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 터커, 나를 찾아서 - 이집트에서 미라 만들기 1 도시락 16
발 와일딩 지음, 김영선 옮김, 마이클 브로드 그림 / 사파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타임머신’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갖는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이 질문에 어느 과학자가 답을 했다. ‘NO!!’라고. 아니, 지금말고 이담에, 머~언 미래엔 가능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도 역시 ‘NO~, NO!!’란다. 왜냐고? 만약 미래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이미 미래의 사람들이 현재로 찾아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또 왠지...시시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꿈같은 일은 결국 꿈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건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여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온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토비 터커. 부모 없이 자란 고아였던 그는 새 부모님을 만나 새 집으로 온다. 묵직한 나무 상자만을 갖고. 자신에 대한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다는데 실망한 토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무상자를 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찢어진 종잇조각들과 이런 메모를 발견한다.




“이 상자에 든 종이는 너희 집안 족보란다.....찢어진 종잇조각을 붙여 보거라. 그러면 네가 누구이고, 네가 언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지이.” - 15쪽.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토비는 종이 조각을 맞추다 우연히 이름 하나를 맞춘다. “세...티...”. “세티?” 그 순간 토비는 자신의 방에서 뜨거운 황금빛 모래의 나라 이집트로 가게 된다. 세티란 소년이 사는 고대 이집트로...




농장을 소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세티는 두 가지가 늘 불만이었다. ‘왕짜증’이란 못된 수탉에게 발목을 쪼이는 것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가 되는 것. 곡식이나 과일, 채소를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농사일보다 미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에겐 입도 벙긋 못한다. 그에 비해 세티의 사촌 네브는 집안의 가업인 미라 만드는 일보다 농사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세티와 네브는 서로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기로 약속한다. 나일강이 범람해서 농사일이 적은 ‘아케트’ 기간엔 네브가 세티에게 미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물이 빠져서 농사일을 시작하는 ‘페레트’때는 반대로 세티가 네브에게 농삿일을 가르쳐주자고. 그리곤 맹세의 의미로 행운의 부적인 쇠똥구리를 교환한다.




드디어 세티는 미라 만드는 일을 시작하지만 코를 찌르는 엄청난 냄새와 네브의 아버지가 콧구멍으로 기다란 갈고리를 넣어 뇌를 꺼내는 걸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 미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는데....




<토비 터커, 나를 찾아서> 그 첫 번째 이야기인 [이집트에서 미라 만들기] 이 책은 자신을 찾기 위해 고대 이집트로 떠난 소년이 그 시대에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진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집트의 문화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일강의 범람에 따라 시기를 어떻게 나누는지, 피라미드나 신전을 짓는 일에 인력동원이 어떤 방법으로 이뤄졌는지, 역사 속에서 미라를 왜 만들게 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선 어른과 아이 모두 맥주를 마셨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찢어진 종잇조각을 붙이면 자신이 누구이고 언제 왔는지 알 수 있다...첨엔 황당했지만 갈수록 궁금해진다. 나무 상자에 수북한 종잇조각을 부지런히 맞춰가면 자신을 알게 될까?




참, 끝부분에 토비가 ‘세티’라고 적힌 메모를 보는 장면, 토비의 오른쪽 손목에 쇠똥구리 문신(?)이 그려져 있다. 그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다음엔 어떤 여행, 어떤 모습의 토비를 만나게 될까...기대가 된다.




“그래! 토비 터커, 너를 찾아보는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봄볕이 좋았던 지난 주말, 바닷가를 찾았다. 작은아이와 한참 모래장난을 하다가 큰아이가 날리던 연을 억지로 넘겨받았다. “엄마도 한번 해보고 싶어.” 근데 어려웠다. 연이 잘 날리려면 바람의 흐름과 세기에 따라 얼레를 조절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얼레에 감겼던 실이 몽땅 풀어지면서 연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걸 보던 큰아이가 면박을 준다. “어, 어엄~마! 그게 머야. 나보다 못하네!!”

시를 읽은지 무척 오래됐다. 감수성 예민한 학창시절이나 20대 초반엔 시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한 발짝씩 뒷걸음질 쳤나보다.  어느날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시와 엄청나게 멀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내 맘과는 달리 하늘 저 높은 곳까지 날려버린 연처럼.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거리, 저 먼 곳으로 가버린 시를 어떻하지? 견우직녀처럼 까치와 까마귀를 풀어서 오작교라도 놓아야하나?

그럴때 만났다.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표지의 소녀처럼 어색함에 주춤거리는 내 손을 살며시 끌어주는 시들을. 아름답고 다정하며 구수한 48명의 안내자들을.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이 책은 안도현 시인이 그동안 문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노트에 옮겨 적었던 시 중에서 특별히 아끼고 좋아하는 시들이 실려있다. 총 4부로 나누어 각 부마다 12편의 시를 선별해서 수록했는데 그 하나하나의 시마다 안도현 시인은 짤막한 글을 덧붙여놓았다. 시인을 소개하거나 그 시에서 느껴지는 정경이나 감상, 더 나아가 저자가 그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풀어놓아서 시를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또 이 책에는 김기찬 사진작가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데 흑백이어선지 하나같이 어린 시절의 지나온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에서 여동생을 등에 업고 “똥 푸소~” 놀이를 하는 소녀와 친구들, 온갖 그릇과 병, 깡통,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까지 모아놓고 소꿉놀이를 하는 단발머리를 한 어린 기집애들, 지게 양쪽에 연탄 하나씩 지고 열심히 나르는 소년, “뻥이요~~!!”하고 큰 소리가 날 듯한 사진,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할머니, 우루루 담벼락에 올라앉아 만화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이런 사진들이 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쩜 이리도 시의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지...이 시를 위해서 사진을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촌스러움, 이런 구닥다리, 이런 케케묵음, 이런 한가로움, 이런 퇴행이 오히려 신선하게 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 50쪽.

 

물론 이 책에 수록된 48편의 시를 모두 이해할 순 없었다. 절반은 읽는 순간 가슴에 찌릿...하게 와닿았지만 나머지 절반 가까이는 안개 속을 헤매는 듯했다. 시 한 편에 자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녹여낸 시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십년 가까이 시를 읽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차 한 잔을 마시듯 매일 시 한 두 편을 읽어보자...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읽어주고 시를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껴보자고 다짐해본다.

불혹이란 인생의 전환점에 만난 의미가 되어버린 이 책 한 권을 조금씩 야금야금 먹고서 가슴에 꼭 안았다. 그래, 이 느낌이야. 가슴 한 켠의 열기가 조금씩 퍼지는 것 같은...이걸 잊지 말자...이번엔 절대 놓치지 말자고 주문을 걸듯 몇 번이고 되뇌었다.

불혹의 첫 봄에 정말 사랑하고픈 풍경을 만났다. 이런 기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한동안 이 책은 나의 선물목록 1호가 될 듯하다.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 84쪽.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자 2008-04-1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혹] 저 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부록으로 펼쳐질 제 2의 인생도 멋질 거라는 기대감...전 그런게 있어요.

세실 2008-05-11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불혹을 작년에 끝냈지만 아직도 제 마음이네요.
부록....살짝 서글픈 마음 들지만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요.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좀 있어야 겠다'필이 팍 옵니다. ㅎㅎ

몽당연필 2008-05-1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맘에 들었던 시인데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 책 이번 스승의 날에 선물하려고해요. ^^
 
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란 나뭇잎이 조금씩 떨어지는 길을 노란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차에 탄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뒷자리에 탄 아이는 입을 헤~ 벌리고 잔뜩 신이 났는데, 앞 조수석의 아이는 팔짱을 끼고 뭐가 못마땅한지 “체..ㅅ.”하고 토라진 듯하다. 그 옆엔 잔뜩 긴장한 표정의 운전자. 운전대 앞으로 바짝 다가앉은 폼이 ‘초보운전’이라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짙은 다크서클까지. 몹시 피곤해 보인다. 집에서 쉬지 않고 왜 운전대 앞에 앉은걸까...




노란색 자동차가 그려진 표지에 개나리빛 노란띠지를 두른 책 <노란코끼리>. 이 책은 싱글맘의 가족이야기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 요군이다. 귀여운 여동생 나나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엄마가 좀 특별하다. 여느 엄마와는 달리 덤벙대고 툭 하면 사고치는 통조림 하나를 따는 데도 손가락을 베고야 마는, 실수투성이의 엄마여서 요군은 늘 마음이 불안하다. 그런데 그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선포를 했다.




엄마가 운전을 하다니...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나가 아직 아기였을 때, 유모차 하나도 제대로 밀지 못해 도랑에 빠진 적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엄마가 정말로 면허를 딸 수 있을까.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차라리 내가 어른이 되는 걸 기다리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 15쪽.




이런 아들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엄마는 덜컥 자동차부터 구입한다. 샛노란 빛깔의 소형자동차가 ‘노란코끼리’ 같아 마냥 기뻤던 요군. 엄마가 아직 면허도 따지 못했다는 걸 알고서 실망한다. ‘엄마가 정말 면허를 딸 수 있을까?’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운전면허를 따고 요군은 기분이 좋아 엄마의 면허증 사진을 ‘지명수배자 같다’며 놀린다. 한껏 의기양양해진 엄마는 바로 아이들과 바다로 향한다. 무사히 바다에 도착해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스파게티도 먹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실수투성이 엄마는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차 열쇠를 꽂아둔 채 문을 잠그는 바람에 경찰차가 세 대나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아빠가 정식 이혼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다른 여자와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나간 싱글맘 가족. 하지만 그들에게선 어두운 구석이 없다.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예상할 수 없는 덜렁이 엄마와 애어른 같은 아들, 귀여운 막내딸....그들이 펼쳐보이는 생활은 시종일관 유쾌한 일들로 그득하다.




그 속에서 요군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열한 살 생일날 생일 선물을 가지고 찾아온 아빠가 엄마와 다투고 나서 돌아갈 때, 떠나가는 아빠를 붙잡을 수 없는 자신의 마음, 점점 내 행동이나 마음조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늘어가고 있는 걸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는 요군의 모습은 다소 안타까웠다. 어른이 되기엔 이른 나인데 싱글맘이란 가정상황이 어리광 부릴 아이를 일찍 어른스럽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여행으로 떠난 곳에서 엄마의 실수로 차사고가 났을 때 엄마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요군의 행동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젠 정말 어엿한 어른이 됐구나!!...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싶은 느낌...




“너, 또 애꾸눈이 됐구나.” 난 일부러 장난기 섞인 말투로 쾌활하게 말했다. 다른 때처럼 엄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핀잔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엄마의 낙천적인 성격이 빨리 발휘되었으면 싶었다. - 243쪽.




싱글맘. 이혼이나 별거 혹은 사고로 인한 한 쪽 부모의 죽음으로 한부모 가정이 늘고 있다. 그들의 생활은 양쪽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 비해 무척 어렵고 힘들거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나의 편견이고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조금은 아쉽다. 요군의 아이다운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요군, 가끔은 어리광부려도 괜찮아. 네겐 천하무적 사고뭉치 엄마가 있잖아~!!”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섞여 험께 달리다 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잘하잖아.’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엄마는 이제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아갈거야.’ - 2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눈앞에 휙 하니 검은고양이 한마리가 지나간다. 그 뒤로 보이는 책장엔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고 바닥에도 역시 책이 쌓여있다. 책등 모서리가 낡았으니 새 책은 아닌데 바닥의 카펫 표면이 닳은 걸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간 게 분명하다. 이 파리의 고서점에....그런데 ‘셰익스피어 & 컴퍼니’는 또 뭔가?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처음엔 소설인 줄 알았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가 고서적을 둘러싼 미스테리가 아닐까?...했었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저자 제레미 머서가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 머무는 동안의 생활과 체험에 관한 회고담이다.

“그 서점에 도착한 것은 잿빛 겨울의 어느 일요일이었다.”고 얘기를 시작한 저자는 파리의 전설적인 서점을 어떻게 찾아가게 됐는지 털어놓는다. 산책하다 갑자기 비를 만나 잠시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센강 건너로 노랑과 초록의 서점 간판을 봤노라고. 단체 관광객이 쉴새없이 터트리는 카메라 플래시를 피해 서가 사이를 이러 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무작정 책 한 권을 집어들었을때 서점의 홍차파티에 초대를 받았다고.

캐나다의 지방지 사회부 기자였던 저자는 살인이나 강간, 폭행 같은 잔혹한 사건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따뜻한 인간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생활은 그를 도덕적 타락의 길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한 범죄자에게 “뒤를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받게 된다. 갑작스레 닥친 생명의 위협. 공황상태에서 두려움에 떨던 그는 서둘러 자신의 모든 걸 정리하고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저축보다 비싼 자동차를 몰면서 매일밤 술과 음식으로 흥청거렸던 그의 지갑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겨우 일주일치 방값밖에 남지 않은 최악의 상황...을 그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징후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노트르담 앞에서 엄청난 빗줄기를 만났을 때 나는 그런 산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 28쪽.

우연히 운명적인 장소를 만난 제레미. 그는 고서점의 주인인 조지의 배려로 서점 한켠에 자리를 잡는다. “이야기가 더 필요하네. 더 길게 쓰게.....여기서 자네 자서전을 마치게. 원할 때까지 있어도 좋아.”

이렇게 ‘셰익스피어 & 컴퍼니’ 고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파리를 가보지 못한(파리는 커녕 유럽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나로선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서점에서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니....꿈처럼 환상적이었다.

 

2000년 1월, 내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차를 마실 때쯤에는, 조지가 자기 서점에서 4만 명이 자고 갔다고 말할 즈음이었다. 그가 자랄 때 고향 샐럼의 인구보다 더 많은 수였다. 그곳을 방문한 뒤 나 역시 그 다음 사람이 되고자 했다. - 50쪽.

사실 난 ‘셰익스피어 & 컴퍼니’란 서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가 실비아 비치의 지원에 의해 초판본을 출간할 수 있었다니. 게다가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같은 최고의 작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셰익스피어 & 컴퍼니’가 자신을 서슴없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공산주의자라 일컫는 조지 휘트먼이란 미국인에 의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꿈을 꾸듯 책장을 넘기면서도 난 수시로 펜과 수첩을 찾았다. 본문 내용 중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책의 제목들을 적기 위해서였다. 읽고 있는 책에서 미처 읽지 못한 책을 만나는 게 이번처럼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낯선 여행지에 막  도착한 날, 밤새도록 여행할 장소를 찾아 여행안내책자를 물색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의 차례에 왜 ‘새로운 우주의 발견, 혹은 블랙홀’이라고 썼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 했다.

언젠가 파리를 찾게 되는 날, 센 강변에서 노랑과 초록의 간판을 찾아보리라.  오래되고 낡은 서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진 서가 사이를 헤매고 다니면 혹 헤밍웨이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조지와 함께한 시간은 나를 바꿔놓았다. 내가 떠난 삶에 대해 의문을 품게 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이제 나는 앉아서 타자를 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인생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 318쪽.


 



 

책을 읽고 나서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셰익스피어 & 컴퍼니> 의 사진.

이 곳 어디에 대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물 공간이 있었을까....수수께끼다.

해답은 찾아내려면....

직접 가 볼 수밖에....

덤>> 이 서점이 배경이 됐다던 영화의 한장면....

멋지다!! 저 석양....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비뫼 2008-03-28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괜찮을 거 같아요. ^^*

몽당연필 2008-03-28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은비뫼님....이 책 못 보셨어요?
 
오늘도 안녕하세요? - 글래디 골드 시리즈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4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한 메이크업에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할머니. 거기다 왼쪽 눈에 바싹 돋보기를 들이대고서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여느 할머니와 다른 모습에 살짝 당황할 수도 있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다. 왜냐면 그녀는 평범한 할머니가 아니다. 할머니 탐정단, 글래디와 글래디에이터의 당당한 리더시다.




추리소설에서 살인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건이다. 예사롭지 않은 표지그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에 바치는 오마주’란 붉은 글씨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도 안녕하세요?’란 제목을 비웃기라도 하듯 첫 장에서부터 살인이 벌어진다. 그것도 피해자의 집, 식탁위에서 버젓이.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독약은 구운 소고기에 들어 있었다. 셀마 벨러의 목숨은 겨우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셀마에게는 정말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일 생일을 무척 기다렸기 때문이다...오, 불쌍한 셀마 - 11쪽.




이 책의 주인공은 글래디스 골드. 75세로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은퇴한 그녀는 동생이 있는 플로리다의 ‘라나이 가든’으로 이사온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 그곳에서 그녀는 개성적인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매일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글래디의 가장 친한 친구인 프렌시가 생일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죽는 일이 발생한다. 프렌시를 자신의 소울메이트라 여겼던 글래디에게 친구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프렌시의 짐 정리를 하던 글래디는 문득 친구의 죽음에서 의문점을 발견한다. 얼마전 죽은 셀마 역시 프렌시처럼 생일 하루 전날 갑자기 죽은데다가 둘 다 어딘가 전화를 걸려다 죽음을 맞은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 하기엔 께름칙한 공통점을 수상히 여긴 글래디는 동생과 함께 경찰서를 찾아간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는 형사의 말에 그녀와 친구들은 직접 사건에 뛰어든다. 글래디와 글래디에이터란 멋진 이름까지 지어놓고...




“내가 추리작가라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요...잊지 말아요. 살인범은 항상 가장 의심을 덜 받는 사람이에요. 홈스의 말처럼 ‘그건 기본’이죠.” - 215쪽.




7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 사건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오늘도 안녕하세요?>. 분명 추리소설인데도 정통 추리소설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다. 우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들의 성격이 상당히 개성적이다. 본문 중에 구체적인 나이가 언급되지 않았다면 10대 소녀들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밝고 수다 떨기 좋아하며 쾌활하다. 심각한 고민과는 거리감이 있다.




스토리 구성도 추리소설치고는 다소 허술했다. 소설 중반쯤 이미 범인이 누군지 왜 살인을 했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저자가 독자를 위해 소설 곳곳에 배치해 둔 복선이나 암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인가. 바로 주인공 할머니들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녀들에게 나이는 숫자놀음에 불과해 보인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우울해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자신을 가꾸어 나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멋진 이성을 보면 가슴 설렌다.




“이제 나이도 먹고 더 현명해졌으니 철없던 시절에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이 나이에도 누군가를 사귀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리 모두 더 편하고 단순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앞으로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방법....혹시 남은 시간이 몇 년, 아니 일 년, 아니 한 달이나 하루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렇다면 그만큼 완벽한 하루가 또 어디 있겠어요.” - 290쪽.




책 뒤쪽의 역자후기를 보니 이 책을 ‘코지 미스터리’라고 한다. 가벼운 분위기의 추리소설, 코지 미스터리엔 선혈이 낭자한 장면은 없다. 정통 추리소설처럼  스릴 넘치는 서스펜스나 반전은 없지만 아마추어 탐정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기대치를 살짝 낮추기는 해야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