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보내고
권현옥 지음 / 쌤앤파커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남동생이 군입대할 때가 생각난다. 1남 6녀의 막내에 3대 독자 귀하디 귀한 몸으로 태어난 남동생은 신체검사를 할 필요도 없는 6개월 방위소집 대상자였다. 4주 훈련 기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방위병인데도 동생이 입대를 했을 때 엄마는 노심초사 그 자체였다. 입 짧은 놈이 맛없는 군대밥을 어찌 먹겠냐..말 주변 없는 놈이 말이나 제대로 하겠냐..고 걱정 또 걱정이셨다.


지금도 친정식구들이 모이면 엄마는 간혹 말씀하신다. 동생이 신병훈련을 받고 처음으로 면회갔을 때 얘기를... 피부가 흰 편이었던 동생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4주만에 몰라보게 변했더라는 것에서부터 당신을 보자마자 “엄..마아..”하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는 것, 또 입맛이 까다로워서 뭐든지 한꺼번에 먹는 일이 없던 동생이 초코파이 한 상자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먹더라는 것.


아들을 군대에 보낸 대한민국의 엄마치고 친정엄마와 같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친정엄마와 <아들을 보내고>의 저자는 참 많이도 닮았다.


아들이 커서 군대를 가는 게 어른이 되었다...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지만 학사장교, 카투샤가 아닌 소위 ‘땅개’로 아들을 맨몸으로 군에 보내는 어미의 심정은 안타깝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젊은 시절, 연인과 실연했을때 마냥 아들의 빈자리에선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특유의 현관문 여는 소리에 이어 “엄마, 나 왔어.” 우당탕...이런 환청이 사라질 때쯤이면 아들을 보러 갈 수 있을까. p24


어디 그뿐일까. 입대후 집으로 온 장정소포 속의 아들 물건에 통곡하고 눈물짓는가 하면 낯설고 물설은 군대에서 고생하며 지낼 아들을 생각하니 그동안 아들에게 못해준 것들이 새삼 떠올라 괴롭다.


이런 날(15Km 행군하는날), 아들몸을 감싼 지방분은 엉마보다 훨씬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배 나온다고 핀잔을 줄 게 아니라 비계가 비축되도록 더 잘 먹였어야 했다. -p65


열 달 동안 내 몸에 품고 있다. 세상에 내놓은 귀하고 이쁜 아들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의 아픔과 고생을 대신 하고픈 게 바로 어미의 심정. 그렇게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 이 책 저자의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나니 보이는 건 맨 군인뿐이라는 대목에선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군인을 생각하는 저자의 살가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 역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길을 가다가도 내 아들 또래의 아이를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으니까....


딸을 낳아야 대접받는 요즘 세상에 아들만 둘을 둔 나도 머잖은 미래에 친정엄마처럼, 이 책의 저자처럼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 그 때의 마음이 어떠할지...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쓰라리듯 아팠다.


우리나라가 유일한 분단국가로 존재하는한, 지구상에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한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둔 엄마는 군대간 아들 생각에 맛난 음식 먹을 때마다 목이 메이고 일기예보도 허투루 보지 않을 것이며 그리운 마음을 꾹꾹 누르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아들의 전화를 받아야 하리라.


이 책 읽고 나니 지난달에 둘째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언니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언니, 요즘 마음이 휑하겠네, OO 보낼때 많이 울었더나?”

“뭘...울어? 울면 안되지. 큰 애 제대가 내년이니까 그때까지 즐거운 생각하고 살아야지....”하고 평소보다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스트레스도 잘 풀어야 하고 그리고 울지도 말아야 한다. 아들을 군에보낸 어미는 건강해야 한다.  p44


저자가 아들의 군입대 30일전부터 입대후 112일까지 142일간의 기록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무척 오래 남는다. 책장을 덮은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저자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에 남아 맴돌고 있다.


돌아오는 길 시야가 흐리다.

‘이제 다 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남은 이십개월은 이제 오롯이 아들몫이다.

아니 그 이후로도 쭉 아들몫이다.

낳고 길렀으나 내 것이 아닌 아들.


입대하고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면서 아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다 키웠다.

이제 아들 손을 놓는다.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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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시간을 초월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고주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였다. 잠자다가 텔레비전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눈을 떠서 본 텔레비전 영화에선 어떤 남자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 마음아파 언니에게 물었다. ‘저 남자가 왜 저러냐고’...그랬더니 언니는 ‘저 남자 애인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 여자를 너무 사랑한 남자가 여자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갔다고...그치만 실패해서 저렇게 울고 있는 거라고’ 얘길해줬다. 더불어 이 말과 함께 “이제 그만 자라. 쬐끄만 게 뭘 다 알려고 그래?”


그래. 난 어렸었다. 그 영화의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걸보면 많아봐야 초등학교 저학년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살리려고 했던 연인을 순간의 착오로 살리지 못한 남자의 애절한 슬픔은 그후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언제든 그 영화를 꼭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1. 소년과 소녀. - 마짱과 슈이치 만나다.


새해를 맞아 친구네 집으로 놀러간 마짱은 카드 놀이 중에 친구의 사촌인 슈이치를 만나게 된다. 어릴때 사자자리 유성군을 봤던 자신의 기억을 멋있고 의미있는 것이라 말해준 슈이치에게 마짱은 사랑을 느끼고 슈이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짱을 닮은 감회색 세일러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 다쿠보쿠 카드그림과 생일을 기억에 남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을 채 고백하거나 키우지도 못한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슈이치가 마짱에게 건넨 책에 끼어있던 글귀. <텐 예다 프뤼링 핫 누아 아이넨 마이>. 그리고 마짱과 슈이치가 일하던 공장에 폭격이 가해진다.


....너무 일러. 슈이치, 모두들 어떻게 되는 걸까. p170



2. 소년과 여인. - 마짱과 무라카미(슈이치) 만나다.


병원에 입원한 남자, 카세트 라디오에 녹음을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과거, 미즈하라 마스미와의 사랑을 남긴다.


소학생에게 책을 빌려준다는 마스미를 만난 무라카미는 그녀가 왠지 낯설지 않다. 꽃그림 우표를 매달 모으는 것을 계기로 만남은 지속되고 중학생이 된 무라카미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전생에 슈이치였다는 것을.


“당신은 지금, 어떤 실수로 인해 옛날 일을 떠올렸어. 나는 괜찮아. 슈이치랑 쏙 닮은 남자 아이가 있었다. 아주, 기분 좋은 아이, 착한 아이, 그것만으로 됐어...” p328.



3. 그 후...


열차전복사고로 전생의 연이 마짱이 죽고 난 후, 무라카미는 치약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화창한 날 보리밭 길을 거닐며 노래를 부른다. “..덴 예다 프퓌링...” 그때 그에게 달려든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그리운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는데..“하트 누아 아이넨 마이”


다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러봤다...말할 것도 없다. 이 사람이 너희들의 엄마다. p374.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환생한 마짱과 슈이치,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리셋>은 무척

잔잔한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 내가 봤던 영화속 사랑이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였다면 마짱과 슈이치의 사랑은 잔물결이 일렁이는 호수...같은 느낌?


게다가 이 책은 읽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이야기 속으로 쑤~욱 몰입되지 않고 자꾸만 겉돌았다. 리셋을 읽으면 내 머리가 리셋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 이유는 바로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문제였다. 일본 그들이 시작한 전쟁임에도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듯 서술한 대목들이 눈에 거슬렸다.



힘든 상황에 처한 동맹국 독일 국민이 이 소식에 힘을 얻었다고 한다. p123.


독일의 히틀러 총사령관이 영미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날 밤 라디오로 ‘독일 역사상 최고의 영웅, 사라지다’라는 히틀러 총통의 서거가 전해졌다. p147


“독일이 왜 졌을까. 거기서 배워야 한다는 거다” p165



문학이 먼저인가, 민족의식이 먼저인가...하는 갈등 속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펼쳐들었다. 연거푸 두 번째 읽었을 때서야 비로소 눈에 거슬리던 부분보다 마짱과 슈이치의 사랑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얘기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시아를 서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입니다’라고 하니 중국 사람도, 필리핀 사람도 모두 우리에게 감사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지. 조선 사람들의 심정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겼으면 지금도 그랬을 거야. 궁핍함 역시 알지 못했지. p316~317.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모두들 공부하지 않으면 안돼.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마스미씨’나 그 친구들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이걸(군용기)를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하면....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올라. p397.



그리고 내가 이 책에 몰입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한가지 더 있었다. 편집이나 번역자의 성의 부족이다. 소설 속에서 일본의 싯구절이나 특별한 해석이 필요한 부분엔 주석으로 따로 설명을 해 두었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정작 중요한 한신대지진이나 쇼와 0년...하는 부분엔 설명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 내가 일본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의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을 할 땐 그 내용뿐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조금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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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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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토빛 표지, 양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람의 형상... 뭘 하는 모습일까.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제목을 보니 이건 춤추는 모양인가본데... 참으로 기괴하다. 표지그림이나 제목이...


기괴한 건 그뿐이 아니다. 보통의 책이면 당연히 있을 차례도 없이 바로 시작된 첫 부분엔 (무덤 훼손 사건 발생)이란 신문 기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두 장을 넘겨 만난 제일 첫 문장, “내가 미친 게 틀림없다.”


어허, 무슨 사연이 있길래 처음부터 자신을 미쳤다고 하는걸까...하는 궁금증에 조금 더 읽어 내려가니 이제는 아예 엄포를 놓는다. “그가 주검이 되기 전에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가 어떻게 해서 주검이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덮는 편이 좋다. 지금 바로.”


이쯤되면 독자는 오기가 발동한다. 도대체 니가 무슨 얘길 하려고 어떤 대단한 비밀이 있길래 처음부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이냐...오냐, 한번 끝까지 읽어봐주마!!...하고.


이렇게 처음부터 잔뜩 궁금증에 호기심, 오기가 뒤범벅된 체로 읽기 시작한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이 책은 열 여섯 살인 핼의 우정과 사랑, 절망에 관한 얘기다. 아니, 사랑이란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건가...동성간의 사랑이니..


핼은 친구의 요트를 타고 바다를 나갔다가 높은 파도에 요트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면서 배리를 만난다. 배리야말로 그동안 자신이 찾던 ‘마법의 콩’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긴 핼은 배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7주 동안 그야말로 꼭 붙어다니던 둘은 한 명의 여자가 둘 사이에 등장하면서 크게 다투고 배리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핼은 배리와 했던 약속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너랑 계약을 하나 해야겠어”

“좋아”.....

“우리 중에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 사람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거야.”-223쪽


이런 내용들이 핼의 자기 고백적인 성격을 띤 이 책은 중간 중간에 여섯 개의 현장보고서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 부분 역시 독특하다. 갱지에 수동식 타자기의 필체로 쓴 부분이 사회사업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게 마치 직접 현장보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본문 내용 중에  ‘즉시 재생’이라든가 ‘수정’이라고 적은 부분이 있는데 이게 재밌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도중에 커서가 뒤로 후퇴해서 썼던 글을 사사삭 지우고 다시 적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핼이 배리의 시체를 확인하러 가는 상황을 마치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하게 표현한 대목이나 핼과 배리가 오토바이 무리와 싸움하는 광경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바로 반젤리스의 ‘Heaven and Hell'이란 음악이 이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줄곧 귓가에 맴돌았다는 것이다.


왜일까. 주인공의 이름이 핼이어서? 심하게 다툰 두 사람에게 화해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몰아붙이는...그로 인해 남겨지는 사람은 지옥이나 다를바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작가의 암시에 걸려든 셈인가.


소설의 본문 중에서 핼이 오즈본 선생님께 작문 숙제로 제출한 내용이 죽음과 시간에 관한 것이듯 죽음이란 관념에 대해 유난히 집착하던 핼이 사랑하던 배리의 죽음으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었을지 알 수 없다. 핼조차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니까. 자신의 과제 제목처럼 <시간은 지속된다>는 것인가.


이것은 더 이상 현재의 내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것들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가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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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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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오늘은 30마리쯤 낳았네.”

  큰아이가 4살 무렵부터 열대어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감성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처음엔 기르는데 재미를 붙이지 못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불이 붙어버렸다. 바로 구피란 열대어가 새끼 낳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부터! 겨우 5센티미터도 안되는 물고기가 새끼를 낳으려고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쬐끄만 알 같은 구피치어를 낳는데...지켜보고 있자니 감동 그 자체였다. 몸값 이래봐야 3마리에 겨우 2천원, 6천원어치 구입하니 덤으로 한 마리 더 받아서 10마리를 구입했었는데 그게 그런 쏠쏠한 기쁨을 가져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 후부터는 25일~30일 주기의 구피 임신기간을 계산해서 구피 치어를 받았다.

  하지만 그당시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생물학을 전공한 나조차 새끼를 낳는 건 엄연히 포유류만이 가지는 특징이자 특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이롱 생물학도였던 나의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이었다.

 

 최재천님의 신간 <인간과 동물>에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TV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책으로 꾸몄다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던 게 무척 아쉬웠다. 괜히 텔레비전을 치워버렸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닭이 달걀을 낳는다고 생각하는데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오히려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닭을 매개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꿀벌들의 춤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춤언어라고 한다.

<적어도 몇 시간 전에 벌어졌던 일, 그것도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어났거나 행했단 일을 기억해두었다가 그것을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부호로 전달할 수 있어야 언어라고 할 수 있지요. 벌들은 그것을 합니다.> 153쪽.

 

  그리고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그것엔 새들이 자기 새끼들을 전체 모습을 보고 구별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에 돌아오면 모든 새끼 새들은 죄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실제로 어미가 보는 건 새끼 새의 벌린 입뿐이라는 것. 그래서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새들은 들키지 않도록 입 안의 모습을 의붓부모의 새끼들과 닮도록 철저히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람이 소를 기르는 것은 공생의 일종이라는 것과 새끼 거위가 알껍질을 깨고 나와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을 엄마라고 여기는 과정을 각인이라고 하는데 이때 새끼 거위는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인식하는데 그게 노란 장화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무척 재밌는 부분도 많은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개미들 가운데 머리가 특이하게 생긴 개미가 있습니다. 보통 개미들은 머리가 동그랗고 도톰한데 머리가 편평하게 태어나는 개미가 있습니다. 이 개미의 역할은 개미굴 문을 막고 보초를 서는 겁니다. 소위 문지기개미인데 문이 좀 클 경우에는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148쪽.

  상상이 되시는지...자신의 머리로 집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문지기개미의 모습이...난 이 부분을 읽을때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균이 우리 몸에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설명된 부분에선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열이 난다고 무턱대고 해열제를 먹는 것이 오히려 병원균한테 “어서 오십시오”하고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니....섬뜩할 따름이다.

 

  이렇게 동물들이 배우고 서로 도와주고 때로 고도의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일을 벌이기도 하는 과정들이 사진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다. 거기다 최재천님의 간단하고 알기 쉬운 문장은 책읽기에 속도를 더해준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이 우리에게 강조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연계, 특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절대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오직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게 됐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긴 고리 중 어느 한 부분에 속하는 진화의 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기가 막히게 우수한 두뇌를 지녀 만물의 영장이 된 우리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일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20여만 년전에 지구촌의 가장 막둥이로 태어난 동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보다 수천만 년 또는 수억 년 먼저 태어나 살면서 온갖 문제들에 부딪쳐온 다른 선배들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일은 지극히 가치있는 일일 겁니다> 9쪽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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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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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와 루이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잇지와 루스...그녀들을 떠올려본다. 자신을 억누르는 사람과 환경과 관습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를 추구했던 그녀들. 누구보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녀들의 우정과 사랑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특히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 경찰의 추격 끝에 그랜드 캐년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 델마와 루이스. 델마는 루이스에게 앞으로 계속 달려가자고 얘기하고...맞잡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둘은 벼랑 끝으로 질주한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찔하고 안타까운 이 장면이 난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 마음속엔 새로운 여인 두 명이 자리를 잡았다. <소녀와 비밀의 부채>의 두 주인공, 나리와 설화! 

델마와 루이스가 마치 투쟁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면 나리와 설화는 그 반대...안으로 안으로 조용히 잠겨드는 삶을 살았다. 중국에 관한 지식이 얕았던 나는 이 책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우선 전족에 관해서다. 전족을 단순히 작을 발을 추구했던 여인네들이 자신의 발을 동여맸던 무척 잔혹한 풍습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19세기 당시 중국에선 발크기가 얼마나 좋은 결혼을 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략 엄지손가락 길이인 7센티가 이상적이라는 전족을 만들기 위해 뼈가 부러지는 고통도 감내해야했던 것이다.

<인생에서는 금련이 예쁜 얼굴보다 훨씬 중요하지. 예쁜 얼굴이야 하늘의 선물이지만 작은 발은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으니까> 42쪽

<내 작은 발은 미래의 내 시댁 사람들에게 출산의 고통뿐만 아니라 어떤 불행에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나의 자제심과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터였다.

내 작은 발은 세상 사람들에게 친정 식구들, 특히 친정어머니에게 내가 순종했음을 보여주고, 이는 장래 내 시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될 터였다....내가 다섯 아이를 낳은 후에도...내 발을 쳐다보고 손에 쥐고 싶은 그의 욕망은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결코 줄어들지 않을 터였다> 68~69쪽.

그리고 누슈...여자들만이 썼다는 누슈는 남자의 글자를 흘려쓴 것이었다고 한다. 또 한글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뜻이 아니라 발음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어서 ‘배’가 먹는 ‘배’일수도 있지만 타는 ‘배’일수도 있고 신체의 일부인 ‘배’일수도 있어서 문맥에 따라 신중히 해석을 해야했다고 한다.

< “모든 단어의 뜻은 문맥 속에서 찾아야 해”

숙모는 매일 수업이 끝날때쯤 이 말을 강조했다.

“잘못 읽으면 비극이 생기거든”> 134~135쪽.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라오통’이었다.

<라오통이란 의자매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여러 소녀들이 함께 의자매를 맺었다가 시집가면 해체되는 것과는 달리 라오통은 전혀 다른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일생동안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44쪽

이렇게 전족, 라오통, 누슈 이 세 가지가 씨실과 날실처럼 어우러져 탄생된 <소녀와 비밀의 부채>는 여든살의 여인 나리가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자신의 라오통이었던 여인 설화를 댕기머리 딸내미였던 시절, 머리를 얹은 처녀시절, 시집살이 시절, 조용히 앉아서 보낸 시절에 걸쳐 회고하는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가난한 농부의 딸인 나리는 전족을 할 나이가 됐을 때 중매쟁이로부터 지체높은 집안의 딸과 라오통 관계를 맺을 것을 제안받는다. 나리의 신체적인 조건이 전족을 했을 때 완벽한 금련의 발을 나올 것이란 예상에서였다. 라오통을 맺은 소녀에게서 상류층의 풍습과 예의범절을 배우면 자연히 좋은 집안과 혼인을 할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게해서 설화와 만나 라오통 계약을 맺고 한가족처럼 지내면서 둘은 서로를 한 쌍의 원앙새처럼 사랑하고 아끼게 된다. 하지만 나리가 결혼을 하면서 둘의 운명은 엇갈리게 되는데 바로 설화의 집안이 이미 몰락한 상태였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둘의 운명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부유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설화가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하는 등 계속된 불행에 나리의 충고는 무거운 짐이 되었고 급기야 둘의 라오통이 깨어지는데 설화가 나리에게 보낸 누슈의 글귀를 나리가 잘못 해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나리와 설화가 다시 재회하지만 그때 이미 설화의 몸은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자신의 오해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 깨달은 나리는 남은 생을 괴로워하고 후회하며 지낸다. 자신에게 설화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오직 한 사람만이 내게 진정으로 중요했건만, 나는 그녀의 남편보나 더 야멸차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내게 자기 자식들의 이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한 후에 설화는 말했다. 이 말이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나는 너만큼 착하지는 않지만 하늘에서 우리가 만날 것이라고 믿어.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을거야.”> 243쪽


이 책은 다 읽었다고 해서 그냥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시켜야했던 책이었다. 나리와 설화의 삶이, 그녀들의 우정과 사랑을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여기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아픈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19세기의 중국을 모두 다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부모나 자식이죽었을때 무릎걸음으로 무덤까지 가는 것이나 결혼을 했더라도 자식을 낳기 전엔 친정에서 머물러야하는 것 등 내겐 생소한 것들 투성이었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나 과정을 다룰때 실제 누슈문자를 사진으로 소개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자도 눈에 띄었다.

<요즘같이 먹고 살기 위해서 땅을 처분해야 하는 마당에 어떻게 그럴 수 있겠> 84쪽

<--- 있겠소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옥의 티에 불과하다. ‘영원히 함께 하고 같이 늙어간다’는 ‘라오통’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나도 나의 절친한 사람들과 맺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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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 라오통, 새롭게 알게된 중국의 관습이네요.
님의 리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