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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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한 부부의 조건은 무엇일까? 심리학자인 존 고트먼에 의하면 ‘마법의 비율’이 5대 1이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은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부정적인 상호작용의 비율이 5대 1 이상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비율이 5대 1 이하이라면 결혼 생활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거짓말의 진화』는 자기정당화의 심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를 직면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나 행동 방침을 바꾸기보다는 훨씬 더 완강하게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커니즘은 자기고양편향에 의해 형성된다. 남을 속이기 위한 의식적 거짓말과 자신을 속이기 위한 무의식적 자기정당화 사이에는 매혹적인 회색 영역이 존재한다. 이곳을 순찰하는 것은 미덥지 못하고 자기기준으로 판단하는 역사가, 곧 기억이다. 기억은 종종 과거 사건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진실을 왜곡하게 된다.

가령, 남편과 아내들에게 가사를 몇 퍼센트나 부담하는지 물어보면 아내들은 최소한 90퍼센트라고 한다. 반면에 남편들은 40퍼센트라고 한다. 연구 결과 배우자가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쉽지만 그보다도 부부가 각기 자신의 공헌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자기정당화를 거짓말이나 변명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정작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자기정당화의 위험성을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죄를 지은 사람이 잘못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대중이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 나는 그 여자와 섹스를 하지 않았다)과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대단히 다르다고 한다. 대중을 설득할 때는 자신이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을 설득할 때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자기정당화의 사례들을 마주할 수 있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우리가 자아와 사리(私利)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에게 ‘마법의 비율’이 있어 안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마법의 비율이란 자기정당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유인즉 우리에게 통찰과 자기 수용이 진실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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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파이돈 향연, 문예교양선서 30
플라톤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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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에게 철학자가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망아지나 송아지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마부나 농부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이 점을 성찰하면서 철학은 ‘인간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지혜’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혜 때문에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그의 죄는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고 청소년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재판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 나이 70에 독배를 마시게 했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스스로 독배를 마시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충분히 죄가 없음을 변명할 수 있었는데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고집스럽게 변명했다.

이 책『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그의 올바른 사상을 담은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먼저 [변명]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하는 반면에 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너 자신을 알라.’고 한다.

두 번째 [크리톤]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한다. 비록 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떤 악을 행했을 경우라도 우리는 누구에게도 보복을 하거나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이것을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가령, 아버지(국가)가 자식(개인)을 때리거나 욕설을 한다고 해서 자식이 아버지를 욕하거나 때릴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국가에 대한 모독이자 법의 파괴자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것이다.

세 번째 [파이돈]에서 그는 지혜를 사랑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죽음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기 때문이다. 만약 육체적 쾌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은 더럽혀지게 된다. 이로 인해 음식을 탐하고 술을 좋아하면 나귀가 된다. 또 부정이나 폭력을 좋아하면 독수리가 된다. 반면에 순수한 영혼은 절제를 실천해온 덕분에 꿀벌이 된다. 한마디로 ‘죽음의 카타르시스’라는 것이다.

네 번째 [향연]에서 그는 사랑의 목적을 말하고 있다. 그 목적이란 아름다운 것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육체적 아름다움을 시작으로 하여 도덕적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지혜의 아름다움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인 절대적 아름다움 즉 최고의 지혜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사랑의 신비’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참된 화폐를 발견할 수 있다. 화폐라는 것이 물건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그중에서 최고의 화폐는 다름 아닌 지혜라고 했다. 이러한 지혜 덕분에 용기든, 절제든 무엇이든지 참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거짓 화폐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방식으로 대화하고 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돈(錢)으로 우리의 영혼을 혼란시킨다. 돈 때문에 육체를 생각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그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앞서 말한 지혜를 알려주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그러니 밥벌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지자(愛智者)로서 그가 보여준 삶은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의 지혜는 삶을 긍정적으로 감싸고 있어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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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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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과 도박사의 심리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조금은 황당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자기 정당화의 심리’가 숨겨져 있다. 먼저 부부싸움에 있어 나는 아내와 가끔씩 말다툼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대수롭지 않는데도 어떤 사실에 대해 내 생각이 옳다고 공격한다. 그러면 아내도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반격한다. 그러다 끝내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몇 시간을 보내면 부부싸움이 끝난다.

도박사에게는 ‘앞면 승리 뒷면 승리 가능성 현상’이 있다. 도박의 결과가 좋으면 우리의 지식과 능력 때문에 그런 긍정적인 결과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반면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실패를 우리의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깨트리지 않는 것으로 재해석 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입장이라면 부부싸움 혹은 도박에 있어 실패할 경우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유인즉 실패의 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에 실패에 대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기만족을 하려고 한다. 이것이 비과학적인 입장이다.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이를 믿으려고 한다. 혹은 증거가 있는데도 이를 믿지 않으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생각의 함정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이를 달리 자기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믿음이란 옳지 않는 것에 대한 것조차 자신의 옮음을 더욱 증명하려는 속성을 말한다.

자기 믿음의 속성 때문일까?『생각의 오류』는 말 그대로 우리가 왜 사실과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생각의 오류가 넘쳐나는 세상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생각의 오류에 대해 어떻게 인과관계가 만들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6가지 패턴을 긍정하게 된다. 6가지 패턴이란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등이다.

가령, 어느 회사가 광고로 매출이 올랐다고 하자. 광고와 매출의 상관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광고 하나만으로 매출의 결과를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광고 외에 다른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과관계가 반드시 상관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면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저자는 놀랍게도 진화생물학의 입장에서 밝히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본능에 속한다.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잘못된 믿음을 마치 진실처럼 받아들인다. 믿음에는 기대와 욕망이 있다. 이로 인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잘못된 정보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의 오류를 낳는 심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그것이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해서 오늘날 정신의 질병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에게 비판적인 사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칼 세이건은 ‘당신 안에 비판적인 지각력이 전혀 없으면 쓸모없는 생각과 가치 있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부부싸움을 침묵으로 끝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 이런 문제 해결이 없다면 각자 그들만의 ‘희망’을 생각하며 화해를 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가 불신을 걷어내고자 한다면 침묵하지 말자. 대신에 자신에게 옳다고 해서 함부로 믿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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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말 워쇼 사진, 이진 옮김 / 이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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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죽음은 늘 두려운 존재다. 우리에게 죽음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안쪽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바깥쪽에 치우쳐있다. 그곳은 춥고 외로운 곳이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이 책에 나와 있듯 우리는 환자들이 삶의 양보다 질을 소중히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들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들의 감정을 외면한 치료는 고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자유롭게 맞이했으면 한다. 죽음을 병원이 아닌 가족이 있는 집에서 혹은 삶과 죽음을 가르치는 샨티 닐라야 같은 요양원에서 ‘진정으로 살아 있을 때가 살아 있다가’ 저 세상으로 가기를 또한 소망한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도 그중 한사람이다. 저자는 이미『인생수업』,『상실수업』을 통해 죽음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녀 덕분에 우리가 죽음에 대해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또 한 번 죽음 앞의 인간에 대한 성찰을 들려주고 있다. 죽음의 당사자는 물론 곁에서 돌봐주거나 지켜봐야 할 사람들이 가슴에 담아두어도 좋은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녀는 우선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피한다거나 정복한다고 해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추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 문명의 이로움 즉 병원에서 기계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삶을 연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병원에서 치료가 전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의 당사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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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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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감옥이란 무엇일까? 일찍이 발라르는 감옥을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유인즉 감옥이 철저한 규율과 징계의 기구라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철학자가 있다. 바로 푸코이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책이라고 말한『감시와 처벌』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새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방법론은 계보학이다. 이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과 구별되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 가치, 도덕 등의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것들 속에 감춰진 권력의 전략을 파헤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감옥의 역사를 1차적으로, 감옥과 감시의 체제를 통한 권력의 전략을 2차적으로 알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감옥의 역사를 규정하자면 처벌의 역사이다. 처벌이란 범죄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다. 여기에는 6가지 중요한 법칙이 있다. 제1법칙은 분량의 최소화이다. 이는 범죄의 이익보다는 형벌의 불이익이 높다는 것이다. 제2법칙은 관념성 충족이다. 이는 형벌의 효과는 그것에 예상되는 불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제3법칙은 측면적 효과이다. 범법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효과이다. 제4법칙은 완벽한 확실성이다. 이는 범죄에서 생기는이익에는 형벌에서 생기는 불편함이 필연적이다. 제5법칙은 보편적인 진실성이다. 이는 올바른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완전한 증거를 갖추어야 하고 의혹의 정도와 형벌의 정도 사이의 모든 관계를 없애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6법칙은 최상의 특성화이다. 이는 위법 행위의 전 영역을 대상화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범죄의 성격이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처벌의 법칙에 따라 앞서 말한 처벌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호화로운 신체형이고 나머지 하나는 순종적인 신체형이다. 전자가 거창한 구경거리의 사회에서 신체를 공격하는 것이 잔인했다. 즉 사지가 절단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18세기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더 이상 신체를 공격하는 것은 역효과였다. 이로 인해 신체를 감금한다든지 노동을 시키는 감금형이 된다. 그리고 규율이라는 정신 개조 시스템으로 문명사회의 형벌인 감옥이 탄생되는 감시형으로 바뀐다. 규율의 특성은 순종성과 효용성에 있다. 이것이 후자에 있어 순종적인 신체형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목하는 새로운 현실은 이것이 아니다. 이것은 형벌이 완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날 신체에 가하는 폭력대신 보다 더 인간적인 처벌인 감옥으로 변화했다고 해서 현실을 낙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바로 감옥의 경제학 즉 권력의 경제학을 찾아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권력의 경제학은 효율성에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감옥이 지배적인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 권력의 강화에 있다.

우리는 푸코를 통해 감옥에 내재된 권력의 욕망을 발견 할 수 있다. 굳이 감옥의 구조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감옥에 대한 허상은 지금까지 철저한 감시를 받아왔다. 감옥의 허상은 인간을 교화시키는 규율이 오히려 자유를 구속하는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푸코는 감옥과 같은 감시형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에 있어 얼마나 유효한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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