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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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시오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는 기묘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겉으로 보면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상의 파편적인 이야기들은 울분을 자극한다. 사랑, 광기, 죽음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은 몹시 서글프다. 이미 지나간 순수한 추억들, 그래서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시절에 대한 북받치는 눈물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백일몽처럼 이어졌다. 작가는 백일몽에다 죽음과 공포의 분자들을 흩어지게 하며 삶의 비밀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편으로 비극적 결말은 진실을 위태롭게 한다

 

사랑의 계절의 남자에게 사랑은 제목 그대로다. 첫사랑에 대한 불안한 내면이 사계의 선율을 타고 흐른다. 오로지 그녀만을 사랑하고픈 마음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들 그러니까 사회적인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게 사랑은 핏줄이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었으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랑은 사회적 통념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과 동시에 환상이 깨졌을 때 생겨나는 동정에서 눈물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사랑에 대한 변명이 아닌 마지막 사랑의 불꽃을 터뜨릴 만한 열정이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을 때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은 결코 단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은 허무함이 전부가 아니다. 저 멀리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에서는 눈물샘이 미칠 듯이 쏟아졌다. 뇌막염에 걸려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그들의 관계는 모호하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불분명한 작은 기억밖에 없다. 문제는 작은 기억이더라도 뇌막염에 걸리면 큰 기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되고 만다. 어쩌면 뇌막염에 걸린 여자의 병은 사랑의 온도가 41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맴돌았다. 남들은 사랑 때문에 가슴이 타들어간다고 하는데 여자는 놀랍게도 뇌가 타들어갔다. 뇌막염 때문에 사랑이 변했다. 남자는 사랑을 고백하고 여자는 사랑을 묻는다. “더 이상 착란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도지금처럼 절 사랑하실 건가요?”

 

한편 사랑의 마지막 반전은 사랑의 가능성에 있다. 가능성을 자꾸만 돌아본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사랑의 균형이 깨지고 어느 순간 광기에 휩싸인 무서운 존재가 된다. 엘 솔리타리오에 나오는 보석세공사 카심에게 보석은 사치스러운 몸을 장식하는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결코 보석에 투사된 아내의 욕망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욕망을 죽여 가며 사랑을 쓸쓸하게 마무리 한다. 목 잘린 닭에서 백치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은 애정이 식어버린 부모에 대한 반발력으로 그들의 여동생을 마치 닭의 목을 잘라 죽이는 듯 하면서 잔인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깃털 베게에서는 신혼의 꿈이 사라진 여자는 상실감이 증폭되면서 끝내는 괴물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 괴물은 정체가 불문명한 흡혈귀이다. 여자가 사랑을 소화하지 못할수록 인생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작가의 열여덟 편의 단편 소설집에는 사랑과 광기 그리고 죽음이 복잡한 사슬로 이어져 있다. 죽음은 때때로 일사병, 가시철초망, 야구아이에서 보듯 동물의 몸을 통해서 전달된다. 이런 죽음은 인간의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적인 죽음이라고 할까? 죽음의 애잔함이 없지 않으나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이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의 죽음은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에서 보듯 허풍에 가깝거나 내 손으로 만드는 지옥에서 보듯 뼛속까지 마약에 중독된다. 이러한 죽음의 소용돌이를 보고 있으면 약간은 불쾌하면서도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은 두렵게 느낀다. 비록 죽음 그 너머의 이야기에 대해 알 수 없어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사랑, 광기, 죽음의 경계선은 없다. 모두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존심이 걸린 문제"(245쪽)여서 그런지 모른다. 사랑이든 광기든 죽음이든 자존심 때문에 아프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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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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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화된 일상을 경고한다. 그래서 현명하고 건강한 식사에 대한 13가지 생각은 영양가 높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그 비결은 휴머니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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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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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윌슨이 예측한 진실이 도래하였다. 스낵화된 일상을 경고한다. 그래서 현명하고 건강한 식사에 대한 13가지 생각은 영양가 높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궁극적으로 좋은 음식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그 비결은 휴머니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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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권리를 찾기 위한 안내서
김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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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하지 말고 분노하라.

-누스바움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를 알리는 포스터에 나오는 말이다. 1960년대 우주선을 쏘아 올린 나사(NASA)의 숨은 인물을 그린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숨은 인물들이 캐서린, 도로시, 메리라는 세 명의 흑인이라는 것. 이들이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나사, 아니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종, ()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일까? 이 영화에서 캐서린이 흑인 여성 전용 화장실을 가기 위해 다른 건물을 향해 비를 맞으며 800미터를 달려가는 장면이 애틋하게 남아있다

 

그런가 하면 방 안에 코끼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 안에 코끼리가 있다면 여러모로 불편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방 밖으로 내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쫒을 방법이 없을 때 뜻밖에도 가장 좋은 방법을 김지윤의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은 듯 살아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이렇듯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에게나 뚜렷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커다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모른 척 외면하는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방 안의 코끼리를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두 가지 계층으로 나뉜다. 방 안의 코끼리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류(主流)이며 반대로 방 안의 코끼리를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비주류(非主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은 통해 정체성을 모색한다.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내 안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부자(富者)의 경우 그 사람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류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성소수자라고 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별과 혐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주류 사회에서 멀어지면서 비주류가 되고 만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에게 주류와 비주류라는 권리의 사각지대가 있다. 주류의 권리는 눈에 잘 보이는 반면에 비주류의 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설령 보인다고 해도 애써 외면하기 일쑤다. 하지만 주류의 권리는 어떤가? 오죽했으면 주류의 권리는 특권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특권이라고 해서 뭔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너무나 평범한 나머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며 무시할 수 있다는 건 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 제도적으로도 주류는 평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차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을 덜 인식하면서 한편으로는 비주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성의 권리가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의 절반이라는 물리적인 숫자로 보면 여성은 당연히 소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이름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으며 사회적인 소수자가 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보다 여성의 권리는 발전했다. 투표도 할 수 있고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성평등의 지표도 높아지는 게 이상적인 사회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하다. 사회적인 차별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만큼 참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점차로 성차별이 사회 문제로 가시화되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구체척인 감각이다. 사람들은 적어도 권리라고 하면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회적인 약자이며 비주류인 사람들에게 권리는 희망사항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힘들더라도 희망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듣기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격려하는 메시지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희망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빼앗긴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불행을 당연시하는 것은 공정할까? 차별일까? 저자는 오에 겐자브로의 개인적인 체험에 나오는 중증 장애아를 책임져야 할 버드의 생각과는 달랐다. 이 소설에서 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분명히 이건 나 개인에게 한정된,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야.”

 

사회적인 약자의 문제는 어렵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회적인 약자는 괴롭힘, 왕따, 성폭력 등 수많은 사건들에서 보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공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불편한 방향으로 사건의 진실을 왜곡한다. 어디 그뿐인가?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사건의 원인을 따지고 묻는다. 사회적인 약자들이 뭔가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을 먼저 하면서 말이다. 침묵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침묵은 또 다른 침묵을 만들어낸다. 그럴수록 차별이 당연시되는 불합리한 세상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는 선량한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약자의 불행을 불행의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인 약자를 다시 한 번 차별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 약자들이 물리적으로 사회 안에 있다고 해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거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이라는 영역에서 그들은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들 같다. 인간으로서 권리를 잃어버려 투명인간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적인 약자의 권리가 더 이상 희생되지 않아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들이 안전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생활이 가능하도록 사회적인 인식이 필요하며 사회는 공정한 세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무리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차별을 없애자는 기본원칙을 제정했다고 해서 그 결과로 차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간에 동등한 권리를 희생하지 않아야 우리가 바라는 차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차별은 전염병이 강한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를 대응하기 위해 예전에 없던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전염병의 결과로 보면 사람이 바이러스의 전파자 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당연시함을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를 통해 의심해보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 될 것이다. 차별이 전염병이라면 권리는 면역력이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취약한 원인은 놔두고 전염병의 결과만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게 되면 사회적 고립이라는 불치병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동안 외면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이슈화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약자들의 무력해 보이는 현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사회적 연결 고리가 얼마가 느슨하며 허약한지 깨닫게 된다. 침묵은 차별이며 또 다른 침묵을 불러일으킨다. 침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정의로운 세상이다. 그리고 침묵에 맞서 사회적 연결이 강할수록 면역력이 좋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가 권리를 희생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방 안에 어슬렁거리는 코끼리를 쫓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한 세상은 서로가 차별하지 말고 연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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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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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이다.

- 아도르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화제의 명강의를 선보인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새삼 불행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보니 불행의 일상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불행은 전염병 같았습니다. 전염병의 특성상 감염되기 쉽고 치명적입니다. 문제는 전염병에 대한 사전 관리가 소홀하다보니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헬조선’, ‘탈조선을 외치며 이상한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할까요?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인이 놀랄만한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심정으로 한강에 투신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악몽으로 인해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굴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을까요? 이상한 나라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날수록 이상한 나라가 정말로 지옥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첫 번째, 이상한 나라는 사람들은 가장 모순적으로 자기 착취를 당연시 합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유인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에 빠져 소외또한 당연시 합니다. 소외는 흔히 왕따라는 정도로 일상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소외의 좀 더 명확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 ‘삶이 뒤집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필요로 해서 돈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돈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돈 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 때문에 이백충’(한달에 200만원 이하의 소득으로 사는 벌레 같은 사람) 이란 말을 끔찍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상한 나라는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이상한 나라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보세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은 촛불처럼 타오르며 민주주의를 외치며 불의에 저항했습니다. 그리고는 정권 교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럴 정도로 이상한 나라는 광장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광장이 아니라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서 하는 모습들을 보면 지옥을 보는 듯합니다. 권위주의, 가부장주의, 꼰대 문화, 갑질 문화, 비정규직, 성차별, 성폭력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민주주의의 천국처럼 여긴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상한 나라에서 일상 민주주의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할뿐 성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상한 나라는 약한 자아의 사회입니다. 아도르노가 지적한대로 약한 자아는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입니다. 약한 자아는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약한 자아를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약한 자아는 사회의 고질적인 병()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약한 자아의 바이러스는 놀랍게도 승자독식을 위한 교육이 슈퍼전파자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년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교육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되어 불행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왜 이상한 나라가 되었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안팎을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한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날수록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편 한다고 해서 외면만해서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좀 더 현명하게 한계를 의식하고 반성해야 대한민국이 이상한 나라라이며 볼품없는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독일을 모델로 하며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가 되는 것을 통찰하고 있습니다. 독일하면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떠올리는 과거 파쇼적인 전쟁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180도 달라져 복지국가로 대한민국과 전혀 다른 정상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실업 상태여도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이러한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독일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독일을 대안으로 본 것은 당연합니다. 독일처럼 통일만 되면 경제발전과 함께 국민이 잘 사는 나라가 된다는 장미 빛 희망. 대한민국처럼 분단국가에서 최선의 선택은 통일을 통해 사회 변화를 도모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현상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하게 됩니다. 한 나라가 통일이 되었다고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자유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통일을 하는 것은 좋을 리 없습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야만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독일을 관심 있게 연구하면서 ‘68혁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68혁명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회변혁운동으로 기성세대의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습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68세대들이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습니다. 과거청산을 성공적으로 했으며 대학생에게 생활비를 주는 바퓍제도를 시행하면서 교양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노사 갈등이 아닌 노사공동결정체로 경제 민주화를 완성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일 헌법1조는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높은 시민정신으로 사회적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확고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에서는 어떤 일어나고 있나요? 68혁명의 이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30-50 클럽에 가입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혁명 등 위대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모두들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머지 이상하게도 불행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폭발시키는 무서운 의식에서 벗어나 제대로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행복을 당연시해야 합니다.

 

일찍이 68세대의 정신적 지도자인 허버트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자유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노예 상태에 있으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예 상태는 지배자의 논리를 미화하는 것입니다. 지배자는 자본의 야수성을 가진 결코 좋은 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본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 삶이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게 하니까요. 자본에 적응하며 사는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의 노예를 마치 삶의 이치인양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비현실적인 꿈이 되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통의 생각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한경쟁의 민낯을 보세요? 너무나 살인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여전히 일차원적 인간으로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 같은 인간으로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명쾌한 주장을 듣고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일차원적 인간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오직 일차원적인 경쟁만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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