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리모컨으로 방의 불을 켜고 또 그 리모컨으로 라디오를 켠다. 그래서인지 그 날 아침의 노래가 하루종일 흥얼거리는 노래가 될 확률이 높다. 오늘은 아침에 이 노래를 들었다. 여섯시도 되기 전에. 머리를 감고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이 노래의 한구절이 나오고 있었다.
'바랄 수 없는 걸 바라도 된다면'
갑자기 또 훅- 꽂혀가지고 라디오의 볼륨을 잠깐 낮추고 가만, 이 노래를 스맛폰에서 찾아 처음부터 재생시킨다. 사실, 저 가사도 가사지만 '바라도 된다면'을 '바래도 된다면'으로 발음하지 않고 '바라도 된다면'으로 발음한 것이 무척 인상깊다. '바라도'가 맞는 표현인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과거의 나를 포함해서) '바래'로 발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박효신은 '바라'로 발음한다.
그러고보면 나는 어떤 발음들에 꽤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것은 정해진 단어라기 보다는 '누군가'가 말하는 '어떤 특정한' 단어일 때가 많은데, 아마도 그 사람의 목소리와 단어가 일으키는 화학작용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캐서린 맥피가 자신의 노래 <over it>에서 pick up the phone 을 발음할 때가 진짜 자지러지게 좋았고(따라해보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일전에 좋아했던 남자가 'journey'를 발음했던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달이 환하게 비추던 밤이었다. 나는 그 날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울었더랬지.
pick up the phone
journey
그리고 이젠 '바라도 된다면' 을 추가한다.
그렇게 발음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고, 이 한 곡을 다 듣고 다시 라디오를 켜고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듣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출근하는 길에 또 출근 후 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오기전까지, 이 노래를 내내 듣는다.
오늘 하루 쉴 숨이
오늘 하루 쉴 곳이
오늘만큼 이렇게 또 한번 살아가
침대 밑에 놓아둔
지난 밤에 꾼 꿈이
지친 맘을 덮으며
눈을 감는다 괜찮아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양 속에
나 홀로 잠들어
다시 오는 아침에
눈을 뜨면 웃고프다
오늘 같은 밤
이대로 머물러도 될 꿈이라면
바랄 수 없는걸 바라도 된다면
두렵지 않다면 너처럼
오늘 같은 날
마른 줄 알았던
오래된 눈물이 흐르면
잠들지 않는 내 작은 가슴이
숨을 쉰다
끝도 없이 먼 하늘
날아가는 새처럼
뒤돌아 보지 않을래
이 길 너머 어딘가 봄이
힘없이 멈춰있던
세상에 비가 내리고
다시 자라난 오늘
그 하루를 살아
오늘 같은 밤
이대로 머물러도 될 꿈이라면
바랄 수 없는걸 바라도 된다면
두렵지 않다면 너처럼
오늘 같은 날
마른 줄 알았던
오래된 눈물이 흐르면
잠들지 않는
이 어린 가슴이 숨을 쉰다
고단했던 내 하루가
숨을 쉰다
많은 욕심들을 내처 적으려다,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