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몇 년전만 해도 나는 한국소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한국 소설 읽는 게 참 좋다. 애초에 나의 모국어로 쓰여진 걸 읽는 재미와 기쁨은 번역서가 결코 줄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한국 여자작가들의 작품은 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좋은데, '문목하'는 이야기 쪽에서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와, 우리나라 여성작가들 글 잘쓰네, 라고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감탄했다. 며칠전에 '한국문단은 죽었다'고 말하던 누군가도 떠올랐다. 어떤 책을 읽어왔기에 또 어떤 책을 읽을 생각을 하길래 한국 문단이 죽었다는 거야. 이렇게나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구먼!!


별 다섯의 0.5 정도는 사실 응원과 기특한(?) 마음 같은 걸로 덧붙이게 된건데, 뭐 아무래도 좋다.



윤서리는 초능력을 가진 비원과 초능력을 가진 경선산성의 싸움이 못마땅하다. 분명 이 깊은 싱크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서리의 능력을 얘기하는 건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사랑이 어떤 부분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랑은 모든 것의 답이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의 길이 될 수도 없겠지만, 아주 많은 선택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살아있기를 원하는 마음, 당신이 잘 지내기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은, 모든 선택들을 다시, 다시 뒤로 돌리게 만들기도 하니까. 내가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감당할만한 타인의 안녕에 대한 바람이 대부분의 이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책의 윤서리가 그랬고 정여준이 그랬고 최주상이 그랬다.



읽다보면 '애쉬톤 커쳐' 주연의 영화 『나비 효과』가 자꾸 생각나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 애쉬톤 커쳐는 다른 이들에게 일어난 불행을 막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태어나지 않음을 선택하기로 한다.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 책은 헐리우드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할리우드에 판권 팔린 토종 SF


기사 중간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라는 어느 독자의 평은 적확했다. 읽으면서 서너번쯤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이렇게 풀어갔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고, 그래서 와, 우리나라 여자 작가들 글 잘쓰는구나, 했다. 작가가 출판사 아작을 알게 되어 원고를 투고했다는데, 작가의 그 시도와 용기가 감사하다. 이런 글이라면 투고해야함이 마땅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가영이 …… 윤서리를 저기 살려두려고 왜 그렇게까지 견디는 거야?"

정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주상을 보았다. 그리고 먼 바깥에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윤서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왜겠어요."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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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0-11-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덧글이 하나도 없다니 ㅠㅠ 저도 중반에 흐느끼면서 읽음 ㅠㅠ 너무 재미있었네요. 글 참 잘쓰고 소재도 이렇게 잘 풀어나가다니.. 아 이 여운!

다락방 2020-11-25 07:57   좋아요 0 | URL
여운 장난 아니죠? 위의 인용문처럼 ˝왜겠어요?˝ 너무나 압권인 것....
저 이 작가의 다른 책(해마.. 뭐였는데 ㅋㅋ)도 사뒀는데 아직 안읽었어요. 그 책도 어렵지만 좋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퇴근 후에 약속이 있고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 잃던 책을 두고 나왔다. 그래, 스맛폰에 다운 받아둔 영화를 보면서 출근하자, 라고 어젯밤에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이 되니 그러고 싶질 않은거다. 출퇴근 시간에 책 읽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데, 퇴근 시간에야 지하철 안에 사람도 많고 앉지 못할 때도 있어 스맛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지만, 출근 시간은 너무 집중이 잘된다. 이렇게 집중이 잘 될 때 영화를 보는 것은 아아 어쩐지 시간이 아까워. 책을 보자. 나는 집을 나서기 전 부랴부랴 크레마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크레마 안에도 책이 많다. 뭐가 됐든 읽을 것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안에 자리잡고 앉아 크레마를 딱 열었는데,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언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셋트를 사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읽으면 좋겠구먼, 재밌겠어, 하다가 아아, 나는 보았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에 관한 책을. 어? 맞다! 나 이것도 사뒀었지!!


















마침 10월, 11월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가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아니던가. 좋다, 이걸 읽자. 제2의 성을 읽기 전에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오 재미있다. 이십대 초반에 그들이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는데, 사르트르는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 두 명이 있었다. '니장'과 '마외'가 그들인데 이 셋은 몰려다니면서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단다. 또한 보부아르의 소문을 듣고 친해지고 싶었지만 자기들처럼 잘난이들이 보부아르에게 먼저 다가서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다고. 이야.. 진짜 공부잘하는 남자들이라는 거 하등 쓸모없구나. 너무 찌질 오브 찌질이야.. 하아- 다들 철학교수시험을 준비중인 사람들이었는데 쩝...


자, 이걸 보자.





아주 지랄들을 한다. 지들끼리 있으면서 자기들은 가장 높은 신분 다른 애들은 낮은 신분 눈누난나~ 이러고들 있어. 하아- 철학한다는 사람들이 이러고들 다니고 있다... 철학은 다 무슨 쓸모, 배움은 다 무슨 쓸모인가...


그뿐인가.

이들중 마외가 보부아르와 가장 먼저 친해졌다. 마외는 이미 아내가 있어 보부아르가 좋아도 뭘 어떻게 할 순 없고, 그런데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만나는 순간이 다가오자, 자기 없을 때 만나지 말라며 그 만남을 뒤로 미루라고 한다. 욕심은 똥구멍에 차가지고...

지는 결혼해서 아내도 있으면서 자기 없는 동안에 자기 친구가 보부아르 독차지할까봐 전전긍긍.. 야, 사람이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가 없어. 뭔가 하나를 놓아야 한다.. 철학하면서 그것도 모르냐.



아무튼 이 몰려다니는 세 명의 철학하는 남자들 너무 싫고... 하아- 철학하는 남자만 싫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둘다 철학 교수 시험에 합격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자, 여기서 우리는 며칠전에 읽었던 《미친 사랑의 서》보부아르 편을 떠올릴 수 있겠다. 거기서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대한 언급이 있던 터다. 내가 친히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스물한 살 때 보부아르는 역대 최연소로 철학과 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후보에 올랐는데, 프랑스의 대학 체제에서 교수 자리를 따내려면 반드시 그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판정단은 보부아르가 철학과 최고의 학생이라는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했지만(해당 학위를 받은 여학생으로서는 아홉번째였다), 그녀는 2등으로 만족해야 했다. 최고의 영예는, 아마도 남자라는 이유로, 사르트르에게 돌아갔다. (보부아르)- P155









《미친 사랑의 서》에서는 판정단 모두가 만장일치로 보부아르가 최고의 학생이라고 생각했다는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는 한두명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판정단이 몇 명이나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보다 뛰어난 학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는 작가가 사르트르 쪽으로 좀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철학사 학위를 받은 뒤 교직을 얻기 위해 철학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이던 1929년 6월, 3살 연상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80)를 만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해 교수자격시험에 1,2등으로 나란히 합격했으며, 당대의 스캔들이었던 2년간의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영혼의 정절과 관계의 투명성을 지키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나 일, 앞으로의 계획, 지난 경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전적으로 상대방과 공유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2년 기간을 약정한 계약결혼이었지만 2년 뒤에 30세까지로 연장하고, 이후로는 종신계약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였고, 지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였다. 보부아르는 마르세유, 루앙,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 강의를 하였으며,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es)지를 창간했다. (p.278)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에서 보부아르 부분을 읽다가 저 계약결혼은 그들의 뜻대로 진행되었을까, 를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지금 읽는 계약결혼책을 구입하게 된거고.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지적 동반자가 되어준다한들, 그리고 상대의 연애의 자유를 인정한다 한들, 그것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많이 괴로웠을 것 같은데, 했던 것. 그들이 '계약'을 했고 당시로서는 그것이 파격적인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가장 좋은 지적 상대 임을 인정한만큼 헤어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자유 연애를 허락한다?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 연애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 사랑을 응원해' 가 과연 될까? 심지어 그들이 '계약'일지언정 '결혼'이란 관계로 맺어진 사이인데?

그건 그들이 아무리 지적인 사람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되는 게 아니야.


사람은, 하다못해, 생명이 없고 감정이 없는 사물에 조차도 함께 하다보면 정이 가게 마련이고 내 것이라는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끼는 물건을 누가 달라고 하면 차라리 새 걸 사줄지언정 내가 쓰던 걸 못주겠는 그런 마음 것들이 우리에겐 있으니까. 그런데 심지어 사람이다. 그것도 내가 욕심 냈던 사람. 애초에 욕심내서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 나랑 세상에서 대화가 자장 잘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자유와 연애를, 자유 연애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을 읽다보니 이 둘은 서로의 자유연애를 인정하는 바람에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이 '우리는 서로 함께하지만 서로의 자유연애를 인정해'라고 하면서 가슴 아프지 않으려면,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 상대에 대한 사랑 혹은 애착이 없다면, 그러면 가능해진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가 관심없는 다른 사람들이 연애를 하든 쓰리썸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 니 마음대로 해라, 하게 되어버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많은 것들이 치고 들어와. 왜 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 이렇게나 자꾸 쑥쑥 들어와야 해? 하는 기분이 되어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뭐 철학으로나 결혼으로나 연애로나 뭐로든, 나는 보부아르처럼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 물론 저서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이 관계는 당사자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게만 위기를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에게만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다. 이들은 계약결혼의 당사자임과 동시에, 그들이 하는 연애상대의 파트너였다. 그들의 연애상대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계약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만 사랑하므로 행복하였네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 역시 자신의 사랑이 커지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그 관계로부터 나와서 내 옆에 있었으면'하는 바람을 너무나 당연히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자신들의 계약결혼 관계를 죽는 순간까지 지켜온 만큼, 몇몇 사람들은 그 관계 때문에 가슴 찢기는 고통을 겪었어야 해. 하아, 계약결혼과 자유연애란 무엇인가.





올그런은 보부아르와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돌로레스와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삼각관계에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더군다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에 굴러들어온 돌 취급당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다. 올그런을 향한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결혼에 반대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사트르트와 자신의 자유 둘 다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끝내주는 잠자리도 아주 오래전 맺은 계약을 깨뜨리게 만들지는 못했고, 그래서 때를 잘못 만난 두 연인은 결국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올그런은 이후 두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했지만 끝까지 보부아르를 용서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어느 기자에게 그녀를 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섀넌 매키넌 슈미트& 조니 렌던,《미친 사랑의 서》보부아르 편, p.163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서로를 괴롭히자고 계약결혼을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자고 자유연애를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보부아르는 계약결혼 전에 사르트르와 성관계를 가졌었고, 그 뒤에도 여러차례 다른 연인들과 자유 연애를 했다. 그러나 '앨그렌'을 만나면서 '육체의 쾌락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는 곳도 옮기고 자신의 커리어도 포기할 생각까지 했을만큼 그를 사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는 대신 이별을 하고 사르트르의 곁에 머물렀다. 괴로움은 이제 앨그렌의 몫...



그렇다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그렇게나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지적인 동반자, 그것이 그토록이나 강한 것인가. 육체의 쾌락을 뒤로 넘길 수 있을만큼. 보부아르는 그렇다고 말한다. 나 역시 보부아르에 동의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에게 지적인 동반자이며 동시에 쾌락의 동반자이기도 하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 둘을 모두 가지기는 사실 좀 힘이 들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인 것도 쾌락으로도 크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채로 그냥 그냥 살고 있지 않나.. 아무튼,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삶에서의 '성공'이라고까지 말을 한다.




쓰여지는 모든 글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글도 아니고 뱉어놓은 말들 역시 대부분은 무용하기도 할터이다. 그러나 대화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같다는 것, 결국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만큼 아주 달콤하고 강력한 매력이다. 사르트르는 앨그런 같은 쾌락을 주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대화의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일찍 깨달아 스무살부터 그런 상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칠순에야 비로소 대화 상대를 찾고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정말 중요한 것은 대화였구나, 하면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결국은 대화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궁극적 대화상대를 이미 찾았기 때문에 위기의 계약결혼과 가슴 아픈 자유연애들을 끌어안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했으니까.




나는 항상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그건 '내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끊임없이 상대에게 묻고 싶다.


너는 좋아?

당신은 괜찮은가?



일전에 MBTI 검사를 해준 친구가 내게 그랬다. 모임에 나갔을 때 자신의 성향은 '이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는 거지만, 다락방의 성향은 '이 사람들이 각자 여기서 즐거움을 찾아야할텐데' 라고.


나는 정말 그렇다.


그러니까 만약 보부아르랑 사르트르를 만났다면, 보부아르가 내 친구라면, 나는 보부아르가 계약결혼과 자유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 보부아르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거 너 괜찮아?"


만약 보부아르가 앨그런을 떠나보낸다고 했을 때도 역시 물었을 것이다.


"그게 너한테 좋은거야?"


나는 물론 그런 친구의 결정 자체를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물었다고 해서 친구가 갑자기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을테지만, 그러나 그 질문을 받고 친구가 잠깐동안이나마 다시 생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잠깐동안 자기 자신에게 묻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이거 좋은가?



나는 이 물음을 언제나 당신에게 하고 싶다.


당신 괜찮은거야? 다 좋아? 좋아? 오케이? 당신 지금 그렇게 하는 거, 지금 당신의 선택 그거, 좋아? 괜찮아?



당신은 정말 괜찮은건지. 당신은 괜찮은가.

나는 당신의 선택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선택이나 결정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싶다.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가급적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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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는 쟤네가 지적 동반자 연애질하는 거 디립다 까놨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11   좋아요 0 | URL
가서 페이퍼 봤어요. 깔만합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원래 댓글 수정해버림)

syo 2019-10-02 14:11   좋아요 0 | URL
그치만 쟤네는 후설 이야기해요. 다락방님 초원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는데 문득 후설의 어디가 끌렸는지 물어오는 사람 좋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12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쇼님 댓글 다는 동안에 내가 댓글을 고쳐버렸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syo 2019-10-02 14:13   좋아요 0 | URL
이겼다!! 이 영광을 후설에게 돌립니다....

다락방 2019-10-02 14:14   좋아요 0 | URL
나는 심지어 후설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어요. 하아-
나는 지적이지 않아....나는 지적인 동반자고 뭐고 다 필요없다. 그냥 혼자 책 읽으면서 살래............

syo 2019-10-02 14:16   좋아요 0 | URL
후후후후후후설과 헤헤헤헤헤겔이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락방 2019-10-02 14:17   좋아요 0 | URL
저는 일단 제가 오늘 점심에 왜 과식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syo 2019-10-02 14:24   좋아요 0 | URL
그건 이해가 필요없는 부분입니다.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 같은 거 아닌가요??

다락방 2019-10-02 14:26   좋아요 0 | URL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에 그게 바로 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 같은 게 없는가 봐요. 씁쓸합니다.

syo 2019-10-02 14:30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저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맛있는 걸 많이 먹는 것이 우리가 가진 최초의 의식입니다.
다락방님의 오늘 점심 과식이 바로 그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의 발현이었던 거죠.

참 흥미롭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3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의식이...욕망하는....모든 대상은.....

밥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10-02 14:40   좋아요 0 | URL
하하하! 또 말하고 싶었던 건 다락방님이 베트남에 가면 당신은 순대국밥을 몹시 그리워할 거라는 거예요.

다락방 2019-10-02 14:42   좋아요 0 | URL
아냐, 쇼님. 나는 의식이란… 환경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에 갔다면 쌀국수로 충분할거에요.

syo 2019-10-02 14:46   좋아요 0 | URL
그렇다 해도 ‘삼겹살‘은 육즙, 그 겹겹의 깊은맛의 생산자예요. ‘김치‘가 있어야만 자의식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거예요.

다락방 2019-10-02 14:47   좋아요 0 | URL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가 어디라도, 저는 삼겹살과 김치를 만난다는 거에요?

syo 2019-10-02 14:52   좋아요 0 | URL
아니요. 삼겹살과 구운 김치는 베트남에 갔다고 해서 잊어버리고 살기에는 넘나 맛있는 녀석들이 아니냐는 거죠.....^ㅠ^

다락방 2019-10-02 15:03   좋아요 0 | URL
삼겹살.... 너무 먹고싶네요..................

감은빛 2019-10-04 20:40   좋아요 0 | URL
저도 삼겹살과 김치가 먹고 싶어졌어요!
음, 누굴 불러낼 수 있으려나.
안되면 혼자 가서 먹어야겠군요.

다락방 2019-10-04 21:38   좋아요 0 | URL
삼겹살 혼자 먹는 곳은 좀처럼 없지 않나요? ㅠㅠ 저도 가능하다면 혼자라도 가서 삼겹살 먹고 싶어요. 그렇지만 혼자 고깃집 들어가는 건 어쩐지 잘 안되더라고요. 음.. 가서 2인분 시키면 눈치없이 먹을 수 있으려나요? ㅠㅠ

아무쪼록 제 몫까지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흑 ㅜㅜ

감은빛 2019-10-04 21:59   좋아요 0 | URL
다행히 담배 피우러 올라간 옥상에서 만난 선배님께 삼겹살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은 이미 저녁을 드셨지만 제게 사주겠다고 어서 가자 하셔서, 지금 열심히 삼겹살에 김치를 먹고 있어요.

다락방님과 쇼님 덕분에 맛있게 먹고 있어요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장점은 아주 많다. 강간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얼마나 압박을 받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고, 남자 형사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강간이란 범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피해자를 건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자 형사들의 입을 빌어 얘기해준다. 1화부터 8화까지 가면, 허위진술로 경찰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강간 피해자 마리가 나중에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 허위진술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마리는 직장도 잃고 친구도 잃고 3년이라는 시간도 잃었으니까. 그 때 마리가 찾아가는 변호사는 마리에게 그런 말을 한다. 절도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 피해 사실을 거짓이라 의심하지 않는데, 성범죄에 대해서만은 피해자를 의심한다고.

수사 과정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드라마가 보여준다. 아마 실제로도 그러했겠지만, 여자형사들이 강간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남자형사들의 그것과 달랐다. 이해받고자 하는 피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얘기하려고 할 때, 여자형사 '듀발'은 '네 행동을 나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마리가 만났던 게 듀발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마리의 삶 자체부터 그 후의 범죄들까지, 정말 많은 게 달라졌을텐데.



마리는 강간 피해자이지만 허위진술을 한 나쁜여자가 되어 결국 직장도, 친구도 다 잃는다. 직장을 잃기 전 창고에 배정받아 남자와 둘이 일하게 되었을 때, 남자는 그녀의 앞에 마치 성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처럼 선다. 마리는 이에 두렵다. 아무도 없고 이 어두운 공간에 우리 둘만 있는데, 자기보다 큰 남자가 자기 앞을 가로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까.

나는 그녀가 이 자리에서 또 강간을 당할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그녀가 만약 여기서 강간을 당한다해도 그것이 신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더 두려웠다. 그녀가 강간에 대해 허위진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어차피 내가 강간해도 그녀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까'라고 생각할테니까. 그것은 또다시 강간으로 이어질테니까.


그래 어디가서 얘기해봐 니 얘길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어?


만약 마리가 경찰에 가서 신고한다면, 그 때는 형사들이 '이번에는 진짜로구나' 하며 들어줄까? 아마 마리 역시도 '어차피 내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과 '형사들이 주는 그 압박감을 견디기 싫다'는 생각으로 신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강간 피해자를 허위진술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마리는 이중 삼중의 위험에 노출되는 거다.

그녀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서, 그녀가 당한 강간 피해를 '의심해서' 그녀는 아주 많은 것을 잃었는데, 거기에 '또다시 강간을 당할 위험'까지 더해져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잘 보여준 드라마라 충분히 의미있지만, 이 드라마가 아주 좋았던 점을 또 꼽자면, 두 여자형사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잘 보여진다는 거다. 강간범에게 분노하고, 자신들이 처음 맡았던 강간 피해 수사에 대해 잊지 않고 있으며, 어떻게든 이것을 잡아야 한다고 아주 열심히,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 일하는 거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오래 해왔던 사람과 또 오래 하고자 하는 여자 두 명이 정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진짜 큰 장점이다. 으레 사람들이 '누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렇다니까? 드라마 속에서 이 베테랑 여자형사들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느라 열심인 모습은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 드라마가 가진 진짜 큰 장점이다. 너무 좋았다, 너무. 너무 좋았어.




'듀발' 형사가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저 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그녀를 자꾸만 쳐다본다. 듀발형사도 그의 시선을 느낀다. 잠시후 레스토랑에 다른 여자들이 들어오는데, 그녀들이 포장한 걸 챙겨서 나갈 때까지 그 남자는 그녀들을 끈적하게 보다가, 그녀들이 사라지고 나자 다시 듀발을 그런 시선으로 본다. 듀발은 일어나서 계산을 하려면서 상의를 걷는다. 거기에는 보란듯이 경찰 뱃지와 총이 있다. 남자는 그걸 보고 흠씬 놀라 얼른 시선을 거둔다. 듀발 형사는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한동안 가만히, 그의 뒤에 서 있고, 그는 그녀가 뒤에 서 있음을 느낀다. 그 때의 그는 긴장과 두려움 속에 놓였을 것이고, 듀발 형사는 그것을 의도했다. 그렇게 서있다가,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이 장면도 몹시, 몹시 좋았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마리가 듀발 형사에게 전화하면서 끝난다. 세상은 자신에게 절망만 안겨줘서 이 세상을 끝내고 싶었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열심히 수사해줬다는 것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맙다고. 나는 이 장면도 몹시 좋았다. 실제로 전화를 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러니까 열심히 일한 형사들이 자신의 일에 그때쯤 한 번 미소지을 수 있게 되는 장면. 크- 너무 좋지 않은가.



어차피 결말을 알고 있는 내용이고 또 드라마를 보기도 했으니 책은 굳이 안읽어도 될테지만, 나는 마리의 그 이후가 알고 싶어 반드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 책 리뷰를 읽었는데, 지금 마리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고 했던 거다. 그걸 내가 꼭 확인하고 싶다. 그 트라우마들을 극복하고 지금은 괜찮은건지, 지금의 그녀의 삶을 내가 좀 알고 싶은 거다. 물론 그 사건은 그녀에게 큰 일이었고, 그로 인해 죽고싶은 마음까지 들었으며, 또 그것은 아마 오래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삶에 있어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녀를 신뢰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가끔은 절망을 물리치면서 살아가는 걸 보고싶은 거다. 그녀가 그렇다는 걸 내가 알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느라고 어제 낮에는 책을 읽을 수 없어 저녁에 펼쳐들었다. 펼쳐들자마자 졸린 게 함정... 그렇지만 어쨌든 두 시간쯤 읽었는데 너무 졸린 거다. 출근길에 열심히 읽고 퇴근길에도 읽으면 끝마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를 남겨두고 불을 끄고 잠을 자려는데, 막상 누웠더니 잠이 안와 한 시간을 뒤척였다. 제기랄..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책을 좀 더 읽었다. 그래, 이렇게된 거, 다 읽고 자자!!

그렇지만 또 책을 읽으니 졸려.. 뭐지. 왜지. 왜이러는거지. 왜때문이죠..

그래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책의 남은 부분을 마저 다 읽었다. 다 읽은 것이었다. 만세!!




여성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갈까 수차례 망설였는데, 회사와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체력적으로도 안될것 같지만, 시간도 부족할 것 같고. 무엇보다 등록금...........을 생각하면 역시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었다. 으으.. 그걸 어떻게 내나,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한학기 등록금이 1천만원에 육박했다. 물론 어느걸 공부하느냐에 따라 등록금이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몇백..을 한다는건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못한다.

안된다.

한 학기에 어떻게 몇백씩을..

나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에 이렇게 여러사람들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는 게 너무 도움이 된다. 벽돌같은 두꺼운 책이라도 어쨌든 읽자고 내가 말을 꺼낸 터니 뒤로 물러설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거다. 무엇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므로,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두꺼운 책들도 읽어내는데, 그것들을 읽어내는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는 거다. 물론 그 모든 내용들이 머리에 쏙쏙 박히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새롭게 알게되는 것도 있고 읽으면서 또 깊게 생각해보는 부분들도 있다. 게다가 흘려버린 내용일지라도, 다음에 다른 책을 읽을 때, '어, 이건 어디에서도 나온 것 같은데' 하면서 연결지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있는 지금은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



한번씩,

만약 누군가가 등록금을 대준다고 하면, 그러면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닐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하는데,

그래도 직장을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 돈을 버는 일이 매우 중요하므로.

아마 이 직장을 관둬도 다른 돈벌이를 반드시 구했을 것이다.

그러면 역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것이고...

대학원은 포기해야 해..

노노해,

노노.

노노..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너무 멀리온 것 같다. 과거의 나로부터 너무 멀리.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읽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은 여기에 닿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결국은 여기에 닿을 수밖에 없어, 알면알수록 와야할 곳이 여기가 되어버려.

그런 것이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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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9-09-30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제가 본 드라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어졌습니다.

다락방 2019-10-01 08:12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정신없이 8화까지 봤네요. 매 화마다 울컥이는 장면들이 있고 또 좋은 장면들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저도 아주 잘 봤습니다.

단발머리 2019-09-30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듀발 형사 레스토랑씬 다락방님 설명만 읽어도 넘 통쾌하네요. 그런 시선을 받았을 때의 여자들의 심경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죠. 그런 시선을 받지 못한, 그런 시선의 두려움 없이 살아왔던 남자들은 몰라요. 모르는데 너무 당당히 말하죠. 그런게 어디 있냐고.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가 생각나네요.


대한민국에 여성혐오가 어디 있냐며, 이제는 남자가 더 살기 힘든 시대라 주장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런 분들 다 같이 모여 러시아 한번 가보시면 좋겠다. 늦은 밤 길거리를 누비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보도록. 현지인 친구에게 인종차별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는 하소연을 했다가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이 어디 있냐’는 핀잔을 들어보도록. 모든 백인이 그런 건 아니니 일반화하지 말라고,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 그럼, 아니 그래야만 당신도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까? (80쪽)


완독의 영광을 그대에게! 한다면 한다!의 다락방님! 엄지척!!!

다락방 2019-10-01 08:1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이 드라마는 시간되신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릴게요. 매화가 다 충실하게 너무 좋아요. 인상깊은 장면들이 수시로 나오고요.
8화에서 강간범이 잡히거든요. 잡혀서 아직 재판을 받기 전 유치장에 갇혀있는데요, 경찰들이 와서 옷을 다 벗으라고 말해요. 강간범은 속옷을 남기고 벗지만, 경찰은 남김없이 다 벗으라고 하죠. 강간범은 경찰 앞에서 나체가 됩니다. 그리고 경찰은 그의 털들을 몇 가닥씩 부위별로 뽑아야 한다고 말해요. 머리카락을 뽑고 팔의 털을 뽑고, 그리고 그의 음모 털을 뽑아요. 이런 장면들이 보여집니다. 이것도 너무 좋잖아요. 뭐랄까. 피해자들의 강간당하는 나체가 전시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수감되기 전에 나체가 되는 거에요. 저는 그 털을 뽑는 장면에서도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아, 너무 인권 보장안되는 거 아닌가, 하고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되게 복잡했어요.


우앗. 완독하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 책은 그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겹게 읽은 것 같아요. 어쩌면.. 이제 제2의 성이 그걸 넘어설지도 모르지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에곤 실례 2019-09-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에 진학 할수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 여성학을 전공하시고 가능한한 여자 대학에서 하세요.
자칫 남자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다간 공부보다 지도교수 갑질에 진절머리를 내는 일이 발생할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강연을 할 원고를 쓰고 강연을 연습하시고 세바시 이런데에 프로필과 데모영상을 보내보세요.
왜냐하면 그동안 지켜 본 바로 님은 목소리도 좋고 좋은 원고를 쓸수있는 재능도 있으세요.
게다가 여자들을 위해서 대중을 이끌어 나갈 기세가 충만 합니다.
강연을 잘하고 차츰 유명세를 타게되면 강연료만으로 돈을 벌수도 있어서 직장을 그만 두고 프리렌스로 활동하며
대학원 공부도 할수 있을수 있어요. 게다가 체력도 좋고 하지만,
이런 생활을 하시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책을 열심히 보는것 보다 운전을 직접하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하하하, 내가 너무 진지하게 말했나요? 여성계의 강력한 미래인재를 놓치는것 같아서 대안을 제시해 봤습니다.

다락방 2019-10-01 08:20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한 대학원도 여성대학의 여성학 과목이었어요. 이걸 가지고 계속 망설이고 있네요. 시도할까 하다가 가로막는 게 숱하게 생각나는데, 그래서 저는 저에게 아마도 절실하지 않은가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실, 하하하하,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이건 쓸데없는 정보지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공부하기 너무 싫어했던 사람이라 그래서 대학원에 대해서 가지 않아야 할 이유만 숱하게 늘어놓게 되는 것 같아요. 으앗 공부하기 싫다, 이러면서요. 하하하핫.

그렇지만 에곤 실례 님의 말씀은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서 조언해주시고 또 좋은 말씀 너무 많이해주시고 ㅠㅠ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웁니다 제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해요. 좋은 말씀 잊지 않고 새겨두면서 혹여라도 우울해지면 생각해야겠어요.


운전도.. 제가 이십년전에 1종 보통운전면허 스틱으로 따둔 사람이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후훗.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9-09-3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학 공부를 여전히 열심히 하고 계시네요! 멋지십니다. 글구 여성의 말을 믿기 힘든 것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우글우글하지요. 거짓말 한 적이 없는 여성이라도 일단 꽃뱀으로 몰고...ㅠㅠ 책인줄 알고 읽을까 했는데 드라마네요. 아쉽다 했는데 리뷰를 읽다보니 책이 나왔군요 ^^ 감사합니다.

* 야간 대학원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책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결혼한 여성이 대학원에 진학해서 배우는 자전적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재밌게 읽었는데...

다락방 2019-10-01 08:21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이건 책이 있으니까, 마태우스님이 꼭 읽고 리뷰도 써주세요. 저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도 엄청 좋을것 같아요. 여성의 말을 믿기 힘든 것으로 만들려는 건, 그것이 여성이 당한 성범죄 앞에서 특히 심한 것 같아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순간 남성이 가해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마도 더 심한 것 같아요. 으, 정말 끔찍한 현실이죠. 이 책은(실화입니다), 그 대표적인 피해 사례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결혼한 여성이 대학원에 진학해 배우는 자전적 에세이....가 뭔지 생각나시면 꼭!! 알려주세요. 저도 읽어보고 제 미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후훗.

단발머리 2019-10-01 08:3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그 책은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아닐까 합니다.

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저자가 기혼여성이기는 한데 대학원에 진학해서가 아니고, 여성학 강의를 청강한 걸로 전 기억해요.
페미니즘 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거든요.
마태우스님이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더욱 그런 것 같구요.
제게도 페미니즘 세계를 열어준 책이라 제가 애정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맞아야 할 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1 08:45   좋아요 0 | URL
네? 빨래하는 페미니즘요? 저 그거 읽었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왜 당연히 국내서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놔. 그러고보니 결혼한 여성이 육아도 하면서 여성학 강의를 듣는거 맞네요. 빡쳐서 남편 빨래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 책 말씀하신 거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는 왜 그거랑 매치를 전혀 못시켰을까요?

하아- 책 헛읽었어, 헛읽었어 ㅠㅠ

마태우스 2019-10-01 23:59   좋아요 0 | URL
아 맞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이었죠! 나이가 드니깐 기억도 못하네요 이젠. 흑흑.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락방님, 언제 페미니즘 강의 한번 하셔야겠어요! 님만큼 열심히 하신 분 안계시잖아요...! 암튼 응원합니다

다락방 2019-10-02 08:41   좋아요 0 | URL
말씀은 감사하지만, 마태우스님, 제가 강의를 할 깜냥은 안됩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이 전부인데 무슨 강의까지를 ... ㅠㅠ 어휴 생각만해도 부담스럽고 답답하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지금처럼 계속 읽고 쓰는 걸 해야겠어요. 그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하하하하.

2019-10-01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1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19-10-0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3회까지 봤어요. 저는 원래 범죄드라마 왕팬이라 상당히 잔인한 살인 사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보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1회를 보는 데 한참 걸렸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서 몇번이나 멈췄다가 봐야했답니다. 결국은 범인을 잡고 잘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너무 힘들었어요. 빨리 범인 잡는 걸 봐야 마음이 좀 편해지겠죠?

다락방 2019-10-01 10: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시케님. 저도 1화가 너무 힘들었어요. 마리가 형사들한테 취조 당하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고 그런데 압박당하고.. 거기에서 정말 답답하고 미치겠더라고요. 그렇게 돌아왔더니 상담사들은 왜 거짓말했냐며 다시 경찰서 가라고 하고.. 하아. 저도 몇 번이나 멈춰가며 1화를 봤어요. 보면서 ‘와 사람들 이거 어떻게 봤지, 이거 이렇게나 힘든데...‘ 했답니다.

그렇지만 캐런 형사와 그레이스 형사가 나오면서부터 유능한 여자형사 둘이 엄청 열심히 수사하는 게 나와서 막 의욕 뿜뿜하게되는 그런 감정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같이 보니까 좋네요, 프시케님. 흑흑 ㅠㅠ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ff 시리즈 2
시몬 베유 지음, 길경선 외 옮김 / 꿈꾼문고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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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내딛는, 개인보다는 모두를 위한 길을 선택했던 시몬 베유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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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도 끝나가고 9월도 끝나가는데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못읽었다. 

이제부터 열심히 읽어보려고 딱 책 읽을 준비!

밤을 새서라도 다 읽겠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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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29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졸려 ㅜㅜ

블랙겟타 2019-09-29 22:33   좋아요 0 | URL
응? 13분만에 졸리셨네요. ㅎㅎㅎㅎ
저도 9월안으로 읽으려고 분투중입니다.!(•̀ᴗ•́)و

다락방 2019-09-30 08:24   좋아요 1 | URL
너무 졸려서 누웠다가 막상 누우니 또 잠이 안와서 좀 더 읽었습니다. 아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