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의 비밀일기
앨런 스트래튼 지음, 이장미 그림, 박슬라 옮김 / 한길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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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음 놓고 아이 기르기엔 너무나 험한 세상이다.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유괴, 성폭행, 살해와 같은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요즘은 남자아이라고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도 무작정 믿을 수 없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하질 않던가.


아침에 현관을 나서서 오후에 돌아올 때까지 아이는 수많은 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있다. 오죽하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알람장엔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기’ ‘마치면 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기’와 같은 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적혀 있다.


청소년들도 상황이 다르진 않다. 세계에서 인터넷강국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범하는 성범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 한다. 그래서 어둡고 외진 밤길에서 제일 무서운 건 10대 중.고등학생 몇 명이 무리지어 있을때라는 말도 있다. 내가 어릴적만 해도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큰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무사히 기르는 게더 큰 걱정거리다.


이 책의 주인공인 레슬리는 자칭 불량소녀다. 다른 여자를 만나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빠가 죽도록 밉고, 자신에게 소리지르는 엄마 역시 지겹고 못마땅하다. 유일한 친구였던 케이티와의 사이도 예전같지 않고 왠지 멀게 느껴진다.


어딘가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데가 없어진 레슬리는 선생님의 지시로 쓰게된 일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제이슨과 사귀면서 벌어진 일들, 제이슨이 술취한 자신을 성폭행하면서 거듭되는 요구와 폭행들을...왜냐면 그것은 비밀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 비밀일기를 몇몇 선생님이 읽으면서 곪은 상처가 터지듯 사건이 불거진다. 그리고 레슬리는 고민에 빠진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그냥 덮을 것인가 아니면 드러내어 잘잘못을 가릴 것인가. 결국 레슬리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한다.


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 내가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 혹을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한테는 - 366쪽.


미국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레슬리처럼 폭행을 당한 자녀에게 당당히 맞서라고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교수님이 계신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첫 시간인데도 그 교수님은 우리에게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주제는 <피임법에 대하여>. 그뿐이 아니다. 기말고사때 이런 문제를 내셨다. <자녀를 성폭행으로부터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로 나는 제대로된 성교육을 대학졸업반때 받은 셈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뭐라고 답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몇 번을 생각해봐도...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고 항상 자신의 힘을 믿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가족은 널 사랑한다고....


나는 아직도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건지 모르겠다. 이런 운명일까. 아니면 숙명? 이런 일이 일어난데에 뭔가 의미가 있는 거라면 대체 그건 뭘까? 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곤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는 게 무척 기분좋은 일이라는 것뿐이다.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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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7-05-1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의 날에 쿵쿵 선생님들 모시고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우연찮게 여고 시절 이야기가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학교시절 남선생님들께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더군요. 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던 걸 큰 행운으로 여겨야겠더군요. 덩치가 작아서 덕을 본 샘이라고 해야겠죠. 그래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