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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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곤충일까? 포유동물일까? 우리가 아는 꿀벌은 곤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가 있다. 그는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를 지은 위르겐 타우츠였다. 이 책에서 그는 꿀벌 군락을 두루 살피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꿀벌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앞서 우리는 두 명의 생물학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사람은 윌리엄 모튼 윌러(William Morton Wheeler)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요하네스 메링(Johannes Mehring)이다. 윌러를 주목하는 이유는 ‘초개체(superorgnism) 개념’에 있다. 초개체 개념이란 꿀벌은 각각 별개의 생명을 지닌 개체이지만 언제나 군락 전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링을 주목하는 이유는 ‘척추동물’에 있다. 메링은 “일벌은 생명 유지와 소화를 담당하는 몸이고, 여왕벌은 여성의 생식기이며, 수벌은 남성의 생식기다.”라며 꿀벌의 군락을 척추동물이라고 했다.

이러한 꿀벌에 관한 특성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는 앞서 말했듯이 ‘포유동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낮은 번식률, 엄마젖과 자매젖이라 불리는 로열젤리의 유사성, 벌집이라는 ‘사회적 자궁’, 포유동물의 체온이 약 36도 관련하여 유충의 체온을 약 35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점, 포유동물의 인지능력에 견줄 만한 꿀벌의 집단 지성이 각각 포함되어 있다. 이중에서도 저자는 꿀벌 군락의 생리학적 필수 요소는 벌집이라고 말했다. 꿀벌 군락에 있어 벌집은 거주공간, 저장 공간, 그리고 육아 공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꿀벌 군락을 사회생리학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꿀은 피보다 진하다.’라고 말하면서 꿀벌 군락의 연결고리를 분석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진화의 가장 우선적인 전제는 자신의 종(種)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꿀벌의 짝짓기를 보면 다윈 스스로도『종의 기원』에서 ‘꿀벌의 일벌들은 자신의 이론을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존재’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여왕벌에서 태어난 생식능력이 없는 암벌 즉 일벌들은 모두가 같은 엄마가 낳은 자식들이다. 그리고 암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기 위해 스스로 자식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어머니가 가능하면 자매들을 세상에 많이 배출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암벌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저자는 ‘혈연선택’이론으로 꿀벌의 생물학적 특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동물들이 협동적이고 매우 이타적인 행동하는 이유를 알려주며 꿀벌들이 진화하면서 ‘외톨박이’에서 사회적 생물로 옮겨간 현상을 적절하게 설명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윌리엄 해밀턴이 대중화시킨 ‘대립유전자’을 개체군에 많이 확산시키는 데 있어 친척끼리 서로 돕는 행동은 도움을 베푸는 자와 그의 대립유전자에도 유익이 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의 요지는 꿀벌의 진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초개체라는 꿀벌 군락에 있다. 다른 동물들이 개체에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진화했다면 꿀벌은 집단 간에 협력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능력에는 ‘복합적응계’라는 특성을 발휘하는데 “서로 병행적으로 끊임없이 행동하고 동료 행위자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많은 행위자들로 이루어진 역동적인 네트워크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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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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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폭력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간디는『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수탁자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만일 내가 유산을 받거나 장사나 일을 해서 상당한 돈을 갖게 된다면 나는 그 모든 돈이 내게 속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된다. 내게 속한 것은 대다수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보다 나을 것 없는 명예로운 생계수단의 권리이다. 내 재산의 나머지는 공동체에 속하고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한다.

오늘날 산업 자본주의 위기 속에 ‘복지’는 제국을 넘어서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다. 적어도 인간의 생존권을 억압하는 방식에 맞서는 진보적인 가능성이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인지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위를 적나라하게 자극해왔던 박노자는『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 미래사회를 ‘복지 자본주의’라고 역설했는데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의 ‘왼쪽으로’는 혁명인가? 아니면 급진적 개혁주의인가?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급진적 개혁이 최선(最善)이고 혁명은 차선(次善)이라는 구분이 명확해진다. 그가 말하는 급진적 개혁은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령, 대형 기업의 국유화, 토건 국가 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전환, 부유층을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의 불식, 국방 예산 감축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촛불집회나 총파업 같은 밑으로부터의 직접적 압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면도날은 날카롭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느 때보다 후퇴하고 있는 탓에 “모든 게 이명박 탓”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대중들의 건전한 참여 방법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좌파적으로 오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토끼몰이 식으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개편하려고 했던 것이 단순한 해프닝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는 정말로 우리의 경제를 살리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살리기는 시대착오적이며 권위적이다. 저자 말대로 세계는 이미 수출국이 선진국이 되는 시대는 과거에 불과하다. 그 보다는 식량 위기 시대에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아래 삽질 공화국으로 억척스럽게 땜질하고만 있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살리기에는 천문학적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초등생 무료급식은 완전 삭감이라는 불균형 발전의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만 당선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한국에서 경제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경제 대통령에 잠재된 박정희 시대에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및 죽은 독재자의 망령이라는 모순을 비판하는데 우리는 실패했다. 이로 인해 ‘식민지근대화론’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현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저자는 ‘왼쪽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왼쪽이 지금의 ‘자본주의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왼쪽이라는 ‘대듦’의 대중적 반란을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즉 대중들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인식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때 비로소 다양한 방식의 저항과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순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를 향하여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쏘아대는 박노자의 진실은 불편했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한국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왼쪽으로 행진해야 한다는 각성은 의미심장했다. 더불어 왼쪽으로의 방향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좀 더 정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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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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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였던가? 그때의 혼란스러움은 두려웠다. 추석을 보내고 귀경하는 길이었다. 어둠이 달라붙었을 때 이미 고속도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끈적거리는 지루함이 못내 싫었을까? 운전을 하고 있던 친구가 국도로 달리자고 했다. 다행히 차의 속도는 빨라졌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질흙같이 어둡고 낯선 곳을 자동차의 하이빔 만으로 의지한 체 돌파하기에는 친구와 나는 나약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방향을 잃어버렸고 때로는 길을 헤매다 사고 날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초초하게 보내다가 문득 마을입구에 ‘생사리(生死里)’라고 적혀 있는 대리석을 지나쳤다. 생사리….

 
공지영의『도가니』를 읽고 나니 ‘생사리’가 떠올랐다. 무슨 까닭인지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당혹스러움은 이 소설에 나오는 강인호 앞에 펼쳐진 무진과 생사가 다르지 않다는 데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지도책과 도로 곳곳에 표지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엉뚱한 길을 달렸던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쉽게 어둠에 파묻혀 쓸모없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백지상태에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생사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공지영이 선택한 무진시(霧津市)는 암담했다. 무진 즉 안개가 1차적인 이유였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안개 탓이다.’라는 일종의 위선에 찬 인간들의 끔직한 현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감추고 싶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추한 안개였다. 공지영 말대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남들과 달리 몸을 불편한 장애아에게 자의반 타의반 장애시설로 수용되는 것은 단지 그들만의 행복은 아니었다. 장애아를 보살펴야 하는 부모들, 더 나아가 이들 모두들 책임져야 할 자애(慈愛)학원에게도 행복이었다.

하지만 자애학원에서 잘 먹고 잘 놀아야 할 장애아들에게 행복은 멀리 있었다. 장애아들에게는 당장의 배고픔과 외로움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는 선생들 앞에서 장애아들은 눈치를 봐야 했다. 이와는 달리 장애아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들의 성(性)을 장난감마냥 가지고 놀았던 학원 이사장 앞에서 그들은 눈치를 볼 수 없었다. 눈치를 버려야 할 만큼 장애아들의 마음은 이미 병들어 있었다. 성폭행을 당한 장애아 중에서 한명은 절벽에서 떨어졌고 또 한명은 기찻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장애아들의 절박한 입장은 철저하게 가려졌다. 이 모두가 “안개 탓”이었다.

『도가니』를 통해 자애학원의 더러운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장애아들을 성폭행한 짐승같은 학원 이사장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물컹거렸다. 그리고 이내 분노의 도가니가 되었다. 왜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불행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성폭행을 당했던 장애아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냉정하게 심판해야 할 법(法)은 전혀 119 구조대 같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인 학원 이사장의 잘못을 한 순간의 불장난이라고 하면서 물러서고 말았다. 법마저 걷잡을 수 없는 양심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지경이니 굳이 다른 사람들을 몹쓸 인간이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라는 자괴감이 맴돌았다. 정말이지 “학원 이사장과 장애아의 인권이 같은 줄 알아요?”라는 뜨끔한 질문에 “예‘라고 답하지 못했다. 학원 이사장의 잘못은 분명한데 재판 결과 놀랍게도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꼼짝 못하고 갇혀버리는 것은 정의(正義)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은 몇 번이나 벼락을 치면서 꽝꽝 울렸다. 맞딱드리고 싶지 않은 현실에 불편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재판장 당신을 고소합니다. 당신은 죽은 거나 마찬가집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켜야 했던 것은 작가 말대로 진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이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즉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자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절망때문이었다.

진실의 경계(境界)! 지금 이 말이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로 일했던 강인호가 자애학원의 비리에 맞서 싸우다가 끝내는 패배한 짐승이 되어 도망간 것을 굳이 탓할 까닭이 없어보였다. 만약 강인호같은 막막한 상황이었다면 나또한 그랬을 것이다. 눈 한번 감으라는 아내의 바람을 외면하고 남을 위해 그토록 자신있게 할 수는 있어도 부끄러운 자신의 결점이 드러날 때 설령 어렵게 진실을 얻었다고 해도 진실을 지켜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은 동화도 환상도 아니었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을 헤아려보면 그 안에는 공지영 만의 뜨거운 것이 담겨져 있었다. 작가의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이렇게까지 불편해지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더 깊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공지영에게는 인생의 절박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도가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덕적 폐허 시대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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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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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간식(宵衣旰食)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이 국정을 수행하느라 새벽에 옷을 입고 일을 시작하여 한 밤에 밥을 먹는 다는 뜻이다. 정말로 왕이 그랬을까? 그런데『승정원일기』를 보면 국왕의 바쁜 하루가 적혀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역대 왕 중에서 정조가 가장 바쁘게 국정을 다스렸음을 알 수 있다. 정조의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되어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로 인해 왕의 업무를 ‘만기(萬機)“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깔끔하게 담아낸 책이 바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들이 엮은『조선 국왕의 일생』이다. 이 책 덕분에 조선 국왕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극(史劇)이라는 낡고 오래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다. 저자들이 하나같이 규장각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두루 살피면서 조선 국왕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조명하고 있어 충분히 읽어볼 만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규장각은 조선왕조 최고의 도서관이며 왕립학술기관이었다.

먼저 왕의 학문, 제왕학(帝王學)을 살펴보면 성리학의 천명론(天命論)에 있다. 성리학 이전까지는 절대적인군주였다. 하지만 성리학의 영향으로 국왕이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인간들의 우두머리 즉, 수양을 통해 완성시키고 도달해야 하는 ‘미완성의 우두머리’로 변화되었다. 이로 인해 전자의 학문이 패도(覇道)의『정관정요』에 있었다면 후자의 학문은 왕도(王道)의『대학연의』에 있었다. 특히 왕도의 성리학적 수양론은 조선 국왕을 성인 군주로 만드는 사상이었다.

다음으로 왕실의 건강법을 살펴보면 식치(食治)이다. 『예기』에서 예(禮)는 일이 생기기 전에 제재하는 것이요, 법(法)은 생긴 후에 제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학의 근본은 덕치(德治)인데 이것이 곧 예치(禮治)다. 이러한 논리는 질병의 치료에도 적용되었다. 병이 나기 전에 양생(養生)이 중요했다. 여기에서 덕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식치며 법치에 해당하는 것이 약치(藥治)다.  

그리고 임금이 사는 집, 궁궐의 전각 이름에는 성리학적 군주가 되는 방법이 담겨져 있다. 가령 경복궁을 살펴보면 왕실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 편전(便殿)인 사정전(思政殿),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으로 각각 구분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조선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것은 편전인데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펼쳐지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책은 왕의 반쪽인 왕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왕비는 그 자체가 정치적 존재였다. 즉 왕비가 된다는 것부터 정치적이며, 왕자를 낳는 것도 정치적이며, 왕을 보살피는 것도 정치적이었다. 이런 왕비가 되는 과정은 신부 공채라 할 수 있는 삼간택(三揀擇)의 절차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특채였다. 즉 간택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앞서 말했듯 왕비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왕자를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비의 침전인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과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의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 국왕의 일생을 통해 조선의 궁중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단순한 가르침이거나 즐거움에 있지는 않았다. 일찍이 헤럴드 블롬은『세계 문학의 천재들』에서 “나는 지혜가 삶을 위한 문학의 진정한 유용성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위대한 문학이란 곧 지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규장각에 있는 다양한 기록물들을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귀중한 지혜를 보여주는 좋은 길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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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껴안고 -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
존 다우어 지음, 최은석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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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어떻게 재건되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더글러스 맥아더에 있었다. SCAP(연합국 사령부)가 맥아더 사령부라고 불릴 정도였다. 전후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는 미국만이 통제권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식민지에 대한 맥아더의 메시아적 열정이 폭발적으로 작용했다. 전쟁으로 인한 황폐해진 일본을 안정시키는 핵심으로 군국주의 일소와 민주화를 구축했다. 이것이 그의 ‘미국화’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맥아더에게는 일본의 특수한 권력 형태인 ‘천황(天皇)’을 간과할 수 없었다. 존 다우어은『패배를 껴안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갈등을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책들이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강조하고 있어 정작 패전국 일본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강대국이 되었는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이 책은 제목에 나와 있듯 ‘승자(미국)과 패자(일본)의 껴안기’라는 전후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먼저 승자의 ‘천황 껴안기’를 다루고 있다. 승자에게 전쟁의 최고 책임자인 천황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했다. 일본은 천황에 의해 신민(臣民)화된 나라였다. 그러나 승자의 점령 후 일본 국민의 교다쓰(허탈) 상태라는 심리적 붕괴가 일본 최대의 적이 되었다. 이런 불안함을 느낀 승자는 천황을 평화와 민주주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즉 신격화된 천황을 국민에게라는 ‘쐐기정책’을 펼쳤다.

다음으로 승자의 ‘관료주의 껴안기’이다. 앞서 말했듯 승자에게 일본은 문화적으로 이국적이었다. 승자의 문화만으로 통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승자의 선택은 일본을 직접이 아닌 간접통치를 하게 되었다. 이른바 상명하복이라는 관료주의는 일본 정치체제 중에서도 가장 비민주적인 기구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민주화를 실현하려고 했던 승자의 정책은 관료주의를 통해 ‘신식민지혁명’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승자의 시민이 되었다.

이렇듯 승자의 껴안기가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패자의 껴안기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좀 더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가령, 가스토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종전 후 일본에서는 매춘과 퇴폐가 성행하였다. 이는 일본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방파제였지만 패전에 뒤이은 하위문화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단 한명의 미국인만을 상대하는 판판은 미국식 소비주의 문화의 선구자인 동시에 충성(忠誠)을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가스토리 문화에서는 섹스와 혁명이 같았으며 ‘니쿠다이’가 칭송되면서 개인의 육체가 관능화되었다.

한편, 패자의 '과학의 껴안기'는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일본은 패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실용주의적으로 직결시켰다. 원자폭탄에 항복했던 일본은 패전의 결정적 요인을 바로 ‘사이언스’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발 빠르게 군수산업을 기계공업으로 전환하면서 ‘과학 기술’을 가속화하였다. 더구나 한국전쟁이라는 뜻밖의 행운을 이용해서 일본은 에드워즈 데밍(W.Edwards Deming)이 제창한 ‘품질 관리’를 받아들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일찍이 루스 베네딕트는『국화와 칼』에서 일본의 이중적인 성격을 말한 바 있다. 국화와 칼이 말해주듯 이 책에서 그녀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틀로 일본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 면에서 전후 일본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인 존 다우어의『패배를 껴안기』는 껴안기를 패전 후 다른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화와 칼에 견주어 보면 ‘육체와 과학’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일본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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