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다. 이름. 이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고 했던 시집의 제목이 연달아 떠올라, 그래, 그리운 이름이 떠올랐으니 그 시를 읽자, 하고는 그 새벽에 불을 켜고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두었다. 지금 읽으면 잠이 깨고, 잠을 깨버리면 회사에 가서 몹시 힘들테니, 일단 꺼내두고 출근길에 읽자, 하고는 그냥 꺼내두기만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사실 다시 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도 안되었다. 그러니 눕자마자 울리는 알람소리가 얼마나 야속했는지.. 그래도 일어나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데워둔 뼈해장국을 퍼서는 밥을 말아 후르륵 먹었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있어서 좋았다. 아빠, 이번에 사온 뼈해장국에 우거지 많아서 너무 좋아, 말했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지하철에 타서 시집을 펼쳤다.
어떤 페이지들의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과거에 읽으면서 내가 좋다고 접어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걸까. 내가 접어두었던 부분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이젠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접어두지 않았던 시들이 새로 들어왔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도, 내가 이 시집을 사서 처음 읽었을 때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저 그런 시였다. 내가 이 십을 꺼내 다시 읽기로 한 건, 어차피 그리운 이름 탓이었으니, 그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는 시를 읽어보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라는 문장은 좋지만, 그러나 나는 단 며칠 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미경은 자신의 소설 《아프리카의 별》에서 아침에 눈뜨면 생각나는 사람, 잠들기 전에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옳다. 그 말은 참이다. 그 말은 진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는 법. 며칠이 다 뭐람, 나는 오래오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먹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러할 것이다. 어떤 이름은 그 이름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새긴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고, 몇 달은 먹었고, 몇 해를 그리고 아마도 남은 내 삶을 통틀어 먹을 것이야. 새벽에 눈을 떠도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눈을 떠도 그럴 것이고. 며칠전 이마트에서는 감자를 봐도 당신의 이름을 떠올렸어. 요즘 여기는 감자가 너무 비싸대.
왜 지어다 며칠이고 몇날이고 먹을 수밖에 없는 이름인데 부를 순 없는걸까.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
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제
가 좋아한 여선배의 입속에도 머물다가 마른 저수지와 강
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
이며 편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
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
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
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디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
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곳으로 자꾸만 무언가를 보내고 싶어졌었지. 당신이 거기에 있으니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먹고, 그리고 당신의 입에도 무언가를 계속 계속 넣어주고 싶었지. 좋은것 맛있는 것을 보면 제일 먼저 내가 그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 아주 많은 것들을 보낼 수 있지만 또 아주 많은 것들을 보낼 수 없기도 했지. 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최근에 내가 찾아낸 내 인생 생태탕을 당신에게 보내고 싶어. 곤이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생태탕은 아주 맛이 좋아. 어쩌면 거기에서 당신이 들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스타벅스의 허니자몽블랙티도 아주 맛있어. 더운 여름이면 아이스로 주문해서 빨대를 꽂아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삼겹살 먹고싶네????????? 왜 내 의식의 흐름은 그리움에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겹살 먹고싶지?????? 흐음..삼겹살 언제 먹지? 오늘은 안되고, 내일도 안되고, 일요일....어쩌면 일요일날 먹을 수 있나???
당신, 일요일에 와요, 삼겹살 사줄게요. 둘이서 사인분 먹자. 냉면과 된장찌개도 시키고. 그리고 배를 두드리며 잠들자.
아? 최근에는 양재동 어느 까페에서 오레오까페모카라는 걸 먹었거든? 여기는 벤티 사이즈 하나밖에 없는 곳인데, 까페모카위에 생크림 잔뜩 올리고 오레오 비스킷을 올려줘. 칼로리 폭탄이지! 이건 아마도 부담스럽다고 못먹겠다고 하겠지? 그러면 내가 먹을게 당신은 두 모금만 빨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 내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따 사먹으러 가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 의식의 흐름 자꾸 그리움에서 내가 먹는 걸로 가고 있다. 나여,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해....오레오까페모카 먹으러 가야징. 눈누난나.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며, 어느 날에는 당신도 우체통 앞에서 나에게 기별을 넣어주면 좋을텐데, 생각하고 어느 날에는 삼겹살을, 매운 족발을 생각해. (응?) 사실은 아나스타샤를 많이 생각해. 당신은 그레이가 아니지만 나는 왜 아나스타샤인가...내가 너무 아나스타샤를 닮아서이지..... 거기 아니야. 또 어디 간거야 대체.
돌아와, 얼른 돌아와.
컴백!
별의 평야
군장(軍裝)을 메고 금학산을 넘다보면 평야를 걷고 싶고
평야를 걷다보면 잠시 앉아 쉬고 싶고 앉아 쉬다보면 드러
눕고 싶었다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렸다
박준 시인의 어머니가 잘하는 짠지는 별모양인가봉가... 우리 엄마 오이지는 오이모양인데... 농담이고요.. 그러니까, 오래전에도 한 귀퉁이를 접어두었던 저 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저기,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리는 장면.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질 적에, 내 그리움도 쏟아졌다. 며칠전에는 날이 좋아, 볕이 좋고 빛이 좋아 일자산에 올랐는데, 그 때 갑자기, 별도 아닌 것이, 그러니까 그리움이라 이름 붙여질만한 것이 콱- 쏟아져내린 것이야. 나는 그갑자기 쏟아져내리는 그리움에 어떻게 대응할 줄을 몰라, 어, 여기서,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하고는, 그냥 울어버렸어. 산은, 혼자 울기에 좋아.
지난주에 강릉에서 밤길을 걸을 때는, 호텔까지 가려면 논을 지나야 했어. 밤의 논에서는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어댔지. 저기에도 개구리 저기에도 또 저기에도 개구리.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한다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 아마도 그 날, 그 밤에 아들손자며느리 개구리들이 다 모여서 노래를 했던 것 같아. 하늘엔 별이, 땅에는 개구리가, 내 가슴에는 그리움이 또 콱- 쏟아져내렸지. 그리움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언제든 나를 침범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
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
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
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
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
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
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
어 노랗게 말랐다
섹스에 있어서라면 나는 많은 로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두 개의 로망이 있었는데, 하나는 섹스를 끝내고 같이 누워 담배를 피는 거였다. 이건 내가 담배를 끊은지 한참 되어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게될 것 같고, 그리고 이 로망은 자연스레 소멸해버렸어. 더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담배..오랜만에 피면 어지러워.. 띵해.. 유후- 더이상은 이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리고 남은 하나의 로망은 평일 근무중에 점심시간 섹스다. 이걸 살면서 아직도 못해봤네. 그러니까 근무하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다다다닥 달려가서 후다닥 번개섹스를 하고 다다다닥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오후 일을 하는 것. 그러니까 오전의 나는 보통의 나였지만 오후의 나는 섹스하고 온 나다..이런 거 너무 하고 싶었는데, 한시간동안 그걸 할 엄두가 안난다. 그리고 굶을 수가 없으니까, 반드시 뭘 먹어야 하는데.... 한시간동안 언제 이동하고 먹고 섹스하고 다 하지? 먹는 걸 포기해야 할까.. 아무튼지간에 이 로망은 식지 않았고 사그러들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내가 앞으로 길게 직장생활 해봤자 몇 년이나 하려나... 해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길게 봐도 2-3 년일 것 같아. 나는 많은 로망들을 실현하며 살았지만 또 어떤 로망들은 실현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되는구나..
그것이 나의 인생....
이라기보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직장생활 아직 2-3년 더할거라면, 아직 시간은 있어! 최선을 다해! 빠샤!! 화이팅! 응원합니다. 누구를? 나를! 누가? 내가!!!
그런데 나는 오늘 왜 이런 글을 쓰고있는것인가....
떠나려는 그대를
나의 온 맘으로 잡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