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우연히 이런 영화를 한다더라 하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준 이후로 아이가 이 영화를 계속 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 동네 영화관 중 오직 한군데에서만, 그것도 하루에 두번, 낮 12시 몇분과 밤12시에만 하길래 시간이 안맞아 못 보고 있다가 오늘 낮에 보고 왔다. 모든 연령 관람가이긴 하지만 만화 영화도 아니고 아이들을 겨냥한 영화도 아닌데 2시간 13분 동안 지루해하지 않고 잘 보려나 조금 걱정도 했는데, 아이나 나나 모두 재미있게 끝까지 보고 나왔다.
'인빅터스', Invictus : 정복되지 않는, 굴하지 않는.
영화 중에 넬슨 만델라가 인용한 시 제목이기도 하다.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 서로 다른 계층으로 나뉘어 지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두 계층이 어떻게 하나로 융화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면서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을 재조명해준다. 넬슨 만델라 역의 모건 프리만이야 두말할 필요 없는 배우이고, 여기 저기 꽃미남 배우들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
맷 데이먼의 적당히 남성적인 마스크와 체격은 럭비 선수 역으로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럭비 월드컵, 남아공과 뉴질랜드 대항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경기장 안과 밖을 번갈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서로 보자 마자 경계를 하던, 백인 순찰차의 경찰들과 거리를 기웃기웃하던 흑인 소년이 어느 틈엔가 서로 하나가 되어 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 스포츠라면 거의 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나도 스포츠의 의미와 그 효과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연습만으로도 충분히 지쳐 있는 선수들에게 만델라는 축구 밖에 모르는 가난한 흑인 소년들에게 선수들이 직접 가서 럭비 레슨을 해주라 지시를 내리자 잔뜩 불평을 하며 찾아간 마을 운동장에서 달려나오며 환호하는 소년들을 보고 선수들의 마음은 금방 풀어지고 성의껏 아이들과 공을 차고 노는 장면에서 또 뭉클.
넬슨 만델라는 왜 그렇게 오래 감옥살이를 해야했느냐, 또 만델라는 왜 그렇게 럭비를 응원했을까 등등의 질문이 아이로부터 이어지고 부족한 지식으로 아는 만큼만 설명해주며 극장을 나왔다.

(사진은 인빅터스 국내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음.) http://www.invictus2010.co.kr
영화를 보고 나오니 또!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다. 쌀쌀한 주말, 아직도 두꺼운 파카를 입고 다니는 것도 거북한데 비까지 오니까 더 으슬으슬하다.
집에 와서 닭날개를 튀기고 야채전을 부쳐서 저녁으로 먹었다. 기름 처리하기 귀찮아서 튀기는 음식은 잘 안하는데 오늘은 그것보다 조림장 만들기가 더 귀찮아 그냥 튀기고 말았다.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좋은 영화도 보았고, 저녁도 잘 해서 먹었는데 웬지 가라앉는 저녁이다. 날씨 때문인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