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
사토 아유코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의미


이 책을 다 읽고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마야는 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성별의 한계가 있겠다. 나는 현재 중년 남성으로서 젊은 여성의 생각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공간의 한계다. 이 소설은 1996년 "가와데 문학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이야기다. 나도 물론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살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여러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은 SNS와 각종 영상 등을 통해 각 나라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번째로는 계급 혹은 계층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약간 억지로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인 도쿄대학을 다니고 있다. 비록 마야가 보디 렌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내용은 없다. 아마 굳이 보디 렌탈이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 마야는 그 용돈 벌이의 목적과 보디 렌탈의 고객 모집을 위한 목적으로 바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한다. 암튼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나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공부를 그리 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시민운동 판에 뛰어든 가난한 활동가일 뿐.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르다. 이 지구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결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모두 이렇게 다름에도 불완전하게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마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토 아유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일터에서 가까워도 한동안 가지 않았던 알라딘 중고서점을 그날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책들을 살펴보다가 정보라 작가의 책 하나를 고르고 우연히 집어든 책이 [도쿄대학 살인사건]이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문구에 비운의 천재 작가라고 적혀 있어서 구매했었다. 이 책은 약 1/3 정도 읽었는데, 진행이 좀 느리고 생각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토 아유코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이 [보디 렌탈] 이라고 하길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덮어두고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보디 렌탈]이고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도 이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출간된 책이 지금 제목으로 나왔다. 암튼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알라딘 앱에서 중고 책을 검색했다. 세 곳의 매장에 이 책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2만원 어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인데, 평소 다른 온라인 쇼핑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한다. 그래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책이니까. 


이 소설이 "가와데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회의는 무려 4시간이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문학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전에 심사위원들이 대략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맨 뒤에 수록된 두 편의 해설과 옮긴이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진노 토시후미는 이 소설을 포함한 사토 아유코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실험"으로 보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김미현 평론가는 "하루키의 경쾌함, 뒤라스의 관능성, 쿤데라의 위악성이 혼합된 묘하고 대담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옮긴이 김진욱은 사토 아유코가 "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그렸다고 언급했다.


이 책을 한 번 완독하고 두번째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한 내 솔직한 마음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만큼의 문제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3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김미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하루키와 뒤라스와 쿤데라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아, 확실히 경쾌함이 있고, 관능적이고, 위악성이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잘 어우러져 있는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 요컨대 핵심은 이거다. 이 글의 맨 앞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자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떠올릴 질문, 그래서 대체 왜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주는 걸까? 그것도 젊은 여성이 돈 많은 중년의 남성들에게 고액의 돈을 받으며 남들이 매춘이라 부를 행위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돈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도 아니다. 뭔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책을 덮은 후로 꽤 긴 시간을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진노 토시후미는 매춘을 "상실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내 몸이지만, 이 몸이 내 신체라는 감각을 상실하는 것. 이것을 위해 보디 렌탈 이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이 일본인 평론가는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우연한 계기로 신체감각을 상실할 계기로 매춘을 선택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해설은 아마 일본에서 출간된 96년 판본에 실린 글일 것이다. 사토 아유코는 2008년 [꽃들의 묘비]라는 작품을 출간하며 자신과 언니가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신체감각의 상실을 위해 매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미현 평론가는 글에서 보디 렌탈의 이유를 딱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텅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허구나 망상, 유희 만을 담기 위해 의식이나 반성, 이성 따위 자의식을 몸에서 파낸다."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소설 후반부에 마야가 유일하게 가학 충동을 느껴 먼저 유혹하는 우치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결국 마야가 "완전한 물건이 되기에는 그녀의 자의식이 철저하게 제거되지 못했기에 분열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물건이 스스로 물건임을 모르면 진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라며 "자신이 물건이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물건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마야는 자의식조차 없는 물건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의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에 실린 마야의 목적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치유" 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남자들의 욕정의 기호로 삼아 철저히 세련되게 만들면서 거꾸로 그 같은 욕정의 세계에서 정신을 이탈시킨다는 식의 '야릇한 치유법'" 이라고 적어놓았다.


이 소설에는 마야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현재 대학생이면서 남몰래 부유한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살고 있고, 그 고객인 여러 남자들과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등장한다. 마야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왜 이런 작중 주인공인 마야의 삶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려야 했을 것이고, 자신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작가는 비운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괴물에게 학대 당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자의식을 철저하게 지워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로 여러 번 썼었고,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에 나 스스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만약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도저히 그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낱 미물이며, 감히 인간 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만약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영을 했을 것이다.


이제 작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 놓고 몇 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일단 확실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다. 다만 글에는 섹스 묘사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조차 없기 때문에 포르노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마야가 말하는 보디 렌탈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이 글에서 중년 남성들이 마야를 빌려서 하는 여러 행위들은 철저히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배재하고 그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를 배제한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에 상당한 블랙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다.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 조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인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정말 독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너무 거리낌 없이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이 경쾌하고 거침이 없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위트와 해학을 갖춘 글이다. 앞서 김미현 평론가의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말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이 소설의 결말은 좀 많이 아쉽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아쉽다. 병렬적으로 여러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앞서 언급한 그 우치다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일텐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 


이 이야기에서 이어서 생각할 거리들도 제법 많다. 일단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파카츠"가 이 책에서 묘사된 보디 렌탈과 매우 유사하다. 부유한 중년 남성이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이랑 놀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결국은 이것도 매춘이고,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텐데, 거창하게 방과후 동아리 활동을 뜻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를 파파랑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하려면 조건 만남이라고 해야할까?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 에서 강이나 라는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을 만나면서 원하는대로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파파카츠로 돈을 벌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자신의 '최애'에게 갖다 바치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또 다른 형태가 있더라. 바로 렌탈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말로 여친 대행 서비스 라고 하면 되려나? 일본 드라마 [내일,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로 시즌 1을 보았고, 시즌2는 앞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에 렌탈 여친, 파파카츠,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통용되는 매춘 행위들이 총 망라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이 나왔던 96년에는 책 내용이 충격적인 문제작이었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류의 매춘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과 이 드라마를 연결해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드라마를 가볍게 보고 넘겨 버려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디즈니 플러스를 딱 한 달만 구독해서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 나는 듯하다. 다시 보려면 다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좀 아깝다. 혹시 [무빙]의 후속 시리즈로 강풀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나오면 그때 다시 구독할 예정이라, 그때 다시 보고 글을 쓸까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사토 아유코는 2013년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을 병용한 급성약물중독이라고 나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을 작가의 삶을 감히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작품 써준 덕분에 이렇게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 이제 꽤 오래 방치해뒀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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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다. 벽을 주제로 쓴 6편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4편은 SF임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두 편은 잘 모르겠다. 이런 류의 주제별 모음집은 수록 작품들의 편차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취향으로만 봐도 그렇고, 구조와 밀도를 생각해도 그렇다.

첫 소설인 듀나 작가의 [아레나]는 이 책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할만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미국의 코믹스나 영화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초능력자들이 엄청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K팝 아이돌 문화를 엮었다. 초능력자 아이돌이 공연도 하고 악당들도 물리친다. 그 장면들은 드론으로 촬영되어 전 세계로 영상을 퍼뜨린다. 하지만 모든 장면을 다 드론이 찍을 수는 없는 일. 카메라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이나 잘 보이지 않는 장면들은 각색되어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초능력자들의 전투 장면들은 초기에는 사실이 거의 대부분 발표되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은 그저 하나의 선택할 수 있는 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재미를 위해 양념을 치고, 이미지를 미화하고 몇몇 중요한 사실을 감추기도 했지만, 사실의 큰 덩어리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전투와 오락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회사마다 쌓아놓은 비밀들이 많아지자 사실은 점점 존재감을 잃었다.˝(본문 33쪽)

수십명의 초능력자 무리가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를 습격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투에서 죽었지만, 전투가 끝나자 회사의 작가들이 살아남은 초능력자들에게 다가가 인터뷰 하면서 처음엔 사실을 묻고, 그 다음엔 생각을 묻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지를 묻는다고 했다. 이렇게 회사에 고용된 작가들이 만드는 공식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전세계 팬들이 각자 만드는 팬픽들도 있다.

이제 진실 혹은 사실은 그 힘을 잃고,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 버리는 설정과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들만 유통되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제목 아레나는 고대 로마 시대에 검투사들이 싸우던 원형 경기장을 말한다. 소설의 첫 문단에서 2033년 7월 14일 대구 도시철도 공사장에서 진홍색 젤리로 가득찬 지층이 발견되고 끔찍한 전염병인 적사병이 유행하고 남한은 이제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독특한 생태계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적사병의 원인인 프로스페로 생태계는 소수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초능력자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아레나는 이렇게 초능력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소이고, 대한민국이란 나라 전체가 관중석으로 고립된 경기장처럼 전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거대한 아레나가 되었던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남성은 청소년기에 강한 초능력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자 강한 히어로였지만, 성인이 되면서 회사 경영진이 되어 얼굴 마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회사 경영은 다른 동료들이 하고, 그는 그저 앞에 나서서 웃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제 초능력자들의 전투에도 나서지 않는다. 성인이 된 그와 동료들은 경영자와 중간 간부가 되고, 다시 어린 청소년들이 나서서 전투를 한다. 이런 시스템도 한국의 케이팝 아이돌과 그 기획사의 문화를 가져다 썼다. 현실에서도 각 기획사마다 연차가 오래된 아이돌들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않고 회사 중간 간부가 되거나, 얼굴 마담이 되는 것 같다.

듀나의 이 짧은 단편은 흥미로운 소재와 다양한 초능력을 지니고 또 사연을 품은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책을 처음 펼쳐든 독자들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졌다. 이 정도의 설정으로 이렇게 짧은 이야기만 펼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다음 이야기를 계속 써주거나 연작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소설인 아밀 작가의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은 제목에도 나온 것처럼 4차원을 다룬다. 3차원 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이 4차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해도 인간인 우리가 그걸 잘 느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음악, 그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다룬다. 읽다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잠깐 생각났다.

세번째 소설은 이산화 작가의 [깡총]이다. 맞다. 깡총 깡총 뛰어다니는 그 동물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동물 덕분에 멸종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 이야기 왠지 익숙하지 않나? 그렇다. 이건 호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가져와 더 흥미로운 설정을 덧붙였다. 긴 싸움을 이어가는 두 종족의 싸움이라는 설정도 좋고, 연구자와 사냥꾼이라는 두 인간 주인공의 조합도 좋았다.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이 기가막히게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이산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큰 발견이다. 이 소설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마틴 옹의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장벽과 같은 길고 높은 벽이 나온다. 사이비 종교에 미친 광신도 집단도 나온다.

이서영 작가의 [월담하려다 접천]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처음 소개한 듀나의 [아레나]에서 남한 전체가 고립된 상황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서울이 하나의 고립된 섬 같은 상황이다. 벽에 갇힌 도시 같은 느낌. 여기 서울은 전능하신 방패님이 다스리는 나라다. 뭐든 방패님의 말씀을 따라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방패님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 내 느낌에 한 사람의 독재자인 것 같지는 않고 소수의 엘리트 고위 공직자 집단이거나, 종교 집단의 지도자들이 아닐까 싶다. 이 독재국가에선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의 출산센터에서 태어나 유아센터, 초등센터, 중등센터, 고등센터를 옮겨 다니며 자란다. 주인공은 역촌동 출산센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같은 출산센터에서 태어나 같은 유아센터 등을 함께한 친구는 나오지만 부모나 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공동 시설에서 다함께 자랐으리라. 어렸을 때 북한에 대해 들었던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공동 작업장에서 일을 해야하고 아이도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자란다. 방패님의 말씀을 통해 평생 서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듣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는데, 코딩을 통해 우연히 외부 네트워크의 존재를 알게되어 접촉했다는 이야기. 후반부에 갑자기 이야기의 규모가 너무 커지는데 비해 적절한 묘사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고, 결말이 좀 많이 허무하다. 방패님이란 기묘한 느낌의 독재자 이미지가 재미있고 신선했는데 갑자기 너무 큰 이야기를 흘러가버려서 많이 아쉽다.

이유리 작가의 [무너뜨리기]는 마음의 벽 아니 서로를 허물없이 생각하는 어떤 경계를 다룬 소설이다. 작중 7년차 부부인 남녀 주인공이 더는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게 되고, 방귀도 아무렇지도 않게 뀌게 되는 상황에서 남자가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는데, 리빌딩이란 이름의 일종의 최면 치료 같은 것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제법 괜찮았다. 그런데 후반부에 갑자기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좀 황당하게 끝난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소설은 정보라 작가의 [무르무란]이다. 아마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고대 흔히 우리가 신석기 시대라 부르는 돌도끼와 돌칼을 쓰던 시절의 이야기. 선조로부터 지혜를 벽화를 통해 배워 익히고, 이 시대의 지혜를 또 벽에 새겨 후대에 남기는 삶을 다룬다. 사냥에 대한 장면을 기대했으나 묘사가 안 나오고, 주술의식에 대한 묘사는 길게 나오는데 그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소설집 [저주 토끼]를 통해 읽었던 정보라 작가 다운 글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생각보다는 크게 와닿는 지점이 없는 소설이었다.

여섯 작품 모두 저마다 다른 위상과 층위의 벽을 상정하고 이야기를 펼친다. 듀나 작가와 이서영 작가가 고립된 국가와 도시를 둘러싼 벽을 그렸고, 이산화 작가는 인간이 만든 인공물로서 거대한 장벽을 그렸다. 아밀 작가는 차원의 벽을 상정했고, 이유리 작가는 심리적인 벽을 가정했다. 정보라 작가는 유일하게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암벽을 주제로 글을 썼다.

다양한 이야기 꺼리들이 여러가지 다른 주제로 생각을 넓혀주는 기분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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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6-24 0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듀나님은 오래전부터 sf소설을 쓰신분인데 아직까지도 작품활동을 하시는지 몰랐네요.저도 읽어봐야 겠네요^^

감은빛 2025-06-26 17:43   좋아요 1 | URL
단편을 여기저기 많이 발표하셨던데요.
확실히 필력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외국 작품을 읽을 때 항상 가장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것은 원작의 제목과 그 뉘앙스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했을 때에도 그랬고, 늘 그랬겠지만, 외국 작품들을 우리나라로 가져올 때 제목을 바꾸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제목이 바뀌면서 원제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제법 많다. 아, 이 글의 시작을 좀 잘 못 한것 같다. 실제로 제목이 바뀐 경우에 이렇게 글을 시작해야 적절한 설명이 되었을텐데, 이 경우엔 실제로 제목이 바뀌지 않고 똑같으니까, 이렇게 시작하면 쓸데없이 분량만 잡아먹는 꼴이 된다.

그런데, 아니 그럼에도 이렇게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나는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었다. 그리고 그 영화 내용이 거의 하나도 기억도 안 날 때쯤 이 소설을 읽었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봤고, 그리고 소설을 빠르게 한 번 더 읽고 이 글을 쓴다. 맨처음 이 영화를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때 혼자 봤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봤던 것은 맞고, 조금은 불확실하지만, 혼자 봤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누군가 다른 사람과 같이 보고 그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남아있다. 분명 같이 봤던 사람은 여성이었고, 그는 내게 만약 남자 주인공이었다면 어떨 것 같냐고 극중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구체적인 내용과 내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나도 그에게 여주인공의 입장이면 이라는 가정으로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역시 그의 답변도 그닥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영화만 봤을 당시에는 이 작품의 원제가 비밀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다른 제목이었을텐데 그냥 배급사에서 편하게 정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정말 이상하게 지은 외국 영화 제목이 많았다.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정말 뜬금없는 제목들이 많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이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 비밀이 아니라고 느꼈냐면, 영화에서는 마지막 결론의 그 비밀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막판에 드라나는 가장 큰 반전이자, 제목을 의미하는 그 비밀이 원작에 비해서는 비중이 너무 적어서 그닥 와닿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게다가 책에는 분명 히미츠 라고 알파벳으로 일본어 원제가 적혀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에 이 영화를 봤던 기억에 다른 건 다 몰라도 히로스에 료코의 표정들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대략의 흐름에 대해서는 남아있었다. 그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왜 지금에서야 이 소설을 읽었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겠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새책 보다는 중고책을 많이 샀다. 예전에 비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상품은 거의 없고, 내가 어떤 책을 검색하면 우주점이라고 표현한 전국 어딘가 매장에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해당 매장에서 2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배송료가 없어지더라. 그 배송료가 아까워서 나는 일단 처음 검색했던 책을 담아놓고 다른 책들을 추가로 담아서 2만원을 넘기려고 하는데, 꼭 세 권 이상 담아야 하더라. 이런 경우 제일 무난한 방법이 검증된 작가의 책을 추가로 담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많이 담은 검증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 였고, 이 책 [비밀]도 그런 와중에 내게 오게 되었다. 책을 받고 보니 처음 구매하려고 검색했던 책보다 이 책에 손이 먼저 갔고, 그래서 읽었다. 다행히 영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흔히 스포일러라고 말하는 요소는 없었다. 물론 대략 어떤 흐름이라는 건 남아있었는데, 내게 그 정도는 몰입을 방해하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다.

그럼 책과 영화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두드려보자. 일단 책 먼저. 일단 나는 시작하는 방식이 좋았다. 이야기의 화자인 남편 스기타 헤이스케가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혼자 아침을 먹으려 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습관과 성격을 보여주었다. 나도 야간에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혼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잠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내 공감이 더해져 이 도입부가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도입부에서 사고 장면에 대한 묘사 없이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접하는 것도 좋았다. 이걸 나중에 깨달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철저하게 헤이스케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헤이스케가 직접 겪지 않은 그 사고와 같은 내용은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직접 다루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가령 병원 장면은 조금 그랬다. 아내인 나오코와 딸인 모나미가 얼마나 다쳤는지, 지금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지 곧바로 보여주지 않고 의사의 언급으로만 간접적으로, 그러니까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 소설에 상대적으로 시각적 묘사가 적은 듯 느껴진다.

나오코가 죽고 모나미만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딸인 모나미의 몸에 아내인 나오코의 의식(영혼이라고 쓰려다가 왠지 이 단어가 더 적절한 것처럼 느껴졌다.)이 깃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헤이스케의 모습은 처음에는 위화감이 적었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저항해야 현실적인 것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도 소설도 이 부분이 너무 무난하게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나미가 알 수 없는 나오코와의 첫 데이트와 (아마도) 첫 관계가 있었을 나오코 집에서의 첫 날의 기억 등으로 과연 모나미의 몸 안에 나오코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처음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가졌는지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자세하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사고로 희생된 많은 승객들의 유가족들이 호텔에 모여 대책 회의를 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일본인들 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그런 장면들을 보았으니. 사고에 대한 묘사가 없었기에 독자는 사고 원인에 대한 정보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이 회의를 통해 접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거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좀 답답했다. 물론 나중에 헤이스케가 이 부분을 파고 들긴 하는데, 정말 명쾌하게 원이 밝혀지기까지 몇 년이나 걸리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삿포로까지 가서 졸음운전을 했던 운전사의 전처의 아들을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었을 때, 나중에 전처를 만나야 결론이 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 일이 정말 그렇게 나중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

사고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최근 제주항공 참사가 떠올랐다. 철저하게 헤이스케 중심의 이야기 전개라서 다른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호텔의 회의 장면들과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 아주 조금의 정보들이 나온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쌍둥이 딸을 잃은 아빠(이 아저씨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다시 책을 찾아보기는 귀찮네)를 다루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차에 매달린 인형을 보는 헤이스케의 시선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나오코의 죽음과 방금 얘기한 것처럼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희생자들 이야기와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는 울음이 나는 걸 참기가 어려웠다. 아까 말했듯이 세월호 등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명들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이 사고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나온다. 애초에 스키여행을 위해 운행한 셔틀버스 성격이었으니 당연하겠지. 당시 일본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건지, 작가가 다른 비슷한 사고를 보고 넣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작가가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고였다. 다만 운전사가 돈 때문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무리해서 사고가 났다는 설정은 너무 손쉬운 설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눈길이었고, 차량의 결함이 있을 수도 있고, 길 자체가 위험한 구간이었을텐데 그냥 정말 다른 이유 없이 졸음 운전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좀 이상했다. 물론 이 소설의 핵심이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여기에 분량을 할애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왜 운전사가 졸음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나 라는 의문만을 밝히려 하는 태도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일본 지리를 잘 몰라서 도쿄에서 나가노까지 얼마나 먼지 모르겠는데, 그 거리가 버스 기사 두 명이 교대 운전을 할 정도인가는 의문이다. 내 경험에 명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17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고, 10시간 이상 걸린 적은 수도 없이 많다. 당연히 버스 기사님은 한 분이었고, 그 분이 그 긴 시간 휴식 없이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교대 기사 따위 없었으니까. 교대 기사까지 있는데도 버스 기사가 졸았다는 것. 아무리 돈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는 설정이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해당 기사가 졸려할 때 다른 기사 한 명은 뭘 한 걸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영화의 모나미, 그러니까 히로스에 료코는 그렇게 어리지 않았기에 처음 모나미가 초등학생이라고 했을 때 좀 놀라웠다. 고등학생이라면 어른이나 마찬가지니 위화감이 좀 적었겠지만, 5학년이라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인데, 그 몸에 30대 어른이 들어가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 작가가 영리하게 적절한 나이를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나미는 딸이지만, 나오코는 아내였으니 지금 나오코는 모나미의 몸에 있어도 아내라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이 어린 아이가 학교도 다니면서 집안 일을 모두 다 한다. 저녁거리를 사와서 매일 저녁을 준비하고, 설겆이와 뒷처리도 모두 혼자한다. 청소와 빨래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는데 헤이스케가 한다는 묘사도 없으니 역시 혼자 다 한다고 봐야겠지. 헤이스케는 집에서 하는 일이 없다. 야구 보고 다른 티비 프로그램 보고 가끔 맥주나 마시고 목욕하고 잔다. 아니 그 어린애가 학교 마치고 장보고 돌아와 서둘러 밥을 준비하고 설겆이까지 다 하는데 왜 아빠이자 남편이란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하지? 왜 엄마가 죽고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헤이스케가 밥을 하는 장면은 단 하루도 없지? 한 두번 혼자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혼자 먹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내라고는 해도(아니 아내여도 마찬가지지만) 외형은 어린아이인 딸인데 왜 단 하루도 집안 일에서 휴식을 주지 않는 걸까?

게다가 부부관계 즉 밤 일에 대한 부분은 참 어이가 없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끌고 간 것이겠지만, 딸이지만 아내니까 부부관계도 할 수 있다. 뭐 이런 논리인 것이겠지만, 그리고 결국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참 정신이 아득해지는 장면들이었다. 만약 여기서 선을 넘었다면, 그냥 이 책 집어던지고 더이상 안 읽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 부부라면 싸우고 나서 그 방법으로 해소하는 상황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작가도 딱 그런 생각으로 이 장면을 만들었겠지만, 그리고 독자들이 딱 지금 내가 생각하듯 생각하길 바라고 넣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영화로 이 장면을 봤는데, 다행히 영화에서는 옷은 안 벗었더라만(아마 심의 등급 등을 고려해 벗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 자체로 화가 나는 것 마찬가지였다. 이것과 함께 목욕 장면도 정도는 좀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다. 이것 역시 영화에서는 가볍게 넘어가는데, 소설에서는 헤이스케가 나오코와의 목욕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오코가 혼욕을 거부하고 나가자 화를 내는 장면에서 이게 일본이라서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그랬던 건가? 궁금해졌다.

2000년 즈음에 사막화 방지 운동 차원에서 일본 대학의 시민단체와 함께 몽골에 갔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었다. 정말 일본은 남녀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봉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구나 하고. 그때 함께 어울려 놀던 대학생들 중 어느 남학생이 내게 작은 실수를 했었는데, 나중에 이 학생의 여자친구가 일부러 나를 찾아와 사과했었다. 그것도 그냥 말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꿇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었다. 아니, 잘못은 남자애가 했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여학생이 사과를 하나! 며칠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대충 보니, 늘 남학생들은 뭐든 마음대로 하는 편이고, 여학생들은 늘 뭔가 제약에 묶여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나와 우리 학생들은 반대에 가까웠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남학생들을 짐꾼이나 일꾼처럼 부려먹었고, 남학생들은 큰 불만없이 대체로 요구하는 대로 따랐다. 그렇다고 우리 여학생들에게 불만이나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일본에서 성인 남성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남존여비라는 생각이 박혀있었던 건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심각했지만,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은 그래도 달라지고 있고 제법 달라졌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통해 느낀 일본의 모습은 새삼스럽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시절 일본에도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집안 일을 함께하는 남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중의 문제였겠지.

나오코는 그러니까 딸의 몸에 들어가 다시 청소년기를 겪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오코는 거의 초인처럼 느껴졌다. 대체 어떤 아이가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실제 일본의 여성 청소년들은 다 그런가? 식사와 청소와 빨래 등 모든 집안 일을 다 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잘 하고, 그러면서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 활동도 다 하고. 이게 나오코가 이미 이 시기를 한번 겪었던 어른이라서 이미 모든 집안 일을 달인 수준으로 잘 한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모든 집안 일은 아무리 달인이라도 시간이 걸린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잠을 잘 수 없어야 하고 그러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니 아기였을 때 나와 애들 엄마는 아무리 열심히 집안 일을 해도 늘 시간에 쫓겼다. 퇴근하고 둘이 쉼없이 집안 일을 해도 마치면 새벽이었고, 지쳐 잠이 들어도 아기들은 새벽에 꼭 깨기 때문에 금방 다시 깨야했다. 가능하면 애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자도록 내가 일어나 아기에게 분유도 먹이고, 트림도 시키고, 기저귀도 봐주고, 안아서 재우고 다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어떤 날엔 아기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애들 엄마가 내게 좀 어떻게 해보라고 아무리 깨워도 모르고 잠들어있었던 날들도 있었다. 이 소설에선 아기를 키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집안 일들 모두가 고스란히 딸의 몫이 된다.

나오코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다는 측면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리플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고민할 가치조차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다시 젊은 혹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마 다시 살아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냥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목표는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경제적 성공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이 성격과 성향과 기억을 그대로 갖고 어려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여전히 나는 공부를 그닥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수학을 못 할 것이고, 아마도 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다. 아, 여기서 소설 속에 재미있는 설정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오코는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 못했었다. 전형적인 문과 뭐 이런 느낌. 이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헤이스케는 이과라 수학도 과학도 잘 했었다. 그 딸인 모나미는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꽤 잘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나오코는 갑자기 잘했던 수학을 못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걱정하는데, 의외로 헤이스케가 알려주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의식은 나오코지만, 뇌는 모나미의 뇌니까 수학을 잘 하는 모나미의 뇌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니 잘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논리였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리플레이] 소설을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정확히 특정 시점의 본인에게 의식이 들어가는 혹은 돌아가는 개념이라 몸이나 뇌가 바뀌지 않는데, 이 경우는 딸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니, 그렇다면 전혀 다른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음, 좀 더 세부적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이쯤하고 이제 결론인 반전으로 가보자.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좀 어이없고 딱히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소설은 아! 하고 한번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금방 다시 의심이 들기는 했다.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얘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 기록해두면서 그렇게 중요한 걸 전해주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나오코와 모나미의 기이한 공존이 이상하다고 여긴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것일수도 있다. 이건 각자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몫이라고 여긴다. 암튼 여기서 작가가 얼마나 영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초반에 짚었듯이 이 소설은 철저히 헤이스케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헤이스케의 생각과 시선 안으로 갇힌 느낌이다. 그 바깥의 시공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헤이스케가 나오코와 모나미의 공존 기간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믿을 수 밖에 아니 대부분 믿게 만들어진 구조다. 반면 반지 때문에 헤이스케가 이 모든 것이 나오코가 의도한 긴 시간동안 연출한 상황이라고 깨닫는 순간, 독자들도 일정부분 그 생각에 따르도록 만들어진 구조인 것이다. 사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이성교제를 비롯해 여러모로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시점에, 갑작스레 모나미의 의식이 깨어난다고 하는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마의 의식이 딸에게 들어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이건 이 소설의 세계관이자 핵심 설정이고, 여기서 모나미가 의식을 찾으려면 이 부분에 대한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자, 시간에 쫓기니 영화 이야기는 원래 의도와 달리 짧게만 다루자. 일단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설과 달리 시각적으로 인물과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2시간 이내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큰 제약이 있다. 그래서 모나미가 초등 5학년이 아니라 고등학생으로 시작한다. 초반에 사고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연출이 좀 별로였다. 확실히 옛날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그 비극적인 느낌을 거의 살리지 못해서 차라리 소설처럼 남편이 뉴스로 소식을 접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거나, 그냥 버스가 눈 덮힌 산길을 달리는 장면에서 사고 장면을 건너뛰고 남편 장면으로 넘어가기만 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이 짧으니 등장인물을 다 잘라내고 운전사의 아들을 직접 등장시킨 것은 정말 큰 패착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랬다면 이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잘 살렸어야 하고 나오코가 이 인물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줘서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했다.

무었보다 중간 과정의 인물들이 다 빠지면서 나오코가 얼마나 현명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모나미의 담임과 헤이스케와의 관계도 많이 생략된 것이 아쉽고. 아, 이게 드라마도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라면 분량이 충분할테니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

딱 하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영리하게 잘 한 것이 있다면, 평소 나오코가 헤이스케의 턱을 들게하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는 습관이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 이건 말그대로 습관이라 무심코 튀어나올 수 있는 행동이고, 이건 일부러 모나미가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하기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서 책을 두번째 읽고 생각해보니 소설보다 영화의 반전이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와! 처음에 별로 반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보니 오히려 훨씬 괜찮은 반전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음, 더 할 말이 많지만, 자꾸 연락이 오고 있어서 딱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 소설에서는 정확한 시기가 나오지 않지만, 가전제품과 그 부품들 이야기로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이라서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발표한 시점이 1998년이고,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일 것 같다. 영화는 99년에 제작되었는데, 딱 그 시대로 설정한 것 같다. 중간에 소마 선배가 모나미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소설에서는 휴대폰이란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다. 소마 선배가 4시부터 모나미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린다고 했었다.

아, 전화 이야기로 또 한참 옛 추억을 더듬어 떠들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써야겠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딸이자 아내인 모나미의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자꾸 특정한 볼펜이 생각나서 몰입을 방해했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그 모나미는 프랑스에 Mon ami 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히로스에 료코다. 다른 거 다 필요없이 그냥 그가 연기하는 모나미, 아니 나오코의 의식이 깃든 모나미를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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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1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2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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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매한 건 우연히 본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친한 선후배 활동가들과 여름에 어느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다. 수영을 못 하기도 하고,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것 외엔 별로 할 일도 없다 느껴서 나는 물가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물놀이를 즐겼고, 일부는 조금 놀다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창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한 사람이 내 옆에서 책을 읽던 다른 동료 활동가가 잠시 놓아둔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순간 물놀이도 잊고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 기억은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엔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많이 재미있고, 많이 팔린다는 정도만 알았다. 이 소설의 지은이가 [빨치산의 딸]을 쓴 그 정지아라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평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라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야 그때 그 선배가 왜 그렇게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 조금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그건 그 선배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가 담담하게 들려준 몇 가지 이야기들 덕분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여름 시점에서 비교적 최근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라는 점이 하나의 몰입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들은 기억은 없지만, 일단 그는 운동권이었고, 활동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좌익과 진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 당사자로서의 공감도 컸을 것이다. 또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의 동질감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당시 그는 장례식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도 꺼냈었다. 딸인 자신이 아픈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다보니 자연히 아버지의 성기를 보았던 것이고,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그곳을 본 것이 참 묘한 기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이 소설 안에서도 주인공인 딸이 아버지의 성기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과 아버지가 성별이 다르다고 느낀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극적인 기억이 남아있을지 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우리 딸들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와 같은 여성이지만, 아빠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는 어떤 순간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빨치산의 딸] 1권과 2권을 다 읽었다. 이것도 참 우연한 기회였다. 사실 [빨치산의 딸]을 읽지 않았다면 곧바로 이 책을 찾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에어컨 없이 선풍기 두 대만으로 열대야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지인들의 집으로 피서를 다녔다. 그 중 한 친구 집에 며칠 연속 머물 때였다. 주말 낮에 책을 읽으러 카페에 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서려는데, 자기 집 책장에서 책을 꺼내오라고 했다. 음, 뭐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눈으로 책장을 훑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 책 읽었어요? 물으며 꺼낸 것이 [빨치산의 딸] 1권이었다. 당연히 그 옆엔 2권도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지는 못했었고 그의 권유대로 그 책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삼일만에 2권까지 다 읽었다. 정지아 작가가 부모님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을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 느꼈고, 제목엔 딸이 들어가지만,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각각의 삶을 담고 있는 본문에는 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각각 다른 조직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모두 산에서 내려오게 된 부분에서 끝난다. 이 궁금증은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야 풀린다. [빨치산의 딸]을 읽을 때 전투와 생존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강인한 의지와 열망 등을 읽으며 흥분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버지 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몇몇 여성 동지들 중 누가 어머니인가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어머니 편을 읽으면서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접점이 거의 없어서 의아했었다.


앞서 [빨치산의 딸]이 소설이 아닌 역사책에 가까운 것이라고 썼다. 그에 비해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소설로서 훨씬 더 짜임새를 잘 갖춘 훌륭한 작품이라 느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겪는 이야기들 속에 아버지 평생의 인간관계와 신념과 소탈한 모습 등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점점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과거 회상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이 소설은 그것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그 답답함은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인 딸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의 힘이 크다고 느낀다. 말맛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 잘 살릴 수 있을까 감탄을 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정말 잘 살리는 작가가 이시백 선생이라면, 전라도 사투리는 단연 정지아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잘 알지 못해서 멋진 대사들을 감칠맛 나게 읽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 고향을 구례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한 점은 어머니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빨치산의 딸]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그려지는 어머니의 어떤 냉철하고 강인한 이미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정지아 작가가 어머니를 주로 그리는 이야기를 꼭 쓰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빨치산의 딸]과 [아버지의 해방일지]까지 주욱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나는 참 부모님들께 잘 못하고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져야지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현실은 또 언제나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주 연락이라도 드려야지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아빠로서 우리 딸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하는 점에서 또 많은 좌절과 후회를 하게 된다. 


나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내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활동가라는 삶을 살아온 이유로 아버지를 들고 있다. 아버지는 노동조합 조합장으로서 노동운동을 하셨고, 독재에 저항해 싸운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하셨다. 비록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계시지만, 과거의 아버지는 그랬다. 나는 그 과거의 아버지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내 비록 평생 노력해도 그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나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운동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한때 같이 일했던 후배 활동가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근데 엄밀히 말하면 성골은 양친이 모두 왕족이어야 하니, 진골 빨갱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해본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실테고,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게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평생을 속만 썩이며 살았는데, 뭐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봐야겠지.


이 책은 조만간 큰 아이 책상 위에 말없이 두고 올 생각이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펼쳐볼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관심을 가지면 엄청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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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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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전개와 시점 변화


하나의 살인 사건과 이 사건 당사자들(피해자와 피의자)의 친구와 가족인 세 명의 여성들 이야기.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은 아니다. 그 사고로 인해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이들의 이후 삶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 당시 이야기는 담고 있지 않다. 살인 사건이 나기 전의 상황은 세 명의 목격자(한만우, 신정준, 윤태림)가 경찰 조사를 받았을 당시의 내용으로 일부 담고 있는데, 실제로 담긴 내용은 두 사람(한만우, 윤태림)의 내용이고, 더 정확하게 따지면 한만우의 목격담만 담겨있고, 윤태림의 목격담은 그 중 가장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쟁점인 옷차림에 대한 부분만 담겼다.


이 책을 다 읽고 다른 이들의 평들을 여럿 찾아 읽어 봤는데, 두 가지 특징을 깨달았다. 일단 평이 안 좋고 별점이 낮은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대체로 살인 사건 자체가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또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인 시점이 계속 바뀐다는 점 때문에도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본질적으로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살인 사건 자체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독자들의 평은 크게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화자는 세 명이다. 피해자 김혜언의 동생인 다언,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였던 김상희, 역시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이자 목격자 신정준의 여자친구였던 윤태림 이렇게 세 명이다. 독특한 점은 이 세 명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는 것이고,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각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조차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점이 이 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


반면 그 점이 이 책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세 명의 서로 다른 화자가 1인칭 시점에서 펼쳐가는 이야기는 그저그런 뻔한 전개를 예방하는 조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의를 기울여읽지 않으면 각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에 독서에 더 깊이 몰입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내 기준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사건 이후의 이야기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살인 사건 자체는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별로 없다. 이야기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이야기를 주욱 그려나가고 있다. 처음에 나는 이 이야기가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 점은 다른 독자들도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유독 평이 좋지 않고 별점이 낮은 평들을 읽으며 그 점을 느꼈다. 


우리는 뉴스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한다. 그렇게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서 며칠 혹은 몇 주 정도 그 사건에 관한 소식들을 접하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레 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간혹 법정에서 어느 정도의 형량이 구형되고 선고되었는지를 나중에 언론에서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 잠시 그 사건을 떠올리고 다시 잊는다. 


이 이야기는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이 그 사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고 있다. 결코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평생 그 사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대부분이 잠시 관심을 두었다가 잊어버리곤 하는 그 사건들을 남은 생애 내내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사회 구조와 복수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은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을 내게 건냈던 큰 아이도 그래서 처음에 한번만 읽었을 때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읽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읽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머리 속으로 핵심적인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일단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살인 사건의 진범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건 한 번 밖에 안 읽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궁금했던 건 복수였다. 이 점은 내 기준에서 가장 쉽게 읽히지 않았던 윤태림 시점의 이야기와 다언 시점 이야기 초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가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이해했다. 그리고 내 생각과 큰 아이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면 작가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불합리한 현실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불러도 좋고, 권력과 돈을 가진 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쉽게 처벌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좋겠다. 어쨌든 이 소설은 그런 현실의 모순을 잘 그리고 있다.  


아쉬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피해자 김혜언에 대한 내용이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는 점,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엇다는 점, 속옷을 잘 입지 않았다는 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점 외에 더 알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살인 사건 역시 피해자가 속옷을 입지 않고 집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집을 나섰다가 피해를 당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야기 초반에 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옷차림 부분에 작가가 이토록 큰 비중을 부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아름다운 여성이 속옷을 입지 않은 부주의가 살인의 이유라고 말하는 듯해서 이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해자는 속옷을 잘 챙겨 입고 부주의하게 행동하지 않은 여성이었더라도 그런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피해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점,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울만큼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점, 속옷을 입지 않고 다니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 등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또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이었다면 그렇게 손쉽게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철저하게 점검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늘 불확실한 무언가에 의해 의외의 일들이 벌어지곤 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긴 시간 그 진상을 들키지 않고 살아갔을 리 없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다언이 어떻게든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듯이 그 복수 역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 당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를 해야겠다. 2016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단편으로 실었을 때 이 이야기의 제목은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였다. 이야기의 분량을 조금 더 늘려 단행본으로 내면서 제목을 [레몬]으로 바꿨다. 이야기의 중간에 레몬과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며 제목의 의미를 시사해주기는 하지만, 독자로서는 선뜻 이 이야기를 대표하는 단어가 레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단어는 이 살인 사건과 그 이후 삶의 과정 그 무엇과도 이미지가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아,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피해자가 죽은 이후에 피해자의 어머니가 이름을 바꾸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는 한 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이면서도 너무 사족처럼 느껴진다는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경상도 사람이라 해은이라는 이름이 혜언으로 바뀌었다는 설정은 좀 많이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의 우리 아버지 세대 이전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겠지만, 혜언이 나이 대의 이야기로는 많이 어색하다. 그러니까 단순히 출생신고가 잘 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꾸 부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전혀 자연스럽제 못하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딸을 잃은 엄마가 집착스럽게 이름을 고치는 장면들의 처절함과 처연함은 잘 그렸다고 느낀다.


큰 아이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건네준 책이 무척 얇고 글씨도 크길래 대략 1시간 반이면 다 읽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고, 1시간 40분 정도 걸려서 다 읽었다. 몰입해서 읽으며 재미있고 좋았던 점들도 제법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 아마 내가 가진 선입견도 있었을 것이고, 큰 아이의 설명과 이 책에 대한 여러 평들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아쉬움들은 달리 보면 이 이야기의 장점이 될 수 도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 내가 원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분명 좋은 이야기와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재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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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리뷰네요.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피해 여성이 아주 아름답고 속옷을 입지않았고 같은 부분은 많이 거북하네요. 여성작가임에도 피해여성을 묘사하면서 저렇게 묘사하는거 좀 많이 거슬릴듯해요.

감은빛 2023-02-07 22: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이 소설 평이 많이 갈리더라구요.
상대적으로 나쁜 평이 더 많던데,
저는 좀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이었어요.
분명 확실한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을 잘 드러내지 못한 구성이 된 것 같아서요.

피해자에 대한 묘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커요.
작가의 의도가 꼭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23-01-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일단 난해하지 않아 좋아해요.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죠. 내용 면에서 신비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어느 작가나 장단점이 있겠지요...

감은빛 2023-02-07 22:51   좋아요 0 | URL
페크님. 권여선 작가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사실 이 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yamoo 2023-02-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가 좋다는 입소문은 여기저기 들렸습니다만...아직까지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네요..
2시간이 채 안결려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니...
리뷰를 읽어보니 저는 안 읽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입니다..ㅎㅎ

감은빛 2023-02-07 22:53   좋아요 0 | URL
야무님. 이 책은 분량도 적고 글씨도 커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 읽어요.
다만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는 조금 있어요.
좀 묘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확실한 장점과 또 그만큼 확실한 단점이 뚜렸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