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정희진 쌤 강연을 들을 때는 막 신나고 의욕이 넘치고 사고가 확장되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강의 내내 들어서 진짜 좋았는데, 어제는 달랐다. 어제는 진짜 집중이 너무 안되고 계속 졸려가지고 ㅠㅠ 두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어제 수업 들은 것 중에 기억나는 게 없다. 마치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여주인공 벨라에게 생겼던 그 능력처럼, 내게도 쉴드치는 능력 같은 게 생긴 것 같더라. 수업 내용이 내게로 오다가 탕탕 튕겨져나가고 들어오지 못하는 느낌..나는 어제 지식을 방어했어... -0-


수요일에 강의를 틀으러 갈 거였으니까 월요일과 화요일에 쉬었으면 되는데, 월요일에 동료랑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고, 화요일에도 《히든 피겨스》보고 늦게 들어가고...피로 누적이다. 하아- 내가 그랬어, 내가..



어제 전혀 집중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갔는데, 마포에서 집까지는 또 멀기는 엄청 멀어서, 집에 돌아가니까 완전 뻗겠더라.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15분 늦게 일어났고 목소리에서도 뚝뚝 피곤이 떨어졌다. 


"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대체 이걸 왜하는거지?"


어제 집에 돌아와 뻗어서 얘길하니, 거실에서 내 말을 들은 엄마가


"누가 시킨 게 아니니까 하지, 누가 시켰으면 니가 했겠냐?"


하셨다.  아아, 그렇지, 그렇구나... 아 피곤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출근하기도 전부터 퇴근하고 싶어. 퇴사하고 싶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오늘 사무실 지키고 앉아있으면 알라딘 책박스 올 거니까, 거기에 핸드폰 케이스 있으니까, 그거 받아서 내 아이폰에 껴보겠다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잘 보내도록 하자. 아, 어제 강의 내용 흥미로운 거였는데 내가 집중을 1도 못해서 안타깝네... 하아- 




 
















일전에 수학자인 '해나 프라이'가 쓴 책,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사랑이 계산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 '카트리네 마르살'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도, 저자는 끊임없이 그점을 언급한다. 경제가 경제학자들의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일임을 인지하지 못해서라고. 우리는 이익을 위해서만 달려가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들로 '이익이 아닌' 것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경제학이 그걸 무시한다면 계속 틀릴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내가 제대로 전달한 건지 좀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요지는 그거다.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고, '사랑'이란 것은 내게 이익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어도 행위를 하게 만든다는 것. 돈과 노동력과 시간을 쓰게 만든다는 것. 그것들은 경제학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 있다는 것. 


앞 부분에서 흥미로웠지만 책은 뒤로 갈수록 처음의 흥미를 유지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알아채지 못했던', '애써 무시했던' 부분들에 대해 계속 언급한다는 점은 좋았다. 경제학이든 수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그게 뭐가 됐든 거기에 어떤 지식이 쌓이고 쌓여도,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려고 하는 것, 그건 너무 중요하지 않은가!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라 지식에 공감과 이해를 더하고자 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게 페미니스트들이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경제' 혹은 '자본주의'라 칭해지는 것들에서 지워져있었다. 노동 자체도 지워지고 그 노동을 행하는 자들도 지워졌던 것. 그러나 지워지는 게 너무 당연시되어 있어서 지워졌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걸 티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깨달았다. 지친 사회 생활과, 병과, 인간관계로부터 멀어져 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는 삶. 처음에 나는 그 프로를 볼 때 그게 다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간혹 내가 일상에 치여 힘들어할 때면, 나도 자연인처럼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더러 했던 거다. 실제로 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삶이 어떤 면에선 꽤 유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자꾸만 남자들이 먹는 밥에 신경이 쓰였다. 지금 당장 밥을 해먹기는 하지만, 김치나 밑반찬을 아내가 해서 가져다준다는 걸 알았을 때는 얼마나 뜨악했던지! 깊은 산속에서 살고자 했던 것은 본인의 생각이었고 의지였을텐데, 그런데 거기에서조차 김치를 먹는 건 아내 덕분에 가능해진다. 단순히 김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얘기한다. 아내한테 미안하죠, 아이들 교육시키고 생활비 벌고.... 그러니까 이게 지금 뭐여... '자연인' 뒤에 아내가 가려져 있는 거잖아! 돈 버는 일부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일까지, 다 아내가 도맡아 하고 있는거잖아, 지금?


............




내가 책을 사고 와인을 마시는 삶을 살고 싶다면, 나는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고 한 시간 가량 버스며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해야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고, 그러는 동안 몇 번이나 퇴사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고, 그리고 간혹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사이사이의 시간에 어떻게든 끼워넣어서 그 다음날의 출퇴근에 지장이 없게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것, 물론 고작해야 책을 사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가는 게 전부이지만, 이걸 하기 위해서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술을 마시고 책을 사고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면서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내 대신 누군가가 그걸 해야 한다.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면서 거기에 필요한 돈을 버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내 '대신' 누군가가 그걸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인이 정치한다고 했을 때, 회사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와도 아이에게 뛰어가지 않을 때, 그때 누군가는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공과금을 내고 아이에게 달려가고 아픈 부모를 돌보고..등등을 한단 말이다. 이걸 지워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이게 없으면 도대체 앞에서 어떻게 자기가 하고자 하는 걸 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일전에 이현재 쌤으로부터 들은 강의도 비슷한 내용이었고, 내가 읽은 책들 몇 권도 생각난다.




















스티븐 킹의 소설 속에서는 강간을 당하고 죽을 위험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여자가, 얼른 집에 돌아가 고양이에게 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개였나??) 자기에게 닥친 위험이 너무나 큰데도, 죽음에서 가까스로 살아났는데도, 자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할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생각한다. 샤이닝 걸스에서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됐을정도로 망가졌는데도 자신의 옆에 있었던 자신의 개를 안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장면들마다 내가 얼마나 울컥하던지. 아니, 이 여자들, 자신이 사는 게 먼저인데도,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잊지 않는다. 너무 대단하지 않은가. 바로 이 정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기는 살 수 있지만, 그렇지만 더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 정서가, 애덤 스미스에게 저녁은 누가 차려줬냐 묻는 '카트리네 마르살'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경제의 흐름에서 잊혀지고 지워진 존재를 자꾸 불러내려고 하며, 인간들에겐 이익만 있는 게 아니야!! 를 부르짖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아, 진짜 너무 멋지지 않나. 그 이면을 보려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는 거 말이다. 






진 리스는 어떤가!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의 아내이며 미친 여자였던 '버사 부인'(맞나??)의 사정을 생각해보지 않나. 로체스터도 세상 사람들도 버사 부인을 미쳤다고 하지만, 그런데, 그녀가 정말 그냥 미친걸까?? 하고 생각해보고 그녀의 생각과 행동, 삶을 그려보면서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다'고 부르짖고 있다. 크-










아니, 근데 나의 의식의 흐름은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어제 강의 피곤하다는 말을 하고 애덤 스미스의 저녁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는데, 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나왔지?? 아, 피곤하다...




다시 애덤스미스의 밥으로 돌아가서, 카트리네 마르살은 프로이트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부분이 무척 재미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는 실제로 여성이 청소를 더 잘하도록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이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는 그 이유를 여성의 질이 본래 더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문지르고 닦고 터는 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느끼는 더러운 느낌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질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여성의 성기는 자체 조정 기능을 갖춘 기관으로, 사람의 입보다도 깨끗하다. 수많은 유산균-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이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청결을 유지한다. 건강한 질은 pH 5인 블랙 커피보다 약간 높고, pH 2인 레몬보다 낮은 산도를 유지한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p.62)



사무실 내 책상은 지저분하다. 뭔가 잔뜩 널려있다.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일하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 내 방도 마찬가지. 집에 가면 옷도 휙 벗어던지기 일쑤고 난장판이다. 책장도 화장대도 정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내 질은 다른 여성들의 질보다 깨끗하여 내가 청소와 먼 삶을 사는 것인가? 나는 아주 깔끔해서 청소도 잘하고 정리도 잘하는 남자들도 여럿 아는데, 그들은 고추가 더러워서 그렇게 되었나?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노동이 필요한 부분에 '여자들이 타고났다'고 말하는 건 진짜 아무말 되시겠다. 차이를 차별로 바꿔버리는 짓이다. 질이 없다고 해서 질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건 중요하다.






그나저나 내가 좀 휴식을 취하고자 오늘부터는 소설을 읽으려고 들고왔는데, 소설 속에서 쉰이 넘는 교수가 스물 셋의 여자대학생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자기가 연루될까 두려워 시체를 갖다 버리는 장면이 나와가지고, 무척 빡쳤다고 한다....그런데 분위기가..어쩐지..... 패쓰.











아, 갑자기 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소설을 사랑하고 진짜 소설만이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 위에 예로든 것처럼,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도 생각할 수 있고 느껴지는게 어마어마한데, 이런 소설을 많이 많이 읽는다면, 그 안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도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더 커지고, 그건 다음 소설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엊그제 동료와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하는데, 동료가 내게 '그런건 다 어떻게 알았어? 그걸 어떻게 알아?' 하고 묻더라. 나는 '응 내가 읽은 소설책에서' 라고 말했다. 내가 무언가를 말했을 때, 대화의 소재로 삼고 거기에서 생각과 의견을 갖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늘 소설이 있었다. 이 페이퍼를 쓰면서 별도 없는 한밤에, 샤이닝 걸스를 링크하면서, 그 순간 바로, 아, 역시 소설은 진짜 짱이야!! 하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자, 여러분. 


모를 때 비난하는 게 제일 쉽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 소설을 비하할 수 있다. 왜냐면 소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져스틴 팀버레이크' 와 '밀라 쿠니스' 주연의 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을 잊을 수가 없다. 


'저기 저 책읽는 여자 어때?' 연애상대를 고르며 져스틴 팀버레이크가 말하자,


'저거 소설책일걸?' 하고 밀라 쿠니스가 말하는 거다.



으르렁... 니네가 뭘 아냐, 이 소설에 대해 모르는 무식한 놈들아.......




아니, 근데 저 영화 제목 생각 안나서 져스틴 팀버레이크 검색창에 넣었는데, 배우자가 '제시카 비엘'로 나오네???????????져스틴 팀버레이크 결혼했어요??????????????? 읭????????????????????? 몰랐네??????????????? 왜 나한테 말을 안했지??????????????????????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차이 난다는 점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것일 뿐이다. 여성이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의 육체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의 의미는 말 그대로 육체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수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만이 쾌감만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가졌다는 것의 의미는 여성만이 쾌감만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가졌다는 것일 뿐이다. 이사회의 임원으로 일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p.61)

무엇이 의존이고 누가 누구에게 기생해서 사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항상 정치적인 문제였다. 애덤 스미스가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가, 어머니가 애덤 스미스를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한 채 살아가고, 따라서 사회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할 매체가 필요하다.
현재의 경제학에 인류의 현실적인 경험을 위한 자리는 없다. 주류 경제학 이론은 허구의 인물,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인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보통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당연히 인류가 직면한 바로 이 굉장히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심지어 남성마저도 가지고 있지 안은 그 남성적 특성에 대한 가정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세상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p.282-283)

세상은 시작한 곳에서 끝이 난다. 떼쓰며 몸부림치고 더 달라고 울어 본다. 모두가 나를 잡아먹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이 하라는대로 해야 한다. 이것이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다. 당신이 공과금을 내고 영수증을 보관하는 이유다. 기대는 덫에 걸린 공포에 불과하다. 기대는 암흑이 발을 들일 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꿀을 얻고 싶으면 벌을 다 죽여서는 안 된다. 시장은 인간의 본성 안에 존재한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만들어 낸 헛소리에 고통받는다. (p.284)

경제학은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봐야 한다. 심지어 모든 것을 개인 수준으로 쪼개는 과정에서도 관계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관계는 경쟁, 이윤, 손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그리고 누가 이겼는지를 계산하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학은 인간을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 인간을 무조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나 역학 관계에 따라 행동하거나 맥락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경제학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이타심을 정반대의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 (p.285)

그녀는 28세에 미망인이 되었고, 애덤 스미스는 불과 두 살에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유산의 3분의 1에 대한 권리밖에 없었다. 이 시점부터 마거릿은 금전적으로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덤 스미스도 죽을 때까지 어머니에게 의존했다.
"그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미스의 삶의 중심이었다." 존 레이John Rae가 애덤 스미스의 전기에 쓴 문장이다.
애덤 스미스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거의 상관없이 그의 가사를 돌본 것은 마거릿 더글러스 였다. 오랫동안 그녀는 이 일을 애덤의 사촌 재닛 더글러스 Janet Douglas와 함께 해냈다. 후세 사람들은 재닛 더글러스를 마거릿보다 더 모른다. 단지 알려진 것은 그녀가 중요했다는 사실뿐이다. 1788년, 재닛 더글러스가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 애덤 스미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너가 떠나면 나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궁박하고 속수무책인 사람이 될 거야."
그러나 그의 경제 이론에서 이런 통찰력은 흔적도 없다. (p.290)

버지니아 울프도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카를 마르크스에게는 하녀가 있었고, 그녀와 성관계까지 가졌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애덤 스미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망각하면서, 그에게서 시작된 사상의 갈래가 근본적인 무언가를 생략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실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경제학은 점점 더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이 근본적인 실수는 너무도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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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4-0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하나에서 이 책 저책으로 생각을 파견시키는 일 ㅡ 재미있어요 . 저는 못하지만 대단하구나..싶다는~
오늘도 재미있게 듣고 가요 . 저는 집중 엄청되는데 그걸 나눠드릴 수도 엄꾸 ... ㅎㅎㅎ 굿굿한 날 되시옵고 폰 케이스 장착기도 써주세요!^^

다락방 2017-04-06 14:09   좋아요 1 | URL
제가 암기력은 형편없어도 집중력은 좋은 편인데 어제는 진짜 집중이 1도 안되어가지고 뭘 들었는지 기억에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아요. 어제 들을 때부터 들리는 게 없었어요.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는 공부도 안되는 것 같아요... 휴...
폰케이스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힛.

[그장소] 2017-04-07 07:09   좋아요 0 | URL
음~ 부러워요 . 전 집중력 ㅡ끈기? 그런게 약한데 ...피로는 어떤 것도 몰입할 수 없게 하는 이유죠 . 푹 쉬시고 또 놀라운 집중력 발휘하시길~ 그런데 ..그 떨어지는 집중력으로 이렇게 길고 세밀한 글을 쓴 겁니까? 으아...

다락방 2017-04-07 08:04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저 오늘도 공부가는 날이에요. 하하하하하. 어제 그래서 집에 일찍 가서 일찍 잘랬는데 오후에 커피를 마신 탓인지 밤에 잠이 안와가지고 ㅠㅠ 그래도 오늘은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니, 제가 말이지요, 길이 쓰다보면 길어져요. 딱 정리하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정리를 하고 풀어나가다 보니까 저도 제가 무슨 글을 쓰게 될지를 몰라요. 손이..그냥 막 써요.. 길어져요. ㅠㅠㅠㅠㅠ 저도 간략하고 정리 잘된 글을 쓰고 싶지만 제게는 불가한 일인것 같아요. 우엉 ㅠㅠㅠㅠㅠ

[그장소] 2017-04-07 22:55   좋아요 0 | URL
공부간 오늘은 어떠셨나요? ㅎㅎㅎ 지난 밤의 카페인이 공부 시간에 효과를 몰아주면 좋을텐데 꼭 , 컨디션에 지장만 주니 ..
인간은 평생 하고 픈 것 , 먹고 픈 것 들의 상황 , 상태에서도 절제를 해야 하는 삶이라 이것도 고단한 일이네요 .

저는 길게 쓰지도 못하지만 조금 길게 나가면 길을 잃어요 . 푸하하 ~~
다락방님은 이야기 사슬을 잘 엮어내시는 재주꾼 ~
간략 정리 잘된 글은 저나 다락방 님이나 똑같이 소망사항이네요 . ^^

오늘도 제목만 써놓고 한줄도 못쓰고 날이 지나갑니다~ 다락방 님글로 위로나 받아가야지!!

다락방 2017-04-10 10:17   좋아요 1 | URL
아, 금요일에는 정신 바싹 집중했고 선생님 강의도 너무 좋았어서 열심히 정리해 페이퍼 써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그 시기를 놓치고 나니 좀처럼 쓰게 되질 않네요. 아하하하하.
역시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을 때 해야 능률이 오르는 것 같아요. 제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못한 건, 그게 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내 잘못이 아니야...)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계속계속 앞으로 나아가야겠어요. 불끈!

[그장소] 2017-04-10 14:59   좋아요 0 | URL
역시 느낌 팍 올때 써 붙여야지 한숨 돌리고 나면 다 귀찮은 게 되버려요 . ㅎㅎ

공부 ㅡ역시 하고 싶은 공부여야 행복 ㅡ 절대 공감 ! ㅡㅡ ;;
저도 부..부..불 끄은~~!!^^

낭만인생 2017-04-06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도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이말 밖에 안 보입니다.

다락방 2017-04-07 08:0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저도 요리를 할 줄 모릅니다, 낭만인생님.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요리를 망치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보슬비 2017-04-08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신창이된 몸으로도 자신보다 약한것에 대한 측은심을 발휘하는 마음에 울컥해요. 여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리고 모두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락방 2017-04-10 10:1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보슬비님.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 살기 좋아지겠죠. 지금보다 훨씬 더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한 쪽 성에만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울컥하는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마음을 그러나 많은 인간들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태우스 2017-04-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드는 여자한테 맞고자란걸까요 볼수록희한합니다 다락방님글보니까 깨닫는게많아서좋네요

다락방 2017-04-19 08:51   좋아요 0 | URL
읽고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마태우스님. 제가 좋아서 쓰는 글이지만 읽는 분들께도 좋다면 그야 더 바랄 게 없는 글 아니겠습니까! 헤헷.
오랜만에 오셔서 차례대로 다 읽고 계시는군요! >.<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리모컨으로 방의 불을 켜고 또 그 리모컨으로 라디오를 켠다. 그래서인지 그 날 아침의 노래가 하루종일 흥얼거리는 노래가 될 확률이 높다. 오늘은 아침에 이 노래를 들었다. 여섯시도 되기 전에. 머리를 감고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이 노래의 한구절이 나오고 있었다.


'바랄 수 없는 걸 바라도 된다면'


갑자기 또 훅- 꽂혀가지고 라디오의 볼륨을 잠깐 낮추고 가만, 이 노래를 스맛폰에서 찾아 처음부터 재생시킨다. 사실, 저 가사도 가사지만 '바라도 된다면'을 '바래도 된다면'으로 발음하지 않고 '바라도 된다면'으로 발음한 것이 무척 인상깊다. '바라도'가 맞는 표현인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과거의 나를 포함해서) '바래'로 발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박효신은 '바라'로 발음한다. 

그러고보면 나는 어떤 발음들에 꽤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것은 정해진 단어라기 보다는 '누군가'가 말하는 '어떤 특정한' 단어일 때가 많은데, 아마도 그 사람의 목소리와 단어가 일으키는 화학작용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캐서린 맥피가 자신의 노래 <over it>에서 pick up the phone 을 발음할 때가 진짜 자지러지게 좋았고(따라해보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일전에 좋아했던 남자가 'journey'를 발음했던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달이 환하게 비추던 밤이었다. 나는 그 날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울었더랬지.

pick up the phone
journey
그리고 이젠 '바라도 된다면' 을 추가한다.




그렇게 발음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고, 이 한 곡을 다 듣고 다시 라디오를 켜고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듣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출근하는 길에 또 출근 후 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오기전까지, 이 노래를 내내 듣는다.


오늘 하루 쉴 숨이 
오늘 하루 쉴 곳이
오늘만큼 이렇게 또 한번 살아가

침대 밑에 놓아둔
지난 밤에 꾼 꿈이
지친 맘을 덮으며 
눈을 감는다 괜찮아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양 속에
나 홀로 잠들어 
다시 오는 아침에 
눈을 뜨면 웃고프다 

오늘 같은 밤 
이대로 머물러도 될 꿈이라면 
바랄 수 없는걸 바라도 된다면 
두렵지 않다면 너처럼 

오늘 같은 날 
마른 줄 알았던 
오래된 눈물이 흐르면 
잠들지 않는 내 작은 가슴이 
숨을 쉰다 

끝도 없이 먼 하늘 
날아가는 새처럼
뒤돌아 보지 않을래 
이 길 너머 어딘가 봄이 
힘없이 멈춰있던
세상에 비가 내리고
다시 자라난 오늘
그 하루를 살아

오늘 같은 밤
이대로 머물러도 될 꿈이라면
바랄 수 없는걸 바라도 된다면
두렵지 않다면 너처럼

오늘 같은 날
마른 줄 알았던 
오래된 눈물이 흐르면
잠들지 않는 
이 어린 가슴이 숨을 쉰다
고단했던 내 하루가 
숨을 쉰다














많은 욕심들을 내처 적으려다,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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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에 정희진 쌤 강연을 다녀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의 후기 혹은 직접 본 소감을 들었었다며 쌤은 '문체랑 달라요'란 말을 많이 듣는다셨다. 나 역시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때 너무 놀랐어서(이렇게나 다르다니!!), 그 말에 웃을 수 있었다. 글에서는 너무나 냉정하고 차가운데 강의는 정말이지 말그대로 뜨겁다. 본인 안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생각, 느낌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진짜 뜨거운 분이시다. 게다가 진짜 엄청 똑똑하셔서, 아아, 똑똑한 사람의 강의를 듣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새삼 느꼈다.


그러고보면 나는 똑똑한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나는 똑똑한 여자에게 되게 반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어서 내가 다가가게 되는 경우엔, 가만 보면 그들이 똑똑한 여자들이더라.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많은 매력 포인트가 있겠지만, 내게는 똑똑함이 아주 크게 차지하는 것 같다. 아마도 스스로 내 부족함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가 '똑똑한 여자 멋있다'로 발현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똑똑한 여자들에게 끌리는건지도?



강의는 두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는데, 진짜 뒤통수 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놀랄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진짜 사고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아, 이 느낌 진짜 너무 좋아! >.<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 진짜 너무 싫다고 하시면서, '가난은 나라만 구제할 수 있어요'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무식한 건 나라도 구제할 수 없죠' 라시는데, 크- 무지와 무식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 것을 보면서 진짜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를 다 듣고 나와서도 여자1과 여자2와 나, 이렇게 셋은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얘기하며 공감했다. 나부터 그랬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그래서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얼마나 크고 당당하게 주장한 것들이 많았던가. 부끄럽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또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됐는데, 그것은 '욕'에 대한 것이었다.



정희진 쌤은 식민지 남성성과 성매매를 연결지어 말씀해주셨고, 그러면서 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예로든 욕이 '니미' 였다. 나도 간혹 '니미'라는 욕을 썼던 바, 그것이


'니 애미랑 씹할 놈'의 약자라고 하셨을 때 완전 대충격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내가 지금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한거지???? 스스로에게 토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니미가 그런 뜻이라고 말해줬던 것도 같다. 아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 욕을 나는 얼마나 생각없이 뱉어댔던가. 


그러면 '씨발'은? 이것도 '씹할' 에서 온 게 아닌가. 나 이 욕 잘하는데... 아..... 이 욕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하면서 속이 쓰렸다.



나는 욕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욕을 하면서 살고 싶다. 거친 말을 뱉어내면서 느끼는 희열이 분명 있기 때문이고, 나는 고운 말만 쓰면서 살고 싶진 않다, 그 말이다. 그런데 '니미'랑 '씨발'이 너무 드러운 욕이라서... 내가 앞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아,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떤 욕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사실 재작년까지는 '병신'이란 욕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인 비하라는 걸 인지하면서부터 의식적으로 병신을 입밖에 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는데, 이젠 '니미'랑 '씨발'도 안된다니....그렇다면 순간순간 나의 딥빡침은 대체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아 너무나 열받는다' 로는 나의 딥빡침이 표현되질 않는데..

'아 정말 굉장히 화가 나는 걸' 이걸로도 역시 나의 딥빡침이 표현되질 않아...



딥빡침을 표현할 다른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가... 생생하게 표현할 그 무엇...정희진 선생님은 '믹서기에 갈아버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셨는데, 나도 젊었을 적엔 그보다 잔인한 표현들도 쓰긴 했지만, 아아, 뭔가 찰진 표현을 쓰고 싶다. 내가 쓸 수 있는 욕은 이제 


제기랄, 젠장할, 써글... 이런 것 밖에 없는 건가?

쌍놈, 개놈..은 괜찮은가? 이것까진 해도 되나?

아아, 너무나 슬프다. 

아는 것은 역시나 괴로운 것이여...Orz



아!! 멍청한 개자식!! 이거 써야겠다. 근데 이건 뭔가 약간 순한 욕 같은데..... 아아 참신하고 찰진 욕이 필요해 ㅠㅠ



















강의후에 이 책들을 팔고 있었다. 왼쪽은 이미 구입해놨었는데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 권 더 샀고, 오른쪽은 사고 싶었던 책이라 샀다. 아 빨리 읽고 싶다. 정희진 쌤의 이야길 듣노라면 진짜 세상에 안읽어본 책이 없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을 읽으셨던데, 강의를 들으면서 '아 나도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많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읽으면 사고가 더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 5월에 나올 책에 글을 쓰셨다 했는데, 그거 너무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다. 식민지 남성성과 성매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강의를 듣고 싶다. 지난 주엔 너무 짧게 들었어...



나는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을 말하거나 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내가 읽은 책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의도 마찬가지.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또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이 즐겁다. 강의 끝나고 여자1, 여자2와 나, 이렇게 셋이 강의에 대해 흥분하며 얘기하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각자가 짚어내는 포인트가 달랐는데, 그걸 듣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늦은 밤인데도 굳이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었던가 보다. 다음 강의는 수요일인데 ㅠㅠ 그러면 ㅠㅠ 목요일에 출근해야 하니까... 이때는 집에 일찍 가서 자야지 ㅠㅠㅠ




주말에 남동생과 밤늦게 술을 마시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았다. 산속에 사는 남자들은 당연히 자기가 먹을 밥을 자기가 해먹는데, 산에서 나는 약초나 자기가 밭에서 기르는 것들을 따다가 밥이며 반찬을 해먹곤 했다. 그들에게 김치가 빠지지 않았는데, 김치도 직접 담그는건가, 생각했던 나에게 '와이프가 가끔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대답은 뜨악스러웠다.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산속에 혼자 살면서, 그러나 김치나 고기등을 아내로부터 제공받고 있었다. 물론 비혼이나 이혼상태의 남성들이 있고, 그들은 그렇게 제공받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결혼한 채로 산 속에 혼자 사는 남자들이 많았던 거다. 아파서였든 세상이 싫어서였든 거기 들어와서 아내로부터 김치와 고기를 받고 있는 거였다. 어떤 사람은 밑반찬도 받더라. 아니 그러면,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아내가 하고, 아이들 양육도 아내가 하고, 그러면서 간혹 산속에 있는 남편 찾아와서 김치를 줘..... 이게 뭐하는 것이여, 시방????


주말에 본 방송에서 또 묵은지 꺼내먹는 것 보고, 갑자기 사두고 안읽은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또 딥빡침이 왔어...

















몇 장 안읽었는데 아 너무 재미있어. 길지만 일단 첫 부분에 나와 있는 글을 좀 옮겨보겠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이 경제학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매일 아침 1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감을 모아 오는 11세 소녀는 국가의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를 계산할 때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도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성이 있다. (p.30-31)



아,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똑똑한 여자들 진짜 너무 좋아. 이 책에 대해서는 인용할 부분이 많을 것 같고 할 얘기도 많을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다 읽고 나서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나는 참신하고 찰진 다른 욕을 좀 찾아봐야 할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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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 2017-04-0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 작가 좋아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당장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락방 2017-04-03 12:18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에 언급한 [낯선 시선],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두 권 모두 저 역시 사두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저도 어서 읽고 싶어요!

새아의서재 2017-04-04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에 대한 내용으로 흐를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찰진 욕을 찾아서˝였군요. 정희진샘 강의 내용이었으면 안 읽었을텐데...ㅋㅋ 우리의 딥빡침을 위한 언어를 찾아서, 라는 글이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ㅋㅋ

전.. 최근 그럴때 이런 ˝근혜같은˝ ˝순실같은˝욕을 농담삼아 썼는데 여긴 너무많은 서글품과 분노다 뒤엉켜있어서 이 또한 부적절... 김수미가 나오는 <헬머니>곳 욕을 좀 연구해봐야 할듯해요

다락방 2017-04-04 09:12   좋아요 1 | URL
진짜 어떤 욕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어요. 단순히 그냥 욕이어서는 안되고 찰진 욕이어야 하니까요. 입에 촥촥 달라붙는, 그러면서 빡침을 표현해낼 수 있는 그런 욕이요. 새로 하나 만들고 싶은데 제가 창의력 쪽으로는 영 능력이 없어놔가지고 잘 안되네요. ㅎㅎㅎㅎㅎ

뭐, 성격 탓이겠지만, 제 경우에 빡쳤을 때 꼭 욕을 하고 싶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욕이 아예 없으면, 욕을 못하고 살면 안될것 같아요. 우앙 ㅜㅜ

프레이야 2017-04-04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정말이지 최고의 욕을 날리고 싶은 순간에 맞닥뜨려서 결국 내지르고 말았어요. 근데 하고보니 별로 적절치도 않고 개운하지도 않고 역효과만 났네요. ㅠㅠ 좋은욕 찾으시면 가르쳐 주시길ㅎㅎ

다락방 2017-04-04 09:13   좋아요 0 | URL
아이고, 프레이야님은 어떤 욕을 하셨을까요.
제가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한 번에 분노도 풀리고 찰지기까지 한 욕을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찾아내면 말씀드릴게요. 생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프레이야님!
:)

버벌 2017-04-0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히익!! 아 저도 생각 없이 뱉었던 욕인데 안써야겠어요. 아 몰랐네요 진짜ㅠㅠ 저도 똑똑한 여자들이 좋습니다. 더불어 글 잘쓰는 분들도!

다락방 2017-04-04 15:14   좋아요 0 | URL
이걸 너무 쉽게 쓰고 있어서 다른 욕을 찾자니 찾아지지가 않네요. 이게 너무나 적합한 욕들인것 같고 막 ㅠㅠ 이제 안쓰려고 하긴 하는데 대체할만한 욕을 아직 못찾고 있어서 답답해요. 다른 욕을 찾고 싶습니다!

똑똑한 여자들 진짜 너무 좋죠. 네, 맞아요, 글 잘쓰는 여자들도 너무 좋아요. 꺅 >.<

마태우스 2017-04-1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샘 멋진분이죠 십년전 문화강좌신청해 들었던기억이나네요 글과느낌 다르단말에 동의!

다락방 2017-04-19 08:52   좋아요 0 | URL
네, 글과 느낌이 다른데 둘 다 좋아요. 게다가 제가 여러 명의 강의를 들어본 중에서 가장 사고확장에 도움되는 강의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강의 듣다보면 진짜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이에요. 멋진 분!!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엘런 L. 워커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이었나, 출근 길에 임신한 여자를 마주쳤다.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갑자기, 아, 나는 이제 임신을 원한다고 해도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비혼'이었던 것, 그리고 임신과 출산, 육아에 맞닥뜨리지 않은 것 모두가 나의 선택이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었지만, 이제와 내가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 가능성은 십년 전, 이십년 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몸의 많은 기능들이 노화를 가리키고 있고, 아마도 십 년내에 완경에 이르지 않을까.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매순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시간을 돌린다 해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설사 원한다 해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 책, [아이 없는 완전한 삶]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얘기들이 수차례 나오는데, 그렇다 해도 분명 의미있는 얘기들이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알고 있다 해도 간혹 새롭게 인지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를테면 아이를 원하고 그래서 출산을 한다는 것, 그것은 부부 사이에 한 쪽만 원한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와 재정적인 것들이 오로지 나를 위해 쓰는 것과 멀어졌음을 뜻한다. 단순히 '낳을까'로 얘기해서 결정해서도 안되는 일이며, 나와 배우자 둘 사이에 한 쪽만 원해서 낳는다는 것 역시 불안함과 불행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출산과 육아는 매우 힘들고 둘이 함께 힘을 쏟아야 그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러므로 반드시 나와 배우자 둘 모두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아이 낳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둘 다 원한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해도 분명 충분한 대화 끝에 결정해야 할 일이다.


아이가 없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 중에는 분명 자신이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너무나 원했음에도 아이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낙태를 햇지만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혹여라도 비혼인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백프로 낙태를 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출산과 육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면서 나는 그 길로 뛰어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순간에는, 수단으로써 아이를 갖게 됐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미 헤어진 연인과 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와 연결된 끈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이건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생각' 했던 거지, 혹여라도 이별 후에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연결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출산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출산과 육아가 내가 감당하기에 큰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이에게 단순히 수단으로써 생명을 부여할 순 없는 일이니까.



나는 여태까지 선택적으로 비혼의 상태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이 비혼 역시 선택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르게 될 확률이 크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다. 나는 이성애자이고 그러므로 연애나 결혼을 할 때는 남자와 하게 될텐데, 대부분의 내 나이 또래 성인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터, 만약 나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이미 그전에 나의 임신 가능성이 낮음을 그에게 알려줘야 할테고, 그러나 상대가 아이를 너무나 원한다면, 세이 굿바이,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은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포기할 순 없을테니까. 



나는 내가 비혼이어서, 출산을 선택하지 않아서, 한마디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으므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주일의 5일은 출근하여 일하는 삶을 살지만, 그 시간을 제외한 아주 많은 시간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별 제약없이 살고 있다. 내가 버는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내 시간 역시 오로지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게 가능하고. 나는 내가 먹고 싶을 때 언제는 술을 마실 수 있고, 내가 가고 싶을 때 들로 산으로 놀러갈 수 있다. 집에서 쉬다가도 후다닥 영화를 보러 나갈 수 있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역시 가능하다. 나는 내가 이런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런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해주는데 이런 당연한 얘기를 읽으면서도 그동안의 나의 선택과 또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니, 이 책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뒤로 가면 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주장들이 몇 차례 나오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선택인만큼 그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에게 아이들 복지를 위한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을 저자는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구에 인구가 많은 게 문제인데, 인구를 더 늘리지 않는 자기들이 오히려 세금감면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던데, 이 점에 있어서는 좀 당황스러웠다. '아이들' 인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복지인데, 그것이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만 부담지워서 될 일인가? 나는 내 세금이 아이들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한편 저자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누군가를 후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먼 친척의 학비에 보탬을 주고 동네 식당의 종업원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뭘 어떻게 주는 지 아는 것과, 세금으로 내서 아이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저자에겐 좀 다른 것이었는가 보다. 



나는 비혼인 상태에서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여러차례 보아왔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비혼이고, 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을 한다. 내가 아이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딱 이만큼인 것 같다. 출산과 육아까지는 역시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데, 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앞으로 내가 누구를 만나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지금은 또 아무것도 알 수가 없지.



동시에 두가지를 선택할 수 없으니 아마도 완전한 삶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선택한 길이 완전한 삶이라고 믿고 가야할 것이다.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다면 택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길을 부모가 됐다면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부모가 될 수 없었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p.270-271)





"제퍼스 박사의 책(난 멀쩡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아)을 읽고 나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부모 노릇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게 정상이고, 부모 노릇을 하다 보면 수많은 희생과 불쾌한 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제일 안타까운 건, 다들 제게 엄마가 되는 것은 굉장한 성취감을 얻는 일이라고만 했지, 한번 부모가 되면 무를 수 없다는 사실 같은 부정적인 얘기는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p.73)

내가 지금처럼 엄마가 아닌 삶을 살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서 결정하진 않았기에 나이 마흔을 넘기도록 이 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믿을 만하고 편리한 피임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된 듯도 하다. 피임약 덕분에 임신할 준비가 되는 날까지 아이에 대한 고민을 최대한 미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고, 어느새 다른 길을 선택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사십 대 중반에야 내 아이를 가질 기회의 문이 거의 닫혀가고 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p.74-75)

자녀 양육이 지금껏 해온 가장 보람된 일이라는 의견을 고집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중요한 경험의 기회를 놓친다는 편견이 이 사회에 단단히 자리잡았다. 부모들은 아이 없는 친구들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견해를 서슴없이 피력한다. 나는 늘 들어온 얘끼라서 그런 말을 들어도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거나 핵심 가치를 놓쳤다는 기분이 들지 않지만, 가끔 감상에 젖을 때면 잠시 내 선택이 후회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을 남들에게 무심히 내뱉는 부모들은 그런 견해가 아직 자녀를 가질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젊은이드레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자녀를 둘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안 낳으면 인생에서 중대한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만약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는 누가, 언제, 말해줄 것인가? (p.95-96)

"마흔두 살 때 내 안에서 째깍거리는 생체 시계를 인식하게 되면서 잠시 두려웠던 적이 있어요. 마흔다섯 살에 이 느낌이 다시 오더라고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음을 알게 된 탓인지 슬펐어요. 하지만 이내 내 삶의 방식을 확신했고 행복했어요. 아이를 바라지 않았고 아이가 필요한 적도 없었고요. 아이를 정말 원했다면 입양을 했을 겁니다. 슬픔을 느꼈던 이유는 그저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예요." (p.85-86)

어쩌다 실수로 부모가 되었거나, 둘 중 한 명은 아이를 원치 않았는데 부모가 되었거나, 부모가 되고 싶은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가 된 경우 결혼 생활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가족계획을 이미 했거나 둘 다 부모가 되고 싶어 할 경우에는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높아졌다. 이는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자녀 출산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임을 의미한다.
이는 아이가 없는 부부들도 마찬가지다. 둘 다 자녀를 원치 않는다면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지만, 한 사람은 아이를 원하고 한 사람은 원치 않는다면 결혼 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가기 어렵다. (p.182-183)

"내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 남자를 사귈 때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내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결혼할 때쯤엔 마음을 바꾸리라 기대했던 남자들도 있었어요. 결국 내 마음이 요지부동임을 알고는 나를 찼죠." (p.186)

아이를 양육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이는 당사자가 임신 전에 미리 고려했어야 할 사항이다. 자신이 선택한 생활 방식에 대한 재정 책임은 자신이 져야 마땅하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든, 반려 동물을 집에 들이든, 집을 사든, 아기를 낳든 마찬가지다. 부모가 됐다고 해서 자녀의 어린이집 비용까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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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4-0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선택한 길이 완전한 삶이라고 믿고 가야한다는 말에 끄덕입니다. 다르다가 틀리다가 아닌,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뿐입니다.^^

다락방 2017-04-10 10: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현재를 즐기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한편, 다른 사람의 선택에 있어서 제가 어떻게든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누가 저를 자기 기준대로 평가하는 거 저도 싫으니까요. 보슬비님, 우리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2017-04-0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0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을 향해서 2017-05-1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보육학을 전공하다가 (원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피아노 만들기 이런거에 재능이 있었기에 선택했죠) 실습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학을 떼고는 그 후로 결혼을 하고는 남편도 그렇고 저도 아이들 원하지 않아서 안 갖고 둘이 살아도 괜찮아 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그래도 남들 해보는건 해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더 나이 먹기 전에 갖자 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는 나이가 들면 갖고 싶어도 못 갖을테니까 와 함께 사회적인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던 것도 작용을 했어요. 만약 우리 부부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했다면 안 갖았을지도 모르겠으니까요. 암튼 불행인지 감사한 일인지 모르지만 결혼하고 5년 후 남편과 상의 후 임신을 계획했는데 아이가 생겼어요. 잘 낳아서 키우고 있는데,
굳이 안 낳아도 되겠다 란 생각이 든다는거죠
아이를 키운다는건 돈은 둘째치고라도 (전 아이를 풍족하게 잘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말 힘든 일이예요 못할 짓이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컨트롤 해야하고 읽고 싶은 책 하루종일 보고싶은데 못하고 ㅜㅜ 번거롭고 귀찮게 할 때가 참 많죠
결혼이야 이게 아니다 싶음 이혼 하면 되는데 아이 낳은건 이건 좀 아니지 싶은데 다시 뱃 속으로 집어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요 그리고 아예 안 낳았음 모를까 첫째 외로울까봐 둘째도 생각하게 되고
주변에서도 둘째 낳아야지, 키울 때 같이 키워야지 터울지면 더 힘들다느니 어쩌구 저쩌구
전 제게 다시 한번의 인생이 온다면 결혼도 안하고 아기도 안 낳고 연애만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남들이 뭐뭐 해야지 말하는건...... 뭐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제 삶에 꼭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거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그 사람에겐 자식 낳고 키우는 일이 행복이고 기쁨일 수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는 거그든요
저도 물론 제 자식이니까 뭔가 뿌듯하고 예쁠 때도 있고 기특하고 귀여울 때도 있죠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도 느끼고
그렇지만 그건 일부분일 뿐이예요 힘들고 짜증나고 화나고 울고싶을 때가 더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살면서 꼭 이래야 된다 는건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하애된다 아이를 낳아야한다 많을수록 좋다 하나는 외롭다 최소한 둘은 낳아야지
요런 말들이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행복의 기준은 철저히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보여지는, 절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물론 우린 더불어 살아가니까 그런것도 완전히 무시하고 살 순 없겠지만요
그 속에서 흔들리고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내 자신을 잘 알고 사랑해야겠어요 우리 모두는!

마음껏 행복하세요!!!
전 이미 낳았으니 어떻해서든 제 선택에 책임지고 살아야겠죠...... 휴......

다락방 2017-05-15 08:51   좋아요 0 | URL
꿈을 향해서 님.
긴 댓글 감사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겠죠.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으니, 저는 제 선택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제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결정해도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가끔은 걱정스럽습니다. 혹여라도 내일, 내년, 3년 뒤에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어떡하지? 하고 말예요. 그때는 낳고 싶다고 원하고 선택해도 이룰 수 있지가 않으니까요. 그래서 매 순간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신중한다해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남기 마련인 것 같아요.

여동생의 출산과 육아를 보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절감했어요. 저는 단지 가끔 만나는데도 그랬어요. 이걸 매일한다면 정말 사는 게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얻는 행복 역시 저는 포기하는 게 되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절대적인 행복은 없으니,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의 결과 안에서 행복을 최대한 누리고 느끼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꿈을 향해서님은 다시 태어나면 자유를 선택하겠다 하시지만, 만약 지금 또 그대로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면,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렇듯이 말예요. 어쩌면 나도 더 젊었을 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지금쯤 아이 다 키워놓고 여유를 즐겨야 했던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걸요.

꿈을 향해서님, 꿈을 향해서님은 님의 선택에 있어서 그리고 저는 저의 선택에 있어서, 그 안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합시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는것처럼,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을테니까요.

솔직한 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꿈을 향해서 님.

꿈을 향해서 2017-05-1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락방님 말대로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미련이 없는 인생은 없을테니까요 맞아요 맞아! 화이팅해보아요! 저도 댓글 감사요!
 
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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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면서 결국 끝까지 읽었지만 나는 이 책이 너무 재미없다. 재미없어........ 범인을 왜 범인이라고 확신하게 됐는지도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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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3-3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다락방 2017-03-30 17:14   좋아요 0 | URL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