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하루기 십년(十年)같다고 한다면 좋은 일만은 아니다. 겉으로 봐서는 70년의 나이를 열배인 700살을 사는 것이지만 그만큼 하루하루가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북송 때의 소식(蘇軾)은 아우 소철(蘇轍)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 일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곧 하루가 이틀인 것같이 느껴진다. 만약 이런 식으로 조처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늘 매일이 오늘인 듯 느끼게 될 것이니,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곧 140살을 사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소식에 따르면 70년의 나이를 곱절인 140살로 사는 것이야말로 넉넉하고 편안한 삶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삶과 죽음은 다를 게 없다.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다. 사마천은『사기』에서 “죽음에 대처하기 어렵다.(處死者難)”를 말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반추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춘추좌씨전』을 보면 사람이 불후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덕(德),공(功),언(言)을 말했다. 즉 덕을 세우거나 공을 세우거나 말을 세워야 했다.

심경호의『내면기행』을 읽으면서 옛 사람들의 묘비명과 묘지명을 마주하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묘도(墓道: 혼령이 다닌다고 여기는 무덤 앞의 길)에 세우는 묘비(墓碑)와 광중(壙中: 무덤의 속)에 묘지(墓誌)를 묻었다. 이러한 묘도문자(墓道文字)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며 성찰이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적으로 살아 숨 쉬었다. 삶과 죽음을 반성하면서 해서는 안 될 일과 해야만 할 일에 대한 뜨거운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이 책을 보면 뼈 속 깊이 새겨지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김광수(金光遂)는「상고자김광수생광지(尙古子金光遂生壙誌)」에서 “늙은 이 몸은 죽음과 종이 한 장 사이이니 뼈야 썩어도 좋다만 궁극에 이르기 어렵기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김종수(金鍾秀)는「자표(字表)」에서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허허로워 탕탕(蕩蕩)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내가 죽을 때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가 하면 이황(李滉)은「자명(自銘)」에서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라고 말했다. 노수신(盧守愼)은「암실선생자명(暗室先生自銘)」에서 “대의가 분명하기에 스스로 믿어 부끄럼이 없도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비석에 암실(살아있을 때 만든 자기 무덤)이라고 적었다. 끝으로 박세당(朴世堂)은「서계초수묘표(西溪樵叟墓表)」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이 세상 사람답게 살면서 남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걸로 옳다고 하는 자에게는 끝내 머리 숙이지 않겠으며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고 여겼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을 불퇴전(不退轉)을 결심한 사람과 같은 심경으로 엮었다고 했다. 옛 선인들의 묘도문자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삶의 지혜와 세심한 당부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성공이라는 물질만을 바쁘게 쫓아가는 우리들에게 『내면기행』은 뜻 깊은 인생수업으로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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