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껴안고 -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
존 다우어 지음, 최은석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어떻게 재건되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더글러스 맥아더에 있었다. SCAP(연합국 사령부)가 맥아더 사령부라고 불릴 정도였다. 전후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는 미국만이 통제권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식민지에 대한 맥아더의 메시아적 열정이 폭발적으로 작용했다. 전쟁으로 인한 황폐해진 일본을 안정시키는 핵심으로 군국주의 일소와 민주화를 구축했다. 이것이 그의 ‘미국화’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맥아더에게는 일본의 특수한 권력 형태인 ‘천황(天皇)’을 간과할 수 없었다. 존 다우어은『패배를 껴안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갈등을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책들이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강조하고 있어 정작 패전국 일본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강대국이 되었는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이 책은 제목에 나와 있듯 ‘승자(미국)과 패자(일본)의 껴안기’라는 전후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먼저 승자의 ‘천황 껴안기’를 다루고 있다. 승자에게 전쟁의 최고 책임자인 천황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했다. 일본은 천황에 의해 신민(臣民)화된 나라였다. 그러나 승자의 점령 후 일본 국민의 교다쓰(허탈) 상태라는 심리적 붕괴가 일본 최대의 적이 되었다. 이런 불안함을 느낀 승자는 천황을 평화와 민주주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즉 신격화된 천황을 국민에게라는 ‘쐐기정책’을 펼쳤다.

다음으로 승자의 ‘관료주의 껴안기’이다. 앞서 말했듯 승자에게 일본은 문화적으로 이국적이었다. 승자의 문화만으로 통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승자의 선택은 일본을 직접이 아닌 간접통치를 하게 되었다. 이른바 상명하복이라는 관료주의는 일본 정치체제 중에서도 가장 비민주적인 기구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민주화를 실현하려고 했던 승자의 정책은 관료주의를 통해 ‘신식민지혁명’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승자의 시민이 되었다.

이렇듯 승자의 껴안기가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패자의 껴안기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좀 더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가령, 가스토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종전 후 일본에서는 매춘과 퇴폐가 성행하였다. 이는 일본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방파제였지만 패전에 뒤이은 하위문화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단 한명의 미국인만을 상대하는 판판은 미국식 소비주의 문화의 선구자인 동시에 충성(忠誠)을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가스토리 문화에서는 섹스와 혁명이 같았으며 ‘니쿠다이’가 칭송되면서 개인의 육체가 관능화되었다.

한편, 패자의 '과학의 껴안기'는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일본은 패전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실용주의적으로 직결시켰다. 원자폭탄에 항복했던 일본은 패전의 결정적 요인을 바로 ‘사이언스’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발 빠르게 군수산업을 기계공업으로 전환하면서 ‘과학 기술’을 가속화하였다. 더구나 한국전쟁이라는 뜻밖의 행운을 이용해서 일본은 에드워즈 데밍(W.Edwards Deming)이 제창한 ‘품질 관리’를 받아들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일찍이 루스 베네딕트는『국화와 칼』에서 일본의 이중적인 성격을 말한 바 있다. 국화와 칼이 말해주듯 이 책에서 그녀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틀로 일본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 면에서 전후 일본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인 존 다우어의『패배를 껴안기』는 껴안기를 패전 후 다른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화와 칼에 견주어 보면 ‘육체와 과학’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일본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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