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잭 캔필드.게이 헨드릭스 지음, 손정숙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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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살 큰아이가 8,9개월무렵...내 생활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하루종일 울고 안아달라 칭얼대는데다 잠투정은 또 어찌나 심했는지...10킬로도 안되는 아기와 매일 씨름하면서 나는 짜증만 늘어갔다. “나한테 도대체 뭘 바라는 거냐고~오!!”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그때 만난 책이 바로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였다. 토토란 아이의 경쾌하고 밝은 일상을 읽어가면서 나는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아이를 문제아로 보지 않는 토토의 엄마와 교장 선생님의 모습에서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서른살 넘은 애가 애를 키우려고 쩔쩔맸다면 지금부터는 아기와 서른살 넘은 엄마가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여기자고...그러고나니 신기하게도 딱딱하게 굳은 어깨의 근육이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아주 중요한 부품 하나가 빠진듯한 느낌이었다. 뭘까...고민하다가 내가 아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만난 운명적인 책, 이상금씨의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단언하건대...나의 인생은 이 책으로 인해 바뀌었다. 이 책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아이들은 가장 먼 시대를 살아갈 사람이며 우리 아이들이 좋은 그림책을 만나려면 어른이 먼저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꼭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두운 밤, 길을 잃고 헤메는 내게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누군가 깜빡이는 방향지시등을 켜둔 것 같았다. 그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평생친구가 되어줄 그림책을 찾아 팔방으로 뛰어다녔고 아이들의 모습과 생활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아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모든 변화가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되었다. - 344쪽.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이 책을 읽자니 내 인생을 바꾼 책이 떠올랐다. 사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인상적이고도 뭔가 아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작가에서부터 의사, 교사, 운동선수, 사업가...등 48명의 유명인사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한 권의 책을 각자의 사연과 함께 소개해놓은 책이다. 그리고 그 내용에 따라 삶의 나침반, 깨달음의 열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최고의 스승, 끝없는 도전과 용기, 변화의 연금술...이란 소주제로 구분해 놓았다.




소개된 책들을 보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책이 있는가하면 생소한 책도 있었다. 또 그들에겐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인상적이고 감명깊은 책으로 소개되고 있는 책이 내겐 그저 그런 느낌인 경우도 있었다.




같은 책도 읽는 시점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사람마다 같은 책에서 서로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한다. - 책머리중에서




책은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마술처럼 다시 나타나곤 했다. - 156쪽.




하지만 48명,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어왔기에 자신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겨낼 뿐 아니라 그 전환점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가지에서 영향받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5년이 지나도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그 두 가지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읽는 책이다.” - 책머리중 일부.




내 인생을 바꾼 책 중의 하나인 <창가의 토토>...이 책을 처음 만난건 내가 20대였다. 그때의 느낌은 ‘아...괜찮네, 그림도 이쁘고...’였던 것 같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이 지나 아이엄마가 되어 다시 읽었을 땐 같은 책이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내가 변화를 얼마나 목말라 하는지...지금 놓여진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에 따라 책은 내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과 경험을 선사했다. 그 모든 것이 책의 힘이라니...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또 어떤 책들이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올지...가슴 두근대며 기다린다.




처음에 독서는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달아나 숨는 도피처였지만 곧 수많은 다른 현실의 비전들을 배우고 껴안도록 해주는 도구가 되었다. 책은 내 발로는 결코 가지 못했을 도시로, 나라로, 심지어 우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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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7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인연이 있어요. ^^

몽당연필 2007-09-1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런것 같아요. ^^
 
라이온하트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역시 온다 리쿠!! 그녀의 책은 한번 손에 들면 24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내가 그녀의 책을 처음 읽었던 건 <밤의 피크닉>이었다. 작년 여름 휴가때 들고 갔다가 집에 돌아오기도 전에 다 읽어버렸다. 그녀의 짧고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 속을 드러내지 않는듯 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모든 것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 책 <라이온 하트>는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도 끝난 자정 넘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땐 이른 새벽, 창밖은 밝아지고 있었다.  한창 로맨스 소설에 몰두하는 사춘기 소녀도 아닌 두 아이의 아줌마가 사랑이야기가 담긴 소설로 밤을 새다니. 내게 아직도 소녀적 취향이 남아있는건가? 그럼 정말 좋겠지만...그건 아니다.




“11월 27일. 런던대학 법학부 명예교수인 에드워드 네이선과 연락이 두절된 지 2주일이 지났다.” 이렇게 시작되는 부분을 읽는 순간, 누구나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에 포로가 되고 그들의 행적을 쫓는 추격자가 되고 만다. 에드워드가 남긴 단서, ‘from E. to E. with love'라고 수놓인 하얀 레이스 손수건과 분위기가 서로 다른 다섯장의 그림, 방 안 가득 남아있던 로즈 티의 향기...이 세가지를 가지고 출발해보자.




이 소설은 5개의 장으로 이뤄져있다. 또 그 각각의 장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이 다르다. 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다.




나타날 때마다 나이는 제각각 다르지만 속은 모두 같은 인물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겉모습은 미묘하게 달라서, 많이 닮은 다른 사람같다. - 52쪽.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의 윤회를 떠올렸다. 지금의 생이 끝나도 다음의 생이 있다. 그렇게 수레바퀴처럼 돌도 도는 것...하지만 현생의 삶이 내생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들었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도 그런걸까?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유일한 사람, 유일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 평생동안 기다리고 또 다음생을 기약한다.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 항상 나를 사랑해준, 언젠가 만날 그 날만을 기다려왔던 사랑. - 85쪽.




데자뷰라고 했던가? 처음 보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 나도 그런걸 경험해본 적은 있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는 반복되는 꿈과 환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들의 만남에는 항상 이유와 목적이 존재한다. 때로 그들은 상대방을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건다.




우린 아주 짧은 시간 밖에 함께 있지 못해요. 반드시 어디선가, 각자의 인생 어디쯤에선가 만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지는 수수께끼예요. -44쪽.




생을 거듭하며 다시 만난 그들에게 서로의 모습은 중요치 않았다. 12살의 어린 아이든, 여신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든 죽음을 앞둔 노인이든... 그 사람 속에 깃든 영혼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이윽고 나는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늙기는 했지만 역시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혼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시간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 125쪽.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 그들이 만남을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자신을 일깨우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전생의 기억을 현생에 갖고 태어나는 걸까, 예지몽이나 환상으로 미래의 일을 알게 된 걸까, 아니면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공간을 넘어서는건가?




우리는 몇 번이나 만났지만 맺어진 적은 없어요. 하지만 헤어진 순간부터, 다시 만날 순간을 한없이 기다려요.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이유같은 건 몰라요. 하지만 만나고 싶었어요. 안 그런가요? -146쪽.




그렇다면 소설의 첫부분에서 실종된 에드워드 네이선은 어디로 갔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찾아헤맸다. 어디 숨은거야?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만난 사람이 20세기의 그 에드워드인건가?




그렇다면 누구의 꿈일까. 나는 그걸 찾기로 결심을 했지. 오랫동안 수천 수만 명의 꿈을 떠돌다 우연히 당신의 꿈에 이르게 되었지...설마 당신일 줄은 몰랐어. 이름은 알았지만, 여기가 시작일 줄은 - 299쪽.




로맨스에 SF적 요소를 더하니 이런 묘미가! 치밀하고 탄탄한 온다리쿠의 스토리 전개에 감탄했다. 하지만 저자가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했던 탓인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알 수 없는 대목들이 나왔다. 문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난데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로켓발사장면!




누군가의 메아리, 누군가의 꿈, 누군가의 의지가 남긴 잔영, 그런 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세계와 역사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 298쪽.




하지만 제일 마지막에 등장한 노인부부! 그들이 날 위로해주었다. 에드워드란 존재가 그럼 전생의 엘리자베스 동생이었나...하는 충격 속에 빠진 내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불꽃이 꺼지기 직전 밝고 아름답게 빛나듯 지나온 날이 남은 날보다 많은 그들의 모습에서 운명을 느꼈다.




마음을 가득 채운 뜨거운 것이 몸 어디선가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나는 언젠가 꿈에서 보았다. 나의 연인을, 나의 운명을, 이렇게 온실에서 마주앉아, 역광을 받아 빛나는 그녀의 은발을. - 374~375쪽.




온다리쿠. 그녀는 러브스토리도 역시 독특했다. 그녀 특유의 강렬한 미스테리가 부족한 게 아쉬웠지만 가슴저린 사랑은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들었던 음악과 미술관에서 본 한 장의 그림,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저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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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이 책은 첫인상부터 나를 압도했다. 5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표지엔 빛을 받아 섬뜩한 해골이 있고 그 해골 위에 깍지 낀 양손을 올리고서 얼굴을 괴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이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한술 더 떠서 방금 뚝뚝 흘린 것 같은 선명한 핏방울이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다.




표지만으로도 미스테리 스릴러물임을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은 주검에서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는 여인, 베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텔레비전 인기시리즈인 CSI 마이애미의 여자부검의 알렉스가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CSI의 알렉스에겐 최첨단 과학장비가 있다면 아델리아에겐 오로지 수많은 해부경험이 있을뿐이다. 게다가 시대적 상황이 자칫 잘못하면 아델리아가 마녀로 몰릴 위험도 있다. 그 두 여인의 공통점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하고 주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중세 영국 케임브리지셔 지방에 아이들이 연이어 실종되고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그 사건의 범인을 유대인이라고 여긴 농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유대인들이 성으로 대피하게 되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시칠리아왕은 해결사를 영국으로 보낸다. 법집행관이자  사건수사관이며 중재자인데다 정찰자인 나폴리의 시몬과 병을 고치는 도시 살레르노 의과 대학에서 병리학에 가장 조예가 있으며 죽은 자를 담당하는 여자의사 아델리아, 그녀의 하인 아라비아인 만수르. 그들은 떠돌이 약장수로 위장하여 사건이 벌어진 케임브리지로 향한다.




우연히 아픈 제프리 수도원장을 치료해준 것을 계기로 아델리아는 아이들의 시신을 조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살해되어 옮겨진 걸 알게 된 그녀는 석회지대인 원들베리링을 조사한다. 하지만 거기서 범인이 십자군원정을 다녀왔다는 것 외에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시몬은 농민들에게 희생된 부유한 유대인 카임의 금전관계를 조사하던 중 확실한 증거를 찾지만 그로 인해 살해당하고 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12세기 중세 영국이어서 다소 걱정을 했었다. 나의 세계사 지식이 얕아 책내용을 혹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책표지를 보니 저자인 아리아나 프랭클린는 중세의 필사본을 읽기 위해 라틴어를 배우고 성을 비롯한 수도원을 탐사하는 등 12세기 잉글랜드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것들이 이 소설의 탄탄한 밑바탕이 되어 비교적 어려움 없이 카톨릭과 유대교, 유대인과의 반목과 대립을 비롯한 중세시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각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가 탁월했다.




# 영향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델리아는 다만 고통받는 한 인간만을 보았다.

# 그녀의 의술에는 환자 머리맡에서의 예절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잣대란 의학적인 것 밖에 없다. 그녀는 지금 수도원장에게 그가 죽으면 시신을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하려는 게 틀림없다.

# 학교의 시체안치소에서는 아델리아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때란 오로지 죽었을 때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몇 개의 짧은 문장만 보더라도 아델리아가 오로지 의학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여인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시체에서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는 과정의 묘사는...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 의과대학!! 난 이 책을 통해 살레르노 의과대학을 처음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세계 최초의 대학에 살레르노 대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새롭게 알게된 놀라운 사실!!




의료실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깨면서 죽은 몸을 낱낱이 해부하거나 문제가 있는 태아를 여자의 몸에서 제거했고, 여자들도 외과수술을 할 수 있었으며, 수술하느라 살을 찢었다.




이렇게 탄탄한 이야기 흐름이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추리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막판 뒤집기!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건데...이 부분에 관해 이 책은 절반의 성공만 거둔 셈이랄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적도착증을 보이는 범인의 살벌한 심리묘사가 없었다. 그게 바로 추리소설의 백미인데...




또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범행을 저지른 공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주인공인 아델리아의 활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헨리2세가 북치고 장구치고 있었다. 물론 중세란 시대가 여자가 여행이나 외출을 할땐 당연히 여자동반자가 있어야 된다고 할만큼 여자에게 제약이 많았다고는 하더라도 아델리아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꿀먹은 벙어리처럼 묘사하다니...이 부분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저자의 철저한 조사가 탄탄한 구성과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탄생시켰고 재미와 스릴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그게 전부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인간은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간단다. 어떤 때는 천국을 향해 날아오르고 어떤 때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자신이 가진 악의 잠재력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자신이 솟아오를 수 있는 고귀한 장점에 대해 눈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둔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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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과 그림자 도둑 1
리들리 피어슨.데이브 배리 지음, 공보경 옮김, 그렉 콜 그림 / 노블마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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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나는 걸핏하면 추락하는 꿈을 꿨다. 멋지고 파란만장하고 신나는 꿈을 꾸다가도 결말은 꼭 어딘가에서 떨어졌다. 깊은 잠에서 순간 깨어나보면 베개와 이불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의 꿈을 엄마는 키가 크려고 그런다...고 말씀하셨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이문열의 책과는 정반대로 날개도 없이 높은 곳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그 섬뜩함이란...


그런 내게 피터팬은 우상이었다. 날개도 없이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데다 나이도 먹지 않고 언제나 아이인 피터팬!! 너무 멋지지 않은가. 이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피터팬이 있어서 언젠가는 내가 잠든 방으로 뛰어들 것 같은...환상에 빠지곤 했다.


<피터팬과 그림자도둑>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환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어른이 된 이후로 줄곧 혼란스럽고 뒤숭숭하던 꿈자리가 마치 환...해진 느낌!


<피터팬과 그림자도둑>은 우리가 알고 있는 <피터팬>의 후속편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피터팬>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전작인 <피터팬과 마법의 별>을 읽지 않은 상태라 내용 연결이 될까...걱정을 했지만 때로 전작의 내용을 본문에서 잠깐씩 언급하고 있어서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선 피터팬과 팅커벨, 고아소년들, 후크선장 외에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마법의 별가루를 수호하는 별지킴이를 비롯한 몰리, 조지와 그 반대편인 옴브라경, 슬랭크, 네레자 선장이 엄청난 힘을 가진 마법의 별가루를 둘러싸고 일대 격전을 벌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옴브라경의 능력이 큰 볼거리였다. 절반은 인간, 절반은 그림자인 그는 상대방의 그림자를 이용해 영혼을 빼앗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드는가 하면 그림자의 기억을 읽어낸다. 그래서 마법의 별가루가 영국 런던으로 옮겨졌다는 것과 별가루의 반환 장소가 스톤헨지라는 것을 알아내는데 그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았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것을 오로지 그림자도둑인 옴브라경에 의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책표지에서 언급되었듯이 <피터팬>의 원작자인 제임스 배리가 런던의 뒷골목에서 피터팬을 도와주는 신사로 까메오 출연한다. 피터와 헤어지면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피터, 참 멋진 이름이야”...어떻게보면 이 책에 작은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이지만 왠지 억지로 끼워맞춘 듯했다.


옛말에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듯이 영화도 속편 영화는 전작보다 재미가 없다고 했다.


바로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우려했던 점이었다.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다가 괜히 원작의 느낌까지 손상시키는 건 아닐까...생기발랄하고 용감하며 모험을 즐기는 피터팬을 구태여 내 어릴적 동심에서 끄집어 낼 필요가 있을까.


결론은 글쎄...알 수 없다. 내 환상속의 피터팬의 성격이 다소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원작보다 내용의 깊이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재미있다. 또다른 후속작이 출간된다면 잠깐동안 망설이다가곧 서점으로 달려갈만큼...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환상과 꿈을 펼쳐가기보다 학원 순례를 하며 학습에 열중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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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 너무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하기
아이리스 크라스노우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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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딸 여섯 중에 어떻게 날 닮은 딸이 하나도 없냐.”

엄마는 걸핏하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속으로 대답한다.

“천만다행이네요. 난 엄마 닮기 싫은데...”


딸은 엄마를 닮는다. 외모와 목소리가 비슷할 뿐 아니라 삶의 방식도 딸은 엄마를 닮아간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너무나 싫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어릴때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원래 자존심이 강한 엄마는 18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 심해졌다. 별 일이 아닌데도 엄마는 상대방이 서방 없는 자신을 무시한다며 버럭 화를 내고 싸우려 들었다.


지나치게 깔끔한 엄마는 외식하는 것조차 까다로웠다. 외식하러 갈 거라고 미리 얘길해서 엄마가 외출복으로 단장할 시간을 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는 식사 시간 내내 음식이 형편없고 서비스도 엉망이라며 투덜대고 짜증을 냈다.


말 한마디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키워도 화장하고 멋지게 하고 다니던데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냐. 청바지랑 티셔츠 말고 다른 옷은 없냐”고 핀잔을 줬다. 또 작년에 둘째를 임신했을 땐 “차림새가 꼭 거지같다”며 내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았다. 그것도 엄마 친구분들이 계신 자리에서.


엄마는 모른다. 엄마의 말 한마디가 딸의 가슴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는지...그 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 날의 일이 엄마와 나 사이에 얼마나 높은 담을 쌓았는지...


그렇다고 엄마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외항선원인 아버지가 1년의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보내실 때 엄마는 1남 6녀, 칠남매를 혼자 키우셨다. 성격이 드세질 수 밖에 없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마음을 살펴서 다독이기보다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건 그렇게도 닮기 싫었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 내게 언뜻 보인다는 거다. 아이가 고집세우고 말썽부릴때 나는 영락없는 내 엄마가 되고 만다. 엄마의 말투와 행동 그대로 아이를 제압해버리곤 한다. 나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싫다.


왜일까. 결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순 없는 걸까.


<엄마 미안해> 이 책 속에서 나는 또다른 나와 내 엄마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나가는지 지켜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엄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특히 나에게 화내는 엄마의 모습이 무서운 괴물처럼 보인 날엔 밤에 잘 때 꿈을 꾸었다. 내 엄마가 친구 엄마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며 다정한 엄마가 되어 날 포근하게 감싸주는 꿈을...


어머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가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그것이 때로는 마지못해 하는 일일지라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머니와 화해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55쪽.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결국에 가서는 딸이 어머니를 어머니처럼 돌보게 되는 삶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의 환상을 버리고 쓴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68쪽.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엄마를 끌어안는 것이다. 엄마를 엄마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때문에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우리가 어머니를 떠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본질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떨어질 수 없다. -100쪽.


나는 아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어린 아기에게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엄마와의 부드러운 신체접촉 같은 교감이 제대로 이뤄져야 성장해서도 정서나 행동장애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어머니로부터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받은 사람은 겉잡을 수 없는 폭식으로 인해 정신과 몸이 고통을 받는가하면 계속되는 폭력으로 엄마가 죽기를 바랬다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도 과거에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한 여자일 뿐이다. -126쪽.


그리고 그런 갈등과 분노를 겪었던 딸들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고민하게 된다.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엄마와의 사이에 놓인 담을 더 굳건히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갈등을 발판삼아 화해하여 엄마와 함께 제 2의 삶을 살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와 함께 성숙해지기 위해서 내가 택한 방법은 엄마가 상처를 줘도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곁에 꼭 붙어서 우리의 관계를 더욱 깊이 파헤치는 것이다.  -170쪽.


여자의 평균수명을 80세로 봤을때 이제 곧 칠순이 되는 엄마는 10년, 내겐 40년이란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그런데 엄마는 해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올해를 넘길 수 있을래나...” 그러면 나는 “엄마, 무슨 소리예요? 엄마 손자들 장가가는 것까지 보실텐데... ”


나는 지금까지 엄마와 화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난 착하고 고분고분한 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엄마에게 착한 딸이라는 것은 허울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디까지나 나의 위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돌아가시더라도 난 엄마에게 할 도리를 다했기에 후회도 없다는 얄팍한 위안...


인터뷰를 응한 딸들의 상황과 배경은 모두 달랐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보면 늙어가는 어머니와 화해할 수 있는 어떤 공통괸 처방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화를 푸는 것이다. 어머니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77쪽.


엄마와 딸 사이의 사랑은 너무나 복잡해서 엄마가 세상을 뜬 후에야 드러나느 경우가 많다. -222쪽.


이젠 정말이지 시간이 없다. 내게 아빠는 없다. 엄마뿐이다. 그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나는 고아가 되고 만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를 해야겠다. 그리고 말해야지. “미안해요. 엄마. 그리고 사랑해요.”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 세 마디가 우리를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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