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어보면  <슈가캔디 마운틴>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신비한 하늘나라인데 동물들이 죽으면 모두 그 나라로 간다. 그 나라에서는 일주일 일곱 날이 모두 일요일이다. 한마디로 동물들의 천국인 셈이다. 이러한 동물에 대한 의인화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고발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김훈의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라는『개』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개라는 동물이 등장하는 것은 다를 바 없으나 그 개가 말하는 세상이야기는 정말로 개가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만큼 개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염의 미묘한 떨림조차 생생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동물성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개라는 동물은 특별하다. 개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과 가깝게 지내다보니 동반자 같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잘잘못을 개는 아무런 의심 없이 똑똑히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의 운명은 불안하다. 인간의 잣대로 길들여진 나머지 인간을 주인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개가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이다. 인간이 싫다고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인간의 품에서 살아왔다. 여기에 나오는 보리라는 진돗개 수놈을 보더라도 그렇다. 보리는 개 특유의 신바람과 눈치를 몸으로 표현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간다. 다만 그 당당함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고 제 잘난 맛에 산다는 푸념을 짖어댄다. 그래서 개의 발바닥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하다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한다. 이 말은  사람의 관점인 동시에 동물들의 하소연이다. 사람이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사람들끼리 소곤거리며 떠들어대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소외당한 동물들이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 체 살아왔다. 그들의 한(恨)은 곧 사람과 살면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받는 폭력을 감당하기에는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바보처럼 순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리에게 사랑의 대상인 흰순이의 죽음은 어쩌면 개죽음이다. 그렇게까지 꼭 잔인해야 하는 걸까? 또한 보리에게 저돌적인 악발이는 공포의 대상이다. 악발이는 말 그대로 사람의 폭력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싸움개이다. 자신의 영역을 상징하는 오줌의 힘이 강하면서도 역겨운 놈이다. 그렇게까지 꼭 사나워야 하는 걸까?
이렇듯 저자는 보리라는 개를 통해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을 본다. 세상은 분명 거칠다. 그리고 불합리하다. 이로 인해 보리의 발바닥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람들 또한 가난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면 개는 굳이 신비한 하늘나라로 가도 되지 않아도 된다. 저자가 보기에 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는 개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좋으나 싫으나 주인을 위해 사는 개는 야성을 버렸는데 우리는 누구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가? 반성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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