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그곳
림헹쉬 지음, 백은영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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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집은 왜 이렇게 얇어? 좀 두꺼우면 어디가 덧나나?”




학창시절 넉넉하지 않은 용돈으로 책 한 권을 사려면 서점에서 한참 망설여야 했다. 소설은 몰입하는 재미가 있지만 금방 읽히고 시집이나 에세이는 곱씹는 맛은 있지만 선택에 따라 감흥의 차이는 엄청났다. 때문에 기왕이면 두툼...하면서도 감동과 재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 책을 찾느라 고심했었다.




책의 두께와 감동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한번에 몰입해서 읽어야 제격인 책이 있는가하면 오랫동안 곁에 두고서 조금씩 읽을 때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있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장이나 김치, 젓갈...같은 일종의 저장음식....같다고나 할까.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도 바로 그런 책이었다. 표지에서 우표크기로 나눠진 여덟 개의 칸 속엔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 책은 시집처럼 두께가 얄팍해서 단번에 휘리릭...읽혀진다. 하지만 그러면 이 책의 제대로 된 맛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한 쪽엔 짧막한 글, 한 쪽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꿈에 그리던 것을 마침내 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소유한 동시에

잃어버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소유라는 것/ 36쪽>




책 속에서 빨간 원피스의 소녀는 대부분 표정이 없다. 하지만 마치 콕, 하고 점을 찍어놓은 듯한 소녀의 두 눈...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때론 찔끔...한방울 눈물을 흘리지만 소녀는 왠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은 느낌....




결국 조금 다쳤지만,

괜찮아.

이게 바로 성장이거든. <괜찮아/ 76쪽>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그 곳’이란 부제가 붙은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이 책 속의 빨간 원피스 소녀를 지켜보며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게 뭘까...생각했다. 나의 낙원은 어떤 것이었을까.




예전의 나는 전쟁이나 기아, 질병이 없는 곳, 언제나 평화가 가득한 곳이 낙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나의 낙원은 아이들의 환한 미소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 우리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그게 바로 낙원이고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요즘처럼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이 대부분이던 때...골목이나 공터에서 친구들과 말방놀이, 고무줄 뛰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같은 놀이를 하다보면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는 언니의 재촉이 두어번 있고 나서야 겨우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못내 아쉬운듯 말했다. “안녕, 내일 또 놀자!”




그 시절이 바로 잃어버린 나의 낙원이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동심을 잃어갈수록 낙원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그 곳으로...




나는 내 유년과 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난 비로소 깨달았다.

내 마음 깊은 곳이 굳게 잠겨 있었음을.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내게 손을 흔든다.

난 어느새, 게임의 규칙을 잊어버렸다. <마음의 문/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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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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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용으로 출간된 <위대한 왕>을 봤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빨간머리 앤>을 비롯해 <소공자><소공녀><정글북><십오소년표류기>..등과 함께 이뤄진 전집이었는데 그 책의 원래 주인은 4살 위인 언니였다. 워낙 책을 안 읽는 언니에게 엄마가 제발 책 좀 읽으라고 사 줬는데 언니는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할뿐 표지도 넘겨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보려고 하면 그때마다 언니는 생색을 냈다. 심부름이나 숙제를 대신 해달라거나 몇 백원 달라는 식이었다. 정말 치사한 방법이지만 언니 소유의 책이 탐나는걸 어쩌겠는가...몰래라도 봐야지.




그렇게 고생고생 읽은 책 중에서 <위대한 왕>은 특별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 호랑이라니...그것도 왕!! 대부분의 의인동화가 재미를 위해서 주인공을 단편적이고 코믹하게 묘사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왕의 존재감도 엄청났다.




하지만 막상 동물원에 본 호랑이의 모습이란...우리에 갖혀 맹수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멍...한 표정을 한 호랑이에게선 어떤 카리스마도 느껴지지 않았다. 덩치 큰 고양이?....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날 이후로 위대한 왕은 내게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의 일생이란 소제목의 <위대한 왕>을 다시 읽으면서 무척 기뻤다. 잊고 있었던 옛친구를 다시 만난듯...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할까. 더욱이 이번엔 축약본이 아닌 완역본, 터럭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업그레이드된 완벽한 <위대한 왕>이다.




표지를 보면 저자인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30여년을 만주의 자연 속에서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때의 경험이 이 책을 빛내주고 있다. 타이가 지역의 풍경이 시간과 날씨, 장소, 계절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또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모습이나 습성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어미호랑이가 새끼호랑이를 키우는 모습 중에서 새끼호랑이들이 오소리를 사냥하는 광경이 무척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미 호랑이가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동굴 속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오소리와 어떻게든 사냥에 성공하려는 새끼 호랑이들의 공방전은 숨막힐 정도로 실감났다.




책 속에는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삽화가 있는데 요즘의 전문 삽화가에 비해 잘 그린 아니지만 무척 볼만하다. 한 장면을 포착해 그림으로 옮기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반복된 세심한 관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테니 말이다.




또 짧고 쉽게 풀어쓴 문장은 읽기에도 수월할 뿐 아니라 속도감도 더했다. 그 중에서 무척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다.




호랑이는 멧돼지 무리가 장소를 옮길 때 쫓아다닌다. 하지만 무리의 구성원 전부를 없애버리는 일은 없다. 이곳의 중국인들은 호랑이가 멧돼지 떼를 ‘방목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무시무시한 ‘목동’은 인정사정없는 전제군주처럼 피의 조공을 징수하는 셈이다. - 79쪽.




어찌보면 섬뜩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순간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호랑이의 먹이 사냥 습성을 어쩜 이리도 꼭 들어맞게 표현했을까...싶었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로 인해 자연이 어떻게 파괴되고 훼손되는지...숲의 오랜 터줏대감이었던 수많은 동물들이 그들의 서식지로부터 쫓겨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까웠다.




예전에 이 자유로운 황무지의 초록 언덕에는 순록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살았지만, 이제는 금속으로 만든 번쩍이는 날쌘 용이 끊임없는 굉음을 내며 굴러다녔다. - 170쪽.




위대한 왕은 정복할 수 없는 새로운 힘이 전진하고 있으며 과거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234쪽.




숲의 모든 동물의 의지를 대변하듯 위대한 왕과 동물들의 낙원이었던 숲을 야금야금 파먹어가는 인간은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그리고 위대한 왕은 그의 유일하게 인정한 인간, 위대한 모피 사냥꾼인 퉁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둔다.




서경식의 발문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근대 문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대자연과 멸절의 위기로 내몰리는 야생동물들은 구미열강의 침략 앞에 내던져진 아시아 피압박 민족의 암유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위대한 왕>을 읽는다면, 조선호랑이 자손들의 비극적인 최후는 더더욱 조선민족의 운명에 대한 암유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13쪽.




이 책이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는 1930년대 우리나라는 서구열강으로 무장한 일본에 의해 온 나라가 피를 흘리던 때였다. 당시 우리 민족의 모습이 러시아인인 니콜라이 바이코프에겐 전설 속 위대한 왕과 겹쳐보였던 게 아닐까.




위대한 왕, 조선 호랑이가 만주를 비롯해 중국, 백두산을 호령했듯 그 조선호랑이의 후손인 우리도 그러할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깨어나라, 위대한 왕이여!!




타이가의 전설에 따르면, 산의 정령인 위대한 왕은 아주 오래된 노야령 산맥 꼭대기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위대한 왕은 깨어날 것이다. 그 우렁찬 목소리가 산과 숲을 가로질러 쩌렁쩌렁 울리고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갈 것이다. - 에필로그,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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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둔의 기억 1 - 제1부 저항군, 제1권 수색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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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 판타지소설 열풍을 몰고 온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그 뒤를 잇는 새로운 판타지소설이 출간됐다. 판타지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이 아닌 스페인의 젊은 작가에 의해 탄생한 <이둔의 기억>.




책표지를 보니 저자는 열다섯살 때 이 작품의 배경인 ‘이둔’을 처음 생각해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야기에 살을 붙여 탄탄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냈다...고 한다. 이쯤되면 안달이 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속알맹이가 궁금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잭, 빅토리아, 키르타슈...인데 13살, 12살, 15살의 십대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년, 소녀가 이둔과 림바드, 지구를 오가며 환상적이면서도 위험천만한 모험을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싹트는 엇갈린 사랑...




모험과 로맨스가 2개의 이야기 기둥을 이룬 이 책은 1.2권을 합하면 7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쉽고 빠르게 읽혀진다. 이둔이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저자의 상상력이 무척 놀랍다. 책표지에 첨부된 이둔의 지도나 이둔연대기를 보면 저자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내용의 전개구조나 주인공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하다고 할까....아쉬움이 많았다.




흔히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상상속의 세계를 다루면 모두 판타지 소설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저자는 지금까지 어떤 소설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이둔이란 특별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음에도 거기에 완전한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이 책에선 그런 장치적 요소가 허술했다. ‘림바드’란 이둔과 지구 사이의 중간계적 세계도 출입은 마법사의 ‘마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니...‘마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 않은가! 공간이동할 때마다 “....주변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는 식의 틀에 박힌 표현이 반복되어 재미를 반감시켰다.




또 주변 상황이나 설정을 자세하게 묘사해줘야 할 부분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알 수 없는’이라든가 ‘....자신만 아는 이상한 공식’, ‘뭔가가’, ‘무언가가’...하는 식의 얼렁뚱땅 얼버무리는 표현이 많았다.




주인공을 한번 보자. 이재복의 <판타지 동화 세계>란 책에 의하면 “고립된 존재인 주인공이 현실공간에서 온갖 어려움과 통과의례를 과정을 거치면서 구원자의 도움을 받아 판타지 세계로 이른다”고 하는데 잭이나 빅토리아의 캐릭터 설정은 좋았다. 주인공의 개성이 문제였다.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특유의 뚜렷한 개성없이 밋밋한 주인공에게선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아슬아슬 위태로운 한판 모험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난데없이 로맨스가 웬말인가. 모험과 로맨스...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 격이 아닌가...싶다.




세 개의 달과 세 개의 태양이 있고 용과 유니콘이 존재하는 나라 이둔...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전설의 무기를 가진 주인공이 나섰다!! 저자의 기획의도는 정말이지 너무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좀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10년 정도 후에....저자가 나이를 더 먹어서 성숙해졌을때 이 작품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랬더라면 좀 더 성숙해진 이둔과 멋진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하나의 작품을 다른 작품과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인지 알면서도 이 책을 읽는 내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떠올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판타지 세계와 살아 움직이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벌이는 모험과 사랑에 밤을 새워가며 책에 몰입했었다. 거기에 비하면 이 책은....




<이둔의 기억>은 출간된 1부 <저항군>에 이어 2부 <트리아다>와 3부 <판테온>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아쉬움도 컸기에 갈등이 된다. 마무리를 지켜봐야 하나...그냥 여기서 끝을 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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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 풀빛 청소년 문학 4
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김라합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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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 때였나?...아이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 2000년이 되면 3차 대전이 터져서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그 소문이 그 당시 우리에겐 무척 심각했었다. 2000년이면 내 나이가 몇 살인데...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 때 난 결혼을 했을까? 아이는? 혹시 깐깐한 노처녀로 늙고 있는 거 아냐?...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그래도 젊을 때 생을 마감하는 게 더 멋지고 아름다울 것 같다는 의외의 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우리곁에 한두달 머문 뜬소문이 되었듯 2000년에 3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첫 아들을 출산했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아니라 나의 또다른 삶, 어머니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할 12가지> 이 책의 주인공인 테레제는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소식을 듣는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 열 네 살의 평범한 소녀에겐 그야말로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소식...




번쩌어어어억! 이게 영화이거나 텔레비전 드라마라면 나는 “안돼에에!”하고 소리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재킷도 입지 않고 빗속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그 자리에 뿌리 박힌 듯 앉아 있었다. 음악도 켜지 않은 채로. - 17쪽.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을 통보하면서부터 테레제는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언젠가 세상이 끝날거라고, 그 전에 꼭 해야할 일을 찾아봐야겠다고...결심한다. 얼마전에 전학온 푸른 눈의 멋진 소년, 한 눈에 반해버린 얀을 공범으로 삼는데...




하지만 이것만으론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다. 여기에 테레제의 자폐증 언니 이레네와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등장하면서 테레제의 이야기가 한층 풍성해진다.




표지그림만 보면 당돌한 꿈많은 사춘기 소녀의 일상...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 속내용은 그렇지 않다. 테레제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놓은 일기를 내가 몰래 읽어나가듯 쉽게 읽혀지는 속에 오히려 생각해야할 것들이 숨어있다.




마치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테레제 역시 그 나이 또래의 아이라면 심각하게 여길 지구의 종말과 그에 대비한 목록...결코 가볍게 여길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선 할아버지의 전화 속 응원으로 테레제는 자신의 마음을 얀에게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나중이 더 궁금해졌다. 그 다음 테레제와 얀은? 이레네는? 그리고 할아버지는?? 테레제의 고민은 그걸로 해결이 된걸까? 할아버지는 무거운 마음의 굴레를 덜어내셨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걸로 며칠동안 끙끙 고민하는 사춘기 아이의 일상이 무척 순수하게 여겨졌다. 예전의 내 모습을 얼핏 엿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그리고 나도 목록을 한번 뽑아볼까...생각중이다.




하지만 책 속에 정말 아리송한 대목이 있었다. 




63쪽 5째줄, 9월에는 허리케인 ‘휴고’가 시속 3260 킬로미터의 미친 듯한 속도로 미국 동부 해안을 휩쓸어... --> 시속 3260Km?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허리케인의 5등급은 156(250km)마일 이상의 초강력 허리케인으로 지상에 서 있는 나무는 모두 쓰러뜨리고, 일반 주택과 작은 빌딩을 뒤엎고, 강을 잇는 다리까지도 쓰러뜨린다는데 3260킬로미터라니...오자가 아닐까? 아니면 숫자 0이 추가된 걸지도.....







<마음에 와닿은 대목>




“아, 참, 그리고 여쭤볼 게 있는데요, 사람은 언제부터 어른이에요?”

“자기가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있을 때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 133~134쪽




사랑을 발견하더라도 그 사랑을 결코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지키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랑을 지키려고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다. - 172~173쪽.




“남자들은 뭐가 자기에게 가장 좋은 건지 모른단다. 잘만 하면 한 가지 일로 여러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걸 모른단 말이야. 그러니 너무 오래 망설이지마, 테레제. 그냥 입을 맞춰 버려....무엇보다 용기를 내. 언젠가는 너도 죽게 될 테니까 ” - 176쪽.




진실하다는 건 아주 좋은 것이다. 그 반대일 때는 모든 것이 거꾸로였다. 이제 모든 것이 도로 전과 같아졌다. 단지 새로울 뿐. 한순간 나는 내가 깨어있고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도 좋은 시작. ‘배고픈 물고기만이 건강한 물고기다.’ -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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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1 세계신화총서 6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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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무식이 드디어 탄로가 났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중국에 관해 내가 아는 게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이번에 깨달았다.




맹강녀가 눈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는 중국의 고대 설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쑤퉁의 장편소설 <눈물>. 요즘들어 그의 작품들이 연이어 번역 출간되고 있는데 내게 쑤퉁은 이 책 <눈물>이 첫만남이다.




“신도군이 북산에 은거할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로 시작한 이 소설은 황제의 숙부인 신도군이 죽음으로 인해 북산이란 곳에 눈물 흘리는 것이 금지되고 만다. 그것은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기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 곳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눈물을 흘리는 법을 터득한다. 귀로 울거나 입술 혹은 가슴으로 우는 등 두 뺨 위로는 한 방울의 눈물자국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비누는 어머니가 일찍 죽는 바람에 눈물을 감추는 비법을 전수받지 못한다. 결국 머리카락을 이용해 눈물을 흘렸는데 그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었고 고아인 완치량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도촌의 마을 남자들과 함께 비누의 남편인 완치량도 사라져 버린다. 바로 북방의 대연령에서 만리장성을 쌓는데 그 노역으로 끌려간 것이다. 여름에 웃통도 벗은 채로 끌려간 치량이 다가오는 겨울에 추위로 고생할 것이 염려스러운 비누는 치량의 겨울옷과 신발을 지어서 대연령으로 떠난다.




그러나 시대가 여자를 하찮게 여기던 때라 비누가 그것도 홀몸으로 치량을 찾아 대연령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연령으로 서방이 끌려간 사람이 너 하나뿐이냐...치량이 비누의 혼까지 빼갔다...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비롯하여 사슴인간, 말인간들을 만나고 온몸으로 눈물을 흘리는 비누를 억지로 죽은 남자의 아내로 삼아 관에 묶이는가하면 황제를 시해하려는 자격으로 몰려 철창에 갇히기까지 한다.




말은 없지만 성실하고 자신에게 다정했던 남편에게 일편단심 마음을 쏟았던 비누의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두 권이란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속도감 있는 쑤퉁의 문장을 만나 쉽게 빨리 읽혀진다.




하지만 신화나 설화가 그러하듯 내용에 있어서 잔인하거나 유치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다. 또 죽기로 결심하고 먹을 것조차 거부하여 시체나 다름없던 비누가 샤오치란 자객을 만났을 때 계속 수다를 떠는 모습은 앞뒤 정황을 미루어봐서 다소 억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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