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인질이다 열다 페미니즘 총서 3
디 그레이엄.에드나 롤링스.로버타 릭스비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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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해마다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가 있었다. 과학 서적 읽고 글쓰는 대회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있었고. 나는 과학상상화 그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어도 내가 그리는 거라고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뿐이었다. 태양을 그리거나 지구를 그리고 옆에 날개 달린 자동차를 그리는 것. 나는 그것말고 다른 어떤 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주 어릴적부터 나는, 스스로 상상력이 아주 부족한, 거의 전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삼십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서 만났다.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상상력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는 상상력이 전무해' 라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그때 내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나는 너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내가, 상상력이라고?


친구의 말은 그랬다. 너처럼 책 한 권을 읽고도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그려보려 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도 친구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상상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다른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 노력이야말로 상상력이라고. 나는 그것을 그저 공감능력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나에게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는거구나, 생각했다. 그간 내가 생각해온 상상력이란 것은,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그것이 아예 내게 존재하지도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아, 내게도 상상력이 있는 거였어, 맞아, 그것은 상상력이지! 라고 생각했던 십 년전의 시절이 있었다면, 이 책, '디 그레이엄'의 《여자는 인질이다》를 읽고, 상상력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됐다.



여러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상황과 '다른' 상황을, '다른' 사람을, '다른' 순간을, '다른' 장소를!




디 그레이엄과 공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현재 이성애를 대부분 하고 있고, 여성성을 갖추려하고, 남성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상황들이 건강하거나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임을 반복해 드러내준다. 은행강도였던 인질범과 인질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만약 남자들로부터 생존위협을 당하는 게 아니었다면, 폭력과 강간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우리는 남자를 사랑하고, 아름답기 위해 애를 썼을까? 라는 질문을 반복해 던진다.


물론 지배와 피지배로 이루어지지 않은 수평적 사회라고 해도 우리 여자들은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위협이 없는 세상에서의 이성애는 그 전의 이성애와는 다를 것이다. 디 그레이엄과 공저자는 여러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가는데, 이 논리적이고 똑똑한 문제 제기 앞에 어느것 하나 허투루 쓰여지질 않았다. 모든 면에서 디 그레이엄이 초기에 경고한 문구는 정확했다. 바로 그대로였다.



이 책을 쓴 공저자로서 나와 내 동료들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한다. 첫 번째로 우리는 여기서 여남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이며, 여러분은 다시는 이전 같은 방식으로 여자, 또는 남자, 또는 여남 관계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는 건 감정적으로 힘겨운 여정이 될 것이다. (p.35)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이제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자기 만족이라며 꾸밈 노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과연 자기 만족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이 이념적, 물리적으로 고립되는 것,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남성과 여성과의 관계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현상. 이 모든 심각한 문제들과 원인들에 대해 잔인하게 쑤셔놓고, 그런데 디 그레이엄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답으로, 놀랍게도,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를 방법으로 내놓는다.


뭐라고?

뭐라는거야?

지금 한낱 소설읽기를 대안으로 내놓는거야?



나는 이 생뚱맞은 방법에 대해 당황스러워졌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똑똑하며 심지어 무섭기까지 한 책에서 갑자기 SF 소설 읽기가 왜나와?


그러나 여기서 바로 '상상력' 이 출현한다.



상상력과 용기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굳세게 사회적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 (P.349)



디 그레이엄은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 Herland》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들을 통해 그 안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녀들 스스로를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해 얘기해준다.



루스(팁트리 단편의 주인공)는 남성 폭력을 무시하지도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본인의 인식만을 문제 삼지도 않고, 일이 잘못됐을 때 본인의 행동만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는 타인도 책임감 있게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p.353)



길먼과 티트리의 작품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근거 없이 남자를 깎아 내리지도, 그렇다고 용납해서는 안 되는 남자의 행동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행동의 책임을 묻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남자에게 느끼는 공포를 인정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자아 성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본인을 믿기에 적절한 순간에 타인을 불신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이 불신 덕분에 무력하게 변화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 (p.354)



이밖에도 다른 소설들을 가져오며 우리가 분노할 수 있어야 하며, 공감하고 모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우리가 이런 소설들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있고, 상상할 수 있어야 거기까지 갈 힘도 생긴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거나 생뚱맞은 게 아니라, 당연히 밟아나가야 할 수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SF 소설을 읽고 지금과는 '다른' 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이 이 책의 저자들이 내세우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여성이 여성의 편이 되어주어야 하고,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비전을 갖고, 여성들끼리 모이고,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잘 돌보고 잘 먹고 잘 살라고.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알고 인식하고 반항하고 있으니까.



이 책에서 공저자가 내놓는 방법이라는 것은 사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각자 깨달으며 서로 응원하는 방법들이기도 했다. 자, 우리 이렇게 하자,  이야기했던 방법들이 모두 디 그레이엄의 책 속에 있었다.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까, 나는 어떻게 견뎌내고 또 탈출해야 하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면 결국 이런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과 이 책에서 언급됐던 《시녀이야기》까지. SNS 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에게 추천해주었던 책들의 목록이다.



고립된 상황에서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겠지만, 아주 많은 여자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 알고 있고, 방법을 찾으려하고, 찾아낸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 앞으로 가고 있다. 더 열심히 읽고 쓰고 더 열심히 잘 먹고 잘 살아서 나 역시 페미니스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



오타가 많아 좀 거슬리긴 했다. '있다'를 '없다'로 오타내거나 '인질'을 '인질범'으로 오타를 내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표시를 해두지 않아 페이지를 적을 순 없는데, 이 책은 다시 한번 검토해 오타들을 좀 찾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책의 내용 자체로는 그동안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도서 중 가장 좋았다. 가장 후벼팠으며 가장 냉정하고 또 냉철한 책이었다. 완벽한 책이고, 그래서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이다. 스티키 북마크를 엄청 붙였고, 무지개 색연필을 들고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책 한 권에 전부 밑줄 긋고 싶었다. 책장을 덮으며 분노와 의욕을 넘어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몇 번이나 거듭 다짐하게 되었다.


상상하자.

상상할 수 있어야 행동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어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










모든 여자에게는 공동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여자가 단체에 가입해 본인이 겪는 문제를 토로하다가, 그게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걸 깨닫고 나면 왜 모든 여자가 같은 특정 문제를 겪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 문제의 근원인 사회의 여남 구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정치화하며, 우리가 여자의 시각을 개발해 이념적 고립에서 탈피하도록 해준다. 여기서 여자의 시각이란 여자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자가 처한 상황의 분석에서 가지를 뻗는 시각이다. 그리고 이 시각이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이념의 재료다.- P204

여자가 본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이론이자 사회적 운동인 페미니즘을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고립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를 인질로 삼은 남자들의 시각만 접하도록 구조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여자가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두려워한다는 건 우리의 인권 투쟁을 남자들이 성공적으로 막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자로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남성 지배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204

여자라는 집단이 처한 상황은 머리에 총구를 겨눈 인질범에게 ˝도망치려고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을 받는 인질과 유사하다. 인질에게 어떤 힘이 있다면 그 힘은 인질범을 통해 얻은 힘이다. 대리로 경험하는 힘이자, 인질범이 인질에게 나눠주기로 결정한 힘이다. (˝잘만 하면 죽이지는 않겠어.˝ ˝말을 잘 들으면 오늘 밤엔 의자에 앉아서 자는 대신 바닥에 누워서 자게 해주지.˝) 이런 상황에서, 여자(인질)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은 단기적으로 볼 때 남자(인질범)편에 서는 것이다. 그러면 남자(인질범)가 여자(인질)에게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고, 남자(인질범)가 보기에 ‘착한 행동‘을 하면 상을 받기도 한다.- P206

심리 치료사인 캐럴린 코워치Carolyn Kowatch에 따르면 남편이 크로스 드레서나 트랜스섹슈얼인 여자들이 와서 남편은 겁이 없어서 밤에 여자 옷을 입고 나갈 때도 전혀 조심하지 않는다고 호소할 때가 많다고 한다. 즉 남자는 남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여자로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여자처럼 차려입더라도 겁을 내지도 않고, 밤에 혼자 길거리를 걷지 않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지도 않는 것이다. - P223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유대감은 결코 건강한 사랑일 수 없다. 유대감을 조장하는 환경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가 공포 상황에 부닥쳐 자기 감각을 마비시키려는 환경에서 유대감이 생기는 만큼, 유대감은 중독적인 성격을 띤다. 여자가 절박하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이 주제는 5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건강한 사랑은 이렇게 절박한 성격을 띠지 않는다. - P239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 나 ‘사랑 앞에 장사 없다‘ 같이 흔히 쓰이는 말에서는 여자가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통제력을 발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런 문구를 논리적으로 따져보자. 정말 여자가 사랑과 영향력을 발휘해 남자를 길들일 수 있다면, 어떤 폭력적인 관계라 할지라도 관계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여자의 잘못이 된다. 다 야만적인 파트너를 길들이는 기술이 부족했던 여자의 탓이다. 파트너에게 지속해서 맞고 살아온 여자들의 수기를 볼 때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런 결론에 도달한다. - P241

여자는 화를 내면 개인 간 관계가 망가지거나 파탄날 수 있다고 여기고, 그런 대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P255

여자는 절박하다. 남자의 친절을 붙들어 매야만 한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어떨 때 남자가 행복한지, 슬픈지, 화를 내는지, 우울한지, 만족스러워하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남자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태에 깃든 뉘앙스 하나하나를 해독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남자보다 대화 상대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루빈의 논문은 여자는 상대를 쳐다보면서 ˝우리가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남성 파트너에게서 신호를 감지한다˝고 추측한다. 모든 나이대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타인의 비언어적 신호를 해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여자는 다른 여자의 감정과 생각보다 남장의 감정과 생각에 특히 예민하다.- P263

우리는 남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성격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도 바꾼다. 여자가 그나마 인지하고 있는 것도 성격적 변화보다는 신체적 변화일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신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하는지 한 번 떠올려보라. 우리는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하며, 변비약을 먹어 장을 비운다. 피부를 보기 좋게 태우기 위해 일광욕을 하거나 태닝 부스에 눕고, (항상 성적 흥분 상태인 것처럼 보이도록)화장을 하고, 눈썹을 뽑으며, 머리에 헤어롤을 만 채 잠자리에 든다. 코 수술을 받고, 가슴 확대 기구를 쓰고, 가슴 축소/확대 수술을 하거나 왁싱을 하거나 영구 제모 시술을 받고, 매직이나 파마를 하고, 머리를 고데기로 만다. 향수를 뿌리고, ‘여성청결제‘를 사용한다. 손톱을 칠하고, 젤로 연장하고, 인조손톱을 붙인다. 귀를 뚫고 코에 피어싱을 하며,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낀다. - P264

얼굴에 팩하고, 인조 속눈썹을 붙인다. 보정 속옷과 브래지어를 입고, 장신구를 걸치며, 하이힐을 신고, 갑갑한 옷을 입는다.
남자가 위의 행위를 하는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남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우리 몸을 바꾸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여자의 의지를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P264

남자에게 매력적인 여자가 되기 위해 신체 변형까지 감수하는 현상은 네가지 사실을 반영한다. ⑴ 여자는 남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⑵ 여자는 남자들과의 연결고리를 갖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⑶ 여자는 남자들의 애정과 승인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⑷ 여자는 ‘있는 그대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로는)남자들의 애정과 승인을 받을 수 없다고 느낀다.- P265

여자는 남자보다 능력이 뛰어날 때조차 본인을 낮추고, 남자를 띄워주고, 본인의 성취를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서 남자의 기를 세워준다. 위기를 느끼는 남자야말로 여자에겐 위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P266

여자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성공한 남자보다 우리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 우리의 성공을 실력이 아닌 운 때문으로 돌리는 경향도 남자보다 강하다. 남자는 좀만 하면 성공하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미치도록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76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여자가 일을 더 잘했는데도, 놀랍게도 본인의 업무 수행에 매긴 점수는 여자나 남자나 비슷했다. 여자의 노동이 남자의 노동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남성 문화적 시각을 여자가 체화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결과다. 여자의 자존감이 하락한 상태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P277

롤런드의 책에 따르면 페미니스트 여자는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여자와는 달리 개인으로서의 삶과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남자와 관계 맺는 걸 꺼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자는 대부분 남성 파트너가 없는 시기를 지날 때 공허한 감정이 든다고 토로한다. 이 공허함의 깊이가 바로 여자가 자아감을 잃어버린 정도라고도 할 수 있다.- P278

현재 시점에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여남이 평등한 관계를 맺고 여자가 안전한 상황에서의 여성 심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P295

남자는 여자와 ‘떡 치는‘ 행위를 여자를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행위, 즉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의 본래 목적에 맞게 여자를 사용하는 행위로 여긴다. ‘떡 쳐진‘ 여자는 ‘값싼‘ 여자가 되어 가치가 떨어지는 반면 남자는 더 마초 같고 강력해진다. 이성애 성관계가 남자를 남자로, 여자를 여자로 만든다고 여겨지는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다시 말해 성관계를 정의할 권력도, 실행할 권력도 남자에게 있으며, 그 결과 성관계는 남성 지배와 여성 종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의되고 실시된다. 가해자에게 유대감이 샘솟을 가능성이 가장 큰 순간은 여성 종속과 남성 지배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본질적인 순간, 즉 이성애 행위를 할 때라는 것이 공저자로서 우리의 주장이다.- P333

가부장제는 여자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도록 남성 폭력이나 경제적 제약 등 장애물을 세워 여자가 의존적이라는 환상을 유지한다. 여자가 원래 의존적으로 태어났다면 우리가 남자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온갖 장애물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믿어서는 안 되는 부분은 또 있다. 우리는 남자가 선의를 발휘해 ‘우리에게 권리를 부여해줄‘ 거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여자가 자랑스럽게 내 남편은 이런 일(예를 들어 직장 출근)도 하게 해준다고 말하는 건 남편이 본인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남편이 언제든 직장 출근을 그만두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 P355

피해자가 된 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 우리의 억압 상태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우리의 책임이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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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좋은 친구들 두셨네요. ㅎㅎ
이 포스팅 읽으면서 갑자기 이 책이 제시한 책 결말에 저도 ‘응?‘ 스러웠지만 곧 이해가 되는군요.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군요.

다락방 2019-05-20 17: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깜짝 놀라고 당황했었어요. 책의 내용이 어마어마한데 고작 소설읽기다 답이란 말이야? 라고 말이지요.물론 소설읽기만 답으로 내놓은건 아닙니다만.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요. 갇혀있고 닫혀있어서 상상이 불가하면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게 사실이니까요.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어떻게 닿을 시도를 하겠습니까. 불끈, 하고 뭔가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책 더 많이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19-05-2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자의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라는 해결책 또는 대안에 처음에는 그런가? 했지만,
점점 그 방법, ‘읽기‘라는 혁명적 방법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2년생 김지영>라는 밋밋한 소설이 우리의 현실과 현재를 강타했던 경험도 생각났구요.
페미니즘 소설 모음집 <혁명하는 여자들>의 ‘늑대여자‘도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저도 다락방님책과 비슷한 모습의 책인증샷 얼른 올리고 싶네요.... ㅠㅠ

다락방 2019-05-20 17:59   좋아요 0 | URL
저는 그간 SF 소설을 거의 안읽었거든요. 그점에 있어서 참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도 sns 를 통해 많이 추천 받았는데 한 권 사두고 안읽었고요. 이 책에서 언급됐던 단편들이 체체파리.. 그 책에 있다니까 그 책도 사서 얼른 읽어야겠다 싶었어요. 너무 멋진거에요. 연구하고 생각하고 논문을 쓰면서 결론으로 책을 읽어라, 여자들아, 하는거요. 그것도 소설! 그런데 그게 생각과 달리 생뚱맞지 않은 합리적 결론이라는 게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님의 책 인증샷 기다리고 있을게요! 울지마세요 ㅠㅠ

블랙겟타 2019-08-0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쩐지-
여기에 이번에 읽을 책들이 나오더라구요.
저도 앞으로 SF소설을 찾아 읽어보려구요.
아! 일단 시녀이야기 부터 (๑◔‿◔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