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 왔습니다.
“택배 왔습니다.”
어라, 올 택배가 없는데? 얼른 주소를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옆동으로 가야할 택배를 놓고 쌩하니 가버린 것이다. 나는 잽싸게 뛰어나가 택배를 놓고 간 아주머니를 불러 세우고, 여기가 아니라고, 여긴 옆동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요즘은 택배를 하는 여성도 많다. 원래 택배 기사 아저씨의 가족인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직접 택배를 배달하시는 여성분들도 가끔 있다. 내가 택배를 갔다 주러 뛰어나가면서 누구를 배려한다 생각했을까? 그 아주머니? 아니다. 틀렸다. 내가 가져감으로 인해, 택배를 못 받을 옆동 사람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갖다 줄 거는 절대 아니니까. 뭐, 택배 회사에 전화해서, 가져가라, 잘못 왔다,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지. 그러면, 택배 기사분은 열심히 다시 와서 또 옆동에 전달해주고, 그렇게 된다면 옆동 사람은 과연 성질을 내게 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옆동에 사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이 사는지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뛰쳐나가 그 아주머니를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어휴! 주소, 제대로 보고 다니자구요! 택배 기사님들은 그런 실수 별로 없는데, 택배 부탁받으신 분들이 그런 실수를 종종 하는 듯하니, 꼭 정확히 확인!
그나저나, 옆동의 우리 호수에는 누가 사는 걸까?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아, 그렇다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까지 모르는 건 아니니, 너무 깐깐하게 굴지는 말기.
◔ 세상이 날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날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 외에 모든 사람은 옳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다르다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니, 사는 게 덜 힘들어졌다.
나만 옳은 게 아니라, 나도 옳지만, 다른 사람도 옳은 것이다. 나도 틀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틀릴 수 있는 것이다. 모두는 다르기 때문에, 싸울 수도 있고,화합할 수도 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쭈그려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울었을까, 웃었을까. 삶의 작은 발견이 삶의 큰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큰 변화를 통해,끊임 없이 성장하고, 그 성장은 나의 능력을 무한대로 키우도록 도와준다.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기에, 오늘 조금만 더 힘써서 그 차이를 인정하자. 인정하고 나면, 세상을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루 먼저 일거리를 마치고 느긋하게 마지막 날 여유를 부리는 우리 사회 어떤 부분의 직장인처럼. 내일, 조금 더 느긋하게 하루를 맞이하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보다 더 가벼워지기를. 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 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언제였던가. 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그때는 분명, 이번 생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생은 분명 존재할 거라, 그때는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더 좋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삶을 부정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 이대로 죽으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거라고 이 따위 세상에서는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란 것은 수십 번씩 바뀌는 순간순간의 어느 시점에, 나는 비로소 나의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으며, 그 삶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번 쓴 글은 다시는 소비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 거다. 누군가는 같은 글을 몇 번씩이고 다시 보고 있을 것이며, 그 글과의 재회는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에 자꾸만 반복시청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반복시청에 나의 글도 포함이 되어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반복되는 하루는 없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새롭게 하기에, 나는 존재한다. 나는 글만 달랑 남겨두고 사라지지만, 내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아름답게 새겨질 것이다. 남겨진 글들아, 사람의 마음에 속속 파고들어라,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삶에 연습은 없고, 삶에 훈련은 없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대 위에서 상연 중이다. 그러므로, 이 무대가 조금 더 아름답고 흥미롭길 바란다. 누군가는 나의 본모습을 착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조차 나의 모습임을 알기에, 나는 무대 위에서 열심히 연기 중인 삶을 살아간다.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무대 위, 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대배우가 되어 간다. 무대 위에서 같이 연기 중인 수많은 연기자들과 힘께, 무대를 보고 즐거워하는 관중들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