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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만화나 일본소설을 읽을 때면 이 사람들은 참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의미를 찾는다...싶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상이나 일까지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 자주 해본다. 더구나 그 얘기가 전혀 허무맹랑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될 때, 그 글을 쓴 작가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이 사람에게 하루는 그냥 24시간이 아닐거야...나와 다른 차원의 시간을 보내고 나와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사람들과의 짧막한 대화에서도 가늘지만 아주 밝게 빛나는 실을 뽑아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 그런 책을 만났다. 시바사키 토모카의 <오늘의 사건사고>. 이 소설은 2003년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국내엔 부천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고 하는데 당시 이 영화를 두고 평이 분분했던 모양이다. 아니, 이런 것도 영화로!...아니, 이것도 영화냐? 영화를 직접 보질 못한 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지금으로선 무척 안타깝다. 지방에 살아서 좋은 기회를 또하나 놓쳤구나...싶다.
<오늘의 사건사고> 이 책의 내용은 무척 간단하다. 교토의 대학원에 진학한 마사미치를 축하할겸 친구들이 3월 24일 집들이를 한다. 바로 그 날인 3월 24일 오후 1시부터 다음날인 3월 25일 오전 4시까지....마사미치의 집들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을 그 중 다섯 명의 시선으로 그려나간 기록이다.
이게 전부냐고? 그렇다. 집들이란 게 원래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왁자하게 축하하면서 술이나 맛난 음식을 먹는 건데...그다지 큰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게 전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다만....이것도 사건이나 사고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몇 가지 꼽아보자.
하나, 케이토, 꽃미남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그녀는 이번 집들이에서 나카자와의 친구 가와치에게 접근한다. 목적은 그와의 데이트...성공여부는? 글쎄....
두울, 나카자와의 여자친구인 마키는 케이토와 진창 술을 먹고선 가위손으로 둔갑한다. 나카자와의 친구인 니시야마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주물러놓고 그것도 모자라 가와치의 머리에도 손을 댄다.
세엣,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굉장한 영화를 만들고픈 나카자와는 술에 취한 마키와 케이토를 차에 태우고 가면서 케이토의 꿈 이야기를 떠올린다. 등은 악어지만 뒤집으면 거북이 되는 큰악어붉은강거북을. 마키는 그 동물이 등장하는 SF영화를 찍어보라고 격려한다.
네엣, 꽃미남이란 이유로 케이토의 부담스런 관심을 받는 가와치는 타인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가와치의 장점이나 단점이었다. 여자친구 치요와 동물원을 찾은 가와치는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의 기억을 얘기한다. 사생대회때 자기에게 줄곧 뒷모습만 보이던 북극곰을 향해 그림물감을 던졌는데 그걸 북극곰이 먹어버렸다고. 저 곰이 그때의 곰일까?
다서~엇, 집들이의 주인공 마사미치. 마키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니시야마의 머리 때문에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마실거리를 사러 밤길에 열심히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그러다 자전거를 탄 채 넘어진다.
거봐라.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한 인물과 평범한 이야기가 반짝반짝 빛난다. 마치 예쁜 사금파리 같다.
책장을 덮고 국어사전을 펼쳤다. 사건(事件) :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 사고(事故) :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어떤 일이 일어난 까닭....국어사전에 기록된 걸로 보자면 이 책에서 일어난 일은 사건사고축에 끼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빛나는 이유는 뭘까.
나 역시 오늘 하루는 무척 평범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렇지도 않다. 두달전에 걸음마를 시작한 작은아이는 조금씩 말을 배우고 큰아이는 아빠따라 간 화원에서 이쁜 꽃화분을 하나 사왔다. 자기가 물을 주며 기를거란다. 참 이쁜 마음....이런 일들이 있었던 나의 오늘 하루, 사건사고는 없었지만 그래도 특별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을 빛 속으로 끌어올려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일은 언제나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오고, 어느덧 다시 오늘이 되고 있다. - 165쪽.
사족 : 이 책을 다 보고 나서 궁금해진 것....표지엔 11명이 그려져있는데 왜 책 속에선 7명만 등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