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샤론 볼턴'의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나에게 정말 천재적인 작품인데, 알라딘의 리뷰들을 보면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일뿐...


이 소설을 통해 샤론 볼턴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은데, 나는 그녀가 그 말을 하는 방식도 가히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주인공 클래라의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에서 나는 작가의 천재성을 본다. 만약 그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시작했다면 나는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미리 선입견을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아주 자연스레, 등장인물들과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그녀의 상처를 드러낸다. 그러니 읽고 있던 나로서는 자연스레 '뭐라고?' 하게 되는거다. 아, 그랬어? 여기까지도 놀라워서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는데, 게다가 그 상처의 원인에 대해서도 또 자연스레 이야기가 흐르고 흐르다가 밝혀진다. 독자는 내내 '아 그랬어?' 하다가, '그렇다면 왜그랬을까?' 하게 되는데, 작가는 마치 독자들이 그럴 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지만 그거 그렇게 유난떨거 없다는 듯, 말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준달까. 어떻게 이렇게 영리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게다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에 대해서도 역시나 '자연스럽게' 얘기해주고, 그런 한편 주인공 클래라가 그렇게 고집스러운 성격인 것이 반드시 옳다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며칠전에 이 책을 다 읽은 친구와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정말 이야기 진행 잘하더라, 하는 이야기. 아아, 같은 책을 읽으면 할 말이 많아지는데, 작가에 대해 정말 이야기 흐름 잘 진행하지, 하며 사건과 그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이 책을 다 읽은 친구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사건의 해결 흐름과 주인공 사연에 대한 이야기가 병렬로 이어지는 와중에 두 흐름의 클라이막스가 일치되어 가는 게 아니라 살짝 비껴져서 배치됐다" 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사건의 해결흐름, 주인공 사연 모두 놓치지 않고 흥미와 재미를 가지고갈 수 있다는 거다.


크- 여러분 이런 친구 있어요? 같은 책 읽고 이렇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친구? 게다가 봐, 겁나 잘 읽어내잖아? 크-




친구는 샤론 볼턴의 책은 이게 처음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친김에 작가의 다른 책, 《희생양의 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희생양의 섬, 이 구절을 정말 좋아한다고.


"글쎄, 이곳에선 적응을 잘 못한 것 같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요. 이곳 섬들은 작지만 강력한 패거리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체격이 큰 금발의 남자들 말이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스코틀랜드 대학을 다녔고, 노르웨이 부족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 말이에요. 토라, 생각해봐요. 병원의 아는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장이나, 경찰이나 치안판사, 또 상공회의소, 지역 시의회까지, 그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요."

그 점에 관해서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꽤 많은 섬 주민들이 눈에 띄게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여러차례 실감한 터였다. (p.249)
















나야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맥락을 알지만, 이 책을 읽지 않은 친구는 이 구절의 어떤 부분이 좋았던 거냐고 물었다.



- 이 구절 속에서는 작은 섬이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차지하잖아. 그렇지만 이건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지.

- 아아

- 백인 남자들이 지배하고, 전세계적으로 남성들이 주요한 위치를 다 차지하고. 작가는 그 얘기를 이 섬에 빗대어 한 것 같아. 그게 너무 좋았어.

- 거꾸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겠네. 백인 남자들이 지배하고 전세계적으로 남성들이 주요한 위치를 다 차지하는 그 짓이 이 세계를 자그마한 섬으로 만드는 짓이다.

- 크- 해석 좋다.

- 아니야 나는 니가 말하기 전까지 저 구절은 그냥 사실적시라고만 생각했어. 과연 니가 좋아할만하네.

- 나는 이 작가가 이래서 좋아. 할 말을 되게 세련되게 해.



아아, 친구 너무 좋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캐치하는 똘똘이 친구...

이 친구와는 일전에 '앤젤라 카터' 의 《피로 물든 방》으로도 좋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크-

내가 살아보니까, 나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더라.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않은 면을 보고 반하곤 한다는데, 나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정말 너무 끌려. 진짜 멋져. 그렇다면....나는...나는...........Orz




다시, 샤론 볼턴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샤론 볼턴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참 좋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너무 마음에 든다. 똑똑하고 세련됐어. 앞으로 샤론 볼턴이라면 무조건 읽자는 주의가 되었는데, 아직 국내에 샤론 볼턴의 작품은 두 권밖에 나와있질 않다. 출판사들, 힘내요!! 책만 내줘요, 읽는 건 내가 할게!!!




샤론 볼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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