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버드 - 그 사람의 1%가 숨겨진 99%의 진심을 폭로한다면
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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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랭어는『예술가가 되려면』에서 말 그대로 예술가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말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 이전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예술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순수한 용기라고 말했다.

이러한 열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위대한 작품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다룬 에피소드나 자서전을 좋아하게 된다. 이번에 나온『로즈버드』의 피에르 아술린이 전기 작가가 된 궁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디테일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로즈버드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장미꽃 봉오리를 말한다. 이 말은 영화 <시민 케인>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소하지만 놀라운 진실을 품고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리디어드 키플링의 공작 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접이식 의자,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한 장면, 장 폴랭의 스카프, 피카소의 그랑조귀스탱가 7번지, 시계를 풀어 놓은 파울 첼란, 그리고 피에르 보나르의 호주머니 속 등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렇듯 그의 매력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중에서 영원한 레지스탕스의 상징이 된 장 물랭의 스카프가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스카프는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그는 독일에게 협력하지 않고 거부한 탓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깨진 유리 조각으로 목을 그음으로써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 후 그는 풀려났으며 이 때 생긴 상처를 감추기 위해 착용한 스카프는 진정한 용기를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그를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동성애라는 최악의 진실을 은밀하게 내뱉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위대한 예수가들의 로즈버드를 발견하면서 이 책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완성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완성이라는 기계적인 마인드 때문이다. 결론이 있다는 것은 곧 다른 가능성을 남겨놓지 않는다. 반면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1%에 대한 가치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사소해 보이는 1%의 진실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를 탐구한다. 단순한 계산법으로 1%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1%의 진실을 파악하지 않는다면 99%의 진실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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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고수 - 삶의 열병을 앓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카운슬링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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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책과 골동품 수집광이었다. 하루는 그의 서재를 방문한 사람이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습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당신은 집에 둔 그릇과 찻잔을 모두 쓰시나요?”라고 말했다.

나에게도 책 버릇이 있다. 일고 싶은 책을 마구 사들인다.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에서 두 세권정도 대출을 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지 못하고 그냥 쌓아두는 게 다반사다. 그러면 책에게 미안해진다. 책에게 한 수 배우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시간이 없어서도 그렇고 책을 읽는 도중에 이해하기 어려워 그만 포기해서 그렇다.

<인생 고수>의 저자인 안광복은 열정적인 지식인이다. 동시에 책의 고수이다. 그는 일반인들이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숨은 책들을 열정적으로 깊게 탐독한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인생 고수들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가 무엇보다도 인생 고수를 중요시하는 것은 에디슨의 명언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을 무슨 일이든지 노력 하면 안 될 게 없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결국 1%의 영감이 없으면 우리는 천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1%의 영감은 인생 고수의 말 한마디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것을 음악을 하는 사람에 있어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이다. 연주 대가(大家)들에게 한 수 배우는 기회다. 그리고 골프에 있어서는 ‘원 포인트 레슨(one point lessen)'이다. 프로 선수의 짧은 한 수 가르침이다.

가령,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고민할 때 소크라테스의 충고는 값지다. 즉 “나의 눈은 톡 튀어나와서 사방을 더 잘 볼 수 있네. 또 나의 코는 길고 똑바르지 않고 뭉툭해서 냄새를 더 잘 맡네.” 또 어떻게 해야 당당하게 혼자 서는 인생을 설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미성년의 원인은 이성이 부족한 데 있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부족한 데 있다.” 이밖에도 니체, 장자, 간디 같은 인생 고수들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질문에 적절하게 답을 하고 있다.

<인생 고수>는 삶의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머리가 아픈 사람들이 긴요하게 읽을 만한 책이다. 꼭 고민 때문이 아니더라도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치유의 힘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조목조목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 인생 고수들의 말을 무작정 따르는 낙타형 인간과 아무런 대안 없이 아니다, 라고 하는 사자형 인간을 경계해야 참다운 진리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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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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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태어나서 여자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학창시절 K가 떠올랐다. K는 남자이면서도 ‘여자’라는 놀림을 받았다. 곱상한 외모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미스터 K가 아니라 미스 K로 불려졌다. K에게는 미안할 일이었지만 남자답지 않았다는 짓궂은 장난이었다.

그런데『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으면 전혀 스타일이 다른 두 명이 나온다. 한 명은 이 책의 주인공인 오콩코이고 다른 한 명은 그의 아버지다. 오콩코는 아버지가 ‘아그발라’라고 불려지는 수모 때문에 괴로워한다. 아그발라는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아무런 칭호도 없는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오콩코는 아버지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남자에게 있어 삶의 두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즉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처럼 사는 것과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사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에서 오콩코가 선택한 삶은 강(强)한 남자였다. 아버지의 아름다움이었던 친절함과 게으름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오콩코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은 아프리카 우무오피아의 마을이다. 이곳에서 오콩코는 세 명의 부인과 함께 산다. 그에게 여자는 부의 척도이자 남자다움의 상징이었다. 저자 말대로 남자가 가족의 우두머리고 아내들은 그에게 복종하게 된다. 따라서 그가 남들보다 권위적이고 공격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부와 명예 앞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하지만 그의 묘한 운명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뜻하지 않는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그는 부족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낯선 기독교가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갈등을 힘겹게 이겨내고 강한 남자가 된 오콩코에게는 너무나 불합리한 일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심은 여기에 있다. 철옹성 같았던 자신의 고향이 기독교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그동안 정당화되었던 내부의 질서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들이 의심하지 않았던 전통적인 진리가 과학적으로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러한 부끄러움과 나약함이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오콩코에게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는 자살로 불같은 욕망을 더욱 타오르게 했다.

돌이켜보면 강한 남자를 위한 변명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니체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라고 말했듯 그의 떳떳한 죽음은 끝가지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오콩코에게 행복은 남자처럼 사는 것이며 혁명적인 삶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의 불행에 맞서는 방법이 양적(量的)인 행복으로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말하는 데 있어 정신적으로 양보다 질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행복을 양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면 질적(質的)인 행복은 무엇일까? 일찍이 빅터 프랭클은 역설적 의도(paradoxical intention)를 말했다. 이것은 원하지 않는 어떤 상태를 회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것을 과장해서 직면하게 한 후 그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그의 말대로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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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 스웨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88
울프 닐슨 지음, 임정희 옮김, 에바 에릭손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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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트에서 어항이랑 금붕어 두 마리를 샀습니다. 평소 화분 하나도 잘 키우지 못하는 아내가 별안간 어항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큰 아이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 엄마가 “교육적(?)으로 아주 좋다.”고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던데 아이를 키우다보니 이런 일이 다반사이었습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금붕어 두 마리를 샀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식구 숫자만큼 네 마리를 살려고 했는데 아이 숫자만큼 샀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 점원이 알려 준대로 어항을 깨끗이 씻고 물을 담아 소독약을 한 두 방울을 떨어뜨리고 드디어 금붕어 두 마리를 담갔습니다. 그러자 누구라도 먼저 할 것 없이 아이들이 좋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두 사람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묘한 즐거움을 주던 금붕어 한 마리가 이틀 전부터 아픈 듯 움직임이 느려졌습니다. 걱정했던 불길한 예감이 끝내 현실이 되었습니다. 비록 작은 물고기에 불과했지만 녀석의 죽음을 보니 슬픔이 작지 않았습니다. 아프면서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금붕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죽은 금붕어의 장례식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책장에 있던 이상한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이었습니다. 아마도 ‘멋진 장례식’이라는 제목 때문에 샀지만 정작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책장을 넘겨봤습니다.

이 책에서 아이 세 명은 장례 회사를 차립니다. 불쌍하게 죽은 동물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어주고 이름을 붙여주고 시를 짓습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뭐 재미있는 일 없나 생각하고 있는데 죽은 벌 한 마리를 발견하고 무덤을 만들어 주던 놀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죽은 동물들의 안타까움을 보면서 세상에서 멋진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작가는 죽음의 눈높이를 아이에게 맞추고 있습니다. 자칫 아이들에게 무서워 보일 수 있는 죽음을 쉽고 재밌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장례식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죽은 동물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놀이를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입니다. 즉 죽음이 없다면 장례식이라는 놀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죽은 금붕어를 아무렇게나 버렸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고 나 혼자 비밀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 죽은 금붕어의 무덤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멋진 장례식이 될 것이며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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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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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오랜 속담에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책은 말이 없지만 책을 읽은 우리가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책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의 욕망을 쓸모 있게 한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책을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책은 교서관(校書館)이 간행해 국왕이 신하에게 내린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개인이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또한 그들만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즉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다지는데 책이 아주 유용하게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불평등을 통해 조선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발견하는 책이『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冊)들』이다. 여기서 위험함의 척도는 성리학적 판단에 있다. 성리학은 성즉리설(性卽理說) 즉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가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지식을 강조했다고 해서 이학(理學)이라 불렀다. 저자 말대로 단순화하자면 성리학은 공부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 책을 보면 조선의 성리학은 세 가지 방향에서 사상을 통제했다. 첫째로 사문난적(斯文亂賊)에 있다. 풀이하자면 성리학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다. 가령, 채수는 『설공찬전』에서 “반역으로 왕위에 오른 자는 결국 지옥에 와서 고생한다.”고 말했다. 당시 유교사회에서 불교사상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왕을 능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책은 압수되고 불살라졌다.

박세당의『색경』도 참혹한 화를 당했다. 박세당은 이 책에서 양반도 생산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조세 제도를 개혁해 신분간 불평등을 없애야 한다는 개혁론을 펼쳤다. 그는 소비자에 머물러 있는 양반을 생산자 계급으로 바꿔야 사회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지식의 불평등에 있다. 조선이 성리학의 시대였으며 그 중심에는 사대부들이 권력의 생산자였으며 결국에는 지식을 독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허균의『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동의보감』은 기존의 의학서들과 달리 당시 기준으로 최신 한의학 이론과 조선의 약물학 지식이 총동원되었다. 그런데도 17-18세기에 창궐했던 홍역과 두창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 이유인즉 이 책의 주된 목적이 개인의(사대부)의 양생술을 실천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문체반정(文體反正)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학(邪學)을 물리치는 것이다. 사학은 곧 소설(小說)이며 소품(小品)같은 잡서(雜書)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가장 똑똑했던 정조가 가장 싫어했던 책이『원중랑집』이다. 왜냐하면 김창협이『농암집』에서 “백정과 술장수가 경전을 암송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라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성리학의 사고의 틀에서 삶을 윤리적으로 제도화하려고 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일종의 짝패들이었다. 짝패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용어로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것들이 비슷한 대상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시대와 소통하지 못한 금서(禁書)의 운명은 짝패의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조선시대 금서의 대부분은 지배계층에 도전하는 위험한 사상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는 것에 반작용도 적지 않았다. 사대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지만 일반 대중들이 책을 읽고자 했던 시대적 요청을 외면한 결과였다.

금서의 사회적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책의 묘한 운명이다. 조선시대를 보더라도 책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데 있어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방법 역시 책이 일등공신이었다. 책을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금서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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