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에 정희진 쌤 강연을 다녀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의 후기 혹은 직접 본 소감을 들었었다며 쌤은 '문체랑 달라요'란 말을 많이 듣는다셨다. 나 역시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때 너무 놀랐어서(이렇게나 다르다니!!), 그 말에 웃을 수 있었다. 글에서는 너무나 냉정하고 차가운데 강의는 정말이지 말그대로 뜨겁다. 본인 안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생각, 느낌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진짜 뜨거운 분이시다. 게다가 진짜 엄청 똑똑하셔서, 아아, 똑똑한 사람의 강의를 듣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새삼 느꼈다.
그러고보면 나는 똑똑한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나는 똑똑한 여자에게 되게 반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어서 내가 다가가게 되는 경우엔, 가만 보면 그들이 똑똑한 여자들이더라.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많은 매력 포인트가 있겠지만, 내게는 똑똑함이 아주 크게 차지하는 것 같다. 아마도 스스로 내 부족함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가 '똑똑한 여자 멋있다'로 발현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똑똑한 여자들에게 끌리는건지도?
강의는 두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는데, 진짜 뒤통수 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놀랄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진짜 사고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아, 이 느낌 진짜 너무 좋아! >.<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 진짜 너무 싫다고 하시면서, '가난은 나라만 구제할 수 있어요'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무식한 건 나라도 구제할 수 없죠' 라시는데, 크- 무지와 무식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 것을 보면서 진짜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를 다 듣고 나와서도 여자1과 여자2와 나, 이렇게 셋은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얘기하며 공감했다. 나부터 그랬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그래서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얼마나 크고 당당하게 주장한 것들이 많았던가. 부끄럽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 또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됐는데, 그것은 '욕'에 대한 것이었다.
정희진 쌤은 식민지 남성성과 성매매를 연결지어 말씀해주셨고, 그러면서 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예로든 욕이 '니미' 였다. 나도 간혹 '니미'라는 욕을 썼던 바, 그것이
'니 애미랑 씹할 놈'의 약자라고 하셨을 때 완전 대충격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내가 지금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한거지???? 스스로에게 토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니미가 그런 뜻이라고 말해줬던 것도 같다. 아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 욕을 나는 얼마나 생각없이 뱉어댔던가.
그러면 '씨발'은? 이것도 '씹할' 에서 온 게 아닌가. 나 이 욕 잘하는데... 아..... 이 욕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하면서 속이 쓰렸다.
나는 욕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욕을 하면서 살고 싶다. 거친 말을 뱉어내면서 느끼는 희열이 분명 있기 때문이고, 나는 고운 말만 쓰면서 살고 싶진 않다, 그 말이다. 그런데 '니미'랑 '씨발'이 너무 드러운 욕이라서... 내가 앞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아,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떤 욕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사실 재작년까지는 '병신'이란 욕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인 비하라는 걸 인지하면서부터 의식적으로 병신을 입밖에 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는데, 이젠 '니미'랑 '씨발'도 안된다니....그렇다면 순간순간 나의 딥빡침은 대체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아 너무나 열받는다' 로는 나의 딥빡침이 표현되질 않는데..
'아 정말 굉장히 화가 나는 걸' 이걸로도 역시 나의 딥빡침이 표현되질 않아...
딥빡침을 표현할 다른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가... 생생하게 표현할 그 무엇...정희진 선생님은 '믹서기에 갈아버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셨는데, 나도 젊었을 적엔 그보다 잔인한 표현들도 쓰긴 했지만, 아아, 뭔가 찰진 표현을 쓰고 싶다. 내가 쓸 수 있는 욕은 이제
제기랄, 젠장할, 써글... 이런 것 밖에 없는 건가?
쌍놈, 개놈..은 괜찮은가? 이것까진 해도 되나?
아아, 너무나 슬프다.
아는 것은 역시나 괴로운 것이여...Orz
아!! 멍청한 개자식!! 이거 써야겠다. 근데 이건 뭔가 약간 순한 욕 같은데..... 아아 참신하고 찰진 욕이 필요해 ㅠㅠ
강의후에 이 책들을 팔고 있었다. 왼쪽은 이미 구입해놨었는데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 권 더 샀고, 오른쪽은 사고 싶었던 책이라 샀다. 아 빨리 읽고 싶다. 정희진 쌤의 이야길 듣노라면 진짜 세상에 안읽어본 책이 없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을 읽으셨던데, 강의를 들으면서 '아 나도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많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읽으면 사고가 더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 5월에 나올 책에 글을 쓰셨다 했는데, 그거 너무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다. 식민지 남성성과 성매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강의를 듣고 싶다. 지난 주엔 너무 짧게 들었어...
나는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을 말하거나 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내가 읽은 책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강의도 마찬가지.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또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이 즐겁다. 강의 끝나고 여자1, 여자2와 나, 이렇게 셋이 강의에 대해 흥분하며 얘기하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각자가 짚어내는 포인트가 달랐는데, 그걸 듣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늦은 밤인데도 굳이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었던가 보다. 다음 강의는 수요일인데 ㅠㅠ 그러면 ㅠㅠ 목요일에 출근해야 하니까... 이때는 집에 일찍 가서 자야지 ㅠㅠㅠ
주말에 남동생과 밤늦게 술을 마시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았다. 산속에 사는 남자들은 당연히 자기가 먹을 밥을 자기가 해먹는데, 산에서 나는 약초나 자기가 밭에서 기르는 것들을 따다가 밥이며 반찬을 해먹곤 했다. 그들에게 김치가 빠지지 않았는데, 김치도 직접 담그는건가, 생각했던 나에게 '와이프가 가끔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대답은 뜨악스러웠다.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산속에 혼자 살면서, 그러나 김치나 고기등을 아내로부터 제공받고 있었다. 물론 비혼이나 이혼상태의 남성들이 있고, 그들은 그렇게 제공받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결혼한 채로 산 속에 혼자 사는 남자들이 많았던 거다. 아파서였든 세상이 싫어서였든 거기 들어와서 아내로부터 김치와 고기를 받고 있는 거였다. 어떤 사람은 밑반찬도 받더라. 아니 그러면,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아내가 하고, 아이들 양육도 아내가 하고, 그러면서 간혹 산속에 있는 남편 찾아와서 김치를 줘..... 이게 뭐하는 것이여, 시방????
주말에 본 방송에서 또 묵은지 꺼내먹는 것 보고, 갑자기 사두고 안읽은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또 딥빡침이 왔어...
몇 장 안읽었는데 아 너무 재미있어. 길지만 일단 첫 부분에 나와 있는 글을 좀 옮겨보겠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이 경제학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매일 아침 1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식구들에게 필요한 땔감을 모아 오는 11세 소녀는 국가의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총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를 계산할 때 그녀는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에도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정원을 가꾸고, 형제자매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 기르는 소의 젖을 짜고, 친척들의 옷을 만들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활동 중 어떤 것도 주류 경제학 모델의 '생산 활동'에 포함도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성이 있다. (p.30-31)
아,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똑똑한 여자들 진짜 너무 좋아. 이 책에 대해서는 인용할 부분이 많을 것 같고 할 얘기도 많을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다 읽고 나서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나는 참신하고 찰진 다른 욕을 좀 찾아봐야 할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