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하는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포르투의 비 오는 일요일, 우리의 선택은 그날을 '일요일답게' 보내는 것이었다. 마트에 들어가서 볶음밥을 포장했다. 궁금했던 과자를 샀다. 할아버지가 장바구니에 담는 와인을 우리도 담았다. 이것저것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봤다. 낮술을 마셨고, 낮잠을 잤다. 보란 듯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우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네, 라며 낄낄거렸다. (p.83)
저자는 아주 많은 여행을 혼자서 했고 또 아주 많은 여행을 남편과 둘이 했다. 여행이란 게 잘 맞는 파트너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남편과 함께할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구나, 싶었다. 게다가 남편과 함께 하면서 저렇게 먼 여행지에서 발 동동 굴러가며 관광에 열중하지 않고 낮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저자가 한 달쯤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게 일단 제일 부러웠고, 그 다음엔 남편이 여행의 좋은 파트너라는 것이 부러웠다.
나 역시 여행에서 분주하게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이것도 경험하고..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좋다는 관광지나 음식점에 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그런데는 안봐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가고 싶은 데에 가고 싶다. 움직이고 싶은 시간에 움직이고 싶다. 내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므로, 바빠서는 안되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길지 않은 날들중에라도 굳이 낮술 마시고 게으름도 피우고, 거기가 아무리 먼 곳이어도 침대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 여행친구는 나랑 식성이 맞았으면 좋겠고, 나처럼 그냥 멍때리는 시간도 의미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고, 나처럼 그냥 하릴없이 막 걷는 걸 좋아했으면 좋겠다. 빡센 여행이 아니라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크- 그 먼 포르투에서 마트에 가 장을 보고 와인을 사서 낮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고 시간을 낭비하다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크- 좋구먼... 낮술도 좋고 낮잠도 좋다. 작년 여름에 열흘간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면서 늦게 일어나 티브이 실컷 보다가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점심 먹고 들어와서 또 침대에 누워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저녁 먹으러 나갔던.... 게으름도 생각난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게을러도 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아니나다를까, 불안감을 갖게 된다.
해가 저물자 어김없이 불안함이 밀려왔다. '정말 이래도 되나,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나.' 죄책감까지 뒤엉켰다. 애써 그런 생각들을 버리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또 나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p.83)
하하하하하. 게으름 피우고 싶다고 하고서는, 정작 게으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기다니, 사람은 넘나 웃긴 것.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이렇게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도 되나 싶어서 오후엔 올림픽공원을 걸으러 나가기도 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아, 이렇게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강박있는 나여....
그래도 이번 여름휴가 때는 슬렁슬렁 천천히 다녀볼 생각이다.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와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과 달리, 그때는 클림트에 열성이었다. 꼭 그의 금빛 그림을 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클림트의 <The Kiss> 앞에 서면 그 누구와라도 키스를 하고 싶어질 거야." 그 그림이 있는 오스트리아 빈은 내 여행 일저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때쯤이면 남자친구가 생겼을 거야. 그 남자랑 키스하지 뭐." 미술관 기행을 떠난 김에 남자친구까지 사귀고, 클림트의 <The Kiss>앞에서 첫키스를 하겠다는 꿈을 나는 꾸고 있었다. 호기롭게도. 스물한 살이었으니까.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으니까. 역시나 남자친구는 그렇게 쉽게 생기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 그림을 현지에서 친구가 된 한국인 여자 여덟 명과 같이 보았다. (p.119-122)
하하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꿈꾸는 게 있는걸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반드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갈 것이고, 거기서 키스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언제나 입밖으로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물아홉이 되어 뉴욕에 간다고 했을 때 '가고 싶다더니 정말로 가네'라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키스를 하지는 못했다. 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면, 누군가 나를 보고 반하고 나도 반해서 뾰로롱~ 하고 키스를 할 줄 알았는데, 진짜, 아무도,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더라. 그냥...갔다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익스트림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키스를 했다는데, 그래서 뉴욕이 아름다웠다는데, 왜 나는! 나는!!!! 그래서!!
또 갈거다. 흥!!
여행을 다니면서 '다시 가보고 싶다', '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곳이 뉴욕과 리스본이었다. 아, 싱가폴에서 마지막에 들렀던 서점이 있는 작은 마을도! 이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노라면, 저자의 포르투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특히나 리스본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읽는 내내 아, 시간 내서 어떻게든 리스본에 다시 다녀와야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다시 가고 싶다. 여행 막바지에야 발견했던 그 좁은 골목 사이사이의 음식점들, 그곳들도 다시 가보고 싶고, 숙소를 나오는 순간 펼쳐진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도 다시 보고 싶다. 리스본에 갔었을 당시에도 '여기 너무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 나 여기서 살까' 라고 하자, 같이갔던 친구가 '놀러오기 너무 힘들어서 안돼' 라고 했다. 비행기 타고 진짜 오래 가야해서. '그러면 중간에 만나면 되잖아' 라고 내가 답하긴 했는데, 크- 리스본, 너무나 다시 가고 싶네. 내년 여름 휴가에 포르투갈을 다시 갈까... 다른 가고 싶은 데도 많은데, 이 책 읽었더니 리스본 생각 너무 나네.....
아, 나는 어쩌다 이렇게 자꾸만 먼 데를 찾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자꾸만 이렇게 먼 데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분명 젊은 시절의 나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뉴욕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만 했었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왜 가장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이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되었을까.... 왜 그걸 보면서 술마시고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 되었을까.
지난 번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내가 외국에서 살기도 하냐고 물어봤더랬다. 어릴 적부터 영어권 나라에서 몇 년간 살아보고 싶어서 물어본건데, 그 분이 대답해주시길, 가서 정착은 하지 않고, 자꾸 나간다고 했다. 자꾸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맞네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자꾸 나가려고 하고 그리고 나갔다가는 이내 들어온다고. 아...그것은 직딩이 준 운명 같은 것인가... 그러면서, 가고 싶을 때마다 가라고 했다. 여행에서 되게 좋은 기운 받고 돌아오는 사람이라며.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가고 싶으면 그냥 계속 가는 걸로... 할부는................끊이지 않겠구나. 인생은 여행과 할부로 이루어진 것인가?
그나저나 영어 공부 한다고 책 사놓은지 2주 째인데 그냥 사무실에 받은 그대로 있다. 이대로 2년 갈듯.... 역시 나에게 공부란.... 먼 것인가........
어제는 진짜 출근부터 퇴근까지 외근을 포함해서 빡시게 일했고 땀도 많이 흘렸다. 치과에 가서 치료도 받느라 카드를 또 할부를 긁어놔서 멘붕이 오기도 했고. 너무 지쳐서 집에 가서 치즈를 안주 삼아 데낄라를 마셨는데(응?), 뭔가 되게 몸에 좋은 거 먹고 싶은 기분이다. 점심엔 동료와 설렁탕 먹으러 가자고 말해놓았다. 뽀얀 국물에 소금도 안치고 먹으면 아주 맛있는데, 나는 설렁탕 대신 떡만두국을 주문할 예정이다. 그러면 공기밥도 나와가지고 양이 많다. 뽀얀 국에 밥 말아서 떡이랑 만두랑 다 먹어야지. 이걸로도 좀 부족한 느낌이야, 저녁에는 삼계탕을 먹으러 갈까... 그렇게 먹어줘야 어제의 지친 내가 좀 달래지지 않을까.....
아, 몸에 좋은 거 진짜 엄청나게 먹고 싶다. 많이많이. 아주 많이.
누가 그렇게 기특한 조언을 한 걸까. 어쩌다 내가 그렇게 기특하게 그 조언을 받아들인 걸까. 첫 번째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내게 누군가가 말했다. "여행의 테마를 정해. 음시이든 뭐든." 그 조언을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무엇에 기꺼이 돈을 쓰고 싶은 사람일까.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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