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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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인생은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성공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의 오늘을 특별한 내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또다시 벅찬 기대는 사라지고 실패라는 쓰라린 상처만 남는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달콤한 성공의 패러다임을 선보인다. 앞으로는 당장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말라고 한다. 더 큰 만족을 위해서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도와주려는 그의 말은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 보인다. 또한 맛있어 보인다. 마시멜로가 달콤하다는 것은 그만큼 진정한 성공은 달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달콤함을 쉽게 오해한다. 저자가 말하는 달콤하다는 것과 우리가 일상에서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달콤함과는 생각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 차이로 인해 성공과 실패가 동전의 양면처럼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 나오는 조나단이라는 사장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성공의 비결은 <만족 유예>에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어떤 실험에 참가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자기에게 마시멜로를 주면서 15분 동안 참고 견디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준다는 것이다. 그때는 1개를 더 먹을 수 있다는 욕구 때문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또 한 개의 마시멜로를 받을 수 있었던 재밌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경험이 오늘날 나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면 ‘실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 앞서 말했듯이 만족 유예와 욕구 사이에서 싸움일 것이다. 먹고 싶은 욕구는 심리학자인 매슬로가『존재의 심리학』에서 말했듯이 1단계 욕구에 해당하는 생리적인 것이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5단계인 자아 성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먹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해서 꼭 5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먹고 싶은 1단계에 만족하고 마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고 만다.

이렇듯 우리의 모든 일이 자제력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잠시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자. 우리는 얼마든지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늦잠이라는 게으른 달콤함에서 머무적거리면서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늦잠은 우리를 꿈속에 가두고 만다. 꿈속에 꿈은 한바탕 꿈이다.

하지만 꿈이 아닌 현실에서 꿈을 꾸며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인생의 목표다. 그런데도 우리는 꿈과 현실에서 일찍 꿈을 포기하고 만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남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꿈속에서 꿈을 꾸며 대리만족하고 만다.

이 모두가 마시멜로를 일찍 먹은 후유증이다. 마시멜로의 달콤함에 익숙해버린 나머지 인생의 또 다른 쓴맛을 거부하고 만다. 쓴맛은 곧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스며 나오는 자제력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꿈을 포기하고 만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안의 마시멜로를 생각해보았다. 내 삶의 통장은 마이너스다. 마시멜로를 당장 먹은 것처럼 눈앞의 달콤함에 뚜렷한 목표도 없이 젊음을 보냈다.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이너스인줄 알면서도 마이너스적인 생활의 패턴에 만족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이제는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관리라는 말이 다소 당황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성공과 변화가 서로 균형 있게 나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성공이라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즉 계획을 세웠는데 잘 실행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은 책이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자기를 계발하는 지혜를 충분히 얻을 것이다. 성공하기 위한 멘토로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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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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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看書痴)란 말이 있다. 책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 스스로를 간서치, 라고 부를 정도면 평범하지 않다. 말 그대로 책이 곧 그 사람의 목숨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덕무가 그런 사람이다. 얼마나 책이 좋았으면 그랬을까, 라는 안쓰러움이 있었지만 사뭇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기행(奇行)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왜일까? 그것은 저자 말대로 역사속의 인물과 마주대하는 일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동안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 속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을 가두어 버렸다. 단지 역사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하다보니 정작 그들의 삶은 늘 그림자에 가려져 왔다. 즉 역사라는 잿빛 구름에 가려 과거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사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 눅눅함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이럴 때 이덕무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는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삼국사기』와 같은 정통 역사서는 아니다. 그보다는『삼국유사』에 가깝다. 부드럽고 유쾌하게 해서 읽는 맛이 난다. 이덕무라는 아웃사이더 지식인의 애환을 통해서 18세기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덕무의 진면목은 아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덕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부러움을 넘어서 시기심이 익살스럽게 넘쳐난다. 책만 보는 바보라고 해서 오직 책만 아는 바보라는 생각은 오히려 우리가 바보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스승이었다.

그에게 책은 양식(糧食)이었다. 가난한 탓에 배고픈 배를 밥이 아니라 책으로 채웠다. 그것도 모자라 『맹자』를 팔아 끼니를 때워야 했던 설움은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또 서자라는 신분의 굴레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온종일 책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대장부의 비애감을 생각해보면 책 읽는 것이 마냥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눈(目)으로만 책읽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눈과 귀, 코, 입이라는 감각을 동원해서 책을 읽었다. 만약 그가 눈으로만 책을 읽었다면 책은 양식(良識)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독서 자체는 한마디로 <이목구심>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는 비록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우주(宇宙)를 수십 번 오갔다. 이렇듯 그는 책을 통해서 마음의 빗장을 열고 비로소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를 실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이덕무를 비롯해 그의 벗인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도 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의 스승인 박지원, 홍대용은 어떤가? 그들은 신분을 초월하여 서로 하나가 되어 시와 노래를 부르며 고난의 시대를 풍미했다. 풍자와 해학이 넘쳐흐르는 그들은 무엇보다도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또한 책으로 배운 사상으로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실천하였다. 

이렇듯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하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이런 책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그렇다고 뜬구름 마냥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떳떳했던 마음의 여유로움은 나약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모두가 책을 벗삼은 깨달음이다.

앞서 말했듯이그들은 눈으로만 책을 읽지 않았다. 즉 그들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떻게 책을 써야 하는지도 알았다. 가령, 유득공은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책을 읽었고 몸소 그곳을 수십 번 오가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삶은 과거의 이런 재미와 감동에 비하면 건조하다. 지금 종로에는 18세기 백탑 대신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도시에 갇힌 삶 때문에 18세기와 같이 산다는 것은 모순이다. 변화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사는 게 편리해졌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의 행복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도 이제 책만 보는 바보가 되었으면 한다. 18세기 이덕무가 간서치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일 것이다. 그의 집이 구서재(九書齋)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익한 생활의 발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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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입니다 - 2005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대상 수상작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1
이혜란 글 그림 / 보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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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단란한 가족에게 훼방꾼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훼방꾼이 다름 아닌 할머니라는 다소 놀라운 사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지금은 핵가족시대다. 사는데 바쁜 나머지 집 안에 같이 있으면서도 엄마 아빠와 아이가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든 때도 있다. 그러니 멀리 시골에 있는 할머니와 떨어져 사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 책 『우리 가족입니다』는 느닷없이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상을 아이의 눈으로 진솔하면서도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와 할머니는 처음부터 충돌한다. 시골에서 도시까지 겁도 없이 택시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할머니는 엉뚱하다.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은 시간이 갈수록 가족 모두에게 무거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아이는 아이대로 불만이어서 당돌하게도 아이가 할머니를 가족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처럼 할머니가 아이에게 이방인이라는 가족 간의 문제를 이 그림책은 잘 표현하고 있다.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이고 건조함이 묻어나는 일상의 풍경은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다. 즉 할머니의 별난 행동에 맞서는 아이의 화난 표정 그리고 이를 묵묵히 지켜보는 엄마 아빠의 소박함이 공감을 넘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할머니를 업고 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뭐랄까, 가슴이 시리고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함에 젖어 들었다. 가족이 이런 것이구나, 를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족!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물컹거린다. 하지만 한 집 안에 같이 산다는 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이름에 불과하다. 그 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라는 평범한 말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가 짊어질 노인의 문제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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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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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어보면  <슈가캔디 마운틴>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신비한 하늘나라인데 동물들이 죽으면 모두 그 나라로 간다. 그 나라에서는 일주일 일곱 날이 모두 일요일이다. 한마디로 동물들의 천국인 셈이다. 이러한 동물에 대한 의인화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고발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김훈의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개』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개라는 동물이 등장하는 것은 다를 바 없으나 그 개가 말하는 세상이야기는 정말로 개가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만큼 개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염의 미묘한 떨림조차 생생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동물성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개라는 동물은 특별하다. 개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과 가깝게 지내다보니 동반자 같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잘잘못을 개는 아무런 의심 없이 똑똑히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의 운명은 불안하다. 인간의 잣대로 길들여진 나머지 인간을 주인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개가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이다. 인간이 싫다고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인간의 품에서 살아왔다. 여기에 나오는 보리라는 진돗개 수놈을 보더라도 그렇다. 보리는 개 특유의 신바람과 눈치를 몸으로 표현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간다. 다만 그 당당함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고 제 잘난 맛에 산다는 푸념을 짖어댄다. 그래서 개의 발바닥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하다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한다. 이 말은  사람의 관점인 동시에 동물들의 하소연이다. 사람이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사람들끼리 소곤거리며 떠들어대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소외당한 동물들이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 체 살아왔다. 그들의 한(恨)은 곧 사람과 살면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받는 폭력을 감당하기에는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바보처럼 순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리에게 사랑의 대상인 흰순이의 죽음은 어쩌면 개죽음이다. 그렇게까지 꼭 잔인해야 하는 걸까? 또한 보리에게 저돌적인 악발이는 공포의 대상이다. 악발이는 말 그대로 사람의 폭력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싸움개이다. 자신의 영역을 상징하는 오줌의 힘이 강하면서도 역겨운 놈이다. 그렇게까지 꼭 사나워야 하는 걸까?
이렇듯 저자는 보리라는 개를 통해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을 본다. 세상은 분명 거칠다. 그리고 불합리하다. 이로 인해 보리의 발바닥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람들 또한 가난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면 개는 굳이 신비한 하늘나라로 가도 되지 않아도 된다. 저자가 보기에 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는 개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좋으나 싫으나 주인을 위해 사는 개는 야성을 버렸는데 우리는 누구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가? 반성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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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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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속에 왜 레몬이 들어있는 것일까?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책 제목만큼이나 괴짜 같았다. 그것은 뭐랄까,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사실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레몬이 아닌 수박이나 포도가 들어있는 경우도 가능한 일은 아닐까? 이러한 나의 괴짜 같은 생각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에 있었다. 저자는 이를 부동산 중개업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미묘한 노림수에 비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가지 읽어봐도 정보의 비대칭성과 레몬의 상관관계는 나오지 않는다. 아쉽게도 그 해답은 다른데 있었다.

이 책에 앞서 우리는 애컬로프라는 경제학자를 알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애컬로프는 <레몬 시장>이라는 논문에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와 시장 관계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예를 든 것은 중고차 시장이다. 그에 따르면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차의 결함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고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겉만 번지르르한 레몬(흠이 있는 낡은 차를 가리키는 구어)을 비싼 값에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러한 정보의 그물망은 촘촘하지 않는다. 경제학이라는 다소 무겁고 머리 아픈 정보는 경제학자에게는 맡기고 만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저자는 괴짜 경제학을 가지고 왔다. 괴짜라는 말이 나타내듯 상식을 거부한다. 상식은 곧 사회 통념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술로 인해 진실을 왜곡하고 만다. 그것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거대한 도덕적 질서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센티브라는 강한 충격을 경제의 주요 동기로 보고 있다. 또한 인센티브가 피라미드라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인센티브가 높을수록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경제학의 진실을 찾는 게임을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강력한 무기는 숫자라는 실증적인 수단이다. 사람의 마음을 계량화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숫자화 될 때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숫자를 조작하는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숫자는 또한 거짓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령,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줄였다고 한다면 엉뚱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낙태와 범죄율의 상관관계는 숫자를 통해서 명확해진다. 다른 어떤 범죄 예방 프로그램보다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꼭 책상에서 고민해서 나오는 이런 저런 정책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삶은 자잘한 부분에서 뜻밖의 결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어쩌면 나비효과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나비가 날아가기 위해서는 날개를 움직여야한다. 그만큼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괴짜 같은 경제이야기들은 비범하다. 비범하다고 해서 다른 경제학자가 그렇듯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비범함은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들을 수도 없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괴짜 같은 질문과 대답이 한편으로는 매우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진짜로 알고 있는 세상이 사실은 가짜라는 문화의 충격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어 볼만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은 변하기 마련인데 그 변화의 흐름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 속에 엉뚱하게도 레몬이 들어있는 사진은 결론적으로 괴짜가 아니다. 그것이 경제학의 숨겨진 사실이다. 그만큼 그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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