서라도 절을 받아야 할 때는 이름 지어 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흐지부지 해버리면 그걸 사람 좋아 그냥 넘어간 걸로 아는 게 아니라,
흐리멍텅한 줄 알고 얕잡아 보더라구요.
사회 생활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고, 염증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이제 밤에 좀 주무실 수 있겠네요~^^

감은빛 2011-03-23 13:11   좋아요 0 | URL
제가 예전에 그런 취급을 종종 당했습니다.
예의상 혹은 인정상 조금 손해를 보고 지나가면,
사람을 아주 우숩게 여기거나, 얕잡아보는 것 같더라구요.
정말 이런 거 아주 싫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1-03-2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야, 아프지 마라, 아프더라도 더 건강해져라.
모든 부모들이 외는 주문이지요. 나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감은빛 2011-03-23 13:12   좋아요 0 | URL
네, 그 주문이 입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네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섬사이 2011-03-2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아기를 안고 안쓰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이라니..
갑자기 정호승 시인의 '아기의 손톱을 자르며'던가? 하는 시가 떠오르네요.
전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참 좋아요.
제 남편은 좀 무심한 타입이라.. ^^;;

일이 잘 해결되고 아기가 다시 건강해졌다니 참 다행이네요.
(아기가 열이 심할 때가 저는 가장 무서워요~~ 덜덜덜)

감은빛 2011-03-23 23:22   좋아요 0 | URL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네요.
덕분에 몰랐던 좋은 시를 감상했습니다.

그렇죠. 아기가 어릴 때는 열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39.9도였을 때는 정말 큰일 나는 줄 알고 겁이 나기도 했어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穀雨(곡우) 2011-03-2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겠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감정이 상하면 일도 그렇고 매끄럽지 못한데 현명하게 잘 대처하셨네요. 저도 다음에 써 먹어야겠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이 아린다는 말, 새록새록합니다.
태어난 아이의 검은 눈망울에서 전 여태 보지 못했던 걸 보곤합니다.
해서 요즘은 아이로부터 더 큰 공감을 배웁니다.

감은빛 2011-03-23 23:2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그와 사이가 나빠져도 상관없지만,
공식적으로 파트너 관계에 있는 단체와 회사가 관계가 나빠지면
곤란한 상황이어서, 여러가지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아이로부터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첫눈 2011-03-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때문에, 아마도 의사선생님께서 시를 낭송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기가 많이 좋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전에 회사일로 마음 상하셨던 일도 어느정도 해결 된 것 같아 그것도 다행입니다. 아마도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정리중 아닐까요? 그런식으로 일하면 주위에 친한사람 하나 남지 않을것 같거든요.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같았으면 찌질하게 굴었을듯...ㅋㅋ.

너무 다행입니다 ^^

감은빛 2011-03-23 23:29   좋아요 0 | URL
네, 첫눈님 말씀처럼 아기를 보고 좋은 뜻으로 시를 들려주신 거겠죠.
그렇지만 정말 의사선생님이 시를 읊는 순간은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입으로만 웃었어요.
마음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1-03-2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가지 일이 무사히 낙착되었네요. 낙착이란 말로 매듭짓기에는 그 과정에서의 감은빛님의 심려가 크셨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이런 어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감은빛 2011-03-28 16:59   좋아요 0 | URL
네, 한동안 맘고생을 좀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때마다 슬기롭게 잘 넘길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게 말처럼 잘 되지는 않더라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