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이 있다면 밥하기의 지겨움도 있다.
밥벌이에 비교될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스스로 만족을 찾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매일 해야하는데서 오는 투덜거림 같은 것이다. 

반찬이 있던 없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에 꼭 밥상을 차리곤 했었는데, 일주일 전 부터 밥상 차리기를 그만 두었다. 빵집 가서 아이가 집어드는 것 사가지고 와서는 아침에 알아서 먹으라고 한다. 식빵이나 바게트 등을 집으면 좋으련만 케잌, 머핀 같은 디저트용 빵을 골라온다. 그냥 내버려둔다.
아침부터 달달한 빵을 먹게 되니 아이는 신났다. 밥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잔소리 안해도 되고 설겆이 거리가 별로 안생기니 나도 편하다. 사실은 그동안 밥상 차리는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막 일어난 아이에게 먹는 것과 관련해 똑같은 잔소리 매일 해대는 것이 나에겐 더 힘들고 싫었던가보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일관성이 없다고 하는데, 일관성? 내가 일관성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단 말인가.  

쌀쌀한 날씨에 하루 종일 몸을 움츠리다 들어온 어제 저녁, 오늘 아침 먹을 빵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눈발도 날리는데 다시 나가기가 너무 귀찮은 것이다. 조금 있다 가야지,조금만 더 있다 가야지 하다가 그냥 자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부리나케 만든 빵이다. 빵 사러가기가 귀찮아서 빵을 만들게 되다니.



 

 

 

 

 

 

 

 

 
저울도 안 꺼내고,
밀가루 3/4컵 + 베이킹 파우더 1ts + 설탕 반컵 + 버터 엄지손톱만한 조각 하나 + 우유 1/4컵 + 계란 반개 + 집에 있던 크랜베리 반컵, 이렇게 섞어서 오븐에 20분. 

딱 두 조각 나오게 만들어,



 

 

 

 

 

 

 

 

 

 

 

 
아이가 한 조각 먹고,

 



 

 

 

 

 

 

 

 

 

 

 

 
남편이 한 조각 먹었다.

 

 

 

 

 

 

 

 

 

 

 

 

 



 

 

 

 

 

 

 

 

 

 

 

 





 

 

 

 

 

 

 

 

 



 이렇게 쌓일 정도로 눈이 왔네. 

겨울이 가기 싫은가보다. 조금만 더 있다가, 조금만 더 있다가 그러면서 내가 어제 저녁 빵 사러 가기를 미루었던 것 처럼, 겨울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 갈래, 그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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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3-1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이 빵 하나, 남편님 빵 하나. 이렇게 딸랑 두 개 만들면 나인님은 뭐 드시려고요?
글구, 아침에 계량컵도 없이 뚝딱 만든 빵이 저렇게 먹음직스럽게 고운 빛을 띄고 있다는건 축복이에요~~ >0<
울 동네도 어제 저녁엔 눈발이 제법 날리더니 오늘 아침에 보니 저 정도로 쌓이진 않았네요. 봄이 못오고 있어요..

hnine 2010-03-18 12:03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지금 빵이 문제가 아니라 무스탕님 결혼 사진, 정말 정말 예뻐요. 저도 좀 예쁘게 하고 사진 찍을걸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사진 더 공개하세요~

지금은 길에 눈이 다 녹고 해가 반짝 하고 났네요. 오늘 날씨는 꼭 제 성격같아요 이랬다 저랬다 ^^

상미 2010-03-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가 적은것대로 섞어서 반죽하고 오븐에 구우면
나도 빵을 만들수 있는거니? ㅋㅋ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도 고기를 드시는 따님 덕에,
새벽에 하루는 부채살, 하루는 삼겹살을 굽고 있단다.
경은이가 먹성 좋은대로 살 쪘으면 고민좀 되었을거 같은데,
다행이지...

hnine 2010-03-18 12:06   좋아요 0 | URL
발효빵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렵지 저런 종류의 빵 (케잌, 머핀류)은 안 어려워.
아침에 먹는 단백질이 키로 간다잖아. 경은이가 그 데이터다 ㅋㅋ
경은이를 부러워하는 친구들 많을걸. 우리가 경은이만할 때에는 그런 개념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말야.

다락방 2010-03-1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빵 만드는게 꽤 쉽게 느껴지는데요! 그런데 왜 우리엄마는 빵을 안만들어 주시는거죠? (아, 아직도 엄마타령 orz)

네, 겨울이 좀 더 있다 가고 싶은가봐요. 갈듯 갈듯 가지 않고 있네요. 좀 춥습니다, hnine님.

hnine 2010-03-18 12:07   좋아요 0 | URL
제가 쉬운 빵만 만들어요. 아니, 쉬운 빵 밖에 못 만들어요. 그리고 맛은 사는 빵이 훨씬 맛있답니다.
요즘 정말 옷 얇게 입고 나가면 안되겠더라고요. 좀 창피하더라도 요령껏 끼어입고 다니는 편이 나아요.

꿈꾸는섬 2010-03-1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벌이의 지겨움 밥하기의 지겨움..ㅋㅋ공감합니다.
근데 빵 사러가기 귀찮아 빵을 만드시는 나인님 정말 대단하세요. 전 할 줄 몰라 그런가 밥하기가 더 쉬울 것만 같아요.ㅎㅎ

hnine 2010-03-18 12:09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도 공감하시지요? 저는 아이가 어릴 때 아토피가 무척 심했기때문에 (요즘 현준이랑 현수는 괜찮은지요?) 그동안 제가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쓸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고비도 넘긴 것 같고 해서 제가 요즘 풀어지고 있습니다.

L.SHIN 2010-03-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맛있겠다.
내가 h님 집 개미였으면, 조금이라도 얻어먹었을텐데.ㅎㅎ

hnine 2010-03-18 12:11   좋아요 0 | URL
L.SHIN님, 별것도 아닌데 맛있겠다고 해주시니 제가 고맙네요. 만들어서 선물도 하고 그러면 좋을텐데 이상하게 막 만들때에는 그나마 잘 만들어지는데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만들면 꼭 망치더라고요. 연습 좀 많이 해서, 예쁘게 포장해서 이웃들에게 나눠드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세실 2010-03-1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악..저 지금 배가 많이 고픈데 먹을껀 하나도 없구.
춥파춥스라도 먹어야 겠습니다.
아 달달한 빵 먹고 싶어라.
님 저 만나러 오실때 빵 꼭 만들어 오셔야 해요. 꼭...
(근데 그 날이 과연 언제일까요? ㅎㅎ)

hnine 2010-03-18 16:07   좋아요 0 | URL
아, 세실님, 제가 바로 위의 L.SHIN님에게도 댓글로 썼는데 잘 만들어서 누구에게 좀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만들면 꼭 제대로 안되더라고요. 너무 잘 만들어야겠다고 부담을 가져서 그런지.
설탕도 줄이고, 버터도 줄이고, 그래서 그런지 보기보다는 맛은 별로에요.
지금 딱 출출하실 시간일텐데...
세실님 만날 때는 꼭! 만들어가겠습니다 ^^

세실 2010-03-18 16:47   좋아요 0 | URL
제가 스콘을 좋아합니다.
담백한 맛이 좋아요~~~
물론 달달한 빵도 좋아하지만요.
님이 점심시간에 와 주신다면 1시간 추가 외출 달고 기다릴께용^*^

hnine 2010-03-18 17:19   좋아요 0 | URL
간식으로는 달달한 빵, 식사용으로는 담백한 빵이 좋지요.
스콘은 아직 한번도 안만들어봤는데 검색해보러 갑니다 ~ ^^

프레이야 2010-03-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하기의 지겨움, 공감해요.
전 별로 자주 하지도 않으면서 이리 엄살을요.ㅎㅎ
근데 별모양 빵 너무 맛나보여요.
나인님은 뭐 드셨어요?

hnine 2010-03-19 06:34   좋아요 0 | URL
저는 부엌에서 꼬물꼬물 하는 것을 그리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이제 몇 년 했다고 이렇게 꾀가 나는데 평생 같은 일을 하시며 사신 분들이 존경스러워져요. 단순해보이는 일을 매일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 마음의 수양이 달리 방법이 있는게 아니라던데.
만들어보니 딱 두 사람 먹을 분량 나와서 저는 패스했습니다 ^^

순오기 2010-03-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이걸 보는데 아들이 왔어요~
"아들, 이런 엄마 너무 부럽지?"
"꼭 부러워야 해?"
"아니, 엄마는 이런 빵 안 만들어 주잖아!"
"빵 아니어도 날마다 밥 차려주잖아, 그러면 됐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반찬도 없이 차려주는데..."
"아침밥 안먹고 다니는 애들 많아~ "
"그래, 우린 아침 안 먹고 학교 가는 일은 거의 없지."

hnine 2010-03-19 06:41   좋아요 0 | URL
"꼭 부러워야 해?" 오호~
아이가 "엄마, 다시 밥 주세요. 빵 물렸어요" 라고 말하기를 저도 은근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lazydevil 2010-03-1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을러서 아침 빵먹고 나왔다!가 아니라,
게을러서 아침에 빵 만들었다????
먹음직스러운 빵에 얽힌 얘기가 재미있어서 인사드렸습니다.^^

hnine 2010-03-19 06:39   좋아요 0 | URL
lazydevil님, 제 페이퍼의 핵심을 간파하셨네요 ^^
아침에 그나마 재료가 있었기 망정이지 그것도 없었다면 아마 밥이랑 김치, 김, 계란 프라이, 이렇게라도 결국 밥상을 차렸겠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