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그는 과거 속에 사는 사람 같았어요. 자기 추억 속에 갇혀서 말이에요. 그는 개인적인 내밀함 속에서 살았지요. 자기 책 속에서 마치 호화로운 수감자처럼 말이죠.
-266쪽

만일 누군가 그를 파괴하려 한다면 이야기들과 그 인물들을 파괴해야겠지요.

-275쪽



"언젠가 누가 그랬어. 누구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 섰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282쪽



그때까지 그것이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이며 부재와 상실의 이야기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그 때문에 그 이야기와 내 자신의 삶이 혼동될 때까지 나는 그 이야기 속에 피신해 있었다고, 사랑해야 할 이들이 단지 이방인의 영혼에 살고 있는 그림자뿐일 것 같아 소설 속으로 도망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했다고.
-287쪽



이 삶은 서너 가지이유로 인해 살만하고 나머지는 들판의 비료 같은 거야. 난 이미 바보 같은 짓거리들을 많이 저질러왔어.
-299쪽



돈이란 바이러스와도 같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영혼을 부패시킨 다음에는 신선한 피를 찾아 떠나니까. 이 세상에서 명문가는 설탕 입힌 아몬드보다도 더 오래 못 가지. 한창 때, 즉 대략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산 가브리엘 학교는 돈 지갑에서 소리가 좀 나는 명문 가문의 최고 도련님들을 받아들였어. 알다야 가문과 그 동료들은 자기와 비슷한 이들과 교제하고 미사를 드리며, 또 자기들이 지겹도록 반복하기 위한 그런 역사를 배우기 위해 이 기숙학교로 몰려 들었었지.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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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1-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시나요? ㅎㅎ 재미있는 책이었는데, 항상 읽고 나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줄거리가 가물가물~^^

stella.K 2007-01-1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읽겠다고 해 놓고 여태 못 읽고 있습니다요. ㅜ.ㅜ

잉크냄새 2007-01-1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그림자라...책보다는 바람의 그림자를 느껴보고 싶네요.

icaru 2007-01-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님~ 머리 모양이 이쁜아가 진복이는 무럭무럭이죠? 2권을 읽고 있는데, 생각했던 거 보다 재밌어서 진도 잘 나가 좋아요!

스텔라님~ 잘 지어논 추리물 땡기실 때 읽으셔요~~

잉크냄새 님 오랜만요!!! 바람요~? 바람에 실려 잉크 향기가 예까지 왔네요~

히피드림~ 2007-01-1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문장들이네요...
이카루님 잘 계시져?^^;;

icaru 2007-01-1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펑크 님 너무 오랜만이유~ ㅠ.ㅜ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절판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버리고 간다'는 위협을 공공연하게 사용하곤 한다. 그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는 대개 이런 것이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테야. 그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알겠지? 자, 그렇다면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은 뭐지?"

이런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때 오는 결과가 무엇일까?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버림받는 것이고,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이고, 그 대가로 아이들은 장래에 대해 엄청난 공포심을 갖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늘 버림받았다고 느끼기도 하며 세상이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믿음 없이 성인이 된다.

-p.32쪽

우리의 문화권 내에서는 누구나 다 약간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사랑하려는 욕구 자체는 사랑이 아니라고 결론짓겠다. 사랑이란 행위로 표현되는 만큼만 사랑이다. 사랑은 의지에 따른 행동이며, 의도와 행동이 결합된 결과다.
-p.115쪽

어떤 경우에(모든 경우에서는 아니고) 사랑에 빠지는 행동은 일종의 퇴행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우리가 아기였을 때 어머니와 하나가 되었던 기억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일체감과 더불어 우리는 어렸을 때 성장하면서 뼈아프게 포기해야만 했던 전지전능함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모든 일들이 가능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사랑의 힘이 복종과 굴복과 암흑과 같은 모든 반대세력들에 저항하고 물리칠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문제가 극복될 것이다. 장래는 온통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이러한 비현실적인 느낌은, 두 살 난 아이가 자신을 집안에서나 세상에서 무한한 권력을 가진 왕으로 착각하는 비현실적인 느낌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p.121~122쪽

일반적으로 성적 행동과 사랑은 동시에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다른 현상이므로 대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으로 발생한다. 성행위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교, 특히 오르가슴(자위행위에서까지도)의 경험은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아 영역이 붕괴되고 황홀감을 준다. 육체적 관계에서 우리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는 일시적으로 자아 영역이 붕괴되기 때문에 우리는 애정이나 매력을 갖고 있지 않은 창녀에게도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거나 '오, 하느님'이라고 외치게 된다.

-p.133쪽


우리는 지금까지 단순히 꼭 잡고 놓지 않는 것(애착)이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그 애착을 초월한다는 것을 말해 왔다. 이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사랑은 시작을 위해서 무엇인가 잡는 것(애착)을 요구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만을 사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잡으려면 거기에는 항상 잃어버리거나 거부당할 위험이 있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심을 갖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랑을 거부하고 떠날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 보라.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그것은 언젠가 죽을 것이다.

누구든지 믿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상처를 입을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는 의존해 보라. 그러면 그가 당신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애착은 고통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만약에 고통을 감내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많은 것들을 삶에서 제외시켜야만 할 것이다. (...) 충만한 생활은 고통을 배제할 수 없다.우리는 삶을 충만하게 살든지 아니면 삶을 완전히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뿐이다.

-p.190~191쪽

모든 삶은 그 자체에 무수한 위험을 내포한다. 사랑하고 살면 살수록 더욱 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생 동안의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위험들 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성장에 따른 위험이다.
-193쪽

내가 인생에서 가장 깊이 절망하고 있던 바로 그 때, 내 무의식속에서 나의 목소리가 아닌 어떤 영적인 신의 계시 같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진정한 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 데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196쪽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책없이 비판하고 사태를 일깨우려고 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개성과 고유한 특성을 알아 주고 존중해 준다. 정신적인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살 그대로를 당당하게 직면해야만 한다. 생각 없는 비판이나 비난이 진정한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행동도 사랑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최선의 비판자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결혼도 참으로 성공적으로 볼 수 없다.

-219쪽



확실히 현실적으로 하느님을 둘러싸고 있는 그 주위에는 많은 더러운 목욕물이 있다. 성전들, 종교 재판, 동물 제물, 인간 제물, 미신, 파문, 교리주의, 무지, 위선, 독선, 강직, 잔인, 책 불사르기, 마귀 불태우기, 성무 집행, 공포, 복종, 병적인 죄의식, 정신 이상 등등 그 항목은 거의 끝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행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하느님에게 저지른 것인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라 믿어졌던 것들이 사실은 파괴적인 교리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인간들이 하느님을 믿는 경향이 있는 것이 문제일까, 혹은 인간들이 독단적인 것이 문제일까? 무신론자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신앙인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 독단적인 만큼 그도 독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우리가 제거해 버릴 필요가 있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인가, 혹은 독단주의인가?

-p.327쪽

교육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글자 그대로라면 '밖으로 드러내다' 혹은 '앞으로 이끌다'의 뜻이다. 즉 우리가 누구를 교육한다고 할 때, 말 그대로라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뭔가 새로운 것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셈이 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을 의식의 세계로 옮겨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은 모든 지식의 창고였던 것이다.
-p.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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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11-2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어려운 책으로 벌써부텀 힘들게 하지 마시고, 쉬운 책들 읽으셔요^^

2006-11-29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피드림~ 2006-12-0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들이 많네요.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 밑에서 자라는 찬이는 분명 행운아일 거예요~^^

icaru 2006-12-0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 님~ 이 책은 애 낳기 전까지 읽은 건데, 천천히 읽었서 그랬는지 쉽게 써져서 그랬는지... 잘 읽혔고 좋았어요.
단, 리뷰 쓰기는 역부족이더래요. 에휴~

속삭님!!! 축하드려요~ ㅎㅎ

펑크 님.. 에구 넘 오랜만이라 눈물 날라카네~ 고마워요..

2006-12-12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픽팍 2006-12-1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절구절이 다 명언이네요. 너무나 좋은 책 같습니다. 이런 책 읽으시는 님도 분명 좋으신 분일 듯 ㅋ

icaru 2006-12-1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 님!! 오랜만요~ 아직 복무 중이신거죠? 얼마 안 남으신거죠?
예~ 저렇게 좋은 책을 만나면 밑줄 긋느라 정신없어져요 ㅋㅋ 좋은 책 맞아요! 두고두고 보게 될~ 좋은 책 읽고 좋은 사람 되고 싶은 바람은 있는데... 님도 아다시피.. 좀 별개죠 큭

픽팍 2006-12-1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남았어요 아직도 7개월이라는 시간이 제 앞으로 펼쳐져 있답니다
눈물만 납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구판절판




그 사람은 제 모든 것이었어요... 여자가 입을 열자마자 그렇게 말했을 때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더구나 여자가 남자를 두고 내 모든 것이었다고 단호하게 뱉을 수 있는지. 나는, 이게 옳아요, 라는 확신과 신념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언제나 그랬듯이 아마도 막연하게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을 두고, 설사 그것이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대상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p.27쪽



"(...)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가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p.159쪽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p.218쪽



하기는 석가모니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제일로 놀라운 일은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그 사실을 모두가 잊고 사는 일이었다.-p.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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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7-1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네요.

icaru 2006-07-1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잉크냄새 님 서재 방명록으로 향하려던 중이었어요...
잉크냄새 님은 어느 쪽이신지요~ 마음이 더 가는 쪽?
저는 그때그때 다른 듯 ^^

2006-07-14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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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즈음 만들어지는 공동주택의 대문은 대개 밖을 향해 열린다. 이는 서구적 건축양식의 결과이며 사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문은 무엇을 맞아들인다는 개념이 강한 반면 서구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우리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배려하는 편에서 안으로 당겨서 열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밖으로 밀어서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극과 적극의 개념을 낳고, 다시 보수적이거나 진취적 혹은 폐쇄적이거나 개방적인 사고를 만들어 주며, 그것이 곧 민족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문이 안으로 열렸던 것은 아니다. 대문만 그랬을 뿐 광이나 부엌과 같은 곳의 문은 바깥으로 열렸다. 그것은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활용하려는 지혜였던 셈이다.
-p.49~51쪽

"할배요. 이거는 와 여다 이래 묶어 놓는데예?"
"와는, 니 똥 냄새 나지 말라꼬 해 놓는 기지. 이거 이래 해 노마 냄새도 안 나고 파리도 안 꼬이는 기라" 라며 빙긋 웃음을 짓곤 했다. 그것은 요즈음으로 치면 방향제나 살충제와 마찬가지였다. 갓 딴 모과를 매단 다음날.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킁킁대며 이것저것 뒤죽박죽된 냄새 가운데에서 모과 냄새를 찾아내며 힘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흥겨운 추억이다.

-p.82~83쪽

"옛날, 옛날에 호래이 담배 피우던 때라, 집에 신이 살았다 말이라. 저 대문 안 있나. 그 사는 신이 냄편이고 부엌에 사는 신 안 있더나. 종재기에 물 떠 놓은 거 안 있더나. 조왕이라 카는 거. 그기 할마이라. 그 둘 사이에 너것들만한 아들이 일곱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저 큰길에서 집에 들어오는 골목을 지키는 신이라. 그란데 문간신, 이 영감재이가 바람을 피왔어. 그래 조왕 할마이 말고 또 다른 색시를 하나 얻었는데 그기 사는 데가 변소라. 변소가 집에서 젤 멀리 안 있더나. 그러이 영감재이가 할마이 모리게 젊은 색시를 감춰 논 거라 이말이라. 암만 그래도 손꼽쟁이만한 집인데 조왕 할마이가 그걸 모리겠나. 그래 그 할마이가 영감재이가 색시를 지벵 데리다 놨다는 걸 알고부터는 변소각시하고 둘이 영감재이 하나를 놓고 사흘 두루 쌈만한다 말이라. 맨날 얼굴을 맞대마 쌈질을 해대이 우짜노, 둘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구로 해야지. 그래가 부엌하고 변소하고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기라. 그래 한참을 살다가 변소각시가 우째우째 해갖고는 고마 조왕 할마이를 죽이 뿟어. 그래 고마 또 조왕 할마이 아들들이 변소각시를 쥑이고 그라다 보이 부엌하고 변소는 천지간에 원수가 된 기라. 그라이 변소에 있는 물건을 부엌에 가주 가마 안 되는 기라. 부엌에 있는 것도 변소에 가주 가마 안 되는 기고. 그런 걸 자꾸 가주 가마 그것들이 싸운다 마링라. 그라마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는 기라. 그라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것나 어데. 엄마가 자구 뭐라 카는 기 그거 때문이라."

-p.86~87쪽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거 아는 놈이 왜 그리 삐뚤빼뚤 살아. 좀 똑바로 살지. 작업하는 것도 다 흐름이 있는 거라. 좀더 해봐.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두는 게 잘하는 거야. 안 되는 거 아무리 아등바등해 봐야 안 되는 거느 안 되는 거야."


-p.141쪽

집이라는 것이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집주인의 정신이 남김없이 집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정신이 물질을 낳는가 하면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한다.



-p.209쪽

집이 초라하다고 그 주인의 생각마저 빈궁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현실과 사고는 집이 가난하면 곧 그의 생각마저도 빈궁한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으니 경계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p.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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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월
구판절판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됐다싶어 이쪽에서도 단념한다. 생각해 보면 늘 이런식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을 어느 시점에선가 단념해온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따윈됐다고 우기는 사람이, 실은 얼마나 그 친절을 필요로하고 있는가. 지금까지는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상대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신을 위해 중간에 포기해 왔다는 것을 짧은 순간에 깨달았던 것이다.
- 40쪽


아니 그러니까 말야. 너처럼 살아도 한평생, 나처럼 살아도 한평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47쪽

태양은 말이지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더 이상 눈이 부시지도 않고, 뭐 아무렇지도 않게 되더라.


-48쪽


"다만 내일부터는 다시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갈 일주일을 앞둔 일요일 밤에 듣기에, 치카게의 목소리가 너무나 칙칙해서 마치 '이번 부는 운세가 아주 저조하니 얌전히 몸 조심하는게 좋겠다' 고 써 있는 운세 란을 읽은 거처럼 지레 김이 빠지고 피로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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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1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다 슈이치 만세-.-/

icaru 2006-06-1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쓸까 말까 하면서~ 다른 분들의 리뷰를 쭈욱~ 살펴보다가... 비숍 님 리뷰도 봤어요~ 제가 할 말을 다 하셨길래~ 전 따로 리뷰 안 쓰기로 했삼 ^^;;;

비로그인 2006-06-1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됩니다!(--!!)

픽팍 2006-11-0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다 슈이치의 저력이 여실이 보여지는 작품이 아닐 수 없지요. 근래 들어 요시다 슈이치의작품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돈은 없고 지름신은 강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