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도서 DVD를 판매한다는 광고판이 길 가운데 떡하니 세워졌길래 뭔가 하고 찾아
갔더니 도서대여점을 폐업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가게정리 판매였는데, 저렇게 하나 둘씩
사라지는 도서대여점이 요즘 유독 많이 눈에 보인다.
예전에는 동네에 만화가게 하나씩 있었는데, 번화가 아니면 만화가게도 보기 힘들고,
만화방 대용으로 도서대여점이 생기더니 이젠 이것도 사양사업으로 전락하나 보다.
이전 단골 대여점에서 보통 만원을 선납하면 2~3천원 더 사용하도록 해서 선납했더니
어느순간 소리 없이 폐업했다. (잔고가 한 3~4천원 남아있었을 텐데...)
어둠의 경로로 유통되는 영화 때문에 DVD도 대여가 많지 않고, 책이라 해도 무협지나
하이틴 로맨스, 만화, 몇몇 베스트셀러 등이니 사실 이것도 인터넷을 뒤지면 굳이 빌려
보지 않아도 충분한 것들이니 요즘같은 인터넷 만능인 시대에 대여점이 경쟁력을 가지진
힘들 것이다.
내가 도서 대여점을 이용하는 이유는 99%가 무협지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잠깐 본
무협지에 혹해서 지금 이 나이까지 간간히 무협지를 즐기는데, 사실 복잡하게 사고하기
싫은 경우 무협지 10권 정도 내리 읽어 주면, 머리가 개운해 지는 맛이 있다.
쟝르소설이고 배경이나 형식이 거의 동일하기에 글을 잘 써도 평가 받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무협소설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이 세계에는 나름의 내공과 절기를 자랑하는
몇몇 작가들이 있고, 나 또한 저자명으로만 즐겨 읽는 작품들이 있다.
물론 '영웅문'같이 고급(?) 무협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그저 스토리와 내용으로 근근하게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는 법. 저자 들이 한국인임에는 틀림없으나, 배경은 중국대륙이고
주인공들은 한족이 대부분인 무협소설이 이 땅에서 끊임없이 창작되고 읽혀진다는사실
자체가 미스테리긴 하다. 더불어 일본에는 학원 폭력물이 주를 이루지 우리나라와 같은
무협소설이 없다는 것도 역시 문화적 배경이 틀리기 때문일 거다. 반도로서 우리나라는
역시 중국의 영향이 큰 것일까?
배경이나 소재가 중국이라 그렇지, 사실 무협지는 환타지다. 최근 등장하는 환타지 소설이
극단적으로 다른 세계를 표현한다 하더라도, 서양 중세풍의 외양을 베낄 수 밖에 없듯이
무협의 장소와 시간이 중국을 표방하더라도 역사 속의 중국과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고로 무협이건 환타지건 상상속의 이야기로 즐기면 된다. 그래서 역시 부담이 없다.
무협지에 정통한 사람들은 가끔 구무협이니 신무협이니 나누는 모양인데 이것 역시 나에겐
별 의미가 없다. 다만, 몇몇 작가의 작품은 시간가는 줄 모르게 끌어당기는데, 지금까지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사마달, 검궁인 <십대천왕>, <구천십지제일신마>,
초우 <권왕무적> <호위무사>
한백림 <무당마검>, <화산질풍검>
와룡강 <고독 3부작>
임준욱 <촌검무인> <쟁천구패>
조진행 <천사지인>
임준후 <철혈무정로> <21세기 무인>
장영훈 <일도양단> <마도쟁패> <보표무적>
장기 창작으로 중간에 스토리를 잊어버려 놔두고 있지만, 완간되면 꼭 보리라 다짐하는 무협
소설로는...
검류혼 <비뢰도>
용대운 <군림천하>
전동조 <묵향>
정도 되겠다.
이 외에도 숱한 밤 잠못들게 만든 무협소설들이 기라성 같이 널려 있지만, 순전히 재미로만
따지자면, 위의 작품들과 저자들만 잘 기억해도 무협소설을 빌려 낭패 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뭐 취향문제라 아닌 사람은 할 수 없고....)
사족 삼아. 와룡강의 작품들은 무협지에서 간간히 나오는 애정표현의 수위를 질적으로 뛰어
넘어 거의 세미 포르노 수준까지 올려논 문제작들이 많은 바, 최소한 그 쪽 방향으로 무협
소설의 지평을 넓혀 한때 딴지 일보 기자들도 감탄사를 터트리게 한 바 있다. 때문에 순수(?)
무협을 추구하는 많은 저자와 독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
이렇게 쓰다보니 갑자기 무협자가 확~ 땡기는 구나...근데 이제 어디서 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