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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일생 ㅣ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평점 :
소의간식(宵衣旰食)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이 국정을 수행하느라 새벽에 옷을 입고 일을 시작하여 한 밤에 밥을 먹는 다는 뜻이다. 정말로 왕이 그랬을까? 그런데『승정원일기』를 보면 국왕의 바쁜 하루가 적혀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역대 왕 중에서 정조가 가장 바쁘게 국정을 다스렸음을 알 수 있다. 정조의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되어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이로 인해 왕의 업무를 ‘만기(萬機)“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깔끔하게 담아낸 책이 바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들이 엮은『조선 국왕의 일생』이다. 이 책 덕분에 조선 국왕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극(史劇)이라는 낡고 오래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다. 저자들이 하나같이 규장각의 다양한 기록물들을 두루 살피면서 조선 국왕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조명하고 있어 충분히 읽어볼 만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규장각은 조선왕조 최고의 도서관이며 왕립학술기관이었다.
먼저 왕의 학문, 제왕학(帝王學)을 살펴보면 성리학의 천명론(天命論)에 있다. 성리학 이전까지는 절대적인군주였다. 하지만 성리학의 영향으로 국왕이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인간들의 우두머리 즉, 수양을 통해 완성시키고 도달해야 하는 ‘미완성의 우두머리’로 변화되었다. 이로 인해 전자의 학문이 패도(覇道)의『정관정요』에 있었다면 후자의 학문은 왕도(王道)의『대학연의』에 있었다. 특히 왕도의 성리학적 수양론은 조선 국왕을 성인 군주로 만드는 사상이었다.
다음으로 왕실의 건강법을 살펴보면 식치(食治)이다. 『예기』에서 예(禮)는 일이 생기기 전에 제재하는 것이요, 법(法)은 생긴 후에 제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학의 근본은 덕치(德治)인데 이것이 곧 예치(禮治)다. 이러한 논리는 질병의 치료에도 적용되었다. 병이 나기 전에 양생(養生)이 중요했다. 여기에서 덕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식치며 법치에 해당하는 것이 약치(藥治)다.
그리고 임금이 사는 집, 궁궐의 전각 이름에는 성리학적 군주가 되는 방법이 담겨져 있다. 가령 경복궁을 살펴보면 왕실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 편전(便殿)인 사정전(思政殿),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으로 각각 구분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조선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것은 편전인데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펼쳐지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책은 왕의 반쪽인 왕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왕비는 그 자체가 정치적 존재였다. 즉 왕비가 된다는 것부터 정치적이며, 왕자를 낳는 것도 정치적이며, 왕을 보살피는 것도 정치적이었다. 이런 왕비가 되는 과정은 신부 공채라 할 수 있는 삼간택(三揀擇)의 절차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특채였다. 즉 간택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앞서 말했듯 왕비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왕자를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비의 침전인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과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의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 국왕의 일생을 통해 조선의 궁중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단순한 가르침이거나 즐거움에 있지는 않았다. 일찍이 헤럴드 블롬은『세계 문학의 천재들』에서 “나는 지혜가 삶을 위한 문학의 진정한 유용성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위대한 문학이란 곧 지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규장각에 있는 다양한 기록물들을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귀중한 지혜를 보여주는 좋은 길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