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육덕진 맛을 아는 몸이 되어있었다.

안그래도 팔아놓고서 왜 팔았을까 다시 읽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책 중에 한 권인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를 이번호 시사인에서 만났다. 게다가 알라딘 굿즈 얘기까지 같이 나온다. 돈 없다고 책을 읽는 족족 팔아버리고 있는데, 책을 팔아치우는 게 능사는 아니구나 싶다. 















어쨌든, 이렇게 시사인에서 만난 벨 훅스가 반가운데, 게다가 장일호 기자가 써놓은 글을 보노라니, 오오, 나도 이 책 읽으며 이런 생각 했던 것 같은데, 하게 되더라. 그래서 내가 써놓은 글을 찾아봤다. 아니나다를까, 이런 인용문이 있었다.



자녀는 단순히 부모가 하는 말을 통해 배우지 않는다. 자녀는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배운다. 부모가 딸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나 다른 여성이 지닌 가치를 폄하한다면 건강한 자기애의 토대를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건 건강이라고 말하면서 딸들이 날씬해지기를 바라며 집착하는 아빠, 심지어 다른 여자와 비교하며 아내에게도 살을 빼라고 종용하는 아빠는 실질적으로 여성이 스스로를 싫어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체중이 자신의 가치를 매길 것이며, 결정적으로 사랑받을지의 여부를 결정지을 거라는 메세지를 받는다. 

『식욕』이라는 흥미로운 회고록에서 지닌 로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날씬해진다는 것은 살로 상징화된 내면 깊은 곳의 상처를 치유해줄 마법으로 여겨졌다. 비만에서 벗어나면 상처의 핵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스는 사랑을 향한 여성의 탐구와 날씬해지고자 하는 여성들의 집착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평생 쥘 수 없었던 사랑과 존중, 인정을 얻게 되리라는 환상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어릴 적 소망의 성인 버전이다. 언젠가는 사랑을 얻게 되리라 믿었던 어린 시절,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환상을 꾸며내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모습을 바꿔 다른 사람이 되기만 하면, 저 모퉁이를 돌기만 하면 그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우리는 그 모퉁이를 돌겠다고 평생 동안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혐오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여성의 자기애는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p.144-145)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체중은 가치 혹은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는 것을 안다. 한 남자사람은 일전에 '남자들끼리는 여자들 뚱뚱한 거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흉을 봐' 라고 얘기한 적이 있고, 한 여자사람은 또한 '남자들은 뚱뚱한 여자 싫어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게 그 둘의 문제이거나 한 게 아니라, 전반적이고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일 테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나깨나 다이어트 다이어트, 하는거지.


지난 주말에 친구들 여럿이서 함께 맛있는 안주와 술을 마시면서 다이어트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다이어트를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내가 날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라고 내가 말하자 저 쪽에 있던 다른 친구 한 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다른 친구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얼마나 성취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터라 그래 그렇지, 하고 수긍했지만, 나의 가장 강한 축을 이루는 부분은 '성취감'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위의 시사인 기자가 말한 것처럼, 어떤 상태이든 내 몸을 긍정하는 것, 을 나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랄까.

주말에 있을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다이어트 해서 예쁜 옷 사입으려고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많이 먹고 있어. 하아- 어제 저녁에 고추장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까지 마시고, 오늘 아침, 아아, 어떡하지, 오늘 저녁을 굶을까, 생각했지만, 목요일도 금요일도 중요한 술약속이 있다. 하나도 취소할 수가 없어. 나에겐 모든 술약속이 중요해. 어쩌지.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다이어트는 못하고.....

고민하다가,

출근길,

양재역에서 사무실까지 뛰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양재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면 17-20분정도 걸리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하므로 최근 몇 개월간 버스를 타고 간 거다. 버스를 타고 가면 시간이 훅- 줄어드니까. 그러다보니 하루에 걷는 걸음수가 현저히 줄어든거다. 아무래도 20분간 걷는 게 줄어드니까... 아아, 이건 다이어트에도 나빠, 이 걷는 걸 확보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면서 고민을 했다. 걷고 싶다, 그런데 버스가 빠르다, 걷고 싶다, 그런데 버스가 빠르다..그렇다면...나는 '걷기'도 '시간단축'도 모두 원하니까...



뛰자!

뛰는 거야!

뛰는 게 답이야!!!


이 생각을 하고서 또 스스로 너무 똑똑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진짜 뛰어난 것 같다. 그래서 양재역 계단을 올라오고 나서는 계속 뛰었다. 모닝 조깅! 한참을 뛰다가 헉헉대며 조금 걷고, 핸드백을 다른 손으로 옮긴 뒤에, 다시 또 뛰었다!!!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하고나니 훅끈, 온 몸이 달아올랐다.

내일아침도, 모레아침도 뛰어서 출근하면, 주말에 있을 친구 결혼식에 조금 날씬해져서 갈 수 있을까?



너무 병신같은 소리를 하고있나...




문득 결심하게 된다. 나중에, 내가 이국의 작고 아름다운, 술집과 까페가 옹기종기 자리한 마을에 가서 한국책방을 열고자 할 때는, 팔고나서 후회하는 책을 다시 사가지고 가자고. 그것들의 리스트에 [사랑은 사치일까]를 넣어야겠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함께.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종 2016-02-1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님의 첫번째 문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머그 3종도 다 이뻐서 있는 책도 다 못 읽고 있다며 자제하느라 힘들었죠ㅠ
저 역시 나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뉴스 기사를 보니, 다이어트에는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이 효과적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일찍 일어나서 걷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다락방 2016-02-18 09:36   좋아요 0 | URL
굿걸 배드걸 머그는 품절이네요. 저 오늘 그거 하나 선물용으로 받으려고 했는데.. 진작에 받았어야 했나봐요. 그 머그 품절이라니 의욕이 안생겨요 ㅠㅠ 저는 그 컵이 제일 욕심났거든요. ㅠㅠ

오늘은 걸었습니다. 효과적인걸 생각해서 걸었다기 보다는, 가방에 맥북이 들어있었는데 이게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뛸 수가 없었어요. 날 따뜻해지면 걷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어요.

꿈꾸는섬 2016-02-1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힐 신고 뛰는건 아니죠? 꼭 운동화 신으셔요.^^

다락방 2016-02-18 09:36   좋아요 0 | URL
네네, 운동화 신고 뛰었어요. 힐 신고 그렇게 먼 거리를 뛸 순 없을 것 같아요. ㅎㅎ 고맙습니다, 꿈섬님!

transient-guest 2016-02-1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뜀박질은 꼭 근육운동과 병행해주심이...무리하지 마시길...우리 나이는 관절이 하나씩 둘씩 고장나기 시작한다능...-_-

다락방 2016-02-18 09:3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슬프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나이 ㅋㅋㅋㅋㅋㅋㅋ관절이 하나씩 둘씩 고장나기 시작하는 나이 ㅋㅋㅋㅋㅋㅋㅋㅋ아, 제가 짐작하기에 게스트님과 제가 동갑일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몬스터 2016-02-18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사치일까 읽어보고 싶어서 다운 받을려 했더니 없네요. 같은 작가가 쓴 올 어바웃 러브를 대신 내려 받아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다락방 2016-02-18 09:40   좋아요 0 | URL
오, 더 좋아요, 몬스터님. 저는 [사랑은 사치일까?] 보다 [올 어바웃 러브]가 더 좋았어요. 그거 읽고 쓴 리뷰도 있을텐데..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잠시만요..

여깄어요!
http://blog.aladin.co.kr/fallen77/7241192

비로그인 2016-02-18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체적 건강미는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건강한 몸매를 위해 운동을 하고 식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은 자연이 주는 충동이지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 하네요. *^

다락방 2016-02-18 09:41   좋아요 0 | URL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하고 식욕을 통제하는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긍정적일 수 있지만,
저는 제가 어떤 몸을 가지고있든 사랑할 수 있는 게 더 긍정적이라 생각해요.
:)

붉은돼지 2016-02-1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땡!! 이에요.... 오답입니다.....저 역시 뛰는 것 보다는 걷는 것을 추천합니다. ^^
저는 뛰어본 지 한 오백년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뛰는 방법을 잊어먹은 것도 같아요 ㅜㅜ

다락방 2016-02-18 15:33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저도 뛸 일은 별로 없네요,
라고 쓰고 싶었는데 사실 뛸 일이 많네요. 이를테면 버스가 저보다 조금 더 먼저 도착해있다던가,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이 막 도착하고 있다던가 하는 경우에 말이지요. 그러면 다다다닥 뛰어가서 타야 합니다. 아하하하.
오늘은 걸어왔어요.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뛸 수가 없었거든요. 휴...

네꼬 2016-02-1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요일 때문에 며칠만이라도 술을 먹지 말자고 결심했는데 이틀만에 보기 좋게 실패하고 어제 또... 먹는 건 애진작에 포기. 자 우리 솔직하게 만납시다! 몸도 마음도 솔직하게!

다락방 2016-02-18 15:34   좋아요 0 | URL
네네, 우리 몸도 마음도 솔직하게. 그리고 솔직한 내 자신을 인정하면서!!(응?) ㅋㅋㅋㅋㅋ
토요일날 만나요! :)

moonnight 2016-02-1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그만 제 몸을 긍정해야겠어요.ㅎㅎ;;;

다락방 2016-02-19 09:23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우리 각자의 몸을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합시다! 히히

개인주의 2016-02-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뛰면 관절 나가요오...
ㅎㅎㅎ
먹는건 좋은 겁니다.
식욕이 사라진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슬픕니까.

다락방 2016-02-22 11:07   좋아요 0 | URL
스누피님, 정말 그래요!
저도 식욕이 사라진다면 너무나너무나 슬플 것 같아요. 슬프고 불행할 것 같아요.
다이어트 약으로 식욕억제제를 많은 사람들이 먹던데, 저는 그걸 상상할 수가 없어요. 너무 큰 불행을 스스로에게 가할 수가 없어요. 제 안에 욕망이-그것이 식욕이든 성욕이든- 약으로 다스려져야 하는 거라면, 어휴, 너무나 슬프잖아요. 저는 제 욕망과 제 몸을 긍정하며 살겠습니다. 아하핫

기억의집 2016-02-2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가 올어바웃 러브 작가인가요? 전 그 영화 너무 좋았어요. 로맨틱 영화 안 좋아함에도 보고 나서 싱글벙글 했던 영화에요!

다이어트는 평생 짊어지고 가는 문제네요. 근데 저는 어느 순간 먹게 됐어요. 그래서 많이 쪘는데 그거같고 울 남편 막 뭐라하는데,,,, 신경 안 쓰고 살려고요!!!

다락방 2016-02-22 11:09   좋아요 0 | URL
아, 기억의집님. 제가 이 댓글 읽고 검색해봤는데 [올 어바웃 러브]라는 `클레어 데인즈` 주연의 영화가 있네요? 이 영화는 제가 위에 포스팅한 책과 전혀 다른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벨 훅스`는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쓰거든요. 제가 위에 포스팅한 책도 에세이 혹은 인문서적으로 봐야할 것 같아요. 생각하신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보다 먹는 걸 좀 줄이긴 했는데(응?), 그래도 택도 없어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저는 그냥 뭐랄까,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날씬한 사람으로 살 순 없겠다고 생각해요. 그냥 백키로만 찍지 말자..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핫

2016-02-20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1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게일 브랜다이스 외 지음, 정미현 옮김 / 문학테라피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읽지 않았을 때는 유머도 없는 이 책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딱히 재미있는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 더 집중하게 됐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니 이렇게 다를 수도 있나, 하고 들여다보는 일에 내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거기에 있다. 결혼이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각자의 결혼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은 행복과 안정감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불화하고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결혼을 한 번 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심지어 다섯번 이혼한 남자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다섯 번 이혼한 남자와 교제중인 여자는 다섯 번 결혼한 아버지의 딸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든든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굳이 책을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서 역시 근사한 동반자를 얻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난 뒤, 함께 살아가는 시간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얘기하고 그때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얘기한다. 다른 누군가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얘기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경우들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알게됐는데, 그건 인간이 저마다 얼마나 다른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바와 다름없다. 누군가에게는 아기가 절실해서 섹스가 단지 수단이 될 수있고, 누군가는 더 큰 쾌락을 위해서 성을 사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간 둘이 만나 커플이 되었을 때 당연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마찰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일 테다. 우리는 모두 기쁨이 다르고 괴로움이 다르고 고민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스무살에 결혼한 사람이 있고 쉰이 넘어서 양욱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나이는 '앞으로 이걸 할 것이다' 라는 걸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결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동거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내 미래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결정하든,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결정을 한 이후 우리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앞으로 길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이 책의 누군가가 언급한것처럼 고독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부정적인 생각도 커다란 단점도, 반드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가 바람을 폈을 때 한 번 뿐이니까 흔들릴 수 없다고 결심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도 인상깊고, 남편은 러시아에 살고 자신은 미국에 살면서 일년에 반 정도만 만날 수 있는 커플의 이야기도 인상깊다.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낯설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독서였다. 읽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별과 고통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일종의 희망 같은 것이 내게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옛날 언젠가 나는 그에게 내 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뭘 하느냐고 물었다. "저녁 만드는 중."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파이 굽고 있어. 버섯 치즈 파이." 나는 파이 굽는 남자를 원했다. 그가 해동하고 있는 게 실은 그의 어머니가 만든 파이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이미 우린 셔츠를 같이 입는 사이가 된 후였다. (펀 쿠퍼,p.55)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그녀의 고운 마음씨를 가장 높이 산다. 그녀가 자기 엄마한테 휴가가 꼭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휴가 보내드린다는 얘기를 하거나 도시의 보행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애쓴다는 얘기를 할 때면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세포 하나하나가 사랑에 겨워 팔딱대는 기분을 느낀다. 내 연애사를 차지한 몇 번의 기나긴 짝사랑을 거친 뒤 정말 굉장한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번엔 내가 그 사람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늘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이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생각이다. (린다수전 울리히, p.131)

나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단순히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의 역사에 포함되는 이 한 조각에 비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우리의 관계는 더 크고 깊고 중요하다. 살다가 어느 시점에 혹시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할지라도, 그게 싫다고 마냥 이상적인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진 않다. 나한테는 에밀리가 필요하다. 음정이 안 맞지만 열심히 노래 부르는 모습, 바겐세일에 목숨 거는 모습, 사용설명서 독해 장애는 아닌가 의심되는 헐렁한 모습, 심지어 나를 상처 입히는 능력까지 나는 다 원한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이 그녀의 아찔한 미소와 영성, 총명함, 열정, 그리고 우리의 깊은 유대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함께하겠다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아주 잘. (린다수전 울리히, p.140-141)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딸과 함께 코네티컷에서 지냈다. 나는 거기서 글을 쓰고 근처 대학 두 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더군다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뉴잉글랜드식 가치관을 지닌 나의 부모님, 그러니까 딸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가까이 살면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댄은 그의 주 거처를 모스크바로 삼기로 했다. 자기 일에 진심으로 매진할 수 있는 곳이 거기니까. 딸의 방학 기간과 우리 부부의 각자 작업 일정을 요리조리 맞춰서 우리 가족은 1년에 반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댄은 사랑하는 이들과 부대끼고 사는 일상을 그리워한다. 나는 매일 감당해야 하는 자녀 양육의 책임을 나눌 사람이 절실할 때가 많다. 우리 딸은 확연히 다른 두 문화를 접하는 혜택을 누리지만 일상의 연속성이 끊기는 경험을 자주 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양쪽 집안 모두 우리 가족의 삶을 지지해줘서 참 다행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살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만족스럽다. 좀 희한한 방식이긴 해도 우리 부부는 마침내 결혼 생활에서 평등을 이뤄 냈다. (팡 메이 나타샤 창, p.188-189)

나는 결혼 경험이 많다. 말하자면 꾸준히 배필을 물색하는 연속일부일처주의자(*일정 기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연속 단혼의 결혼 형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욕정부터 죽음까지 같이 짊어지고 갈 수 있다고 꾸역꾸역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이스 톰슨, p.246)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6-02-17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에 한껏 끌리네요. 다락방님 리뷰 읽고나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던지고 바로 읽고 싶네요^^

밑줄문장도 좋아요~~ 그건 냉동파이였고 우리는 이미 ㅎㅎㅎ

다락방 2016-02-17 16:52   좋아요 1 | URL
이미 가정을 이룬, 혹은 이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걸 들었다고 해서 제가 더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른 방식으로 살고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음, 제가 `이렇게 사는 건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어서 참 희망차게 여겨졌어요. 으하하하핫.


밑줄긋기는 몇 개 추가했습니다.

mira 2016-02-17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생에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책 읽고 희망을 가져볼까요 ㅎㅎ

다락방 2016-02-17 16:52   좋아요 1 | URL
미라님은 희망을 가지시게 될지 혹은 역시 없어 없어, 하시게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결혼하고나서 우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행복했든 우울했든 그리고 이미 끝나버렸든 계속 진행중이든, 미이 해보았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읽는 것은 제게 유익했습니다. 흣 :)

[그장소] 2016-02-1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읽고 싶어요.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남자도 필요하지만 역시 ㅡ다함께 책임을 나누고 함께 행복할 가족이란 단위가 필요하구나..가끔은 생각해요.
그런데 일반적 가정은 아니예요.
제가 꿈꾸는 가정은요..파괴적인 가정이랄까..지금으로썬.ㅎㅎㅎ

다락방 2016-02-18 09:43   좋아요 1 | URL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파괴적 가정에 대해 조금쯤 짐작이 되네요. 가족이란 게 구성원들 사이엔 가장 친밀함을 나눌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구속력이 어마어마하기도 하죠. 또한 타인에게 가장 배타적인 집단이기도 하고요. 일전에 [준벅]이란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걸 느꼈거든요. 아, 가족이란 게 이렇게나 배타적이구나, 하고요. 그러니 그장소님이 생각하신 파괴적인 가정이란 건, 제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옵니다. 하핫

[그장소] 2016-02-18 16:21   좋아요 0 | URL
베타 ㅡ적이고 말고요. 그래서 집안 일 이라며
공공연한 폭력이 자행되기도 하는 집단이기도 하고 말예요.
뭐, 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비슷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ㅡ합니다.
구상은 ㅡ^^ 다락방 님과..
멋진 ㅡ신세계 ㅡ랄까..
아님 막장 신세계랄까..ㅎㅎㅎ

네꼬 2016-02-1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습니다. 다락님 글이 좋아요.

저 역시 희망을 가져보았고 그게 저를 결혼하게 만들었어요. 누구나 다른 종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락님 좋아요.


다락방 2016-02-18 15:37   좋아요 1 | URL
저는 계속 혼자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이 책에 제가 생각하는대로 사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 음.. 좋았어요. 그래, 거봐, 이렇게 살 수 있잖아,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고통과 배신 체념등으로 결국 돌아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는데도 희망적인 느낌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헷.

오늘 네꼬님 글 되게 좋았어요. 제가 좋게 읽은 책을 네꼬님도 좋게 읽어서 막 신나고 뿌듯하고 그랬어요. 게다가 네꼬님은 글을 참 재미있게 써서, 아 참 좋으네, 하면서 읽었어요. 고마워요. 히죽히죽 ^_____^

moonnight 2016-02-18 17:36   좋아요 0 | URL
와 다락방님 글도 좋고 네꼬님 댓글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저 역시 희망을 가져보았고 그게 저를 결혼하게 만들었어요. 라니요@_@;;;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희망을 가지길♡♡♡♡

다락방 2016-02-19 09:24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댓글도 좋아요. 알라딘에서 오래오래 문나잇님을 알고 지내는 거 참 만족스런 일중에 하나입니다. 히힛

네꼬 2016-02-19 17:26   좋아요 0 | URL
뭐죠 이 살랑이는 댓글의 물결. 달달하여라.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중고샵에 팔아버렸는데, 팔고나서 가장 후회하는 도서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시 사야지, 생각하지만 막상 책을 사게 되면 '다시' 사는 것은 뒤로 밀려나기 마련. 결국 여전히 다시 장만하지 못한채, 그걸 왜 팔았을까, 하고 시무룩해한다. 단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참 좋았는데.


그 단편을 쓴 '앤드루 포터'의 장편 소설을 읽었다. 이혼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 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은, 음, 일단 잘 읽힌다. 그리고 역시나 작가는 내가 기대한 그대로 세심한 것까지 다 신경을 쓰고 있더라. 이를테면 아들이 엄마에게 말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다 말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 말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후회하는 것들에 대한 장면들이 손에 잡히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튀어나온다. 책장을 덮고나서 내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는 것.


이 책이 '전체적으로'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무조건 아픈 이야기도 아니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중 누군가에겐,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가고 결정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함으로써 다른 가족에게 치명적인 아픔을 준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삶, 앞으로 펼쳐질 삶, 사랑을 선택한 삶을 응원하기보다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공감하고 말아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다니, 이건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앞으로 남은 시간을 내내, 살아있는 동안 내내, 걱정하고 궁금해할 사람을 생각하니 도무지 먹먹해서 기분이 나아지질 않더라. 울적했어. 편집증과 강박증이 생긴다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잖아. 슬퍼.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와 언젠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헤어지게 될텐데, 나는 작별인사를 제대로 하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동안 그다지 나쁠 것도 없었다. 도시는 아기자기했다. 독립 서점들과 커피숍과 셀 수 없이 많은 술집들이 있는 나른한 대학도시였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가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은 그는 오후나 저녁이면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곤 했다. 나뭇잎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했고 가을 들어 처음 부는 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에 부딪혔다. (p.521)




금요일 밤에 <걸어서 세계속으로> '지중해를 걷다' 편을 보면서 와인을 마셨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들이 너무 예뻐서 꼭 가보고 싶어지더라. 게다가 그곳에서 먹는 음식들은 또 어떨지 기대도 되고! 같이 보던 엄마는 저기 머니? 물으셨고, 나는 당장 내 방으로 가서 지구본을 들고 나왔다. 자 봐봐 엄마, 여기 장화처럼 생긴 여기, 여기가 이탈리아야. 그리고 지중해가 어디냐고 물었지? 이 앞에 보여? 이 바다가 지중해야. 여기서 이만큼 날아와야 여기, 대한민국이 있어. 열시간 넘게 걸리는데, 우리가 다섯시간인가 갔던 괌 있지? 그게 여기있어. 자 여기서 여기는 이만큼, 여기서 여기는 이만큼. 시간차가 느껴져? 재밌지? 그리고 봐봐, 여기 밑으로 쭈욱 내려가면, 여기가 호주야. 여긴 땅덩어리가 넓어가지고, 같은 나라인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렇게 이동하는 것만 비행기로 다섯시간 이래. 우리는 제주도까지 가는 거 오십분이면 되잖아, 그런데 여기는 자기네 나라인데 다섯시간이 걸리는거야. 재밌지?


아름다운 이탈리아와 그 안에 더 아름다운 음식들을 보면서, 아, 가고싶다, 생각했다. 저기에, 누군가와 함께 가서, 함께 저 아름다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저녁이 되면 맛있는 걸 먹고 마시고 적당히 취해서, 깔깔대고 웃으며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런 일이 내게 있을까? 그런 날이 내게 올까?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행을 싫어한다면, 저 멀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게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그냥 혼자 가야지, 별 수없이. 혼자 가서 혼자 보고, 혼자 만끽하다가, 그 사이사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야지, 그도 나쁘지 않아.


그런 참에 훌쩍 다른 도시로 떠난 리차드를 만난 거다. 아기자기한 도시, 독립 서점들과 커피숍, 셀 수 없이 많은 술집. 눈 앞에 어떤 곳일지 풍경이 그려지면서, 아, 혼자 지내기에는 참 좋은 곳이겠구나 싶은 거다. 집 안에서 혼자 나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집 밖으로 나가도 즐길 게 많은 삶. 나는 요란한 스포츠나 액션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술집과 서점과 까페를 좋아하는데, 리차드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닌가.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나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 이국의 어떤 곳에 가서 지내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서울을 떠나는 것이라도 하고 싶은데, 리차드가 사는 곳이 내가 가기에 딱 적당한 곳이지 싶다. 크지 않고 요란하지 않은 곳, 그런 곳으로 가고 싶어.. 혼자 걸어다니고 혼자 차마시고 혼자 스테이크를 썰어도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차에 남자1이 문자메세지로 사진을 보내왔다. 애인과 전주로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피순대와 문어꼬치를 먹고 있다며 음식들 사진을 보내준거다. 아, 그 순간 좌르륵,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탈리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 책을 읽으며 리차드가 사는 그곳에서 나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부러워졌다. 아, 부럽다. 정말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가고, 거기에서 맛있는 걸 함께 사먹고-라지만 나는 문어꼬치는 먹고싶지 않다. 문어꼬치였나 문어튀김이었나...-, 함께 걷고 같은 것을 바라보는 시간이라니. 부러워...




너무나 우울한 독서를 마치고 그 우울함이 쉬이 가질 않아, 그래, 이 기분을 날려줄 재미있는 책읽기를 하자, 싶어서 책장앞에 섰다. 무슨 책을 읽어야할까. 무슨 책을 읽어야 신나질까. 무슨 책을 읽어야 키득키득 웃을 수 있을까. 좀처럼 눈에 띄는 게 없어. 잭 리처? 음, 아니야, 그런 거 말고 좀 더 유머가 가득한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골랐다. 그래, 이 책이라면 조금 밝고 희망차고 또 유머가 가득가득할지도 몰라!
















하하하하하하하하. 얼마 안읽고 바로 알았다. 아, 이 책엔 유머가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기랄. 나는 왜 유머있다고 생각했지. 왜 그런 걸 기대했을까. 유머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니깐. 나같은 사람이나 갖고 있는거지, 이거야 원. ㅠㅠ 밝고 재미있고 희망찬 내용이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다. 재미없어. 재.미.없.어. 그래도 일단 끝까지 읽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이런 부분을 읽었다.




나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단순히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의 역사에 포함되는 이 한 조각에 비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우리의 관계는 더 크고 깊고 중요하다. 살다가 어느 시점에 혹시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할지라도, 그게 싫다고 마냥 이상적인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진 않다. 나한테는 에밀리가 필요하다. 음정이 안 맞지만 열심히 노래 부르는 모습, 바겐세일에 목숨 거는 모습, 사용설명서 독해 장애는 아닌가 의심되는 헐렁한 모습, 심지어 나를 상처 입히는 능력까지 나는 다 원한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이 그녀의 아찔한 미소와 영성, 총명함, 열정, 그리고 우리의 깊은 유대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함께하겠다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아주 잘. (린다수전 울리히, p.140-141)



결혼이라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순히 '상대를 사랑하는 감정'이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좋아한다는 마음, 그거 하나 만으로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게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 관계를 유지해야겠다는 노력, 그것 없이는 앞으로 갈 수 없다. 그저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둘 사이가 연결된다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서로가 서로의 같은 모습을 그리고 다른 모습을 보고 서로에게 적응하고 맞춰주는 시간들이 지나고나면,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하고나면, 그 뒤에는 일상이라는 것이 불쑥 찾아든다. 불쑥 찾아들었다 싶으면 그것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잠에서 깨서 양치하기 전의 모습을 본다는 것, 엉덩이를 긁는 습관이 있다는 것, 어쩌면 내가 싫어할 지도 모를, 그외의 아주 많은 일상의 습관들이 수시로 드러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그 환상적인 사람이 사실은 이렇게 평범한, 이런 지저분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수시로 찾아들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주는 느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에서 깨서 하얀 침대위에 몇 개 떨어진 겨드랑이 털이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욕실에 가끔 치우지 않은 머리카락이 널브러져 있기도 할텐데, 그런 것들은 우리가 그저 데이트만 하던 때에는 차마 알기 힘든 것들일 수도 있다.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칭찬해주는 동시에, 내가 원하지 않았던 상대의 모습까지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함께하는 삶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 같다.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상대의 모습들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지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서로의 모습에 실망만 켜켜이 쌓여갈 수도 있다. 



'앤드루 포터'의 [어떤 날들]에서 아내가 그랬다. 이혼한 남편과 자식문제를 앞에두고 함께 고민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게 마음이 있나, 아니 우리가 다시 시작할 가능성도 있었나,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여지없이 실망스런 남편을 맞닥뜨리게 된다. 



엘슨은 한 시간 전에 전화를 해 세시 십오 분 전에 건물 밖에서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간단히 정리해보고 들어가자고 약속해놓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거의 삼십 분이 늦어진 그때까지도 그는 나타나지 않고 음성메시지에 대답도 없었다. 이렇게 사라져버리는 건 그 사람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최악의 순간에 나가떨어지는 것, 그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일을 망쳐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그다운 짓이자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떠올리고 있었다. 엘슨이 리처드의 수영경기가 클로이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놓쳤던 일, 저녁식사에 삼십 분 만 늦겠다고 해놓고 결국 나타나지 않았던 일, 늘 출장 간다며 사라져버렸던 일, 가족 휴가여행을 취소하거나 저녁식사 모임에 혼자 가야 했던 일 등을. 그건 항상 일 때문이었는데, 아니 그의 주장은 그랬는데, 지금은 일도 안 하고 있잖아? 맞아, 그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그리고 그게 뭐든, 어쨌든 이것보다 더 중요하니까 하고 있을 그 일이 뭐든, 젠장, 좋은 일이 아니기만 해봐라. (p.461-462)




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를 함께 받아들이고 상의하기 위해, 또 함께 헤쳐나가야 했기 때문에, 형사들을 만나야 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그는 제시간에 오지도 않고, 게다가 늦게라도 온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이 순간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고, 그리고 그녀 혼자 맞닥뜨리기엔 굉장히 큰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없었다.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결혼해도 괜찮을까?] 에서 '린다수전 울리히'가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할 순 없다'고 생각했듯이, 만약 그녀의 전남편인 '엘슨'이 이번 한 번만 이런 실수를 한 거라면, 이런 일이 한 번 뿐이었다면 그들은 이혼까지 하게 되진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한 번의 실수는, 그가 그 전에 어떤 일들을 저질렀었는지 와르르 기억나게 만든다. 그래, 그는 항상 이랬어, 늘 이랬어, 늘 필요할 때 없었지. 서운함이 반복되고 쌓여간다면, 그 상태로 계속 함께 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 그때는 그에게 '일'이 있었고, 그가 그런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건 '일'때문이라고 했지, 그러나 지금 그는 휴가중이다,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자며, 꼭 해결하자며 회사에 휴가를 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여기에 없는가, 그는 대체 무슨 일로 여기 없는가, 왜 연락조차 되지 않는가 말이다. 아, 내가 그의 전아내인 케이든스였다면, 나는 그에게 아주 차가워졌을 것이다. 아주, 아주 많이 차가워졌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곤 차가운 목소리, 차가운 시선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일상을 함께 겪어나가야 한다는 의미고, 일상을 함께 견뎌나가야 한다는 건, 단순히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감정 외에,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나저나, 오늘 퇴근하고 충무로에 갔다와야 하나. 설연휴에 충무로 지하철 역에서 아이폰 카드수납 케이스를 봤는데 2만원이나 하는 거다. 어휴, 케이스가 너무 비싸, 하고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 했더니, 인터넷 가격도 그정도 할 뿐더러, 게다가 내 마음에 드는 게 없는거다. 지난 주말에 광화문 교보에서도 딱 내 마음에 드는 걸 찾지 못해, 충무로에서 보았던 그것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다.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데, 그때 2만원을 썼어야 했나... 인터넷으로 그 비슷한 걸 찾아보려니 어휴, 골치아프다. 인터넷 쇼핑은, 알라딘 책쇼핑 말고는, 진짜 머리가 뽀샤지는 일인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 맥북을 쇼핑할 때도 나는 그저 '맥북을 사고 싶다'는 말만 던지고, 남자사람 a 가 그날 하루 쇼핑에 매진해주었다. 야, 여길 가봐, 야, 여기를 통해 가면 7프로 할인이야, 야 전화해서 퀵배송 요청해봐 등등, 그는 내게 자꾸 링크를 툭툭 던졌고, 결국 나는 7프로 할인에, 무이자할부에, 신한카드 5천원할인까지 써서 결제할 수 있었다. 우하하하하. 물건은 언제 오려나. 인터넷 쇼핑은 알라딘 말고 나는 진짜 하기가 싫어. 쇼핑 싫어.. -.-

어쨌든 퇴근하고 충무로역 가서 그 케이스 사가지고 올까...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친구가 선약이 있다며 참석할 수 없다고 했다. 아쉬운대로 우리끼리 만나서 노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 그 친구를 보고싶다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혹시 그쪽 약속이 일찍 끝나면 여기에 오라고 하라는 거다. 그래서 전화했더니 그쪽 약속이 육시도 안되어 끝났더라. 그래서 여기 지난번 거긴데 오겠느냐 물었더니 지금 바로 온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잠시 후에 방문한 친구의 손에는 찬모듬소세지가 들려있었다. 꺅 >.<  센스쟁이!! 너무 좋아!! 먹을 거 사가지고 오는 친구라니. 인생은 가끔 이렇게 뜻밖의 기쁨들이 지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움화화화핫.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6-02-1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북 +_+ 언제 오죠, 저도 같이 기다림.

`어떤 날들`은 제목 때문에라도 읽고 싶은 책인데, 내용이 ㅠ 뭔가 저를 후벼팔 것 같은 내용이네요. 다락방 님 생각엔 어때요? 제가 읽어도 괜찮을까요?

다락방 2016-02-15 16:23   좋아요 0 | URL
음, 이런 종류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치니님은 저처럼 슬퍼하시진 않을 것 같아요. 음, 어쩌면 응원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에 치니님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맥북은 지금 오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비공개 2019-07-1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이북을.., 결제를..,, 하고말 것 같아요 ㅎㅎㅎ 이 페이퍼를 이제서야 발견하고 다시 읽은 것도 뜻밖의 기쁨이네요.

다락방 2019-07-16 17:11   좋아요 0 | URL
저도 곧 이북 결제를 몇 권 할 예정입니다. 어제는 어제의 종이책이 왔구요... 하하하하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p.51)




내가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때 조차 나는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가 무얼 뜻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때조차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끊임없이 '왜 나만?', '왜 여자만?', '왜 나는 너(남자)랑 같은 행동을 하면 안돼?' 라고 의문을 가져왔고 그렇게 목소리를 내 발언했었다. 내가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페미니스트 였다. 그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린 셈이다.


한편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있고, 그걸 드러내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불리한 위치에 여성이 놓여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성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나는 하이힐을 신으면서 기분 좋아하고 예쁜 원피스를 나풀거리면서 걷는 걸 좋아한다. 요즘엔 눈화장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이는 눈을 만들 수 있을까 섀도우를 바르며 갸웃갸웃 한다. 보습이 잔뜩 들어간 크림을 새로 샀고, 예쁜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다. 


나는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자기들만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환상을 이제는 공공연한 기준으로 세워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성을 소비하는 사회에서 모델들은 전부 남자들이 바라는 바로 그런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육체를 바로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순간도 없다. 너네는 저렇게 마른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니네들이 세워놓은 니네들만의 기준이고, 나는 그렇게 살진 않겠다, 라고 늘 생각해왔다. 나는 내 욕망에 충실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어. 그것이 비록 항아리처럼 배가 나온 모습이라도, 그게 내가 좋다면 나는 그런대로 살거야. 너네한테 예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먹고 싶은 걸 참고 하루종일 운동하면서 살진 않을 거야. 만약 내가 먹고 싶은 걸 참고 운동하는 데 빡세게 노력한다면, 그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어야 해. 혹여 '남자들은 그렇게 뚱뚱한 여자, 관리 안하는 여자 싫어해' 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싫어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남자가 있어야만 삶이 충족된다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가 함께할 때 불행한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나지만, 내 스스로 여전히 많은 고정관념들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나는 재이슨 스태덤의 근육을 볼 때마다 좋아 죽는 것이다. 이렇게 강한 남자를 보는 게 너무나 짜릿해, 이것은 사회가 맞춰놓은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에 그대로 굴복하고 있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단지 나는 미에 대해 나만의 기준을 가진 것인가... 내가 재이슨 스태덤의 근육가득한 몸을 보고 좋아하는 게, 그러니까, 그냥 나의 취향적인 문제인걸까? 아니면 나는 길들여진건가? 여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강한 남자가 그러니까 나만의 고유한 판타지인건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내가 갇혀있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쳐나가야 할 점이 있다면, 그건 내가 갇힌 고정관념에 대한 것일 거다. 그렇지만... 나는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하지만....너무나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내 연인에게 재이슨 스태덤처럼 되라고 말하진 않아, 재이슨 스태덤이 저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페티시즘에 더 가깝지 않을까? 단단한 근육, 강인함에 대한 페티시즘? 



그러면서 약간 갸웃하는게, 내 주변의 여자사람들은 나처럼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보다는 잘생긴 얼굴, 마른 몸, 아름다운 미소 같은 것으로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강동원한테 1도 관심이 없고(정말이다, 영화 개봉해도 안궁금하고 안본다) 오로지 재이슨 스태덤한테만 관심있다. 아, 이것은 그러니까 나의 취향의 문제인가..




내가 지금껏 써놓은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 작은 책 한 권에 그대로 들어가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자신의 남자사람 친구, 동료, 할머니의 얘기들을 풀어놓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한다. 실제의 사람들과 실제의 대화, 본인의 경험으로 풀어놓은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힌다. 스웨덴에서는 이 책을 전국의 청소년에게 모두 배부했다고 하니, 이 책에 대한 접근이 쉽다는 것을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될테다. 얼마전에 여자지인에게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했는데, 그 책 읽기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더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읽어보면 사실 그간 자신이 느껴오고 생각한 게 정리되어 있었을테지만, 거기에 접근하는 용어라든가 그걸 툭툭 건드려서 꺼내놓는 걸 읽는 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선물하기로 했다. 이 책이라면 접근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아서. 페미니즘을 다룬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타자화'라는 단어 자체부터 일반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들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는 그런 어려운 용어들로 페미니즘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초적인 책이 될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남성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기는 좀 더 꺼려지는데, 나는 이 책을 남동생에게 읽어보라 권했다. 이거 되게 짧아, 한 시간도 안걸릴거야, 그리고 쉬워, 그러니까 꼭 읽어봐, 라고 했더니 남동생은 읽었다. 다 읽고나서는,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데, 이 책은 남자보다도 아직 이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여자들이 읽는 게 중요할 것 같아, 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김을동 같은 사람이 읽어야 되지 않겠냐고... 김을동.......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나 확고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크게 그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아직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혹은, 이건 뭔가 이상해, 이건 좀 불공평하잖아? 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그래 맞아! 라고 고개 끄덕이며, 그렇다면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생각하게 될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입문서로 권한다.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 이론으로 설명한 게 아니라 경험으로 접근한 책이라 책장을 넘기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책을 많이 읽어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남동생이 다 읽은 이 책을 제부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또 한 권을 준비했다. 남동생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여성들이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소리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말한다면, 귀기울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더 많은 사람이 말하게 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을 경험으로써, 제공한다. 



이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8,82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음, 조금만 더 저렴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어떤 기념일에, 명절연휴에, 크리스마스에,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이 상대에게 건네며 선물하기에 좋은 가격 아닌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책의 말미에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p.52) 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아니,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나라에서 뭐하냐, 역사교과서 가지고 지랄하지말고 이 책을 청소년 모두에게 배부하라!!




다른 사람의 페미니즘 테드 강연까지 더해서 책을 이거보다 살짝 두껍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겨 별을 하나 뺀다.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p.13)

나는 간절히 반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시험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반장은 남자아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선생인믕 그 점을 사전에 밝히는 걸 잊었는데, 어차피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시험에서 이등을 한 아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남자아이가 반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욱더 재미있었던 점은, 그 남자아이는 회초리를 들고 교실을 순찰하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상냥하고 온화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너무너무 그러고 싶었지요.
하지만 나는 여자였고, 그 아이는 남자였으므로, 그 아이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p.15-16)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p.16)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Wangari Muta Maathai 는 이 형산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p.20)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p.23)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p.31)

한번은 알고 지내는 어느 나이지리아 사람이 내게 나 때문에 남자들이 위축될까봐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위축될 남자라면 애초에 내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 타입이니까요. (p.33)

나는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심지어는 직장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을 하도 많이 받은 나머지 등 떠밀리듯이 나쁜 선택을 하고 만 젊은 여자들을 많이 압니다.
우리 사회는 일정 연령에 다다른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심각한 개인적 실패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p.34)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 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p.35)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화가 그 차이를 더 강화합니다. (p.39)

내가 아는 한 여성은 남편과 똑같은 학위를 받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집안일을 거의 도맡는데, 이건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렇죠. 내가 그보다도 놀란 점은 남편이 아기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내가 "고마워요"라고 말한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그녀가 남자가 자기 자식을 돌보는 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면 어떨까요? (p.41)

나는 내 여성성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만하니까요. 나는 정치와 역사를 좋아하고, 사상에 관해서 훌륭한 논쟁을 벌일 때 행복합니다. 나는 하이힐을 좋아하고, 립스틱을 바릅니다. 남자에게 받는 칭찬도 여자에게 받는 칭찬도 다 좋지만(솔직히 털어놓자면 스타일 좋은 여자들의 칭찬이 더 기쁘긴 합니다), 가끔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옷을 좋아하고, 그 옷을 입으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요. "남성의 시선"이 내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바는 대체로 부수적입니다. (p.42-43)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묹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4)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게 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p.47)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월마야 2016-0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교과서 대신 이걸 읽게 하자는 다락방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는 모든 남성들에게 선물하려구요. 모두가 평화롭게 존재하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요^^

다락방 2016-02-12 15:20   좋아요 1 | URL
네네, 저도 쟁여두고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회사 동료에게 한 권 선물했어요. 히힛. 좋은 책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레와 2016-02-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완료! 땡큐!

다락방 2016-02-15 08:03   좋아요 0 | URL
금세 읽을 거에요, 레와님. 무엇보다 생활에서 나온 얘기들이라 쉽게 접근 가능했고요. 추천!

2016-02-12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5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스티븐 킹 걸작선 4
스티븐 킹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일들은 전혀 가혹하다 여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돌로레스가 남편 조를 죽인 일이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살인은 나쁜 거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게 더 나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조가 그랬다. 조가 돌로레스를 '패는' 남편이어서가 아니다. 그것도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짓을 그는 저질렀고, 그래서 그의 살아있음이 누군가에게 내내 두려움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라면,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내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그렇게 옷의 먼지를 털듯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낼 수도 잊혀지는 종류의 일도 아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돌로레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갇혀 살아야 했으니까. 



오래전에 스티븐 킹의 단편선을 한 권 읽고는 우앗, 너무 무서워서 나는 앞으로 스티븐 킹을 읽지 않을 거야, 라고 결심했더랬다. 그때의 그 공포라니! 기억하기로는 <옥수수밭 아이들>이 가장 무서웠다. <트럭>도 무서웠고, <금연 주식회사>도 무서웠고 ㅠㅠ 아아, 이 사람이 쓰는 소설을 나는 읽어낼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해서 이 책도 사두고 몇 년을 그냥 꽂아두기만 했는데, 하필이면 연휴끝인 어젯밤 집어 들었고, 아아, 스티븐 킹 아저씨가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게 쭉쭉 빨려들어가게 글을 써주셔서 ㅠㅠ, 아니, 그랬기 때문에!! 나는 새벽녘까지 책을 한 순간도 덮지 않고 다 읽어버리고 만것이다. 덕분에 세 시에 잤어요. ㅠㅠ 잠들기전에 이런 책을 읽으면 안되는데.. ㅠㅠ 오늘 아침에 내가 일어나기 힘들었겠어, 안힘들었겠어.


게다가 세 시에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잘 오지도 않았다. 이 책에서 느꼈던 공포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에. 무서워 ㅠㅠ 그래서 뽀송뽀송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자꾸 끄집어내야 했다.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킹 아저씨 작품을 이제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다 읽어봐야겠다. 공포물은 좀 빼고 ㅜㅜ


곳곳에 명문들이 있다. 이런 문장들을 만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의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자네는 항상 착한 아이였지. 남자 아이치고는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자네가 공정한 사람이라는 얘기야. 게다가 이제는 버젓한 남자가 됐어. 하지만 너무 으스대지는 말라고. 자네도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자랐으니까.빨래를 해 주고, 콧물을 닦아 주고, 자네가 잘못된 쪽을 향하고 있을 때 돌려세워 줄 여자가 항상 옆에 있었다는 얘기야. (p.16-17)

우리 아버지가 벌을 내리면 엄마는 그걸 받아들였어. 하지만 아버지나 엄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은 없어. 어쩌면 엄마는 남편의 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엄마를 벌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으면 항상 같이 일하는 남자들한테 얕잡아 보였을지도 몰라. 그때는 시절이 달랐으니까. 지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하지만 말이야, 내가 애당초 얼간이처럼 조하고 결혼했다고 해서 그 인간이 그런 짓을 하는 것까지 참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남자가 여자한테 주먹질을 하는 거냐, 나무 상자에서 꺼낸 장작개비로 매질을 하는 건 절대 가정 바로잡기가 아냐. 그래서 나도 조 세인트 조지 같은 사람, 아니 그 어떤 남자라도 나한테 그런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거야. (p.98-99)

내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까 그 여편네가 좀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마치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 못된 년이 되는 수밖에 없어." (p.212)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6-02-1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대단한 작가이지요. 저도 가끔 그의 작품을 손에 들면 그대로 끝까지 갑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6-02-12 15: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 새벽까지 읽느라 고생했어요. 그리고 내내 감탄하며 읽었답니다. 명문이 가득한 좋은 소설이었어요!

moonnight 2016-02-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예요. ^^

다락방 2016-02-12 15:15   좋아요 0 | URL
저도 기꺼이 엄지를 줄 수 있는 작가에요! 다른 작품들도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스티븐 킹의 작품이 많아서 좋아요! 꺅 >.<

hnine 2016-02-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옛날, 극장 (영화관이 아니라 극장이라고 부르던 시절)에서 봤어요. 미저리의 여주인공, 누구더라...캐시 베이츠! 그녀가 돌로레스 클레이본으로 나오지요? 미저리만큼은 아니지만 이 영화도 꽤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스티븐 킹이 쓰고 재미없는 책이나 영화도 있을까 싶어요.

다락방 2016-02-12 15:16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전에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던 기억이 나요. 이 책을 읽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아 정말 읽기를 잘했어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책이었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영화도 좋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저도 기회가 되면 영화를 봐야겠어요. 물론 책으로도 충분했지만요.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clavis 2016-02-1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만개의 좋아요를 던집니다용♡♡

다락방 2016-02-12 15:17   좋아요 0 | URL
백만개의 좋아요를 기꺼이 받습니다용 ♡♡

2016-02-1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2-1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한다는
소설의 한 구절이 인생의 한 단면을 축소시킨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사람은 한번씩 못된 사람이 되어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인 것 같아서... *^^

다락방 2016-02-15 08:27   좋아요 0 | URL
특히나 여자들이라면 못된년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못된 년은 문자 그대로 못된 년 이라기 보다는 남자들이 보기에 못된인거지만요. 정말 좋은 소설이었어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