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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친애하는, 경애하는, 사랑하는, 소중한' 등의 뜻 외에도 '디어 (dear)'에는 옛말로서이긴 하지만 '쓰라린, 냉엄한'등의 뜻도 있다고 검색 결과가 알려준다. "아이구 이런, 어쩌다가..." 이런 뜻으로 "Oh, dear" 란 말을 쓰기도 한다. 과연 앨리스 먼로는 무슨 의미로 '디어 라이프'라고 했을까. 단순히 친애하는 누구누구에게 라는 편지글의 첫 문장처럼 삶에게 편지를 쓰듯이 썼을까?
늘 물음은 많은데 답을 못 찾는다.
열 네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무슨 제목이 이럴까 했던 <일본에 가 닿기를>은 흔한 말로 하자면 유부녀의 외도 이야기인데 작가의 의도를 금방 전달받지는 못했다. 너무나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은 여기서뿐 아닌 이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정도는 이제 아는데도, 다 읽고서 과연 작가의 의도는? 하고 따로 생각을 해봐야했다. 파도 한번 치지 않는 바다가 있을 수 없는 것 처럼, 이런 일은 바다의 파도만큼의 사건도 되지 않으며, 누구나의 인생에서 어느 시기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여자라고 해서 더 특별한 사건일 수는 없다는 것. 그것으로 정리한다. 제목이 중의적이다. 일본과는 아무 관계없는 내용이니까.
두번째 단편 제목 <아문센>은 여기서 마을 이름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일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결정을 내려 헤어짐을 당한 후에도 마지막까지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라. '사랑에 관한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라고. 사랑이란 그저 기분이고 상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이런 내 생각은 어쩌면 이 여자의 말과 반대가 아니라 비슷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인정하지만 피하고 싶은 사실이라서 나처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고, 자극적인 것만 찾아 날뛰는 사람들의 시간 낭비이자 인생 낭비 (112쪽) 라는 곳에 밑줄을 그은 <메이벌리를 떠나며>. 모여서 다른 사람의 스캔들과 간통, 술꾼들을 화제로 올리기 좋아하는, 그저 멋 부리는 여자, 매력 있다고 하는 여자들에 대한 레이의 생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작가의 생각이기도 할까? 마지막 117, 118쪽의 문장들은 몇번 더 읽어볼만 하다. 그는 곧 밖으로 나와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발 한 발 내디딜 평범하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에게 있는 것, 그가 지닌 것은 오직 결핍뿐이었다. (117,118쪽) 이런 묘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상실전문가라는 말은 작가가 만든 말이겠지.
<자갈>은 나중에 보니 뒤에 나오는 작가의 자전적 단편과 공유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물에 빠져 죽은 언니. 동생인 '나'는 언니가 무슨 생각으로 물속에 들어갔는지 모르는 척 하지만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동생인 '나'가 엄마와 닐에게 언니의 상황을 빨리 알리지 않은 이유와 같을테니까. 다만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아차릴까 궁금했던거다.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몇겹으로 둘러쌓여있을까 섬찟했던 작품.
<안식처>에선 드물게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 느껴지는 문장이 있었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남편을 위해 안식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여자들은 무엇에 헌신하든 그것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는다'. 물론 꼬집어 하는 말이긴 하다. 다른 작품에 비해 좀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건 뒤에 나오는 작품 <자존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작가의 의도가 너무 감춰진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나가던 집안의 딸 오나이다의 자존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반면 그녀 아버지의 자존심은 한 줄 정도나마 언급된 것으로 봐서 제목 <자존심>은 딸보다는 아버지의 경우를 말한다고 봐야할지.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기도 한 <코리>. 제목을 '속임수'라고 하지 않고 '코리'라고 했지만 명백하게 이것은 속임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 믿음, 의지할 대상을 갖는다는 것을 다 허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작품.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다 읽고 나서 제목을 꼭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기차>에서 벨과 잭슨의 인연이 우연이었다면, 잭슨과 일린의 관계, 잭슨과 그가 관리하던 건물의 관계는 그와 대조하기 위한 필연으로 설정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벨의 고백을 듣고 잭슨은 왜 벨을 피하게 되었을까. 나중에 일린을 피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약속을 저버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죄의식 하나를 마음 한구석에 보태고 살아간다. 벨, 잭슨, 일린. 누구 하나 쓸쓸하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이 없다. 새삼 작가의 능력을 다시 확인하게 된 작품이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그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만큼 억지로 꾸미거나, 뻔한 어휘로 뻔한 심리 묘사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정말 <호수가 보이는 풍경>에 나오는 여자처럼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살게 되며 그 구분이 모호해질까? 정상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말이다. 죽을 시기와 장소, 방법 같은 침침한 얘기로 시작하여 TV드라마 사랑과 전쟁 류의 전개와 마무리를 연상시키는 <돌리>에서 부부는 서로에 대해 화를 품고 있으면서도 한편 존경스런 감정을 갖고 있다. '노년'의 부부 말고 어떤 관계가 그럴수 있으랴.
<시선>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엄마보다 가정부 세이디에게 더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이성적이고 반듯하며 상위층처럼 살고 싶어하는, 어린 동생들을 보느라 충분한 시간을 같이하지 못하는 엄마에 비해 세이디는 춤추러 간 얘기를 포함해서 앨리스를 친구 삼아 자기 얘기 들려주길 좋아한다. 즉 앨리스와 세이디 사이에는 앨리스와 앨리스 엄마 사이에 부족한 '대화'가 있었다. 이 작품부터 다음에 나오는 세편의 단편은 작가 자전적 이야기라고 스스로 밝히며 시작한다. <밤>을 읽으면서, 불면의 어린 시절은 그냥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게 아니라, 불안과 억눌린 욕구와 관련이 있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밤이 되고, 누구나 잠자리에 드는 시간, 그 잠자는 것이 하루 중 제일 힘드는 일이었던 어린 시절을 경험했던 나는 저자처럼 일어나 돌아다니지도, 아버지에게 고백하지도 못했다. <목소리들>은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이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오래동안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성(性)에 눈뜨는 계기가 되는 상황이란 누구의 일생에서도 기억에 남을만한 한 시점이 될테니까.
책 제목이기도 한 <디어 라이프>는 이 책의 맨 마지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친밀감의 부재, 소통의 부재, 그리고 아버지의 매질. 이런 경험들 없이도 그녀가 지금의 그녀일수 있었을까? 모든 결핍, 원망은 모이고 쌓여서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탈바꿈할 잠재력을 갖는다. 그런 관점으로 이 작품을 읽었는데, 마지막에 그녀는 용서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가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사람은 네터필드 노부인.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를 대신해서일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한다. '디어(dear)'의 의미로서 '친애하는'과 '쓰라린'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디어 라이프>는 쓰라리고 냉엄한 생, 그래서 소중하고 친애하는 생에게 바치는 앨리스 먼로의 고백이라고.
좋은 소설의 본보기를 또하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