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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 너무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하기
아이리스 크라스노우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딸 여섯 중에 어떻게 날 닮은 딸이 하나도 없냐.”
엄마는 걸핏하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속으로 대답한다.
“천만다행이네요. 난 엄마 닮기 싫은데...”
딸은 엄마를 닮는다. 외모와 목소리가 비슷할 뿐 아니라 삶의 방식도 딸은 엄마를 닮아간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너무나 싫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어릴때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원래 자존심이 강한 엄마는 18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 심해졌다. 별 일이 아닌데도 엄마는 상대방이 서방 없는 자신을 무시한다며 버럭 화를 내고 싸우려 들었다.
지나치게 깔끔한 엄마는 외식하는 것조차 까다로웠다. 외식하러 갈 거라고 미리 얘길해서 엄마가 외출복으로 단장할 시간을 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식사 시간 내내 음식이 형편없고 서비스도 엉망이라며 투덜대고 짜증을 냈다.
말 한마디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키워도 화장하고 멋지게 하고 다니던데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냐. 청바지랑 티셔츠 말고 다른 옷은 없냐”고 핀잔을 줬다. 또 작년에 둘째를 임신했을 땐 “차림새가 꼭 거지같다”며 내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았다. 그것도 엄마 친구분들이 계신 자리에서.
엄마는 모른다. 엄마의 말 한마디가 딸의 가슴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는지...그 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 날의 일이 엄마와 나 사이에 얼마나 높은 담을 쌓았는지...
그렇다고 엄마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외항선원인 아버지가 1년의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보내실 때 엄마는 1남 6녀, 칠남매를 혼자 키우셨다. 성격이 드세질 수 밖에 없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마음을 살펴서 다독이기보다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건 그렇게도 닮기 싫었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 내게 언뜻 보인다는 거다. 아이가 고집세우고 말썽부릴때 나는 영락없는 내 엄마가 되고 만다. 엄마의 말투와 행동 그대로 아이를 제압해버리곤 한다. 나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싫다.
왜일까. 결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순 없는 걸까.
<엄마 미안해> 이 책 속에서 나는 또다른 나와 내 엄마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나가는지 지켜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엄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특히 나에게 화내는 엄마의 모습이 무서운 괴물처럼 보인 날엔 밤에 잘 때 꿈을 꾸었다. 내 엄마가 친구 엄마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며 다정한 엄마가 되어 날 포근하게 감싸주는 꿈을...
어머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가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그것이 때로는 마지못해 하는 일일지라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머니와 화해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55쪽.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결국에 가서는 딸이 어머니를 어머니처럼 돌보게 되는 삶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의 환상을 버리고 쓴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68쪽.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엄마를 끌어안는 것이다. 엄마를 엄마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때문에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우리가 어머니를 떠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본질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떨어질 수 없다. -100쪽.
나는 아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어린 아기에게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엄마와의 부드러운 신체접촉 같은 교감이 제대로 이뤄져야 성장해서도 정서나 행동장애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어머니로부터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받은 사람은 겉잡을 수 없는 폭식으로 인해 정신과 몸이 고통을 받는가하면 계속되는 폭력으로 엄마가 죽기를 바랬다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도 과거에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한 여자일 뿐이다. -126쪽.
그리고 그런 갈등과 분노를 겪었던 딸들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고민하게 된다.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엄마와의 사이에 놓인 담을 더 굳건히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갈등을 발판삼아 화해하여 엄마와 함께 제 2의 삶을 살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와 함께 성숙해지기 위해서 내가 택한 방법은 엄마가 상처를 줘도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곁에 꼭 붙어서 우리의 관계를 더욱 깊이 파헤치는 것이다. -170쪽.
여자의 평균수명을 80세로 봤을때 이제 곧 칠순이 되는 엄마는 10년, 내겐 40년이란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그런데 엄마는 해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올해를 넘길 수 있을래나...” 그러면 나는 “엄마, 무슨 소리예요? 엄마 손자들 장가가는 것까지 보실텐데... ”
나는 지금까지 엄마와 화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난 착하고 고분고분한 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엄마에게 착한 딸이라는 것은 허울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디까지나 나의 위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돌아가시더라도 난 엄마에게 할 도리를 다했기에 후회도 없다는 얄팍한 위안...
인터뷰를 응한 딸들의 상황과 배경은 모두 달랐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보면 늙어가는 어머니와 화해할 수 있는 어떤 공통괸 처방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화를 푸는 것이다. 어머니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77쪽.
엄마와 딸 사이의 사랑은 너무나 복잡해서 엄마가 세상을 뜬 후에야 드러나느 경우가 많다. -222쪽.
이젠 정말이지 시간이 없다. 내게 아빠는 없다. 엄마뿐이다. 그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나는 고아가 되고 만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를 해야겠다. 그리고 말해야지. “미안해요. 엄마. 그리고 사랑해요.”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 세 마디가 우리를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