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
매튜 퀵 지음, 정윤희.유향란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래도 영화가 더 좋을것 같지만 어쨌든 책 초반의 산만함은 뒤로 갈수록 정리된다. 감정이입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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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2-1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2월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3-02-14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2-15 09: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볼거에요! 희희.

moonnight 2013-02-1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꼭 봐야할텐데 흑흑 ㅠ_ㅠ

다락방 2013-02-18 14:18   좋아요 0 | URL
네네, 꼭 보세요, 문나잇님! 문나잇님이 저보다 더 좋아하실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여주인공 예쁘더라고요. 흑흑 ㅠㅠ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 상영전의 예고편을 보고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그런데 며칠전에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됐고, 그래서 부랴부랴 주문해서 읽었다. 영화가 너무 좋을것 같아서 그 전에 원작을 읽어두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이내 실망했다. 문장이 서투르고 산만했다. 흐음, 그냥 영화로만 볼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끝까지 다 읽고나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 표지에 쓰여져 있는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고 해야하나. 물론 이 문구는 연인을 의미하는 바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게 이 문구는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건 간에, 다른 사람들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책 속의 남자 팻은 그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또 그를 위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물론 그에게 다른 사랑도 찾아오고. 그 모든것들이 그를 결국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게 아닐까 싶었던거다.



팻은 최근 몇년간의 기억을 잃었다. 아내와 헤어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는 잠시동안 떨어져있기로한것 뿐' 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그 날이 오면 아내에게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팻의 아내는 팻과 헤어진후 재혼했고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도 받아낸 후다. 그녀에게는 그를 다시 만날 의도 따윈 전혀 없지만 팻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은 영화이며 그것은 반드시 해피엔딩이 되어야 한다는 팻에게 현실감각은 없다. 그래서 그는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했고 퇴원을 한 뒤에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어느 한 순간에 나는, 팻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팻은 자신의 모든 중심에 그녀를 둔다. 그녀가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 고 말해도 '나는 재혼했다'고 말해도 그는 자신과 그녀가 함께할 날이 곧 올거라고 믿는다. 지하철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내려서 걷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독하게' 사랑하는게 끔찍했다. 상대가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을 자신의 식대로 해석하는것도 끔찍했다. 이런 사랑을 상대는 결코 원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팻의 헤어진 아내였다면, 팻이 매순간 나를 그리워하고 기다릴거라는게 아주 징그러웠을것 같다. 아니라고 했잖아, 너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런데 왜그렇게 나를 너의 희망으로 삼는거니, 하면서. 그로부터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을것 같았다.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나를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러다가는 이내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팻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나 역시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도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상대는 나를 그리워하기는 커녕 단 한순간도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내 이 그리움은 무슨 소용일까 싶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책속의 티파니는 헤어진 아내를 기다리는 팻을 사랑한다. 팻의 좋은 친구로 남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 팻이 헤어진 아내의 이름을 내뱉을 때 쿡쿡 찔리는 마음. 이 모든것에 대해 생각하다 나 역시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건 아닐까, 내가 만든 영화속의 해피엔딩을 기다리기만 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정할건 인정해요. 우린 둘 다 현실에서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사람들이란 걸. (p.383)





이 책속의 팻은 해피엔딩이 아닌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체 왜 문학수업시간에 '실비아 플러스'의 『벨자』를 학생들에게 읽게 하는지 알 수 없어한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을 개떡같다고 생각한다. 이런식으로 팻이 읽는 책이 계속 언급되는데, 그 중에서도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를 읽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오늘 장바구니에 『주홍 글자』를 넣고 또 한박스를 결제했다. 주홍 글자는 내가 십수년전에 읽었었는데 상세한 내용이 전혀 기억나질 않는 상황이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었다면 팻이 하는 말에 공감하며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허클베리핀의 모험』도 읽고싶어졌는데 이건 이미 사둔지 오래. 꺼내 읽기만 하면 된다. 












팻은 영문학 교사인 전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왜 아이들에게 비극적인 문학을 가르치냐고 언급했었고, 이에 그의 아내는 이렇게 답장한다.



학생들이 미국 문학의 우울한 특성에 대해 투덜거릴 때마다 해주는 말이 있어. 인생은 기분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실제 인생은 안 좋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우리 결혼처럼 말이야. 팻, 당신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 주고 싶어. 문학은 이런 현실을 기록하려고 노력하지. 그걸 통해 어려운 현실을 씩씩하게 버텨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거야. (p.315)



책 속에서 또다른 책을 만나는 것은 기쁨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 안에 여러가지 책을 꼭 언급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는 책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또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 근사하지 않은가. 지금 당장 주홍 글자를 읽어보고 싶어서 몸이 배배 꼬인다.





발렌타인데이라고 회사 직원들이 저마다 초콜렛을 챙겨줬다. 나는 이놈의 초콜렛을 이 날만 엄청나게 먹어대는게 별로 마음에 들질 않아 그동안 다른걸 준비했었다. 이를테면 도넛츠라든가 빵이라든가 하는것들. 그런데 이번에는 시집을 준비했다. 직원들에게 다 주려고 하다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캬라멜마끼아또를 한잔씩 돌린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에 초콜렛까지 얹어서 돌린다고 생각하면 나오는 금액이려니, 하고 두 눈 딱- 감고 준비했다. 

















사실 여러권의 시집을 사서 각자 다른 시집을 나누어주고 다 읽으면 바꿔 읽으라고 하려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돌려읽기를 할 것 같지가 않아, 그렇다면 모두에게 반드시 읽게 하고 싶은 시집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이 시집으로 결정했다. 발렌타인 데이라고 주기엔 좀 뭣하지만 그래도 뿌듯하다. 아직 배송되어 오질 않아 나누어주고 있질 못하지만 이 시집을 들고 각자 퇴근길에 읽을거란 생각을 하니 좋다. 상무님도 부장님도 읽겠지. 대리도 사원도 읽겠지. 맨 마지막에 실린 시를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읽어낼까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나로 하여금 보고 싶게 만들었던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예고편.






그리고 오늘 내가 아침부터 자꾸만 흥얼거리는 노래,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 이건 내가 며칠전부터 혼자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오늘 자꾸 생각났다.







흐음. 시집...할부로 살 걸 그랬나. 괜히 일시불로 결제했나. 청구서 나올 생각을 하니 조금 속이 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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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3-02-1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이라니...!! 역시 멋진 내 친구 다락방♡




다락방 2013-02-14 16:19   좋아요 0 | URL
주문할 때는 멋진 다락방, 카드 청구서 받을 때는 찌질한 다락방 orz

뷰리풀말미잘 2013-02-1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요즘 누가 시집을 읽는다고.. 아까워... ㅠ

다락방 2013-02-14 16:29   좋아요 0 | URL
나 지금 돈 ㅈㄹ 한건가...요? orz

비연 2013-02-1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렌타인 데이에 시집이라니! 정말 넘 멋지세요~

다락방 2013-02-14 16:29   좋아요 0 | URL
통장 잔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멋진척한것 같아요. 흐미.. ㅠㅠ

댈러웨이 2013-02-14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다 한 줄 댓글이네요! 송경동? 안녕, 다락방님!

다락방 2013-02-14 16:52   좋아요 0 | URL
어! 진짜 그러네요? 제 댓글도 한 줄이고. 댈러웨이님도 안녕? :)

다다 2013-02-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어쩜 페이퍼마다 이렇게 주옥같이 멋지죠?
락방님 페이퍼는 대충대충 안읽고 늘 한자 한자 또박또박 읽게돼요.
스크롤바도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는데, 발렌타인데이 선물로 시집을 준비했다길래, 뭘까? 엄청 궁금해서
스크롤바를 딱 내렸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 웃었네요. 네, 제게도 좋은 시집인데요. 불온(편)함(?)을 선물하는 다락방님이라니..
서운한 마음에 영화 <사랑을 놓치다> 타이틀 곡 {사랑이라는 흔한 말} 들었어요?
울 다락방님을 머시그리 서운하게 했누?
오 이 노래 제 18번 중 하나예욧. 지금 노래방(업장)인데 한번 불러볼까해요. 들려드릴 수는 없네요.ㅜ

다락방 2013-02-14 17:30   좋아요 0 | URL
우희희희희. 앞으로도 또박또박 읽어요, 소금꽃님. 내가 더 주옥같은 글을 쓰도록 해볼게요. 뭐, 이게 말로 뱉어놓는다고 다 되는건 아니지만 ㅠㅠ

그니까요. 발렌타인데이라고 사랑이 몽글몽글한 시집을 선물할까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노동자이니까 노동자의 마음으로 모두 필독, 하는 생각으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이라는 흔한 말]은 제가 페이퍼에 링크도 했죠. 그 노래는 그 영화에 삽입되기 전부터 알던 노래였어요. 그 노래에서 페이퍼 제목 가져온 거에요. 혼자 서운한 마음에~ ㅎㅎ 소금꽃님 노래 잘해요? 노래 잘하는 남자사람은 짱 멋진데!! ㅎㅎㅎ

다다 2013-02-14 17:49   좋아요 0 | URL
노래는 잘..그 때 그 때 달라요. 곡에 따라 달라요. ㅋㅋ

blanca 2013-02-1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원들에게 시집을 선물하는 여자! 아, 너무 근사해요.

다락방 2013-02-14 17:31   좋아요 0 | URL
근사하기 위해서 찌질한 삶을 살아야 해요. 카드값 ㅠㅠ

Mephistopheles 2013-02-1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 살 돈을 모아서 노트북을 지르셨어야지요.

다락방 2013-02-15 09:2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강변역에서 지하철 기다릴때마다 도시바 울트라북 광고를 보게되는데 그거 한 번 검색해봐야겠어요. 전 맥북 사기 싫고 삼성 놋북도 사기 싫으니 도시바로..흐음. 그런데 비쌀까요? ㅠㅠ

Mephistopheles 2013-02-17 00:22   좋아요 0 | URL
도시바 놋북은 저가형이 제법 많긴한데......울트라북은 아주 싸진 않을 꺼에요..
AS가 문제긴 한데 다락방님 주변에 굉장히 가까히 서비스센터가 있으니 그건 큰 문제가 안될 것 같네요.

감은빛 2013-02-1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용기 있는 분이시군요.
송경동 선배의 시집을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선물하시다니!
제가 다음에 경동 선배 만나면 얘기할게요.
바쁘신 양반이라 언제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실버라이닝이란 그룹이 있었어요.
지금은 활동을 안하는 듯 하지만,
비폭력, 평화를 지향하는 힙합 음악을 하는 그룹이예요.
주로 거리 공연을 했고, 문화제나 집회에서도 자주 공연했어요.
박하재홍이라는 랩퍼가 멋진 랩을 들려줬고,
주변의 여성활동가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던 게 기억나요.

지하철 역에서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눈에 들어오는 광고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실버라이닝'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을 때,
저 그룹이 생각났어요.
박하재홍씨가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떠나고, 지금은 제주에 정착한 걸로 아는데,
그 실버라이닝이 왜 지금 지하철역 광고에 나오는 걸까?
알고보니 이 영화였군요.
책은 저도 일단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

다락방 2013-02-18 14:26   좋아요 0 | URL
음, 저는 제가 용기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말이죠, 금요일에 차장님 한 분이 저한테 불건전한 책을 줬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책 읽기 싫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제가 '노동자가 노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불편하다고 하면 어쩝니까?' 라고 되물었지만, 이 책 다른 책으로 바꿔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불편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일줄을 몰랐는데, 그래, 이게 용기있는 선택이었구나, 뭐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아직 말씀이 없으신데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실지 원..


이러나저러나 다음 발렌타인데이에도 용기를 내어 시집을 선물해야겠어요. 초콜렛을 팔아주는 것 보다는 이만오천배쯤 낫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감은빛님?

2013-02-15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5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13-02-1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다락방님? 다락방님 글을 읽으면서 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을 듣다가 참지 못하고 이상의 「봉별기」를 주문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 마음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요. 다락방님은 꽉 찬 보석상자를 가지고 살아갈 것 같아요. 늦었지만 새해 복 듬뿍 받아요~~

다락방 2013-02-18 14:28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게 얼마만입니까, 섬사이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렇듯 오랜만에 뵙게 되니 반갑네요. 갑자기 저도 가을방학의 이브나 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그리움이 보석처럼 빛난다는 말씀이 제게 무척 위로가 돼요, 섬사이님.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에 스스로 안심이 되고 말이지요. 반가운 섬사이님, 고맙습니다. :)
 

요즘 대형서점이 체인이 아닌 동네서점은 희귀했다. 그만큼 북스앤컴퍼니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서점이었다. 순수문학 소설, 베스트셀러 대중소설, 요리책, 어린이책 등을 적당히 구비하고 있는 동네서점의 전형이었다. 서점 쇼윈도에는 몇 주 전부터 점원을 구한다는 글이 나붙어 있었다. (p.347)


이 책속의 데이비드는 작가로서 크게 이름을 날리다가 한순간에 추락했다. 그래서 그는 로스앤젤레스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로 잠시 몸을 피한다. 명예를 잃어 작가로서 일을 할 수도 없고 가진 돈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서점의 점원이 된다.


이튿날부터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혼자 서점을 돌봤다. 카운터를 보고,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게 도왔다. 서점 뒤쪽에 있는 사무실에서 주문과 재고를 확인했다. 바닥을 닦고, 먼지를 털어내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돈을 세고, 저녁마다 은행에 입금했다. 매일 한두 시간씩 금전등록기 뒤에서 책을 읽었다.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평일에는 소수의 지역 주민들이 가끔 들러 책구경을 할 뿐이었다. 그나마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이 별장으로 몰려오는 주말에는 조금 바빴다. 그래도 일이 딱히 고되지는 않았다. 메러디스 주민들은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p.351)
















요즘 내가 직장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일까. 데이비드가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동네서점이 아주 매력적인 직장으로 내게 다가왔다. 게다가 그가 서점에서 하는 일을 보라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카운터를 보는 일이라면 나는 이미 편의점에서 몇년을 경험해본바 있고 그때 발주와 재고를 관리해본 적도 있으니 서점의 주문과 재고를 관리하는 일도 문제 없다. 그뿐인가. 나는 내 방 청소는 안할지언정 업무적으로는 아주 박박 청소도 잘한다. 그곳이 화장실이든 어디든 말해 무엇하랴. 꽤 성실하게 근무하며 꼬박꼬박 은행에 입금하는 것도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아, 이곳은 정녕 꿈의 직장이 아닌가. 소수의 지역 주민들만 들른다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들고,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내가 근무하게 된다면 그들 모두를 단골로 만들어버릴게 뻔하지만(!!), 정말이지 북스앤컴퍼니는 지상 낙원이 아닌가!


그런데 그가 그 서점을 관둬야하는 상황이 됐다.


"서점에서 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요."

"그럴 것 같습니다."

"오늘 내일, 이틀은 괜찮아요. 일을 그만두기 전에 보름은 더 다녀야 하는 규정에 대해 알고 있죠? 그건 반드시 지켜주세요. 새 사람을 구할 때까지요."

"네, 걱정 마세요." (p.418)


아! 북스앤컴퍼니는 이제 사람을 새로 뽑아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직장을 관두고 싶다. 이때야말로 내가 책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내가 갈게, 내가 가서 일할게. 나는 좀처럼 그만두는 일도 없을거야. 내가 가면 책이 예전보다 훨씬 많이 팔려서 사장님도 깜짝 놀라게 될거야. 나같은 인재를 구하게 된 걸 신의 축복이라 여기게 될거야. 내가 갈게, 내가 가서 거기서 일할게. 아, 나는 책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현실로 돌아와 지금 동네 서점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끔찍했다. 장사가 안될것 같아 끔찍한게 아니라 하루종일 문제집이나 팔고 있을것 같아서 끔찍했다. 내가 일하는 작은 서점의 절반 이상을 문제집이 차지할거라고 생각하니 울적해졌다. 내가 그리는 북스앤컴퍼니의 분위기를 한국에서는 도저히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슬퍼라..나는 메러디스로 가고 싶다. 메러디스로 가서 북스앤컴퍼니에서 일하고 싶다. ㅠㅠ


내가 살면서 언젠가는 작은 서점에 근무하게 될 날이 올까. 어쩌면 올지도 모른다. 미래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것, 이라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그랬다.



















「그 남자한테 일어난 일은 이런 겁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사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아직 골격만 있었죠. 그때 빔인가 뭔가 하는 게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 플릿그래프트 앞의 보도를 박살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플릿크래프트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어요. 깨진 보도 조각이 튀어 올라 뺨을 강타했을 뿐이죠. 피부만 약간 까진 건데도 나와 만났을 때까지 흉터가 있더군요.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흉터를 손가락으로‥‥‥뭐랄까 사랑스럽다는 듯이 ‥‥‥만졌습니다. 플릿크래프트는 당연히 머리가 쭈뼛 섰지만, 경악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플릿크래프트는(아니 근데 이름이 왜이렇게 어려워 완전 엑스트란데 -_-) 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변 화녕에 맞추어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 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p.85)



이 책은 책 전체의 내용보다 잠깐 언급된 이 이야기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조셉 고든 래빗'이 주연한 영화 『50/50』도 생각나고. 더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정해진 규칙을 다 따르고 지내도 빔이 떨어지기도 하고 암에 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것일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이니 내가 원하는걸 가급적 많이 하면서 이 유한한 삶을 즐겨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대로 계속 사는게 맞는걸까. 내가 원하는 책을 사서 읽고 싶고, 내가 원할때마다 술과 고기를 즐기고 싶으니 돈은 벌어야 한다. 나는 누군가가 사주는 걸로 연명하며 지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즐기기 위해서 기꺼이 내 돈을 지불하고 싶다. 그런데 이 직장은 내게 너무나 자주 우울함을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뛰쳐나가는게 옳은가. 아, 제기랄. 내 현실의 아주 가까이에 북스앤컴퍼니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아주 예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나질 않는구나.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다이하드』에서 맥클레인의 아들로 나온 남자를 보면서, 아..저 남자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지, 하고 계속 갸웃하다가 영화가 끝난 후 검색해보니 오, 『잭 리쳐』의 나쁜놈이었다. 그렇군. 브루스 윌리스 아저씨는 참 멋지다. 아 정말좋아. 『문라이즈 킹덤』에서도 브루스 윌리스가 제일 멋졌는데 영화 자체는 뭐 딱히 좋진 않았다. 난 내가 되게 좋아할 줄 알았고 그래서 예고편 보고 개봉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흐음. 그런데 그저 그랬다.




오늘 출근 준비를 하며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제니퍼 로페즈의 brave 가 흘러나왔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일하는것도 생각해봤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서 ... 패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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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02-1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스앤컴퍼니에서 일하고 싶어요! >.< (다락님은 내 라이벌 ^^;;)
다이 하드 저도 설날 저녁에 봤어요. 브루스 윌리스 아저씨 정말 관리 잘 했죠? 몸매가 ㄷㄷㄷ. 아들로 나온 사람 잭 리쳐에 나왔었군요. 첨 봤다고 생각했는데. -_-;;;;;;;; 좌우지간, 다이 하드 너무 재미있어요. ㅎㅎ

다락방 2013-02-14 16:2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우리 라이벌하지 말고 직장동료 합시다. 우리 함께 일해요. 교대로 일해도 좋고요. 일주일에 절반씩 나누어 일해도 좋고요. 서점이니만큼 일요일도 해야하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사이좋게 나눠서 일해도 좋을것 같아요. 서로 휴가 쓰고 싶을 땐 휴가도 써가면서요. 아, 좋다..

브루스 윌리스는 진짜 짱이에요. 많이 늙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멋져요!! 흑흑. 최고최고최고최고!!

2013-02-13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4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3-02-1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딱 내 생각을 글로 접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는 말을 하는군요 ㅋㅋㅋ

다락방 2013-02-14 16:22   좋아요 0 | URL
오, 뽀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ㅎㅎ
이놈의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지금은 대안이 없네요. 능력도 없고. orz

가연 2013-02-1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더글라스 케네디가 쓴 책들 재미있어요? 자꾸 빅픽처랑 템테이션이 눈에 밟혀서..ㅎㅎㅎ

이건 여담인데 알라딘 중고서점은 정말 사람 많이 오더군요ㅎ 저 한 번 강남점 가봤잖아요, 괜찮던데요? 풋.

많이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ㅠㅠㅠ

다락방 2013-02-14 17:49   좋아요 0 | URL
엄청 잘 읽혀요. 책장이 휘리리릭 잘도 넘어가죠.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낼 수 있어요. 재미도 있죠. 흥미롭기도 하고. 헐리우드 영화 한 편 보는 느낌이에요. 재미 면에서라면 읽어보셔도 좋을듯. 눈에 밟히면 참지 말고 읽어버려욧!
저도 강남점 가봤는데 종로점을 가장 먼저 가봤기 때문인지 강남점에는 딱히 정이 안가더라고요. ㅎㅎ

아니, 가연님. 우리 새해 인사 주고 받은것 같은데...아닌가요? 여튼 가연님도 해피 뉴 이어!!

2013-02-13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5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3-02-1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동네서점 괜찮은데요, 도서관에서도 알바 구했음 좋겠네요. 사실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요. 요즘엔 도서관도 항상 북적북적 하더라구요. 알라딘 중고 서점은 사람 많아 패스!!에서 아침부터 웃었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3-02-15 09:28   좋아요 0 | URL
그치요, 단발머리님. 도서관에서 일하면 어쩐지 책을 읽지 못할것 같아요. 사람이 많지 않을까...시골 도서관이라면 괜찮을까요?

금요일이에요, 단발머리님. 금요일이란 사실이 제게는 아주 힘이 됩니다. 므흣. 단발머리님도 금요일 잘 보내세요!!

댈러웨이 2013-02-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셰익스피어앤컴퍼니에서 오어 스쿨오브라이프에서. 함께 지원함 다락방님은 이뻐서 저는 랭귀지가 되서 같이 붙겠다요. :)

다락방 2013-02-15 09:29   좋아요 0 | URL
므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랭귀지가 되는 댈러웨이님 너무 멋져요! 전 랭귀지 되는 사람들이 무척 존경스럽고 부러워요. 시간을 과거로 돌려 전공을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꼭 외국어로 선택할거에요. 물론 선택만 한다고 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공부를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orz

BRINY 2013-02-1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엄마랑 노팅힐 영화를 보는데, 엄마가 '저 서점 적자라면서 저 남자는 왜 맨날 빈둥거리고 다니냐?'라고 했던게 기억납니다.

다락방 2013-02-15 09: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네요. 그러고보니 그 영화에서 그 남자 빈둥거렸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님 매우 날카로우신데요?!
 
[100자평] 아빠를 키우는 아이
아빠를 키우는 아이 - 아빠 육아, 이 커다란 행운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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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처음 아이를 낳고 힘들어했을 때 여동생을 둘러싼 주변 어른들은 '옛날 사람들은 열명을 낳고도 잘 살았는데 너는 유독 왜그러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 이렇게 폭력적인 말이 어딨을까. 누군가가 힘들게 잘 견뎌왔다면 나 역시 묵묵하게 그 일을 견뎌야 하는걸까. 힘들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고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위기의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놀랍게도 그건 나이든 어른들만의 반응은 아니었다. 여성과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젊은 남자들조차도 양육이란 이름 앞에서는 엄마의 '희생'을, '모성'이란 것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했다. 아니, 다른 남자들이야 그런다고 해도 저 남자는 저렇게 반응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싶은 남자들조차도 예외없이 아이에게 붙들려서 자신을 포기한 엄마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다치거나 울게 됐을 때 '애 엄마는 뭐하고'가 먼저 나왔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두고 여행을 가서도 안되고, 퇴근후에 약속을 잡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젊은 아빠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순간 이 세상은 아이들 엄마에게 지옥 같았다.


이 책에서의 아빠는 아이를 본인이 직접 키우기로 한다. 아빠로서 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자 한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사이 아빠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놀이터를 함께 가고 박물관을 함께 간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 그동안 그가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유모차를 밀고 들어갈 수 있도록 버스의 낮은턱이 눈에 띄고, 남자 화장실의 기저귀 갈아주는 시설이 눈에 띈다. 그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물론 그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당장 그의 부모로부터도 또 아내의 부모로부터도 게다가 동네 아주머니들로부터도 불편하고 딱한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 내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하려해도 그런 시선들을 견뎌내는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은 단지 그 사람의 관점일 뿐이다. 지지하는 시선, 낮추어보는 시선, 관심 없는 시선, 호기심어린 시선등 다양한 시선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왜 그동안 우호적인 시선만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좋은 말만 기다리다 보니 다른 말을 들으면 불편했다. (p.45)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화장실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시간을 아이를 위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 이 모든것들이 엄마들에게 당연하게 돌아간다는 것도 그는 깨닫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빠들은 실질적으로 수혜자가 된다는 사실도.



슈퍼맘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슈퍼맘 신화는 엄마의 책임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육아문제를 엄마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겼다. 슈퍼맘이 될 수 없는 엄마들은 아이에 대한 죄의식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죄의식을 보상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값비싼 물건을 안겨주려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죄의식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엄마들의 책임이 늘면 상대적으로 책임이 줄어드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엄마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남편이다. 만약 토요일에 아내가 서령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밖에 나가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편안하고 좋은 일이다. 서령이가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테고 나는 그 틈에 여유로운 토요일을 보내겠지. 하지만 아내는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훌쩍 날아가는 셈이다. (p.270)



언어는 단지 문장 그 자체의 사전적인 의미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말을 할 때 취했던 행동과 마음속으로 가졌던 감정까지 함께 전해진다. (p.175) 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단순히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 아빠는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줄 알게 되었고 세상의 엄마들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힘들겠지, 하고 막연히 추측하는게 아니라 무엇이 힘든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의 몸이 자라는 순간순간 아빠의 생각 역시 자라고 있었다. 성장은 아이만 하는게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아빠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은 얼마나 적절한가. 



대체적으로 이 책을 좋은 마음으로 읽어내기는 했지만, 육아에 대해서만큼은 정답이 없는거겠지, 나는 몇몇 부분들이 불편했다. 그 중 가장 불편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때로는 선생님처럼 우리들을 혼내기도 한다. 건조대에 널브러진 서령이 손수건을 보고 아내가 "널려면 잘 널어야지"라며 내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서령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한테 화내지마!"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엄마 혼내줄거야"라며 엄마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엄마 혼자 여기있어" 라면서 엄마를 방에 혼자 두었다. (p.165)


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있고 고작 네 살이다. 그런데 혼낸다며 방 안에 '혼자두는'것을 알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혼낼 때 방 안에 그 아이를 혼자 두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했다. 그건 어쩐지 아닌것 같았다. 불편했다. 이 얘기를 여동생에게 했더니 아이들을 교육할 때 '생각의자' 라는게 있어서 거기에 앉아 잘못한게 무언지 생각하게 하는 과정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 자기도 배운지 오래되어서 그게 몇 살부터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그래서 나는 여동생에게 나도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어느 책에서 봐서 알긴 아는데, 그 어린 아기를 혼자 두는 방법으로 혼낸다는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책에 써두는 이 아빠를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도 효과가 있는 방법(?) 이라는 걸까?  다른 부모(어른)들에게는 이게 별로 안불편한가? 나는 아직 아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불편한건가? 그렇지만 이 방법은 나는 어른에게도 사용하기 좀 꺼려지는 방법인 것 같은데? 



여동생은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강조했다. 신랑에게도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그리고 당신도 행복해질 수 있어' 라고 말했고, 그래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운동을 다니고,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외박을 하기도 한다. 아직 그런 여동생을 보는 우리 아빠의 시선도 곱지 못하고(애 엄마가 어떻게 애를 두고 외박을 하냐!), 제부도 백프로 수용하는건 아닌듯 하지만, 옆에서 엄마와 내가 끊임없이 여동생도 즐겁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걸 말해준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찌 세상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너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희생했다는 말처럼 모순인 말도 없다. 미래의 행복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늘 미래를 말하지만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이라고 해서 행복할까. (p.230)



아빠가 육아를 함께한다면 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살기 좋아질 것이다. 여자들이 그리고 엄마들이 어떤점이 힘든지 몸소 깨닫고 나면 이 책속의 아빠처럼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고, 그 시선이 달라진다면 이 사회가 좀 더 엄마들이 편한쪽으로 바뀌는것도 쉬워질테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아빠들이 성장한다면, 이 사회가 성장하는 것도 무리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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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2-1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축물을 설계할 때 예전과 다른 점 중에 하나가 공용 화장실에 기저기 거치대가 남,녀 화장실에 꼭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라죠.(물론 일정규모와 용도의 건축물의 경우에 한하여..)

다락방 2013-02-13 12:59   좋아요 0 | URL
아, 안그래도 기저귀 거치대가 남자화장실에 더 많이 설치되어야 할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설계되는 건축물들은 그렇군요! 다행한 일이네요.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메피스토님. 전 돈까스 먹었는데 완전 느끼했어요. 하아- 싫어요. ㅠㅠ

마노아 2013-02-1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크게 공감이 가요. 다락방님은 타미의 이모가 되면서 이미 성장하신 것 같아요. 좋은 이모예요. 좋은 어른이구요.

저는 점심으로 짜장면 먹었어요. 많아 보여서 옆사람 덜어줬는데 정작 저는 좀 모자란 감이 있고, 덜어받은 사람은 다 남겼어요...;;;;;

다락방 2013-02-13 14:3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저 역시도 이모가 되어보지 못했다면 무조건 엄마에게 희생과 모성을 강요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게 조카가 생긴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생각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는것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되서 말이지요.

앗. 짜장면..먹고싶네요? ㅋㅋ 아니, 그러게 왜 덜어줬습니까. 사람이 자기 몫에 충실해야지요.(응?)
조만간 봅시다. 치킨에 소주 일병 해야지요. ㅎㅎ

2013-02-1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태그에 있는 '박찬일' 씨...
궁금합니다. (저자와) 어떤 관계이신지...
제가 좋아하는 분이라서요. :)

다락방 2013-02-13 14:3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 완전 죄송해요. 제가 실수했어요. 말씀 안하셨으면 계속 그대로 둘 뻔했네요. 저자 이름 쓴다는게 박찬일이라고 써버렸어요. 아 완전 빵터졌네요. ㅎㅎㅎㅎㅎ
박찬일은 오타였으며 그러니 당연히 박찬일과 저자는 관계가 있을리가 없고 저 역시도 박찬일과 관계 없으며 이 책의 저자와도 관계 없습니다.

moonnight 2013-02-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너무 좋아요. 맞아요. 아이란 존재는 부모도 키우고 고모도 이모도 더 성장하게 만들죠. ^^

다락방 2013-02-14 16:23   좋아요 0 | URL
어쩌면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나는건지도 모르겠어요. 어른들 좀 더 성장하라고. 확실히 저는 조카가 생기기전보다 지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된 것 같아요. 어떤면에 있어서는요.

2013-02-13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4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3-02-1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유명한 말이 생각나네요. 아프리카 속담이던가.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 ㅋㅎㅎ

고모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다 필요하지만, 제일 필요한 건 역시!!! 이모!!!

다락방 2013-02-14 17:39   좋아요 0 | URL
저희 집에 조카가 와있을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모두 다 있는데도 조카를 보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제 여동생은 집에서 조카와 둘이 있을 때 대체 얼마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요?

제가 제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건데, 이모는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가장 필요한 존재인듯 합니다. ㅎㅎ

감은빛 2013-02-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는 느낌이예요.
제 주위에는 아빠들이 육아와 가사일을 분담하는 걸 종종 보거든요.
물론 더 많이 바뀌어야 하겠지요.

큰 애가 어렸을 때, 한 6~7년 전쯤에 육아휴직을 하고,
제가 아이을 돌보았거든요.
그때 전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곳에 유모차 끌고 다니는 거 재밌었어요.
주위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즐기는 게 더욱 재밌더라구요.

다락방 2013-02-14 17:40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엔 아직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걸로 보이는 아빠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게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만 느껴졌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이런 아빠가 좀 더 있을거란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 차츰 바뀌어갈 수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감은빛님! 감은빛님도 생각하셨던것처럼 아빠 육아 책 내세요, 얼른요!!

BRINY 2013-02-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교대로 1년씩 육아휴직해야한다고 법적의무를 지우지 않는 한은 힘들 거 같아요...
그리고 '이모'는 아가에게도, 아가 엄마에게도 정말 필요한 존재인 거 같아요. 외동딸인 후배나 주위 사람들 보니 그렇더라구요.

다락방 2013-02-15 09:32   좋아요 0 | URL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같은 입장에서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친정엄마와 이모가 필요한 존재가 되는것 같아요. 친정 엄마야 이미 자식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분이셔서 능숙하게 상황에 대처하실 수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어린 아이와 있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인지라, 조카 덕에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해요.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저도 자라고 있는것 같아요, BRINY 님.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로 그런날이 온다, 이 책의 아무곳이나 열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날. 물끄러미 이 책속의 낯선이들을, 그들의 표정과 옷차림을, 그들이 서있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날이, 정말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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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2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2-1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46, 총 293333

삼삼삼삼....

dreamout 2013-02-1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정말 그런날 있죠.
표정과 몸짓에서 묻어나는 어떤 기운들이 보는 사람들까지 업 되게 해주는..

다락방 2013-02-14 16:17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친구에게 몇 년전에 선물 받을때 가끔 들여다보고 싶어진다는 멘트가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