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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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이 빠른 아기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걷지도 못하는 쪼끄만 놈이 말은 어찌나 빨리 배우는 지. 어찌나 얇미웠는지 모른다아이가." 다른 아기들은 이미 걸어다녔을 시기에 나는 걷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가 많은 아기였다는 것이다. 다른 아기였다면 직접 몸을 움직여 했을만한 일을 나는 직접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어른들을 부려먹어서 얇미웠다는 얘기다. 


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가 들어 아이 둘을 키워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큰 아이는 꼭 나를 닮았는지 말을 일찍 배웠고, 걷는 것이 느렸다. 그 녀석은 뒤집기도 느렸고, 배밀이도 늦었고, 기어다니는 일도 비교적 느렸다. 그런데 유난히 말을 일찍 배웠다. 녀석 보다 한참 늦게 태어난 아기들도 아장아장 걸어다니는데, 녀석은 조금 걸으려고 시도하다가 멈추고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아나." 라고 말했다. 어서 와서 나를 안아서 옮기라는 얘기다. 녀석에게 아빠는 자신을 안아서 옮겨주는 캐리어(이동수단)였다. 그제서야 왜 엄마가 나를 얆미웠다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는 달리 일찍부터 몸을 잘 쓰는 편이었다. 녀석은 이를테면 행동파였다. 힘이 어찌나 쎈지, 걸어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자기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물건들을 번쩍 번쩍 들고 다녔다. 큰 아이와 비교하면 오히려 말이 느린 편이라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큰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아이는 처음에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늦다고 여겼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훨씬 빨리 배운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언니의 존재 때문이었다. 언니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는 달리 자신과 비교적 가까운 존재가 사용하는 언어를 늘 함께 듣기 때문에 말을 익히는 속도가 빨랐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몸을 쓰는 쪽과 말로 해결하는 쪽 둘 중에 나는 말을 선호하는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일종의 성향이나 개성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일종의 외국어라고도 볼 수 있는 사투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접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들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예행연습처럼 가볍게 자판을 두드려 보련다.


2. 언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고 익히는 것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배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냥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 모국어다. 하지만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시 환경이 여러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국어는 공부하듯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그렇게는 잘 익혀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방법. 그것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이번 생에서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꿈을 꾸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엿보고, 맛보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다.


3. 영어와의 첫 만남


역시 시작은 영어였다. 영어와의 첫 만남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국민학교 때는 여름방학마다 동생과 함께 한동안 외갓집에서 지내곤 했다. 외갓집에 놀러오면 딱 하루 정도만 재미있고, 나머지는 지루했다. 친구도 없고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내 외삼촌만 결혼 전이어서 외갓집에만 오면 늘 막내 외삼촌에게 놀아달라고 보채곤 했는데, 어느 날 너무 버릇없이 구는 조카를 견디지 못한 외삼촌이 내게 손찌검을 했고, 나는 또 나대로 화가 나서 어른인 외삼촌에게 덤벼들었던 사건이 벌어졌다. 그 후론 더더욱 방학 때 외갓집에 오면 심심해졌다. 그런 어느 날 외삼촌이 티비를 보고 있는데, 뭔 알아듣지도 못할 말만 잔뜩 나오는 것을 보았다. 화면만 보아서는 뉴스인 것 같았는데,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알파벳을 국민학교 6학년에 처음 배웠고, "헬로"나 "하우 아 유" 같은 인사말도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배웠다. 그보다 한참 어렸던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내가 영어가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당시 막내 외삼촌은 일종의 영어공부로 AFKN을 봤던 것 같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는 그 채널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외삼촌이 없을 때에 그 채널을 찾아 보려고 동그란 두 개의 채널을 이리 저리 따라라락 돌려댔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당시엔 나오는 채널이 진짜 몇 개 되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는 채널의 수는 뭐가 그리 많았는지 동그란 채널의 손잡이를 쥐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그 채널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기억이 난다.


주말 아침에는 그 AFKN 채널에서 만화가 나왔다. 배트맨과 슈퍼맨과 원더우먼과 그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근육질의 아저씨들이 이상한 색깔의 쫄쫄이 옷을 입고 나오는 만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저스티스 리그의 만화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나와 동생은 주말 아침마다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해서 그 만화를 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재미있었다. 가끔 외삼촌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몇 마디 번역을 해주기도 했다.


4. 공부가 아닌 영어


앞에서 말했듯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중1때였고, 그때부터 영어는 시험과 하기 싫은 공부라는 느낌으로 연결되는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다시 영어에 눈을 뜬 것은 팝송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여성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 여전히 영어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공부 한다는 행위 자체를 워낙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노래를 듣고, 가끔 가사를 찾아보는 것 외에는 영어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온 후에 이제 나도 슬슬 영어 공부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남들은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나 토익, 토플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라 토익, 토플은 시도 조차 할 생각을 못했고, 어학 연수는 가끔 꿈을 꾸지는 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나마 비정기적으로 몸쓰는 일을 해서 용돈을 벌거나,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다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큰 맘 먹고 회화 학원을 다녔던 것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학원에서 만난 여러 선생 중 두 명의 선생이 내게 큰 복이었던 것 같다. 레벨 테스트를 거쳐 처음 만난 선생은 교포 출신 강사였는데, 정말 수업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영어를 대하는 태도를 공부가 아닌 익힘의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레벨이 올라가서 만난 여러 원어민 강사들 중에 또 한 명, 내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나보다 서너살 정도 나이가 많았을 것 같다. 키가 크고 덩치가 엄청나게 컸고, 옅은 금발 머리칼의 미국 남성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학생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같이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면서 친해졌다.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읽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자신이 생겼다. 비록 그의 말을 금방 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차분하게 그가 원하는 것을 같이 찾아줄 수 있었다. 그 무렵 해운대나 광안리 등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영어를 잘해서 말이 잘 통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해변의 분위기와 약간의 알코올과 약간의 친절함과 조금 자만심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무리는 대학 미식축구팀이라고 했는데, 정말 키가 크고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어쩌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국인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내가 구경하다가 끼어들어서 말렸고, 다행이 주먹다툼까지 이어지기 전에 경찰들이 출동해서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해 맥주를 권했고, 나는 그들에게 소주를 권했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잘 통하지도 않는 영어에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오래 나눴다.


5. 외국어 익힘의 한계


대학에 복학한 후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영어가 멀어졌다. 꾸준히 영어를 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들과 영어 펜팔을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좋아하는 팝 가수들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팬들의 이메일 주소를 골라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10통을 보내면 절반은 답이 왔고, 길지 않은 메일을 대여섯 차례 주고 받은 후에는 2명 정도만 남았다. 그럼 다시 10통 가량을 대륙 별로 골고루 배분해서 보내기를 반복했다. 내 목표는 꾸준히 대화를 주고 받는 외국인 여성을 각 대륙별로 1명 이상씩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여러 통의 메일을 주고 받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내 영어가 얼마나 미천한 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어휘력이 딸려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소화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대륙 별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영어 외에 그들의 문화와 모국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2002년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을 월드컵의 감동이 있었던 그 해, 나는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었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 영어 통역으로 자원활동을 신청했는데, 의전팀으로 발령을 받아서 귀빈들 요즘 말로하면 VIP를 주로 모시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남들보다 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유명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의전팀 내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온 후배들도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나서서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의전팀 내의 다른 언어 통역들과 친해져서 여러 나라 말들을 야금야금 조금씩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당시 의전팀에는 4개 언어 통역 자원활동가들이 있었는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였다. 나는 지금도 당시에 배웠던 간단한 인사말 표현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재밌게 지내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영어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따라 의전팀에 일이 많았다. 여러 나라 귀빈들이 연달아 방문해서 영어를 잘 하는 후배들이 대부분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갑자기 영어 통역 요청이 들어왔다. 한 기자가 동티모르 축구팀 취재를 하는데 통역을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이런 일은 의전팀 업무가 아니므로 거절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제대로 통역 공부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데, 나는 어떻게 등이 떠밀려 통역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 볼만한 수준의 대화가 오갔는데, 점점 국제 정세와 정치적인 내용들이 오가며 내 수준을 한참 뛰어 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결국 제대로 말을 옮기지 못하면서 동티모르 축구팀 감독과 우리나라 기자 사이에서 얼굴이 빨개져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고작 이 정도 수준 밖에 안되면서 내가 영어를 하겠다고 설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언론사에 일했던 그 기자가 아마 당시의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 했을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영어를 향한 내 관심을 아예 끊어버렸다.


6. 중국어


대학 시절 중국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며 교환학생으로 온 중국인들을 가끔 접했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그룹으로 중국어 스터디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스터디 비용을 마련하면 우리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원어민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기고 그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바쁜 학교 생활이 이어지며 점점 스터디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와 나 둘만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애초에 나 혼자서 그에게 약속한 비용을 다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곧 그 스터디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중국어를 배웠던 그 몇 달이 꽤 재미있었다. 그는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의사소통에 크게 불편함이 없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꽤나 쌓았다. 그는 "오빠" 라는 발음을 "어빠"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대화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그가 늘 "어빠는 발음이 좋아요." 라고 자주 칭찬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을 갖고 있다.


한 가지 근거 있는 자만심을 들어보자면 부산 출신이라 중국어 성조에 유리하다. 이건 유명한 중국어 강사(이 사람도 부산 사람)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 나름 근거가 있다 여긴다. 실제로 나는 성조가 헷갈리긴 해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일 큰 한계는 한자다. 우리가 어려서 배운 한자도 아니고, 지금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암튼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중국어를 붙들었다가 다시 그만두고, 다시 붙들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책장 한 구석에는 그와 함께 공부했던 교재가 있다. 언젠가 독학으로 중국어를 마스터 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7. 일본어


지인 중에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라고 해야할까? 그들의 영향 덕분에 나도 일본 만화를 제법 보았다. 종이 만화책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화려한 그림과 함께 성우들의 연기를 듣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한 후배 중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를 워낙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외울 정도인 녀석이 있다. 당시 녀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에반게리온이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 테이프였다. 정식 발매된 비디오도 아니어서 화질이 조악하기만 했던 그 이십여개의 비디오 테이프들을 녀석은 목숨보다도 아꼈다.


그때 그 후배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다 늙어서 그러니까 30대 초반 쯤에 건담에 빠졌다. 컴퓨터에 건담 애니를 잔뜩 받아놓고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본어가 들렸고, 몇몇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이후에는 몇몇 일본 영화와 다른 장르의 애니에도 관심이 생겼고, 조금씩 조금씩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일본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본에 대한 관심은 딱 거기에 머물렀다. 다른 언어는 가끔씩 미치도록 빠져드는 순간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일본어는 그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접한 영상물이 바로 일본어였다. 주위에 일본어를 공부한 친구나 후배들도 많고, 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배우지만, 거기서 한 발씩이도 더 나가기는 정말 어려운 언어가 일본어라고 하더라. 뭐, 나는 그 일정 수준까지도 못 가본 입장이지만,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양가 감정이 든다. 영어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잘 알아듣는 말이 바로 일본어일텐데 말이다.


8. 독일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신승훈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 시작할 때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am A bend und am Morgen" 이란 가사 알아듣는 것 외엔 아무런 쓸모도 재미도 없었던 것이 독일어였다. 물론 한 때의 겉멋에 취해 철학을 공부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철없는 시절 얘기였다.


대학에서 맑스(예전엔 마르크스라고 불렀는데, 뭐가 맞는 표기인지 모르겠다.)를 공부하던 선배들이 자본론을 원서로 읽는다는 원대하고도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하던데, 한때 나도 그런 헛바람이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철없는 시절 한 때였을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환경운동단체에서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유명한 환경운동가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유람선을 타고 부산항에 들어와 이틀을 머물며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첫날 강연 전까지 꼭 경주를 가보고 싶다고 했단다. 경주까지 그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신입활동가였던 내가 제일 시간이 많았고, 영어를 쪼금 할 줄 아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새벽에 부산항으로 마중을 나가니, 그 분이 아내와 함께 유람선을 내려왔다. 아주 젊잖은 노부부였으며, 자신들을 위해 내가 시간을 내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들 부부와 아침 일찍부터 저녁에 강의 시작 전까지 같이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그들처럼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고, 재생에너지 분야의 선진국인 독일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들을 경주의 유명한 문화재들로 안내하면서 내 짧은 영어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그냥 일상적인 의사소통만 간신히 가능했다. 지금은 관광지에 영어를 비롯한 다국어 안내 책자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던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암튼 그 날 이후로 독일어를 다시 공부해야지 생각했지만, 바쁜 활동가의 삶에 공부라는 사치를 부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독일어 번역가를 만나서 연애를 했고, 그와 결혼을 계획하면서 여러가지 시나리오 중에 하나가 독일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 두어 차례 공부를 하고 왔는데, 여전히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다시 공부하러 가고 싶어했고,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와 환경운동의 경험을 쌓고 싶었다. 비록 당장 경제력이 없어서 쉽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젊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산 자락의 괴테 인스티튜트에 등록해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법 재미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아예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었는지 기본적인 문법들은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든 독일에 가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지만, 역시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우리는 각자 일들로 바빠졌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괴테 인스티튜트를 중단했고, 여자친구에게라도 배우겠다던 아니 혼자서라도 조금씩 익히겠다던 다짐도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키웠고, 둘째를 낳았고, 키웠고 그리고 이혼했다. 그 긴 시간 어딘가에서 종종 우리는 독일에서 같이 공부하자던 생각들을 다시 되새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기에도 너무 바빴다. 게다가 둘 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돈 버는 일 외에도 자기 관심 분야의 다양한 활동들을 놓지 않고 살았다.


최근까지 일부러 독일어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독일어를 생각하면 그때 괴테 인스티튜트를 다니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 생각나고, 그러면 괜히 서글퍼져서 그랬다. 몇 달 전에 외국어 공부 어플에서 다양한 언어들을 선택해서 놀면서 독일어를 한 번 해봤는데, 확실히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거라서 훨씬 재미있다 여겨졌다. 


이제 아마도 남은 평생동안 독일에 공부하러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방출을 생각하면 여행으로도 독일은 가면 안 될일이다 싶다. 그냥 천천히 조금씩 독일어 단어와 표현들을 알아가는 재미로 살련다. 이젠 그런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9. 힌디어


한때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선배 활동가 중에 인도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분이 있었다. 그 양반 덕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인도 영화에 조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의 인도 영화를 접한 후 나는 그 선배보다 더 인도 영화에 빠져들었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들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는 모두 인도영화일 것이다. 이상하게 다른 영화들은 반복해서 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인도영화는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꾸츠 꾸츠 호타 해]는 수십 번 봐서 특정 구간은 인물들의 행동을 다 외울 정도다. 인도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힌디어를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정식 개봉한 인도 영화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자막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자막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힌디어를 공부해보겠다고 책을 하나 샀는데, 문자를 보는 순간 그냥 바로 포기했다. 이건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이걸 어떻게 외우고 익힐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냥 문자를 익히는 일은 포기하고 순전히 재미로 발음으로만 힌디어를 조금씩 들여다보며 따라한다. 어쩌다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단어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몇 달 전 외국인 채팅 앱에서 대화를 나눈 인도 여성과 힌디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것과 몇몇 인도 영화와 배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10. 스페인어


지금은 가수도 곡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 말에 반복해서 들었던 스페인어 노래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노래가 너무 너무 듣고 싶어져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구절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그 노래를 찾지 못하겠다. 이 바쁜 시기에 이 긴 글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그 노래를 찾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또 사로잡혀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결국 포기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 옛날 들었던 카세트 테이프는 벌써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고, 지금와서 그 노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 앞으로 평생 그게 누구의 노래였는지, 제목이 뭐였는지 궁금해 하면서 살아야 하다니! ㅠㅠ)  


영어와는 또 완전 다른 그 어감이 참 좋았다. 그래서 막연히 언젠가는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리마에서 자주 스페인어를 들었다. 뭐 그렇다고 그 분량이 많았던 것은 아닌데, 잊을만하면 듣고 떠올리게 만드는 빈도라고 해야하나.


애들 엄마와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아직 이혼 하기 전, 같이 살던 시절 그가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어, 영어를 이미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배웠고, 점점 다른 언어들로 관심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지금은 그 후로 또 어떤 언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스마트 폰 언어 익힘 앱을 깔고 위 다른 언어들을 야금야금 배우면서 조금씩 천천히 다른 언어들로 확장해 나가야지 생각하면서 스페인어를 해봤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 재미있었다. 독일어보다 쉬워 보였고, 프랑스어만큼 발음이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속도로 익혀 나간다면 영어를 제외한 유럽 언어들 중엔 스페인어를 제일 빠르게 익힐 것 같다. 조금 찾아보면 콘텐츠 찾기 쉽고 많아서 문화적으로 즐길 요소도 많을 것이다.


11. 인도네시아어


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눈 외국인들들 중에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 인도네시아 여성이었다. 그를 통해 인도네시아 공용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가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말을 들었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라는 말도 들었다.


호기심에 한 번 시도해봤는데, 발음이 어렵지 않고 문장 구조가 단순해서 익히기가 어렵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특유의 억양과 느낌이 좋았다. 한 번은 무료 인터넷 강의를 몇 개 연달아 봤는데, 강사가 설명을 무척 효과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라 기초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어쩌면 오래 붙들고 있었던 중국어나 일본어 보다 인도네시아어를 더 익숙하게 여길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12. 터키어


채팅 앱을 통해 만난 터키계 독일 여성과 대화하다가 터키어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한국어랑 어순이 같아서 금방 배울 거라는 얘기였다. 그의 말만 믿고 시도해봤는데, 총체적으로 어렵더라. 발음도 쉽지 않고 단어들이 긴 편이고, 단어의 변화가 무쌍해서 문법부터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손대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냥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니 천천히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에만 만족하며 새로운 단어들을 접하는 재미를 즐기려 한다.


13. 프랑스어


한때 좋아했던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서 저 언어는 어떻게 저렇게 섹시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언어는 프랑스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아무튼, 외국어]의 저자도 불어불문과를 전공해 그나마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는 프랑스어를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순서와 비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어 발음은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하다. 조금 노력해봤는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알아듣고, 이걸 어떻게 발음하나 난감할 때가 많다.


다 늙어가는 처지에 가장 섹시한 언어 따위 제대로 익힐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냥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재미 중심으로 보련다.


14. 러시아어


북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언어들을 조금씩 욕심을 내려고 할 때, 문득 든 생각이 그럼 러시아어는? 그랬다. 살면서 한 번도 러시아어를 배워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일단 내지르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바쁜 삶에 워낙 많은 언어를 동시에 찔끔 찔끔 보고 있으니, 가장 나중에 그것도 흥미가 생겨서가 아니라 왠지 러시아어 정도는 한 번씩 봐줘야지 싶은 의무감에 보는 거라서 가장 속도가 느리거나 거의 안 볼 확률도 높을 것 같다. 암튼 일단 시작했으니 시작이 반이다.


15. 그래서 어쩌라고?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 제대로 언어는 익히는 일도 아님을, 언어를 익히는 가장 나쁜 방법 중에 하나임을 안다. 그러니 이쯤 와서 내 목표는 저 많은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긴 글을 두드리는 것은 그냥 나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문장을 접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다양한 언어들을 비교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나도 외국어를 주제로 한 책 한 권 낼 기회가 생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욕심은 마음 속 깊숙히 남겨둔다.



마무리는 요즘 완전 자주 듣는 노래로 하자.



<내용 추가>


16. 몽골어


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중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아니면 일본어 뒤에 몽골어가 들어갔어야 했다. 몽골에서 보낸 강렬한 기억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다양한 몽골인들과 소통했던 이야기들. 내 또래였던 몽골 경찰과 밤새 몸짓으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 한국, 몽골, 일본 3개 국가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교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해프닝들.


테렐지와 고비사막의 멋진 경치들과 고비 사막에서 추위에 떨었던 밤의 기억 등. 짧은 시간에 비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몽골어도 프랑스어, 러시아어와 마찬가지로 발음의 벽을 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러시아 키릴 문자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꽤 오랫동안 가장 배우고 싶은 외국어 1순위는 늘 몽골어였는데, 여전히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은 남아 있는데, 진입장벽이 무척 높은 언어이고, 현재 나는 그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여유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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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2020-02-1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요즘 읽은 페이퍼 중에 최고인데요. 근데 저 비행기 타고 독일 갈 건데;;;;;; 막 죄스러워졌어요. 제가 아는 선배는 몽골 가서 아주 잘 지내고 있던걸요. 한때 막 좌절하는 선배를 봤는데 몽골어 때문에_ 지금은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듯 마구 말하는 걸 보고 역시 언어는 습관이다 했어요.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라로 2020-02-1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렇게 다양한 언어를 접해보셨다니 읽으면서 (아이패드로 읽고 있어서) 계속 이 언어가 마지막이겠지,,,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언어도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잘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저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서 늘 찝쩍(?)대다가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자포자기 하는 것 같아요. ^^;;
어쨌든 지금 러시아어를 배우신다 하셨는데 응원합니다! 제 딸아이와 사위 (제가 사위를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ㅎㅎㅎㅎㅎㅎㅎ)는 러시아에서 만나 결혼을 했답니다. 둘 다 러시아어를 하는데 (사위가 더 잘 해요) 서로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위가 딸의 발음이나 뭐 그건 걸 고쳐주려고 하면 자존심 강한 딸이 괜히 기분 나빠하는 뭐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
아무튼 언어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저도 할말이 많네요. ^^;; 하지만 여기까지하고 다음을 기약할게요. 오랜만에 감은빛 님의 글이 반가와 수다가 이어졌어요. 호호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

2020-02-2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목처럼 세상의 모든 지도를 보여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려면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야 하겠지. 아니 말 그대로 모든 지도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겠지. 저자가 모든 지도를 다 알 수도 없을테니.

실제로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서양의 지도에 비해 동양의 지도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그래도 몇점을 다루는데, 우리나라는 단 한점 그것도 일본 지도를 베낀 것만 다루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 중동 지역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 저 바다 너머의 세상을 상상만으로 그렸던 걸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런것도 지도인가 싶은 것도 많았다. 단순한 그림인 것 같은데 지도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매머드의 상아에 그렸다는 구석기 인이 만든 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라고 한다. (만약 이걸 지도라고 인정한다면) 또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기록한 이탈리아의 벽화 지도도 흥미로웠다. 문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그 옛날에도 지도를 만들어 남겨두었구나 싶었다.

중세 이탈리아인이 그린 지도에는 일부러 사람을 그려 이슬람 전사들이 군사용으로 정보를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저자가 소개했다. 이슬람 교리에는 인간의 형상물을 보지 못하게 규정했다고 한다. 정말로 당시 이슬람 군인이 이 지도에 그려진 사람 형상 때문에 보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런 역사적 사실들은 재미있다.

중반 정도까지는 그야말로 다양한 지도를 볼 수 있어서 진짜 푹 빠져서 봤는데, 뒤로 갈수록 좀 지루해기도 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어느 곳을 소개한 지도가 계속 반복 되는 것은 지겨웠다. 세부지도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다양한 세계지도는 한창 지겨울만한 때에 딱 등장해서 다시 흥미를 되살려주었다. 중국은 역시 자기 땅을 딱 중심에 두고 전 세계가 다 작고 길게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걸로 그렸고, 유럽인들은 항상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도를 그렸고, 아프리카 북부와 서아시아 일부까지만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다.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소위 말하는 대항해시대에 해안선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서 침략을 돕기 위해 지도가 사용되고 지도를 그리는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

유럽 중심의 시각이 아닌 좀 다양한 지도를 담은 다른 책도 보고 싶다. 특히 아시아 여러 지역의 지도 라던가, 유목민들의 지도라던가 이런거 소개한 책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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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도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한번은 동· 서양 지도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

samadhi(眞我) 2017-01-2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지도를 보려면 저자가 아시아 출신이어야겠지요.
 
이창근의 해고일기 - 쌍용차 투쟁 기록 2009-2014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2
이창근 지음 / 오월의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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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민낯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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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외국인
이시백 지음 / 레디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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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이야기의 배경이 이 나라가 아닌 저 멀리 어딘가의 이름도 생소한 나라가 되어버린 이유를 들었다. 아니 근데 까멜리아라는 나라가 있기는 한가? 글을 쓰려고 검색해보니 없다. 아니 저자가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 새로운 나라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니 어쩌면 '실제로 있는지 알수 없지만 검색한 결과에는 없었다!'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서두에 나오는 까멜리아의 역사를 읽으면서 역시 이시백이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짧은 글에 이시백 선생의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해학의 정신이 모두 잘 담겨 있었다. 아 정말 이래서 이시백 선생의 글은 무조건 읽을 수 밖에 없다. 


역대 독재자들을 외국 이름으로 바꿔 놓았는데, 쓱 보면 누굴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승만은 '세이만'으로, 박정희는 '다사오 준장'으로 표현했다. 글머리에는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언급도 있다. "대머리가 벗겨진 군인 출신이 제 동기와 번갈아 대통령 자리를 해먹다가 쫓겨났다."는 문장이다. 본문에는 이름도 나온다. 낯선 이름이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름과 직접적인 연관을 쉽게 찾지 못해 그냥 넘어갔는데, 내용 중에 제 식구를 잘 챙겨서 절과 감옥에 잠시 갇혀 있어도 주위 측근들이 끝까지 충성하는 누군가와 아무도 챙기는 이 없이 늙고 병들어 있는 누군가를 비교하는 부분이어서 이들이 바로 전두환과 노태우로구나 싶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노조원으로 은행 매각을 반대하다가 해고당해 이리저리 구르다가 현재 사채업자가 된 주인공 루반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실제 사채업자가 이렇게 돈 없이 궁상맞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루반은 참 찌질하고 궁상맞게 살아간다. 이혼 당해 아이와 떨어져 살면서 양육비와 생활비를 제때 챙겨주지 못한다고 전처에게도 잔소리를 듣는다. 이야기의 배경은 IMF로 어려운 시기인데, 그 시기에 사채업자들도 저렇게 어려웠으려나? 오히려 합법적인 금융권보다 훨씬 더 형편이 좋지 않았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뭐 실제로 어떠했는지 지금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


루반과 같이 은행을 다녔던 옛 동료들을 중심으로 은행 매각에 앞장섰던 이,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이, 반대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동료가 해고당할 때 속으로 미안한 감정만 느꼈던 이 등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실체를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는 권력과 탐욕 그리고 정의와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이야기 전개 역시 이시백 선생이 가진 장점이라 볼 수 있다. 개성이 강한 다양한 인물들,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들, 그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예측할 수 없게 진행되는 이야기 덕분에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미국계 사모펀드이자 산업자본인 유니온페어가 재정상태가 건실한 까멜리아 은행을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수치를 조작하고, 주가를 조작해 헐 값에 날로 먹은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 엄청난 이득을 취한 뒤 팔고 빠지는 이야기, 그래놓고 유니온페어가 국가를 상대로 ISD(투자자-국가 소송) 소송을 걸 예정이라는 이야기, 초기 은행 매각 승인 당시에 외자 유치라고 떠들어댔지만 사실 매각에 쓴 돈은 국내 재계 유력 인사들의 비자금이었다는 이야기


이거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까멜리아라는 어디있는지도 모를(아니 존재하는지도 모를) 나라 이야기가 왜 론스타 이야기와 똑같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꿀꺽 했다가 다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겨 도망간 후,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ISD 소송을 걸었다. 그 1심 재판이 최근(2015년 5월) 있었지만, 정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해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자금이 외국 자본이 아닌 국내 유력 인사의 돈이었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


긴장감 있는 전개와 두껍지 않은 분량 덕분에 책을 손에 쥔 후, 거의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중간에 아이들 밥 챙겨주느라 한 20여분 손에서 놓았다.) 한 3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읽는 중에 어려운 경제 용어와 개념들 덕분에 조금 머리가 혼란스럽긴 했다. 그래도 큰 줄기를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이시백 선생도 원고 쓰시면서 많이 어려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덮고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떠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딱 뭐라고 할만큼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그 상태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땡길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 재계 유력 인사들(바로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각각 누구를 모델로 등장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매각 저지 공대위에 속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대략 모델이 되는 사람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설령 작가가 그렇게 현실의 인물을 모델로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위기 상 매치되는 인물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죄 외국 이름이라 게다가 문학에서 흔히 접하는 익숙한 영미권 이름이 아니라서 좀 거슬렸다. 나라 이름과 기업이름 등도 낯설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맨 앞에서 말했듯 왜 가상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상정하고 글을 썼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그냥 우리 이름으로 썼으면 훨씬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겠다 싶다. 예를들어 아까 말한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내용도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자칫 그게 군부독재 절친들 이야기라는 걸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아직도 이시백 선생의 이름을 보면 지하철에서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를 읽다가 난데없이 웃음보가 터져 주위로부터 일제히 묘한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아, 정말 이 책을 공공장소에서 읽는 것은 '나 미친 사람이오!' 하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절대 공공장소에서 읽지 않고, 집에서 야금야금 읽었다. 이런 류의 책은 단번에 읽어줘야 맛인데, 야금야금 찔끔찔끔 읽으려니 도무지 맛이 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이시백 특유의 해학 코드가 숨어 있어서 반가웠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는데, 옆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던 큰 아이와 동화책의 그림을 보고 있던 작은 아이가 "왜?", "아빠 왜 웃어?"라고 물었다. 왜 웃긴지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이 녀석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 이 책을 잘 보관해둘테니 나중에 읽어보거라. 왜 웃을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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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현대과학·인문학·SF를 통섭하는 재미
원종우 지음 / 생각비행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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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고백


이 글은 은밀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은밀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이미 몇 차례 술자리 안주로 이 고백을 써먹은 기억이 나서,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경우 이런 류의 고백은 부끄러운 경험이 되기 마련이니,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전혀 이 경험이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다시 다른 수식어를 떠올려본다. 나로서는 직접 겪은 일이고, 그럴수도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겨지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 황당한 고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충격적인 고백? 아, 모르겠다. 그냥 앞에 수식어를 빼고 고백이라고 해야겠다. 다시 시작해보자.


이 글은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번에는 너무 밋밋하다. 분명 저 고백이란 단어 앞에 무언가가 들어와야 딱 느낌이 살 것 같은데, 이 첫 문장에서부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벌써 몇 시간을 이 한 문장을 두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늦은 밤, 자꾸 눈은 감기고,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다. 단 한 줄을 적어놓은 빈 문서를 노려보다가 문득 배가 고프다. 아니 입이 심심하다. 두뇌회전에는 견과류가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땅콩 몇 알을 주워먹고 돌아와서 다시 쓴다. 이번에는 지금 겪었던 과정을 일단 쓰고 보자고 생각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첫 문장의 표현을 두고 고민한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이 책 5장에 나오는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내 선택을 강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의 첫 시작을 장식할 수식어 선택을 놓고 여러가지를 고민한다. 이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우주가 갈라져나가는 것이 바로 '평행우주'라고 한다.


이미 술자리 안주로 써먹어서 은밀하다고 표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을 이들은 대부분 모르는 이야기일테니, 그냥 '은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는, 실제로 부끄럽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대개 부끄러워할 거라는 판단에 '부끄러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우주에서 각자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아진다. 어법에 맞지 않는 어떤 단어를 그냥 나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수식어를 빼고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첫 문장을 다른 말로 바꿔버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백은 뭐냐고? 아! 그걸 잊어버렸네. 그냥 말 안하고 넘어가면 안될까? 평행우주를 하나 더 만들어내는 셈치고 그냥 첫 문장을 바꿔야겠다. 다시 시작하자.


종교 논쟁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내세 혹은 다음 생이라고 부르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냥 살아가면서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뇌에서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뇌가 기능을 멈추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아예 사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꽤 어려서부터 우리가 신이라고 믿는 초월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답답했다. 아니 신기했다.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데 어떻게 믿는 건지 궁금했다. 진짜로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저 사람들도 사실은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 믿는 척 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삶에 잘 어울린다고 여기고 남을 따라 믿는 척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중에 아주 믿음이 강한 신자를 만나면 저들은 남을 속이려다가 도리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대부분이 믿는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크게 잘못된 판단이라고 깨달았던 것은 사람들과 신의 존재와 종교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살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로 꼽을 수 있는 녀석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도 간혹 만났으니, 오래 사귀기도 했다. 이 녀석이 아주 독실한 기도교 신자였다. 녀석은 나를 걱정해준다며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자꾸만 권했고, 나는 녀석이 걱정되어 사실은 신은 없고, 종교는 인간이 만든 허상일 뿐이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시작한 토론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셀 수 없다. 늘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각자의 생각을 각자 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 외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끝없이 이어졌다. 더 많이 알아야 하기에 종교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구해 읽어야 했다. 이 알라딘 서재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읽은 흔적이 제법 있다. 아무리 논쟁을 하고, 책을 읽어도 본질적인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내세를 믿을까? 왜 초월자의 존재를 믿을까?


이 책을 읽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이 책의 6장에서 '자아'는 인간이 육체안에서 성장해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가는 것이라고 깨닫고 해주고, 7장과 8장을 거치면서 꿈과 환상, 정신적인 활동과 실제 시간 간의 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


세상이라는 흥미로운 재료


책의 3장에서 저자는 학생운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과학 서적에만 몰두하고, 현실에서 전혀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선배들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의 저자보다는 한참 후배지만, 나는 오히려 저자가 지적했던 선배들의 태도로 살아온 것 같다. 아마 학창시절에 주입식 교육을 받은 부작용일거라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생물학 등 과학 계열의 지식은 어렵기만 할 뿐, 전혀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


앞서 말하려고 했던 고백은 사실 수학과 과학 성적에 대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 0점을 두어번 받았다. 실제로 0점 시험지를 돌려받은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수학 선생님이나 주위 친구들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확률적으로 그냥 찍어도 한 문제는 맞출텐데, 어떻게 0점을 받을 수 있냐는 태도였고, 심지어 모든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일부러 0점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수학과 과학을 제외하면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받는 편이어서 황당한 그 의심을 갖는 친구들이 있었다. 두 과목을 뺀 나머지 평균과 합한 평균이 터무니없이 달랐기 때문에 선생님도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게 더 충격적일텐데 나는 모든 문제를 다 풀려고 노력했고, 대부분의 문제를 풀어서 틀린 답을 골랐다. 수학을 싫어하긴 했지만,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려는 노력 없이 그냥 답을 찍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려 했던 이유는 학교 교육이 수학과 과학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도록 만들어, 어린시기부터 전혀 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분명 살아온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더 많을텐데, 이제서야 과학이 사실은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였구나 깨달아서 너무 아쉽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이 책이 이제 막 나온 책이니까, 당연히 그 전에는 만날 수 없었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이 글에서 꼭 드러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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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2-15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감은빛 2014-12-16 05:25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어려운 현대 과학 이론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개 2014-12-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어떤 단서일까요? 저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써 엄청나게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수리영역 8점을 맞았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
모의고사때도 거의 10점대, 과학부분도 뭐 그렇구요.
수학,과학 잘하시는 분들이 제일 부럽더라구요.

감은빛 2014-12-16 05:27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저랑 비슷하시군요.
도토리 키재기 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은데요. ^^

책에 저자의 아주 짧은 소설이 두어 편 있는데,
무척 재미있고 또 흥미로워요!

yamoo 2014-12-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과학 인문학 sf의 통섭이라....이걸 제대로 통섭했다면 대단한 작가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서점가서 들춰보고 괜찮으면 구매해야 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4-12-16 05: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자의 이력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책에 단편적으로 소개하는데, 평범한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과학 지식이 전혀 없는 편이었고,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