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장점은 아주 많다. 강간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얼마나 압박을 받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고, 남자 형사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강간이란 범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피해자를 건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자 형사들의 입을 빌어 얘기해준다. 1화부터 8화까지 가면, 허위진술로 경찰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강간 피해자 마리가 나중에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 허위진술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마리는 직장도 잃고 친구도 잃고 3년이라는 시간도 잃었으니까. 그 때 마리가 찾아가는 변호사는 마리에게 그런 말을 한다. 절도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 피해 사실을 거짓이라 의심하지 않는데, 성범죄에 대해서만은 피해자를 의심한다고.
수사 과정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드라마가 보여준다. 아마 실제로도 그러했겠지만, 여자형사들이 강간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남자형사들의 그것과 달랐다. 이해받고자 하는 피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얘기하려고 할 때, 여자형사 '듀발'은 '네 행동을 나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마리가 만났던 게 듀발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마리의 삶 자체부터 그 후의 범죄들까지, 정말 많은 게 달라졌을텐데.
마리는 강간 피해자이지만 허위진술을 한 나쁜여자가 되어 결국 직장도, 친구도 다 잃는다. 직장을 잃기 전 창고에 배정받아 남자와 둘이 일하게 되었을 때, 남자는 그녀의 앞에 마치 성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처럼 선다. 마리는 이에 두렵다. 아무도 없고 이 어두운 공간에 우리 둘만 있는데, 자기보다 큰 남자가 자기 앞을 가로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까.
나는 그녀가 이 자리에서 또 강간을 당할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그녀가 만약 여기서 강간을 당한다해도 그것이 신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더 두려웠다. 그녀가 강간에 대해 허위진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어차피 내가 강간해도 그녀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까'라고 생각할테니까. 그것은 또다시 강간으로 이어질테니까.
그래 어디가서 얘기해봐 니 얘길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어?
만약 마리가 경찰에 가서 신고한다면, 그 때는 형사들이 '이번에는 진짜로구나' 하며 들어줄까? 아마 마리 역시도 '어차피 내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과 '형사들이 주는 그 압박감을 견디기 싫다'는 생각으로 신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강간 피해자를 허위진술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마리는 이중 삼중의 위험에 노출되는 거다.
그녀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서, 그녀가 당한 강간 피해를 '의심해서' 그녀는 아주 많은 것을 잃었는데, 거기에 '또다시 강간을 당할 위험'까지 더해져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잘 보여준 드라마라 충분히 의미있지만, 이 드라마가 아주 좋았던 점을 또 꼽자면, 두 여자형사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잘 보여진다는 거다. 강간범에게 분노하고, 자신들이 처음 맡았던 강간 피해 수사에 대해 잊지 않고 있으며, 어떻게든 이것을 잡아야 한다고 아주 열심히,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 일하는 거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오래 해왔던 사람과 또 오래 하고자 하는 여자 두 명이 정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진짜 큰 장점이다. 으레 사람들이 '누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렇다니까? 드라마 속에서 이 베테랑 여자형사들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느라 열심인 모습은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 드라마가 가진 진짜 큰 장점이다. 너무 좋았다, 너무. 너무 좋았어.
'듀발' 형사가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저 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그녀를 자꾸만 쳐다본다. 듀발형사도 그의 시선을 느낀다. 잠시후 레스토랑에 다른 여자들이 들어오는데, 그녀들이 포장한 걸 챙겨서 나갈 때까지 그 남자는 그녀들을 끈적하게 보다가, 그녀들이 사라지고 나자 다시 듀발을 그런 시선으로 본다. 듀발은 일어나서 계산을 하려면서 상의를 걷는다. 거기에는 보란듯이 경찰 뱃지와 총이 있다. 남자는 그걸 보고 흠씬 놀라 얼른 시선을 거둔다. 듀발 형사는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한동안 가만히, 그의 뒤에 서 있고, 그는 그녀가 뒤에 서 있음을 느낀다. 그 때의 그는 긴장과 두려움 속에 놓였을 것이고, 듀발 형사는 그것을 의도했다. 그렇게 서있다가,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이 장면도 몹시, 몹시 좋았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마리가 듀발 형사에게 전화하면서 끝난다. 세상은 자신에게 절망만 안겨줘서 이 세상을 끝내고 싶었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열심히 수사해줬다는 것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맙다고. 나는 이 장면도 몹시 좋았다. 실제로 전화를 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러니까 열심히 일한 형사들이 자신의 일에 그때쯤 한 번 미소지을 수 있게 되는 장면. 크- 너무 좋지 않은가.
어차피 결말을 알고 있는 내용이고 또 드라마를 보기도 했으니 책은 굳이 안읽어도 될테지만, 나는 마리의 그 이후가 알고 싶어 반드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 책 리뷰를 읽었는데, 지금 마리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고 했던 거다. 그걸 내가 꼭 확인하고 싶다. 그 트라우마들을 극복하고 지금은 괜찮은건지, 지금의 그녀의 삶을 내가 좀 알고 싶은 거다. 물론 그 사건은 그녀에게 큰 일이었고, 그로 인해 죽고싶은 마음까지 들었으며, 또 그것은 아마 오래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삶에 있어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녀를 신뢰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가끔은 절망을 물리치면서 살아가는 걸 보고싶은 거다. 그녀가 그렇다는 걸 내가 알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느라고 어제 낮에는 책을 읽을 수 없어 저녁에 펼쳐들었다. 펼쳐들자마자 졸린 게 함정... 그렇지만 어쨌든 두 시간쯤 읽었는데 너무 졸린 거다. 출근길에 열심히 읽고 퇴근길에도 읽으면 끝마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를 남겨두고 불을 끄고 잠을 자려는데, 막상 누웠더니 잠이 안와 한 시간을 뒤척였다. 제기랄..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책을 좀 더 읽었다. 그래, 이렇게된 거, 다 읽고 자자!!
그렇지만 또 책을 읽으니 졸려.. 뭐지. 왜지. 왜이러는거지. 왜때문이죠..
그래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책의 남은 부분을 마저 다 읽었다. 다 읽은 것이었다. 만세!!
여성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갈까 수차례 망설였는데, 회사와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체력적으로도 안될것 같지만, 시간도 부족할 것 같고. 무엇보다 등록금...........을 생각하면 역시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었다. 으으.. 그걸 어떻게 내나,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한학기 등록금이 1천만원에 육박했다. 물론 어느걸 공부하느냐에 따라 등록금이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몇백..을 한다는건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못한다.
안된다.
한 학기에 어떻게 몇백씩을..
나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에 이렇게 여러사람들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는 게 너무 도움이 된다. 벽돌같은 두꺼운 책이라도 어쨌든 읽자고 내가 말을 꺼낸 터니 뒤로 물러설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거다. 무엇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므로,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두꺼운 책들도 읽어내는데, 그것들을 읽어내는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는 거다. 물론 그 모든 내용들이 머리에 쏙쏙 박히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새롭게 알게되는 것도 있고 읽으면서 또 깊게 생각해보는 부분들도 있다. 게다가 흘려버린 내용일지라도, 다음에 다른 책을 읽을 때, '어, 이건 어디에서도 나온 것 같은데' 하면서 연결지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있는 지금은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
한번씩,
만약 누군가가 등록금을 대준다고 하면, 그러면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닐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하는데,
그래도 직장을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 돈을 버는 일이 매우 중요하므로.
아마 이 직장을 관둬도 다른 돈벌이를 반드시 구했을 것이다.
그러면 역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것이고...
대학원은 포기해야 해..
노노해,
노노.
노노..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너무 멀리온 것 같다. 과거의 나로부터 너무 멀리.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읽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은 여기에 닿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결국은 여기에 닿을 수밖에 없어, 알면알수록 와야할 곳이 여기가 되어버려.
그런 것이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