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삼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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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이나 사회 복귀는 대부분 이른바 정상인이 주창하고 계획하며 추진하는 것이 아닐까? (...) 조금이라도 정상인에게 다가가는 것, 병을 치료하는 것, 환각이나 망상을 없애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의젓하게 제 몫을 하는 것, 그런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한 모든 것은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질리도록 발산하는 것이 아닐까? (...)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병을 고치라, 정상인이 되라,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금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든 없든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도 있지 않을까?

-p.80쪽

충돌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거기에는 어느새 느릿하고 불확실하며 변덕스럽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결코 강고한 연대로 지탱된 장도, 명석한 이념으로 지탱된 장도 아니었다. 그저 약한 사람이 그 약함을 유대로 연결된 장이었다. (...)
하지만 거기에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니고 또 목표로 한 것도 아닌, 처음부터 변함없이 관통해온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결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뒤처진 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생활 방식이다. 애당초 그들 안에는 배제라는 말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겹으로, 그리고 몇 번이고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 밀려난 사람들이었으니까. 서로가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가 약함을 유대로 연결되어 결코 배제하지 않고 또 배제당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만들어왔을 때, 거기서 나타난 것은 한없는 평등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관계였다.


-p.86~ p.87쪽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내버려둔다거나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한 그 사람의 문제나 말썽거리, 사귀기 힘든 그 사람의 성격 등을 남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것은 실로 성가신 일이다. 품이 드는 일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사회는, 문제를 막고 말썽의 싹을 잘라버리며 불거져나온 부분을 억누르는 등 모든 것을 관리하기 쉽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궁리해 쌓아올린다.

-p.226쪽


정신장애인이란 누구보다도 정밀도가 높은 센서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한편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은 그 센서의 감도가 낮은 것일까? 그 때문에 분발하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감도가 낮아 인간관계를 애매하게 하고 얼버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에 걸릴 수 없는 사람들은, 겉과 속마음을 약삭빠르게 구분해서 대응하고 타인에 대해 가면을 쓰며 어느새 갑옷을 걸치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그런 요령 좋은 생활 방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위로 오르고 성공하고 계속 상승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 사회에서 그것을 할 수 없어 뒤처지고 밑바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p.265~266쪽

거기서 살아가는 것은 항상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다.
어떤 부조리로 자신은 정신병이라는 병에 걸렸고, 절망 속에서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하는가. 병을 안고 사는 인생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
"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이 인생이 자신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p. 281쪽

만약 베델의 집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길은 전혀 다른 길이 되었을 것이다. 구성원은 내일을 믿고 서로를 격려하며 병을 치료하고 생활을 제대로 갖춰 기술을 익혀 일에 도전하고,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 상승하여 사회 복귀를 이뤄내는 일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에서 시작된 접근을 정반대 길을 걸으려고 한다. 거기서는 최후에는 죽어야 할 존재인 인간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고생하고 고민할 것을 요구받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을 살지 않으면 안 되며, 약함을 유대로 해 서로 관계를 맺고, 한없이 내려가 넓은 대지에 내려서려고 한다.
절망에서 시작해 깊은 환멸을 빠져나가 오로지 내려가기만 하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베델의 집에서는 고생이 주어지고 고민이 권유된다. 절망하는 것이 원조를 받고, 병이라는 것이 긍정되며,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 또는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활 방식이 제창된다. 신기하게 아니면 당연하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p.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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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3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6-05-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달리 교정쟁이 인가요? ㅎㅎ
단순한 게 가장 어려운 거 같아요...
이 책을 읽고, 아주 조금은... 옹졸해지려는 마음이...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을 받았고, 또 그것이 좋았답니다.
 
사랑의 모든 것
벨 훅스 지음, 윤길순 옮김 / 동녘 / 2004년 7월
절판


우리 중 대부분은 아주 일찍부터 사랑이 느낌이라고 생각하도록 배웠다. 어떤 사람에게 깊이 끌리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심리적 에너지를 집중한다. 즉 그들에게 감정을 투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중요해지는 이런 투자 과정을 '카텍시스'라고 부르는데, 펙은 그의 책에서 우리가 대부분 '카텍시스를 사랑과 혼동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런 카텍시스 과정을 통해 어떤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정작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시를 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우기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안다. 그들의 느낌이 카텍시스의 느낌이고,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는 게 사랑이라고 우긴다.



-p.30~31쪽



우리 문화에서 가족이 사는 사적인 공간은 쉽게 독재와 파쇼가 판칠 수 있는, 제도화된 권력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대개 집안을 다스리는 절대적 지배자인 부모가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게 뭔지 결정할 수 있다.

-p.42쪽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는 소통하고 싶은 열정의 자리를 소유하고 싶은 열정이 차지해 버린다. 감정적인 욕구는 충족하기 어렵거나 대개는 불가능하지만, 물질적인 욕망은 훨씬 쉽게 충족할 수 있다.

-p.122쪽


사람들은 공적인 세계에서 정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사적인 삶으로 고개를 돌려 거기서 위안과 도피처를 찾았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기 위해 가족과 관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가정에도 사랑이 없는 황폐한 현실을 접하자 사람들은 엄청난 문화적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직면해, 어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얼마나 많은 걸 살 수 있을지로 측정될 거라고 확신하고 새로운 프로테스탄트의 노동 윤리를 받아들였다. 좋은 삶이 이제는 공동체와 맺는 관계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축적과 쾌락을 좇는 물질주의적 욕망의 충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 지향적인 사회에서 물질 지향적인 사회로 가치가 변한 것에 발맞추어,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 특히 영화배우와 가수들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에서 윤리적인 차원을 묻는 게 갑자기 중요해지지 않게 되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버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부패를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고...

탐욕의 문화가 가진 역설 가운데 하나는 일하지 않고 얻은 이익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 계층은 열심히 일해서 얻은 물질 자원에만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것이다.

-p. 124~126쪽


혼자 있는 것도 사랑하는 기술에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혼자 있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살아 있는 동안 늘 혼자 있는 것의 가치를 강조했다 (...)

(...) "외로움은 고통스럽지만, 고독은 평화롭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하지만, 고독은 다른 사람의 독특함을 존중해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다 "


-p.155쪽


인기 있는 자기계발서 중 상당수가 성차별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 이런 책들은 흔히 선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의 습관들을 남성 지배를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든다. 존 그레이는 이것에 대해 '남성은 자기 굴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남자가 혼자 있고 싶을 때 방해하는 여자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레이는 변화가 필요한 것은 여성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랑을 알려면,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형태의 성차별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집착을 단호히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김없이 성별 갈등으로,

-p.169~170쪽

사랑을 하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사랑을 하면 늘 기쁨과 행복 속에 있을 거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랑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다. 사랑을 시작해도 고통과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려면 이런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폭로해야 한다. (...) 사랑을 실천하려면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건설적인 고통과 막무가내로 상처를 입는 것을 구별할 수 있다.




-p.174~175쪽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그녀의 첫 번째 책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에서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사상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것이 파괴적인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의지나 선택할 능력이 없어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망상 때문이다. 수많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탓에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이런 환상은 우리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사랑을 로맨스로 대체한다.
로맨스가 프로젝트로 그려질 때, 또는 대중 매체, 특히 영화가 우리에게 그렇게 믿도록 하려 할 때, 기획을 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은 여성이다.


-p.183쪽

사랑은 의지의 행위이다. 즉 의지이며 행동인 것이다. 의지에는 선택이 따른다. "우리가 반드시 사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이며,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우려는 의지라고 말한다.

-p.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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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1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우려는 의지.. 새기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6-05-1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느끼고 깨닫고 끄덕거리다 갑니다.^^

2006-05-14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5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책은 점점 더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순응해야만 하는 일종의 상품이 되어 갔다. 대량 생산된 책은 돈만 지불한다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책의 소유가 곧 소유자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책을 실내를 꾸며주는 고상한 장식품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관습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또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 신분이나 지식의 유무를 드러내는 가치 척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도 대략 이 시기와 일치한다.



-p.179쪽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삶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188쪽


< 회복기의 환자> 1923, 24년 피츠윌리엄 박물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우리는 이 그림에서 피곤해 보이지만 몹시 단호한 표정의 병약한 젊은 처녀를 본다. ... 그림을 그릴 때 사용된 주저하는 듯한 양식은 화가와 그림 속 인물 모두가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패의 위험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힘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감각 기관의 과민 반응,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신경 상태, 점증하는 자아 집중과 함께 진행되는 신경 쇠약 상태에서 그녀의 많은 동시대인은 지금의 시기와 예술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그웬 존의 감정 상태를 보았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다음과 같은 가정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즉 이런 감정 상태에서는 독서가 도움이 될 수 있고, 다른 경우라면 신경과 의사가 맡았을 역할을 자기 자신이 맡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다. 병든 사람은 외부에서 생긴 추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개입이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도 완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그것이 정확하게 독서의 정의, 오직 독서에만 해당하는 정의라고 말했다. 독서는 피곤한 상태에서 다시 정신력과 강한 의지를 돌려주는 치료제처럼 작용한다. 독서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p.227쪽

<<메릴린 먼로가 <율리시즈>를 읽다.>> 1952년

"그녀가 읽었을까, 아니면 읽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자제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20세기 금발의 섹스 표상인 메릴린 먼로가, 20세기 고급 문화의 표상이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 소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평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었을까? 혹은 그냥 읽는 척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같은 사진집에 연속해서 찍은 다른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에서도 메릴린이 읽고 있는 것은 바로 조이스의 책이기 때문이다.
문학 교수 리처드 브라운은 그것이 궁금했다. 결국 연속 사진 촬영이 이루어지고 난 지 30년이 지나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사진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이브 아널드는 즉시 자신은 메릴린이 이미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대답했다. 메릴린이 자신은 그 책의 어조를 좋아하며, 그것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소리 내서 읽고 있지만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고 사진가는 말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두 사람이 미리 약속한 장소에 멈추었을 때 메릴린은 <율리시스>를 읽고 있었으며, 그동안 이브 아널드는 필름을 끼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녀는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p.249 쪽

책을 읽는 사람은 깊이 생각을 하게 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갖게 된다.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열에서 벗어나고,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적이 된다.


-p.256쪽

"여자가 읽은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Marie von Escenbach의 말이다. 책을 읽는 여자는 근거를 묻고, 그리고 근거를 묻는 것은 단단하게 맞물린 세상의 규칙을 파괴한다.
-p.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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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험하다면서 이리도 많이 읽으시나이까!!!

icaru 2006-05-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는요~ 무신... 그동안 칩거생활의 묵은 때를 벗고 있는 중이랄까요~ 호호..(여승 같은 말을 하고 있네요^^) 잉과장님은 어찌 그리 뜸하셨을꼬~

하루살이 2006-05-0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경우엔 책을 읽는 사람이 깊이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벽을 쌓는 건 맞는것 같아요. 님은 반대이실거라 믿으면서...

2006-05-14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2 - 이주헌의 행복한 그림 읽기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5년 7월
구판절판


또, 고대 문명의 문화 유산들이 자아내는 유구하고 유장한 ‘여명의 빛’ 역시 바쁜 현대인들에게 먼 고향의 위안처럼 그 싱그러운 감동을 여전히 전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쪽

혁신적인 또는 혁명 적인 예술 작품이 출현하면 사람들은 이를 높이 평가하다가도 그 작품이 어떤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곧잘 질타하곤 한다. 사람들이 예술에서 삶의 대안을 차는 것은 현실에서의 결핍과 모순을 보충,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자연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부족함에 대한 대안 또한 온전히 담고 있는 존재다. 그러나 자연이 그 대안을 보여 주자마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210쪽

미술 평론가 존 버거가 쓴 <피카소의 성공과 실체>에 잘 나옴.... 사회 분위기가 피카소의 예술에 끼친 영향 - 피카소는 정체를 거듭해온 스페인의 문화적 전통에 의지해 서유럽 예술의 지적 탐구심과 연구 노력을 철저히 무시했다. 무정부주의가 대표하듯, 일거에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리려는 사회의 정신적 분위기로 인해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스페인의 아들은, 그의 탁월한 재능으로 인한 천재 신화의 형성과 함께 예술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무엇’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예술은 인간들이 애써 노력한다고 성취되거나 달성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 어느 순간 스스로 발현하는 그런 것이다.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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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4-2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의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 어느 순간 스스로 발현하는 그런 것이다."
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어쩌면 이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icaru 2006-05-0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단 생각해요 ㅎㅎ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품절


가부장적 아니무스의 부정적 특성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부장적 남성의 특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고집불통이고 권력과 지배욕이 강하다. 그래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다. 협동적인 태도는 허약한 인간의 특성이라고 보기 때문에, 고독한 전사의 역할을 맡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대화를 통해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승리가 아니면 패배라는 식의 전쟁을 더 선호한다.

: 다행이지,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식의 전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의 윈윈 전략이 선호되는 것처럼.
-176~177쪽


나는 아직도 첫 직장생활의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다. 회의가 있을 때면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발언권을 빼앗기기 일쑤였고, 우리가 제출한 제안이 통과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러다가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을 하면서 나는 ‘킬러의 말투’라는 개념을 배우게 되었다. ‘킬러의 말투’란 상대방을 무장해제시켜 입을 막아버리는 어법이나 대화 모델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에도 나온 내용이잖아요." 같은 문장을 들 수 있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상대방의 의욕을 꺾는’ 방법도 상대방 입을 막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효과가 가장 뛰어난 기술로는 소위 ‘판 튀기’ 전법이 있다. 상대방이 무슨 마을 하든 상관없이 계속 굽히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 저자는 이 트레이닝을 달달 외우고 이 기술을 적극 활용하였다고, 그랬더니 팀의 권력 관계가 뒤집히고, 여자들이 승리를 얻었다고. 그러나 '이게 무슨 짓이었을까?' 라고 저자는 회상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과 똑같은 무기를 사용했고, 결국 그들의 정체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가부장의 전쟁놀이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자 같은 여자’라는 개념은 바로 남자와 똑같이 싸우는 그런 류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남자처럼 잘 싸울 수 있기 위해 그녀가 치러야 하는 심리적 희생은 너무나 엄청나다.
-177~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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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06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을 무, 무장해제시키고 이, 입을 막아버려요? 왜 자꾸 샤론 스톤의 은밀한 몸짓이 생각 나는지..에헴!!(머리 좔래좔래 털어버리구..) 저두 178쪽의 내용엔 좀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우리가 싸우는 것은 남성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평등한 관계와 의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식의 논쟁은 서로에 대한 증오만을 부추겨 세울 거 같아요. 마치 남성도 얘 낳아봐라, 여성도 군대가야 한다, 와 같은 소모적이고 지겨운 논쟁들처럼요.

icaru 2005-12-0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샤론스톤의 원초적 본능에서의 몸짓을... 또다른 무장해제라고 할 수 있곘슴다!!
참...딜레마예요... 저렇게(킬러의 말투) 싸우는 방식은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 방식 외엔 달리 통하지 않을 듯한 집단이 많으니...쩝쩝...

2005-12-14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14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15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15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12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