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인질이다 열다 페미니즘 총서 3
디 그레이엄.에드나 롤링스.로버타 릭스비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국민학교 시절, 해마다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가 있었다. 과학 서적 읽고 글쓰는 대회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있었고. 나는 과학상상화 그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어도 내가 그리는 거라고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뿐이었다. 태양을 그리거나 지구를 그리고 옆에 날개 달린 자동차를 그리는 것. 나는 그것말고 다른 어떤 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주 어릴적부터 나는, 스스로 상상력이 아주 부족한, 거의 전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삼십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서 만났다.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상상력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는 상상력이 전무해' 라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그때 내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나는 너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내가, 상상력이라고?


친구의 말은 그랬다. 너처럼 책 한 권을 읽고도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그려보려 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도 친구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상상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다른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 노력이야말로 상상력이라고. 나는 그것을 그저 공감능력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나에게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는거구나, 생각했다. 그간 내가 생각해온 상상력이란 것은,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그것이 아예 내게 존재하지도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아, 내게도 상상력이 있는 거였어, 맞아, 그것은 상상력이지! 라고 생각했던 십 년전의 시절이 있었다면, 이 책, '디 그레이엄'의 《여자는 인질이다》를 읽고, 상상력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됐다.



여러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상황과 '다른' 상황을, '다른' 사람을, '다른' 순간을, '다른' 장소를!




디 그레이엄과 공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현재 이성애를 대부분 하고 있고, 여성성을 갖추려하고, 남성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상황들이 건강하거나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임을 반복해 드러내준다. 은행강도였던 인질범과 인질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만약 남자들로부터 생존위협을 당하는 게 아니었다면, 폭력과 강간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우리는 남자를 사랑하고, 아름답기 위해 애를 썼을까? 라는 질문을 반복해 던진다.


물론 지배와 피지배로 이루어지지 않은 수평적 사회라고 해도 우리 여자들은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위협이 없는 세상에서의 이성애는 그 전의 이성애와는 다를 것이다. 디 그레이엄과 공저자는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가는데, 이 논리적이고 똑똑한 문제 제기 앞에 어느것 하나 허투루 쓰여지질 않았다. 모든 면에서 디 그레이엄이 초기에 경고한 문구는 정확했다. 바로 그대로였다.



이 책을 쓴 공저자로서 나와 내 동료들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한다. 첫 번째로 우리는 여기서 여남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이며, 여러분은 다시는 이전 같은 방식으로 여자, 또는 남자, 또는 여남 관계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는 건 감정적으로 힘겨운 여정이 될 것이다. (p.35)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이제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자기 만족이라며 꾸밈 노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과연 자기 만족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이 이념적, 물리적으로 고립되는 것,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남성과 여성과의 관계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현상. 이 모든 심각한 문제들과 원인들에 대해 잔인하게 쑤셔놓고, 그런데 디 그레이엄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답으로, 놀랍게도,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를 방법으로 내놓는다.


뭐라고?

뭐라는거야?

지금 한낱 소설읽기를 대안으로 내놓는거야?



나는 이 생뚱맞은 방법에 대해 당황스러워졌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똑똑하며 심지어 무섭기까지 한 책에서 갑자기 SF 소설 읽기가 왜나와?


그러나 여기서 바로 '상상력' 이 출현한다.



상상력과 용기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굳세게 사회적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 (P.349)



디 그레이엄은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 Herland》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들을 통해 그 안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녀들 스스로를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해 얘기해준다.



루스(팁트리 단편의 주인공)는 남성 폭력을 무시하지도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본인의 인식만을 문제 삼지도 않고, 일이 잘못됐을 때 본인의 행동만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는 타인도 책임감 있게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p.353)



길먼과 티트리의 작품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근거 없이 남자를 깎아 내리지도, 그렇다고 용납해서는 안 되는 남자의 행동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행동의 책임을 묻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남자에게 느끼는 공포를 인정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자아 성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본인을 믿기에 적절한 순간에 타인을 불신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이 불신 덕분에 무력하게 변화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 (p.354)



이밖에도 다른 소설들을 가져오며 우리가 분노할 수 있어야 하며, 공감하고 모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우리가 이런 소설들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있고, 상상할 수 있어야 거기까지 갈 힘도 생긴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거나 생뚱맞은 게 아니라, 당연히 밟아나가야 할 수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SF 소설을 읽고 지금과는 '다른' 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이 이 책의 저자들이 내세우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여성이 여성의 편이 되어주어야 하고,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비전을 갖고, 여성들끼리 모이고,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잘 돌보고 잘 먹고 잘 살라고.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알고 인식하고 반항하고 있으니까.



이 책에서 공저자가 내놓는 방법이라는 것은 사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각자 깨달으며 서로 응원하는 방법들이기도 했다. 자, 우리 이렇게 하자,  이야기했던 방법들이 모두 디 그레이엄의 책 속에 있었다.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까, 나는 어떻게 견뎌내고 또 탈출해야 하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이런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과 이 책에서 언급됐던 《시녀이야기》까지. SNS 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에게 추천해주었던 책들의 목록이다.



고립된 상황에서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겠지만, 아주 많은 여자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 알고 있고, 방법을 찾으려하고, 찾아낸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 앞으로 가고 있다. 더 열심히 읽고 쓰고 더 열심히 잘 먹고 잘 살아서 나 역시 페미니스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



오타가 많아 좀 거슬리긴 했다. '있다'를 '없다'로 오타내거나 '인질'을 '인질범'으로 오타를 내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표시를 해두지 않아 페이지를 적을 순 없는데, 이 책은 다시 한번 검토해 오타들을 좀 찾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책의 내용 자체로는 그동안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도서 중 가장 좋았다. 가장 후벼팠으며 가장 냉정하고 또 냉철한 책이었다. 완벽한 책이고, 그래서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이다. 스티키 북마크를 엄청 붙였고, 무지개 색연필을 들고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책 한 권에 전부 밑줄 긋고 싶었다. 책장을 덮으며 분노와 의욕을 넘어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몇 번이나 거듭 다짐하게 되었다.


상상하자.

상상할 수 있어야 행동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어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










모든 여자에게는 공동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여자가 단체에 가입해 본인이 겪는 문제를 토로하다가, 그게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걸 깨닫고 나면 왜 모든 여자가 같은 특정 문제를 겪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 문제의 근원인 사회의 여남 구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정치화하며, 우리가 여자의 시각을 개발해 이념적 고립에서 탈피하도록 해준다. 여기서 여자의 시각이란 여자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자가 처한 상황의 분석에서 가지를 뻗는 시각이다. 그리고 이 시각이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이념의 재료다. - P204

여자가 본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이론이자 사회적 운동인 페미니즘을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고립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를 인질로 삼은 남자들의 시각만 접하도록 구조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여자가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두려워한다는 건 우리의 인권 투쟁을 남자들이 성공적으로 막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자로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남성 지배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204

여자라는 집단이 처한 상황은 머리에 총구를 겨눈 인질범에게 "도망치려고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을 받는 인질과 유사하다. 인질에게 어떤 힘이 있다면 그 힘은 인질범을 통해 얻은 힘이다. 대리로 경험하는 힘이자, 인질범이 인질에게 나눠주기로 결정한 힘이다. ("잘만 하면 죽이지는 않겠어." "말을 잘 들으면 오늘 밤엔 의자에 앉아서 자는 대신 바닥에 누워서 자게 해주지.") 이런 상황에서, 여자(인질)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은 단기적으로 볼 때 남자(인질범)편에 서는 것이다. 그러면 남자(인질범)가 여자(인질)에게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고, 남자(인질범)가 보기에 ‘착한 행동‘을 하면 상을 받기도 한다. - P206

심리 치료사인 캐럴린 코워치Carolyn Kowatch에 따르면 남편이 크로스 드레서나 트랜스섹슈얼인 여자들이 와서 남편은 겁이 없어서 밤에 여자 옷을 입고 나갈 때도 전혀 조심하지 않는다고 호소할 때가 많다고 한다. 즉 남자는 남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여자로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여자처럼 차려입더라도 겁을 내지도 않고, 밤에 혼자 길거리를 걷지 않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지도 않는 것이다. - P223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유대감은 결코 건강한 사랑일 수 없다. 유대감을 조장하는 환경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가 공포 상황에 부닥쳐 자기 감각을 마비시키려는 환경에서 유대감이 생기는 만큼, 유대감은 중독적인 성격을 띤다. 여자가 절박하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이 주제는 5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건강한 사랑은 이렇게 절박한 성격을 띠지 않는다. - P239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 나 ‘사랑 앞에 장사 없다‘ 같이 흔히 쓰이는 말에서는 여자가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통제력을 발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런 문구를 논리적으로 따져보자. 정말 여자가 사랑과 영향력을 발휘해 남자를 길들일 수 있다면, 어떤 폭력적인 관계라 할지라도 관계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여자의 잘못이 된다. 다 야만적인 파트너를 길들이는 기술이 부족했던 여자의 탓이다. 파트너에게 지속해서 맞고 살아온 여자들의 수기를 볼 때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런 결론에 도달한다. - P241

여자는 화를 내면 개인 간 관계가 망가지거나 파탄날 수 있다고 여기고, 그런 대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255

여자는 절박하다. 남자의 친절을 붙들어 매야만 한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어떨 때 남자가 행복한지, 슬픈지, 화를 내는지, 우울한지, 만족스러워하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남자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태에 깃든 뉘앙스 하나하나를 해독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남자보다 대화 상대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루빈의 논문은 여자는 상대를 쳐다보면서 "우리가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남성 파트너에게서 신호를 감지한다"고 추측한다. 모든 나이대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타인의 비언어적 신호를 해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여자는 다른 여자의 감정과 생각보다 남장의 감정과 생각에 특히 예민하다. - P263

우리는 남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성격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도 바꾼다. 여자가 그나마 인지하고 있는 것도 성격적 변화보다는 신체적 변화일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신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하는지 한 번 떠올려보라. 우리는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하며, 변비약을 먹어 장을 비운다. 피부를 보기 좋게 태우기 위해 일광욕을 하거나 태닝 부스에 눕고, (항상 성적 흥분 상태인 것처럼 보이도록)화장을 하고, 눈썹을 뽑으며, 머리에 헤어롤을 만 채 잠자리에 든다. 코 수술을 받고, 가슴 확대 기구를 쓰고, 가슴 축소/확대 수술을 하거나 왁싱을 하거나 영구 제모 시술을 받고, 매직이나 파마를 하고, 머리를 고데기로 만다. 향수를 뿌리고, ‘여성청결제‘를 사용한다. 손톱을 칠하고, 젤로 연장하고, 인조손톱을 붙인다. 귀를 뚫고 코에 피어싱을 하며,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낀다. - P264

얼굴에 팩하고, 인조 속눈썹을 붙인다. 보정 속옷과 브래지어를 입고, 장신구를 걸치며, 하이힐을 신고, 갑갑한 옷을 입는다.
남자가 위의 행위를 하는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남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우리 몸을 바꾸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여자의 의지를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 P264

남자에게 매력적인 여자가 되기 위해 신체 변형까지 감수하는 현상은 네가지 사실을 반영한다. ⑴ 여자는 남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⑵ 여자는 남자들과의 연결고리를 갖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⑶ 여자는 남자들의 애정과 승인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⑷ 여자는 ‘있는 그대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로는)남자들의 애정과 승인을 받을 수 없다고 느낀다. - P265

여자는 남자보다 능력이 뛰어날 때조차 본인을 낮추고, 남자를 띄워주고, 본인의 성취를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서 남자의 기를 세워준다. 위기를 느끼는 남자야말로 여자에겐 위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P266

여자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성공한 남자보다 우리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 우리의 성공을 실력이 아닌 운 때문으로 돌리는 경향도 남자보다 강하다. 남자는 좀만 하면 성공하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미치도록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276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여자가 일을 더 잘했는데도, 놀랍게도 본인의 업무 수행에 매긴 점수는 여자나 남자나 비슷했다. 여자의 노동이 남자의 노동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남성 문화적 시각을 여자가 체화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결과다. 여자의 자존감이 하락한 상태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 P277

롤런드의 책에 따르면 페미니스트 여자는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여자와는 달리 개인으로서의 삶과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남자와 관계 맺는 걸 꺼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자는 대부분 남성 파트너가 없는 시기를 지날 때 공허한 감정이 든다고 토로한다. 이 공허함의 깊이가 바로 여자가 자아감을 잃어버린 정도라고도 할 수 있다. - P278

현재 시점에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여남이 평등한 관계를 맺고 여자가 안전한 상황에서의 여성 심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 P295

남자는 여자와 ‘떡 치는‘ 행위를 여자를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행위, 즉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본래 목적에 맞게 여자를 사용하는 행위로 여긴다. ‘떡 쳐진‘ 여자는 ‘값싼‘ 여자가 되어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남자는 더 마초 같고 강력해진다. 이성애 성관계가 남자를 남자로, 여자를 여자로 만든다고 여겨지는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다시 말해 성관계를 정의할 권력도, 실행할 권력도 남자에게 있으며, 그 결과 성관계는 남성 지배와 여성 종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의되고 실시된다. 가해자에게 유대감이 샘솟을 가능성이 가장 큰 순간은 여성 종속과 남성 지배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본질적인 순간, 즉 이성애 행위를 할 때라는 것이 공저자로서 우리의 주장이다. - P333

가부장제는 여자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도록 남성 폭력이나 경제적 제약 등 장애물을 세워 여자가 의존적이라는 환상을 유지한다. 여자가 원래 의존적으로 태어났다면 우리가 남자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온갖 장애물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믿어서는 안 되는 부분은 또 있다. 우리는 남자가 선의를 발휘해 ‘우리에게 권리를 부여해줄‘ 거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여자가 자랑스럽게 내 남편은 이런 일(예를 들어 직장 출근)도 하게 해준다고 말하는 건 남편이 본인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남편이 언제든 직장 출근을 그만두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 P355

피해자가 된 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 우리의 억압 상태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우리의 책임이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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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좋은 친구들 두셨네요. ㅎㅎ
이 포스팅 읽으면서 갑자기 이 책이 제시한 책 결말에 저도 ‘응?‘ 스러웠지만 곧 이해가 되는군요.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군요.

다락방 2019-05-20 17: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깜짝 놀라고 당황했었어요. 책의 내용이 어마어마한데 고작 소설읽기다 답이란 말이야? 라고 말이지요.물론 소설읽기만 답으로 내놓은건 아닙니다만.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요. 갇혀있고 닫혀있어서 상상이 불가하면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게 사실이니까요.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어떻게 닿을 시도를 하겠습니까. 불끈, 하고 뭔가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책 더 많이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19-05-2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자의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라는 해결책 또는 대안에 처음에는 그런가? 했지만,
점점 그 방법, ‘읽기‘라는 혁명적 방법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2년생 김지영>라는 밋밋한 소설이 우리의 현실과 현재를 강타했던 경험도 생각났구요.
페미니즘 소설 모음집 <혁명하는 여자들>의 ‘늑대여자‘도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저도 다락방님책과 비슷한 모습의 책인증샷 얼른 올리고 싶네요.... ㅠㅠ

다락방 2019-05-20 17:59   좋아요 0 | URL
저는 그간 SF 소설을 거의 안읽었거든요. 그점에 있어서 참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도 sns 를 통해 많이 추천 받았는데 한 권 사두고 안읽었고요. 이 책에서 언급됐던 단편들이 체체파리.. 그 책에 있다니까 그 책도 사서 얼른 읽어야겠다 싶었어요. 너무 멋진거에요. 연구하고 생각하고 논문을 쓰면서 결론으로 책을 읽어라, 여자들아, 하는거요. 그것도 소설! 그런데 그게 생각과 달리 생뚱맞지 않은 합리적 결론이라는 게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님의 책 인증샷 기다리고 있을게요! 울지마세요 ㅠㅠ

블랙겟타 2019-08-0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쩐지-
여기에 이번에 읽을 책들이 나오더라구요.
저도 앞으로 SF소설을 찾아 읽어보려구요.
아! 일단 시녀이야기 부터 (๑◔‿◔๑)
 

열 살 조카가 일곱 살 조카와 자주 싸우는데 어제는 크게 싸운 모양이다.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싸워서 엄마랑 아빠한테 그만싸우라고 혼났는데,


"도대체 왜 나한테 동생이 있어야 돼!"


라고 울며 학교에 갔다고...


이에 마음이 안좋은 할머니,엄마,아빠가 고민이 깊어 각자 나에게 이걸 어쩌면 좋냐고 물었다.


울엄마는 "어떡해야 할까?"

여동생은 "언니, 동생이 있어야 되는 이유가 뭐야?"

제부는 "처형이 아이랑 얘기좀 해줘요."



내가 조만간 가서 아이랑 데이트를 해봐야지 싶지만, 그렇지만..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나 역시 어릴 적에는 동생들하고 엄청 싸웠고, 게다가 삼남매인만큼 다른 한 명을 내 편 만들어 세 명중에 막 한 명을 왕따 시키려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이런 일은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서, 내가 여동생하고 편이 되기도 하고 내가 남동생하고 편이 되기도 하고 남동생이 여동생하고 편이 되기도 하고... 내가 외동이길 바란 적은 또 얼마나 바랐던가! 언제부터였나, 우리가 다 머리가 커서 그런지 서로 끔찍하게 위해주는 사이가 됐고, 이제는 세상 누구보다도 내 편임을 확신하고 또 의지가 되지만, 그렇지만 이걸 아이에게 어떻게 설득력있게 말한단 말인가.


"나중에 크면 다 의지가 돼."


이거 너무 설득력 없다. 아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 동생이 왜 있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는데, 거기다대고 '나중에 크면' 같은 말이 무슨 소용인가.


"동생이니까 사랑해야 돼."


이거야말로 지금 아이가 동생 때문에 속상한데 또 무슨 막말이여..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동생은 왜 있어야 되는건가요?

아이에게 해줄 말은 도대체 뭐가 있을까요?

아니면.. 이럴 때 아이가 보기 좋은 책은 뭐가 좋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이 있어야 하는 이유' 같은 걸 모르겠다 ㅠㅠ




어제 오전 울며 학교 간 아이는 오후에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스마트폰 데이터를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제엄마에겐 비밀이라고 다짐을 받은 뒤, 데이터를 준 이모에게


"이모 사랑해"


말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이럴 때만?"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웃어서 다행이지만, 아무튼 이모는 너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할지 좀 생각해보도록 하마.



우리 조카들, 크느라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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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1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아닌데 영화 ‘꼬마 니콜라‘(2009년 개봉)에 동생이 싫어서 미쳐버리는 꼬마들이 등장합니다. 근데 나중엔 동생 만들어 달라고 난리죠. 이 영화 아이들도 귀엽고 재미나서 볼만한데.... 조카가 1시간 30분쯤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을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네요.

책으로는 제가 같은 고민을 하던 제 조카에게 예전에 사준 책인데 <심술쟁이 내 동생 싸게 팔아요>- 이 책 보더니 좀 생각을 하는것 같더라고요.

다락방 2019-05-16 10:59   좋아요 0 | URL
오오 꼬마 니콜라 책에도 그 내용 있었던 것 같아요.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리고 그 책을 제 조카도 읽었는데... 영화를 어떻게 볼 수 있나 한 번 검색해봐야 겠어요.

책 추천도 감사해요! 책도 읽어볼게요. 책 추천이 간절했어요. 불끈. 감사합니다!

hnine 2019-05-1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주제로 동화까지 써본적이 있어요 ㅋㅋ
그런데 이 세상엔 이유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요?
동생이 있어야 하는 이유, 언니가 있어야 하는 이유, 이런 것들엔 이유가 없다고 하겠어요 저라면.
물론 조카도 정말 그 이유가 알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닐 것 같고요.



다락방 2019-05-16 12:2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나인님. 아마도 홧김에 저런 말을 했겠죠.
저것이 진지한 질문이라면, 어른의 경우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럴 경우 필요하지 않다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될테니까요. 저 역시 어릴 적에 외동이길 바랐던것만큼, 순간순간의 형제 싸움에 화가 나서 그런것일테고, 또 오후에는 방긋 웃으며 이모 사랑해 한만큼 그 순간의 기분은 사라진것 같긴 해요. 그렇지만 어떤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적당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요 ㅠㅠ

맞아요, 이유는 없겠죠. 언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동생이 있어야 하는 이유.. 이건 정말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9-05-16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생으로서는 언니가 있어서 너무 좋긴했어요 ㅋㅋㅋㅋㅋ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흔치않은 기회잖아요! 그렇지만, 내가 언니라도 싫었을듯.

다락방 2019-05-16 17:40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릴 때 자꾸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해서 너무 싫었어요. 그게 너무 속상해서 ‘왜 자꾸 나한테 양보하라는거야‘ 하고 울었던 기억도 나요. 전 그래서 지금도 어른들이 큰 아이에게 ‘니가 누나니까‘, ‘니가 언니니까‘ 이러면서 양보하거나 참으라고 하는 거 보면 진짜 거대한 빡침이 몰려와서 그러지 말라고 해요. 왜 첫째만 양보시키냐고요. ㅎㅎ

단발머리 2019-05-16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웃을 일이 없는 요즘이지만, 웃기도 죄송한 요즘이지만.....
다락방님 큰 조카 생각하며 한 번 웃습니다.
고마워요....

다락방 2019-05-17 13:43   좋아요 1 | URL
어제는 학급이 유튭 동영상촬영 상탔다고 좋아가지고 전화해서 자랑하더라고요. 대박이라고 엄청 제가 축하해줬어요. 이모한테 전화해서 상탄 거 자랑하는 아이 너무 예뻐요 ㅠㅠ

웽스북스 2019-05-1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서 이런 책의 추천을 봤었어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5403882

다락방 2019-05-17 14:19   좋아요 0 | URL
위에 잠자냥 님이 추천해주신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저는 이미 벌써 질렀고! 오늘 제게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후훗.
아 저 w 님 덕에 학원전도 주문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샤론 볼턴'의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나에게 정말 천재적인 작품인데, 알라딘의 리뷰들을 보면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일뿐...


이 소설을 통해 샤론 볼턴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은데, 나는 그녀가 그 말을 하는 방식도 가히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주인공 클래라의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에서 나는 작가의 천재성을 본다. 만약 그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시작했다면 나는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미리 선입견을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아주 자연스레, 등장인물들과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그녀의 상처를 드러낸다. 그러니 읽고 있던 나로서는 자연스레 '뭐라고?' 하게 되는거다. 아, 그랬어? 여기까지도 놀라워서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는데, 게다가 그 상처의 원인에 대해서도 또 자연스레 이야기가 흐르고 흐르다가 밝혀진다. 독자는 내내 '아 그랬어?' 하다가, '그렇다면 왜그랬을까?' 하게 되는데, 작가는 마치 독자들이 그럴 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지만 그거 그렇게 유난떨거 없다는 듯, 말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준달까. 어떻게 이렇게 영리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게다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에 대해서도 역시나 '자연스럽게' 얘기해주고, 그런 한편 주인공 클래라가 그렇게 고집스러운 성격인 것이 반드시 옳다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며칠전에 이 책을 다 읽은 친구와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정말 이야기 진행 잘하더라, 하는 이야기. 아아, 같은 책을 읽으면 할 말이 많아지는데, 작가에 대해 정말 이야기 흐름 잘 진행하지, 하며 사건과 그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이 책을 다 읽은 친구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사건의 해결 흐름과 주인공 사연에 대한 이야기가 병렬로 이어지는 와중에 두 흐름의 클라이막스가 일치되어 가는 게 아니라 살짝 비껴져서 배치됐다" 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사건의 해결흐름, 주인공 사연 모두 놓치지 않고 흥미와 재미를 가지고갈 수 있다는 거다.


크- 여러분 이런 친구 있어요? 같은 책 읽고 이렇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친구? 게다가 봐, 겁나 잘 읽어내잖아? 크-




친구는 샤론 볼턴의 책은 이게 처음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친김에 작가의 다른 책, 《희생양의 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희생양의 섬, 이 구절을 정말 좋아한다고.


"글쎄, 이곳에선 적응을 잘 못한 것 같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요. 이곳 섬들은 작지만 강력한 패거리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체격이 큰 금발의 남자들 말이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스코틀랜드 대학을 다녔고, 노르웨이 부족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 말이에요. 토라, 생각해봐요. 병원의 아는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장이나, 경찰이나 치안판사, 또 상공회의소, 지역 시의회까지, 그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요."

그 점에 관해서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꽤 많은 섬 주민들이 눈에 띄게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여러차례 실감한 터였다. (p.249)
















나야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맥락을 알지만, 이 책을 읽지 않은 친구는 이 구절의 어떤 부분이 좋았던 거냐고 물었다.



- 이 구절 속에서는 작은 섬이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차지하잖아. 그렇지만 이건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지.

- 아아

- 백인 남자들이 지배하고, 전세계적으로 남성들이 주요한 위치를 다 차지하고. 작가는 그 얘기를 이 섬에 빗대어 한 것 같아. 그게 너무 좋았어.

- 거꾸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겠네. 백인 남자들이 지배하고 전세계적으로 남성들이 주요한 위치를 다 차지하는 그 짓이 이 세계를 자그마한 섬으로 만드는 짓이다.

- 크- 해석 좋다.

- 아니야 나는 니가 말하기 전까지 저 구절은 그냥 사실적시라고만 생각했어. 과연 니가 좋아할만하네.

- 나는 이 작가가 이래서 좋아. 할 말을 되게 세련되게 해.



아아, 친구 너무 좋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캐치하는 똘똘이 친구...

이 친구와는 일전에 '앤젤라 카터' 의 《피로 물든 방》으로도 좋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크-

내가 살아보니까, 나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더라.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않은 면을 보고 반하곤 한다는데, 나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정말 너무 끌려. 진짜 멋져. 그렇다면....나는...나는...........Orz




다시, 샤론 볼턴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샤론 볼턴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참 좋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너무 마음에 든다. 똑똑하고 세련됐어. 앞으로 샤론 볼턴이라면 무조건 읽자는 주의가 되었는데, 아직 국내에 샤론 볼턴의 작품은 두 권밖에 나와있질 않다. 출판사들, 힘내요!! 책만 내줘요, 읽는 건 내가 할게!!!




샤론 볼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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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의 '아빠' 와 '윤아'의 '엄마'는 불륜관계다. 주리의 아빠는 아내가 있고 고등학생 딸이 있으면서도, 고등학생 딸을 홀로 키우는 윤아의 엄마와 연애(?)를 하고 있다. 게다가 윤아의 엄마는 주리 아빠의 아이를 임신까지 한 상태. 주리는 주리대로 이 사실을 주리의 엄마가 알게될까봐 두렵고 윤아는 윤아대로 남편 없는 자신의 엄마가 아이를 낳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게 두렵다. 윤아는 어느 밤, 엄마에게 그 아이를 지우라고 말한다.



"그 아저씨가 이혼이라도 한대? 안한대지?"

"전화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물어봐. 왜, 이 시간에는 가족들이랑 있으니까 전화하지 말래?"


윤아의 말은 뼈를 때리는 말인데, 이에 윤아의 엄마는 윤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미안하지만."




아마 윤아의 엄마는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을 것이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딸의 눈에도 훤히 보이는 진실을, 윤아 엄마는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비참함이지 사랑이 아닐테니까. 임신까지 한 마당에 그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실은,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저 우리가 가진 환상, 거짓된 믿음, 착각하고 싶은 마음일뿐,

'사실'은,


그 사람은, 역시나, 그런 사람이다.



현재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지켜보았을 때 어리석어 보이는 관계, 그러니까 고등학생 딸이 짐작한 바 그대로,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윤아의 엄마는 그들의 관계가 바깥으로 드러나서야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내가 힘들 때 나에게 오지 않는사람, 자신이 한 일을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 그 남자가 말하는 그 '실수'로 여자는 많은 나이에 임신까지 했건만! 남자는 가정을 깰 생각도 없었고, 아내에게 무릎을 꿇었고, 병원에 입원한 '불륜의 애인'에게는 찾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아, 대체 왜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했단 말인가!



게다가 윤아의 엄마는 이미 윤아의 아빠로부터 한심한 남자의 전형을 목격한 바가 있다. 아버지 구실을 못하는 남자, 남편 구실을 못하는 남자를 이미 겪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주리의 아빠와 사랑에 빠져서는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대체 왜,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경우 다시 사랑에 빠지지 못하게 될까봐여서겠지. 그렇다면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길래 굳이 다시 사랑에 빠져야했을까.



윤아의 엄마는 혼자 식당을 운영하면서 '여자 혼자 운영한다고 돈 떼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식사대금을 선불로 받는다.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든 것들에서 그녀는 남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자신의 옆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이 남자도 그 전의 남자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이었어.


여자여, 왜 그 남자와 사랑에 빠졌나요? 그것은... 사랑인가요?




며칠전 읽었던 《여자는 인질이다》의 이 구절이 떠올랐다.



스톡홀름 증후군 일반화 상황 2는 피지배 집단에 속한 개인이 지배 집단에 속한 친절한 특정 개인에게 보이는 반응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 집단-피지배 집단은 예컨대 부자-빈자, 백인-흑인, 남자-여자, 이성애-동성애 집단이 맺는 관계다. 개인은 소속된 집단에 따라 특정한 종류의 트라우마를 겪거나, 친절을 베푸는 처지가 된다. 이건 예측 범위 내에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친절한 지배 집단 일원과의 접촉 자체는 무작위적이다. 즉, 피해 집단의 특정 일원이 지배 집단의 특정 일원과 접촉하게 될지 아닌지는 우연이 결정한다.

예를 들어 남성이라는 집단이 여성이라는 집단에게 폭력적인 상황에서 특정 남자가 특정 여자에게 친절을 보인다면, 여자 개인은 이 친절한 남자 개인에 대해 스톡홀름 증후군 일반화를 겪게 된다. '남자는 안 믿는다', '남자는 믿을만한 족속이 못 된다'라고 말하는 여자가 내 남편이나 남자친구는 예외라고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경우다. (p.124)



위의 구절은 윤아 엄마에게 겹쳐졌다. 이미 빌어먹을 남편을 겪어냈으면서, 그러나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남자를 감싸는 모습. 그리고 또다시, 빌어먹을 남자를 겪어내고야 만 현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우리는 억압된 현실속에서 아주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억압하지 않은 현실을 갈구하기 보다는, '아아, 친절해' 하는 것. 얼마전에 본 영화 《콜레트》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지 않던가.


'목줄을 느슨하게 맸다는 게 목줄을 안 맨 건 아니지'



린다 러브레이스 본인은 데이비드 윈터스가 "트레이너와는 정반대로 보였다"라고 말하지만, 러브레이스가 두 남자를 설명한 내용을 유심히 보면 둘은 유사한 점이 많다. 윈터스도 트레이너처럼 연예 산업 종사자였으며, 린다를 이용해 생계를 해결한 것도 트레이너와 같았다. (윈터스는 린다 통장의 돈을 자기 돈처럼 썼고, 트레이너는 린다의 성적 행위를 상품처럼 팔아먹었다.) 윈터스가 트레이너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다. (p.123)





노예 소유주가 친절을 베풀면 수하의 노예들은 노예제의 멍에가 견딜만하겠지만, 노예 제도의 극악무도함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p.201)




실제로 우리는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할 때 의존성이 제일 강해지며, 빵 쪼가리에 가까운 친절에도 가슴 벅차하게 된다. (p.201)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준다는 데에 감격해서 애초에 보호가 필요한 이유가 남자의 폭력 때문이라는 점을 잊는다. (p.190)



여자는 여남 소득 격차 때문에 남자와 손을 잡으면 생활 수준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남자가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게 해주거나 그럭저럭 살만하게라도 해주면 당연히 여자 처지에서는 남자가 친절을 베푼다고 느낄 수 있다. 여자 대부분이 남자라는 끈만 놓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여자의 임금을 남자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바로 남자다. 여자에게 남자의 친절이 필요하게 한 범인이 남자라는 말이다. (p.194)



누군가에게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이 내 입밖으로 나온 순간, 바로 그 때, 그 관계를 다시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친절은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 사람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신변이 안전한 상황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사소한 친절도 신변이 위협받거나 심신이 약해졌을 때는 크게 느껴진다. 앤절라 브라운Angela Browne의 책에 따르면 파트너의 구타에 시달리는 여자 중에는 파트너가 폭력을 중지하는 것을 친절하다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p.95)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적 폭력을 정신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하지만, 파트너 구타에 시달리는 여성 피해자나 전쟁 포로를 다룬 연구를 보면 실제 신체 폭력보다 폭력을 가하겠다는 협박이 심리적으로 더 큰 가해다. 많은 피해자가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처럼 감정적인 학대에 노출되었을 때 신체적 생존이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로 정신적 폭력은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혹은 신체적 폭력보다도 더 스톡홀름 증후군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 P93

피해자는 ‘당할 만해서 당한다‘라는 인질범/가해자의 착각을 내면화하면서 피해 사실을 부끄러워하게 되는데, 피해자는 이런 수치심 때문에 가해자와는 시각이 다른 타인과 선뜻 가까워지지 못하고 고립되기도 한다. - P96

장기간 감금되어 있던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가해자와 분리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그중 두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먼저 고립돼 있던 기간 동안 피해자가 맺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긍정적인 관계는 가해자와의 관계다. 피해자는 이 관계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 앞서 언급했듯 피해자는 가해자가 심은 공포로 인해 보살핌, 보호, 안전을 갈구하며,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이를 찾으려 한다. 두 번째로 피해자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정체성은 가해자의 눈으로 본 자기 자신이다. 피해자는 이 정체성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버려지는 것이 두렵고, 외로운 것이 두려우며, 가해자 없이 살 수 없을까봐 두렵고, 가해자가 없으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될까봐 두렵고, 공허함이 두렵다. 피해자의 두려움이 클수록 피해자가 더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었다는 뜻이 되며, 피해자의 자아감이 더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 P102

아동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의 눈을 통한 자아감이 평생 유일하게 가져본 자아감일 수 있다. 성인 피해자는 이 자아감 이전에 가졌던 자아감을 밀어내고 자리잡았을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가해자에게 벗어나 자아감 없이 산다는 건 심리적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 P103

인질극이 끝나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리를 지키는 건 가해자가 자신을 ‘잡으러‘ 다시 돌아올 것이고, 이번에는 가해자가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고(살려주지 않을 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한 번 당했다는 게 다시 당할 수 있다는 증거로 느껴진다. 피해자는 나머지 평생을 자칫 가해자를 배신할까 두려워하고, 다시 가해자가 자길 잡으로 올 때를 준비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가해자와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멀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옆에 두길 원하는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에게서 멀어지면 기겁할 것이다. 피해자가 만사를 가해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피해자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다. - P103

피해자는 (1)목숨을 위협했던 사건을 둘러싼 본인의(부정적, 긍정적)감정을 직면해야 하고 (2)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사용했던 생존 전략 중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을 인지한다.) 이렇게 공포를 극복해야만 다시 두려운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라앉을 것이다. - P104

표 2.2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사랑한다고 믿는 것과 피해자가 본인을 탓하는 것, 두 가지 인지 왜곡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오귀인misattribution이라는 개념부터 알아보자. 오귀인은 원인을 잘못 짚어 생각한다는 뜻이다. 피해자는 본인이 흥분 상태이고 가해자에게 과잉된 관심을 보이는 게 공포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오귀인은 피해자가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생기는 잉ㄴ지 왜곡이다. 이런 오귀인(인지 왜곡)없이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생기지도, 계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월스터와 버샤이드의 표현대로 "피험자가 … 본인의 경험을 사랑으로 규정짓는 순간, 그건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 P108

스톡홀름 증후군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며,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타인과 고립되어 있으며, 가해자/인질범의 사소한 친절을 목격한 개인이 있다. 이 개인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가해자/인질범과 친해지는 것임을 깨닫고, 실제로 가해자/인질범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과 친해져야 하고 그 사람에게 유대감을 느껴야 하므로, 스톡홀름 증후군 발생은 상당한 인지 왜곡 없이는 불가능하다. 피해자는 무의식적으로 학대 부정이라는 인지 왜곡을 통해 위험과 트라우마 가능성을 잊으려 하고, 학대 부정은 가해자와의 유대감 형성을 촉진한다. - P128

학대가 꼭 이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만 여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파트너에게 맞고 사는 여자 중 많은 수는 자살 사고와 자살 시도, 실제 자살로 걸어 들어간다. 차마 가해 파트너를 살해하지는 못하는 여자들에게는 자살이 학대를 멈출 유일한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146

모든 아동은 생존을 위해 모부에게 완전히 기댈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모부의 인질이라고 볼 수 있다. 모부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을 때, 모부다 실제 신체적 폭력을 쓰거나 폭력을 쓰겠다고 위협할 때 아동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 P152

러셀은 맥키넌의 요청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선정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930개 가정의 설문을 바탕으로 여자가 평생에 걸쳐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겪지 않을 확률을 구했다. 그 확률은 단 7.8%에 불과했다. - P164

남자가 여자에게 성폭력을 가함으로써 남근이 여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확립되면, 남자는 일상적으로 여자와 상호작용할 때조차 이런 폭력에서 이득을 얻는다. 그저 자기는 남근이 있고 여자에겐 여근이 있다는 걸 환기하기만 해도 우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성폭력을 가해서 남근이 위고 여근이 아래라는 생각을 주입하는 남자는 일부지만, 결국 일부 남자의 폭력이 늘수록 모든 남자가 더 큰 이득을 보게 된다. - P171

많은 여자는 남자가 가장 친절할 때가 성관계를 가질 때라고 말한다. - P195

‘박는다‘는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 말이 함의하는 행위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 P196

지배가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지배는 우리 눈에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남자는 두 가지 논리로 이런 폭력을 합리화한다. 여자는 싫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성관계가 필요한 쪽은 여자라고 하기도 한다("박히면 좋아서 꼼짝 못할 주제에." 같은 말이 그런 생각을 담고 있다.) - P197

남자들이 함께 모여 여자를 어떻게 ‘따먹고‘ ‘박아볼까‘ 이야기를 하고 ‘진도‘를 운운할 때, 이들은 성관계는 여자랑 하긴 해도 남자끼리의 감정적 유대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성 동지들에게 "나랑 자는 여자보다 너희들이 더 중요해"라고 전하는 것이다. (이게 많은 남자가 어떤 여자랑 성관계를 갖는지에는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또한 여기에 여자와의 성관계는 착취가 목적이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남자들끼리 이런 대화가 이루어질 때, 남성 청자도 남성 화자와 여자의 성관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여자에게 ‘박고 있는‘ 남자 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남성 동지들이 지켜보며 서 있다. 남자가 여성 착취에 성공하면 그건 모두의 승리가 되고, 승리로 말미암아 남자끼리의 유대감이 강화되며, 이들은 여성성을 발밑에 깐 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하나가 된다.
- P198

오늘날의 문화에서 많은 남자는 여자가 비하당하고, 모멸감을 느끼고, 조종당하고, 고통을 받는 광경을 봐야만 ‘싼다.‘ 오르가슴을 느낄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여성 착취가 없으면 성적이거나 에로틱한 경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여자가 굴욕을 감수하기를 원하는 남자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남자의 돈으로 쌓아 올린 수백만 달러 규모의 포르노 산업이 그 증거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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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9-30 08:25   좋아요 0 | URL
방금 작성하여 보냈습니다!

2019-10-02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로나온 책들을 체크하다가, 아이고야,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셋트로 예약판매를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아직도 가끔 영화속의 자쿠지 씬을 돌려보곤 하는데(라라 진, 피터 너무 좋아!), 그리고 이 책이 다 번역되기를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셋트로 나왔다고?



오늘 이 소식을 회사동료에게 전했는데, 이미 원서로 완독한 동료는 내게 '라라 진의 성장일기로 너무 좋다'고 했다. 로맨스는 그저 거들 뿐. 아아, 역시 읽고 싶다. 성장.. 제가 너무 좋아하고요.



















아아, 너무 좋으다. 나오길 기다린 책이라 나와서 너무 좋으다. 그렇지만... 오늘 장바구니 비울 때는 넣을 수 없어. 미안해..조금만 기다려 주겠니? (글썽) 다른 책들이 먼저야. 순서를 기다리렴.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새로 나오면 우리가 같이 읽는 도서로 어떨까, 생각해보곤 하는데, 오늘 눈에 띈 책은 이것.
















[알라딘 책소개]



나디아 무라드 자서전. 2018년에 99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된 나디아 무라드는, 2014년 말랄라 유사프자이에 이어서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이기도 하다. 전 세계 38개국으로 번역된 이 책에는 IS 성 노예에서 폭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여성을 위한 인권 대변인으로 거듭난 나디아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나디아 무라드가 살았던 이라크 야지디 마을 코초에서 출발한다. 코초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누렸으며 늘 함께였다. 그러던 2014년 8월, 수니파 무장 단체 IS가 마을을 포위하면서, 이들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IS는 광기와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IS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은 집단 학살되거나 강간당했다.

나디아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디아의 오빠 여섯 명과 어머니는 죽임을 당했고, 나디아는 IS 대원의 성 노예가 되었다. 나디아는 IS가 시장 혹은 페이스북을 통해 팔아넘긴 수천 명의 야지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IS 대원에서 또다시 IS 대원에게 넘겨지며, 반복된 폭력을 겪었다.

<The Last Girl>에는 나디아 무라드가 맞닥뜨린 끔찍한 사건과 목숨을 건 탈출 과정이 담겨 있다. 담담한 서술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디아가 겪은 고통이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의 목소리는 인권을 유린당한 모든 여성의 목소리이며, 모든 난민의 목소리이다.



오, 송은일의 신간도 나왔네?!


















읽고 싶은 책들이 나와서 너무 좋고 또 너무 싫다... 저걸 언제 다 사서 언제 다 읽는담. 그렇지만 읽을 책이 많다는 것은 또 너무 기쁘지. 그래서 좋고 또 싫다.

아무튼 나는 장바구니 비우러 가겠다.

책 안사고 참아볼라했는데, 스티키 북마크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사야한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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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1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구요? ㅋㅋㅋㅋㅋㅋ 스티키 북마크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사야 한다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제가 눈 가렸으니까 얼른 ‘아웅‘ 해보세요. ㅋㅋㅋ

다락방 2019-05-15 11:01   좋아요 0 | URL
진짜에요, 진짜라니까! 진짜라구욧!
(정말 눈 가린 거 맞아요? ㅋㅋ)

syo 2019-05-15 11:15   좋아요 0 | URL
눈 가려도 다 보여요. 궁예야 궁예.

누구인가? 누가 스티키 북마크 소리를 내었어??

다락방 2019-05-15 12: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나 주문했어요. 스티키 북마크. 여섯 권의 책은 그저 거들뿐.... ( ˝)

비연 2019-05-1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아. 이러시면 곤란해요..ㅜㅜㅜㅜ

다락방 2019-05-15 17:18   좋아요 0 | URL
저는 일단 오늘의 구매는 마쳤고요, 조만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도 구매할 예정입니다. 으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