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의 망원동에 대한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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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6-07-2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읽고 싶다. 저도 망원동 좋아해서요.

다락방 2016-07-22 11:40   좋아요 0 | URL
오, 모리님. 괜찮으시다면 제가 보내드릴게요!!!!! >.<
 

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하는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포르투의 비 오는 일요일, 우리의 선택은 그날을 '일요일답게' 보내는 것이었다. 마트에 들어가서 볶음밥을 포장했다. 궁금했던 과자를 샀다. 할아버지가 장바구니에 담는 와인을 우리도 담았다. 이것저것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봤다. 낮술을 마셨고, 낮잠을 잤다. 보란 듯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우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네, 라며 낄낄거렸다. (p.83)

















저자는 아주 많은 여행을 혼자서 했고 또 아주 많은 여행을 남편과 둘이 했다. 여행이란 게 잘 맞는 파트너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남편과 함께할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구나, 싶었다. 게다가 남편과 함께 하면서 저렇게 먼 여행지에서 발 동동 굴러가며 관광에 열중하지 않고 낮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저자가 한 달쯤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게 일단 제일 부러웠고, 그 다음엔 남편이 여행의 좋은 파트너라는 것이 부러웠다.


나 역시 여행에서 분주하게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이것도 경험하고..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좋다는 관광지나 음식점에 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그런데는 안봐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가고 싶은 데에 가고 싶다. 움직이고 싶은 시간에 움직이고 싶다. 내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므로, 바빠서는 안되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길지 않은 날들중에라도 굳이 낮술 마시고 게으름도 피우고, 거기가 아무리 먼 곳이어도 침대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 여행친구는 나랑 식성이 맞았으면 좋겠고, 나처럼 그냥 멍때리는 시간도 의미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고, 나처럼 그냥 하릴없이 막 걷는 걸 좋아했으면 좋겠다. 빡센 여행이 아니라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크- 그 먼 포르투에서 마트에 가 장을 보고 와인을 사서 낮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고 시간을 낭비하다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크- 좋구먼... 낮술도 좋고 낮잠도 좋다. 작년 여름에 열흘간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면서 늦게 일어나 티브이 실컷 보다가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점심 먹고 들어와서 또 침대에 누워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저녁 먹으러 나갔던.... 게으름도 생각난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게을러도 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아니나다를까, 불안감을 갖게 된다.




해가 저물자 어김없이 불안함이 밀려왔다. '정말 이래도 되나,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나.' 죄책감까지 뒤엉켰다. 애써 그런 생각들을 버리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또 나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p.83)



하하하하하. 게으름 피우고 싶다고 하고서는, 정작 게으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기다니, 사람은 넘나 웃긴 것.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이렇게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도 되나 싶어서 오후엔 올림픽공원을 걸으러 나가기도 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아, 이렇게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강박있는 나여....


그래도 이번 여름휴가 때는 슬렁슬렁 천천히 다녀볼 생각이다.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와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과 달리, 그때는 클림트에 열성이었다. 꼭 그의 금빛 그림을 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클림트의 <The Kiss> 앞에 서면 그 누구와라도 키스를 하고 싶어질 거야." 그 그림이 있는 오스트리아 빈은 내 여행 일저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때쯤이면 남자친구가 생겼을 거야. 그 남자랑 키스하지 뭐." 미술관 기행을 떠난 김에 남자친구까지 사귀고, 클림트의 <The Kiss>앞에서 첫키스를 하겠다는 꿈을 나는 꾸고 있었다. 호기롭게도. 스물한 살이었으니까.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으니까. 역시나 남자친구는 그렇게 쉽게 생기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 그림을 현지에서 친구가 된 한국인 여자 여덟 명과 같이 보았다. (p.119-122)




하하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꿈꾸는 게 있는걸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반드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갈 것이고, 거기서 키스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언제나 입밖으로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물아홉이 되어 뉴욕에 간다고 했을 때 '가고 싶다더니 정말로 가네'라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키스를 하지는 못했다. 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면, 누군가 나를 보고 반하고 나도 반해서 뾰로롱~ 하고 키스를 할 줄 알았는데, 진짜, 아무도,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더라. 그냥...갔다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익스트림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키스를 했다는데, 그래서 뉴욕이 아름다웠다는데, 왜 나는! 나는!!!! 그래서!!



또 갈거다. 흥!!



여행을 다니면서 '다시 가보고 싶다', '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곳이 뉴욕과 리스본이었다. 아, 싱가폴에서 마지막에 들렀던 서점이 있는 작은 마을도! 이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노라면, 저자의 포르투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특히나 리스본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읽는 내내 아, 시간 내서 어떻게든 리스본에 다시 다녀와야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다시 가고 싶다. 여행 막바지에야 발견했던 그 좁은 골목 사이사이의 음식점들, 그곳들도 다시 가보고 싶고, 숙소를 나오는 순간 펼쳐진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도 다시 보고 싶다. 리스본에 갔었을 당시에도 '여기 너무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 나 여기서 살까' 라고 하자, 같이갔던 친구가 '놀러오기 너무 힘들어서 안돼' 라고 했다. 비행기 타고 진짜 오래 가야해서. '그러면 중간에 만나면 되잖아' 라고 내가 답하긴 했는데, 크- 리스본, 너무나 다시 가고 싶네. 내년 여름 휴가에 포르투갈을 다시 갈까... 다른 가고 싶은 데도 많은데, 이 책 읽었더니 리스본 생각 너무 나네.....







아, 나는 어쩌다 이렇게 자꾸만 먼 데를 찾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자꾸만 이렇게 먼 데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분명 젊은 시절의 나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뉴욕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만 했었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왜 가장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이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되었을까.... 왜 그걸 보면서 술마시고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 되었을까.


지난 번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내가 외국에서 살기도 하냐고 물어봤더랬다. 어릴 적부터 영어권 나라에서 몇 년간 살아보고 싶어서 물어본건데, 그 분이 대답해주시길, 가서 정착은 하지 않고, 자꾸 나간다고 했다. 자꾸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맞네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자꾸 나가려고 하고 그리고 나갔다가는 이내 들어온다고. 아...그것은 직딩이 준 운명 같은 것인가... 그러면서, 가고 싶을 때마다 가라고 했다. 여행에서 되게 좋은 기운 받고 돌아오는 사람이라며.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가고 싶으면 그냥 계속 가는 걸로... 할부는................끊이지 않겠구나. 인생은 여행과 할부로 이루어진 것인가?



그나저나 영어 공부 한다고 책 사놓은지 2주 째인데 그냥 사무실에 받은 그대로 있다. 이대로 2년 갈듯.... 역시 나에게 공부란.... 먼 것인가........



어제는 진짜 출근부터 퇴근까지 외근을 포함해서 빡시게 일했고 땀도 많이 흘렸다. 치과에 가서 치료도 받느라 카드를 또 할부를 긁어놔서 멘붕이 오기도 했고. 너무 지쳐서 집에 가서 치즈를 안주 삼아 데낄라를 마셨는데(응?), 뭔가 되게 몸에 좋은 거 먹고 싶은 기분이다. 점심엔 동료와 설렁탕 먹으러 가자고 말해놓았다. 뽀얀 국물에 소금도 안치고 먹으면 아주 맛있는데, 나는 설렁탕 대신 떡만두국을 주문할 예정이다. 그러면 공기밥도 나와가지고 양이 많다. 뽀얀 국에 밥 말아서 떡이랑 만두랑 다 먹어야지. 이걸로도 좀 부족한 느낌이야, 저녁에는 삼계탕을 먹으러 갈까... 그렇게 먹어줘야 어제의 지친 내가 좀 달래지지 않을까.....


아, 몸에 좋은 거 진짜 엄청나게 먹고 싶다. 많이많이. 아주 많이.




누가 그렇게 기특한 조언을 한 걸까. 어쩌다 내가 그렇게 기특하게 그 조언을 받아들인 걸까. 첫 번째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내게 누군가가 말했다. "여행의 테마를 정해. 음시이든 뭐든." 그 조언을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무엇에 기꺼이 돈을 쓰고 싶은 사람일까.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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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1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2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6-07-2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졌어요^^ 여행지에서 게으름 부리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죄책감 느끼는구나 해서 안심합니다. 호호^^;

다락방 2016-07-22 09:16   좋아요 0 | URL
여행지에서의 게으름은 한편 사치인 것 같잖아요. 그런 사치가 정말 너무 좋은거에요! 그러다가 죄책감 느끼고..어이구, 인간이란...
책 좋았어요. 여행과 일상에 대한 애정이 자꾸 드러나는 글이었어요. 헤헷 :)

blanca 2016-07-2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럽다... 흑..저는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너무 너무 가고 싶어요..

다락방 2016-07-22 09:17   좋아요 0 | URL
저는 마이애미랑 벨기에 가고 싶어요. 벨기에 가서 홍합찜!! 너무 벅고 싶고요. 최근에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고는 프랑스 안시 라는 작은 마을도 가보고 싶어졌어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흣.

2016-07-2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7-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스위스에서 한달만 살아보고 싶어요. 방 하나 구해서 게으름을 피울대로 피우고 여기저기 허둥대며 돌아다니고 싶어요.....

다락방 2016-07-22 09:20   좋아요 0 | URL
저는 뉴욕에서도 살아보고 싶고요, 리스본에서도 살아보고 싶어요. 싱가포르의 작은 마을(이름이 기억 안나요 ㅠㅠ)에서도 한달간 살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살면서 그런 날이 올까요? 먼 데서 게으름피며 살아보는 일이요.

비연 2016-07-2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가고 싶네요. 유유자적.. 가서 책읽고 자고 놀고 먹고... 아 그러고 싶어요...ㅜ

다락방 2016-07-22 09:21   좋아요 0 | URL
크- 저는 다음 주말에 떠납니다, 비연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많이 먹고 실컷 걷다 오겠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2016-07-22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7-22 09:25   좋아요 0 | URL
저만 못했군요. 엉엉 ㅠㅠ

2016-07-22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7-22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보약 한 재 먹을까... 요즘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 종합비타민으로 퉁쳤지만...

건조기후 2016-07-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런 느릿한 여행이 좋아요. 여기저기 의무적으로 찍고 다니는 건 여행 아니라 또다른 노동같고. 그런 여행은 이야기듣는 것도 지루하더라고요ㅡ,ㅡ

다락방 2016-07-22 13:42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여행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만의 여행스타일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불편하기도 할거고요. 느긋한 여행이 좋습니다. 흐흣. 재촉하지 않는 여행이요.

야홍이 2016-07-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앙시 완전 추천합니다. 작년에 스위스 출장때 스위스에 방을 못구해서 안시에서 몇일 묵었는데 ~~ 정말 너무나 환상이었어요 이런곳이 있구나 싶을정도로 아름답고 풍광이 기냥 아주 너무 좋았어요 ~~ 밤엔 더더욱 아름다웠요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볼때마다 그곳이 그리워지네요 ~ 그때는 혼자였는데 다음엔 둘이서 가고싶은곳입니다. ~~ 완전 추천 !!

다락방 2016-07-26 10:40   좋아요 0 | URL
크- 역시 좋군요! 제가 걸어서 세계속으로 에서 봤을 때 진짜 너무나 예쁘더라고요. 작고요. 그래서 며칠간 여유롭게 머무를 수 있겠구나, 머무르는 내내 참 행복하겠구나 싶었어요. 역시!! 항공편 좀 알아봐야겠네요. ㅋㅋㅋㅋ 지금 당장 갈 건 아니고 아마 당분간도 못가겠지만 ㅠㅠ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회의가 들었다. 정작 읽어야할 사람은 안읽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 자꾸 읽는 게 아닌가... 하고. 게다가 사람은 쉽게 바뀌지도 않아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아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게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고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고, 지금의 상황이 불평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만이 계속 관심갖는 게 아닌가 싶고... 


그렇지만, 내 남동생도 지금 자기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경지에 이르렀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게다가 나랑 개그프로 보면서 여성혐오 심하다는 말도 하고 있고-때로는 개그니까 그냥 보자, 라고도 하지만 ㅜㅜ-, 계속계속 얘기하면 어딘가에서 작은 변화라도 일어날테니, 결국 그 변화가 점점 더 커질테니, 부지런히 읽고 쓰는 것이 나의 소임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성차별을 주제로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스스로는 무지할 수밖에 없는 남성이 당신의 경험을 빌리고 당신에게 확인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화는 당신이 끊임없이 설명하면, 상대가 시비를 가르는 식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 음……별로 안 와닿는데.

·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 정확한 근거가 있어?

· 난 그런 말 못 들어봤는데?

· 왜 네 주변에만 그런 일이 생겨? (p.57)



최근에 내 주변 친구의 경험을 얘기한건데도 상대는 내게 '난 그런 사람 한 번도 못봤는데?' 한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다고 얘기하는 내게 '난 못봤는데?' 그러면... 대화 단절..................... 그러면서 내게 일부 남성들이 여성혐오하듯이 너도 남성혐오 하는거다, 라고 하더라. 나는 맞다고 인정했다. 나는 당신같은 남성을 혐오한다.





가부장제는 경제권을 독점하고, 여성과 달리 '군대에 갈 자격이 되는' 남성의 우월성을 토대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 게 아니라면 남성은 '김치녀'와 더치페이를 할 수 없습니다. 남성의 돈으로 사치를 하는 여성은 가부장제의 가공물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에, 가부장제의 유지를 위해 남성이 전부 부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자신의 가정을 끝까지, 군말 없이 혼자 벌어 책임져야 합니다. 남성만이 군대에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부당함을 여성에게 토로하는 치졸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대에 갈 수 있는 남성만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을 받는 기제는 가부장제가 만들었으므로, 가부장제를 없애지 않는 한 남녀가 동등하게 군대에 갈 일은 없을 겁니다. 우월한 남성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 개인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의무를 부과했고, 보상으로 권위와 특혜, 남성이 우월하다는 훈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무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음? 적의 적은 친구라더니, 얼핏 들으면 이들이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인가? 하는 의아함이 생깁니다. 아, 이 사람 혹시 지금 가부장제의 폐해를 페미니스트에게 이르고 싶은건가? 싶은 것이죠. 그런데 이들의 다음 논리를 가만 들어보니 '남자가 불쌍하다', '역차별이다', 그 다음은 김치녀 공격으로 이어지는군요. 그들은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김치녀'가 너무 미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습니다. 더치페이를 하고 싶은 이에게 돈을 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가부장제입니다. 가부장제가 좋으면 남자답게 군말 없이 압박감을 떨쳐내고 돈을 낼 것이며, 가부장제가 싫으면 이에 반기를 들면 됩니다. 가부장제가 싫은데 맞설 용기가 없거나 귀찮다면 그냥 살아도 됩니다. 대신 그로 인한 압박감과 울분을 애꿎은 여성들 혹은 페미니스트에게 터뜨려서는 안 되겠지요. (p.52-53)



나는 데이트비용을 내가 절반 이상 부담하는 편이다(내 친구들도 그렇다). 뭐, 운이 나빴던건지 모르겠지만,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연애한 적이 없기도 했고, 내게 돈이 있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데이트는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애인이든 친구든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그 기분을 상대에게 들게 하기 위해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여자들이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지' 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안다. 그 여성들은 대부분 가부장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데이트 비용 외에도, 다른 부분에서도 가부장제의 수혜자인 남성과 비슷한 시선으로 여자들을 본다. 여성들이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군대도 안가면서 권리를 주장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한다거나, 너무 똑똑한 여자는 남자들이 싫어한다거나 하는, 남성위주의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환경속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편하다면, 위의 인용문처럼, 지금처럼 그냥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안그럴거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밥을 쉽게 얻어먹는 것 같고 군대도 가지 않고, 편해 보입니다. 자신들보다 강하고 견고한 가부장제를 공격할 수 없으니 자신들보다 약한 여성들에게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회피한다는 손쉽고 뜬금없는 비난을 토해냅니다.

그렇지만 여성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군대에 가지 않을 권리'를 얻어냈을 리 만무합니다. 가부장제를 타파하자는 페미니즘더러, 여성을 하등시하여 여성에게 내어주지 않은 가부장제의 의무부터 따르고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은 지독한 모순입니다. 여성이 징집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 쪽은 군대를 만든 가부장제입니다. 여성을 군대에 갈 수 없는 열등한 존재로 박제해두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열등한 존재인 여성은, 군 복무를 경험한 남성이 비춰 보며 자신감을 고취하는 거울이 됩니다. 동시에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얌체로,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남성의 화풀이 대상이 됩니다. 지켜달라 말한 적이 없는데 여성을 지키러 군대에 갔다 왔다고 주장하며 화를 내는 남성이 속출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남성들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국방부에 요구하거나 헌법 소원을 내지 않습니다. 이 문제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는 여성이었습니다. 대신, 남성은 여성을 비방하며 자심의 힘듦을 토로하는 대표 무기로 언제까지고 '군대'를 내세웁니다. 군대는 뻔뻔한 여성들이 지지 않으려 하는 힘든 짐인 동시에 여자 따위는 감히 질 수 없는 대단한 사명이라는 모순이 그들의 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남성들은 잘 아는 겁니다. 

페미니즘이 쟁취하고자 하는 권리는 기본권입니다. 밥 몇 끼 얻어먹으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이는 없습니다. 기본권은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가져야 할 권리로, 무언가를 해야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가 제시하는 '틀'을 거부하고 기본권을 위해 싸웁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틀 속에서 남성들에 의해 주어지는 알량한 배당금을 누리는 데 관심이 있기는커녕, 배당금을 포함한 틀 자체를 부수고 바꾸고자 합니다. 그러니 '군대도 가지 않는 김치녀 페미니스트들이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저버린다'는 가부장제 속 남성들의 비난은 얼마나 모순적이며 무지한 것입니까? (p.54-55)



군대도 가지 않는 김치녀 페미니스트들이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저버린다, 같은 비난은 비단 남성들뿐만 아니라 개념녀 프레임에 갇힌 여성들도 하고 있다(어제 작성한 《쇼코의 미소》 페이퍼에서 기자 선배가 바로 이랬지). 개념녀라는 프레임도 제발 부수고 나와줬으면...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개념녀인가....



남성은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싶은지, 유지하기 싫은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많은 수의 남성이 유지는 하고 싶은데 그냥 징징대고 싶었음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한들 설마 가부장제를 페미니스트가 만들었겠습니까?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논리로 쉽게 등장하는, '권리만 챙기고 의무를 지지 않는' 쪽이 누구인지부터 봅시다. 번지수를 잘못 짚는 불상사만 피해도 상황이 보다 명쾌해집니다. (p.56)



덧붙이는 말없이, 그냥 인용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대부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성은 공감능력이 부족하니 여성이 알려주어야 한다'는 말은 남자는 관심과 공감을 표하는 것만으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밖에는 못 됩니다. 애초에 공감을 못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영영 못 하는 대로 살았을 텐데, 누군가가 이렇게나 노력한 끝에 결국 바뀐 걸 보면 스스로 먼저 노력 해볼 수도 있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p.32)



책으로나 영화로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그러니 기득권이어서 몰랐다면 더더욱, 몰랐던 입장을 그들이 조금 이해했다고 바로 감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벽인 줄 알았는데 귀가 있다니 얼마나 감동이겠냐만은, 귀가 있었는데 왜 이제 들었냐고 열 받아도 됩니다. (p.32-33)




더 어려운 게 있습니다. 바로 예쁜 말씨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일 위험한 게 바로 이런 예쁜 헛소리입니다. (p.79-80)



이들은 참 점잖고 느긋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친 쪽'이 분개하면, 타이르기도 합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중용을 지키며, 긍정적이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비슷한 예는 더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겠다면서 외모지상주의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게 건강에도 좋지, 학교폭력 당사자아게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청년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삭생이 무급 인턴으로라도 이력서를 한줄 채워보겠다는데 굳이 거기에다 한 마디 하기를, 그래도 다 네 실력을 쌓는 거고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니 좋지, 가사 분담에 무책임했으면서 내 덕에 요리실력이 늘게 된거니까 고맙게 생각해. 간단히 말하자면, 눈치가 없는 겁니다. 눈치 없이 혼자 느긋한 이유는 달리 없습니다. 느긋해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긋한 채로 살 수 있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정해져 있어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팔자가 좋다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p.80-81)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태도의 폭력이 내용의 폭력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좋게 넘어가자'며 분노하는 이들을 온화하게 타이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분노할 필요가 없는 기득권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득권이 설파하는 아름다운 의도는 무의미하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좀 깨닫고 예쁜 헛소리는 넣어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p.82)



넣어둬라, 응?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남성을 설득하고 포용해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설득이 이루어진다면야 좋겠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기득권자인 남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부터가 오만한 발상입니다. 여성의 목소리와 행동은 온전한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지, 다른 주체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오독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상대를 설득해야 하고, 그때의 어조는 당연히 온화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하면 당신은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받아들여줄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냈을 뿐, 당신에게 상대를 설득할 의무는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으로 감싸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습니다. 당신은 상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내킬 때에만 행동해야 합니다. (p.86-87)




"그렇다고 꼭 '남혐'을 해야겠느냐",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정확히 다릅니다.

우선 여성혐오 문제에 거의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대다수의 남성이 묻는 거라면,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여성혐오를 언제 알았습니까? 남성혐오 전에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습니까? 만일 남성 혐오가 생겨나고서야 여성혐오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순간 남성혐오는 목적을 달성해버리므로 유의미합니다.

지금 말하는 '남혐'이라는 현상은 작년도 메르스 사태 이후 생겨났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마치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존재해온 '김치녀'와 '된장녀'를 필두로 한 여성혐오 현상을 '미러링'하여 남성들이 여성 일반의 생활, 소비, 행동 등을 싸잡아 비난하고 재단하던 어휘를 그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하는 말로 바꿔 제시한 움직임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것을 손쉽게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라고 동일시하면서 '그렇게 똑같이 혐오로 맞대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려면, 남성혐오가 생겨나기 이전에 그토록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과 제재가 있어야 했고, 그것을 재밌다고 소비하거나 묵인 혹은 방관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 있어야 했고, 남성혐오 직전까지 여성들이 수없이 제기해온 온건하고 지적인 비판에 반응을 했어야 합니다. 여성이 더 나은 수를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남성이 '저급하고 의미 없는 수'에만 반응한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여러 저명한 이들이 백 번 천 번 명확하게 말했으니 저는 그저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남성혐오가 왜 싫습니까?

그냥 싫다거나, 다른 방식의 행동을 가르쳐주고 싶어 꺼낸 말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시도해본 사람이 아닌 이상 그는 가르침을 줄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싶은 거라면, 온건한 방식에 참여하면 됩니다. 참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온건하게 행동하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설마 페미니스트가 남성혐오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만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엔 오직 남성혐오만 보인다는 뜻이므로 남성혐오는 또 한 번 유의미해집니다. (p.112-114)




(시각이 편향됐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당신과 나, 둘 중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쪽이 당신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편향된 건지는 아십니까? (p.174)




페미니즘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해도 한 번 실수하는 순간 '네가 무슨 페미니스트냐'라는 질타를 받게 됩니다. 당신의 한계부터 파악하려는 눈길이 당신에게 쏟아집니다. 노동권, 보편 인권, 동물권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페미니즘에만 신경을 쓰면 이율배반이라는 평가도 뒤따릅니다. '이런 문제를 논하지 않고 네가 어떻게 페미니스트야?'와 같은 말로 끊임없이 당신을 검증하려 합니다. '페미니즘보다는 산적한 다른 문제에 주목해야 하지 않아?'는 더 노골적입니다. 다른 문제에도 모조리 나선 뒤에야 페미니즘을 말할 자격이 겨우 주어진다는 논리의 저변에는, 페미니즘이란 모든 문제가 해소된 뒤에야 건드려볼 법한 부차적이고 하찮은 문제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발생하는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일 뿐이며, 페미니스트는 그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노동문제며 동물권에 관심을 더 갖는 쪽도 어차피 이들이긴 합니다.) 페미니스트라고 모든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야의 권리운동에 나서서 전천후의 투사임을 입증해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p.178-179)




책의 사이즈가 작고 무게도 가볍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너무 편했다. 세상 모든 책들이 이 사이즈, 이 무게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맨날 무거운 책들 가지고 다니느라(요 네스뵈!!!!!!!!!!!!!!!!!!!!!!!!!! 버럭!!!!!!!!!!!!!!!!!!!!!!!!!) 너무 힘들어. 이건 출퇴근길이 노동이야, 노동 ㅠㅠ 




지난 토요일에는 친구와 면세점 쇼핑을 했는데, 티파니 매장을 지나치게 됐다. 아, 나는 누가 나에게 티파니 반지 사줄 일이 없을테니, 내가 살까? 하니, 친구가 '응 들어가보자' 하더라. 아니야 무슨... 나 반지 있는데 뭐...... 그냥 내가 사서 끼기에는 너무 비싸잖아..... 하니 친구가 왜 못사냐며 이렇게 말했다.


"우정반지 할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정반지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티파니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깔깔 웃으며) 좋네, 우정반지로 티파니!

- 응.

- 못할 게 뭐있어!

- 응 하면 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고 그냥 지나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티파니 반지................ 그냥 살까? 왜냐하면 내가 지난주에 네일 받으러 샵에 갔다와가지고 지금 손이 이렇게나 예쁜 거다!!



반지 끼면 더 예쁠듯!! 음... 그렇지만......



저거 예쁘다고 반지 사서 끼면 잘 어울리고 예쁘겠지만, 네일은 지워질거고, 반지가 예쁘니까, 네일 또 하고 싶을 거고, 그런데 또 지워질거고, 또 네일 받으러 가고, 또 지워지고 또 네일 받으러 가고......................그러면 너무 돈을 많이 쓰게 되겠지..................그러니까......................애초에 반지를 안사는 게 답이겠지................... 그렇겠지..................... 반짝이는 반지를 갖고 싶네...............음.....................음...........................



네일 받을 때는 진짜 너무나 지겨운데, 이렇게 두고두고 며칠씩이나 예뻐서 기분이 넘나 좋다. 오늘도 자꾸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했다. 크- 돈이 좋긴 좋구먼.....쩝.........



우정..........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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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7-1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 방에서 이 책 보고나서... 으흠... 나는 2쇄때나 읽을 수 있겠군, 하고 있었는데,
다락방님 방에서 반은 읽은듯한 이 느낌 같은 느낌^^

아무개님이 인용해주었을 때도 그렇구요. 제가 제일 띵~~~ 했던 부분은요.
페미님즘의 이해 혹은 페미니즘의 논쟁과 관련해 남성들의 동의가 필요없다는 부분이예요.

우리에게는 설득할 의무가 없지요. 알아서 알아채면 좋겠지만.
아이 수학 문제 가르쳐주듯, 다정할 필요가 없다는걸, 그걸 알았어요.
책을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저자 의견에 모두 다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정말 마음에 콱!! 와서 닿네요.

그나저나 네일 이뻐요~~~ 반지 끼면 더 이쁠듯해요 (우정반지 부추기는 이 부추김^^)

다락방 2016-07-21 08:20   좋아요 0 | URL
이게 조만간 서점에서도 팔 것 같은데 아무쪼록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위에 제가 페이퍼에도 썼듯이, 정작 읽어야할 사람들은 관심도 없겠죠... 하아-

우리에게 설득할 의무도 없고 대답할 의무도 없다는 게 참 마음 편해지더라고요. 항상 잘 대답해줘야 겠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는데, 만약 제가 대답해준다면, 그건 제 `호의`였던 거에요. 이젠 제가 원할 때에만 답해야겠어요.

단발머리님이 동의할 수 없었던 작가의 생각은 어떤거에요?

2016-07-19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7-1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일 예뻐요.
악세사리 취향이 완전 확고해서 제가 사는걸 더 좋아합니다만, 반지만은 왠지 선물로 받고 싶네요..
저도 예쁜 은반지를 티파니에서 얼마전에 봤는데 ㅋㅋㅋㅋㅋㅋ

제 여성학 지식의 8할은 남자선배들이 채워주었는데, (여자선배는 한명뿐인 극한 환경 ㅠ.ㅠ) 오직 한가지만 마음에 남았어요. 내가 모르거나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거나 문제가 없는건 아니라는 거죠.

저도 요즘 읽는 책이 엄청난 무게라 출근길에 가지고 나오지 못해서 엄청 진도가 느려요. 이러다 다 못읽을지도 =.=

2016-07-21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7-1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읽으니 울 남편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하는. 월급도 통째로 맡기고 본인은 용돈 타 쓰고, 결혼 해보니 명절이 얼마나 여성에게 불합리한 가부장제도인지 설명하면서 나중에 나는 명절 일년에 한번만 하겠다, 요즘 딸 하나 낳고 딸 둘만 있는 부모도 있는 사람도 많은데 아들 가졌단 이유로 명절때 우리집 먼저 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명절은 한번만 하자고 하니 수긍해 주고, 직장 부서내에서도 여직원 한명 있는데 고과 좋게 줘서 과장으로 승진 시켜주면서 주변 남직원들의 댓발 나왔을 때, 여자라고 승진 못 할 이유가 뭐냐고 니네들도 잘 하면 승진 시켜 주겠다면서 불만 잠재우고. 드러내진 않지만, 상당히 진보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우리 사회가 여성 외모에 대해 이쁜 것만 찾는 건 생각해 볼 만 한 것 같아요. 제가 여성주의에 눈을 뜬 게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 영화였는데, 거기 여주인공들 시고니 위버와 린다 해밀턴의 전투적인 모습 때문이었어요. 카메론 이전에 여성을 저렇게 전투적이고 적과 싸울 수 있다는 영상 이미지를 보여 준 감독은 없었거든요. 진짜 놀라웠다는. 그 때부터 여자도 남자와 똑같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어린 나이에 들더라구요. 저 그 때 중 2~ 80년대만 해도 여주들이나 여 가수들 얼마나 이쁘게만 보일려고 했거든요. 영상이미지가 참 중요하긴 해요. 그 후 미드 보면 이쁜 여배우들보단 그 역에 맡은 여배우들에게 역을 주더라구요. 로앤 오더의 마리스카 하지테이(올리비아역)나 굿와이프의 마굴리스 보면 이쁘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드라마 보면 볼수록 진짜 적격이다 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도 싸우면서 서서히 바꿔야할 것 같아요. 울 딸한테 오늘 넥슨이 김자경 성우 짤랐다길래 넥슨 탈퇴하라 했네요. 본인도 수긍하고~

다락방 2016-07-21 08:37   좋아요 0 | URL
명절 정말 불합리한 가부장제죠. 저는 결혼하기 싫은 이유중에 하나가 명절이거든요. 아 너무 싫어요. 지금은 명절 때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데, 제가 결혼하고 나면 명절 때 놀러간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별로 겪고 싶지 않아요. 그걸 불합리한 거다 생각할 수 있다니, 남편분이 정말 멋지시네요 ㅠㅠ

물론 외국도 여전히 여성혐오가 있고 비하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더 빨리 눈을 뜬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이번에 넥슨 사건 보면서, 남자들이 메갈의 미러링 만으로도 이렇게 광분해서 뛴다는 게 너무나 놀랍더라고요. 그 거친 말들을 너무나 무서워해요. 서프러제트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들이 하다하다 안되니까 유리창에 돌던져 깼던 거 생각도 나고요. 아직 유리창에 돌던져 깬 수준도 아니고, 그저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없다는 티셔츠 만들어 입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광광 울면서 안돼 안돼, 이러고 성우 밥줄 끊어버리고.. 어휴.. 남자들 너무나 못났어요, 진짜. 그 와중에도 <소녀는 왕자가 필요없다>는 티셔츠 입은 어떤 남자들은 인증샷 찍어서 올리고 그래서 참 좋았어요. 어찌나 예쁘던지 ㅠㅠ

아직 갈 길이 멀죠.
아니, 거기 티셔츠 사입은 사람들이 훨씬 메갈을, 페미니즘을 잘 알텐데,
그간 여성혐오하는 모든 것들에 입닥친 남자들이 뭘 그렇게 `메갈이 어떤덴줄 알아?`, `페미니즘이 뭔줄 알아?` 이러면서 맨스플레인을 해대는건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상당히 비중이 크죠. 가수든 골프선수든 일단 후원해줄테니 성형 하고 오라고 하잖아요. 못생기면 못생겼다고 욕하고, 그래서 성형하면 성형괴물이라 욕하고.. 뭘 해도 그냥 욕먹는 것 같아요. 여전히 개그 프로에서는 못생기고 뚱뚱한 걸 비하하며 개그 소재로 쓰고요. 토할 것 같아요 진짜.

hellas 2016-07-1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말씨로 하나마나한 아무말하는 거 진짜 무익 할뿐 아니라 백해 하죠 ㅡㅡ 일단 내 기분을 엿같이 만들잖아요. 어째 하루도 조용할 날없는 여성인권후진국에 살다보니 예민해지는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네요. 넥슨 보이콧합니다:(

다락방 2016-07-21 08:40   좋아요 0 | URL
진짜 욕나옵니다. 뭘 그렇게 예쁜 태도 좋아해요? 예쁜 태도로 병신 같은 말 하는 거 진짜 빡치는데 말예요. 게다가 여자에겐 예쁜 말을 더 기대하는 것 같아요. 어이구, 점잖으셔서 소라넷 같은 거 만들었나 봅니다. 너무 싫어요.

singri 2016-07-2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오파드 읽는중인데 책이무슨 쌓은벽돌도 아니고 요네스뵈 버럭..버럭..보고 있으면 전자책이 좋은거구나 하게됨 ㅋㅋ

다락방 2016-07-21 08:41   좋아요 1 | URL
저 레오파드 사야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거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좀 지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전자책은 집중이 안되고... 아아, 벽돌같은 책 들고다니며 힘들어하는 게 이번 생에서 제가 맡은 역할인가 봅니다. 흙 ㅜㅡ

moonnight 2016-07-2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다락방님 네일 예뻐요♡ 한번도 안 해 봤고 앞으로도 할 일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 예쁜 네일은 좋아요^^ 좋은 책 구경하고 갑니다.

다락방 2016-07-21 08:41   좋아요 0 | URL
할 때는 너무나 지겨운데 하고나면 예뻐서 기분이 좋아요. 얼른 다른 색깔도 해보고 싶어요. 히히히히히^^
 

토요일에는 비가 왔고, 나는 친구와 쇼핑을 하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가급적 가방을 가볍게 들고 가고 싶었다. 책 대신 스맛폰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자, 그러면 책 무게가 확 줄어든다, 라고 금요일 밤까지 생각했지만,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쇼코의 미소》가 너무나 좋아서, 에라이, 역시 책이다, 하고는 가방을 또 무겁게 만들고 말았다. 가방에는 이미 친구에게 빌렸던 책 한 권과, 내가 빌려줄 책 한 권이 들어있던 터였다. 쓰벌...책 세 권이나 들은 가방을 들고 얼마나 걸은겨.....


그렇지만 지하철안에서 《쇼코의 미소》를 읽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소설 내용 자체가 해피해피한 내용인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게 즐거웠던 거다. 차분한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며 핑- 눈물이 고이기도 했는데, 책장을 덮은 순간, 어제 백자평에 쓴 것처럼, 작가는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나는 소설에서 문장이 가진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가져야 할 것이 대단한 서사라기 보다는, 어떤 이야기이든 어떻게 풀어내는데 있는지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소설이 보여주는 세상이 크지 않아도 되고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결국 작가가 어떤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지, 그걸 파악해내는 과정은 정말 즐겁고 의미 있으며, 결국 작가가 그 글을 통해 보여주고 하는 바가 내가 바라보는 바와 같다면,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쇼코의 미소》를 읽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이승우를 좋아하고 한창훈을 좋아하는데, 아, 이제 최은영을 믿고 보겠다!! 하는 마음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별 거 아닌 이야기들을, 일상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보여주는데, 그걸 보여주는 문장들이 차분하고 우아하다. 그러나 결코 어렵지가 않아서 마음에 쏙 스며든다. 그래서 진짜 별 거 아닌 이야기가, 여자와 여자의 우정 이야기가, 엄마와 딸 사이의 지나친 배려에 대한 이야기가, 이성 친구와 영문도 모른 채 멀어진 이야기가, 마치 내 일인듯 쑤욱, 스미고 들어와 내 마음이 안타깝고 애가 타고 답답해지고, 멀어진 관계를 되돌리고 싶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쇼코의 미소 줄거리가 뭔데? 라고 얘기하면, 아, 너무나 별 거 아닌 것이다. 응 고등학생 때 알게 된 쇼코라는 일본인과 친구가 되어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어른이 되어 다른 모습에 실망하다가 .... 너무나 별 거 아닌, 그러나 내게도 일어나는 바로 그 일이 아닌가. 영웅도 없고 판타지도 없다. 최은영의 이야기 속엔 그저,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위에 말했듯이, 최은영은 소설 속에서 언제나 약자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글을 써주는 게 너무나 좋지만, 이런 시선을 가지고 글을 써주는 건 진짜 넘나 좋은 것 ㅠㅠ 



변리사 선배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물렀다. 살구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을 그는 찬찬히 훑었다. 못마땅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라면 지성인이었어. 요즘 애들, 머리에 물이나 들이고 손톱칠이나 하고 대중문화에 찌들어서 지들 선배들이 이룬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도 모르지." -<먼 곳에서 온 노래>, p.196



기자 선배가 그 말에 맞장구 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형. 우리 학교 여자애들 보셨어요? 게집애들처럼 몰려다니면서 선배보고 오빠라고 하질 않나. 우리 노래패도 단단하게 이끌어줄 남자애들이 안 들어와서 결국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나도 여자지만 여자애들, 뭉칠 줄도 모르고 도무지 조직이라는 걸 이해 못하잖아요." 그 말을 끝낸 기자 선배가 나를 쏘아봤다. "소은이라고 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너도, 우리 후배라면 그런 여성적인 태도는 좀 버려야 할 것 같다? 말투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나도 여자지만, 사회에 나와보면 참 융화가 안되는 여자들이 많아. 툭하면 삐지고, 불평불만에. 남자들은 안 그러거든. 우리 대학 여자들이 좋다는 게 뭐야. 제3의 성이잖아. 여자지만 다른 여자들의 열등함은 지양해야지." - <먼 곳에서 온 노래>, p.197



하아- 나는 저 기자 선배가 개념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남성들이, 그리고 여성들도, 지금의 젊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맞춰가며 잘 적응해나가기를 바란다. 부드러움이, 여성스러움이 죄인 것처럼 말한다. 머리에 물을 들이고, 손톱칠을 하면, 왜 안되는가. 툭하면 삐지고, 불평불만에, 남자들은 안그러거든... 이라니. 꼰대에는 남녀가 없다. 오늘 출근길에 '이민경'의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 생각도 나고.. 자, 계속 보자.



"남자 애들이 편하기야 하지. 우리 때는 후배가 마음에 안 들면 세워놓고 빠따로 두들겨 팼어. 그게 다 교육이었지." 변리사 선배가 입을 열었다.

"지랄." 미진 선배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변리사 선배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지랄이라고 했습니다." 선배의 대답에 그때까지도 말싸움을 하던 옆옆 테이블 선배들도 우리 쪽을 보고 조용해졌다. 하, 변리사 선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서 하늘 같은 선배한테."

"말도 못합니까." 그 말을 하는 미진 선배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미진아, 경석 형이 새내기 예뻐서 좋은 말씀 해주시는 거잖아. 형, 아시잖아요, 쟤 좀 예민한 거. 미진아, 사과드려. 경석 형께, 다른 형들께도 사과드려." 기자 선배가 미진 선배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미진 선배가 기자 선배의 손을 뿌리쳤다. "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정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경석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을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솔직히. 씨발, 이 더러운 꼴을 꼭 쟤한테까지 보여야 합니까? 전 이제 그러기 싫어요, 싫습니다."

"넌 항상 이렇게 감정적이었어. 그게 네 약점이고, 그거 극복 못하면 너 사회생활 못해." 기자 선배가 말했다.

"김연숙씨나 잘하세요. 여자인 게 그렇게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어요?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분란 일으키고, 이기적이어서 조직 배반 하기 쉽고, 여자의 적은 여자고. 그런 자기부정이 김연숙씨가 말하는 건강함이었습니까? 여자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먼 곳에서 온 노래>, p.198-199



때릴 수 있어서 편하다니, 저게 말이야 방구야...

마치, 열등하다는 것처럼,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해', '넌 지나치게 감성적이야' 같은 말들을 내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넌 논리가 부족해', '좀 더 이성적이 돼봐' 같은 말들을, 진짜 내가 졸라 많이 들어봤다. 나도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내가 열등한 줄 알기도 했다. 감성이 더 발달한 나는 이성이 더 발달한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한가봐...하고. 하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그런 말들을 해와서. 그렇지만 몇 해전부터 스스로 깨달았다.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들은, 다 그럴만한 것들이었다고. 오히려 그런 감정들과 격한 반응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직관이었으며, 그것들이 여태 내 삶을 지탱해오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안다. 자기들이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라고 자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약자에게 개소리들을 더 많이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감정적이고 성별로 여자이지만, 내가 여자인 것이 부끄럽지 않다. 나는 쉽게 흥분하고 빡치기도 잘하지만, 이렇게 빡치는 성향으로 인해서 '아닌 것 같은'일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그래서 그릇된 일에 대해 그걸 저지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 단편속에서의 '미진'이 선배들의 말로 빡치지 않았다면, 그래서 저렇게 흥분해 얘기하지 않았다면, 저 모임에서는 계속 저런 일이 반복됐을 거다. 여자에게 여자인 걸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


여자들이여, 빡치면 참지 말고 버럭대자!! 버럭버럭!!




작가는 자신의 소설들 속에서 이런 시선들을 놓지 않는다. <한지와 영주> 에서는, 아프리카 남자와 한국 여자가 프랑스에서 만나 친해진다. 그들은 늘상 함께 이야기나누고 그 시간을 좋아하는데, 그 먼 곳에서 인종차별에 노출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Chinese"라고 나를 부르기도 했고, 보다 과격한 사람은 "Fuck off colored!"라고 소리치고는 마시던 술병을 던지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멀뚱히 다리 위를 쳐다봤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프랑스어로 욕을 했는데, 내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한지는 웃으면서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우리에게 그런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고 도망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저들은 다리를 건너서 어디로 가나. 장을 보고 집에 가거나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나겠지.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일 거고, 고객이나 상사 앞에서 모멸감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외모나 나이, 환경, 혹은 누군가의 편견 때문에 차별받아본 기억이 있을 테고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되갚아주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자극해서 그 반응을 보고 싶은 건가.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 자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그들이 진심으로 가엾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한지와 영주>,p.152



'메갈리아' 사이트에서 미러링으로 남성들에 대한 발언들을 할 때, 여자일베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지 마라,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것이 미러링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애시당초 잘못된 것은 메갈리아가 아니라 그 전부터 존재해왔던 여성혐오라는 것을 알아챌텐데, 고작 그 거친 말들에 여자들에게 '그러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나왔던가. 어느날 메갈리아에 들어갔더니 누군가 그런 글을 써놓았다. '이렇게 남자들 혐오하는 거, 미러링이라고 너네도 들어보라고 하긴 하는데, 이렇게 하면서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거, 그게 내 삶에 긍정적이진 않은 것 같다' 라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그에 댓글들이 많이 달렸는데, 그 중에서는 '나도 그랬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오랜시간 허구헌날 이렇게 여성을 혐오하고 살다니, 그들의 삶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댓글도 있었다. <한지와 영주>의 저 문장은, 혐오를 일상으로 달고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이걸 스스로 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들 사이에는 또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을까.



<한지와 영주>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남자 한지와 한국에서 온 여자 영주는 친근한 우정을 쌓는다. 사실 영주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 대해 혼자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프리카로 한지를 따라 가는 일, 한지의 가족에게 인사를 나누는 일, 함께 사는 일 같은.... 그들은 매일 만나 대화와 침묵을 나누지만, 그들이 언젠가 서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척하지 않는다.




"넌 여기서의 시간을 잊어버릴 수가 없겠다." 한지가 내 노트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던데. 어떻게 이렇게 매일 기록할 수 있어? 나중에 만나게 되면 나에게 지금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줘야 돼. 난 잘 잊으니까."

"꼭 이야기해줄게."

우리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그런 식으로 다시 만날 것을 가정했다. 초인종만 누르면 언제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옆집에 사는 것처럼,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이야기하면 슬리퍼를 끌고 놀러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처럼 다시 만날 것을 가정하면서 우리가 평생을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피하려고 했다.

"영주. 나는 알아.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한지가 말했다.

"그래."

나는 내 노트 위에 나란히 놓인 '한지'와 '영주'를 바라봤다. -<한지와 영주>, p.161-162



어휴, 어젯밤에 잠들기전에 이 책을 마저 읽는데, 한지와 영주를 읽다가 한참이나 가슴이 아파 저 문장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다시 만날 것을 가정하면서 우리가 평생을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 너무 마음이 아픈 거다. 안다고 해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건 아는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니까. 깊은 밤에 이 책을 읽다가 가슴 속이 서늘해졌다.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다면, 저 문장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난..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렇게 친근한 두 사람이 결국은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이게 너무 아프다. 그러고 싶지 않다. 아 진짜 ㅠㅠ 밤이라서 가슴 아픈 글이 아니라, 아침에도 가슴 아픈 글이야. 이 페이퍼 쓴다고 저거 적는데 또 너무 슬프다 ㅠㅠ



씨발 ㅠㅠ



나는 이제 진짜 앞으로 아무도 안만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랑도 친근한 관계가 되지 않은 채로 살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현희 노래처럼, 다시 사랑하지 않을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쇼코의 미소>, p.13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쇼코의 미소>,p.24)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p.34

"너가 어른 되면 남자고 여자고 없다. 너가 여자여서 안 된다는 소리 듣거들랑 무식한 소리구나 하구 비웃어버려. 넌 뭐든 다 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 너 땐 남자구 여자구 마음 바른 사람이 잘 살거여." -<비밀>,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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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7-18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러링에 발끈하는 모습들이라니... 조그맣고 예쁜 입으로(물론 그리 생각지도 않는것 같지만) 자신들을 비난하니 당혹스러운건가봐요 ㅋㅋㅋ 완전 유리알멘탈이었지 뭡니까. 이 책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되네요. 항상 즐겁게 읽는 다락방님 리뷰>_<

다락방 2016-07-19 08: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헬라스님. 말 좀 거칠게 했다고 부르르 하다니... 소라넷 사이트 같은 것도 만들어 낄낄대는 놈들이.....고작 거친말에 부르르 하다니.... 너무나 한심하더라고요. 전 중간에서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건 나빠 하는 놈들이 더 싫어요. 이긍 짜증나.
안그래도 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다 읽었어요. 이건 잠시 후에 페이퍼 쓸게요. 군대 얘기랑 미러링 얘기랑 나오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원래 다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 읽는 거 아닌가... 우리가 다 아는 얘기 하는데, 정작 이걸 읽어야 할 사람들은 아예 읽을 생각을 안하겠지... 하는 생각요... 휴.....

hellas 2016-07-19 08:14   좋아요 0 | URL
다 알고있는 자들만 죽어라 반복학습하는거죠. 슬프네요. 그래도 읽다보면 판매부수에 도움이 될것이고 이분야 책도 더 자주 출간될것이고 이런책도 세상에 존재합니다 여러분 광고도 될것이고.... 뭐 이런 나비효과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다락방 2016-07-19 11:4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읽고 회사 동료에게도 빌려줬는데, 읽는 사람도 늘어나면 그만큼 거기에 대한 언급도 많아질테고, 아무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지치지 않고 계속 앞을 보며 가야겠어요.

2016-07-1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7-19 12:2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좀 멋지긴 한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7-19 12:33   좋아요 0 | URL
그 말 취소할까... ㅎㅎㅎㅎㅎㅎㅎ

2016-08-05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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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
라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밝혔는데, 이 소설집을 다 읽고나면 이 작가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그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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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6-07-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겠어요!

다락방 2016-07-18 17:54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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