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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 3대 스포츠 하나인 월드컵. 월드컵 이야기가 나오면 지구는 어느 때보다 흥분의 도가니다. 세계적인 스타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으니 그렇다. 그들의 멋진 플레이에서 우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90분 내내 우리는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공을 따라간다. 90분이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축구공 없이는 축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라운드 밖에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얼마든지 축구공 없이 축구를 할 수 있다. 우리는 발(足 )이 아니라 입으로 축구를 할 수 있다. 왜냐면 문화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는『문화의 패턴』에서 ‘집단의 단체적인 행동은 각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진 세계이며 그 세계로부터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꾸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1억 원 당첨작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 ‘억’ 소리가 나온다. 한마디로 억세게 좋았다가 억세게 나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렇게 억센 남자는 축구 때문에 아내와 결혼했다. 그러나 동시에 축구 때문에 아내가 결혼했다. 와/가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것은 남자의 말대로 인생이 엉망이 될 정도다. 전자가 나와 아내가 한 몸이지만 후자는 한 몸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일까? 축구를 단순히 보고 즐기는 시대는 사라졌다. 축구를 분석하고 전략 전술을 구사한다. 때로는 선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감독이 된다. 녹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축구는 이제 더 이상 축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축구는 예술이며 발칙한 상상력이다. 무엇보다도 축구는 계속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아내가 남자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축구와 아내의 결혼이라는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터져 나오는 남자의 ‘억’소리는 아내의 강력한 태클의 메아리다.
작가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이라는 문제를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명쾌하게 그리고 있다. 남녀는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라는 팀을 이끌며 더블 매치 게임을 펼친다. 남자의 슬로건이 지구 방위대며 여자의 슬로건은 클럽, 이상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공격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결정적인 한 골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아내의 반격이 시작된다. 골기퍼를 2명이나 기용하고 두톱체제로 공격력을 배가시킨다. 또한 심판을 매수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내의 반칙과 변칙적인 공격 앞에 남자의 공격은 골대를 벗어난다.
그래도 남자는 공격을 멈출 수 없다. 비록 남자의 공격이 아내의 토탈사커 내지 빗장수비에 걸려 실패하더라도 한 골이면 험난한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한 골을 넣는다면 남자는 아내보다 한 골을 더 넣으려고 한다. 남자는 아내를 지키려고 한다. 남자는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며 결혼을 방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처다부제라는 매우 도발적인 전술로 남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아내의 공격은 느슨하면서도 치명적이다.
21세기는 혼돈의 시대다.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가치들이 해체되고 있다. 아내가 바라는 일처다부제라는 모토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내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아내는 남자의 현재라는 관습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을 하는 셈이다. 남자의 현재는 펠레같은 축구 황제다. 하지만 아내는 지단같은 아트사커다.
누가 승리할까? 월드컵 결승전을 보는 듯한 긴장감이 있고 속도감도 있다. 그리고 골키퍼와 일대일 부딪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결승전은 곧 남녀의 사랑싸움이다. 결승전에는 무승부가 없다. 우리는 승리하는 쪽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결승골은 위험하다. 그래서일까? 박수가 나올 듯 하면서도 위험해서 좀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티스두타가 “모든 것은 무너져도 우리에게 항상 축구가 있다”라고 했듯이 이 책은 “문학이 흥행에 실패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항상 소설이 있다”는 말처럼 소설이 축구처럼 흥미진진하길 바란다. 작가는 소설의 빈틈을 노리면서 우리에게 젊고 날카로운 패스를 연거푸 한다. 그래서 우리가 골대를 향하여 통쾌하게 슛을 날릴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