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하트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역시 온다 리쿠!! 그녀의 책은 한번 손에 들면 24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내가 그녀의 책을 처음 읽었던 건 <밤의 피크닉>이었다. 작년 여름 휴가때 들고 갔다가 집에 돌아오기도 전에 다 읽어버렸다. 그녀의 짧고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 속을 드러내지 않는듯 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모든 것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 책 <라이온 하트>는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도 끝난 자정 넘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땐 이른 새벽, 창밖은 밝아지고 있었다.  한창 로맨스 소설에 몰두하는 사춘기 소녀도 아닌 두 아이의 아줌마가 사랑이야기가 담긴 소설로 밤을 새다니. 내게 아직도 소녀적 취향이 남아있는건가? 그럼 정말 좋겠지만...그건 아니다.




“11월 27일. 런던대학 법학부 명예교수인 에드워드 네이선과 연락이 두절된 지 2주일이 지났다.” 이렇게 시작되는 부분을 읽는 순간, 누구나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에 포로가 되고 그들의 행적을 쫓는 추격자가 되고 만다. 에드워드가 남긴 단서, ‘from E. to E. with love'라고 수놓인 하얀 레이스 손수건과 분위기가 서로 다른 다섯장의 그림, 방 안 가득 남아있던 로즈 티의 향기...이 세가지를 가지고 출발해보자.




이 소설은 5개의 장으로 이뤄져있다. 또 그 각각의 장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이 다르다. 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다.




나타날 때마다 나이는 제각각 다르지만 속은 모두 같은 인물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겉모습은 미묘하게 달라서, 많이 닮은 다른 사람같다. - 52쪽.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의 윤회를 떠올렸다. 지금의 생이 끝나도 다음의 생이 있다. 그렇게 수레바퀴처럼 돌도 도는 것...하지만 현생의 삶이 내생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들었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도 그런걸까?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유일한 사람, 유일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 평생동안 기다리고 또 다음생을 기약한다.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 항상 나를 사랑해준, 언젠가 만날 그 날만을 기다려왔던 사랑. - 85쪽.




데자뷰라고 했던가? 처음 보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 나도 그런걸 경험해본 적은 있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는 반복되는 꿈과 환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들의 만남에는 항상 이유와 목적이 존재한다. 때로 그들은 상대방을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건다.




우린 아주 짧은 시간 밖에 함께 있지 못해요. 반드시 어디선가, 각자의 인생 어디쯤에선가 만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지는 수수께끼예요. -44쪽.




생을 거듭하며 다시 만난 그들에게 서로의 모습은 중요치 않았다. 12살의 어린 아이든, 여신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든 죽음을 앞둔 노인이든... 그 사람 속에 깃든 영혼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이윽고 나는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늙기는 했지만 역시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혼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시간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 125쪽.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 그들이 만남을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자신을 일깨우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전생의 기억을 현생에 갖고 태어나는 걸까, 예지몽이나 환상으로 미래의 일을 알게 된 걸까, 아니면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공간을 넘어서는건가?




우리는 몇 번이나 만났지만 맺어진 적은 없어요. 하지만 헤어진 순간부터, 다시 만날 순간을 한없이 기다려요.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이유같은 건 몰라요. 하지만 만나고 싶었어요. 안 그런가요? -146쪽.




그렇다면 소설의 첫부분에서 실종된 에드워드 네이선은 어디로 갔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찾아헤맸다. 어디 숨은거야?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만난 사람이 20세기의 그 에드워드인건가?




그렇다면 누구의 꿈일까. 나는 그걸 찾기로 결심을 했지. 오랫동안 수천 수만 명의 꿈을 떠돌다 우연히 당신의 꿈에 이르게 되었지...설마 당신일 줄은 몰랐어. 이름은 알았지만, 여기가 시작일 줄은 - 299쪽.




로맨스에 SF적 요소를 더하니 이런 묘미가! 치밀하고 탄탄한 온다리쿠의 스토리 전개에 감탄했다. 하지만 저자가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했던 탓인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알 수 없는 대목들이 나왔다. 문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난데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로켓발사장면!




누군가의 메아리,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의지가 남긴 잔영, 그런 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세계와 역사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 298쪽.




하지만 제일 마지막에 등장한 노인부부! 그들이 날 위로해주었다. 에드워드란 존재가 그럼 전생의 엘리자베스 동생이었나...하는 충격 속에 빠진 내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불꽃이 꺼지기 직전 밝고 아름답게 빛나듯 지나온 날이 남은 날보다 많은 그들의 모습에서 운명을 느꼈다.




마음을 가득 채운 뜨거운 것이 몸 어디선가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나는 언젠가 꿈에서 보았다. 나의 연인을, 나의 운명을, 이렇게 온실에서 마주앉아, 역광을 받아 빛나는 그녀의 은발을. - 374~375쪽.




온다리쿠. 그녀는 러브스토리도 역시 독특했다. 그녀 특유의 강렬한 미스테리가 부족한 게 아쉬웠지만 가슴저린 사랑은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들었던 음악과 미술관에서 본 한 장의 그림,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저력이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이 책은 첫인상부터 나를 압도했다. 5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표지엔 빛을 받아 섬뜩한 해골이 있고 그 해골 위에 깍지 낀 양손을 올리고서 얼굴을 괴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이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한술 더 떠서 방금 뚝뚝 흘린 것 같은 선명한 핏방울이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다.




표지만으로도 미스테리 스릴러물임을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은 주검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는 여인, 베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텔레비전 인기시리즈인 CSI 마이애미의 여자부검의 알렉스가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CSI의 알렉스에겐 최첨단 과학장비가 있다면 아델리아에겐 오로지 수많은 해부경험이 있을뿐이다. 게다가 시대적 상황이 자칫 잘못하면 아델리아가 마녀로 몰릴 위험도 있다. 그 두 여인의 공통점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하고 주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중세 영국 케임브리지셔 지방에 아이들이 연이어 실종되고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그 사건의 범인을 유대인이라고 여긴 농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유대인들이 성으로 대피하게 되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시칠리아왕은 해결사를 영국으로 보낸다. 법집행관이자  사건수사관이며 중재자인데다 정찰자인 나폴리의 시몬과 병을 고치는 도시 살레르노 의과 대학에서 병리학에 가장 조예가 있으며 죽은 자를 담당하는 여자의사 아델리아, 그녀의 하인 아라비아인 만수르. 그들은 떠돌이 약장수로 위장하여 사건이 벌어진 케임브리지로 향한다.




우연히 아픈 제프리 수도원장을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아델리아는 아이들의 시신을 조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살해되어 옮겨진 걸 알게 된 그녀는 석회지대인 원들베리링을 조사한다. 하지만 거기서 범인이 십자군원정을 다녀왔다는 것 외에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시몬은 농민들에게 희생된 부유한 유대인 카임의 금전관계를 조사하던 중 확실한 증거를 찾지만 그로 인해 살해당하고 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12세기 중세 영국이어서 다소 걱정을 했었다. 나의 세계사 지식이 얕아 책내용을 혹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책표지를 보니 저자인 아리아나 프랭클린는 중세의 필사본을 읽기 위해 라틴어를 배우고 성을 비롯한 수도원을 탐사하는 등 12세기 잉글랜드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것들이 이 소설의 탄탄한 밑바탕이 되어 비교적 어려움 없이 카톨릭과 유대교, 유대인과의 반목과 대립을 비롯한 중세시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각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가 탁월했다.




# 영향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델리아는 다만 고통받는 한 인간만을 보았다.

# 그녀의 의술에는 환자 머리맡에서의 예절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잣대란 의학적인 것 밖에 없다. 그녀는 지금 수도원장에게 그가 죽으면 시신을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하려는 게 틀림없다.

# 학교의 시체안치소에서는 아델리아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때란 오로지 죽었을 때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몇 개의 짧은 문장만 보더라도 아델리아가 오로지 의학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여인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시체에서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는 과정의 묘사는...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 의과대학!! 난 이 책을 통해 살레르노 의과대학을 처음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세계 최초의 대학에 살레르노 대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새롭게 알게된 놀라운 사실!!




의료실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깨면서 죽은 몸을 낱낱이 해부하거나 문제가 있는 태아를 여자의 몸에서 제거했고, 여자들도 외과수술을 할 수 있었으며, 수술하느라 살을 찢었다.




이렇게 탄탄한 이야기 흐름이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추리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막판 뒤집기!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건데...이 부분에 관해 이 책은 절반의 성공만 거둔 셈이랄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적도착증을 보이는 범인의 살벌한 심리묘사가 없었다. 그게 바로 추리소설의 백미인데...




또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범행을 저지른 공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주인공인 아델리아의 활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헨리2세가 북치고 장구치고 있었다. 물론 중세란 시대가 여자가 여행이나 외출을 할땐 당연히 여자동반자가 있어야 된다고 할만큼 여자에게 제약이 많았다고는 하더라도 아델리아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꿀먹은 벙어리처럼 묘사하다니...이 부분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저자의 철저한 조사가 탄탄한 구성과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탄생시켰고 재미와 스릴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그게 전부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인간은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간단다. 어떤 때는 천국을 향해 날아오르고 어떤 때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자신이 가진 악의 잠재력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자신이 솟아오를 수 있는 고귀한 장점에 대해 눈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둔한 일이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봄핀아이들 글, 최숙자 엮음 / 사분쉼표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좋아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임인 ‘봄핀아이들’의 글 모음집인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표지엔 활짝 펼쳐진 커다란 책과 그 책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 생김도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면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무슨 얘길하는 걸까.




재잘재잘 속닥속닥...중고등학생들의 재미난 수다가 가득하지 않을까...이 책을 읽기 전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청소년 대상의 영화를 보면 언제나 깔깔깔 웃다가도 짠하게 전해지는 감동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 그 속 내용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톡톡 튀는 감수성이 빚어낸 에피소드가 아닌 입시로 인한 아이들의 고뇌가 가득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운다. 내신, 논술, 수능 이 세가지를 다 잘해야만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도 또다시 학원으로 직행,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그들에겐 방학이 1.5학기란 또다른 족쇄가 되버렸지만 거부조차 할 수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쏟아진 모든 가족들의 기대를 알기에 차마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전쟁 속에 뛰어들어 한바탕 피를 튀기고 있는 동안 어느새 우리 엄마는 형편없이 짧은 단편영화 같은 나의 휴식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사로 전락해 있었다.




충격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입시가 예전과는 달리 그야말로 3차 전쟁을 방불케한다고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여드름의 흔적은 내 성숙의 증거이자 어린 날의 통증의 대가란 대목이 그나마 가볍고 가장 애교스러웠다고 할까.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려왔다. 이 책에 몰입하면 할수록 마음이 자꾸 부대꼈다. 불편했다.




큰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입시란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입시제도가 완전히 탈바꿈을 하지 않는한 내 아이들도 언젠간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좌절하고 상처입을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사회는 청소년의 눈과 귀를 안대와 귀마개로 덮어버린다. 어릴적 나의 꿈은 크지만 현실은 나의 꿈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꿈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배꼽잡고 웃어야 한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인생의 승리는 아니라고 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공부나 해야할 일보다 꿈을 크게 키워야한다고 용기를 북돋아줄수 있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패배하고 있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닌가,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다니..지금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슬플 뿐이다.




하지만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매끄럽지 않고 서툰 표현이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한가닥 희망으로 다가왔다. 이 책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큰 힘을 보태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내 또래의 학생들에게, 척박하게 되어버린 우리의 청소년기를 채울 취미를 하나씩 마련할 것을 권한다.....이 땅에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 어렵지만 우리만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애증의 시간’이 아닐까. -프롤로그 중에서




얼마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놀라운 얘길 들었다. 요즘은 대여섯살 되는 어린 아이들 적성검사도 한단다. 어떻게? 하고 물어보니 아이의 손금을 보고 성격이나 어느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알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이 검사받아보지 않겠냐고. 순간 망설이다가 “아니, 이제 입학했는데, 뭘 그런 걸~”하고 대답했다. “왜? 자긴 안 궁금해?”하며 그 아주머니는 못내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아이의 미래를 편법을 동원해서 미리 알아내고 싶진 않았다. 지름길보다 좀 둘러가는 길의 경치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고 싶어요! 동물 - 뭐든지 다 아는 똑똑새 박사님 알고 싶어요 3
클레어 레웰린 글, 케이트 세퍼드 그림, 윤소영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의 질문은 기상천외하다. 뜬금없이 “엄마, ‘지배’가 무슨 뜻이야?” “엄마, 얼룩말은 검은색몸에 흰줄이야, 아님 흰색몸에 검은줄이야?” 이런 식의 질문을 하루에도 수시로 툭툭 던진다.




질문에 답을 해주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느 정도까지 설명해줘야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백과사전이라도 있으면 찾아보겠지만 딱딱하게 지식만 나열되어 있는 백과사전이 싫어 아예 구입하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쩔쩔매며 얘기해주고 나면 아이는 더 아리송한 표정을 짓거나 이미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걸 딱 알고 싶어하는 고만큼만 알려주는 방법...이것을 내가 터득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알고 싶어요! 동물> 표지부터 무척 재미있다. “왜 모두들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요?”하며 도망가는 토끼, 커다란 눈 때문에 순진하게만 보이는 기린은 “난 왜 이렇게 키가 크죠?”, 무당벌레는 제 몸의 점을 뺄 방법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 옆에 너무나 당당하게 서 있는 똑똑새 박사님! 이 동물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주실까...무척 궁금해진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만난 작은 편지 한 장! 똑똑새 박사님의 센스가 돋보이는 이 책에는 없는 게 딱 한가지 있다. 바로 동물사진이다. 뭣이라? 동물에 대한 궁금한 점을 알려주는 책에서 정작 중요한 동물사진이 없다고? 그렇다. 대신 그림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게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왜냐면 이 책은 여러 동물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궁금한 점을 똑똑새 박사님께 편지로 질문을 하면 똑똑새 박사님이 거기에 답장을 해주는 형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림이 아닌 사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새끼 악어 때문에 걱정이 많은 악어, 자기 몸에서 뭔가 자라는 것 때문에 혼란에 빠진을 겪는 올챙이...이런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을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물들이 마치 사람처럼 갖가지 표정을 짓는 걸 아이는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또 재미있어 한다.




이 책의 독특한 건 또 있다. 마치 동물들이 진짜로 편지를 쓰기라도 한 것인양 글씨체가 다 다르다. 거기에 똑똑새 박사님은 답장을 하고 편지 끄트머리에 도장을 찍는다. 발바닥 도장 쾅! ㅋㅋㅋ




무척 재미난 책이지만 슬며시 걱정도 된다. 혹시 아들이 이런 질문을 똑똑새 박사님께 보내는 건 아닐까. “뭐든지 다 아는 똑똑새 박사님! 전 고민이 있어요. 울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닌것 같아요. 늘 야단만 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하나에 사계절 그림책
김장성 지음, 김선남 그림 / 사계절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심을 벗어나 시골길을 가다보면 줄지어선 가로수 중에서 유독 가지에 둥지를 이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둥지가 하나인 나무보다 두어개 이고 있는 나무가 웬지 푸근해 보인다.

 

얼마전부터 자동차 앞자리에 앉기 시작한 아들은 둥지가 있는 나무가 보일 때마다 내게 알려준다. “엄마, 엄마! 저기!!....둥지가 하나....하나 있다!!”  작년말에 동생이 태어나고 봄을 지나 여름이 오도록 가족 나들이는 드라이브로 대신했다. 가까운 산에 올라 초록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데...

 

표지 앞면을 무성한 초록잎으로 가득 메운 이 책, <나무 하나에>를 얼마나 들여다봤을까. 보고 있자니 나뭇잎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일 것 같다.


나무 하나에 깃든 생명은 얼마나 될까. 예전의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둥지가 하나이든 혹은 둘이든 그 속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산새들만 있는줄 알았는데...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나무 밑동의 구멍엔 다람쥐 가족이 살고 가지 위 둥지엔 오목눈이 가족, 나뭇진을 먹는 벌레들, 꼬물꼬물한 애벌레..등 우리가 일부러 들춰보지 않는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은 속도를 내어 읽으면 제 맛을 살리지 못한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읽어보라. 짧은 문장과 시원한 그림이 어우러진 잔잔한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특히 제일 뒷부분에서 책장 하나를 옆으로 넓게 펼침과 동시에 눈앞에 드러난 광경은....정말 압권이다. 그 속에 존재하는 산은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껴왔던 평범한 산이 아님을...깨닫게 된다.

하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이 그림책을 4~6세의 유아가 대상이라고 되어있다는 점이다. 글자보다 그림이 위주가 된 책이라고 해서 모두 유아도서인 건 아니다. 그림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나이! 그게 바로 권장연령이다.

그렇게보면 이 책은 적어도 초등저학년이나 중학년 정도의 아이에게 적당하다. 목록에 소개된 권장연령을 100% 믿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이들 책에는 권장연령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권장연령보다 언제나 아이의 독서력을 우선으로 해야한다는 것, 잊지말자.

책장을 덮고 뒷표지를 보니 이런 글귀가 있다. “생명을 품는, 생명을 기르는, 생명을 이루는 나무 이야기”

순간, 이거구나!! 싶었다. 마지막장을 펼칠 때 뭔가 확 밀려드는 느낌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낮고 높은 산 속에

그 많은 식구들을 다 데리고 사는

꼭 그런 나무가

몇백, 몇천, 몇만....


나무는, 숲은 단순히 산소를 내품는 허파가 아니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기르는 나무와 숲은 어머니와 같다. 그 편안하고 포근한 품에 어서 안겨보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