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헌재가 선고를 계속 미루고 있다. 설마 이번 주를 넘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넘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표현해야 정확하겠다. 결국 이렇게 금요일이 지나고 또 주말을 맞이한다. 오늘 평소처럼 입고 나왔는데, 유독 바람이 강해서 추웠다. 하필 외부에서 지내야 할 시간이 많아서 더 추웠다. 찬 바람이 온 몸을 강타할 때는 몸이 덜덜 떨렸다. 아직 봄이 온 것이 아니구나. 몸도 마음도 너무 춥다.


3월은 참 바쁜 달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우리 동네 활동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활동가들은 원래 다들 바쁜데, 누군가 여러가지 이유로 일을 쉬는 상황이 발생하면, 유독 그 사람에 더 많은 일이 몰린다. 그래도 네가 출근을 하는 것은 아니니 더 여유가 있지 않냐 하는 얘기인데, 그 모임에서만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몸 담고 있는 여러 모임에서 다들 똑같은 반응이다 보니 결국은 훨씬 더 많은 일들을 떠안게 된다는 이야기. 그렇게 일이 많은데도 정작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은 없다는 슬픈 이야기.


몸담고 활동하는 공간들이 많다 보니, 그리고 그 조직들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다 보니 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이 바빠진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정말 하루 하루 간신히 해야 할 일들을 억지로 쳐내고 있다는 느낌으로 버티고 있다. 원래라면 며칠 전에 마감을 했어야 할 일들을 며칠이 밀리고 또 밀려서 정말 이젠 더 이상 밀리면 큰일이 날 정도 시점에 간신히 마감을 치고, 그제서야 다음 일에 착수하는데, 그 일도 역시 이미 마감이 한참 지난 일이다. 그걸 마감을 간신히 치고 이제 또 다른 마감이 지난 일을 시작하기를 무한 반복.


이 와중에 돈은 조금씩이라도 벌어야 해서 가끔 야간에 물류 창고에 가서 밤새 일을 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잠들고, 한 서너시간 겨우 자고 깨서 다시 기어나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 아니 윤석열 탄핵이 얼른 확정이 되고 내란수괴로 다시 구속이 되고, 명태균 수사가 빠르게 추진이 되어서 홍준표, 오세훈 까지 죄를 파헤치고, 김건희도 다시 정상적으로 수사하는 등 세상이 상식적인 수준으로 움직여 준다면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보람이라도 느낄 것인데, 세상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죽어라 일을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제 물류창고에서 밤새도록 일을 하는데, 전날도 일찍부터 밖에서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오후에 창고로 출근한 거라서, 즉,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출근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새벽 두 시 무렵에는 너무 졸려서 걸어 다니면서 졸 뻔했다. 평소 창고에 출근하는 날엔 오전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오후에 적어도 두 세시간은 낮잠을 자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늦게 셔틀버스를 타는데, 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이 일이 몰려서, 일을 하다가 셔틀버스 시간에 간신히 맞췄다. 그것도 혹시 셔틀버스를 놓치면 출근을 못 하게 되니 정말 죽어라고 뛰어서 간신히 셔틀버스를 탔었다. 오늘 새벽에 집에 돌아와 너무 피곤해서 겨우 몸을 씻고 누웠는데, 피곤하지만 또 배는 고파서 라면을 하나 먹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이런 날엔 좀 쉬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일정이 빡빡하게 있었다. 한 세시간 자고 일어나서 씻고 나갔고, 추운 날씨에 계속 외부 일정이라 덜덜 떨면서 너무 힘들었다. 저녁에는 또 감사를 맡고 있는 총회가 있었다. 감사와 서기를 동시에 맡아서 감사 보고서 낭독을 마친 후에는 기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 오전에 또 발표를 맡은 일정이 있어서 일찍 집에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보낼 수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붙들려 또 한참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다들 헤어지고 나서 내일 발표할 자료를 보면서 리허설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자료를 너무 급하게 만들다 보니 좀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다. 급하게 다시 발표 자료를 보완하고 보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오늘 힘들었던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알라딘 서재에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얼른 집에 돌아가서 자야겠다. 내일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발표 준비를 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꼴찌의 반란


지난 번에 여자농구 플레이오프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했었고, 이후 아산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 2차전을 원정팀 부산 비앤케이가 모두 이겼을 때, 이 이야기도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계속 다른 이야기만 하느라 쓰지 못했다. 그 사이에 두 팀은 부산에서 3차전을 벌였고, 결과는 비앤케이가 3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와! 이번 우승으로 박정은 감독과 비앤케이는 재미있는 기록을 몇 가지 남겼다. 일단 비앤케이는 지난 시즌 꼴찌 팀이었다. 그 이전 시즌에서는 이번과 똑같이 우리은행과 함께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었지만, 그때는 우리은행이 3연승하며 우승을 차지했었다. 이번과 정확히 반대다. 언론 기사를 읽어보니 지난 시즌 꼴찌팀이 다음 시즌 우승을 차지한 사례는 여자농구 역사상 3번째라고 한다. 그 중 첫번째 사례는 지금 상대팀 감독인 위성우 감독이 우리은행으로 오자마자 세웠다고 한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박정은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고(지지난시즌에) 챔피언 결정전에서 첫 승을 거뒀으며(이번 시즌 1차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여자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로서 우승을 경험하고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스포츠 뉴스에서는 박정은 감독이 이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인터뷰한 과거 영상을 보여줬는데, 거기서 부산의 딸인 박정은이 부산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더라. 그리고 3전 전승으로 챔피언으로 올라 우승 약속을 지켰다. 다음에는 정규시즌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동시에 해서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또 훌륭히 지켜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너무 좋았던 것은 안혜지 선수의 활약이었다. 지난 번에 똑같이 5차전까지 치루며 최선을 다한 4팀의 선수들을 이야기 하면서 가장 눈길이 가는 선수로 케이비 스타즈의 허예은 선수라고 했고, 그와 함께 안혜지 선수도 언급했었다. 이 두 사람은 단신으로 포인트가드를 맡고 있다. 포인트가드로서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과 멋진 패스를 잘 뿌리는 것도 멋지지만, 이 두사람은 단신임에도 멋진 돌파와 골밑슛을 보여주기도 하고, 위기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3점슛을 터뜨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허예은이 안혜지 보다는 조금 더 성적도 나았고, 더 눈에 띄었지만, 이번 챔피언결정전 2차전과 3차전의 안혜지 선수는 정말 너무 멋졌다. 결국 안헤지 선수는 이번에 엠브이피로 선정되었다. 박혜진 선수도 잘 했고, 김소니아 선수의 활약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키 선수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엠브이피는 안혜지를 뽑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복기해보면 이번 3경기는 하나 하나가 모두 명경기였다. 비록 3연패 끝에 승부에서 지고 말았지만, 우리은행도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김단비 선수의 투혼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졌다. 우리은행에서 김단비 외에 다른 선수들이 정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활약했다면 우리은행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승했을 것이다. 나는 지난 시즌까지는 여자농구를 거의 보지 않아서 몰랐지만, 이번 시즌 비앤케이 팀의 주장으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혜진 선수는 우리은행에서 긴 시간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고 한다. 이번에 친정팀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특히 마지막 3차전의 4쿼터 약 18초 가량을 남기고 터진 박혜진의 3점슛 덕분에 역전패를 당한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반대로 비앤케이는 그런 박혜진을 데려온 선택이 탁월한 것이겠고. 이번 시즌에서 김단비 못지않은 활약을 펼친 김소니아 선수도 이번 시즌에 새로 옮겨온 선수라고 했다. 정말 비앤케이가 지난 시즌 꼴찌를 한 이후로 아주 독하게 선수들을 보강하고 준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자, 이제 경기를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우리은행의 홈인 아산에서 펼쳐진 1차전으로 가보자. 1쿼터 중반부터 2쿼터 초반까지 우리은행은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비앤케이의 득점을 5점으로 묶어놓고 계속 점수를 달아났다. 김단비의 활약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상하게 비앤케이는 터지지 않았다. 1쿼터는 18대 5로 우리은행이 크게 이겼다. 2쿼터 초반에도 우리은행이 1골을 더 넣어 20대 5가 되었다. 계속 안 풀리던 비앤케이가 드디어 실마리를 풀었다. 김소니아의 돌파로 2점을 올리고 이후 박혜진이 활약했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우리은행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심성영이 3점 슛을 넣었고, 김단비는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안헤지가 너무나도 멋진 돌파로 골을 넣는 모습을 보여줬다. 2쿼터가 끝날 때 점수는 우리은행이 31대 23으로 앞서고 있었다. 3쿼터에서 안혜지의 3점슛이 터졌고, 사키의 3점이 터지면서 비앤케이는 추격의 박차를 가했다. 여기서부터 김단비 선수의 체력이 딸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사실 양 팀 모두 플레이오프에서 첫 두 경기를 잡아서 쉽게 올라올 줄 알았는데, 뒤이어 2연패를 당했고, 결국 5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여 체력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 팀이 모두 5차전까지 어렵게 왔지만, 비앤케이는 김소니아, 박혜진 외에도 골고루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우리은행은 김단비 원맨 팀이라 불릴만 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혼자 이끈 슈퍼스타 김단비였지만, 체력 문제는 방법이 없었다. 4쿼터는 우리은행이 42대 37로 많이 따라잡힌 상태로 시작했다. 비앤케이는 무섭게 몰아쳤다. 4쿼터 중반에는 드디어 44대 44로 동점을 이뤘다. 와! 결국 이걸 따라잡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부산 출신이라 비앤케이에 조금 더 마음이 가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멋진 김단비 선수가 있는 우리은행도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플레이오프를 펼친 4개 팀 중에 삼성생명을 제외하고 3팀을 고루 좋아했다. 특히 허예은 선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케이비 스타즈도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플레이오프 당시에 우리은행과 케이비를 비슷한 비중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면서 강이슬과 허예은이 있고 다른 선수들의 기량도 고른 케이비가 김단비 원맨 팀인 우리은행을 못 이기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의아했고,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정규시즌에서도 한참 물이 올라서 연승을 이어가던 비앤케이가 김단비의 우리은행을 만나 연승 흐름이 끊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와! 라인업만 보면 절대 비앤케이가 질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걸 지는구나. 김단비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렇게 4쿼터 중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비앤케이는 우리은행을 따라잡았고, 결국 역전했다. 만약 플레이오프에서 케이비가 우리은행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면 1차전은 우리은행이 이겼을 거라고 장담한다. 결국 최종 점수 53대 47로 비앤케이가 승리했다.   


비앤케이가 이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 명확하다. 김소니아(11점 14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 박혜진(14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안혜지(9점 2리바운드 6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9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전체적으로는 김소니아가 압도적으로 잘 했지만, 본격적으로 추격을 펼친 3쿼터만 보면 안혜지 선수가 7득점을 올리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반면 우리은행은 김단비(20점 18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 2블록슛)가 홀로 괴력을 뿜어냈으나 뒷심이 부족했다.


이 짜릿한 역전승을 보고 어찌 두 팀의 선수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단기전 시리즈에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1차전 승리팀의 우승 확률이 77퍼센트인가 그렇다고 중계할 때도 여러번 강조하더라. 비앤케이는 원정팀으로서 적진인 아산에서 정말 너무나도 중요한 시리즈 첫 경기를 잡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은 양팀 모두 무조건 잡아야만 하는 경기였다. 홈에서의 1차전 패배로 인한 부담이 너무 컸던 걸까? 1쿼터에서 김단비가 파울을 3개나 저지르는 이변이 벌어졌다. 농구는 한 선수가 반칙을 5번 저지르면 퇴장 시킨다. 그런데 팀의 기둥인 김단비 선수가 1쿼터에서 무려 3개의 파울을 저질렀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이 장면에서 2차전 역시 비앤케이가 가져가겠구나 느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에는 우리은행의 다른 선수들이 분발하기 시작했다. 김예진 선수와 박혜미 선수가 연거푸 3점슛을 넣으며 언제까지 우리은행이 김단비 원맨팀은 아니라고 알려줬다. 1쿼터를 마쳤을 때 점수는 오히려 12대 15로 비앤케이가 끌려가고 있었다. 2쿼터에 들어서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안혜지가 3점슛 1개를 포함해 7점을 넣으며 멋진 활약을 보여줬고, 비앤케이 이소희 선수도 1쿼터에 이어 2쿼터에도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아주 멋진 돌파와 골밑슛을 성공시켜 아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비앤케이 변소정 선수도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역시 우리은행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홈에서 최소 1승 1패를 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두 팀은 누구 하나 저만치 앞서 나가지 못하고 업치락 뒤치락 했다. 2쿼터 마지막 점수는 30대 29로 비앤케이가 간신히 리드를 지켰다. 후반으로 들어서며 비앤케이는 근소하게 리드를 지켜갔다. 이번에는 비앤케이 사키 선수가 7점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우리은행은 나츠키와 이명관 선수가 활약하며 악착같이 비앤케이를 따라갔다. 마지막 4쿼터 비앤케이는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김단비가 다시 살아나며 추격을 계속했다. 두 팀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누가 이 승부를 가져갈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비앤케이 박혜진이 3쿼터에서 발목을 다쳐 어쩌면 우리은행이 가져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안혜지가 4쿼터에 또 3점슛과 멋진 돌파를 보여주며 큰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사키가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그림같은 블락슛을 보여주며 이 승부 비앤케이가 가져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역시 명승부는 예측을 불허한다. 경기 종료 약 3분을 남겨두고 김단비가 3점을 넣어 49대 47 2점차를 만들었다. 이제 1골이면 우리은행과 비앤케이는 다시 동점이 된다. 그리고 약 2분을 남겨둔 시점에서 이번에는 김소니아가 3점을 넣었다. 양보할 수 없는 양 팀의 에이스로서 김단비가 3점을 넣으니 이번에는 김소니아가 3점으로 답한 것이다. 점수는 다시 5점차. 양 팀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결국 경기 종료 43초를 남겨두고 이소희가 3점을 추가하며 우리은행의 추격의지를 꺾어버렸다. 최종 점수는 55대 49로 비앤케이가 승리했다.


와! 어떻게 적진에서 2연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비앤케이의 상승세를 우리은행이 막지 못했다. 이번에도 비앤케이 주요 선수들의 활약이 엄청났다. 안혜지(16점 2리바운드 6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15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 이소희(11점 4리바운드), 김소니아(7점 10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가 팀 승리를 이끌었다.


우리은행에서는 김단비(15점 11리바운드 2어시스트), 나츠키(17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김예진(6점 2리바운드)이 분전했지만 결국 승부를 되돌리지 못했다.


첫 두 경기를 가져간 팀이 그것도 원정에서 2연승을 거둔 팀이 홈에서 세번째 경기를 치룬다는 것은 거의 우승 문턱에 앉았다는 뜻이다. 2년 전에 비앤케이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을 만나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역시 두 팀은 마지막까지도 엄청난 명경기를 보여줬다. 


홈경기라서 그런지 비앤케이의 출발이 좋았다. 앞선 두 경기 모두 1쿼터에서 우리은행에 리드를 내주고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우리은행을 압도했다. 이소희와 사키 그리고 안혜지의 3점슛이 깨끗하게 림을 지나 그물을 스치며 떨어졌다. 클린샷. 김소니아의 활약도 여전히 대단했다. 김단비 역시 이를 악물고 움직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비앤케이는 17대 10으로 앞서가며 1쿼터를 마쳤다. 2쿼터에서 비앤케이는 김소니아와 박혜진이 연속 득점으로 달아났다. 물론 우리은행 김단비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여기에 박혜미의 3점슛까지 터지며 우리은행도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안혜지의 3점이 터졌다.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추격의 불씨를 꺼트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사키의 3점이 더해져 결정타를 날렸다. 비앤케이는 31대 23으로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가 없엇다. 3쿼터에 시작과 동시에 한엄지와 김단비가 연속으로 3점슛을 넣었고, 이어서 김단비의 뱅크슛으로 우리은행은 동점을 만들었다. 33대 33이었다. 비앤케이는 변소정 선수의 돌파와 골밑슛 그리고 안헤지의 3점으로 다시 달아났고, 우리은행은 이명관의 3점슛으로 추격을 이어갔다. 41대 37로 아직은 비앤케이가 리드하며 3쿼터를 끝냈는데, 흐름은 우리은행으로 가있다고 느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점, 안혜지 선수를 좋아하는 점으로 비앤케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조금 더 강하지만, 김단비의 우리은행 역시 응원하는 마음이라 마지막 4쿼터를 남겨두고 긴장감이 컸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우리은행이 승리를 가져가면 경기가 더 늘어나는 것이라서 좋고, 비앤케이가 이겨서 결국 우승하면 고향팀이 이겨서 또 좋은 것이다. 야구에서 롯데가 30년 넘게 우승을 못하고 있는데, 농구에서 비앤케이가 우승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은가. 자, 이제 4쿼터가 시작했다. 비앤케이 사키 선수가 캐스터와 해설자가 모두 소리를 지를 정도로 멋진 돌파를 보여주며 골을 넣었다. 그리고 김단비의 어려운 자세에서 나온 뱅크슛. 다시 사키의 득점이 나왔고, 이어서 김단비 선수가 아주 먼 거리에서 공격 제한시간 부저와 동시에 3점슛을 던졌는데, 이것이 깨끗하게 림을 통과해 그물을 스쳤다. 와! 이건 승패를 떠나서 이번 경기 최고로 멋진 슛이라고 꼽을만 했다. 이어서 우리은행은 50대 49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건 이제 모른다. 어쩌면 우리은행이 1경기를 가져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앤케이 이소희 선수가 깔끔한 클린샷으로 3점을 넣었다. 재역전. 52대 50이었다. 시간은 이제 3분 30초가 남아있었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우리은행 이명관이 골을 넣어 점수는 다시 52대 52였다. 그리고 경기 종료 37초를 남기고 김단비가 1골을 넣어 우리은행이 54대 52로 앞섰다. 경기 종료 약 18초를 남기고 안혜지가 박혜진에게 공을 넘겼고, 이것을 박혜진이 깨끗한 3점으로 완성했다. 55대 54. 이제 우리은행의 마지막 공격. 여기서 2점을 넣으면 다시 역전해 우리은행이 이긴다. 김단비가 공격해왔다. 시간이 다 되어 0초가 되는 순간 김단비가 회전슛을 쏘았지만, 림에 맞고 튕겨졌다. 이 공을 비앤케이 선수 한 명이 리바운드로 잡아 공을 쥐고 넘어지며 누웠다. 슛을 날렸던 김단비도 뒤로 넘어지며 저 멀리 미끄러졌다. 이미 경기는 끝났고 빨간 옷을 입은 비앤케이 대기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경기장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순간에 우리은행 선수 중 한 명이 넘어진 상태로 공을 안고 있는 비앤케이 선수로부터 공을 낚아 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는 경기가 끝나는 부저 음이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씁쓸함에 취해 있는데, 혼자 공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공을 안고 있는 비앤케이 선수 역시 이미 경기가 끝났는데, 자신이 리바운드로 잡아낸 공을 끌어안고 넘어진 채로 놓지 않았다. 경기는 끝났건만 이 두 사람만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나는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중계화면은 멀리서 비추고 있었고, 이미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면서 승리를 만끽하는 비앤케이 선수들에게로 금방 옮겨가버렸다. 캐스터가 등번호를 보고 선수를 확인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캐스터 눈에는 그 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끝났다. 55대 54로 비앤케이가 이겼다.



마지막 경기까지 비앤케이 선수들의 고른 활약은 돋보였다. 안혜지(13점 3점슛 3개 2리바운드 7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14점 4리바운드), 김소니아(10점 7리바운드), 이소희(8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가 팀 승리에 앞장섰고, 박혜진(8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이 결승포를 성공시켰다.


우리은행은 김단비(27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2블록슛), 한엄지(8점 10리바운드)가 열심히 움직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만약 마지막 김단비의 슛이 림으로 빨려들어갔다면 4차전으로 이어졌겠지만, 공은 튕겨져 나왔다. 결국 웃지 못했지만, 김단비의 괴력은 어마어마했다. 27점이라니!! 1차전 20점, 2차전 15점에 이어 3차전 27점이다. 이게 과연 인간인가 싶다.


정말 마지막 1초까지도 승부를 알 수 없는 명경기였다. 이런 경기를 보고 어찌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있나. 잠을 안 자더라도 꼭 써야했다. 아, 이제 다음 시즌 시작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야구 보면서 기다려야지 뭐. 올해는 롯데가 꼭 가을야구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같은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비앤케이가 롯데에게 행운을 준 것으로 여겨야지. 내일 아침부터 하루종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너무 늦어버렸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5-03-27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8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간달프


오늘 오랜만에 만난 동네 활동가 한 분이 나를 보고 "이젠 거의 간달프가 되셨군요." 그제서야 오늘 머리를 감고나서 채 다 말리기 전에 집에서 나온 통에 머리를 묶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그래도 흰 머리가 덜 눈에 띄는데, 머리를 풀고 다니면 흰머리가 눈에 확 들어오지. 게다가 흰 수염까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간달프는 좀 심한거 아닌가? 가끔 차라리 간달프처럼 완전히 흰 머리만 남는 것이 더 멋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흰 머리만 남은 것은 아닌데. 당연히 그가 나쁜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뭔가 좀 기분이 나쁘다.이제 정말 늙긴 늙었구나. 간달프라고 불리다니. 아, 오히려 간달프라는 훌륭한 인물(비록 창작물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에 비유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간달프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초능력이나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약속에 많이 늦었을 때 순간 이동 능력을 바라고, 순간적으로 어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때,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바라고, 시민들이 잘 이용하던 공적 공간을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철거해버리는 미친 시장과 철거 업체 용역들을 만나면 어떤 마법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몰아내 버리고 싶다. 그런 상상 만으로 아주 짧은 순간 만이라도 조금은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다. 현실에는 초능력이나 마법은 없다. 물론 존재하는데 내가 모를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관계와 단절


최근에 단체 대화방에서 이런 저런 갈등들이 많이 벌어진다. 나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 상의 대화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렇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다툼이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나도 모르게 몇차례 연루된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너무 선을 넘어서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이런 대화는 피곤하다. 상대는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받아들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근거없는 비난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 계속 교묘하게 나를 공격하거나, 비난 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당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맞섰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거의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해서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었다. 그가 나를 공격하건 비난하건 뭐 별로 상관은 없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떠들어대는 말 따위에 흔들리지는 않으니. 그렇지만 기분은 나빴다. 이제 그런 사람하고 더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일들로 이미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더 해야 하는가. 일 때문에 마주치는 일까지 다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그와 엮이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인간 관계는 늘 어렵다. 그 어려움을 다 안고 가고 싶지는 않다. 단절이 필요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오늘 북플에서 지난 오늘 내가 쓴 글을 보니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이란 책을 읽고 쓴 서평이 있었다. 그래, 이 책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토머스 페인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등에서 크게 활약했던 인물이며, [상식]이라는 책을 써서 글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 초기에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며,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때마다 늘 포함하는 책인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낼 때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토스 페인의 저 책에서 따와서 [21세기의 상식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내기를 원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자는 것이 상식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요즘 이 나라 꼬라지가 정말 상식이 없는 세상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전세계가 다 보는 앞에서 비상 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법원과 검찰이 합작해서 풀어주더니, 이제는 헌제가 탄핵 인용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이러다 기각을 시킬 작정인가? 나는 그래도 이번주 금요일, 그러니까 오늘은 꼭 판결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는 다음 주에 한덕수 탄핵 여부를 먼저 다루고 이재명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이후에 판단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그 인간들은 상식이란 것도 없나? 아니 온 국민들이 아니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미친 자식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다 아는데, 헌법 재판소의 판사라는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고? 왜?


아! 제발 이런 나라에서 저렇게 상식도 없는 인간들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다. 그런 더러운 꼴을 보느니 그냥 확 내가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든다. 이번 주 내내 하루도 못 쉬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내일도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꼬라지가 이렇게 돌아간다면...... 내일 나도 꼭 거리로 나가고 싶었다. 그거라도 해야 그래도 조금은 화가 풀리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탄핵 선고가 내려지고, 내란 수괴로 구속해서 평생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해야 조금은 화가 풀리겠지. 암튼 나는 내일 중요한 총회가 있어서 거리에 나가지 못한다. 총회 참석 확인을 위해 연락을 돌리다가 다들 지금 나라가 이 꼴인데 총회가 중요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조합은 내일 총회를 치뤄야 한다. 이 총회를 치루지 못하면 엄청 일이 틀어질 것이고, 그럼 또 엄청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다들 거리로 나가고 총회에 오지 않으면 상당히 큰 문제가 생긴다. 모르겠다. 나도 이 조합에서 임원을 맡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사실 거리에 나갔을 것이다. 


점점 현실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비상 계엄에 이어 탄핵 기가까지 벌어진다고? 내란 수괴라는 범죄자를 석방시킨다고? 뭐 이런 미친 나라가 다 있나?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시기를 나는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이 나라라면 나는 이 나라 국민이기를 거부하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5-03-22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루만이 아닌 간달프였음에 감사해야죠. 인물도 좋고 게다가 악이 아닌 선이니....이게 긍정의 힘이죠. ㅎㅎ 그 긍정의 힘으로 탄핵을 기다립니다.

감은빛 2025-03-24 17:06   좋아요 0 | URL
네, 잉크냄새님 말씀처럼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은 아닐테고, 그저 흰머리와 흰수염이 눈에 잘 띄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긍정의 힘으로 탄핵을 기다려야 하는데, 왜 자꾸 조바심이 나고, 왜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 자주 드는 것인지. 에휴! 정말 힘드네요.

잉크냄새 2025-03-24 19:49   좋아요 1 | URL
네, 사실 저도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맘이 불안합니다. 다만 아직 우리가 그 정도로 망가지지 않았다고 믿기에 기다립니다.

감은빛 2025-03-28 23:21   좋아요 0 | URL
설마 이번 주를 넘길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결국 또 이렇게 기다림이 길어지네요. 주말에는 좀 쉬어야 하는데, 주말마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요. 힘드네요.

2025-03-2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직 마라톤

작년에 여성 연예인들의 철인삼종경기 참가 과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녀단을 열심히 봤었다. 그때 마침 나도 막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들의 도전이 내게도 꽤나 자극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 자전거도 못타고, 수영도 못하는 내 입장에서 자전거를 못타는 유이와 수영을 못하는 진서연의 도전이 또 엄청난 자극이 되기도 했다. 짧은 기간 연예인이라는 바쁜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결국 전원 철인삼종경기 완주라는 엄청난 결말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 꽤나 재미있게 지켜본 것이 잠실 롯데타워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었다. 비교적 초반에 나왔었는데, 실제로 열리는 대회를 보고 만든 내용이라고 했다. 와! 이거 실제로 참여해보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요즘은 무릎이 아픈 날이 자주 있어서 예전만큼 계단을 오르지 못하지만, 몇 해전까지 계단 오르기를 운동 삼아 열심히 했었다. 내가 계단 오르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평택의 농사짓는 마을 빈집에 들어가 살면서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옆마을에 친하게 지내면서 잘 챙겨주시던 형님이 계셨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 이 형님은 40대 초반. 큰 딸이 그해에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사실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의 나이차 라는 생각이 들수 있는데, 당시 전국적으로 친했던 활동가 형들이 대체로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 있었기 때문에 나이 차이에 대한 감각이 좀 없었다. 암튼 그시절 그 형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이것저것 많이 받으며 살았다. 당시 형님은 어떤 이유로 내가 참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자신의 큰 딸과 사귀어보라는 권유도 하셨다. 사위로 삼고 싶으시다고. 한창 새내기로 청춘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을 그 큰 딸이 나같은 사람에게 눈길을 줄 이유도 없지만, 나도 당시에는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암튼 그렇게 친했던 형님이 나에게 자주 추천한 운동이 계단 오르기였다.

결혼을 하고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늘 달동네라고 불리는 언덕 위에 살았고, 전철 역까지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일단 출퇴근 만으로도 충분히 하체 운동이 될만한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결혼 생활 거의 대부분 등산하듯 오르막을 올라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 형님의 충고를 받아서 나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거의 타지않고 늘 계단을 올랐다. 주로 이용하는 노선이 6호선이나 5호선이었는데, 알다시피 4호선 이후 뒤쪽 호선들은 승강장이 매우 깊은 곳에 있었고 긴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 계단을 실제로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은 나 외에는 거의 없었다. 한동안 계단 오르기를 즐기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나서 동시에 전철에서 내리면 맨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거기서도 걸어 올라가는 사람과 나 혼자 대결을 벌이곤 했다. 어느 젊은 남성이 가장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걸어오르기 시작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비슷한 속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서 마지막에 누가 먼저 끝까지 올라가나 하는 대결을 혼자 머리 속으로 벌였던 것이다. 그렇게 매일 계단을 오르다보니 나중에는 조금 느긋하게 계단을 올라도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절대 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한때 일터가 9층에 있었던 기간이 있었다. 아마 4년 정도었던가. 그때 나는 매일 집에서 일터까지 약 30분을 걸어가서 마지막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서 출근했다. 9층은 생각보다 힘들기는 했다. 초기에는 한 6층 정도에서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고, 늘 8층에서 숨이 차서 헉헉 대며 마지막 한 개층을 오르곤 했다. 이걸 몇 년 꾸준히 해서 나중에는 7층까지는 덜 지치고 오를 수 있게 되기는 했었다. 이때 매일 계단을 오르면서 20대 대학생 시절에 아파트 단지에서 쌀배달을 했던 시절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서재에도 두어번 쓴 적이 있는 엘리베이터 점검하는 동에 계단으로 쌀을 배달했던 날을 떠올리며 계단을 오르곤 했다.

계단 오르기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작년에 보문사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의 긴 계단을 오른 일이었다. 보문사는 강화도 서쪽 작은 섬인 석모도에 있었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석모도로 들어갔었는데, 언젠가 다리가 놓였다. 친한 지인이 주말에 심심한데 강화도나 갈까요 해서 그냥 따라나섰던 건데, 그가 보문사로 향했다. 이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마애불을 만나러 오르는 길이 소원을 비는 소원계단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계단이 총 419개 있다는 정보도 봤다. 가을이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천천히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전철역 계단이나 예전 9층 사무실 계단을 올랐던 리듬으로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빠르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이게 무척 즐거웠다. 한동안 전철을 탈 일이 자주 없었고, 고층으로 계단을 오를 일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자주 무릎이 아파서 어쩌다 계단을 마주해도 오르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계단을 빠르게 오르는 것이 무척 좋았다. 같이 오르던 지인은 처음에는 따라오는 듯 숨소리가 들렀지만, 중간쯤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중간쯤 올랐을 때부터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정말 멋졌다.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지만,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잠시 숨을 좀 고르고 다시 출발했다. 대략 3분의 2정도 오른 시점에서 나도 많이 지쳤다. 긴팔 상의는 땀에 흠뻑 젖었고, 속옷도 다 젖었다. 다리가 무거워졌지만,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헉헉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고 다리는 질질 끌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끝까지 올라왔을 때의 나는 허리가 완전히 꺽인 채로 거의 기어오르는 것처럼 자세가 무너진 채로 간신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갈증이 났는데 마실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까지 오른 사람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시원한 물을 판다면 아무리 비싸도 사 마실거라고 함께 쉬고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쉬기도 하고 천천히 올라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나는 일부러 운동하려고 빠른 속도로 올라왔기 때문에 갈증이 더 심했다. 하지만 뭐 방법이 없었다. 함께 온 지인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간 후에 절 아래에서 물이나 음료수가를 사거나 구할 수 밖에. 한참을 기다려도 이 친구는 올라오지 않았다. 중간에 뭔 일이 생겼나 걱정이 들 정도로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저 아래에 그 친구가 보였고, 이미 지친 그는 거기서부터 나에게 오기까지 다시 한참이 더 걸렸다.

자, 이제 다시 원래 하던 수직 마라톤, 잠실 롯데타워 계단 오르기 대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작년에 이 대회의 존재를 알고 나서 내년에 참여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무릎이 걱정이었다. 거리를 달리는 대회는 무릎이 조금 안 좋아도 진통제 먹고 달리면 크게 문제가 없지만, 계단은 무릎이 조금만 상태가 나빠도 오르기 어렵다. 대회 당일 무릎이 아플지 괜찮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이걸 신청하기가 망설여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청하는 일 자체가 또 쉽지 않다. 요즘은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엄청 많고,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아서 매번 대회 서버가 열리는 시간 5분전에 알람을 맞춰두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정시에 들어가도 단번에 신청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3월 말에 열리는 불광천 대회는 그렇게 유명한 대회도 아닌데, 서버가 열리는 시간에 동시에 접속자가 몰려서 잠시 오류 메시지가 뜨기도 했었고 나는 간신히 신청 성공했지만, 달리기 모임 구성원들 중 다수는 결국 신청을 못했다고 전했다. 버튼을 누르고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이미 마감되었다고.

저 수직마라톤은 신청 서버가 열리고 채 5분도 되지않아 마감되었다는 글을 봤었다. 그럴만하다고 여겼다. 유명하지않은 대회들도 금방 마감이 되는데, 이건 독특하기도 하고, 한번쯤 도전하고픈 대회라 사람이 몰리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수직마라톤 올해 대회 신청 일이 어제였다. 나는 어차피 신청하려고 시도해도 성공률이 높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무릎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이다가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냥 그렇게 포기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대회인데, 신청이라도 해볼걸. 안 되더라도 시도라도 해볼걸. 높이 555미터, 총 123층, 2,917개의 계단을 오르는 이 대회 내년에는 꼭 도전해보리라. 올해 달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무릎 컨디션에 따라 계단 오르기도 꾸준히 훈련해야겠다.

원래는 아산에서 열린 여자농구 챔피언 결정전 1, 2차전 결과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그건 다음에 써야겠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예매나 신청하는 각종 대회나 경기 등에 대해 짧게 얘기해보자. 사실 해마다 두 번 있는 명절을 앞두고는 부산으로 가는 열차표를 구하는 것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에는 열차표를 구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매번 버스를 탔고 대개는 10시간 남짓, 좀 심한 경우엔 12시간에서 15시간, 그리고 가장 오래 걸렸던 폭설이 왔던 설날의 경우에는 17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나면서 나는 앞으로 절대 버스는 안 타기로 마음 먹었고, 그즈음부터 코레일 앱을 통해 예매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명절 예매는 미리 예고한 특정한 날 오전 6시에 열리고, 몇 분이 지나지않아 모든 표가 사라진다. 허탈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정시에 접속해도 대기번호 숫자 혹은 오류 메세지 등만 보다가 표를 구하지 못하는 헛수고를 해야 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이후로는 이제 그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그 시간에 표를 구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나중에 막상 명절이 코앞에 다가오면 무더기로 나오는 취소표를 노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도 혼자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하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함께는 또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작년에 야구장에 총 6번 갔다. 고척돔 1번, 잠실 2번, 문학 2번, 사직 1번. 나는 롯데 팬이라 서울과 인천의 3개 구장은 모두 원정팀이고 부산 사직구장이 홈이다. 원정 5번은 모두 롯데가 졌고, 홈에서 본 날만 유일하게 그리고 아주 감동적으로 승리했다. 이 이야기도 작년에 쓴 적이 있는데, 어렸을 때와 청소년기에 야구장을 자주 갔었다. 당시 사직구장은 7회가 되면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돈이 없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야구장 근처에서 소리만 듣다가 7회에 들어가서 보곤 했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에 갔던 건 아마도 대학생이었던 95년이었다. 그리고 거의 30년만에 작년에 야구장을 다시 간 것이다. 꽤 오랫동안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마음을 그저 마음속에 품고 야구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왔던 것이다. 작년에 비로소 여유가 생겨 처음엔 중계 방송을 챙겨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야구장에 가보고 싶어져서 롯데의 원정경기 일정을 찾아서 예매를 했던 것이다. 프로야구는 구장에 따라 예매하는 앱이 각각 다르고, 구장의 크기와 좌석 상황도 그리고 가격도 저마다 다르다. 미리 예고된 예매 시작 시간에 들어가면 괜찮은 자리 표가 있을줄 알았던 나는 물정을 몰랐다. 각 구단마다 시즌권이라고 부르는 선예매가 가능한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즉, 일반 예매가 시작되기 전에 시즌권 구매자들이 먼저 좋은 자리를 모두 선점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작년의 나는 여기까지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 위에 다시 프리미엄 등급 같은, 구단마다 이름도 다르고 혜택도 다르겠지만, 돈을 더 주고 사야하는 등급이 있었고 이들이 선선예매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본 뉴스에서는 선선선예매가 가능한 제도를 만든 구단들이 있다고 한다. 참, 영화 [1승]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며칠 전에 곧 있을 프로야구 개막전 암표가 엄청 기승이라는 소식을 봤다. 한 2만원 정도 하는 썩 좋지 않은 자리의 표를 10만원 가까이 팔아도 없어서 못구한다고. 게다가 좋은 자리는 2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고 했다. 아,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작년 연말인가 암튼 최근에 큰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공연을 처음으로 보러 갔었다.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암표를 거의 3배 가량 주고 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암표를 사면 안 된다고, 우리가, 누군가가 결국 사니까 그들이 그렇게 비열한 짓을 계속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마라톤 대회도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아서 찾아본 적은 없지만, 여기도 찾아보면 뭔가 잔뜩 나올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25-03-21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강이 안좋아서 한때 계단 오르기를 한 적이 있어요.아무래도 살고 있는 건물에서 하면 다른 분들께 폐가되니 집 근처 육교를 이용했는데 오르락 내리락 한 시긴정도씩 몇달을 한 기억이 납니다.고층 건물의 계단 오르기 보다는 아무래도 쉽긴한데 이것도 매일 하니 무릎등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 안했는데 육교마자 철거되어 이젠 할 수 없네요ㅡ.ㅡ

감은빛 2025-03-21 21:23   좋아요 0 | URL
오호! 육교를 오르내리는 방법도 있군요.
그 생각은 못 했네요.
언젠가 뉴스에서 계단 오르기를 위해 계단만 있는 건물이 있다고 본 적이 있어요.
아파트 단지 거주자들을 위한 건물이라고 하더라구요.

카스피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카스피 2025-03-22 13:57   좋아요 0 | URL
주변에 육교가 있으면 가능하긴 한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좀 힘들죠.제가 사는 곳은 외진곳이라 저녁이면 육교 사용자가 없어 가능했어요.그리고 아무래도 육교다보니 고층 빌딩 계단오르기보다는 운동효과가 좀 없던것 같습니다.
감은빛님도 건강하게 주말 보내셔요^^
 

지난번에 내가 광택이란 가수의 곡 공심 空心 이란 곡을 펑티모와 완쯔요 라는 두 명이 부른 버전으로 자주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그 글에 서재 이웃 잉크냄새 님께서 댓글로 여러 중국 노래들을 추천해주셨다. 하나씩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곡을 찾아들었다. 과연 한 곡도 뺄 것 없이 다 좋은 곡이었고, 딱 내 취향이었다. 아니, 잉크냄새 님께서는 어떻게 내 취향을 이렇게 잘 아시고 추천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추천하신 건데 내게도 와닿은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했다. 자, 한 곡씩 노래를 알아보자.

成都

잉크냄새 님이 소개해주신 노래 중에 제일 처음 곡은 자오레이 赵雷 의 청두 成都 였다. 청두는 중국 서쪽 쓰촨성의 도시 이름이다. 노래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이었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자오레이 라는 가수의 저음이 무척 잘 어울리고 좋았다. 노래 가사를 찾아보기 전에 그냥 들었을 때부터 청두 라는 도시를 그리워하는 느낌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사를 찾아보니 딱 그랬다. 처음엔 병음이 나오는 버전으로 듣다가, 당연히 내 실력으로는 뜻을 알 수 없어서 이미 올려진 번역 영상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신기하게 예전에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 자주 보았던 김성민 중국어 라는 채널에 이 노래 가사를 알려주는 영상이 있었다. 반가웠다. 이 김성민이란 아저씨, 선생님이나 강사님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이 분의 강의 영상이 재미있어서 계속 돌려보다가 나 혼자 친밀감을 느끼게 되어서, 약간 옆집 아저씨 느낌으로 불러보고 싶어서, 굳이 아저씨 라는 표현을 써본다. 자, 내글은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빠졌다가 다시 원래 내용으로 돌아온다. 지금은 잠시 청두 노래 얘기는 옆으로 살짝 옮겨두고 이 재미있는 아저씨의 중국어 강의 얘기를 해보자.

우리가 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두 가지는 성조라고 부르는 말의 높낮이 차이와 한자 라고 생각한다. 한자는 음, 워낙 많은 글자를 알아야 하는데, 복잡한 글자들도 많고 헷갈리는 글자들도 많다. 나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한자 수업을 받은 세대인데도 글자를 많이 알지 못한다. 열심히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중국어를 배울 때 이걸 좀 후회했다. 사실 당시에는 신문에도 중요한 단어들은 한글이 아니라 한자로 적어놓았었고, 책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서적들은 한글보다는 한자 단어가 훨씬 많았다. 공부를 하려면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한자를 잘 모르면 일단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한자를 많이 아는 친한 법학과 선배들에게 책에 있는 한자들에 한글로 음을 적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전공서적은 두껍고 한자가 엄청 많아서 그걸 일일이 음을 적어주는 일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 친했던, 그래서 자주 술을 사주곤 했던 선배들은 귀찮은 내색도 없이 음을 달아주곤 했다. 사실 이때라도 한자 공부를 꾸준히 했어야 했는데, 그냥 내가 가진 훌륭한 인적 자원으로 해결해버려서 두번째 한자 공부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미 옆길로 잠시 빠졌는데, 여기서 한번만 더 빠지면, 당시 가장 친했던 법대 선배가 있었다. 학교 앞 언덕을 오르면 그 언덕 중턱에 그 선배의 자취방이 있었다. 쌍둥이였고 둘이 같이 우리학교를 다녔다. 나는 둘 중 형이랑 친해졌고, 동생인 분과는 끝내 친해지지 못했다. 그 선배는 자주 술을 사주셨고, 술을 마시다가 늦어져 막차가 끊기면 본인 자취방에 재워주셨고, 아침이 되면 학교 식당에서 밥도 사주셨다. 심지어 매점에서 담배를 사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나와 나이 차이도 제법 나고, 복학생에 고학년이라 사법고시 공부하느라 엄청 바쁘셨을텐데, 내 공부를 자주 도와주셨다.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궁금해진다.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담배도 사주고, 재워주고.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주구장창 그랬으니. 뭐 가족이나 연인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나중에야 생각하게 되었다.

한자 이야기를 했으니 성조 이야기를 해야지. 이제서야 곁가지로 빠진 저 김성민 아저씨 이야기가 나온다. 아, 잠시만 한번만 더 곁가지로 빠졌다가 돌아오자. 중국어를 처음 배웠던 것은 우리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베이징 출신 유학생 덕분이었다. 나는 중국어를 배울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 유학생의 생활비 때문에 사람들을 모아 중국어 강의를 만들자는 어느 선배의 강권에 의해 참여하게 되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다들 바쁘다고 다 그만둔 후에도 나만 마지막까지 남아 수업을 들었다. 막상 배워보니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중국어 대해 얘기할 때 내가 부산 사람이라서 성조가 조금은 익숙하고 재미 있어서 중국어가 재미있다고 말한다. 김성민 아저씨가 아마도 부산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 영상을 보면 처음에 그 얘기를 한다. 부산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고. 이 분은 본인이 중국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중국에 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중국어를 잘 익혔는지 이야기 하면서 절대 공부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그냥 언어를 익히는 것이고 그건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영어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긴 시간 영어를 배웠지만, 정작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영어를 익힐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이 아저씨의 강의 영상을 많이 봤는데, 이 분이 늘 하는 말, 가장 자주 하는 말은 필기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보라는 말이다. 실제로 이 분의 학원에 가서 강의를 들었다면, 과연 나는 중국어를 잘하게 되었을까? 현실의 나는 영상으로 한동안 강의를 봤지만, 딱 그때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그러다 몇 년 후에 생각나면 또 잠시 들여다보고, 또 한 몇 달을 흘려보내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중국어를 완전히 잊지 않는 것은 노래와 영화 덕분이다. 자주 듣는 노래들. 좋아하는 영화들 때문에 잊고 있다가도 다시 중국어를 다시 익혀야지 생각하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청두 노래로 돌아와서 김성민 아저씨가 알려주는 가사의 내용은 짐작했던 대로 청두라는 도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 아저씨가 부산 사투리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부산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 서울말로는 혹은 다른 어느 지역 사투리로는 이 느낌을 살리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네이티브로서 부산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김성민 아저씨 말로는 이 노래가 엄청나게 유명해져서 관광객들이 이 도시에 올 때마다 택시를 타고 노래 가사에 나오는 위린루 玉林路 라는 곳으로 가자고 한단다. 근데 이 위린루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로, 북로 등 많이 있어서 택시 기사님들이 곤란해 한다고. 그리고 위린루 중에 유명해진 카페 거리가 있는데, 거기 가면 샤오지우관 小酒馆 이 잔뜩 있는데, 다들 가게 이름이 따로 없고 간판이 그냥 小酒馆 이라고. 관광객들이 다들 택시 타고 위린루에 小酒馆 을 가달라고 하는데, 거기 가면 그 가게가 너무 많아서 택시 기사님들이 곤란하시다고. 무슨 얘기인지는 노래 가사를 들어봐야 알 수 있다.

好久不見

잉크냄새 님이 알려주신 두 번째 노래는 천이쉰 陳奕迅 의 하우지우부지엔(오랜만이야) 好久不見 이라는 곡이다. 처음 소개한 청두 랑 분위기가 비슷했다. 피아노 반주 하나에 저음으로 시작하는 곡은 조용하게 슬픈 느낌을 품고 있었다. 뒤로 가면서 현악기 반주가 더해지며 한층 그 슬픔을 더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약간 절제라고 할까 더 큰 슬픔까지 가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한다. 나는 이 점이 참 좋았다.

이 곡도 가사를 찾아봤다. 노래의 첫 소절이 ˝네가 사는 도시에 와서 네가 걷던 거리를 걸었어.˝ 였다. 앞의 곡 청두 가 도시를 그리워하는 내용이고, 이 곡은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는데, 그가 작중 화자와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를 찾아온 것이다. 이 두 곡 모두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은 모르지만 잉크냄새 님께서는 중국에서 이런 곡들을 들으며 고향과 그 고향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봤다.

至少還有你

세번째 노래는 린이롄 林憶蓮 의 쯔샤오하이요우니 至少還有你 였다. 제목을 우리 말로 옮기면 적어도 아직 나에게는 당신이 있기에 라고 할 수 있을까? 가사를 찾아본 영상에서는 그냥 간단히 당신이 있기에 라고 옮겼더라. 일단 린이롄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첫 소절부터 너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이거 분명 아는 노래인데, 나는 린이롄이란 가수는 몰랐다. 그런데 노래는 분명 엄청 자주 들었던 곡이었다. 그랬다. 이 노래는 내가 즐겨듣던 펑티모가 엄청 자주 불렀던 곡이었고, 그가 부른 여러 버전의 영상을 보고 들었던 내 입장에서는 엄청 익숙한 곡이었을 수 밖에. 펑티모의 음색에 익숙한 나에게 이 원곡은 느낌이 좀 달랐다. 펑티모는 뭐랄까 좀 더 신나게?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발랄하게? 아니 그것도 아닌데, 딱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지만 좀 더 활달한 느낌으로 불렀다면, 원곡은 훨씬 차분하고 아련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원곡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펑티모가 곡 해석을 잘 못했거나, 본인이 나름 다른 느낌으로 해석해 부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혹시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이 없나 찾아보는데, 와!세상에. 장국영이 부른 영상이 있었다. 장국영의 목소리로 듣는 이 곡은 또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장국영의 음색은 훨씬 더 깊으면서도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노래 가사가 훨씬 더 와닿는 음색이라고 해야할까. 특히 후렴구로 들어가는 부분, 온 세상을 포기하더라도 당신이 있기에 내 사랑은 가치가 있다는 부분이 원곡인 린이롄이 부른 것과 펑티모가 부른 것보다 훨씬 공감이 되었다.

계속 펑티모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가사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는데, 가사는 그냥 들었던 느낌과는 완전 달랐다. 앞서도 말했듯 펑티모의 노래는 뒤로 갈수록 조금 빠르고 그래서 이런 가사일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가사 중에 당신의 머리카락에 백설이, 그러니까 흰눈이 내린 흔적이 있다는 부분을 들으며 거울을 보았다. 흰 머리가 가득한 내 모습이 딱 가사 속의 인물이었다.

练习

다음 노래는 류더화 刘德华 의 연습 练习 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잘 생기고 유명한 배우 유덕화의 노래였다. 와! 유덕화라는 배우의 영화를 엄청 많이 봤을텐데, 노래는 처음 들었더니 음색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저 앞에 장국영이 부른 노래를 언급했는데, 비교하면 장국영은 감정을 잘 담아 나쁘지 않게 노래를 부르는 배우라는 느낌이었고 유덕화는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한 곡씩 밖에 안 들어봤으니 제대로 된 비교가 될 수는 없겠지. 장국영이 부른 다른 노래들도 많을테니 나중에 천천히 들어봐야겠다.

이 노래는 일단 가사를 찾아보기가 조금 번거로웠다. 우리말 가사 뜻을 찾으려고 제목인 练习 에 번역이라고 검색했더니 말그대로 번역 연습에 대한 영상들만 잔뜩 나왔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서 영상들 중에 한자와 병음이 함께 나오는 걸 찾아 보았다. 나중에 제목에 가사 라고 검색해보니 우리말 해석이 담긴 영상이 하나 나왔다. 여러 노래들을 찾다보니 중국어 학원에서 운영하는 채널들 중에 노래 가사 해석 영상이 많았다. 이 노래까지 잉크냄새 님께서 추천한 노래들을 찾다보니 대체로 분위기가 비슷했다. 공통된 느낌은 역시 그리움이라고 느꼈다.

后来

다음 노래는 류뤄잉 劉若英 의 호우라이 后来 였다. 어, 이 곡도 뮤직비디오를 틀자마자 분명 들었던 노래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곡은 특정한 누군가의 영상을 많이 보고 들었다기 보다는 워낙 유명한 곡이라 나도 들어본 곡이었던 것 같다. 가수 류뤄잉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매력적이었다. 가창력이라는 단어로 생각해보면 독보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느꼈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한글 자막이 있어서 따로 가사 해석을 찾아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해석이 다를 수 있으니 찾아보았다. 확실히 내가 알 정도로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노래가 맞았다. 지금까지 찾아본 다른 어떤 노래보다 우리말 해석 영상이 많았다. 이건 이번에 잉크냄새 님의 추천곡만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궁금해서 찾아보는 다른 중국노래들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영상들을 찾아보다가 어떤 공연 영상을 보았다. 류뤄잉이 마이크에 산, 얼, 이 라고 숫자를 세면 관객들이 호우라이 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노래 간주 부분에서 지금 이 공연이 2년 동안 53번의 공연이라며, 더불어 마지막 공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류뤄잉은 다시 노래를 이어부르다가 갑자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노래가 끊겼는데, 맨 처음 노래를 관객들이 소위 말하는 떼창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끊어진 노래를 관객들이 떼창으로 이어불렀다. 멋진 장면이었다. 만약 저 공연장에 있었다면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생각해봤다.

이 노래는 처음에 일본 노래였다고 한다. 그걸 중국어로 번안한 곡이 지금 이 노래라고 했다. 그래서 원곡인 일본 노래도 찾아봤다. 키로로 キロロ 라는 오키나와 출신 여성 듀오가 부른 미라이에 未来へ 라는 노래가 원곡이었다. 들어보니 둘은 곡의 분위기도 달랐고, 가사의 내용도 완전히 달랐다. 원곡은 밝고 맑은 음색으로 미래의 희망 같은 것을 노래하는데 반해, 호우라이 는 후회와 아쉬움이 묻어나는 음색으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호우라이 라는 곡 제목이자 노래의 첫 단어가 원곡의 첫 단어 호라 ほら 라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어 호라 는 ˝자,˝ 이렇게 누군가를 부르거나, 청중들을 주목하도록 말을 떼는 표현이다. 그 뒤로는 내용이 완전히 다른데, 이 첫 소절 첫 단어를 비슷한 소리로 옮긴 재치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중국어 버전을 한국어로 번역해 부른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여기서도 후에 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비슷한 소리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이 호우라이 라는 단어가 나중에 혹은 그 이후로 라고 옮길 수 있을 텐데 그걸 우리말 후에 라는 단어로 옮겨서 뜻도 소리도 잘 살린 훌륭한 번역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유튜브에 리스트를 하나 만들었다. 키로로의 원곡과 류뤄잉의 곡과 방금 찾은 한국어 번역 버전까지 담아서 나중에 비교해 듣기 위해서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가수들의 커버곡들을 찾아서 추가할 생각이다. 나는 시간이 나면 좋아하는 노래의 다른 언어 커버곡들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어 듣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많은 언어의 커버곡을 찾았던 것은 데스파시토 였는데 몇 개의 언어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여러 영상들을 찾아보다가 이번에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부르는 영상을 찾았다. 중국어로 메이리야 美依礼芽 라고 하고 일본어로 메리야 メイリア 라는 활동명을 쓰는 일본 가수가 불렀다. 어느 공연 현장이었는데 중국이어서 일본 가수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앞부분을 중국어로 부른 후 일본어로 이어부르길래 누군지 찾아봤다. 본명이 마즈하시 마이라는 가수로 일본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한 것 같았다. 암튼 공연 영상에서는 중간에 후렴구로 가면서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 어느 건물에 수백명의 학생들이 이 호우라이 라는 중국어 노래를 떼창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서 메리야가 다시 노래를 중국어와 일본어를 바꿔가며 불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서 영상 설명에 있는 중국어를 번역기에 넣어봤다. 자세한 설명이 있지는 않았는데, 어느 학교의 여름 졸업식 장면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 수백명이 노래를 부르는 건물은 기숙사인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중국이 아닌 대만의 학교라고 생각했다. 앞서 원곡과 중국판 번안곡인 이 곡의 가사를 보니 일본 원곡은 확실히 졸업식에 어울릴 곡인데, 류뤄잉의 이 곡은 가사 내용으로는 졸업식에 어울릴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일본 문화에 친숙하고 반일 정서가 약한 대만의 어느 학교에서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이 곡을 그러니까 원곡을 부르기는 어려우니 자신들이 잘 아는 곡으로 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 본 것이다. 물론 아무 추가 정보 없이 그냥 추측한 것이라 아닐 확률이 더 높겠지만.

마지막으로 이 곡의 가수인 류뤄잉이 아마도 이 곡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 지어야겠다. 호우라이더워먼 后来的我们 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2018년에 개봉했는데 가수인 류뤄잉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제목은 [먼 훗날 우리] 라고 옮겼더라. 찾아보니 넷플릭스에 있었다. 추가 정보를 보니 유명한 배우들이 나왔고, 우리나라 리메이크 버전 영화도 있었다.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근데 이 우리나라 제목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우라이 노래 가사 해석 영상을 볼 때 호우라이 라는 표현은 어떤 특정 시점 이후에 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봤다. 그럼 먼 훗날의 우리가 아니라 예전에 우리가 같이 했던 어느 날 이후 다시 만난 우리라는 뜻이 아닐까? 그게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먼 훗날이란 단어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먼 훗날이란 단어는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십여년, 수십년 후라는 느낌이 먼저 드는 단어다.

언젠가 한번은 글로 쓰고 싶은 주제가 엉뚱한 한국어 제목을 가진 외국영화들이다. 찾아보면 아주 많겠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 기준으로 [청춘 스케치](원제 Reality bites), [욕망의 대지](원제 burning plain) 등이 있다. 이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보고 이 두 영화만큼 좋은 영화라는 느낌이 들면 묶어서 글을 쓰던가 길어지면 따로 쓰던가 해야지. 아,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 라는 주제로도 엮어볼 수 있겠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 라는 노래로 만든 동명의 드라마이고, 음, 음 그 다음은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분명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노래를 바탕으로 내용을 만든 것은 대만 만화가 임정덕의 [영건] 이란 만화에서 처음 접했었다. 그는 각 장의 제목을 유명한 팝송 제목으로 붙여놓았었다. 오래 전 만화이고, 이제는 내용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각 내용이 해당 곡의 가사와 어느 정도 비슷한지, 아니면 곡의 느낌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도 유명하다고는 해도 나는 모르는 노래가 대부분이어서 검증해 볼 생각은 못했었다. 암튼 이 만화의 영향으로 나중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몇몇 팝송을 각 장의 제목으로 해서 청춘 연애 소설을 쓰려고 시도했었다. 단편 분량은 아니었고, 장편으로 생각하고 써나갔지만 어딘가에서 막혀서 중단했고 나중에 한참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너무 유치해서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어서 그냥 버렸었던 기억이 난다. 피씨도 없던 시절이라 공책에 비뚤빼뚤 손글씨로 쓴 것이라 나중에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쓴 것이니 어렴풋하게 대략의 내용은 떠올릴 수는 있다. 언젠가 내가 이 소설을 다시 시도해서 완성하고 그게 나중에 유명해져서 영화로 제작이 된다면 그때는 이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영상물이 하나 더 늘어날 수 있겠네. 아, 이제 그만 써야지. 자꾸 길게 쓰다보니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구나. 자, 이제 일하러 가야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거리의화가 2025-03-19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 류뤄잉 노래 듣고 유레카를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后来 저도 무척 좋아하는 곡이에요! 영화감독도 하시는 건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죠^^;

감은빛 2025-03-21 19:35   좋아요 0 | URL
와, 거리의 화가님도 그 노래 좋아하시는군요.
류뤄잉 노래 정말 잘하고, 목소리도 정말 좋더라구요.
저 영화 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바빠서 짬이 나지 않네요.

잉크냄새 2025-03-19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노래 몇 곡 추천하고 너무 멋진 댓글을 받아버린 기분입니다. 그저 노래만 듣고 노래에 관한 다른 스토리는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덕분에 노래에 관한 다른 많은 내용들도 알게 되었네요. 장국영의 노래는 장국영 본인의 노래보다는 그가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른 곡을 몇 곡 접했는데 그 특유의 감수성이 아주 잘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중국어는 중국인이 볼 때도 경상도 사람들의 발음이 제일 좋다고 하더군요. 그 특유의 억양이 중국어의 성조와 리듬과 유사한가 봅니다.

감은빛 2025-03-21 19:38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 노래 추천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하나도 안 빼고 다 제 취향이었어요.
요즘 자주 듣고 있어요.
잉크냄새 님 덕분에 중국어를 조금 더 열심히 하게 될 것 같아요.

카스피 2025-03-20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인들이 중국 노래를 접하는 주요 통로는 그간 홍콩영화(중국 영화가 아님)이었지요.특히 80~90년대 한국에서 홍콩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 영화속에서 들려오던 중국노래들이 우리 귀에 많이 익수해졌습니다.예를 들면 영화 첨밀밀에 등장하는 등려군의 첨밀밀이나 황비홍에 등장하는 성룡의 남아당자강,영웅본색에 등장하는 장국영의 당년정이 가장 대표적이죠.소호강호에 등장하는 허관걸의 챃해일서소가 대표적인죠.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당시 홍콩의 4대천황(유덕화,곽부성,여명,장학우)의 노래를 즐겨듣던 분들도 게시겠지요.하지만 홍콩이 중국의 억압을 받으먄서 홍콩영화의 자율성이 떨저지자 한국에서 홍콩영화의 인기는 떨어졌고 더이상 우리 귀에 익숙한 홍콩노래는 더 이상 들릴지 않게 되었던것 같습니다.게다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많은 노래들중 한국 인기곡을 무단 번역해 부른것이 많앙서 더더욱 인기가 없어진것 같네요.

감은빛 2025-03-21 19:51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말씀하신 노래들 중 기억나는 노래도 있고, 모르는 노래도 있네요.
덕분에 재미있었던 홍콩영화들도 기억나네요.
한때 첨밀밀도 여러 가수들이 부른 것들, 커버곡들까지 모아서 듣기도 했었어요.
나중에 챙겨 들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