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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을 일부러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이번달 어린이책모임에서 당선작이니 한번 읽어보자는 의견이 나와 읽어보게 되었다. 작년에 역시 '시간'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다른 출판사 공모전 당선작을 읽고 적잖이 실망했었기에 나 '시간'제목에 트라우마 있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해놓고 어쨌든 읽기로 했기에 책을 펼쳐 들었다.
현실의 고통받는 아이들의 아픔에 접속하여 그들의 소망을 그들이 좋아하는 양식인 판타지로 그린 이 작품의 의미는 각별하다. 시간을 단순히 소재로 사용하지 않고 시간과 기억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이중적 사유를 통해 아이들을 위무하고, 정체성 형성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유영진, 심사평 중에서
아이들은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된 아이들에게 있어서 말이다. 비슷한 나이의 자식을 둔 입장이고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이 책의 주인공의 꽉 짜여진 일상을 보고,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시간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고 짐작이 되었다. 협동과 화합보다는 경쟁을 부추키는 학교. 그 학교가 끝난 후 바로 이어지는 학원 순례. 집에 돌아오면 학원에서 내준 숙제,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아이 같은 경우엔 각종 경시대회 준비. 엄마는 나의 시간 매니저이니 끊임없이 매니저의 간섭과 조언을 들어야한다. 이런 배경을 안고 출발하는 이야기이다. 시간의 추상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기 보다 이 아이에게는 늘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갈망, 늘 누군가에 의해 미리 계획되어 지는 시간에 대한 억눌림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우연히 시간 가게를 발견하게 되고 그 곳을 지키는 주인할아버지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시간에 대한 억압이 아이로 하여금 시간을 내 맘대로 멈추게 하고 그 동안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환타지나 상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벗어날 수 없는 진리가 있었으니 댓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것. 아이는 이렇게 덤으로 얻는 시간 대신 자기의 소중한 기억들을 팔아야 했다. 여기까지는 이 책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도 본 적 있는 구성이다. 전개는 이렇게 독특할 것이 없었지만 이 이야기가 책이 되려면 여기서부터라도 이 이야기만의 다른 구성이 들어가야 한다. 작가는 이것을 어떻게 끌고 나갔는가? 아이는 이렇게 비밀스런 방법을 통해 시간을 벌어 자기 앞에 닥치는 위기의 순간들을 잘 모면하지만 그 댓가로 추억을 반납해야했기 때문에 자기 머리 속에서 예전에 대한 기억들이 점점 없어져가는 것을 깨닫는다. 덜컥 겁이난 아이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어 시간가게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약속을 물르자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내가 잃어버렸던 기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 마구 머리 속에 들어와 자리잡게 된 것이다. 마침내 아이를 일깨우는 것은 같은 나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 영훈이다. 엄마, 학교, 주위의 조정대로 움직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영훈이의 말은 아이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더구나 이 말에 주인공 윤아가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운 결심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결말은, 마지막까지 이 책에 걸고 있던 기대를 푸우~ 하는 한숨과 함께 저버리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두 페이지는 없는 것이 나았다.
각종 공모전의 심사는 대개 한 사람이 아닌, 두 세명의 심사 위원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말은 곧 수상작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세 사람의 의견이 일치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보다 뛰어나야 하지만 동시에 '무난하게' 뛰어나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대폭적인 관심을 끌지만 다른 사람의 기준엔 영 아닌, 그런 뛰어남보다는, 탄탄하고 흠 잡을데 없으며 안정감있는, 분란의 여지가 없는 뛰어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는 작품들이 다 고만고만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참신하다, 독창적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을까, 이런 감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며 책장을 덮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이 우연이라도 모두 작품에 대한 비슷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로 선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공모전에 응모하는 사람들은 습작 기간동안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니까. 어떻게 써야 당선될 것이라는 걸.
우리 나라 사회상과 다르지 않다. 너무 튀면 안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