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해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뭐라고? 해마다 다시 읽는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레미제라블을 읽었었다. 친구 한 명은 '피천득'의 <인연>을 해다마 다시 읽었다고 했다. 해마다 다시 읽는 책 혹은 작품이 있다는 건 너무 근사하잖아? 나의 경우에는 간혹 '줌파 라히리'를 다시 읽고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기도 했지만, '해마다' 읽는 책이라면, 역시나 유일하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일곱번째 파도》뿐이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매해 다시 읽고 있다. '에미'와 '레오'의 이메일로만 구성된 이 단순한 소설이, 그러나 놀랍게도 읽을 때마다 번번이 다른 느낌을 가져다준다. 나는 에미의 모든 감정이 그리고 레오의 모든 감정까지도 책을 통해 전해지는 게 너무나 좋다. 어떤 날은 에미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레오가 되었다가 한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우아한 연인》에서 '케이트'는 무인도에 가져갈 책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꼽는다. 이에 '팅커'는 서점에 가 그 책을 사서 읽는다. 팅커는 케이트를 좋아했지... 그렇게 월든을 읽게된 팅커는, 월든이 너무 좋아 그 뒤로 바지 뒷주머니에 늘상 넣고 다닌다. 그렇게 금융맨인 팅커는 소로 같은 삶을 향해 나아간다.
도대체 왜, 도대체 그게 어떤 책이길레 케이트는 그걸 무인도에 가져간다 한걸까. 그리고 왜, 팅커는 그 책을 늘 주머니에 꽂고 다닌걸까. 그책은 왜 그들 모두에게 인생의 책인것인가.
그렇게 나는 너무너무너무너무 궁금해서 월든을 샀다.
그러나 어디, 샀다고 다 읽으란 법 있는가...(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내 책장에 고이 잠들고 있었다. 지난 주 까지는...
아니 글쎄, 지난 주에 만난 친구가, 월든을 매해 다시 읽는다는 게 아닌가.
뭐라고? 매해 다시 읽는다고? 월든을? 왜?
친구는 내게 '너가 읽는다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 라고 했지만, 나의 다정한 친구가 매해 읽는 책이라니, 너무나 궁금해진 나는, 책장 속에서 오래 자고 있던 이 책을 꺼내왔다. 그리고 읽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끝까지 읽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읽었다. 왜 포기하고 싶었느냐?
재미없다.
정말 재미없다.
진짜 재미없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재미없다.
우아한 연인의 '케이트'가 월든을 무인도에 가져간다고 했는데, 그건 '에이모 토울스'가 쓴 케이트 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월든이 케이트의 인생책인건, 에이모 토울스가 케이트를 썼기 때문이다.. 두 유 노 왓 아이 민?
이 책이 왜 재미없냐면,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을 사 그것에 뚝딱뚝딱 살을 붙이고, 그 곳에서 2년을 산다. 채소를 키우고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으면서 2년을 산다. 오로지 그 2년간의 기록인데, 거기에 스토리가 있을 게 무언가. 그는 해와 달과 자연의 소리, 자신을 찾는 야생동물들과 온갖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 한 권에 적어두었다. 그 틈틈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 공부, 독서,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것들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저 한 남자가 호숫가에서 욕심 없이 조용히 먹고 사는 이야기.
그래서 연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호숫가에 언 얼음을 가지고, 자신의 집에 찾아든 야생동물을 가지고 이렇게 긴 글을 써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속에 녹아 들어있는데, 어떻게 이걸로 이토록 긴 글이 가능한가. 마지막 꼭지는 '봄'인데, 어떻게 '봄'이란 걸로 몇 장의 글이 나올 수 있는가 말이다. 그저 자연에 대한 얘기여서 눈 앞에 초록초록한 숲이 보이는 듯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듯했고, 호숫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바로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여름에는 며칠간 여기에 가보아도 좋겠네,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나 거기에 소로가 있다면 싫을 것 같았다. 소로..너무 식탐 없는 사람. 우리가 많이 먹기 때문에 노동을 빡시게 하고 있는 거다, 라는 너무나 맞는 말 하는 사람.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고 싶다면 그걸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요하다. 소로는 말한다. 우리가 간소하게 먹고 산다면 노동에 그렇게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맞다, 맞는말이다. 소로는 한마디로 '쾌락'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쾌락주의자.... 인생.....Orz
인생에서 가장 가치 없는 노년기에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 최고의 순간인 젊음을 돈 버는 데 허비하는 모습을 보면, 노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시인으로 여생을 보내기 위해 돈을 벌러 인도로 건너간 영국인이 생각난다. 그는 인도로 갈 게 아니라 즉시 자기 집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써야 했다. 수백만의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뭐요? 아니, 그럼 우리가 건설한 철도가 쓸모가 없다는 말이오?" 하고 놀라 소리친다면 나는 '비교적' 쓸모가 있다고 대답하리라. 즉, 이보다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형제로서 하는 말인데, 당신이 땅파기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p.63)
자연의 풍경과 그 안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것으로 이 두꺼운 책을 쓰다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걸 썼지? 연신 감탄했다. (재미는 없지만.) 만약 나였다면 숲에서 머무는 것만으로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숲은 온통 초록빛이다, 이름 모를 새가 운다, 볕이 뜨겁다... 정도가 내가 쓸 수 있는 전부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소로는 쓰고 또 쓰고 계속 쓰고 많이 썼다. (재미 없지만.)
읽다가 느낀 건 소로가 딱히 다정한 사람이나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뭐랄까. 사람들이 좀 싫어할 것 같아. 그건 자기가 고집하는 바 그대로를 실천하는 사람의 올곧은 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비판은 정당하고 자신의 생각은 옳다는 것에서 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육식을 하지 말자고 하면서 그러나 사냥은 최고의 스포츠라고 하면... 먹는 건 안되는데 죽이는 것은 괜찮은가...동물을 죽이는 것은 안되지만 자연을 가장 잘 알기에는 사냥만한 게 없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래도 뭔가 좀 갸웃하게 되는 면이 있다. 마지막에 해설 읽어보니 30세에 이미 틀니를 했다고 하던데, 결국 이빨 안좋아서 육식 안하기가 더 쉬웠던 거 아니야? 뭐 이런 삐딱한 생각도 들고(소로 아저씨 미안!).. 킁킁.
물론 사람이 자신이 말하는 바를 다 지킬 수도 없고, 양가적인 면을 언제나 가질 수 있으며, 자기 안의 모순도 수없이 맞닥뜨린다. 그러니 '육식하지 말라며 왜 사냥꾼이 되라고 해?'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나 역시 '텀블러 들고 다닌다며 비행기는 왜 타' 라는 질문을 받으면 할 말 없고요...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 그건 알지만, 딱히 내가 좋아할 사람 같지도 않고 나랑 친할 사람도 아닌 것 같아. 아마 같은 시기에 살았다면 소로는 나 싫어했을 것 같아. 알라디너였다면 공개적으로 나를 깠을 것 같다. 그여자는 그렇게 많이 먹어서는 안된다...........( ")
마지막에 <작품해설> 읽어보면 소로가 딱히..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는 월든은 소로의 입장에서만 쓰여진 거니까. 작품해설 읽다가, 나는 이런 부분을 만난다.
오늘날 대중은 소로를 생태계 보존에 관심을 기울인 환경보호주의자로 여기지만 당시에는 그런 인식도 없었다. 오히려 소로는 일행과 함께 잡은 물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불을 지피면서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지 않아(화폐 가치로 2000달러가 넘는) 300 에이커에 달하는 콩코드 삼림 을 태운 부주의한 인물로 악명이 높았다. 소로는 이웃들에게 적절하게 사과도 하지 않았고 이웃들은 불탄 삼림이 회복된 뒤에도 한동안 그 사건을 잊지 않았다. 소로는 다소 오만하고 냉담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작품해설, p.417-418)
네????????????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고기 요리하다가 삼림 다 불태웠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월든 읽는 동안 그 내용 1도 안나온다. 삼림 불태운 건 얘기 절대 안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람은 이렇게 어떻게든 자기 포장을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고기 요리한다고 삼림 태워놓고 사과도 안했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월든 두꺼운 책인데 거기에 진짜 이 내용 1도 안나온다. 삼림 다 불태우다니, 참나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연이 아저씨한테 잘했잖아요. 근데 왜그랬어요, 왜, 왜.........
읽느라 고되고 피곤했다. 재미없는데 끝까지 읽는 거 넘나 힘든 일. 다 읽고 책장을 덮으니 이내 다시 책을 시작하기가 힘들더라. 다음 독서까지 약간 텀이 필요했어. 어제 이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뭐 읽을까, 하다가 좀 쉬고 싶어지길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다만 소설을 읽겠다! 했어. 그래서 오늘 아침엔 소설 책을 가지고 나왔는데, 더럽게 무거워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잘못 골랐나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무거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출근하느라 기운빠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케 무겁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거운 책 들고 읽느라 출근길 고생한 나에게 옥수수크림소보로 빵을 주었다. 어제 남동생이 나 먹으라고 사놓고 갔는데 그거 들고 와서 먹었지롱.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집에서 내려온 커피도 있지롱.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나는 이제 월든 읽었다. 뭔가 월든 안읽은 거 마음의 짐 같은 ..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 짐을 덜었노라..
문득,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최애작가 혹은 최애소설은 뭐로 하지? 생각하게 됐다. 에이모 토울스는 케이트를 통해 월든을 얘기했는데, 나는 내 등장인물에게 인생 책으로 도대체 뭘 정해주지? 새벽 세시를 너무 편애하는 거 세상사람 다 아니까 그거 하면 너무.. 거시기하고.............. 뭐해주지? 뭐해주지? 아아 고민이 깊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두 젊은이가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돈이 없는 젊은이는 여행하는 동안 선원 일도 하고 농사일도 거들어서 여비를 마려했고 다른 한 명은 주머니에 환어음을 갖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두 젊은이가 ‘서로 돕는‘ 여행의 동반자로 오래가지 못했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여행에서 첫 번째 시련이 닥치자마자 헤어졌으리라. 앞서 말한 대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오늘 당장 길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한참 뒤에야 출발하게 된다. - P83
집을 짓는 일과 콩밭 일구는 일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일이 끊이질 않아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일이 끝나면 독서를 하게 되리라는 희망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일을 하는 짬짬이 여행에 관한 가벼운 책을 한두 권 읽었다. 그러고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져서 진실을 추구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어놓고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자책했다. - P115
문학은 최고의 유물이다. 문학은 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도 우리와 친근한 동시에 보편적이며, 삶 자체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다. 문학은 어떤 언어로도 번역될 수 있으며, 우리는 문학작품을 눈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 P117
책은 우리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대에 언급하기 어려운 말들이 다른 어디에선가 이미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인들 역시 우리를 혼란스럽고 난감하고 좌절하게 하는 문제들을 똑같이 겪었고,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언어를 통해 혹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해답을 제시했다. - P123
숲 속에서 처음 맞는 여름에 나는 책을 읽지 않고 콩밭을 일구었다. 아니, 종종 이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일을 했다.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어떤 일에도 절대 양보하기 어려운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 나는 여백이 많은 삶을 소중히 여긴다. 여름날 아침이면 늘 하던 대로 몸을 정갈하게 씻고, 해 뜰 때부터 정오까지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문지방에 앉아 소나무와 히커리, 옻나무에 둘러싸인 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정적 속에서 몽상에 빠진다. 그러다가 서쪽으로 난 창문으로 해가 떨어지거나 멀리 도로에서 행인의 마차 소리가 들리면 비로소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곤 했다. 그런 계절이면 나의 정신은 밤새 옥수수가 쑥쑥 자라듯 성장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떤 육체노동보다도 즐겁다. - P126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의 도움을 받는 일은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해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직한 삶은 도움을 받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다. 정원에 세이지 같은 약초를 가꾸듯이 가난을 경작하자. 옷이든 친구든 새로운 것을 장만하려고 애쓰지 말자. 낡은 옷을 고쳐 입자. 오랜 친구에게로 돌아가자.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옷은 팔아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간직하자. 우리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음을 신은 알아주리라. 온종일 거미처럼 다락방에 갇혀 있어도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세상은 마찬가지로 광활하게 느껴진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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