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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비폭력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간디는『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수탁자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만일 내가 유산을 받거나 장사나 일을 해서 상당한 돈을 갖게 된다면 나는 그 모든 돈이 내게 속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된다. 내게 속한 것은 대다수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보다 나을 것 없는 명예로운 생계수단의 권리이다. 내 재산의 나머지는 공동체에 속하고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한다.
오늘날 산업 자본주의 위기 속에 ‘복지’는 제국을 넘어서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다. 적어도 인간의 생존권을 억압하는 방식에 맞서는 진보적인 가능성이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인지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위를 적나라하게 자극해왔던 박노자는『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 미래사회를 ‘복지 자본주의’라고 역설했는데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의 ‘왼쪽으로’는 혁명인가? 아니면 급진적 개혁주의인가?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급진적 개혁이 최선(最善)이고 혁명은 차선(次善)이라는 구분이 명확해진다. 그가 말하는 급진적 개혁은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령, 대형 기업의 국유화, 토건 국가 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전환, 부유층을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의 불식, 국방 예산 감축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촛불집회나 총파업 같은 밑으로부터의 직접적 압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면도날은 날카롭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느 때보다 후퇴하고 있는 탓에 “모든 게 이명박 탓”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대중들의 건전한 참여 방법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좌파적으로 오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토끼몰이 식으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개편하려고 했던 것이 단순한 해프닝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는 정말로 우리의 경제를 살리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살리기는 시대착오적이며 권위적이다. 저자 말대로 세계는 이미 수출국이 선진국이 되는 시대는 과거에 불과하다. 그 보다는 식량 위기 시대에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아래 삽질 공화국으로 억척스럽게 땜질하고만 있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살리기에는 천문학적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초등생 무료급식은 완전 삭감이라는 불균형 발전의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만 당선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한국에서 경제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경제 대통령에 잠재된 박정희 시대에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및 죽은 독재자의 망령이라는 모순을 비판하는데 우리는 실패했다. 이로 인해 ‘식민지근대화론’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현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저자는 ‘왼쪽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왼쪽이 지금의 ‘자본주의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왼쪽이라는 ‘대듦’의 대중적 반란을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즉 대중들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인식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때 비로소 다양한 방식의 저항과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순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를 향하여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쏘아대는 박노자의 진실은 불편했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한국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왼쪽으로 행진해야 한다는 각성은 의미심장했다. 더불어 왼쪽으로의 방향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좀 더 정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