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는 건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난 이 의문에 대해 한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사랑이란 감정은 누군가를 마냥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느낄 수 있는 고뇌나 아픔은 언제나 괄호밖에 두고 외면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보통 책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편이고 단편이라 길이도 짧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알맹이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글이 술술 읽힌다고 신이 나서 책장을 팍팍 넘기다보면 책을 다 읽고 나서 꼭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작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주장하는 바가 뭐야? 엉?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이 책은 될 수 있는한 천.천.히...꼬오꼭 씹으면서 읽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더구나 지금까지 터키문학, 터키작가는 접하지 못했기에 바짝 신경을 곧추세웠다.


풍자문학의 거장이자 터키의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작가 아지즈 네신은 이 책에서 사랑의 여러 감정이나 모순들을 얘기하기 위해 동물과 식물, 혹은 인형과 대리석 조각상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랑이란 언제나 벌꿀처럼 달콤하지 않으며 5월의 햇살처럼 따스하지 않을뿐 아니라 때로는 집착하고 이용하고 배신한다고 말한다. 마치 빨강과 초록이 보색관계라서 함께 있으면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해주듯 사랑 역시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 인정할 때 사랑은 빛난다고...


이 책에 선보인 여섯 가지의 사랑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처음의 <빛나는 것, 그것은>과 마지막의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었다.


<빛나는 것, 그것은>에서는 독수리와 물고기 익투스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는데 살아가는 환경이 하늘과 바다로 완전히 다른 그들이 서로를 동경하다 못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또 익투스와의 소중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독수리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마치 현대판 <인어공주>라고 할까....


모든 여자는 자신의 바다, 그리고 모든 남자는 자신의 하늘을 품고 있어. 아니면 반대로 모든 여자는 자신의 산을, 모든 남자는 자신의 바다를 품고 있지. 그들은 상대방의 낯선 매력에 빠져들곤 하지.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서로 맞닿을 수 있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없지.  - p36.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는 튤슈란 여인인을 찾아 온세계를 떠도는 한 노인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그 튤슈란 여인이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제가 모르는 곳의 모르는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제가 모르는 여자가 튤슈입니다. 저는 그녀를 찾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믿음 하나로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죠. -p179~180


튤슈란 여인을 찾아다니는 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어서 틈만 나면 아무 주소로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전보를 치고 매일 광장에 나가 사람들에게 튤슈를 사랑한다고 목청껏 외치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랑이란 이렇다...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단정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마다 존재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그리고 저의 존재 이유는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튤슈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 p187


이 책을 읽다보면 꼭 한여름밤의 꿈 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삽화는 또 얼마나 이쁜지...그야말로 환상적이다. 8살난 아들이 자기 책이라고 착각할만큼.


너무나 이쁜 이 책에도 옥의 티는 있었다. 오자와 탈자가 눈에 띄었다.

p19. 제왕 독수 --> 제왕 독수

p22. 마침내 다다가 물었다 --> 다가가 물었다.


문맥도 매끄럽지 못했다.

p26. 아주 낮게 춤을 추며 날며 --> 아주 낮게 춤을 추듯 날며..

 



내게 이 책 <튤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되돌아보게 했다. 각자의 삶에 따라 사랑의 빛깔도 달라진다는 것...그러니까 결혼한 중년의 내게 있어 사랑은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나머지 때로 무심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거 왠지 너무 서글픈데...ㅠㅠ


사랑이란 매 순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완전하게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입니다.  - p143.


유일한 마술, 유일한 힘, 유일한 구원, 유일한 행복.

사람들은 이것을 소위 사랑이라고 부른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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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0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경구가 인상적입니다. 삽화는 여인네로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툴슈는 삶의 열정이나 꿈 같은 추상적인 이름이겠지요. 아니면 신이라 할 수도
있구요. 님, 맛깔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