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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내 책상 앞에는 "Flexibility is the answer." 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내가 직접 써서 붙여놓은 것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없고 꽉 막힌 나를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일이 계획한대로 되어가지 않으면 노선을 변경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만 두고 싶어한다. 지각할 것 같으면 아예 결석을 해버린다. 잘 할 자신 없으면 아예 시작을 안한다. 이런 나의 성격을 고쳐보고 싶었었다. 좀처럼 고치기 어려운게 성격이라지만 그래도 인식하고 있는 이상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은 일고 있다고 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지금은 그냥 생긴대로 살자는, 융통성도, 그 무엇도 아닌, 자포자기성? 이런 주의에 가까운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어차피 내 생각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가보자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이것은 굳이 "권리"라고 까지 할 것도 없이 당연한것 아닌가? 하지만 요즘은 나 아닌 나로 살아가는, 어떤 것이 나의 참모습이고 어떤 것이 과연 나의 의지에서 나온 행동, 또는 결정인지 모르고 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파이팅!", "힘내!" 라는 구호보다 "잠깐 쉬어", "밥 먹고 해"라는 말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조언이 아닐까. (97쪽-'더 노력해라'라는 말을 거부할 권리)
다른 사람들은 과연 남들이 '화이팅'외쳐주는 소리에 얼마나 더 기운을 낼 수 있는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별로이다. 어떤 땐 무자비하고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한다. 정 트리오의 어머니인 이원숙 여사 얘기가 생각난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유학 시절 너무 힘이 들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어머니 이원숙 여사에게 바이올린을 이제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 큰 맘 먹고, 어머니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질 각오로 말은 하면서도 어머니가 허락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는데, 뜻밖에 어머니로부터 나온 대답은, '그래, 네가 그렇게 힘들다면 그만 하자.' 정경화는 그 말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나서 다시 바이올린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그래도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습관적으로 하는 '파이팅'보다 훨씬 힘이 되는 것이다.
가면우울증이란 속마음은 우울한데 겉으로는 쾌활한 척해야 하는 간극에서 오는 마음의 병이다. (113쪽-사교적이지 않을 권리)
지난 여름, 오랜만에 본 지인으로부터 얼굴이 많이 상했다는 말을 들었다. 농담삼아 "갱년기 우울증인가보죠" 라고 했더니 말할때보면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보이지 않느라고 힘든가봐요." 그렇게 대답했던 적이 있다. 왜 우리는 늘 웃어야 하는가.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 우리들의 마음은 병들어간다.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는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답입니다. (156쪽-끝까지 가볼 권리)
노동없는 삶은 부패한다고 까뮈가 말했다. 생각을 줄이고 행동을, 매일 일부러라도 땀을 흘려 몸을 움직여야할 이유이다.
'정보를 지닌 개인들'이 단 5퍼센트만 있어도 200명에 이르는 군중들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머지 95퍼센트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무리를 따라간다. (182쪽-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
대학교1학년 교양영어 교재에서 'passionate a few (a few passionate 이었던가?)' 라는 말이 나왔는데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번역본에는 열정적 소수라고 나와있었고 수업 시간에도 비슷하게 해석을 하고 넘어갔던 것 갔지만 그 의미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흐른 후였다. 이 세상은 다수에 의해 움직여가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소수, 그 몇 명에 의해 움직여간다는 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리드하는 그 소수 그룹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따라가는 나머지 그룹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하지 않나?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온 나라를 그 상품, 그 유행이 휩쓴다.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상해보인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을 꺼내드는 나는 가끔 특이한 사람이 된다. 무엇을 사든 끝내 외로워질 것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까지만 썼어도 공감했을텐데 오히려 그 다음 구절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
그러나 정말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뭔가가 있고 감당할 만하다면 한 번쯤 확 저지르는 것까지 억압할 필요는 없다.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제공하는 좋은 것을 누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세상 한가운데에서 수도자처럼 살기는 애당초 쉽지 않은 일. 다만, 소비가 주는 일시적인 만족감, 광고가 주는 애달픈 찰나의 환상을 거리를 두고 지켜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자유의지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니까. (185쪽-광고를 보지않을 권리)
그래, 융통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포용력. 중요한 것은 내 자유의지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인류 최초의 철학자는 걷는 이었을 것이다. 생존을 벗어난 걷기, 아무런 목적도 지니지 않는 걷기에 중독된 사람은 사색에 잠길 수 밖에 없다. 그이는 오로지 걷는다는 한 가지 행위에 몰입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음미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으리라. 동료의 채근과 못마땅한 시선을 뒤로한 채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그이는 단독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때로는 가슴이 터질 듯 충만하고, 때로는 허수경 시인이 노래했듯 '의전하게 차오르는 눈물'을 눈가에 매달면서. (202쪽-게으르게 산책할 권리)
걷기에 대해서라면 나도 100% 공감이다. 우울해도 걷고, 화가 나도 걷는다. 머리가 복잡할때도 걷는다. 심심해도 걷고 답이 떠오르지 않을때도 걷는다. 걷는 것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다. 그보다는 걷기 위해 몸을 일으켜 문 밖을 나서기까지가 더 힘들다.
씻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자는 일 외에
어떤 기대나 계산 없이, 희망도 절망도 없이
자발적으로 매일 빠지지 않고
조금씩 하는 '그것'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준다. (224쪽-이자크 디네센)
난 이런 말이 너무 좋다.
삶을 긍정하는 시퍼런 기상 (247쪽)은 눈이 띄는 대단한 행위나 행동에 있지 않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 속에 있다. 남의 말에 내 인생을 잣대질 하지 말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한다 해도 나는 자유이다. 그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자유로운 나를 해치지는 못한다. 부정적인 감정도 잘 대접하고 예의를 다하면 언젠가는 떠나간다. 부정적인 감정도 깨달음과 지혜를 준다. 그러나 치러야 할 수업료 역시 만만치 않다. (250쪽)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내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 대접하라는 말. 그것이 지나갈때까지 침착하게 잘 들여다보라는 말.
읽으면서 포스트잇 붙여좋은 곳을 다 옮겨적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동생이 읽어보라고 사주었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늑장부리다 읽기 시작한 책.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뜻밖에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구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책이다. 아주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실컷 수다를 떨고난 후의 만족감이다.
동생,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