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극장에 가서 영화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을 보았다. 영화 속에는 맨 처음 쥬라기 공원을 만든 박사의 손녀가 나오는데, 아마도 그 소녀의 나이는 9살 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9살인지, 그러니까 영화속에서 9살이라고 나이가 나오는건지, 아니면 내가 그냥 보고 '9살쯤 됐겠구나'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그 소녀에 대해 기억하는 건 9살.. 이라는건데, 그러니까 이것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어떤 인상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9살 내 조카 때문에 그냥 소녀들이 다 9살로 보이는 건 아닐까..모르겠다. 아무튼, 그 소녀의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고.


가능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게 말하려고 하는데 될지 모르겠다.


영화속에서 그 소녀와 그 대저택에서 함께 사는 어떤 남자어른이 있다. 영화의 끝에 남자 어른은 주인공들에게 이 소녀의 비밀에 대해서 말한다. '너네, 그 아이가 어떤 아인줄 알아?'하면서 얘길하는 것. 그리고 그 얘길 할 때 그 자리에는 그 소녀가 있었다. 그것은 소녀가 이미 스스로에 대해 짐작했던 일이라 해도, 타인으로부터 그렇게 갑작스레 폭력적으로 들어서는 안되는 말이었고, 그리고 그걸 듣고난 후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어떤 마음일지도 아주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그 남자가 아무리 악당이라고 해도, 그 '아이'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걸 굳이 말해야 했다면,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어른들에게 말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저 남자는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래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당이기에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리 악당이어도' 해서는 안될짓이 있다고 생각했던건데, 그렇지만 해서는 안될 짓을 하지 않고 선을 지킨다는 것은 역시 악당이 아닌 것일까...





요즘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중인 《김비서가 왜그럴까》를 웹툰으로 몇 회 본 적이 있다. 처음부터 '비서'란 직업에 대한 전혀 이해가 없이 그려진 웹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것은 로맨스를 그려내기 위한 웹툰이니 보면서 비서와 부회장의 콩닥콩닥 로맨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거에 재미 느끼라고 보여지는 거겠지만, 역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하게 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비서가 부회장의 넥타이를 고쳐매 주는 장면이었다.



나는 '비서'라는 직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상사의 넥타이를 매주는 상황에 곧바로 대입해보게 됐는데, 와, 진짜.... 그건 아무리 상사라고 해도 비서가 해줄 역할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되는 것이다. 왜 비서가 넥타이를 고쳐매 줘야 하는거지? 그것은 지나치게 '사적인' 것이 아닌가. 내가 우리 보스의 넥타이를 고쳐매준다? 난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러라고 하면 당장 사표내고 나갈거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어쩌면 속으로 이를 갈면서 넥타이를 고쳐매줄 지도 모른다. 나는 을이니까. 고용되어 있으니까.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필요하니까. 그렇지만.. 기꺼이 상사의 넥타이를 고쳐매준다니... 나는 아무리아무리아무리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데..싶은 거다.



동료 비서에게 물었다. 마침 동료 비서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너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받아들이겠어?'라고 하니 강한 거부의사를 표현한다. 그건 우리 보쓰가 늙고 못생겨서가 아니다. 드라마속의 부회장이 젊고 잘생겨서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보쓰'와 '비서'로 만났다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젊고 잘생겨서 이게 허락되는 게 아니고, 당신이 젊고 잘생겨도 안되는 건 안되는거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비서라는 직업에 판타지를 갖고 있다. 보쓰의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보쓰랑 은밀한 사이가 되기도 쉽고 또 보쓰의 곁에 있을 사람이라 늘씬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일단 그런 생각 자체가 비서를 성적대상화 시키는 거고, 그 누구보다 보쓰랑 은밀한 사이를 원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비서 그 자신일 것이다. 비서를 두고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늙고 성질이 고약한 남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이 책은 제목이 그냥 다했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목이 근사하다. 진짜 제목에 빚을 진 작품이라 해야할까. 그런데 그 제목이 심지어 번역된 제목일 뿐, 원제는 '화산 자락에서'라고 한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번역된 제목이 너무 책의 내용에 잘 맞고 또 책 표지까지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디자인한듯 보인다.


규모가 크지 않은 건축사무소 이야기이다. 이 사무소에서는 해마다 여름에 이 사무소가 소유한 여름 별장으로 가 일을 한다. 시내의 일터에도 직원을 소수로 남겨놓고 일흔을 넘긴 소장을 비롯해 다른 직원들은 모두 여름에 별장에 가 일하는 것. 별장에서 각자 조를 짜서 식사를 준비하고 일을 하고 각자의 방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함께 밥을 먹고 각자의 공간에서 쉬기도 하고, 서고의 책을 보기도 하고, 벽난로 앞에 앉아 홀짝홀짝 술을 들이켜기도 한다. 와, 이런 별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두번도 넘게 생각했다. 풍경이 너무 좋은데, 책 속에서는 산 속의 풍경에 새들의 지저귐과 클래식 음악소리, 그리고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까지 타닥타닥 들려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렇지만 이 사무소의 문화 혹은 일본의 문화라고 해야할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여름을 지내고 다시 시내의 사무소로 전 직원들이 돌아왔는데,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하는 순간에 소장이 주인공 남자에게 '주말동안 별장에서 함께 일하자'고 하는 거다. 직원은 자신의 역할도 있는 바, 소장님을 모시고 별장으로 간다. 급박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별장에 도착했고, 젊은 직원은 불을 피운다.



짧은 장작을 난로 바닥에 쌓고 성냥불을 갖다댄다. 유황 냄새가 피어오르고 탁탁, 쾌활한 소리를 내면서 불길이 돈다.

"오, 불 피우는 데 달인이 됐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돌아보자 선생님의 안경에도 난롯불이 아른거리고 있다.

"장작 타는 냄새가 좋군. 좋은 장작이야."

졸참나무였다. 장작을 묶은 철사를 펜치로 끊고 난로 옆에 쌓았다.

'선생님은 왜 저를 입사시키셨나요.' 가슴속에서 물었지만 말이 되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왜 마리코와 저를 결혼시키려고 생가하신 겁니까. 떨어진 나무 부스러기를 작은 빗자루로 쓸어모아서 불 속에 털어넣자, 탁탁 하고 작은 불꽃처럼 터지면서 탄다.

"네 다발 갖고 왔는데, 조금 더 있는 편이 좋을까요?"

"9시가 넘거든 목욕물 준비 부탁하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마워."

선생님은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책상 위의 도면에 눈길을 보냈다. (p.340)



잘 읽어가다가 '응?????????????????????????'하고 놀라버렸는데,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직원에게 목욕물 준비를 부탁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부탁하는 사람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부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목욕물 준비해주는데 나는 이게 너무 이상했다. 소장과 직원의 관계다. 업무적으로 얽힌 관계. 물론 소장은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직원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스물셋의 나이이다. 게다가 이 직원은 이 소장을 평소에 존경해서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어했다. 노년의 소장이니, 뭐랄까,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목욕물 준비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건가?


그러니까 이들에게 이것은 태클걸만한 게 아닌,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건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점심에 밥 먹어도 저녁에 배가 고프듯이..자연스러운 거야?


목욕물 준비가, 글쎄 내가 일본을 안가봤고 어떤 특별한 준비가 또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뜨거운 물을 탕 안에 받아두는 것일테니 딱히 뭔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드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건 아무리 그래도 부탁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이게 너무 찜찜한거다. 넥타이 매주는 게 힘이 드는 일은 아니지만 '그러면 안되는' 일인것처럼, 목욕물 받아달라는 부탁 역시 많은 힘을 요해서가 아니라 '그러면 안되는', 그러니까 업무적으로 상하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부탁하면 안되는 일 아닌가?



이 장면에서 몇 장면 넘어가면 소장님은 뇌경색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이렇게 부른다) 몸이 유독 약하기 때문에 목욕물 받아주는 것이 그저 배려차원으로 가능한 일인걸까? 나는 읽으면서 뭔가 이 상하관계가 지나치게 사적으로 의존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싫은 거다. 게다가,



이 선생님에게는 '애인'이 있다. '부인'이 있는 상태에서...

이 애인의 집을 선생님이 지어줬는데, 자기네 회사가 시공한 업체의 보수야 자기들이 하는 게 당연하다지만, 자기 직원을 수시로 애인의 집 보수및 점검을 위해 보내는 게, 뭐랄까, '뭥믜' 되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주인공은 선생님의 애인 집도 점검해주고 사모님을 모시고 중환자실도 가고... 이게 소설에서는 뭔가 기분나쁘다고 표현되지는 않는데, 나는 되게 엿같은 상황으로 느껴지는 거다.



선생님과 부인의 사이는 그리 원만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선생님과 부인은 딱히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아. 서로에게 심드렁한것 같고, 선생님은 애인에게 의지하고 애인 역시 선생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쓰러지고 중환자실에 입원할 때, 애인은 선생님의 병실에 올 수가 없다. 선생님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중요한 자리에 다 참가할 수가 없어. 그 자리에는 사이가 딱히 좋지도 않은 선생님의 '부인'이 참석해야 한다.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애정이 넘치는 상대에게 공식적으로 드러내지지 못하는 애인의 마음 역시 아플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있고, 그리고 함께 있지 않아도 어떤 생각을 할지 뻔히 아는 사이인데, 그리고 우리가 연인이라는 걸 가까운 사람들도 다 아는데, 그런데 공식적인 자리에 나는 '내가 저사람의 애인이다' 하고 나갈 수가 없어. 그저 집에서 우두커니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이 회복은 했나, 몸상태가 어떻게 됐나, 죽었나... 너무 ..... 너무하지 않습니까?


세상엔 이런 관계가 아주 많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이 이런 일들로 속을 끓이고 있을테고. 나는 이 모두에게 아픈 일들이 너무 싫어. 이 입장에 처한 사람들 누구 하나 과연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가! 부인은 자기에게 마음 없는 남편을 보고 가슴 아프고, 남편은 아내라고 부르는 사람 있지만 사랑하는 여자 멀리 있고,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하는 순간 좋지만 자신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어 가슴 아프고, 주변에서는 이걸 다 보면서 참 뭐라고 말도 못하고..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세상 쓸데없는 짓이지. 그러니 우리는 좀더 명확히 정리하고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모든 아픔과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사람은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하는 것 같다. 혹여라도 마음이 다른 데 있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마... 모두를 아프게 해, 모두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그 사람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는 선을 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서 알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상대랑 싸운다 해도 '절대로 해서는 안될말'같은 게 있지 않은가. 나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이제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 후에 우리에게 켜켜이 악감정만 쌓인다 해도,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중 치명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도 또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비록 원수가 되었다 해도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지켜야할 예의라는 게 있지 않나.




쥬라기 공원에서 어른 남자는 선을 넘었다.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아이에 대해 그걸 얘기하면 안되는 거였다.

비서가 보쓰의 넥타이를 고쳐매주어서는 안되었다. 앞으로 그 자리에 앉게될 후임도 그렇다면 당연히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소장이 신입 직원에게 목욕물 받아달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왜 목욕물을 직원에게 받아달라는거야?

정말 한평생 충실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결혼하면 안되는 거다. 여럿 불행해진다.



"나는 여름 별장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어요. 슌스케 씨가 와보라고 여러 번 말했어도, 그럼 지금 같이 가보자, 라고는 안 했거든요. 여기 밭에서 마음에 드는 꽃을 갖고 간 일도 있는데 어떻게 심어서 어디에 피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려츠주지도 않았어요. 나한테 거는 전화가 방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앉아서 걸었는지 서서 말했는지, 그것도 몰라요. 만일 슌스케 씨의 의식이 이대로 안 돌아온다면, 이제는 갈 기회도 없잖아요? 작업실 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어떤 의자에 앉아서 어떤 경치를 보고 있었는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보고 싶어요. 쓰러지고 나서 자꾸 여름 별장에서의 슌스케 씨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목소리뿐이지 모습은 없어요." (p.367)



이게 뭐냐...



"그건 말이야, 우치다가 괜히 장난 비슷하게 마리코한테 접근해서예요. 반쯤 놀이 삼아 데리고 다니는 척 자기 마음을 숨기고 있었거든요. 언제든지 진심이 아니었다고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있게 말이지. 자기 자신한테도, 마리코한테도 말이에요. 그런 것이 우치다의 잘못된 점이지요." (p.368)


이것도 졸라 싫어..



"나는 구가루이자와에 묵을 테니까, 토요일 점심때쯤 유키코씨랑 데리러 와줄래?" 마리코가 말했다.

나는 유키코하고 단둘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순간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왜? ……뭐?" 마리코는 조금 무서운 얼굴을 해보였다.

"괜찮을까?" 그렇게 말해보았다.

"까, 라니 왜 까야?"

마리코는 내 목에 양손을 뻗어 가는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목을 조였다. (p.373-374)



자기 여자친구에게 다른 여자랑 둘이 있는 상황을 '괜찮을까' 묻는 것도 답없다 진짜. 이 놈도 싫어.. 안괜찮으면 어쩔건데. 아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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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8-06-1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집시마을에 갔다가 자기 집 앞을 나체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마주쳤어요. 넘 짜증났는데 뭐 자기 집 앞이고, 요즘 관광객 싫어하는 현지인 많으니 관광객 쫓아내기 위한 발상인가 싶기도 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누가 저 사람이 잘생기고 몸 좋았어도 니가 몸서리를 쳤을까? 라고 함.
그건 잘생기고 몸 좋더라도 나체인 남자를 대낮에 마주치는 건 싫은거다, 저건 하나의 폭력이다,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오냐? 하며 넘어갔는데,, 잘생기고 몸이 좋은 남자여서 용납이 되는 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 여기에 갖다 붙이는 건 너무 싫다고 생각했어요. 아닌 건 아닌거지.. 부회장 보면서 이 사건이 떠올랐네요.

다락방 2018-06-19 08:54   좋아요 0 | URL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면 호감이 가고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빛나는 외모가 폭력을 비폭력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죠.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뛰어난 미모라면 폭력조차 평화로 둔갑시킬 수 있다고 믿는건지, 일전에 제가 썼던 영화리뷰에도 그런 거 있었는데, 기차에서 옆자리 남자가 아무리 유연석이라고 해도 처음 만난 여자에게 ‘나는 오늘 너랑 잘거야‘ 같은 거 말하는 게 무슨 개똥같은 시츄에이션인지..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유연석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폭력이 무엇인지, 폭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아 짜증나.

왜 박유천 성폭력 사건 때도 그런 글들 봤었어요. 박유천이 무슨 성폭력이냐, 그렇게 생겼으면 땡큐지.... 이 무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ㅠㅠㅠㅠㅠ 왜 이런걸 일일이 설명해줘야 할까요 ㅠㅠㅠㅠㅠ 예쁜 여자가 죽이면 살인이 살인이 아닌 게 되는걸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짜증나요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8-06-26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6-26 15:55   좋아요 0 | URL
직원들도 애인 있는 거 알고 애인 집 관리까지 해주잖아요. 유지보수... 어처구니;;
뭔가 부인만 머저리 만드는 것 같았어요. --^

블랙겟타 2018-07-1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전에 이 페이퍼의 글을 보고 떠올린 일화가 있어서 얼른 댓글을 남기려고 했었는데요..
이 놈의 건망증(응?) 때문에 이제야 ‘아 맞다!‘라고 무릎을 치며 댓글을 남기네요.

제가 일본어 학원을 다니면서 다락방님 처럼 일본 만의 문화(?)에 대해 저도 갸웃거린 게 있어서요.
어릴 떄 부터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있어요. 일본을 알면 알수록 오묘(?)하다고 느낀게 일본 예능을 보면 여장남자인 예능인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며 (사실 이건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존중한다는건지 아님 단지 독특한 인물로서 소비하고 있는지는요..) 또 제가보고 있는 일본 청춘드라마에서도 등장하는 한 남학생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고민하며 그래서 어떤 계기로 남녀합반을 하고 있을때 이 친구가 사실 꼭 입고 싶었다면서 부모님 몰래 학교에 여고의 교복을 입으면서 벌어지는 부모님과의 갈등과 이해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거든요. 한국에서는 나오기 힘든 에피소드라고 생각이 들었었죠.

그러나 한편으론 일본 단어를 보면 특히 기혼 여성이 남편을 부르는 말 중에 主人이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응? 왜 남편이 주인이지? 라며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회화수업중에 좋아하는 여자배우를 말하려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이라고 말하다가 선생님께서 ‘여자배우를 말하고 싶은거야? 그럼 배우라는 단어보다 여(자배)우라는 말이 더 어울려..배우라는 단어는 남자배우를 뜻 해˝ 라는 말을 듣고 ‘어?‘ 왜그럴까.라고 느낀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죠. 일본이라는 나라가 한국보다 한편으론 개방적인것 같으면서 알면 알수록 엄청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 같기도 하구요..

다락방 2018-07-18 11:35   좋아요 1 | URL
트위터를 보면 일본 여성들의 인권은 아주 바닥인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도 페미니스트라고 자기 정체성을 밝히면 욕을 먹기도 하고 협박을 당하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게 더 심한 것 같더라고요. 일본에 av 배우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리고 막연하게 그것이 자연스레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인걸까? 의문이었는데, 그것도 강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성인권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게 요즘에야 비로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마도 우에노 치즈코도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같은 책을 쓰게된 게 아닐까 싶고요.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게다가 거긴 걸그룹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진다고 하더라고요. 초등학생들을 걸그룹 데뷔시키고 성적대상화를 엄청 심하게 한다고.. 전 얼마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자위기구 보고 너무 놀랐는데요. 자위하면 처녀막 터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있더라고요... 뭐랄까, 그들이 여성을 대하는 게 제가 상상 해본 적도 없는 식으로 자꾸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것 같더라고요.


‘개방적‘이라는 건, 개방적이라는 좋은 허울을 씌워서 오히려 여자들을 성산업에 더 내몰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 야, 개방적이면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 온갖 가스라이팅을 한달까요. 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갈 길이 너무 멀어요, 블랙겟타님.

그나저나 일본어를 배우신다니, 멋집니다! 저는 항상 외국어에 대한 동경만 하지 공부를 안하고 노력을 안해서 외국어는 1도 할 줄 모르는데, 외국어 꼭 익히세요!! 저도 언젠가는..꼭.... (훌쩍)

블랙겟타 2018-07-19 17:24   좋아요 0 | URL
다시 생각해보니 다락방님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개방이라는 표현이 알맞지는 않았네요. 성평등이거나 개방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남성중심의 성문화로 정착되어있다보니 마치 열린 생각이 있는 것 같지만 왜곡된 관점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 한국과는 또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네. 알면 알수록 더 나은 세상이 되는게 왜 이렇게 어렵냐고 생각이 드는건 사실이네요.. ㅜㅜ

예전부터 배운다고 배우는게 이제서야 배우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 걱정이 되지만.ㅜㅜ
곧 학원 갈 시간 이네요. ㅎㅎ
다락방님은 열정이 있으시니까 언젠가는 꼭 배우게 될꺼에요!!
 

금요일 집에 가는 길에는 어쩐 일인지 '휘성'의 노래 <안되나요> 생각이 났고, 그래서 그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강동역에서 집까지 걸었다. '아 지금의 이 감정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하는 마음이 되었는데, 나처럼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현재의 상태에 대해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새치가 늘어나면서 내 노화를 실감하고, 작은 글자를 보려다보니 멀찌감치 떨어뜨려놓길래 '아앗 이렇게 노안이 시작되었나' 했는데, 요즘엔 옛날노래 들으면서 '크- 늙었구나' 한다. 트윗에서였나, 나이들수록 옛날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랬거든. 나는 그렇게 금요일에 휘성의 노래를 들으면서 휘성과 대화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내 곁에 있으라고 말하는 휘성의 노래를 들으면서,


'넌 진짜 그게 괜찮아?'


하고 묻게 됐던 것. 아니, 그렇잖아요? 아싸리 모르면 상관없는데, 이 사람이 다른 사람 사랑하는 거 알면서, 그런데 내 '곁에만 있어주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지? 그게..단지 '내가 사랑해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행복이 아니지 않나요? 행복은 각자의 정의가 다르므로,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 사람이지만 내가 사랑하니까 내 옆에만 있어주기만 하면 나는 쏘해피' 이렇게... 여겨지기도 하는건가. 휘성, 넌 정말 그래? 이러면서 나는 혼자 대화를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안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돼요
아니면 나를 그 사람이라고~~생각해도 돼요
그대만 내게 있으면...그대만 있어 준다면.... (가사 中 일부)





이 노래는 마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주제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주가 에리카를 사랑하고 그런데 에리카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상황, 그녀가 좀처럼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고 섹스에 몰두하지 못하자 남자는 그녀에게 '나를 그 사람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파바박- 떠올랐던 것.





"크리스가 보고싶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걸 보았어요. "그렇다면 내가 그라고 생각해 봐요."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몰랐어요.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죠. 갑자기 그것이 가능한 하나의 방법 같았어요. "뭐라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어요. 내가 다시 말했어요. "내가 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천천히, 어둠 속에서 말없이, 우리는 했어요. (p.95)









혼자 그래서 바닥으로 바닥으로 우울의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툭- 톡이 날아왔다. 톡을 보낸 젊은 친구와 나는 만나서 뭘 먹을까 얘기를 하다가, 내가 갑자기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었냐 물어보았지... 당연히 읽었고, 휘성의 노래 안되나요 아는지를 물었지. 역시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아는 사람과 나는 대화할 수 있습니다... 드문 일이야.. 이 세상에 또 누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와 안되나요를 동시에 알고 있을까... 이 드문 사람과 나는 친구입니다.. 역시.. 내가 짱이닷.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고민은 읽은 책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현저히 적다는 데 있다. 그런데 나는 무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그러니까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없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캬- 건배... 이 책이 소설이고, 이 친구의 성별이 남자인데, 그러니까 내 주변에 이렇게 소설 잘 읽는 남자가 있어... 은혜롭다.....



















선거 전날 이 영화를 보았다. 나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트윗에서 누군가 이 영화속의 한 짤을 올려둔 것. 그 짧은 동영상 속에서 산드라 블록은 엄청나게 욕을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왜 욕을 저렇게 다다다닥 쏟아낼까,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됐던 것.


와- 그런데 너무 재밌다. 진짜 짱이야. 일단 이 영화는 '산드라 블록'과 '멜리사 맥커시' 두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남자들은 죄다 조연이야. 산드라 블록은 FBI 멜리사 맥카시는 형사인데, 둘다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엄청 능력이 있다. 산드라 블록의 윗자리가 비게 되어있어서 누군가 승진할 상황, 그 누구보다 잡아넣은 범인이 많았던 산드라 블록은 당연히 자신이 승진할 거라 생각하지만, 팀장은 그녀에게 다른 사건을 더 해결해야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직원들이 너를 싫어해' 라고 말한다. 다른 직원들은 전부 남자였는데, 이 똑똑하고 범인 잘 잡는 요원을 다들 너무 싫어하는 거다.


멜리사 맥카시 역시 그 자리에서 계속해 최선을 다하면서 범인을 잡는데 열중하는데, 거기에서 그렇게 버티기 위해 그녀는 엄청 사나워졌다. 입만 열면 욕이고 상대가 서장이 됐든 누가 됐든 자기 할 말을 참지 않고 폭발시키는 여자.. 짱 멋진 형사인것인데, 그녀가 등장하는 첫장면에서 성매매를 하려던 남자를 붙잡는다. 그러자 남자가 봐달라면서 말하기를,


'아내가 다섯번째 아이를 낳아 밑에가 엉망이라 성매매 하러 온 것' 이라고 말하는 거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에 멜리사는 완전히 빡이 쳐가지고 차에서 내리라고 한 다음에 그의 고추를 태양에 달궈진 차 문에 가까이 밀어붙이면서, 그게 지금 니 아이 다섯 낳아준 아내에게 할 말이냐, 너도 다섯 낳았으니까 밑에가 망가져봐라, 이러는 거다. 아아-



영화속 마약단속반 요원 하나는 백색증인가 하는 병을 앓고 있어 피부가 몹시 창백하다. 그런데 이 남자의 여성혐오는 대단해서, 그녀들을 마주칠때마다 '여자라는 이유로' 엄청 비난하고 욕하고 얼평을 하고... 그러자 멜리사가 그에게 그의 피부 상태로 놀려댄다. 그때 그 남자가 그러는 거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랬단 말이야'


라고. 이건 꽤 상징적인 대사다. 당연히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그 병의 자신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었던 만큼 그에 대해 약올리면 안된다. 그것을 놀림감으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게, 세상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다가 나 역시 멜리사가 그 남자의 병에 대해 놀리는 게 좀 불편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그 남자의 항의,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는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여자는?

여자도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는데?

내가 선택한 거 아니야.

뱃속에서 '나는 여자로 태어나겠어'라는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그런데 왜,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앓게된 병'으로 자신을 놀리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태어날 때부터 여성인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함부로 말하고 비하하는 거지? 왜 그건 가능하다고 생각해???



결국 여성혐오를 일삼던 이 요원은 다른 사람의 총에 맞아 죽는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여자가 아니라, 자신과 항상 함께 다니는 남자 동료의 총에 맞는 것.



영화속에서는 수시로 여성비하를 보여준다. 외모로, 나이든 걸로 후려쳐지는 장면들이 나오는 것. 이 잘나고 똑똑한 여자들이 자신들이 속한 조직 내에서 한단계 한단계 밟아 위로 올라가려는 것은 몹시도 힘든 일이다. 배제되고 무시당하고... 아무리 똑똑해도 그렇다.


물론 그녀들의 선택이 매순간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들도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실수나 잘못된 선택은 그녀들이 '여자여서'가 아니라 그녀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들도 '인간이기에' 실수하는 것처럼, 그녀들 역시 마찬가지. 영화는 여성 두 명을 내세워 그동안 여자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또 여자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해낸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툭탁툭탁하던 여자들이 자매가 된다. 여성 서사를 보는 것도 즐거운데, 자매라는 말까지 등장하다니! 얼쑤. 시종일관 웃으면서 봤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았는데, 여자들은 계속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이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계속 말하고 있었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진 다양한 여성들이 한 데 모였으며 그걸 우리가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큰 계획을 빈틈없이 짜내는 것도,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도, 뭔가 보기만 하면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도,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하는 것도 죄다 여자들의 역할인 것이다. 게다가 사실 딱히 좋은 역할도 아니야. 도둑 아닌가! 영화속에서는 '범죄자가 되고 싶은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이걸 잘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는 '스컬리 효과' 생각도 났다. 《엑스 파일》의 스컬리 덕에 많은 여성들이 이공계로 진출하고 또 이공계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것.


'도둑이 돼라'고 말할 순 없지만 (ㅎㅎ) 컴퓨터 해킹하고 뭔가 천재아니야? 하는 그 모든 역할들을 여성들이 해내는 걸 보는 건 진짜 짜릿했다. 막판에 역시 이 영화속에서도 여성에게 필요한 여성친구에 대해 언급하고. 또한 모두 여성멤버인데, 남자 한 명을 멤버로 넣을까 하는 케이트 블란쳇의 제안에 산드라 블록은 싫다고 한다.



'남자가 끼면 일이 복잡해져'



저건 사실 원래 저런 뜻이 아니라 번역이 지나치게 축소된 면이 있다는데, 그동안 숱하게 여자들이 들어왔던 말이라 유독 기억에 남는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안이 철저한 가운데 목걸이를 훔쳐야하는데, 그 때 빨간 보안선 사이사이를 남자에게 부탁해 지나가게 한다. 일전에 《앤트랩먼트》란 영화에서 '캐서린 제타존스'가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연출했던 바로 그 장면. 그 장면을 남자가 하는 거다.



히트도 그렇고 오션스8도 찾아보면 진짜 재미없다는 평들도 있다. 당연하다. 그 어떤 영화라도 모두의 감상이 같을 수는 없는 거니까. 물론 거기엔 익숙하지 않은 여성서사에 무조건 화부터 내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터.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더 많은 여성서사가 보여지기를 원한다.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서사들 속의 여자들이 모두다 완벽하고 능력 캡짱일 필요는 없다. 또한 그 모든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 역시, 작품성이 대단히 높은 것만 만들어낼 필요도 없고. 여태까지의 다른 모든 영화들이 단순히 지저분한 농담을 하기도 했고 작품성이 뛰어나기도 했고 욕을 먹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던 것처럼, 여성서사에 대해서도 그러기를 원한다. 잘 만들어지거나 못 만들어지거나. 여자도 그저 인간일 뿐이니까. 계속해서 만들다보면 점점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뭐 남자들 가득한 영화를 보면 딱히 그런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좀 더 많이 어른 여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보여지기를 원한다. 영화속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그러니까 유령 잡는 여자 같은!!- 보여지기를 원해. 그리고 현실속에서도 마찬가지. 정치인에, 법조인에, 언론인에, 예술인에. 지금보다 더 많은 어른 여자들이 보여서, 오션스8을 보며 '천재다!'감탄했을 때 그 모습이 여자였던 것처럼, 어떤 역할이든 여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나는 유령을 잡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판사도 될 수 있고 영화감독도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자연스레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이번 선거에 아예 투표를 안하려고 하셨었다. 그러나 내가 설득했고 (사실 냉면으로 꼬신 감도 없지 않지만...), 그렇게 두 분 다 모두 투표를 하셨다. 그리고 오늘. 엄마가 '신지예 득표율 어떻게 됐냐' 물으시더라. 그렇게 어제의 선거에 대해 얘기하다 '경기도에 기권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까지 하게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와의 대화.





엄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침부터 괜히 찡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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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6-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읽었는데... 연애 부분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다락방 2018-06-15 08:46   좋아요 0 | URL
우리는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부분을 기억하게 되어있죠. 그건 아마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고 중점을 다른 데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것 같아요. 저는 그냥 뭐랄까, 저 장면이 너무 애틋했어요.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하고 말이지요... 휴.....

비공개 2018-06-14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되나요는 아는데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모르는 저를 반성합니다.... 오늘 알았으니 살포시 장바구니에 담아 보았답니다 ㅎㅎ 영화들은 언제볼지 모르지만 꼭 볼게요 ^^ 저는 다락방님과 대화가 잘통하는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요. 이런걸 모르는 사람들은 다락방님같은 친구가 없어서 그런거죠.

다락방 2018-06-15 08:47   좋아요 0 | URL
아이고 무슨 반성까지나! 아닙니다, 반성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읽은 책을 js 님이 안읽기도 하고 또 js 님이 읽은 책을 제가 미처 못읽기도 하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후훗. 우리는 책 아니어도 대화할 거리가 엄청 많잖아요. 만나면 언제나 수다수다 ^^ 고마운 친구!!

조만간 만나서 삼겹살 먹읍시다. 불끈!

블랙겟타 2018-06-1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오랜만에 글남겨요. ㅎㅎㅎ
저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여성서사가 보여졌으면 하네요.
음 재미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의 등장은 파이가 커지고 좋은 인력들이 투입된다면 앞으로 너 나올것이라고 보구요.
제 주위에 서울녹색당원분들이 있어서 소식을 조금이나마 접했었는데 비록 저는 서울시 투표권자는 아니지만 응원을 보냈습니다. ^^
결과도 ‘작은파란‘을 일으켰다고 생각이 들구요. 이번의 결과가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앞으로 기대가 되요 ㅎㅎ

다락방 2018-06-15 08:49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은 도대체 어째서 왜때문에 이렇게 뜨문뜨문 오시나요? 좀 자주자주 오시고 자주자주 글도 남겨주시고 자주자주 흔적도 보여주시고 그러면 네? 왓 어 뷰티풀 월드... 왓 어 뷰티풀 서재...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역시 우리나라 정치지형이 바뀌어야 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소수정당을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에게 투표 권유하면서도 ‘소수의 말도 우리는 들어봐야 해‘ 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정치지형이 발전되고 달라질 수 있도록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어요.


좋은 여성서사 있으면 우리 함께 나눠요!! >.< (아, 히트 추천합니다 ㅎㅎ)

clavis 2018-06-1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너무 좋네요 락방님글♡엄마하고 대화도 넘 힐링됩니다♥

다락방 2018-06-18 10:17   좋아요 1 | URL
히히. 오늘도 클래비스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니 기쁘고도 보람찬 하루입니다 ♡

이박사 2018-06-1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아 저도 읽었는데 어째서 긴장감 넘치던 소설로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언제고 다시 꼭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다락방 2018-06-18 10:18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잖아요. 제 경우엔 저거에 너무 꽂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상이 강하게 남는 것 같고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에 다시 읽을 책도 많고 새롭게 읽어야할 책도 많아서 과연 차례가 올지 모르겠어요. 후훗.

clavis 2018-06-18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락방님♥

다락방 2018-06-18 10:19   좋아요 1 | URL
아아... ♡ (수줍)

clavis 2018-06-1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오꺄오 다락방님 만만세♡♡
 















영화 《프로포즈》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스로 모시고 있는 비서이다. 여자는 회사에서 '마녀'라는 별명을 얻은 빡빡한 그리고 엄청 유능한 편집장이고. 그녀는 운동도 열심히하고 좋은 집에서 혼자 잘 살며 일에서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인다. 그러나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미국에서 비자 거절이 떨어지고 그렇게 미국이란 나라에서 쫓겨날 판이 된다. 여기에 이렇게 해놓은 게 많고 계속 하고 싶은데...  캐나다에 가서도 화상회의 등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지만 회사에서 '그건 안된다' 라고 한다. 쫓겨난 사람이 이곳의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자신의 말잘듣는 남자 비서에게 위장결혼을 명한다. 그렇게 되면 니가 원하는 책도 내줄거고, 하면서 너 좋고 나 좋자는 것. 남자도 이에 동의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 결혼이 여자쪽 사정이 급해 하게된 것이니만큼 여자에게 '나에게 청혼하라'고 말한다. 여자는 길바닥에서 어정쩡하게 무릎을 꿇고는 남자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남자는 수락하고.



이민국(맞나)에서는 이들 부부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는지, 위장결혼이 아닌지 심사하고 확인해야 한다. 여자는 이번 주말에 있을 남자의 할머니 생신 파티에 참석해 가족들과 같이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기로 한다. 남자의 고향인 알래스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도착해서도 마찬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고 갑자기 툭, 자신의 이야기를 던지는 중에 남자가 빨리 여자에게 답을 하지 않아 여자가 내 말을 들은건지 묻는다.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곱씹고 있었어요."



내가 너무 좋아했던 장면이다. 여자가 하는 말들을 그냥 흘려넘기는 게 아니라, 한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는 거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남자는 당연히 그 날의 대화를, 그 대화가 오고갈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곱씹었으니까'. 내가 잘하는 것. 곱씹고 나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물론 이 곱씹는 것은 누구와의 대화에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의 대화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람,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다정한 사람에게 발현되는 것. 남자는 스스로 저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소중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여자는 십대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서 잘 지내왔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능력있는 여성으로서 잘 지내왔다. 딱히 외로움이란 것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렇게 아마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집에 도착해 남자 가족들의 환대를 받고 그들과 소란스럽게 섞이면서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이런 게 가족이었지' 하게 되는 것. 남자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할머니도 모두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여자 역시 사랑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익숙하지 않은 관심과 오지랖에 처음엔 불편해하고 어색해 하다가, 시간이 흐르자 이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이 하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인지한다. 이것이 위장결혼임을 알 경우, 결혼 후에 이혼하게 될 경우, 남자의 가족들이 얼마나 상처받을지를 생각하면 이걸 더이상 진행할 수 없었던 것.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 중간즈음에 빻은 장면이 하나 나와서 좀 빡치긴 했지만("그녀 가방은 그녀가 혼자 들거예요, 그녀는 페미니스트거든요"),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다. 모든 가족들이 오지랖 대박이긴 하지만, 새롭게 맞아들이게 될 사람에게 사랑을 몰빵하는 게, 나는 그게 좋았다. 그러니까 여자는 지금처럼 혼자여도 계속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생겨서 더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만 '아 이런 것이었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러니까 가족이란 게 대체적으로 가장 신경쓰이게 하는 구성원들이긴 하지만, 어딘가에서 이렇게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 있기도 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좋았다. 게다가 여자가 '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고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좋았다. 그것은 자신의 그동안 삶이 외로웠다거나 고독했다거나 하는 걸 나타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혼자서도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니까.



여자의 말을 곱씹는 남자가 나오고, 가족 구성원을 사랑하는 가족이 나오는 이 로맨스 영화가 너무 좋았다. 역시 이런 영화를 남자들이 좀 많이 봐야하는데... 좋은 영화는 안보고 화장실 몰카나 쳐보고 있으니 원....






(위에 가방 너무 예쁘다... ㅜㅜ)



















토요일에는 창원에서 친구들이 올라와 함께 혜화시위에 갔었다. 시위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는 각자의 객실에서 잠을 청하려는데, 나랑 함께 자게된 친구는 검색어에 '가을의 전설'이 올라왔다며 지금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또 맥주를 따라서는 함께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때 본 적이 있었는데, 오래되어서인지, 삼형제가 모두 한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 브래드 피트가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여자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 등만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그 때 이 영화보고 브래드 피트 엄청 좋아했었는데...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와 나는 중간즈음부터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삼형제중 막내가 전쟁에서 죽고, 막내의 애인이었던 여자는 큰 형과 결혼한다. 마음은 둘째 브래드 피트에게 가있었는데 왜 이렇게 결정한거였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공무원(아마도?)의 아내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우울하다. 그런 와중에 브래드 피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아.................. 그 때의 슬픔. 슬픔의 새드니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둘째와 첫째의 사이는 안좋아서 사실 그동안 잘 안보고 살아왔는데, 여자는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브래드 피트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우연히 거리에서 브래드 피트 부부를 만나게 된다.


아아 이것이 이렇게, 이토록이나 가슴 아픈 영화였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브래드 피트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랑 행복한 걸 보는 건... 아 진짜...... ㅠㅠ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결혼은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해야 되는거야. 안그러면 나중에 이렇게나 후회하고 가슴 아프고 미쳐버린다니까 ㅠㅠㅠ


그런데 나쁜 놈들 때문에 브래드 피트의 아내가 죽게된다. 나는 아내를 잃고 오열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 순간, '아아 이제 여자와 다시 잘 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같은 생각을 했음을 고백한다...나는 브래드 피트의 아내가 아니라, 여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로하다가 다시 내게로 오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브래드 피트에게 다가가는 대신 죽음을 택한다.



죽음을 택할만큼 그녀는 불행했고 우울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죽음을 택하지 않는 쪽이 더 나았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데에야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마는, 나였다면, 살아서 계속 브래드 피트를 마주치는 쪽을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이라도 당신을 마주치는 것, 그리고 당신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내게도 그의 옆에 자리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 것. 그 희망이 절망이 될까봐 늘 전전긍긍 하면서도, 하루 또 하루, 그를 보면서 사는 쪽을 나는 택했을 것 같다. 종국엔 참지 못하고 먼저 연락을 취하기도 했을 것이다.



"당신 괜찮아?"

"잘 지내나요?"



그런 식으로 절망하는 그의 옆에서 그가 버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아니고 나는 그녀가 아니야.... 아무튼 이게 이렇게나 슬픈 영화였나, 다른 여자와 행복해 보이는 남자를 보는 여자가 되어, 나는 함께 우울해했고, 그러나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는 여자에게로부터 나는 분리되었다. 하지마, 그러지마, 하고 갑자기 그녀로부터 나는 빠져나온다. 나는 그의 옆에서 살고 싶다. 그가 없는 세상을 택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사랑인가...파워 오브 럽.








친구랑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어. 그러고보면 이 친구랑은 이런 시간을 종종 보내게 된다. 친구가 나의 여행 친구이기 때문에 같이 밤을 보낼 일이 종종 있고, 그러다보면 술 마시면서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제주도에서 노팅힐을 보기도 했지! 이런 순간들은 켜켜이 쌓여서 나중에도 돌이켜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어제는 아홉살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모, 2단부터 9단까지 외운 거 기억하는데 30분이나 걸렸어. 그런데 저녁에 피자랑 스파게티 먹었어. 엄마가 레몬에이드도 사줬어!



맛있는 거 먹고 씐나서 내게 막 전화를 한다. 아 너무 예뻐 너무 좋아. 나는 '나도 얼른 조카에게 맛있는 것 사주고 싶다, 맛있는 것 먹는 것 보고싶다' 하는 마음이 한가득이 되었다. 잠시후 남동생이 도착했는데 조카는 삼촌을 부르더니 "삼촌~ 보고싶어!!" 한다. 아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뻐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난 얘 진짜 너무 좋아 ㅠㅠㅠ



조카에게 바로 그 자리에서 맛있는 걸 사주진 못했지만, 나는 앞으로 조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토요일에 혜화시위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모였다. 시위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스태프가 돌아다니면서 말해주었다.


"현재 경찰 추산 2만명이래요!" 우리는 서서 환호했다.



잠시후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삭발식이 거행되었다. 삭발한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한 참여자는 '동생이 어린데 그 동생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울컥했다. 쓰는 지금도 울컥해. 나 역시 나보다 더 젊은, 어린 여자들을 위해서 그 자리에 갔다. 세상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야 내 어린 조카가 앞으로 살아가기 힘겹지 않을테니까. 아마 그 자리에 있는 여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피해받고 상처받아 우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보다 훨씬 어린 여자들을 위해서.




나 역시 반성할 게 많다. 어릴 때 그리고 최근 몇년 전까지도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수시로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그 때 내가 왜그렇게 빻았던걸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나 자신이 미워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수시로 든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자고 결심을 새로이한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나처럼 과거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되어 함께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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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1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드라불록이 주연했던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 혹시 아시나 모르겠어요. 제가 여러번 봤던(영어 공부를 위해서지만 ㅋㅋㅋㅋㅋ) 영화인데, 그 영화 내용이랑 <프로포즈>랑 무척 비슷하네요. 다른 점이라면 산드라 블록이 대가족의 ‘대가족 분위기‘를 엄청 부러워했다는거, 라고 할까요.
<프로포즈>의 능력있는 여성이, <당신이...>에서는 좀 신데렐라 느낌이 난다 할까요.
조금 뻔한것 같아도 저는 또 이런 따뜻한 영화가 좋더라구요.

어제부터 혜화역 집회 뉴스 찾아 읽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서로의 용기가 되어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가요.
우리...

다락방 2018-06-11 11:23   좋아요 1 | URL
저 그영화도 봤어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요. 이거 동생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형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영화죠? 그 뭣이냐, 기차표..판매원으로 나오고요? 아주 오래전에 봐서 기억은 희미하지만 저 그 영화 봤습니다 후훗.
제가 이 [프로포즈]를 넷플릭스로 봤는데요, 이거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로맨스 영화 봐야지 싶었는데, ‘비슷한 영화‘로 추천되는 걸 제가 거의 다 봤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제가 지금 다음에 볼 영화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산드라 블록은 [투 윅스 노티스]에서 ‘하버드 법대 졸업한‘ 여자로 나와요. 휴 그랜트였나, 너 어디 학교 나왔냐 물었더니 ‘하버드 법대‘ 라고 답하거든요. 짱멋짐. 저 그거 보고 너무 좋아서 아아 나도 하버드 법대를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누가 물을 때

˝나 하버드 법대 나왔는데?˝

하고 쿨하게 대답할 수 있을텐데....했었답니다. 왜 저는 하버드 법대를 못갔을까요, 단발머리님? 슬퍼요 ㅠㅠ


혜화시위는 실제로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 많은 여자들이 함께 앉아 소리친다는 게 진짜 의욕 뿜뿜 되더라고요. 다음에는 더 넓은 공간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에도 꼭 참석할 예정입니다!!
 
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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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부터 긴장감이 시작되어 내내 유지되는데, 그래서 다음장을 빨리 넘길 수밖에 없다. 한 번 손에 들면 내리 읽어낼 수밖에 없을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2. 동물원에서 총을 쏘고 다니는 이들 때문에 무서웠는데, 그들이 혹여라도 맹수 우리를 파손해 맹수들을 풀어낼까봐 그것도 두려웠다. 아, 진짜 밤에 읽기는 너무 안좋아. 나는 밤새 악몽을 꾸고 뒤척였어 ㅠㅠ 밤에 읽지 마세요 ㅠㅠㅠ


3. 긴장되고 흥미로운 채로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에 언급하지 않는 한 존재 때문에 좀 마음이 안좋았다. '나라면 달랐을까, 나라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존재 생각 때문에 책장을 덮고서도 계속 찜찜함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 존재는요?


제발 살아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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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다. 이름. 이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고 했던 시집의 제목이 연달아 떠올라, 그래,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으니 그 시를 읽자, 하고는 그 새벽에 불을 켜고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두었다. 지금 읽으면 잠이 깨고, 잠을 깨버리면 회사에 가서 몹시 힘들테니, 일단 꺼내두고 출근길에 읽자, 하고는 그냥 꺼내두기만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사실 다시 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도 안되었다. 그러니 눕자마자 울리는 알람소리가 얼마나 야속했는지.. 그래도 일어나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데워둔 뼈해장국을 퍼서는 밥을 말아 후르륵 먹었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있어서 좋았다. 아빠, 이번에 사온 뼈해장국에 우거지 많아서 너무 좋아, 말했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지하철에 타서 시집을 펼쳤다.



















어떤 페이지들의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과거에 읽으면서 내가 좋다고 접어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걸까. 내가 접어두었던 부분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이젠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접어두지 않았던 시들이 새로 들어왔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도, 내가 이 시집을 사서 처음 읽었을 때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저 그런 시였다. 내가 이 십을 꺼내 다시 읽기로 한 건, 어차피 그리운 이름 탓이었으니, 그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는 시를 읽어보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라는 문장은 좋지만, 그러나 나는 단 며칠 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미경은 자신의 소설 《아프리카의 별》에서 아침에 눈뜨면 생각나는 사람, 잠들기 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옳다. 그 말은 참이다. 그 말은 진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는 법. 며칠이 다 뭐람, 나는 오래오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먹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러할 것이다. 어떤 이름은 그 이름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새긴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고, 몇 달은 먹었고, 몇 해를 그리고 아마도 남은 내 삶을 통틀어 먹을 것이야. 새벽에 눈을 떠도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눈을 떠도 그럴 것이고. 며칠전 이마트에서는 감자를 봐도 당신의 이름을 떠올렸어. 요즘 여기는 감자가 너무 비싸대.


왜 지어다 며칠이고 몇날이고 먹을 수밖에 없는 이름인데 부를 순 없는걸까.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

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제

가 좋아한 여선배의 입속에도 머물다가 마른 저수지와 강

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

이며 편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

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

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

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디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

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곳으로 자꾸만 무언가를 보내고 싶어졌었지. 당신이 거기에 있으니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먹고, 그리고 당신의 입에도 무언가를 계속 계속 넣어주고 싶었지. 좋은것 맛있는 것을 보면 제일 먼저 내가 그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 아주 많은 것들을 보낼 수 있지만 또 아주 많은 것들을 보낼 수 없기도 했지. 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최근에 내가 찾아낸 내 인생 생태탕을 당신에게 보내고 싶어. 곤이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생태탕은 아주 맛이 좋아. 어쩌면 거기에서 당신이 들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스타벅스의 허니자몽블랙티도 아주 맛있어. 더운 여름이면 아이스로 주문해서 빨대를 꽂아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삼겹살 먹고싶네????????? 왜 내 의식의 흐름은 그리움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겹살 먹고싶지?????? 흐음..삼겹살 언제 먹지? 오늘은 안되고, 내일도 안되고, 일요일....어쩌면 일요일날 먹을 수 있나???


당신, 일요일에 와요, 삼겹살 사줄게요. 둘이서 사인분 먹자. 냉면과 된장찌개도 시키고. 그리고 배를 두드리며 잠들자.




아? 최근에는 양재동 어느 까페에서 오레오까페모카라는 걸 먹었거든? 여기는 벤티 사이즈 하나밖에 없는 곳인데, 까페모카위에 생크림 잔뜩 올리고 오레오 비스킷을 올려줘. 칼로리 폭탄이지! 이건 아마도 부담스럽다고 못먹겠다고 하겠지? 그러면 내가 먹을게 당신은 두 모금만 빨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 내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따 사먹으러 가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 의식의 흐름 자꾸 그리움에서 내가 먹는 걸로 가고 있다. 나여,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해....오레오까페모카 먹으러 가야징. 눈누난나.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며, 어느 날에는 당신도 우체통 앞에서 나에게 기별을 넣어주면 좋을텐데, 생각하고 어느 날에는 삼겹살을, 매운 족발을 생각해. (응?) 사실은 아나스타샤를 많이 생각해. 당신은 그레이가 아니지만 나는 왜 아나스타샤인가...내가 너무 아나스타샤를 닮아서이지.....  거기 아니야. 또 어디 간거야 대체.


돌아와, 얼른 돌아와.

컴백!




별의 평야



군장(軍裝)을 메고 금학산을 넘다보면 평야를 걷고 싶고

평야를 걷다보면 잠시 앉아 쉬고 싶고 앉아 쉬다보면 드러

눕고 싶었다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렸다





박준 시인의 어머니가 잘하는 짠지는 별모양인가봉가... 우리 엄마 오이지는 오이모양인데... 농담이고요.. 그러니까, 오래전에도 한 귀퉁이를 접어두었던 저 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저기,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리는 장면.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질 적에, 내 그리움도 쏟아졌다. 며칠전에는 날이 좋아, 볕이 좋고 빛이 좋아 일자산에 올랐는데, 그 때 갑자기, 별도 아닌 것이, 그러니까 그리움이라 이름 붙여질만한 것이 콱- 쏟아져내린 것이야. 나는 그갑자기 쏟아져내리는 그리움에 어떻게 대응할 줄을 몰라, 어, 여기서,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하고는, 그냥 울어버렸어. 산은, 혼자 울기에 좋아.


지난주에 강릉에서 밤길을 걸을 때는, 호텔까지 가려면 논을 지나야 했어. 밤의 논에서는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어댔지. 저기에도 개구리 저기에도 또 저기에도 개구리.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한다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 아마도 그 날, 그 밤에 아들손자며느리 개구리들이 다 모여서 노래를 했던 것 같아. 하늘엔 별이, 땅에는 개구리가, 내 가슴에는 그리움이 또 콱- 쏟아져내렸지. 그리움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언제든 나를 침범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

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

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

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

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

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

어 노랗게 말랐다




섹스에 있어서라면 나는 많은 로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두 개의 로망이 있었는데, 하나는 섹스를 끝내고 같이 누워 담배를 피는 거였다. 이건 내가 담배를 끊은지 한참 되어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게될 것 같고, 그리고 이 로망은 자연스레 소멸해버렸어. 더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담배..오랜만에 피면 어지러워.. 띵해.. 유후-  더이상은 이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리고 남은 하나의 로망은 평일 근무중에 점심시간 섹스다. 이걸 살면서 아직도 못해봤네. 그러니까 근무하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다다다닥 달려가서 후다닥 번개섹스를 하고 다다다닥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오후 일을 하는 것. 그러니까 오전의 나는 보통의 나였지만 오후의 나는 섹스하고 온 나다..이런 거 너무 하고 싶었는데, 한시간동안 그걸 할 엄두가 안난다. 그리고 굶을 수가 없으니까, 반드시 뭘 먹어야 하는데.... 한시간동안 언제 이동하고 먹고 섹스하고 다 하지? 먹는 걸 포기해야 할까.. 아무튼지간에 이 로망은 식지 않았고 사그러들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내가 앞으로 길게 직장생활 해봤자 몇 년이나 하려나... 해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길게 봐도 2-3 년일 것 같아. 나는 많은 로망들을 실현하며 살았지만 또 어떤 로망들은 실현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되는구나..



그것이 나의 인생....



이라기보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직장생활 아직 2-3년 더할거라면, 아직 시간은 있어! 최선을 다해! 빠샤!! 화이팅! 응원합니다. 누구를? 나를! 누가? 내가!!!




그런데 나는 오늘 왜 이런 글을 쓰고있는것인가....



떠나려는 그대를

나의 온 맘으로 잡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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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6-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의 평야>는 이 시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예요. 화자와 거의 똑같은 경험이 있거든요. 군장 메고 금학산 넘었던.

철원은 별이 정말정말 많아요. 많았어요.

다락방 2018-06-08 09:01   좋아요 0 | URL
처음에 저 시 읽었을 때 정말 누워있는 내 위로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장면이 그려져서 너무 좋았어요. 별 많이 있는 하늘 보고싶어요!

syo 2018-06-08 09:06   좋아요 0 | URL
농담 아니라 어떤 날은 정말 밤 하늘이 이렇게 밝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별 반 밤 반이었어요.

서울에서 기껏 몇 발짝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른가 싶었어요. 서울 하늘 개나 줘버려.....

개한테 다 주고 싶다. 개한테라면 뭐든지 주고 싶어♡

의식의 흐름 댓글.....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6-08 09:15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나는 개가 되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8-06-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겹살 먹고싶네????????? 왜 내 의식의 흐름은 그리움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겹살 먹고싶지?????? 흐음...

이 대목에서.. 빵.. 터지고. 문득 저도 삼겹살 먹고 싶다...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다락방 2018-06-08 13:4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래서 일요일에 먹어야겠다...생각했는데...어제 보쌈 먹었는데 일요일에 삼겹살 먹어도 되는걸까요? 내적갈등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늘 시간 너무 안가네요. 하루가 너무 길어요. 빨리 시간아 가라, 회사에서 나가고 싶다 엉엉 ㅠㅠ
남은 오후 잘 보냅시다, 비연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18-06-08 23:1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결국 오늘...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유자막걸리와 함께~

다락방 2018-06-11 08:1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주말동안 너무 잘 먹어서 월요일 아침 몸무게가 폭발했어요. 오늘부터 스파르타식 다이어트에 돌입해야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습니다. 엉엉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