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무실에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다가 잠시 짬이 나서 여기 서재에 글을 조금 쓰고 있었다. 전날 내린 눈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눈을 거의 구경도 못 해보고 자란 것부터 군대에서 평생 본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단 몇 시간만에 본 내용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군대 이야기를 짧게 쓰고 보니 그 옛날 혹한기 훈련에서 새벽에 자고 있던 A형 천막들이 거의 대부분 폭설에 주저앉아 급하게 철거하고 폭설에 고립되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 부대로 복귀행군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추웠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렸고, 너무 힘들었다. 그때 나는 기관총 사수였고, 기관총은 소총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기관총은 공용화기라서 행군시에 사수가 혼자 들지 않고 분대원들이 릴레이로 이어들게 되어 있다. 분대원들은 개인화기인 소총 외에도 또 예비총열과 탄통 등을 나눠들어야 한다. 나는 그날 너무 힘들었지만, 다른 분대원들(부사수, 탄약수 등)도 마찬가지로 힘들기에 그냥 혼자 기관총을 계속 메고 걸었었다.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자 그것도 쓰고 싶었다. 그러다가 언제적 군대 얘기를 쓸데없이 쓰나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 쓰던 걸 모두 지웠다.

그때쯤 지인이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서 노트북을 덮었다. 결국 쓰려던 글은 쓰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북플에 접속해보니 과거 오늘 쓴 글에서 2012년에 쓴 글을 발견했다. 놀라웠다. 13년 전에 쓴 글도 눈에 대한 글이었고, 그 앞부분은 어제 내가 짧게 쓰다가 지운 내용과 완전히 똑같았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서 거의 눈을 보지 못했던 것, 군대에서 정말 지겹도록 눈을 치웠던 것. 내용만 같을 뿐 아니라 문체와 분위기도 거의 같았다. 13년의 시간을 두고 쓴 글임에도 같은 사람이 본인의 경험을 쓴 것이니 내용도 글을 쓰는 방식도 같을 수 밖에 없구나. 그런데 아니 그래도 무려 13년이란 시간이 지나 그냥 떠오르는대로 쓴 글이 어떻게 거의 똑같을 수가 있을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그만큼 나는 발전이 없었다는 뜻일수도 있겠고, 늘 그렇게 변함없이 살았다는 뜻일수도 있겠다.

아, 게다가 짧게 군대에서 눈 치운 이야기를 쓴 후에 2010년 첫 출근날(아마도 1월 4일)에 내렸던 기록적인 폭설 이야기를 쓰려고 머리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2012년에 내가 쓴 글이 딱 그랬다. 그 내용이 다음에 나오더라. 이거 내가 과거에 쓴 글과 거의 완전히 같은 글을 13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쓸 뻔 했다.

물론 중간부터는 내용이 달랐다. 당시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침에 작은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다른 손으로 큰 아이 손을 잡고 눈이 내린 후 얼어붙은 빙판길이 되어버린 비탈길이자 골목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다가 미끄러질 뻔하고 다칠 뻔한 내용들이었다.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큰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다가 교문 근처에서 결국 아이가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찍고 울어버린 내용이었다. 나는 아이가 미끄러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리며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간발의 차로 아이는 먼저 무릎을 다쳤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간신히 달래어 학교에 들여보내고 나서 시간을 보니 이제 나는 일터에 지각할 상황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뿐 아니라 해마다 겨울마다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나이와 학년이 조금씩 바뀔 뿐 늘 그렇게 아이들을 안고 걸려서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아 겨울 내내 녹지 않는 빙판길이자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그렇게 오르내렸었다.

이젠 아이들이 자랐고, 아이들과 함께 살지 않으니 그 내용으로 글을 쓸 일은 없어졌다. 그 시절 당시에는 참 힘들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그 때가 그립다. 아직 어렸던 귀여운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지만, 그건 기억과 사진으로만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기억 어딘가에 묻어둔 그리운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생 그리워하는 일만 가능할 뿐 현실에서 다시 그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제의 내가 중간 이후에 쓰려고 했던 눈에 대한 이야기를 무었이었을까? 하루가 지나니 그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어렴풋이 한 두가지 키워드는 떠오르기는 하는데, 거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가 바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날이 춥고,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과연 이 겨울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오늘 잠 들었다가 내년 봄에 날이 풀릴 때쯤 깨어나면 안 될까? 제발 내일 눈을 뜨면 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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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6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따뜻한 나라로 여행 한 번 오셔야겠네요..

잉크냄새 2025-12-0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에 나타나는 개성,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살아나는 기억도 지문과 같나 봅니다.
따뜻한 겨울 나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5-12-0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쓰려고 구상했던 것이, 북플에 이미 십 몇 년 전에 썼다는 문구가 뜨는 거예요. 같은 소재로 내가 이미 썼다고? 하며 놀랍니다. 참 신기했답니다. 또 전혀 기억에 없었는데 북플에 뜨는 문구를 보고 클릭해 들어가면, 내가 이런 글도 썼다고? 하고 놀랄 일이 있어요. 북플 기능, 참 좋습니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당연히 마약 같은 건 아니고, 진통제와 감기약이다. 둘 다 먹으면 무지 졸리다. 11월부터 몇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몸과 마음이 무지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 마음의 상처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오묘한 것이더라. 다 늙어서도 이렇게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도 늘 굳건하게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힘든 시간을 어렵게 버텨가고 있다.

지난 주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 지나가버렸다. 월요일, 중요한 회의와 몇가지 일처리를 위해 사무실에 나가야 했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얼굴 통증이 심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씻고 나갈준비를 마치고 괄사로 통증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통증의 추이를 살폈다. 극심하게 아프다가도 또 금방 괜찮아지기도 하고, 점점 더 심해지기도 하는데, 밖에서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면 너무 힘들어서 통증이 심한 날엔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두렵다. 통증은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사무실 나가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통증 때문에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자려고 했다. 내가 먹는 진통제는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엄청 졸려서 금방 잠에 빠져든다. 사고 이후 긴 시간동안 먹었는데, 일상적으로 먹는 것은 아니고 통증이 무지 심한 날에만 고민 끝에 먹는다. 한동안은 통증이 좀 있어도 약을 안 먹고 일상생활을 좀 해보려고 했고, 실제로 오랫동안 약을 안 먹고 지냈었다. 약을 먹고 급하게 두어 명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통증 때문에 지금 약을 먹었고, 오늘 회의에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나중에 회의 내용과 해야할 일들 챙기겠다는 말을 적어 보냈다.

화요일, 중요한 서류를 제출하러 어딘가 방문해야 했다. 이날도 새벽부터 통증이 있었다. 일부러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가 일단 서류를 내러 갔다. 담당자 말로는 3층에 와서 본인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3층에 들어서니 안내하는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자가 많았고, 상담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상담시간이 엄청 길었다. 나는 딱히 상담할 용건이 아니고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고 싫기도 했고 조금 약해졌다가 은근히 세지기를 반복하는 통증이 신경쓰여서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직원은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한참 후에 나와 통화했던 담당자가 곧 나올거라고 전해줬다. 여기까지도 제법 긴 시간이었는데, 대기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그냥 번호표 순번대로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렸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담당자는 한참 더 지나서 나타났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서류 제출은 금방 끝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으며 고민했다. 사무실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갈 것인가? 통증이 좀 오락가락 하고 있는데 억지로 사무실을 나갈 수는 있지만, 긴 시간 머물기는 부담스러운 상황. 아무래도 무리하는 건 좋지 않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 안에서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수요일, 이날도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지난 이틀동안 놓진 상황들 때문에 꼭 얼굴을 보고 논의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통증은 지난 이틀보다 더 심했다. 그때는 좀 무리가 되더라도 참고 버티려면 어찌어찌 버틸 수준이었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참기 어려울 지경의 통증이었다. 이건 고민할 수준이 아니어서 그냥 약을 먹고 잠들었다. 하나 실수는 지금 약 먹는다는 그래서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못한 것.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들은 당연히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급여를 받고 출근하는 입장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의 중요한 회의들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다른 두 개 조직의 일이다. 나는 평생 이렇게 무급으로 여러 조직에서 활동하며 살았다.

수요일에 내가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회의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몇 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종일 외부에서 태양광발전소 부지 조사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요건 단기 프로젝트 같은 성격의 일로 일당을 받고 참여하고 있다.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얼굴 통증보다 목이 더 심하게 아파서 좀 놀랐다. 그러고 보니 코도 막히고, 온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것이 감기몸살 증상이었다.

평소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 걸린 것이 아마 작년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먹고 있는 감기약을 그때 샀었다. 자주 걸리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좀 고생했던 것 같다. 이건 어지간하면 약 안 먹고 버텨서 지나가고 싶은 내 고집 때문이다. 진통제도 어지간하면 안 먹고 버티는 편이지만, 감기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급하게 꼭 할 일이 있다면 약을 먹고 빨리 나으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약 없이 하루이틀을 지나보는 편이다. 그 사이 저절로 나으면 정말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때 약을 먹는다.

목요일에는 얼굴 통증과 감기 몸살 증상이 겹쳐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도저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런 날에 잠으로 도망쳐야한다. 감기약은 먹지 않고 진통제만 먹고 잠들었다.

금요일, 얼굴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틀동안 강도가 심했다가 조금 나아졌는데, 통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나아진 정도만으로도 기분이 꽤 좋아졌다. 살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감기는 더 심해졌다. 이때의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계속 통증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약 먹고 잠자는 일만 반복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왜 감기에 걸린 것일까?라는 문제였다. 도대체 왜?

금요일 낮에는 진통제도 감기약도 없이 집에서 몇 가지 간단한 일들을 처리했다. 금요일 저녁이 되자 목이 붓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작년에 여유있게 사놓았던 감기약을 찾아서 먹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 경계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휙 지나갔다. 열이 심해서 오한이 오기도 했고 목이 너무 아팠고 콧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목감기 약을 먹다가 중간에 코감기 약으로 바꿨다. 어제 월요일 오후쯤에야 감기약이 내 감기 증상을 이겨낸 느낌이었다. 감기가 심할 때 하나 장점은 덕분에 얼굴 통증에 대해서는 잊을 수 있다는 것. 감기기운이 조금 잡히는 느낌이 되자 다소 통증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한번에 두 알씩 먹던 감기약을 내 맘대로 한 알만 먹었다. 약을 정량대로 먹으면 또 졸려서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서. 오늘 잘 쉬고 내일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적게 먹어도 감기약이 졸린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졸다가 깨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아니 아예 자려고 눈을 감으면 또 잠이 달아난 느낌이고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집어들면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졸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자려고 누으면 또 정신이 또렸하다. 이게 몇 번째 반복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두문불출하며 약에 취해, 그러니까 약 기운 때문에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며 살다보니 짧은 꿈들을 엄청 많이 꾸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꿈 내용을 잘 기억하는 편이고,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편인데 요 며칠 꾸었던 꿈들 이야기를 쓰려고 이렇게 폰을 두드린다.

1. 꿈 속의 시간
잘 때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튜브는 재생목록을 만들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다른 음악을 이어서 선택해주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밤새 음악이 계속 나온다. 아마 내가 평소 즐겨듣는 스타일을 알고리즘이 반영하는 것 같다. 영미권 팝 음악을 며칠간 죽 들었다면, 내가 재생목록까지 만들어두고 주기적으로 듣는 8~90년대 팝음악들이 주로 나오고, 중국 노래를 한참 들을 때에는 가수 이름도 노래 제목도 읽기 어려운 낯선 중국 노래들이 계속 이어졌다. 작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일본 노래들을 꾸준히 듣고 있는데, 확실히 최근에는 영미권 팝송들도, 중국 노래들도, 가끔 듣던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인도네시아 음악들도 다 밀어내고 거의 절대 다수가 일본 노래들이 알고리즘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아, 이주전쯤부터 예전에 즐겨보던 인도영화들의 맛살라 장면들, 즉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단체로 춤추는 장면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곤 했는데, 그래서 가끔 인도 음악으로 이어지기도 하더라.

약을 먹었던 그렇지 않고 자연스레 잠들던 상관없이 잠이 오면 딱 느낌이 온다. 이건 곧 잠에 빠져들기 직전이다. 하는 느낌. 그때 태블릿을 열어서 유튜브를 켜고 음악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누워 눈을 감는다.

꿈 속에서 나는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하고, 어딘가로 긴 시간 운전을 해서, 어떤 식당을 방문해 회를 먹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바닷가 횟집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화 상태는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이었다. 어쩌면 꿈 속의 나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 내가 실수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젓가락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실내에 앉아있었던 내가 갑자기 자갈이 깔린 해변 야외 테이블로 옮겨졌다. 순식간에. 그리고 눈 앞에 있었던 대화상대가 사라졌다. 아니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과 종업원들도 모두 사라지고 나와 내가 앉아있던 의자 그리고 테이블만 남았다.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큰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서 깼다.

딱 깨자마자 귀로 들리는 음악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닫아두었던 테블릿을 열어보았다. 분명 잠들기 직전에 요즘 자주 듣는, 그래서 유튜브를 켜자마자 맨 위에 떴던 타무라 메이미의 [無形有形] 이란 곡을 틀어놓고 눈을 감았었다. 그리고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는데, 아직 그 곡이 끝나지 않았다. 채 5분도 되지 않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나는 잠에 푹 빠져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것이다. 분명 꿈 속에서 나는 긴 시간을 보냈었다. 어떤 여성을 만나 운전해서 바닷가로 갔었다. 운전한 시간만 서너시간 이상이었고, 회를 먹으며 대화한 것도 꽤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잠이었다고.

2. 아빠는 어디 계신가요?
사실 이 글은 이 꿈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시작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꾸었던 꿈이었고, 깨자마자 이건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 속에 나온 집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는 달리 매우 넓었다. 그런데 집이라기 보다는 창고 같기도 하고, 아니 교실 같은 느낌도 좀 있었다. 클릭해서 본 적은 없지만 폐교를 구입해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는 영상의 썸네일을 본 적이 있었다. 꿈 속의 집이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공간이 넓은데 어디가 어딘지 좀 정신이 없고 산만한 곳. 결정적으로 출입문이 그 옛날 교실의 미닫이 문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노트북을 여러대 켜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생각해보자면 여러 노트북을 켜놓고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노트북 하나로는 소설을 쓰던 중이고, 또 다른 노트북은 시를 쓰던 중, 또 다른 것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뭐 노트북은 하나만 있어도 이걸 다 할 수 있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마치 노트북이 모자라서 다 못하는 것처럼 연출된 장면 같네.

암튼 그때 누군가 미닫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업하던 노트북들을 그대로 두고 문이 아닌 천으로 된 막을 열어 젖히며 내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며 신발을 벗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며 아버지 손에 든 짐을 받으러 다가섰다. 뭔가 무거운 것이 든 종이봉투였다. 아버지는 뭔가 말씀하시며 마치 거실같은 공간으로 올라서셨고, 내가 짐을 받아들려고 내민 손을 말없이 거절하고 아마도 부엌인 것 같은 공간으로 향하셨다. 우리는 선 채로 몇마도 짧은 단답형 대화를 나눴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전화기를 찾아 아까 노트북들이 있던 공간으로 돌아갔다. 전화기는 있어야 할 곳에 없었나보다. 벨은 계속 울리는데 나는 전화기를 찾을수 없었다. 벨이 계속 울리자 저쪽에서 아버지가 한 소리 하셨다. 안 받고 뭐하냐고. 나는 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계속 전화기를 찾았지만, 전화가 저절로 끊어질 때까지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살피다가 내가 하던 작업들이 저장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아, 저 순간의 감정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저런 일을 워낙 많이 겪었으니. 뭐라고 불러야 하나? 빡침? 꿈속의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은 내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었고, 나는 폰을 열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요며칠 서울은 무지 춥다는데 조심하라고, 옷 좀 따시게 입고 댕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전화로 외삼촌 이야기를 비롯해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통화가 길어지자 무선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고 폰은 다시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노트북 중 하나로 돌아가 마우스로 뭐가를 찾았다.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걸 깨달은 엄마는 바쁘면 끊자 했고, 나는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한참 노트북을 만졌지만 날아간 작업은 결국 살릴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고, 아버지가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들은?˝ 이라고 아이들이 언제 집에 오는지 물었고, 나는 ˝몰라요. 이따 오겠죠.˝ 하고 건성으로 답했고, 아버지는 ˝다 오면 같이 먹자.˝ 하고는 다시 뭔가를 만드는데 집중하셨다.

나는 잠시 집안 여기저기를 치우고 있었다. 뭔가 치워도 치워도 정돈되지 않는 이상한 집이었다. 그때 다시 폰이 울렸다. 무선 이어폰을 아직 끼고 있었기에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다시 엄마였다. 엄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로 말씀을 못하고 한참 다급한 숨소리만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니 잘 들으래이. 있잖아.˝ 하고 다시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상황인데, 무슨 뜸을 그리 들이냐며 채근하는 듯한 느낌의 큰소리를 내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분명 전화기 저쪽에서 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개수대 앞에 서서 서툰 몸짓으로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이쪽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꿈속의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소리를 줄이며 아까 내 공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목소리를 줄여 속삭이듯 그러나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아빠 지금 거기 부산에 계세요? 엄마랑 같이 있어요?˝ 엄마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빠 얘기는 왜 하냐며,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잘 들으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아니, 아빠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고. 지금 요리를 한다고 주방에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꿈속의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버지는 요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라면 정도를 끓이는 것을 제외하면 뭔가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 우리 집에 있는 아버지는 가짜이고, 진짜 아버지는 부산에 엄마 옆에 계시겠지. 근데 자꾸 아까부터 엄마가 중요한 얘기라고 하면서 말을 못하는 건 대체 무슨 얘기지?

나는 다시 엄마에게 여기 있는 아빠가 가짜인 것 같다고, 거기 잘 계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야가 와 자꾸 뜬금없이 아빠 얘기를 하노! 아이고 야야. 니 어쩔라고 이라노.˝ 마치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모르게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내가 모르게라고 하면 내가 기억을 잃었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사이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인지를 못하는 건가?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주방으로 나가보니 가짜 아버지는 ˝누고? 뭔 통화를 그래 오래하노?˝ 라고 하셨다. 그럼 이건 내가 만든 환상인가? 이 환상은 왜 지금 이 시점에 내 앞에 나타난 건가?

나는 엄마에게 옆에 아빠 좀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왜 갑자기 아빠를 찾느냐며 탄식만 하시고, 바꿔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옆에 계시다면 엄마가 이렇게 하실 이유는 없으니 지금은 옆에 안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아까 내가 통화 중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또 뭐지? 그게 환청인가? 그럼 오히려 여기 계신 아버지가 진짜인가?

나는 그제서야 누구랑 통화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엄만데, 아빠, 엄마랑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어요?˝ 라고 답하면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몰라. 너거 엄마한테 전화할 일이 뭐 있노˝ 하고 답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추위에 뺨이 빨갛게 변한채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이 언젠가 내가 사진으로 찍어두고 자주보는 겨울 사진과 똑같았다. 아이들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있었다. 이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한 순간,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모든 상황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나는 꿈에서 깨기 전에 다시 어려진 아이들을 안아보고 볼에 입을 맞춰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일이니.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려 뛰어가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잠을 깼는데 실제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스팸으로 의심된다는 문자가 나타나있었다.

3. 몇 개 국어까지 가능할까?
가끔 꿈에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원어민들의 말들을 쉽게 알아듣고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실의 나처럼 잘 못 알아듣고 말도 떠듬떠듬 잘 못 한다. 어쩌다 꿈에서 외국어를 잘 했던 날에는 깨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다. 며칠 전에 꾸었던 꿈에서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어떤 시설에서 생활했는데, 각기 다른 여러 나라 언어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꿈 속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 못 느꼈는데, 꿈에서 깰 무렵 어떤 사건이 터지면서 지금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때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너무 잘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꿈 속에서의 내 생활은 마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의 삶 같기도 했고, 전장에서 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외계인에게 잡혀 수용소에 갇힌 지구 상에 몇 남겨지지 않은 소수의 생존자였을지도 모른다. 왜 그 시설에 갇혀있었는지, 누가 우리를 가두고 통제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각 나라의 언어들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꿈 속의 나는 유난히 여러 말들을 잘 이해해서 언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주위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단순히 언어 소통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주목을 받았던 것이 나중에는 거기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에도 해결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인데, 마치 내가 다 해결해줄 것처럼 기대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켰고 결국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 잠에서 깨어났다.

꿈의 뒷부분은 너무 허무하고 한심하고 짜증나는 상황이었음에도 꿈에서 깼을 때의 나는 앞부분의 나, 그러니까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알아듣는 내 모습이 좋았어서, 현실의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정말 그런 삶을 한번이라도 살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꿈의 기억들은 더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줄여야겠다. 알라딘 서재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을 좀 이겨내고 나면, 좀 더 자주 들어올 수 있겠지. 몸도 마음도 추운 이 상황을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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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0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꿈을 꾸다 깨어 늦잠이라도 잔 듯 화들짝 놀라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의 꿈은 너무도 오래 이어져 며칠이 지나는 때도 있고 다시 든 잠에서 꿈이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때도 있더군요. 또 그런 날은 자주 깨어 피곤할 것 같지만 의외로 꿈 속의 시간 만큼이나 오래 휴식을 취한 듯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끼 자루 썩던 무릉도원의 꿈이 이럴까요.

감은빛 2025-12-05 18:01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정말 다양한 꿈이 있죠.
저도 마치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꿈도 자주 꾸는 편이고,
거의 비슷하게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데, 미묘하게 조금씩 다른 그런 꿈도 자주 꾸네요.

무릉도원의 꿈이라면 정말 깨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케틀벨 그리고 달리기


어제는 좀 일찍 잠이 들었다. 침대 위 벽쪽에 짐볼을 두고 거기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악몽을 꾸었다. 우리 가족은 어떤 아주 넓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네 가족들, 우리 아이들과 애들 엄마와 내가 다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3대가 다 모인 셈. 그런데 이 집에 지박령으로 추정되는 어떤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비명이 끊이지 않는 집이 되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지만, 잘 되지 않았고 애들 엄마와 아이들은 집을 떠나 버렸다. 나는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슬프기도 하고 혼자 상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었다. 토닥토닥 어깨를 깜싸 안아 손으로 두드려 주었다. 갑자기 꿈이 멜로물이 된 것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여성에게 확 감정이 쏠렸다. 그러다 그 여성도 혼자 있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고, 집을 떠나버렸다. 갑자기 여동생네 가족들도 하나도 안 보였고, 부모님도 안 보였고, 그 넓은 집에 나 혼자였다. 가구도 하나도 없이 넓디 넓은 집에 덩그라니 혼자 남았고, 갑자기 나는 작아졌다.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꿈 속에서 작아지는 일은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발을 헛디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참 애매한 시간에 깨버렸다. 식은 땀을 흘렸길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당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어 언어 익힘앱을 열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조금씩 하다가, 영어도 조금 하다보니 시간이 휙 지나갔다. 두시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엔 6시쯤 깼다. 유트브를 켜서 음악을 좀 듣다가 뭔가 생각난 것이 있어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자판을 두드렸다. 작은 방 책상에 노트북이 있으나 책상에 앉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그냥 조금 불편해도 폰 메모장을 열심히 두드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지난 주부터 연휴라 시간 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금요일 아침은 동네 언니들과 케틀벨 운동을 한다. 저번 주 금요일에 단체 대화방에 "혹시 10일 금요일에 나오실 분 계시면 미리 알려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제까지 아무도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임 시간 1시간 전에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혹시 오늘 운동하러 나오실 분 계실까요?" 아마 대부분 여행을 갔거나 쉬거나 하시겠지. 주위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오늘도 쉬던데. 라고 생각하고 나도 침대에 누워 맘 편히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데, 전화가 왔다. 운동하러 나오시겠다는 언니 한 분. 그리도 또 가장 나이 많은 언니가 단체 대화방에 본인도 갈 생각이라고 올리셨다. 음, 나는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케틀벨 운동은 참 재밌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운동효과는 무척 좋다. 그래서 늘 케틀벨 운동을 추천하곤 했다. 우연히 하게 된 이 운동모임도 처음엔 좀 어색하기도 하고, 나로서는 제대로 운동도 못 하면서 시간만 뺏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준비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몇 가지 맨몸 운동으로 웜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케틀벨 스윙을 했다. 자세를 꼼꼼하게 봐드리고, 몇 번 시범을 보여드리고, 각자 자율적으로 스윙을 하시라고 하고, 나는 운동공간에 있는 가장 무거운 케틀벨을 가져와 내 운동을 했다. 케틀벨 운동이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여러 동작을 섞어가며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양손 스윙(양손으로 하나의 캐틀벨 들기)을 하다가 한 손 스윙으로 바꾸고, 그 한 손 스윙을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며 해준다. 이때 무거운 케틀벨을 오른손으로 공중에 던져놓고 빠르게 왼손으로 낚아채어 잡고 스윙 동작을 이어가는 것은 할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준다. 혹시라도 케틀벨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내 발위에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던지고 받아내야 하는 동작이라서 더 흥분되고 재미있다. 그렇게 땀을 좀 빼고 나서 이번엔 좀 가벼운 무게의 케틀벨 두 개를 가져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스윙을 시작한다. 나는 무거운 하나의 케틀벨을 들고 하는 스윙보다 조금 가벼운 케틀벨 두 개를 들고 동시에 하는 스윙이 더 재미있고 좋다. 이때부터 스윙과 클린과 클린앤 저크와 스냇치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원하는 동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케틀벨 운동을 마치고 헤어졌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케틀벨 운동을 마치면 곧바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동네 사람들 중 시간이 맞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한다. 어떨 때에는 두어 명이 나오고, 어떤 날에는 대여섯명 이상이 나오기도 한다. 나도 시간이 맞으면 참석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저녁에 일정이 있었다. 요양보호사나 경비 노동자 등 주로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저녁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르쳐주는 무료 연속 강좌가 열리고, 거기에 보조강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가야 했다. 이 노동자를 위한 야간 컴퓨터 교실은 10년 이상 이어져 오는 행사다. 오늘 저녁에 사람들과 함께 달릴 수 없으니 나는 아침에 달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차피 케틀벨 한 시간 정도 해도 나에게는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니, 달리기 6~8킬로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케틀벨하러 갈 때에도 나는 매번 달리기를 한다. 약 1킬로미터 거리. 사람들과 함께 다시 웜업을 하기는 하지만, 어떤 운동이든 가장 좋은 웜업은 달리기다. 나는 1킬로를 달려서 충분히 웜업을 하고 다시 사람들과 만나서 맨몸운동으로 또 웜업을 한다. 오늘은 집에서 나설 때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내렸다. 운동장소까지 달려가야 하니 우산을 펼 수 없어서 접은 채로 들고 뛰었다. 케틀벨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빗발이 좀 거세졌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냥 집에 가서 씻을까? 그럼 오늘 달리기는 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연휴 내내 비 때문에 달리기 타이밍을 잡지 못했었다. 까짓거 이 정도 비는 맞으며 달려주자. 지난 대회에서 그 거센 비를 맞으면서 10킬로도 달렸는데. 오늘은 딱 6만 달리자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집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달리기를 시작하니 빗발이 다시 약해졌다. 열을 식혀 주어서 딱 달리기 좋은 정도로 비가 내렸다. 근데 바람은 좀 많이 불었다. 이게 맞바람인데 의외로 달리는데 영향을 줄 정도로 강했다. 그래도 나는 기분 좋게 달렸다. 대회도 아니라서 기록 신경쓸 필요도 없고 평소 속도보다 천천히 여유있게 달렸다. 딱 2.5킬로미터 지점까지. 거기서부터 갑자기 배에 조금 약하게 통증이 왔다. 단거리 달리기를 포함해 5년 이상 달리기를 하면서 배가 아픈 적은 거의 없었다. 밥을 먹고 2시간 이내에 달리면 꼭 배가 아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나는 절대 달리기 2시간 이내에 뭘 먹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 어제 밤 12시에 깼을 때 책을 읽다 입이 심심해서 먹었던 과자 몇 조각 이후로 나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달리면서 계속 생각했다. 이 배가 아픈 증상이 조금 지나서 저절로 나아질까? 계속 아플까? 아직 3도 못 찍었는데, 이러면 겨우 5킬로미터 밖에 못 달리는데, 아니 지금 몸을 돌려도 앞으로 2.5를 더 가야 하는데, 이 컨디션으로 갈 수 있으려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괜찮아 지겠지. 괜찮아 질거야 하는 마음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어쨌거나 3킬로미터 지점은 찍고 볼 생각이었다. 배 통증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면서 호흡에도 영향을 미쳐 평소보다 폐활량이 더 딸렸다. 그리고 당연히 더 빨리 지쳤다.


딱 3킬로미터 지점을 찍고 몸을 돌려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힘들었다. 배가 신경 쓰이니까 자꾸만 호흡이 얕아지고, 충분한 산소 공급이 이뤄지지 못하니 근육 피로는 급격하게 올라갔다. 악순환의 반복.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4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고 완전히 지친 상태가 되었다. 배는 계속 미약한 통증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너무 멈추고 싶었지만, 그래도 5킬로는 찍으려고 악착같이 달렸다. 하!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10킬로미터 정도는 그냥 달리고, 20정도도 그러 어렵지 않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오늘은 겨우 5킬로도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게다가 대회 때처럼 최선을 다해서 뛴 것도 아니고 가볍게 천천히 뛰었는데도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나 오늘 오랜만에 제법 제대로 케틀벨 운동을 하고 왔지! 운동 마치고도 아무것도 더 먹지 않고 곧바로 달렸지. 케틀벨 운동 마치고 적어도 단백질 드링크라도 하나 마셨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배가 아픈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몸 상태는 얼른 뭐라도 먹어야 할 상태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다음에 또 케틀벨 마치고 바로 달릴 생각이라면 중간에 가볍게 뭐라도 꼭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지친 발을 힘겹게 옮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가끔 조금 세졌다가 다시 약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주위에 달리는 사람들이 가끔 지나갔다. 대부분 반대 방향에서 그러니까 내가 출발했던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거의 5킬리미터 지점쯤 왔을 텐데 생각할 즈음에 내 뒤에서 가볍게 뛰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금방 나를 추월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탄탄한 몸을 가진 젊은 남성이었다. 그냥 몸만 봐도 딱 알 수 있었다. 적어도 450 정도는 뛰는 사람이겠구나. 지금 내 상태는 아마 550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려나. 그가 나를 쉽게 추월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평소라면 이렇게 추월 당했을 때, 억지로라도 좀 따라가보는 모험을 해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아니 난 완전히 지쳐서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 5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다. 이제 출발점까지는 1킬로미터가남았지만, 살짝 젖은 신발과 양말 때문인지, 발에 물집이 잡힐 것 같은 기분도 들기 시작했다. 


아, 내가 오늘 안정화를 안 신고 그냥 운동화를 신고 왔구나 하고 깨달았다. 바닥이 두터운 런닝화인 안정화를 신으면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도 덜하고 발의 피로도 줄여주며 물집이 잡히는 것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화는 비싸고 자주 신을 수록 수명이 줄어든다. 나는 그래서 대회에 나가거나 작정하고 장거리를 뛰는 날이 아니면 좀 가볍고 저렴한 운동화를 신고 뛰는 편이다. 기준은 아마 10킬로미터 정도. 즉, 10킬로미터 부터 그 이상을 뛰는 날엔 안정화를 신고, 8이나 9 정도 뛰는 날엔 그냥 운동화를 신는다. 다행히도 좋은 신발을 잘 골라서 런닝화가 아닌 운동화 중에서는 달리기에 좋은 편이라고 느낀다. 이거 신고 10 이상 뛴 적도 있었는데, 페이스를 조절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겨우 5킬로를 달리고 벌써 물집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다니! 오늘 뭔가 안 풀리는 날이구나. 결국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5.2 정도 뛴 후였다. 남은 약 800미터를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무지 길게 느껴졌다. 더구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갑자기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러나 나는 배의 통증부터 발바닥의 물집이 생길 듯한 감각까지 여러 모로 더 뛸 상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비록 1킬로를 남기고 중간에 멈췄지만, 생각해보니 아침에 이미 1킬로를 달렸었다. 합치면 오늘 6을 찍었다. 목표 달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출발점에 도착하면 밥부터 먹어야지. 어느 식당에서 뭘 먹으면 좋을까? 먹을 것을 떠올리는 생각 만으로도 흐뭇해졌다.


달리기 열풍, 우후죽순 열리는 대회들 그리고 치솟는 참가비


작년 9월 초에 열렸던 철원 DMZ 국제 평화 마라톤 대회(와! 이거 다 띄우니 엄청 기네.)에 신청서를 넣었던 것은 6월 말이었다. 그 대회 참가비가 아마 3만5천원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옷을 주지 않고 철원 쌀(아마 3킬로그램? 혹은 4킬로그램?)을 보내줬었다. 달리기 마친 후에 나온 간식도 꽤 신경써서 넣은 느낌이었다. 3만5천원이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 잘 몰랐는데, 메이저 대회들은 대회 참가비 자체도 비싸지만, 서버 열리자마자 거의 곧바로 마감되고, 한참 후에 고가의 상품에 참가자격을 끼워 팔기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몇 십만원을 훌쩍 넘어간다고. 허! 그 돈을 주고 그 대회를 꼭 뛰어야 하나? 이후로 내가 참여했던 4번의 대회들은 모두 참가비가 5만원이었...... 아니 하나였던가 두 개는 4만5천원이었던 것 같다. 암튼 요즘 대회 참가비는 대부분 5만원에 맞춰지더라. 아, 이것도 10킬로미터 기준인가? 하프나 풀코스는 더 비쌌던가?


평소에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지만, 대회를 뛰는 건 확실히 좀 다르더라. 소위 대회 뽕이라 부르는 긴장감과 고양된 감정 덕분에 평소 실력보다 확실히 조금은 더 페이스가 올라간다. 그래서 시간이 맞다면 주기적으로 두세달에 한 번 정도 대회를 나가는 건 괜찮은 것 같다. 문제는 대회가 우후죽순 엄청 많이 새로 생기는 것에 비례해 달리기 인구는 훨씬 더 급격하게 늘어나서 대회에 나가려는 사람 수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신청 서버가 열리자 마자 마감되는 일이 흔하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생긴 대회들도 흥행이 잘 되는 더더욱 아무 대회나 자꾸 생기고, 별 것도 아닌데도 참가비는 남들 받듯이 받는 다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서울 어스 마라톤이 그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날 스레드는 완전 난리가 났었다. 길바닥에 수십개의 검은색 백이 버려져 있었고, 사람들이 자기 짐을 찾으려고 그 버려진 가방들을 뒤져보는 사진들이 여러 개가 올라왔다. WWF 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가 연 대회였는데, 운영을 이따위로 했다고? 분명 친환경 대회라고 여기 저기서 이름을 내걸었는데 달리다 보면 급수대에는 다들 종이컵을 쓰고 있고, 달리던 사람들은 종이컵을 낚아 채서 달려가다가 마시고 저 멀리 길 바닥에 그냥 버린다. 뛰다 보면 일회용 비닐 우비부터 종이컵 등 길거리에 쓰레기들이 엄청 나뒹굴고 있더라. 이래놓고 친환경 대회라고? 딱 한 번 우리 동네에서 열린 아주 작은 대회에서 종이컵이 아닌 다회용 컵을 쓰는 걸 봤다. 그날은 사람들이 컵을 들고 멀리까지 가서 버리지 못하고 급수대 근처에 멈춰서 물을 마시고 반환통에 넣고 달려야 했다. 비록 아주 잠시 내 발이 멈추더라도 이게 맞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반환통을 급수대로부터 적정한 거리에 여러 개를 두면 될 일이다. 좀 멀리에도 두고, 중간 거리에도 두고, 가까이에도 두고.


차량이나 자전거 통제와 코스 안내가 미흡한 대회 이야기도 많더라. 역시 스레드에서 본 것들인데, 그런 대회에 다녀온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나?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올리곤 했다. 그렇게 대회는 부실하게 엉망으로 운영하면서 참가비는 추세에 편승해 높게 받는다. 아, 그리고 매번 대회 신청할 때마다 기능성 런닝셔츠를 주던데, 이거 안 주고 돈 적게 받으면 안 되나? 대회 갈 때마다 새 티셔츠가 생기는데, 이러다가 런닝셔츠로 옷장이 꽉 차겠다. 물론 대회 운영진 입장에선 같은 옷을 입고 달리는 수천명의 참가자들이 사진에 나오는 걸 원할테니,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티셔츠도 대회마다 조금씩 질이 차이가 나서 어떤 대회에서 받은 옷은 가볍고 통기성도 좋고 아주 만족스러운 품질이라면, 어떤 대회에서 받은 옷은 그날 한 번 입으면 다시는 입지 않을 것 같은 뭐 같은 것도 있었다.


다음엔 어떤 대회를 뛰어볼까 하고 검색을 해보면 정말 대회가 많더라. 그럼에도 대부분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이 달리기 열풍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 될지, 질 낮은 대회가 마구 생기는 현상은 또 언제쯤 나아질 것인지 궁금하다. 


책 읽고 글 쓰는 삶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매일 일하는 삶을 그만두고 꼭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서 이제 그 날이 좀 가까워 질까 생각했으나, 아직 작은 아이는 어렸다. 둘이 나이 차가 큰 것이 아쉽다. 아직은 아이들 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요즘 내 관심은 자꾸 글 쓰는 일에 가있다. 늘 내가 쓰는 글에 아쉬움이 많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글을 더 많이 써보고, 고쳐보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바쁘게 살다보면 글 쓰는 시간을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예전에는 잡지나 지역 신문 등 작은 돈이라도 원고료 받고 글을 쓰는 청탁이 종종 들어왔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하나도 없다.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낼 명분도 이젠 없다. 내 마음가짐부터 그렇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원고료가 걸린 글이라면 어떻게든 마감 시간 안에 써야 하지만, 써도 그만 안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 글은 늘 바쁜 이 피곤한 삶에서 계속 후순위로 미뤄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뭔가 써야지 생각해서 메모장에 남겨둔 간략한 글들이 소용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 열어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쓰려고 이 단어들을 써놓았을까 싶다. 분명 메모를 남길 때에는 아주 구체적인 문장까지 생각하고 그걸 다 쓸 여유가 없어서 키워드 중심으로 남긴 것인데, 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계속 머리로만 언젠가는 쓸 거야. 언젠가는 이러고 있으면, 그 언젠가는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내가 글 쓰는 일에 절실하다면, 잠을 아껴서라도 써야 한다. 그래서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그냥 미루고 넘어가면 나는 언제나 여기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래도 제일 빠른 때이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자.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미루지 말자. 한 문장을 쓰고 말더라도 쓰자. 그래야 아주 조금이라도 내 삶이 바뀔 가능성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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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0-10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페이퍼는 singing in the rain으로 함 가시죠!!! ㅎㅎ

감은빛 2025-10-13 23:0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잉크냄새님, 제가 또 노래를 좀 하는 걸 어찌 아시고. 근데 사실 그 장면의 핵심은 노래가 아니라 춤인데요. 그 비 오는 거리에서 추는 춤. 근데 제가 노래는 좀 하는데, 춤을 전혀 못 추네요. 아쉽습니다. ㅎㅎㅎㅎ

희선 2025-10-17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꿈을 꾸셨네요 저는 요새 별로 안 좋은 꿈을 꾸기도 하네요 생각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안 좋은 꿈은 조금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요새 달리기 하는 사람이 많아졌군요 그제 라디오 방송 들으니 달리기 이야기 하던데... 나이가 아흔이 될 때까지도 달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어요 그 말 들으니 하루키가 생각났어요 감은빛 님도 오래 달리시겠네요


희선
 

비는 내리고, 우리는 달리고


지난 글의 끝에 적은 것처럼 지난 주 일요일 아침에 달리기 대회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일기예보에서는 그 아침에 제법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대회 전날 주최측인 마라톤연맹에서 많은 비가 예상되니 대비를 잘 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작년 9월 초에 첫 10킬로미터 대회에 나간 후로 이번 대회는 다섯번째 대회였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뛰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를 잠시 맞으며 뛴 적은 있지만, 제법 많이 내리는 비를 계속 맞으며 뛴 적은 없었다. 첫 경험이다. 뭐든 처음이라면 뭔가 두렵기도 하고 약간은 설레기도 한다. 나는 마라톤 풀코스와 며칠씩 걸리는 산악 달리기를 경험한 친한 형에게 문자로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경우에 뭔가 대비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한참 후에 그는 "강인한 정신력~~~~ 안전하게 달리기~~~~" 라고 답을 보냈다. 답장을 보는 순간 바로 웃음이 나왔다. 딱히 뭐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알아듣기는 했는데, 물결 모양 표시를 막 붙여 놓은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것이다. 


어쨌거나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평소 다른 대회에 참가하거나 마음 먹고 장거리를 뛸 때와는 달리 좀 더 많이 챙겨야 했다. 일단 갈아입을 여벌 옷이 무조건 필요하고,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어야 할테니 수건도 필요하겠지. 그리고 우비. 나중에 더워서 벗더라도 출발 전에 몸을 풀 때부터 처음 한 2킬로미터 정도까지는 우비를 입고 뛰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집회나 야구장 같은 곳에서 입으려고 마련해 둔 우비를 찾아냈다. 일회용으로 쓰는 얇은 비닐 우비보다는 훨 두껍고 좋은 것으로 여러번 사용해도 찢어지지 않는 제품이었다. 나는 가능하면 이 우비를 다음에 또 쓰기 위해 버리지 않고 잘 챙겨오고 싶었는데, 달리다 보니 도저히 더워서 더는 입고 있을 수가 없었고, 아무리 가벼운 우비여도 들고 뛰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었다. 허리에 감고 뛰어보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로 달리기에 방해가 될 정도로 거슬렸다. 결국 급수대를 만나서 거기 자원봉사하시는 분께 좀 버려달라고 부탁하고 계속 뛸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네 번의 대회는 모두 아침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무릎과 발목이 아파서 진통제를 먹고 달렸다. 그럼에도 대회 전에 길게는 두 달, 짧게는 삼 주 이상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그래도 기록이 그럭저럭 괜찮았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아무런 대비 없이 대회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도저히 대회 준비를 할 여력이 없어서 그냥 이번 대회는 평소 실력을 알아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비까지 많이 내린다고 하니, 솔직히 이번 대회는 완전히 망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어쨌거나 대회는 대회라 당일 좋은 컨디션으로 나가고 싶어서 전날부터 시간 관리와 몸 관리를 나름 했고, 잠도 잘 자려고 노력했다. 아주 잘 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비하면 괜찮았다. 일찍 일어나서 짐을 잘 챙겨놓고, 속을 비우고, 준비를 마쳤다. 비가 오니 현장에서 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해서 배번호표와 기록칩도 미리 옷과 신발에 부착해두었다. 이제 조금 일찍 가서 준비 운동과 워밍업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창 밖에선 점점 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대회 장소는 야외라 달리 비를 피할 장소가 없을 것이다. 일찍 가서 워밍업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긴 시간 비를 맞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워밍업을 하면서 비를 맞으면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어버릴텐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는 준비를 다 마친 상태로 계속 창 밖의 비 듣는 소리를 들으며 비가 조금이라도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대회장까지 이동 시간은 넉넉잡아 40여분. 그래도 준비운동을 하긴 해야 할테니 출발시간 1시간 전에는 집에서 나갈 생각으로 시계를 보며 기다렸다. 빗줄기가 조금은 약해지는 듯 하다가 다시 강해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한다는 것이 아주 조금은 설레고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들기도 했지만, 아주 힘든 일이 되리란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굳이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나가기가 싫었다. 그냥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더 자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래도 나가야지. 그래도 달려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은 것은 참가비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4만5천원이었던가? 5만원이었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정도 냈었다. 그리고 첫 장거리 달리기 대회 이후 1년 만에 5번째 대회라는 의미를 살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결국 나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나가기 싫은 기분을 뿌리치고 빗 속에 집을 나섰다. 


대회장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 달리기 열풍에 어지간한 대회는 온라인 등록 시작 후 10분도 안 되어 마감되곤 한다는데, 내가 지금까지 뛰어본 대회 중에 가장 참가자가 적어 보였다. 아마 비 때문이겠지.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참가한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겠지. 이왕 참여했으니 나도 최선을 다해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 요 앞의 앞에 문단에서 쓰려고 했다가 깜빡했는데, 지금까지 네 차례의 대회 모두 관절 통증과 컨디션 난조로 당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관절도 무릎 통증은 약하게 있었지만, 발목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렇게 비가 제법 오고 있었다. 이 변수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비가 제법 내려서 휴대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기가 어려웠다. 금방 물에 젖어서 혹시라도 물이 들어가 고장이 나면 곤란하니까. 그런데 달리기 시작하기 직전에 러닝앱을 켜서 시작 버튼을 눌러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폰은 금방 젖어 버렸고, 급한대로 손바닥으로 물기를 닦아 내며 우비 안으로 손을 넣어두고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사회자가 출발선으로 이동하라고 말했고, 갑자기 대기 장소에 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출발선을 향해 움직였다. 나는 출발선에서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며 동시에 긴장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다 시간이 거의 되었다고 생각하고 러닝앱을 열어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전화기를 허리 뒤쪽 숨겨진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궜다. 그런데 사회자가 아직 출발까지 7분 남았다며 계속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라고 주문했다. 아! 너무 일찍 눌러버렸구나. 왜 시간을 안 보고 시작 버튼을 눌렀을까? 이제와서 다시 끄고 어쩌고 하려니 너무 귀찮았고, 아까처럼 손에 쥐고 있으면 또 금방 젖어서 물이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그냥 이렇게 가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앱으로 알려주는 페이스가 정확하지 않겠지만, 그냥 평소 내 몸이 기억하는 페이스를 믿어보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몇몇 사람들은 얇은 비닐 우비를 걸치고 있다가 출발하면서 벗어서 버려버렸다. 처음에는 이렇게 춥고 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에서 왜 우비를 안 입고 그냥 달리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한 3킬로미터 지점부터 더워서 우비를 벗고 싶어졌는데, 막상 벗고 나니 아무데나 함부로 버릴 수도 없고 이걸 들고 뛰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다행히 그리 오래 가지 않아서 급수대를 만나 버려 달라고 부탁을 드릴 수 있었지만, 아니었다면 기록에 조금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일단 옷이 젖기 시작하면서 축 쳐지며 무거워졌는데, 이 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반바지. 허리에 있는 끈을 꼭 쪼아매지 않고 느슨하게 두고 달리고 있었는데, 옷이 완전히 물에 빠진 것처럼 젖으면서 축 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똥 싼 바지처럼 축 늘어져서 벗겨지려고 해서 엄청 신경이 쓰였다. 허리에 넣어둔 전화기 무게 때문에 더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달리다 잠시 멈춰서 허리끈을 꽉 묶어야 했다. 그리고 젖은 양말과 신발도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가볍디 가벼운 런닝화인데, 이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니.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미끄러운 바닥이었다. 아스팔트나 흙 바닥은 그렇게 아주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타일 형태로 포석을 박아놓은 바닥은 엄청 미끄러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져 크게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발목에 힘을 주고 속도를 줄여 조심해서 뛰어야 했다. 그리고 얼굴로 들이치는 빗물 때문에 안경이 자꾸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으면 시력이 너무 나빠 앞을 보기 어렵고, 안경을 끼면 안경 알에 자꾸 맺히고 흘러 내리는 빗방울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저 앞에서 말했듯이 출발 7분 전에 앱을 시작해놓고 그동안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었기 때문에 앱이 알려주는 페이스는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평소 아무 생각없이 그냥 뛰면 530에서 540 페이스로 뛰는 편이라 이 몸의 감각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확실히 오버페이스였던 것 같다. 선두 그룹이 치고 나갈 때 그걸 그대로 뒤쫓아 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정 간격을 두고 꾸준히 따라가고 있었기에 그 정도가 적정한 페이스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지친 것을 보면 확실히 초반부터 오버페이스였다. 몇 번인가 과호흡이 오는 것을 속도를 줄이며 어떻게든 호흡을 되찾으며 극복해냈다. 지쳐서 속도가 확 쳐졌다가 한참 후에 천천히 뛰면서 비축한 체력으로 다시 속도를 내고 그러다 다시 지쳐서 속도를 줄이기를 반복했다. 점점 시간이 가고 거리가 늘어나면서 페이스가 내 평소 페이스와 비슷해졌다. 530 정도. 


아, 이번 대회 코스 중에 경사가 그리 급하지는 않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이 있었는데, 이게 반환점을 향해 갈 때에도 그렇고 결승선으로 돌아올 때에도 무척 힘들었다. 이 구간에서 내 저질체력을 원망하며, 확실히 대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티가 난다고 느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내리막 길에서 좀 편하게 달렸을텐데, 비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 내리막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무릎과 발목을 다치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종종 걸음으로 속도를 확 줄여서 내려와야 했다.


이번 대회의 가장 신기한 점 하나는 대회 운영진들(코스 여기저기 배치되어 길 안내를 하거나, 차량이나 자전거를 통제를 하는 분들)이 아주 열성적으로 참가자들을 응원했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겨우 네 번 밖에 대회를 나가보지 못했지만, 단 한번도 운영진들이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열심히, 적극적으로 화이팅을 외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전체 코스에서 어쩌다 한 두 명이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지점에 배치된 거의 모든 운영진들이 정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청으로 우리를 응원했다. 게다가 다수의 운영진이 달려오는 우리들의 배번호표에 적힌 이름을 읽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하며 응원했다. 나는 늘 혼자 대회에 참여했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서서 자신들의 지인들(아마도 러닝크루 멤버들 혹은 친구들)을 응원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매번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그들이 외치는 파이팅이 마치 나를 향한 것인 양, 생각하며 나도 힘을 내려고 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정말 나를 향해 응원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여러 명의 운영진이 달려오는 내 배번호표를 읽고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응원해줬다. 이렇게 누가 나를 응원해준 것도 또 처음 겪는 일이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응원들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나도 모르게 없던 힘이 막 솟았다. 특히 한 9킬로미터 지점, 그러니까 이제 1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즈음에 나는 완전히 지쳐 자세도 막 무너지려고 하고 있었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로 간신히 천천히 뛰고 있기는 했지만, 마음은 계속 포기하고 싶다. 정말 포기하고 걷고 싶다. 아니 그냥 누워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체 구간에서 한 세 번 정도 오버 페이스를 했기 때문에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형광색 경광봉을 흔들던 운영진 한 사람에 내 이름을 부르며 힘 내시라고. 이제 거의 다 왔다고. 결승선이 바로 저 앞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보기에도 내가 정말 많이 지쳐 보였나 보다. 그는 나에게 파이팅을 세 번이나 외치고 다시 내 뒤에 따라오던 다른 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 응원을 듣고 갑자기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솟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어디서 났는지 모를 힘이 났다. 나도 모르게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얼굴로 내리치는 비바람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며 미친 것처럼 달렸다. 


아, 이번까지 5번의 10킬로미터 대회를 완주하며 전체 구간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한 5~6킬로미터 구간에서 첫번째 위기가 오고, 7~8킬로미터 구간에서 조금 힘을 내서 만회하다가 다시 지쳐 쳐지기를 여러번 반복한다. 결국 9킬로미터 즈음에 완전히 지쳐서 호흡도 자세도 다 무너져 언제라도 포기할 정도 상황이 되곤 했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초반부터 절반 이상까지, 그러니까 한 7킬로 정도까지 자기 페이스보다 조금 더 천천히 달리며 힘을 비축했다가 거기서부터 조금씩 속도를 올리고 결국 9킬로 지점에서 남은 힘을 다 짜내어 앞서 가던 사람들을 제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나는 늘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고 중반 즈음에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가 후반에 지쳤다가 힘을 짜냈다가 다시 지치기를 반복한다. 이게 다 아직은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더욱 체력을 기를 수 밖에.


나는 이번 대회 결과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기록증을 온라인으로 받아보고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작년 9월 초 첫번째 대회에서는 그날 아주 더웠던 날씨와 대회 전 약 한 달 정도를 발목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달리지 못한 점 등의 이유로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받지는 못했었다.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실제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를 했을 정도로 더워도 너무 더웠었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그리고 작년 11월 말, 이번에는 제법 추웠던 날씨 조건에서도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기록을 올렸다. 올해 봄 세번째 대회에서는 작년 11월의 두번째 대회보다 약 1초 정도 더 줄이는 것이 목표였는데, 최악의 컨디션으로 참가해 결국은 초 단위까지는 같고 그 이하에서는 오히려 조금 더 시간이 늘어난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럼에도 초단위까지는 같은 성적을 올렸으니 결국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세번째 대회로부터 약 2주 후에 참가한 네번째 대회에서 개인 신기록을 올렸다. 주 이삼회씩 꾸준히 달리면서 한번도 올려보지 못한 기록을 세웠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를 못한 평소 실력으로 제법 많은 비를 맞으며 달렸음에도 개인 신기록에서 2초 밖에 늘지 않은, 두번째와 세번째 대회 기록보다는 무려 1초나 줄인 기록으로 들어왔다.


올해 늦여름에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에 동네 사람들 여러명과 함께 신청을 해놓았었는데, 그 대회가 갑자기 취소되어 참가비를 돌려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그 대회를 다시 열게 되었다며 다시 신청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 당시에는 10명도 넘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신청했었는데, 이번에는 신청이 무척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의리로 이번에도 신청을 했다. 그래서 11월 중순에도 또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6번째 대회가 될 것이다.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은 기간동안 대비를 잘 해서 네번째 대회 기록에서 다시 1초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해볼 생각이다. 다시 개인 신기록을 갱신할 수 있도록 죽어라 노력을 해 볼 생각이다.


작년 가을에 나는 정말 열심히 달렸었다. 10킬로미터 정도는 그냥 마음만 먹으면 뛰었고, 12, 14, 15, 17, 18, 19, 20까지 거리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꾸준히 뛰고 또 뛰었었다. 올해는 일 때문에 그 정도로 뛰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휴식 주기를 잘 활용해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훈련을 한 번 해봐야겠다.


아, 이번 대회에서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내 평소 페이스와 호흡에 딱 맞는 적절한 리듬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평소 혼자 달리기를 하면 대체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아예 딴 생각에 빠져 있는 편이다. 평상시의 고민이나 잘 풀리지 않는 일들, 인간관계에 따른 어려움들 등등 생각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멀리 넓게 퍼져 나갔다가 다시 짧은 한 점으로 모이곤 했다. 즉, 달리기 자체에 집중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회에 나가는 경우에는 여러 변수들에 대응하기 위해 음악을 듣지 않았다. 언제 주변 사람들과 부딪힐지 모를 일이었고, 혹 자전거나 차가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까. 귀를 열어두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비가 와서 빗소리와 함께 젖은 도로를 자박자박 밟는 발소리와 함께 내 호흡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렇게 호흡과 발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들리는 것을 듣다보니 나만의 페이스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임의로 속도를 늦추거나 올리면 호흡과 발소리도 그에 맞춰 일정하게 느려지거나 빨라졌다. 이걸 깨닫고 나니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케이던스에 대해 말하곤 했던 것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신기하게 딱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힘이 들지 않던데, 거기서 조금만 속도를 더 올리면 금방 지치고, 그렇게 되면 금방 페이스가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이것에 오를 때에도 떨어질 때에도 호흡과 발걸음이 일정한 리듬을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간식과 메달을 받아 화장실을 다녀오고 짐을 찾았다. 달릴 때에는 비가 내 몸을 식혀주어 시원했지만, 이젠 계속 비를 맞고 있으니 급격하게 몸이 식어 너무 추웠다. 얼른 옷을 갈아입으려 남자 탈의실이라 적혀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좁고 작은 천막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게다가 가방과 갈아입을 옷을 놓아둘 테이블은 중간에 고작 하나 밖에 없었다. 아! 정말! 이번까지 다섯 번의 대회 중에 여기 탈의실이 역대 최악이었다. 중간에 하나 밖에 없는 테이블 위엔 도저히 더 가방이나 옷을 올릴 수가 없었고, 사람들은 젖은 땅 바닥에 비닐을 깔아놓고 아슬아슬하게 옷을 벗고 또 입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을 공간을 찾을 수 없어서 한 동안 멍하니 기다렸다. 누군가 옷을 다 갈아입고 나가면 공간이 생기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나가는 속도보다 다른 누군가가 더 들어오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 근처 바닥에 비닐을 깔고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 맨 엉덩이가 보이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위치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젖은 옷을 짜서 여벌 비닐에 넣을 수도 없었고, 옷을 벗은 후에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젖은 몸위로 얼른 새 옷을 입어야 했다. 당연히 새 옷은 금방 다시 젖어버렸다. 어차피 바지는 지나가는 사람이 툭 치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져서 절반 이상 젖어 있었다. 내가 옷을 거의 다 갈아입을 즈음에 들어온 아저씨 두 사람은 크게 웃으며 막 떠들어댔는데, 들어보니 실수로 여자 탈의실이란 글씨를 보지 못하고 그 천막을 열고 고개를 넣었던가 보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상해서 밖에 나와보니 여자 탈의실 천막이었다고. 그래서 남자 탈의실 천막을 찾아 들어왔는데, 여기는 발 디딜 틈도, 가방 하나 올려놓을 틈도 없는 상황이니. 크게 떠들어 댈만도 하다. 사실 대회 시작 전에 대기하면서도, 달리기를 하면서도 여성 참가자들을 많이 보지 못했었다. 여성 참가자들이 너무 적어서 여자 탈의실은 비어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탈의실이라는 천막이 너무 열악해서 아예 아무도 옷을 갈아입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데 어쨌거나 탈의실이란 용도로 설치한 천막인데, 여자 탈의실을 남성들이 쉽게 젖히고 들어갈 수 있도록 관리한 것도 참 어이없는 짓이긴 하다. 만에 하나 누군가 안에 있었다면, 옷을 입었던 벗었던 상관없이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은 성범죄자가 되는 상황이다. 아무도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나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간식으로 받은 쥬스와 빵을 허겁지겁 먹었다. 간식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좀 들었다. 나는 온라인 기록증을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아졌고, 정말 망한 줄 알았던 대회 결과가 이렇게 마음에 들어서 얼른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친한 사람들 몇 명에게 메달과 기록증 이미지를 보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대회에 참가해 달렸다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적으려고 했다. 아,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딱 짧게 줄여지지가 않았다. 남들은 뭐라고 하나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우중런'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인스타그램과 스레드를 뒤져보니 역시 우중런과 우중러닝 이란 단어들이 나왔다. 이 정체 불명, 국적 불명의 단어가 좀 웃겼다. 우중은 한자고 런은 영어다. 차라리 영어로 running in the rain 이라고 하던가 아님 한자로 우중...... 음 달리기는 중국어로 跑步 인데, 이건 중국식 표현이고, 저 앞의 우중은 우리말식 한자 표현인데. 음 그럼 아예 중국어로 빗 속 달리기, running in the rain 을 찾아봐야겠네. 아, 그런데 오랫동안 비를 맞아서 몸이 추워서 야외에서 그걸 찾고 있기는 힘들었다. 일단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얼른 자랑은 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비를 맞으며 달렸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려는데, 이 말을 반복해서 쓰기엔 너무 길었다. 결국 나도 우중러닝이란 표현을 한 번 썼다. 음, 뭐 뜻이 통하기는 하니까.


나중에 이 표현으로 여러 나라 말로 찾아봤다. 일단 영어는 앞서 언급한 running in the rain 이 맞았다. 이 표현은 그 유명한 노래 singing in the rain 덕분에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다음 중국어 표현을 알아보았다. ​在雨中跑步 (zài yǔzhōng pǎobù) 였다. 내 예상대로 跑步가 들어가는 것은 맞았고, 그 앞에 두 글자도 우리식으로 읽으면 우중이 맞다. 맨 앞에 무엇무엇을 하고 있다는 뜻인 ​在를 빼면 내 예상이 맞았다. 그럼 일본어로는 뭘까? 雨の中を走る (あめのなかを はしる) 였다. 오! 이것도 내 예상이 그대로 맞았다. 한자 우중은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럼 우리말로는? 내 생각에 우리말이 제일 어색하고 길었다. 빗 속 달리기? 비 맞으며 달리기? 비를 뚫고 달리기? 뭐가 제일 간결하고 적절한지 모르겠다. 구글 재미나이를 이용해 그 외에도 여러 나라 언어로 찾아봤는데, 재미있었다.


한가위


어제(일요일) 밤 11시 반쯤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12시가 넘었으니 오늘은 월요일 추석이다. 아까 11시쯤 올려다 본 하늘은 흐려서 달을 찾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얼른 이 글을 마무리하고 한번 더 달을 찾아봐야겠다. 이 글을 읽으시는 서재 이웃님들 모두 평등하고 평안한 한가위 맞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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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10-06 0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달린 경험,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제가 군인이었을 때 처음으로 행군했던 날에 비가 내렸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날 무리하게 행군하다가 발을 다쳤고, 봉와직염까지 생겨서 서러운 이등병 생활을 했어요.. ^^;;

감은빛 2025-10-10 14:2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이 댓글 보니 저도 군대에서 비나 눈 맞으며 행군 했던 기억들이 나네요. 조금씩 오는 비를 맞았던 건 셀 수도 없이 많았고, 폭우나 폭설을 맞으며 걸었던 적도 있었어요. 제일 기억 나는 건 폭우가 내리는 도중에 밥차가 와서 식판에 밥을 받아서 길바닥에 앉아서 먹었던 날이었어요. 길바닥에 당연히 비를 피할 곳은 없었고, 폭우가 식판 위로 떨어져 밥과 국과 반찬들이 모두 비에 말아놓은 상태가 되었고, 그 비에 말아놓은 밥과 국을 퍼먹었던 기억이예요. 이걸 안 먹으면 다시 걸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걸 퍼먹고 있었는데 참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어요.

hnine 2025-10-07 0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산소 다녀오는 길에, 비 오는 중에 달리시는 분을 보았어요.
외국에선 흔히 보던 일인데 이미 routine 이 된 일에 대해서는 비도 눈도 문제가 되지 않는거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라는 말의 참뜻을 그때 알았어요.
비가 오는데 달리려면 다른 것보다도 우선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까봐, 저는 그게 제일 먼저 걱정이 되는데 괜찮으시던가요?
‘우중런’이란 말이 짧아서 입에 금방 들어오긴 하는데, 더 멋진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감은빛 2025-10-10 14:30   좋아요 0 | URL
요즘 비가 와도 맞으며 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더라구요.
제 주위에도 몇 분 계시더라구요.
저는 이번 대회 전까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만,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비가 온다고 안 달리고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벼운 비 맞으며 달리고 왔어요. ^^

적절한 표현이 아쉽네요. 그죠?

잉크냄새 2025-10-06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를 맞으며 운동을 한 기억은 고등학교 체육 시간 때의 축구 시합입니다. 오래된 기억인데도 그때 느낀 해방감과 자유로움은 평생 잊히지 않더군요.
저도 며칠 전 싸이클 반환점부터 약 15킬로의 거리를 비를 맞으며 달려왔는데 가슴이 그렇게 뻥 뚫리고 환희에 휩싸인 건 참 오랜만의 일입니다.
가끔은 비를 맞아야 해요. ㅎㅎ

감은빛 2025-10-10 14:33   좋아요 0 | URL
저 위에 시루스님 댓글 덕에 군대에서 비 맞으며 걸었던 수많은 행군들이 생각났는데, 잉크냄새님 댓글 덕분에 저도 비 맞으며 축구 했던 기억들이 생각났어요. ㅎㅎㅎㅎ

싸이클 반환점에서 15킬로미터라면 30을 달리신 거군요. 와우!
비 맞으며 달리는 건 오히려 시원하고 좋더라구요.
다만 신발이 젖는 건 좀 문제네요.
오늘도 비 맞으며 달리고 왔어요.

페크pek0501 2025-10-09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석 다음날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서울대공원에 가서 코끼리 열차를 탔어요. 비가 계속 내려서 우산을 쓰고 걸었는데 힘들더라고요. 그 넓은 곳에서 빗속을 걷는 것 자체가 피로한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빗속에서 달리기를 하기란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이불 속에 있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나갔다는 것,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비 맞으며 달렸다는 것, 참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좋은 추억이 될 거예요. 감은빛 님의 달리기를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5-10-10 14:37   좋아요 0 | URL
성질 급한 놈이라 달리기는 늘 좋아했어요.
작년 여름 이전에는 1~2킬로미터 정도씩 짧게 끊어서 달리고 좀 쉬다가 또 달리고
이런 식으로 달렸는데, 작년 여름부터 장거리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1년 하고 두어달 정도 지났어요.
그 전까지는 사람이 3킬로미터 이상 달려야 할 일이 뭐가 있어?
라고 생각하며 굳이 장거리 달리기를 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런데 요즘은 뒤늦게라도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좋은 걸 왜 이렇게 늦게 했나 싶어요.
 

0.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리 썩 좋지도 않음


 처음에 어쩌다 이 영화를 선택하여 보았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저녁을 차린 후 뭔가 보면서 먹으려고 한참 OTT에서 영화를 찾아보다가, 어쩌다 딱 걸렸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고, 약간 추리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괜찮았다. 전체적으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중요한 포인트들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굳이 왜 저런 전개를 선택했나 하는 지점들도 있고, 등장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들도 있고 등등등 이래저래 단점들이 꽤 많기는 하다. 결론은 사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뻔한 지점들과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괜찮게 봤다. 아마 큰 기대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1. 등장인물


 함께 자살하기 위해 폐병원으로 모이는 아이들. 뒷문 비번을 누르고 들어와서 입구에서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번호가 적힌 팻말을 순서대로 가져오는 것이 규칙. 그래서 들어온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게 되는데, 나중에 뒤에서 밝혀지지만, 실제로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 중 일부가 뒤쪽 팻말을 갖게 되면서 그 사이에 몇몇 일들이 있었던 것을 추리를 통해 풀어내게 된다. 일단은 팻말에 적인 번호 순으로 등장인물을 알아보자.


제로: 팻말이 없는 사람.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1번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다수의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보이는 상태였다. 가장 먼저(사실은 운영자가 이 방의 잠긴 문을 먼저 열었지만, 운영자가 뭔가 확인하기 위해 나간 사이에, 1번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음) 자살(영화 속 표현은 안락사)을 실행할 방(아마도 회의실로 보이는 넓은 방의 가운데 큰 탁자가 있고, 탁자를 둘러싸고 12개의 침대가 놓여있음)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번호가 없어서 편의상 제로라고 부르기로 함


1번: 사토시. 배우는 타카스기 마히로. 안경을 낀 샤프한 이미지의 남학생. 흰 교복 와이셔츠를 입었음. 이 모임의 주동자이자, 함께 안락사 할 청소년들을 모으는 사이트의 운영자. 영화 후반의 언급을 보면 이미 여러차례 이런 행사를 가졌음. 그러니까 몇 차례 안락사를 위한 모임이 있었지만, 모두 도중에 안락사를 포기하고 살아서 헤어졌다는 뜻. 폐병원 뒷문 비밀번호와 금고 번호를 포함 이 모임 전체 규칙을 알려주고, 모든 것을 준비한 사람. 사실 이 폐병원은 아버지가 운영했던 병원. 아버지도 자살.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었다고. 형이 의대에 떨어져서 형과 엄마가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 각각 다른 친척에게 맡겨졌다고 함. 그래서 함께 자살할 청소년들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함.


2번: 켄이치. 배우는 후치노 유토. 검은 재킷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 왕따였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고 함. 왕따를 주도하고 시작한 사람이 담임 선생이었다고 함. 부모님께 전학을 요청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고. 제로의 존재를 이유로 곧바로 안락사를 실행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냈음. 이 모임의 규칙 상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실행을 보류하고 전원이 합의할 때까지 대화를 나눠야 함. 만약 안락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고, 남음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면 안락사를 실행할 수 있음. 맨 처음 찬반을 물었을 때 2번이 반대했기 때문에 제로의 존재에 대해 논의하고 추리하기 시작함.


3번: 미츠에. 배우는 후루카와 코토네. 짙은 화장에 밝은 분홍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여학생. 보라색 꽃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전체적으로 화려한 옷차림(옷에도 보라색 꽃들이 달려있음). 고쓰로리 스타일이라고 부른다고 함. 비슷한 분위기로 분장한 연예인(아마도 락밴드의 보컬로 추정되는)이 먼저 자살했기 때문에 따라서 죽으려고 함. 먼저 죽은 연예인이 좋아했던 담배를 따라서 피우지만, 기침만 할 뿐 금방 꺼버림.


4번: 료코. 배우는 하시모토 칸나. 배우가 일본에서 천년돌(천년에 한번 나올만한 아이돌?)이라 불리는 미모라서 그런지, 아이돌 역을 맡았음. 처음에는 비니 모자와 흰 마스크로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었음. 나중에 모자와 마스크를 벗자 모두가 유명한 하이틴 스타을 알아보고 놀랐음. 건물 밖 벤치에서 여러 개비의 박하향 담배를 피웠고, 흡연실에서도 담배를 피웠음. 3번 미츠에는 료코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 계속 안락사 실행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음. 료코가 자살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함.


5번: 신지로. 배우는 아라타 맛켄유. 검은 비니 모자에 검은 테 안경을 쓴 남학생. 검푸른색 재킷의 교복을 입었다가 나중에는 재킷을 벗음. 아마도 불치병으로 추정되는 큰 병을 어려서부터 앓았고, 계속 병실에서 지냈다고 함. 한 달 후 혹은 일 년 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사는 것보다는 죽음을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기 위해 참가함. 나중에 가발을 썼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의 민머리를 보여줌. 어려서부터 병실에서 추리소설을 주로 읽었고, 부모가 경찰이라고. 탐정 역할의 캐릭터.


6번: 메이코. 배우는 쿠로시마 유이나.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 머리끈과 핀으로 고정한 여학생. 자주 짜증을 내는 편.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임. 본인이 자살하면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보험으로 빚을 갚게 하려고 참여함. 전형적인 답답이 캐릭터.


7번: 안리. 배우는 스기사키 하나. 긴 생머리에 귀가 약간 뾰족해 보이는 여학생. 교복은 아니고 상복 느낌의 약간 독특한 검은 옷을 입고 있음.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태도로 전체 분위기를 휘어 잡는 캐릭터. 7번이라서 길고 큰 테이블에서 1번 맞은 편에 혼자 앉았기 때문에 더욱 분위기를 압도하는 느낌. 그 자리에 배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7번으로 설정했음을 알 수 있음.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에 사회적 의미를 담으려고 하며, 함께한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유서를 적어놓고 왔다고 밝힘. 나중에 큰 화상을 입었다고 고백하며 다리의 흉터를 보여줌. 자신이 4살일 때, 태어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남동생이 화재로 사망함. 당시 엄마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전혀 자식들을 보살피지 않았음. 그날도 어쩌다 들어왔다가 담배를 피우고 나가면서 불이 난 것.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어른들에게 항의하는 의미로 자살을 선택.


8번: 타카히로. 배우는 하기와라 리쿠. 하늘색 셔츠에 남색 조끼를 입은(아마도 교복?) 남학생. 말을 더듬는 증상으로 괴로워 함. 어려서부터 엄마가 어린이에게 주어서는 안 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 많은 약을 먹였기 때문으로 추정함. 자신이 온갖 종류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먹어왔기 때문에 제로의 주변에 버려진 수면제로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줌. 말 더듬는 현상이 평생 낫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자살을 선택했다고 함.


9번: 노부오.배우는 키타무라 타쿠미. 검은테 안경을 쓰고 흰 셔츠를 입은 남학생. 아마도 처음엔 입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이지 색 재킷을 손에 들고 다님. 1년 전에 자신을 왕따 시킨 주동자를 계단에서 밀어서 죽였음. 그러나 단순 사고로 처리되었고, 주동자가 없어진 덕분에 왕따에서도 벗어났음. 하지만 본인은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했음. 영화 중반에 가장 먼저 자살을 포기함. 자살하기 전에 먼저 경찰에 자수하기 위해서라고 밝힘.


10번: 세이고. 배우는 반도 료타. 이런 영화에 꼭 한 명은 등장해야 할 양아치 캐릭터. 노랑 머리에 얼굴에 옅은 흉터가 있는 남학생. 분홍색 티셔츠 위에 남색 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그지 않은 차림. 목걸이를 두 개나 걸고 있으며 귀걸이도 하고 있음. 흡연자로서 박하향 담배를 피운 4번 료코를 확인함. '바바'라고 부르는(아마도 계모? 할머니?)이가 자신의 생명보험을 들어놓았는데, 1년 안에 자살을 해야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함. 1년이 지나면 자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거라고 함. 


11번: 마이. 배우는 요시카와 아이. 금발의 여학생. 흰 와이셔츠에 남색 리본을 맨 교복 차림. 흰 곰인형을 안고 다님. 소위 말하는 갸루 소녀. 비교적 밝은 성격이며 활발하게 다른 아이들과 소통하는 편.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헤르페스 때문.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평생 낫지 않기 때문. 온라인으로 만난 어떤 아저씨 때문에 헤르페스에 걸렸다고 함.


12번: 유키. 배우는 타케우치 아이사. 붉은 색 계열의 체크무니 셔츠를 입고 안에 흰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 대체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고 있음.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이 좋지 않은 상태. 사실 제로는 유키의 오빠이며, 둘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오빠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음. 차라리 둘이 함께 죽으려고 오빠를 데려왔다가 정체 모를 한 사람이 먼저 죽어있는 것으로 오해하여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음. 자상한 오빠가 자전거를 태워줬는데, 장난으로 오빠가 목에 건 목도리를 잡아당기다가 차에 치여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오빠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빠져있음.



2. 실제 도착 순서


가장 먼저 도착한 아이는 7번 안리였음. 그는 청소년들의 단체 자살로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일찍 와서 옥상에 자리를 잡고 이후 도착하는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함.


그 다음으로 도착한 아이는 9번 노부오. 그도 도착하자마자 옥상으로 와서 죽기 전에 하늘을 보려고 했으나, 옥상에서 안리와 만나 대화를 나눔. 그때 세번째로 도착한 아이가 12번 유키였음. 유키는 자신의 오빠인 제로를 휠체어 태워 데리고 왔음. 


여기서 첫번째 문제점.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휠체어에 앉혀 데리고 올 수 있나? 일단 식물인간이라면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고, 호흡기를 떼는 순간 사망해야 함. 그리고 식물인간이 휠체어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바닥으로 쓰러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앉아 있으려면 의식이 있어야 함. 아니면 휠체어에 묶어 둬야 하는데, 영화엔 그런 묘사는 없음.


폐병원의 뒷문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좁아서 휠체어는 들어오지 못하고, 유키는 노부오와 안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모습을 감춰버림. 이때부터 약간 코메디 같은 좀 이상하고 억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함.


그 다음에 도착한 아이는 4번 료코. 하이틴 스타인 그는 일찍 나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히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나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음.


아, 이 다음 순서는 잘 기억이 안 나네. 일단 제로를 옮기고 숨기고 어쩌고 하는 상황들이 대체로 좀 억지스럽고 별로 개연성이 없음. 그냥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추리물 비슷한 것을 억지로 짜내는 느낌. 하지만 맨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모든 것을 다 감안하고 볼 만 했음.


3. 결론


사실 후반부에 신지로의 추리로 모든 사실이 다 밝혀지고, 갑자기 분위기가 자살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좀 많이 억지스러운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았음. 특히 안리가 강경하게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다가 별로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냥 받아들이는 모습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음.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 올해 갑자기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음. 아마 안리 역의 배우와 마이 역의 배우가 출연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이 영화에 이 두 사람이 나왔었네 하고 놀라며, 이 영화의 내용이 거의 기억이 안 나서(워낙 별게 없어서 기억이 안 난 것이었겠지만) 다시 보았음. 두 번째 보면서 이 영화에 대해 기록을 남겨둬야 나중에 또 기억이 안 난다고 세번째로 보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일단 너무 전형적이기도 하고, 크게 의미 없이 등장인물을 많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나는 그래도 이렇게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벌어지는 상황을 좋아하는 편이라 등장인물이 많은 것은 좋았다. 후반의 너무 급한 마무리와 크게 의미 없는 추리 부분, 전체적인 개연성을 조금 더 보완했더라면 범작에 가까운 수준이 될 수 있지도 않았을까 싶다.


4. 원작


찾아보니 놀랍게도 원작 소설이 있었다. 소설을 쓴 사람은 우부카타 도우 라고 나온다. 아마도 필명인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재일 한국인 3세라고 나온다. SF 작가라고 나오고 알라딘에도 몇 개의 시리즈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와 제목이 같다는 원작은 알라딘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글에 검색해도 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래저래 검색어를 바꿔가며 찾아보니 어떤 블로그에 일본어 원서를 읽은 평이 나온다. 그 블로그에는 아주 혹평을 적어 놓았더라. 별 10개 만점 기준으로 달랑 별 1개를 줬다. 원작이 그래서 영화도 이 모양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뭐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았으니 단정 지을 수 없겠지.


일단 이 우부카타 도우라는 사람이 SF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언젠가 그의 SF 소설을 읽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너무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알라딘에 엄청 오랜만에 들어왔다. 가끔 새벽이나 아침에 폰으로 북플을 열어보기는 했지만, 글을 쓴 여유는 없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다. 차분히 앉아 자판을 두드릴 여유가 생기면 쓰려고 남겨 놓은 메모가 엄청 쌓여있다.


일단 내일 아침에 달리기 대회에 참여한 후에 모레쯤 그 이야기를 제일 먼저 쓰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덧붙여 몇 가지 이야기 꺼리를 하나의 글로 묶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9월 초에 첫 대회에 나간 이후 이번이 5번째 대회다. 지금까지는 참가비도 내고 일부러 대회에 나가는 만큼 어떻게든 기록 갱신을 위해 노력했었고, 그래서 가능하면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하곤 했었다. 이번에는 정말 너무 바쁘고 피곤한 날들이 이어져서 제대로 대회 준비를 못했다. 정말 어쩌다가 시간이 나서 어제 약 6킬로미터 정도를 달린 것이 유일한 연습이었다. 과연 내일 잘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평소 실력을 한 번 테스트 해 본다는 의미로 뛰어야겠지. 다만, 내일 아침에 비가 올 거라는, 그것도 제법 올 거라는 주체측의 연락을 받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비를 맞으며 제대로 달려 본 적이 없어서 첫 경험이 될거라는 기대와 비 때문에 평소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 못하고 폭싹 망하는 결말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뭐, 지금와서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저 챙길 수 있는 준비물만 잘 챙기는 것으로. 우비와 여벌 옷과 수건 등 준비물을 잘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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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9-27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완주하세요!

감은빛 2025-10-06 02: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덕분에 무사히 완주했어요. 기록도 좋았어요.

카스피 2025-09-28 0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일종의 클로즈드 써클 추리소설을 영화한 작품이네요.일본에는 이런 종류의 추리소설이 많은 편인데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국내에도 많이 번역되어 있지요.
한가지 특이한 점은 우리의 경우 청소년들이 죽는 내용의 작품이 그닥 없는데 일본은 학교 폭력이나 이지메등이 만연해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지 중고생들이 등장해서 살육파티를 벌이는 작품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5-10-06 02:44   좋아요 1 | URL
요런 이야기를 클로즈드 써클이라고 부르는군요.
그렇네요. 일본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좀 많은 것 같아요.
우리도 이제는 점점 청소년들이 죽고 죽이는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말씀처럼 그랬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잉크냄새 2025-10-06 21:59   좋아요 0 | URL
페이퍼를 읽으면서 배틀로얄이 먼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닌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