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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몇 년전만 해도 나는 한국소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한국 소설 읽는 게 참 좋다. 애초에 나의 모국어로 쓰여진 걸 읽는 재미와 기쁨은 번역서가 결코 줄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한국 여자작가들의 작품은 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좋은데, '문목하'는 이야기 쪽에서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와, 우리나라 여성작가들 글 잘쓰네, 라고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감탄했다. 며칠전에 '한국문단은 죽었다'고 말하던 누군가도 떠올랐다. 어떤 책을 읽어왔기에 또 어떤 책을 읽을 생각을 하길래 한국 문단이 죽었다는 거야. 이렇게나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구먼!!
별 다섯의 0.5 정도는 사실 응원과 기특한(?) 마음 같은 걸로 덧붙이게 된건데, 뭐 아무래도 좋다.
윤서리는 초능력을 가진 비원과 초능력을 가진 경선산성의 싸움이 못마땅하다. 분명 이 깊은 싱크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서리의 능력을 얘기하는 건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사랑이 어떤 부분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랑은 모든 것의 답이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의 길이 될 수도 없겠지만, 아주 많은 선택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살아있기를 원하는 마음, 당신이 잘 지내기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은, 모든 선택들을 다시, 다시 뒤로 돌리게 만들기도 하니까. 내가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감당할만한 타인의 안녕에 대한 바람이 대부분의 이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책의 윤서리가 그랬고 정여준이 그랬고 최주상이 그랬다.
읽다보면 '애쉬톤 커쳐' 주연의 영화 『나비 효과』가 자꾸 생각나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 애쉬톤 커쳐는 다른 이들에게 일어난 불행을 막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태어나지 않음을 선택하기로 한다.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 책은 헐리우드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기사 중간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라는 어느 독자의 평은 적확했다. 읽으면서 서너번쯤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이렇게 풀어갔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고, 그래서 와, 우리나라 여자 작가들 글 잘쓰는구나, 했다. 작가가 출판사 아작을 알게 되어 원고를 투고했다는데, 작가의 그 시도와 용기가 감사하다. 이런 글이라면 투고해야함이 마땅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가영이 …… 윤서리를 저기 살려두려고 왜 그렇게까지 견디는 거야?"
정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주상을 보았다. 그리고 먼 바깥에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윤서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왜겠어요."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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