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요즈음 만들어지는 공동주택의 대문은 대개 밖을 향해 열린다. 이는 서구적 건축양식의 결과이며 사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문은 무엇을 맞아들인다는 개념이 강한 반면 서구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 우리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배려하는 편에서 안으로 당겨서 열었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밖으로 밀어서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극과 적극의 개념을 낳고, 다시 보수적이거나 진취적 혹은 폐쇄적이거나 개방적인 사고를 만들어 주며, 그것이 곧 민족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문이 안으로 열렸던 것은 아니다. 대문만 그랬을 뿐 광이나 부엌과 같은 곳의 문은 바깥으로 열렸다. 그것은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활용하려는 지혜였던 셈이다.
-p.49~51쪽

"할배요. 이거는 와 여다 이래 묶어 놓는데예?"
"와는, 니 똥 냄새 나지 말라꼬 해 놓는 기지. 이거 이래 해 노마 냄새도 안 나고 파리도 안 꼬이는 기라" 라며 빙긋 웃음을 짓곤 했다. 그것은 요즈음으로 치면 방향제나 살충제와 마찬가지였다. 갓 딴 모과를 매단 다음날.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킁킁대며 이것저것 뒤죽박죽된 냄새 가운데에서 모과 냄새를 찾아내며 힘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흥겨운 추억이다.

-p.82~83쪽

"옛날, 옛날에 호래이 담배 피우던 때라, 집에 신이 살았다 말이라. 저 대문 안 있나. 그 사는 신이 냄편이고 부엌에 사는 신 안 있더나. 종재기에 물 떠 놓은 거 안 있더나. 조왕이라 카는 거. 그기 할마이라. 그 둘 사이에 너것들만한 아들이 일곱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저 큰길에서 집에 들어오는 골목을 지키는 신이라. 그란데 문간신, 이 영감재이가 바람을 피왔어. 그래 조왕 할마이 말고 또 다른 색시를 하나 얻었는데 그기 사는 데가 변소라. 변소가 집에서 젤 멀리 안 있더나. 그러이 영감재이가 할마이 모리게 젊은 색시를 감춰 논 거라 이말이라. 암만 그래도 손꼽쟁이만한 집인데 조왕 할마이가 그걸 모리겠나. 그래 그 할마이가 영감재이가 색시를 지벵 데리다 놨다는 걸 알고부터는 변소각시하고 둘이 영감재이 하나를 놓고 사흘 두루 쌈만한다 말이라. 맨날 얼굴을 맞대마 쌈질을 해대이 우짜노, 둘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구로 해야지. 그래가 부엌하고 변소하고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기라. 그래 한참을 살다가 변소각시가 우째우째 해갖고는 고마 조왕 할마이를 죽이 뿟어. 그래 고마 또 조왕 할마이 아들들이 변소각시를 쥑이고 그라다 보이 부엌하고 변소는 천지간에 원수가 된 기라. 그라이 변소에 있는 물건을 부엌에 가주 가마 안 되는 기라. 부엌에 있는 것도 변소에 가주 가마 안 되는 기고. 그런 걸 자꾸 가주 가마 그것들이 싸운다 마링라. 그라마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는 기라. 그라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것나 어데. 엄마가 자구 뭐라 카는 기 그거 때문이라."

-p.86~87쪽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거 아는 놈이 왜 그리 삐뚤빼뚤 살아. 좀 똑바로 살지. 작업하는 것도 다 흐름이 있는 거라. 좀더 해봐.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두는 게 잘하는 거야. 안 되는 거 아무리 아등바등해 봐야 안 되는 거느 안 되는 거야."


-p.141쪽

집이라는 것이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집주인의 정신이 남김없이 집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정신이 물질을 낳는가 하면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한다.



-p.209쪽

집이 초라하다고 그 주인의 생각마저 빈궁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현실과 사고는 집이 가난하면 곧 그의 생각마저도 빈궁한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으니 경계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p.2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