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스 - 외모 상상 이상의 힘
고든 팻쩌 지음, 한창호 옮김, 황상민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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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발언(hate speech)이라는 것이 있다. 인종, 성별, 종교, 성적(性的)취향 따위에 근거해 상대방을 모욕하는 발언이다. 가령, 어떤 잘못을 한 사람에게 잘못에 대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못생겨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문제시된다. 이러한 증오 발언에 대하여 법학자 로드니 스몰라는 ‘정신에 대한 강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방의 가시적 효과에 집착하고 있다. 흔히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고자 한다면 눈(目)을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눈보다 얼굴을 먼저 보는 게 다반사다.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외모는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고든 팻쩌는 외모, 상상의 힘이라는 부제가 달린『룩스(LOOKS)』에서 ‘외모지상주의 (lookism)’이라는 육체적 매력을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채로운 재능을 과시하는 매력적인 외모를 보고 왜 우리가 끌리는가? 에 대해서 흥미롭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육체적 매력이라는 단순한 본능을 밝혀내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육체적 매력이 어떻게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지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키, 몸무게, 크기, 얼굴 형태의 대칭성 등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외모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화려한 외모의 이면 모습들 그리고 외모지상주의 극복하기로 나누어져 있다. 가령, 외모가 연애와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에리히 구드의 ‘자격부여’에서 찾고 있다. 자격부여는 주관적 자격부여와 객관적 자격부여가 있다. 전자는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 기대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부유하지만 매력 없는 여성과 미남이지만 무일푼의 남성과의 관계가 성립된다. 반면에 후자는 사회나 해당 공동체가 특정인이 자격을 누릴 만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매력적인 여성이 덜 매력적인 남성과 데이트하는 경우다.

또 하나 외모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지’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미지는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정확한 지각이면서 동시에 실제와 지각 사이의 간격이라는 것이다. 매력과는 거리가 먼 링컨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연설가였지만 그만큼 그의 육체적 외양이 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미지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TV같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우세한 얼굴(facial dominance)'를 지닌 후보자가 능력과 지도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화려한 외모의 모습들에는 외모에 목숨을 거는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무식욕증과 대식증이 여성의 질병이라면 아도니스 콤플렉스(Adonis Complex)는 남성의 신체적인 강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나쁜 건강은 아름다움을 사라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외모를 개선하기 위한 가격은 곧 성형중독자를 불러일으켰다. 성형중독자들은 어떤 수술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면 외모지상주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기 외모에 대한 견해, 태도, 행동을 살펴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더 나은 외모를 보여주기 위해 다이어트할 마음을 먹기보다는 더 나은 건강을 위한 음식에 초점을 맞추는 식단을 짤 필요가 있다.”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현실에 도전하라고 한다. 또한 “나는 거울 속에서 내 모습을 보거나 가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 언짢아하지 않도록 정서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태도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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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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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言)이 어떻게 생겼을까, 라고 조금은 붕 뜬 질문을 파울로 코엘료에게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영혼의 연금술사로 자리매김하며 수많은 독자층을 지닌 그의 글은 햇살 같다. 후덥지근하거나 끈적끈적하지 않고 따뜻해서 좋았다. 거센 비바람으로 우리 삶이 위협받고 있을 때 그는 먹구름을 밀쳐내며 ‘신(God)을 믿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작은 존재가 신(God)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순례의 길에서 그의『승자는 혼자다』를 만났다. 이 소설에서 그는 놀랍게도 “짧다.”라고 말했다. ‘사랑’ ‘신’이라는 짧은 단어가 그렇다는 것이다. 단어가 짧은 만큼 말하기도 쉽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세상의 빈 공간을 채워준다고’ 는 삶의 지혜가 듬뿍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세상은 공간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일상은 공간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만지거나 혹은 만질 수 없는 공간을 지배하는 것을 짧게 말한다면 바로 ‘승자’가 아닐까?

이 소설에서 빈 공간은 칸영화제다. 세계 3대 영화제중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의 매력 때문에 잠 못이루는 것은 아니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추억에 불과했다. 이제는 레드카페 위를 걸어가는 스타에 열광한다. 모차르트의 삶을「아마데우스」로 만든 필로스 포먼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천재를 발견한다.’고 했던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화려하게 패션쇼로 몰락한 칸영화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있다. 칸영화제를 찾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과 아픔을 파고들고 있다. 영화는 단지 그들에게 선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과시를 목숨과 맞바꿨다. 이렇게 칸영화제를 빈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허영에 가득 찬 세 가지 욕망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름다움에 가려진 거대한 삼각형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서 온 사람들을 작가는 아직 성취하게 있는 사람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슈퍼클래스라고 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작가는 어떻게 해서 승자가 혼자가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고독한 상태에서 작가는 유명인 신드롬이라는 악마를 찾아냈다. 작가에 따르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믿기 시작할 때 그것은 찾아온다. 저들이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슈퍼클래스다. 모든 사람들의 꿈, 그늘도 어둠도 없는 세계, 그 무엇을 요구하든 오직 ‘예’라는 대답만을 듣는 세계….’ 결과적으로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런 순간에도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세계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슈퍼클래스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저 허황된 꿈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은 슈퍼클래스 즉 승자다. 승자는 우연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필요에 의한 철저한 연구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지만 승자는 자기의 방향이 옳다는 것을 안다. 승자의 방향은 곧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방향이다. 승자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거꾸로 가는 것이다. 가령, 이 소설에서 하미드 후세인은 중동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승자의 방향이 삶의 절박함을 넘어서는 자신감이라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승자의 방향이 비즈니스라고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에서 러시아의 갑부 이고르는 남을 이용하거나 배반했다. 또한 배우 지망생 가브리엘라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쳐야 했다. 그리고 슈퍼모델 재스민은 샴페인 잔을 들고 있으면서도 정작 알코올 대신 미네랄워터를 마셔야 했다.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을 그럴듯하게 당연시 되는 꿈의 대가이자 덫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처럼 승자가 혼자가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소설을 끝가지 읽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승자는 혼자가 아니다.’를 깨닫게 되었다. 승자가 혼자가 아닌 이유는 이고르와 에바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고르의 멈출 수 욕망으로 인하여 에바의 삶은 무척이나 공허했다. 그럴수록 에바는 사랑을 되찾고자 했지만 이고르는 아내의 요구를 외면한 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에바가 “당신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거야. 우리의 결혼 생활도, 우리의 사랑도 파고할거라고.” 말했지만 그는 안전한 결혼 생활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로 그녀가 떠나버리자 이고르는 사랑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바에 집착했다. 더구나 에바를 찾기 위해 세계를 파괴하며 살인마가 되었다. 그는 ‘더 큰 사랑을 위해서라고’ 변명했다.

어느 누구보다 이고르는 더 큰 사랑을 위해 승자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고르에게 사랑과 성공은 한 몸이었다. 성공한 만큼 사랑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험난한 세상과 싸워 이긴 이고르에게 위대한 존재를 위해서 어느 누군가의 희생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승자가 혼자이듯 그의 사랑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곧 작가에게는 ‘좁은 사랑’으로 보였다. 반면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넓은 사랑이란 누구의 가슴에든 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작가의 믿음이 강해서였는지 사랑의 능력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의 가슴을 넓은 사랑으로 채워야 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꼭 좋은 환경에서만 이뤄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고난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보낼 때 말하기가 어렵더라도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예.”라는 예의바른 대답은 소심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반면에 “아니오.”라는 대답은 모든 것의 끝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단단한 생각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고 결코 원하지 않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 ’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마감하고 영(靈) 최후의 심판대에 올랐을 때 신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고 “살아 있을 때 너는 사랑했느냐?”고 묻는 까닭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삶이 온갖 돈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바꿀 힘이 승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승자에 대한 완벽한 은유는 승자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 말대로 사랑이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었다. 돈, 권력 그리고 빼어난 미모가 아니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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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생각한다 -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질병, 물 : 5가지 키워드로 읽는 지구
김수병 외 지음 / 해나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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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 없는 세상이 된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뉴스위크」는 21세기 인류에게 계시록으로 남을 책으로 앨런 와이즈먼의『인간 없는 세상』을 추천했다. 이 책을 들여다보면 ‘인간 없는 세상 연대기’가 흥미롭게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10만 년 후 된다면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인간이 인간만을 위한 개발에 치중하면서 지구는 ‘코드 레드(Code Red)’상태에서 심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토머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다. 그래서 그는 ‘코드 그린(Code Green)’을 주장하면서 지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른바 그린 혁명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기획하고 국내의 과학저술가들이 지은『지구를 생각한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5가지 키워드로 지구를 둘러싼 문제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질병, 물 등등 굵직한 키워드를 자신의 영역에서 문제점에 대한 대답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싶은 지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서문에 나와 있듯 ‘녹색 미래’가 되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있어 1938년 가이 스튜어트 캘린더가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이 지나친 기우만은 아니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는 석유 같은 화석 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결과였다. 이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지난 반세기 0.6도 올랐으며 급격한 기후변화를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기후변화는 몇 차례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기후변화는 인간이 주범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탄소 중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에 있어 석유 중독이라는 고탄소 경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 중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1차 에너지 즉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경제적 효율성에 있어 원자력 발전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치유는 태양, 풍력이라는 저탄소 경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의 미래는 ‘수소에너지 체제’가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수소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식량에 있어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먹을거리가 위기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기계화된 농토 그리고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인하여 우리의 밥상은 안전하지 못하다. 더구나 식량의 비윤리적 태도가 거대한 산업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만큼 마이클 폴란이 걱정한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정크푸드(junk food)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밥상의 개성을 살리는 느리고 맛있는 슬로푸드(slow food)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질병에 있어 점차 더워지는 지구로 인해 말라리아 같은 곤충의 공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또한 여름철 식중독이 주로 세균성이라고 한다면 겨울철 식중독은 노로바이러스가 일으킨다. 그리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으로 인하여 ‘창백한 악마’가 창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한 부메랑이 인간을 공격하는 데 있어 최근 뜨거운 이슈는 무엇보다도 환경 호르몬에 있다. 환경호르몬은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인체 호르몬 시스템을 혼란시켜 이상을 일으키게 한다.

마지막 물에 있어 20세기가 석유 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 분쟁의 시대라는 것이다. 더구나 석유는 바이오 연료나 신에너지로 대체 할 수 있지만 물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빗물, 바닷물을 식수로 만드는 해수 담수화 그리고 마법의 물이라고 불리는 해양심층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일상적으로 하수를 처리하면서 ‘맛있는 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구온난화, 석유 고갈, 생태계 파괴, 환경호르몬, 물 부족이라는 전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지구의 미래를 냉철히 내다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와 있듯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넘어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이제 더 이상 나중은 없다. 바로 문제를 인식하는 지금은 아마도 비관론과 낙관론의 중간에 위치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일찍이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한 제인 구달이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조금씩, 매일, 함께, 노력한다면 지구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라고 일깨워주었다. 이 책 또한 지구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데 매우 시의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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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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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하루기 십년(十年)같다고 한다면 좋은 일만은 아니다. 겉으로 봐서는 70년의 나이를 열배인 700살을 사는 것이지만 그만큼 하루하루가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북송 때의 소식(蘇軾)은 아우 소철(蘇轍)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 일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곧 하루가 이틀인 것같이 느껴진다. 만약 이런 식으로 조처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늘 매일이 오늘인 듯 느끼게 될 것이니,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곧 140살을 사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소식에 따르면 70년의 나이를 곱절인 140살로 사는 것이야말로 넉넉하고 편안한 삶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삶과 죽음은 다를 게 없다.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다. 사마천은『사기』에서 “죽음에 대처하기 어렵다.(處死者難)”를 말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반추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춘추좌씨전』을 보면 사람이 불후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덕(德),공(功),언(言)을 말했다. 즉 덕을 세우거나 공을 세우거나 말을 세워야 했다.

심경호의『내면기행』을 읽으면서 옛 사람들의 묘비명과 묘지명을 마주하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묘도(墓道: 혼령이 다닌다고 여기는 무덤 앞의 길)에 세우는 묘비(墓碑)와 광중(壙中: 무덤의 속)에 묘지(墓誌)를 묻었다. 이러한 묘도문자(墓道文字)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며 성찰이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적으로 살아 숨 쉬었다. 삶과 죽음을 반성하면서 해서는 안 될 일과 해야만 할 일에 대한 뜨거운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이 책을 보면 뼈 속 깊이 새겨지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김광수(金光遂)는「상고자김광수생광지(尙古子金光遂生壙誌)」에서 “늙은 이 몸은 죽음과 종이 한 장 사이이니 뼈야 썩어도 좋다만 궁극에 이르기 어렵기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김종수(金鍾秀)는「자표(字表)」에서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허허로워 탕탕(蕩蕩)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내가 죽을 때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가 하면 이황(李滉)은「자명(自銘)」에서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라고 말했다. 노수신(盧守愼)은「암실선생자명(暗室先生自銘)」에서 “대의가 분명하기에 스스로 믿어 부끄럼이 없도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비석에 암실(살아있을 때 만든 자기 무덤)이라고 적었다. 끝으로 박세당(朴世堂)은「서계초수묘표(西溪樵叟墓表)」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이 세상 사람답게 살면서 남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걸로 옳다고 하는 자에게는 끝내 머리 숙이지 않겠으며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고 여겼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을 불퇴전(不退轉)을 결심한 사람과 같은 심경으로 엮었다고 했다. 옛 선인들의 묘도문자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삶의 지혜와 세심한 당부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성공이라는 물질만을 바쁘게 쫓아가는 우리들에게 『내면기행』은 뜻 깊은 인생수업으로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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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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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사랑을 잘 할 수 있을까? 요시모토 바나나의『무지개』를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순진한 질문이 목구멍 속으로 쑥 들어갔다. 작가의 목소리에는 사랑이 어리석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도 정작 당신이 그 누구의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는 외로움을 말이다. 그럼에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곧 사랑을 어리석게 하고 만다.

이 소설에서 이런 고민을 안고 타히티로 여행을 온 에이코가 나온다. 여행의 목적이 ‘바다에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거북과 상어, 가오리와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습니다.’라는 라구나리움 투어였다. 하지만 라구나리움 투어는 변명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도쿄에서 숨 가쁘게 타히티로 도망쳐올 까닭이 없었다. 그녀가 머물렀던 도쿄에는 그녀의 직장이 있었고 불안했지만 사랑이라고 여겨지는 심한 몸살도 있었다.

타히티를 좋아해서 타히티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였던 다카다를 어느 순간 그녀는 사랑했다. 그러나 남들 마냥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두려워했다. 어쩌면 완벽한 사랑이었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완벽함이라고 하는 것은 살면서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사람들로부터 쓴 소리를 들어야 하거나 손가락질을 당하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어느 날 운명적으로 불어온 사랑을 그들이 순간 다카다는 그의 아내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있었을 때다. 그때 그녀가 무지개마냥 그의 고독한 시간의 알맹이들을 반짝이게 했다. 그녀가 타히티를 좋아한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에게는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되돌아보면 사랑의 힘이 솟구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잘 몰랐다가 불쑥 천사같은 사람이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에이코에 따르면 천사는 인생에 빛을 선사해주는 존재다. 자신이 애지중지 기른 고양이를 정성껏 돌보는 에이코의 마음을 둘러싸며 다카다에게는 독특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에이코는 고양이를 돌보면서 동식물을 좋아하는 다카다의 소중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카다가 사랑을 고백할 때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욕망에 얼룩지지 않는 눈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에 빠졌을 때의 결심은 그녀는 쉽게 믿지 않았다. 작가 말대로 ‘사랑하고 있을 때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힘도 사랑의 힘에 불과할 뿐 자신의 중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는 있다고 해서 아내의 발목에 잡힌 사장님과 불륜을 저지를 수 없었다. 다카다가 아내를 선택한 것은 잘못이자만 그래도 결혼까지 했다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타히티에 온 그녀는 세상에는 그토록 무서운 상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와 함께 수영하는 레몬색 상어는 작고 얌전했다. 노란색이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상어뿐만 아니라 햇살이 비칠 때 산호의 색깔이 바뀌면서 물속에 있는 모든 것이 엷게 빛날 때 그녀는 일곱 가지 빛깔이 모두 들어 있음을 경이롭게 바라봤다.

그녀는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갖가지 일이 있었지만 다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다….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괴로운 일도 있으리라. 그래도 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반드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무지개』처럼 어리석다면 문제꺼리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아플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유효기간을 알 수 없는 불륜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불륜은 사랑의 정답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피할래야 피할 수없는 것이 또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동안 우리가 뭔가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오기와 자존심일 것이다.

지난 날 사랑의 아픔을 불러내고 있는 이 소설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불륜도 사랑일까? 라는 물컹거리는 감정이 아니었다. 비록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망연자실 하며 넋을 놓아버릴 만큼 나쁜 사랑은 아니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은 사랑의 가능성으로 공감했다. 사랑의 가능성이 진실을 향하고 있다면 작가 말대로 진실이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일곱 가지 색깔로 빛날 것이다. 무지개 같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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